-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곡명
- 피아노 소나타 11번 가장조, K. 331(300i) 《터키행진곡》
(Piano Sonata No. 11 in A major) - 작곡 시기
- 1783년경 (빈 또는 잘츠부르크)
- 출판
- 1784년, 빈, 아르타리아 출판사
(소나타 K.330·K.332와 함께 묶음 출판) - 악장
- 3악장
I. Andante grazioso (주제와 변주, 가장조)
II. Menuetto (가장조)
III. Alla turca: Allegretto (가단조 → 가장조)
1악장. 우아하게 걷듯이
2악장. 미뉴에트
3악장. 터키풍으로: 조금 빠르게 - 편성
- 피아노 독주
- 연주 시간
- 약 20분
제목에 ‘터키’가 없습니다. ‘행진곡’도 없습니다. 모차르트가 악보 맨 위에 적어둔 단어는 이탈리아어 ‘Alla turca’ — ‘터키풍으로’였거든요. 우리가 평생 ‘터키행진곡’이라 불러온 그 곡은, 실은 가장조 소나타 한 곡의 맨 끝, 3악장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지요.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를 떼고, 휴대폰 벨소리로 듣고, 예능 프로그램 효과음으로 흘려보내는 동안 — 정작 이 곡이 어느 소나타의 어느 악장인지, 그 소나타가 얼마나 이상하게 생긴 물건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오늘은 그 ‘나머지 두 악장’과, 카탈로그 번호 속에 화석처럼 박혀버린 거짓말 하나를 파보려 합니다.

‘터키행진곡’이라는 이름은 모차르트가 붙인 게 아니다
먼저 정리하고 갑시다. 이 곡의 정식 이름은 피아노 소나타 11번 가장조, 쾨헬 번호 331번입니다. 그 안에 악장이 셋 들어 있고, 마지막 3악장에만 모차르트가 ‘Alla turca’라고 적어 두었거든요. ‘터키 행진곡(Türkischer Marsch)’이라는 독일어 별명은 후대 출판사와 청중이 갖다 붙인 겁니다. 모차르트 본인은 ‘행진곡’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지요.
차이가 사소해 보이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행진곡’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 곡을 군대 사열 음악쯤으로 줄여버리거든요. 모차르트가 노린 건 행진이 아니라 ‘흉내’였습니다. 빈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듣던 터키 군악대의 그 요란한 소리를, 피아노 건반 88개 안에 욱여넣는 것. 그 야심을 ‘행진곡’이라는 단어가 절반쯤 가려버린 셈이죠.
게다가 더 큰 오해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터키행진곡’을 독립된 소품으로 알지만, 이건 20분짜리 소나타의 피날레거든요. 앞에 두 악장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악장이 — 지금부터 할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소나타라면서 소나타 형식이 한 악장도 없는 소나타
18세기 소나타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었습니다. 첫 악장은 빠르게, 그리고 반드시 ‘소나타 형식’으로 쓴다. 주제 두 개를 제시하고, 가운데서 그것들을 잘게 부수어 싸움 붙이고(전개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화해시키는(재현부) 그 구조 말입니다. 하이든도 그랬고, 베토벤도 그랬고, 모차르트 자신도 다른 소나타들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K.331은 첫 악장부터 그 약속을 깹니다. 빠르지도 않고, 소나타 형식도 아니거든요. 느긋한 ‘주제와 변주’로 시작합니다. 사실 이 소나타에는 세 악장을 통틀어 소나타 형식 악장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소나타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소나타의 핵심 설계도를 통째로 빼버린 거죠. 당대 기준으로는 꽤 도발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걸 결함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모차르트는 무거운 형식의 짐을 내려놓는 대신, 듣는 즐거움을 앞세웠다고 보는 편이 맞지요. 주제와 변주는 ‘같은 멜로디가 어떻게 변하나’를 따라가는 재미, 미뉴에트는 몸이 흔들리는 춤의 재미, 그리고 터키풍 피날레는 귀가 번쩍 뜨이는 충격의 재미. 세 악장이 저마다 다른 종류의 쾌감으로 짜여 있는 겁니다. 형식의 교과서를 버린 자리에, 모차르트는 오락의 설계도를 깔아둔 셈이죠. 200년 넘게 사랑받은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악장: 같은 멜로디를 여섯 번 갈아입히다
1악장은 시칠리아풍(siciliana)의 6/8박자 주제로 문을 엽니다. 흔들리는 요람 같은, 노래에 가까운 선율이지요. 그러더니 모차르트는 이 주제를 붙잡고 여섯 번에 걸쳐 옷을 갈아입힙니다. 한 번은 오른손이 잘게 떨고, 한 번은 왼손이 치고 들어오고, 한 번은 갑자기 단조로 표정을 바꿔 어두워지거든요. 같은 뼈대 위에서 살을 계속 바꿔 붙이는 변주의 묘기입니다.
변주들을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앞쪽 변주들이 음표를 점점 더 잘게 쪼개며 화려해지다가, 다섯 번째 변주에서 갑자기 속도를 떨어뜨립니다(Adagio). 음 하나하나에 장식을 주렁주렁 매달아, 마치 아리아를 부르듯 노래하는 대목이지요. 그러다 마지막 여섯 번째 변주는 박자를 4/4로 갈아끼우고 경쾌하게 내달리며 악장을 닫습니다. 느려졌다가 다시 튀어 오르는 이 낙차가, 단순한 주제 하나를 20분짜리 여정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주거든요.
왜 이게 중요할까요? 변주곡은 ‘주제를 어떻게 비트느냐’가 전부인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모차르트는 첫 악장부터 이미 손님에게 신호를 보낸 겁니다. “이 소나타는 정해진 틀을 따르는 곡이 아니라, 하나의 재료를 갖고 노는 곡이야.” 마지막 3악장에서 터키 군악대 소리를 피아노로 ‘갖고 노는’ 그 발상은, 사실 1악장에서 이미 예고된 셈이죠.
2악장: 가장 멀쩡해서 가장 잊히는 악장
2악장은 미뉴에트입니다. 셋이 한 묶음으로 도는 3박자 춤곡이지요. 세 악장 중 가장 ‘정상적인’ 악장이고, 바로 그 이유로 가장 자주 잊힙니다. 화려한 변주도 없고 요란한 터키 북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엔 트리오(가운데 대조 부분)에서 손이 양극단으로 벌어지는 대목이 숨어 있어서, 연주자에게는 은근히 까다로운 구간입니다.
그래도 한 군데는 귀를 세울 만합니다. 트리오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살짝 바뀌면서, 오른손이 노래하는 동안 왼손이 넓은 간격을 건너뛰며 받쳐주거든요. 화려하진 않아도, 손이 무대를 가로지르듯 움직이는 이 대목이 연주자에게는 은근한 함정입니다. 겉보기에 쉬워 보이는 곡일수록 멀쩡하게 들리도록 치기가 어렵다는, 그 오래된 진실이 여기서도 통합니다.
흥미로운 건 조성입니다. 1악장도 가장조, 2악장도 가장조, 3악장도 (단조로 시작하지만) 결국 가장조로 끝나거든요. 세 악장이 같은 으뜸음을 공유하는, 이른바 ‘동주음(homotonal)’ 소나타입니다. 보통은 악장마다 조를 바꿔 대비를 주는데, 모차르트는 일부러 한 색깔로 묶었지요. 덕분에 소나타 전체가 하나의 긴 노래처럼 들립니다.

빈이 ‘터키’에 미쳐 있던 시대
3악장으로 가기 전에, 한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빈 한복판에서 활동하던 모차르트가 왜 갑자기 ‘터키풍’ 음악을 썼을까요? 이건 그저 이국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빈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는 200년 넘게 이어진 피의 역사가 깔려 있었거든요.
1683년, 오스만 군대가 빈을 포위했습니다. 도시는 두 달 가까이 굶주리며 버텼지요. 함락 직전,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기병대가 언덕 위에서 들이닥쳐 오스만군의 진영을 무너뜨립니다. 이게 그 유명한 제2차 빈 공방전입니다. 이때부터 전세가 서서히 합스부르크 쪽으로 기울었고, 빈 사람들에게 ‘터키’는 더 이상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가 아니게 되었거든요.
공포가 사라지자 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때 떨게 했던 적의 문화가, 이제는 구경거리이자 패션이 된 겁니다. 적을 이긴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였지요. 무서웠던 기억이 가까울수록, 그것을 무대 위 농담으로 바꿀 때의 쾌감도 컸던 모양입니다. K.331이 태어난 빈은 바로 그런 분위기의 도시였습니다.

공포가 빠진 자리를 채운 건 호기심이었습니다. 100년쯤 지나 모차르트가 살던 18세기 후반의 빈은 ‘터키 열풍(Turkomania)’에 빠져 있었거든요. 커피를 마시고, 터번을 두른 의상을 입고, 오페라 무대에 터키 궁정을 올리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모차르트도 이 흐름을 정확히 읽었지요. 그가 같은 시기에 쓴 오페라 《후궁 탈출》은 아예 터키 궁정이 배경입니다.
이 《후궁 탈출》에는 유명한 일화가 따라붙습니다. 초연을 본 황제 요제프 2세가 모차르트에게 “음표가 너무 많군, 친애하는 모차르트”라고 했다는 이야기지요. 진위는 분명치 않지만, 그만큼 모차르트의 ‘터키풍’이 당시 빈에서 화제의 중심이었다는 방증입니다. 오페라에서도, 소나타에서도, 모차르트는 같은 시기에 같은 재료를 굴리고 있었던 셈이죠. K.331의 3악장은 그 거대한 유행의 가장 작고 단단한 결정체였습니다.
그러니까 K.331의 3악장은 갑자기 튀어나온 변덕이 아니었습니다. 빈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시대의 농담’이었던 겁니다. 그 농담의 핵심 재료가 바로, 한때 빈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소리 — 터키 군악대였지요.
메흐테르: 칼이 아니라 북으로 도시를 점령한 군악대
오스만 군대에는 ‘메흐테르(Mehter)’라 불리는 군악대가 있었습니다. 흔히 ‘예니체리 군악대’로도 불리지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의 군악대로 꼽히는데, 이들의 임무는 단순히 행진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전투 직전,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 — 일종의 음향 무기였던 까닭입니다.
편성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종, 그리고 날카로운 관악기. 멜로디보다 타격음이 앞서는 구성이지요. 수십 명이 한 박자로 발을 구르며 금속과 가죽을 두들기면, 그 소리가 성벽을 넘어 도시 안까지 밀려들었습니다. 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힌 ‘터키 사운드’란 바로 이 쿵쾅거리는 타악의 질감이었거든요.

이 군악대의 영향은 농담 한 곡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깊은 흔적을 남겼지요. 오늘날 교향악단이 쓰는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은 원래 유럽 오케스트라에 없던 악기들이었거든요. 이 타악기들이 서양 음악 안으로 들어온 결정적 통로가 바로 이 터키 군악대 열풍이었습니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 합창 악장에 행진풍 대목을 넣으며 큰북과 심벌즈를 동원한 것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셈이죠. 빈을 위협했던 그 소리가, 끝내 서양 관현악의 일부가 되어버린 겁니다.
여기서 모차르트의 진짜 묘기가 시작됩니다. 군악대에는 큰북도 있고 심벌즈도 있지만, 피아노는 한 사람이 건반만 두드리는 악기거든요. 타악기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이 한 대의 피아노로 군악대 전체를 무대 위에 소환하려 했지요. 그 방법이 3악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3악장 ‘Alla turca’: 피아노 한 대로 군악대를 소환하다
드디어 그 유명한 3악장입니다. 형식은 론도인데, 보통의 깔끔한 론도가 아니라 A–B–C–B–A–B에 코다가 붙는 불규칙한 구조거든요. 여기서 핵심은 되풀이되는 B 후렴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군악대 흉내의 심장이지요.
곡은 가단조로, 오른손이 종종걸음 치듯 16분음표를 굴리며 시작합니다. 살금살금 다가오는 느낌이지요. 그러다 가장조로 표정을 확 바꾸면서, 그 유명한 행진 주제가 터집니다. 오른손은 높은 음역에서 종소리처럼 반짝이며 선율을 이끌고, 왼손은 큰북처럼 바닥을 두들기거든요. 피아노 한 대가 갑자기 타악기 부대로 돌변하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모차르트의 셈법이 영리합니다. 군악대 소리의 핵심은 ‘멜로디’가 아니라 ‘질감’이거든요. 그래서 그는 복잡한 화성 대신, 같은 음형을 단순하게 반복하며 두들기는 쪽을 택했습니다. 가장 단순한 재료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거죠. 행진 주제가 귀에 한 번 박히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의도된 단순함에 있습니다.
가운데 C 부분은 올림바단조로 잠시 비켜섭니다. 흐름을 한 번 끊고 숨을 고르는 대목이지요. 그러고는 다시 행진 주제가 돌아오고, 마지막 코다에서 모든 게 한꺼번에 쏟아지며 끝납니다. 끝맺음이 어찌나 당당한지, 짧은 곡인데도 큰 곡을 다 들은 듯한 포만감이 남거든요.
그런데 모차르트 당대 사람들은 우리보다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이 시기 일부 피아노에는 ‘터키 스톱(Turkish stop)’, 일명 ‘예니체리 페달’이라는 장치가 달려 있었거든요. 페달을 밟으면 종이 울리고, 솜방망이가 공명판을 두드려 큰북 소리를 흉내 냈지요. 즉, 당시 청중은 이 3악장을 들을 때 진짜로 종과 북이 딸깍거리는 소리를 함께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모차르트의 ‘군악대 흉내’는 비유가 아니라, 거의 실물에 가까웠던 셈이죠.
그래서 오늘날 현대 그랜드 피아노로 듣는 이 곡은, 사실 모차르트가 상상했던 소리에서 한 겹이 빠진 버전입니다. 종도, 북소리 페달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곡이 군악대처럼 들린다면, 그건 모차르트가 페달이라는 장치에 기대지 않고 음표 배치만으로 타격감을 설계해두었다는 뜻입니다. 장난감을 빼앗겨도 흉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단단하게 짜둔 거죠.
K.300i — 카탈로그에 화석으로 박힌 틀린 날짜
이제 가장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갑니다. 이 곡, 도대체 언제 어디서 썼을까요? 정답은 놀랍게도 “확실하지 않다”입니다. 그리고 그 불확실함이 곡 번호 안에 흔적으로 남아 있거든요.
K.331 옆에는 늘 ‘300i’라는 또 다른 번호가 따라붙습니다. 쾨헬 카탈로그가 개정되면서 붙은 번호인데, 이 300번대라는 위치 자체가 “1778년 파리에서 작곡됐다”는 추정을 담고 있지요.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이 1937년 카탈로그 제3판에서 “1778년 늦여름, 파리”라고 못 박았던 까닭입니다.
사실 추정은 학자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쾨헬은 처음(1862년)에 막연히 1779년쯤으로 보았고, 생푸아라는 학자는 1936년에 “1779년 초 잘츠부르크”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듬해 아인슈타인이 이를 ‘1778년 파리’로 끌어당겼습니다. 한 곡의 출생 연도를 두고 60년 넘게 의견이 출렁였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출렁이던 추정 가운데 가장 극적인 버전이 대중의 기억에 박혀버렸다는 점이지요.
1778년 파리. 이 조합이 왜 매혹적이냐면, 바로 그 여름 파리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객지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낭만적인 이야기가 따라다녔지요.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슬픔 속에서 이 밝은 터키행진곡을 썼다”는 식의. 슬픔과 명랑함의 극적인 대비 — 그럴듯하지 않나요?

문제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겁니다. 20세기 후반 학자들이 모차르트가 쓴 악보 종이의 종류와 필체를 정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거든요. 종이의 결과 잉크, 음표를 그린 습관까지 따져본 결과, K.331은 파리 시절이 아니라 그가 빈에 자리 잡은 1783년 무렵에 쓰였다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습니다.
결정적 증거는 출판 기록입니다. 이 곡은 1784년 초 빈의 아르타리아 출판사에서 소나타 두 곡(K.330·K.332)과 함께 묶여 나왔거든요. 출판 직전에 완성됐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요. 즉 ‘파리에서 어머니를 여의며 쓴 곡’이라는 서사는, 카탈로그 번호가 만들어낸 착시에 가깝습니다. 번호는 1778년 파리를 가리키는데, 정작 곡은 1783년 빈에서 태어난 거죠.
반전은 2014년에 한 번 더 있었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국립도서관에서, 음악학자 발라주 미쿠시가 이 소나타의 자필 악보 네 쪽을 찾아낸 겁니다. 그전까지 살아남은 친필은 마지막 한 쪽뿐이었거든요. 230년 만에 모차르트의 손글씨가 네 쪽이나 더 발견된 셈이죠. 이 악보를 분석한 결과 역시 “1784년 2월 이전, 십중팔구 그 전해”라는 결론을 뒷받침했습니다. 카탈로그 속 ‘300i’는, 한때 사실로 믿었던 추정이 굳어버린 화석인 셈입니다.
왜 하필 이 한 악장만 이토록 유명해졌을까
마지막으로 던질 질문이 하나 남았습니다.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소나타는 열여덟 곡이나 됩니다. 그중에서 왜 하필 이 K.331의 3악장만, 작곡가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도 흥얼거릴 만큼 유명해졌을까요?
첫째, 짧고 강렬합니다. 3분 남짓이면 끝나고, 행진 주제는 한 번만 들어도 귀에 박히지요. 둘째, 떼어 쓰기 좋습니다. 소나타 전체는 20분이지만 3악장만 쏙 빼서 앙코르로, 광고 배경음으로, 휴대폰 벨소리로 얼마든지 잘라 쓸 수 있거든요. 한국에서도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를 갓 뗀 학생이 ‘드디어 아는 곡’으로 만나는 단골 레퍼토리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긴장이나 분주함을 표현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흘러나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어마어마한 인기가 곡의 진짜 모습을 가려버렸습니다. 3악장이 너무 유명해진 탓에, 그 앞의 변주곡 악장과 미뉴에트 악장은 ‘터키행진곡 앞에 붙은 무언가’로 밀려나버린 거죠. 우리가 이 글을 시작하며 던진 통념 — ‘제목에 터키도 행진곡도 없다’는 그 사실조차, 곡이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아무도 따져 묻지 않게 된 부작용인 셈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이 곡을 듣게 되거든, 3악장만 듣고 끄지 마시길. 그 앞에 모차르트가 정성껏 갈아입힌 여섯 벌의 변주가, 그리고 가장 멀쩡해서 가장 잊힌 미뉴에트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20분을 통째로 들어야 비로소, 한 음악가가 빈의 거리 소음을 어떻게 한 대의 피아노 안에 가두었는지가 온전히 보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이제 소나타 전체를 악보와 함께 따라가 봅시다. 1악장의 변주가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 3악장에서 왼손 옥타브가 어디서 큰북으로 돌변하는지 — 눈으로 확인하면 귀가 훨씬 또렷해지거든요.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K.331 악보 보기 (IMSLP)
추천 음반 — 누구의 ‘터키’로 시작할까
워낙 유명한 곡이라 녹음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같은 악보를 두고도 누구는 단정하게, 누구는 거칠게, 누구는 아예 장르를 바꿔 칩니다. 성격이 또렷하게 갈리는 세 장만 골랐습니다.
우치다 미쓰코는 정본에 가깝습니다.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으로 그라모폰상을 두 번 받았고, 손가락의 균형과 투명한 음색이 흠잡을 데 없거든요. 처음 이 곡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면 여기서 출발하면 됩니다. 다만 너무 단정해서 ‘심심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겁니다.
파질 사이는 정반대입니다. 터키 출신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재즈로 비틀어 친 버전이 유명한데, 원곡의 행진 주제를 스윙으로 끌고 가지요. ‘터키풍 흉내’를 진짜 터키 사람이 다시 비튼다는 점에서 짜릿합니다. 단, 악보 그대로의 정통 연주를 기대한 사람에겐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글렌 굴드는 호불호의 끝판입니다. 그의 모차르트는 템포도, 강세도 일부러 어긋나게 굴려서 “이게 모차르트야?” 소리가 절로 나오거든요. 통념을 깨는 연주를 즐기는 사람에겐 보물이지만, 단정한 모차르트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피해야 할 음반입니다.
‘터키행진곡’은 독립된 곡인가요, 아니면 더 긴 곡의 일부인가요?
모차르트가 직접 ‘터키행진곡’이라는 제목을 붙였나요?
왜 ‘터키풍’인가요? 모차르트가 터키에 다녀왔나요?
이 곡은 정말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어머니를 잃고 쓴 곡인가요?
피아노 초보도 이 곡을 칠 수 있나요?
같은 건반에서 갈라진 길들
한 곡을 제대로 들으면, 그 곡이 손을 내미는 다른 곡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K.331에서 출발해 이어 들으면 좋은 길들을 모았습니다. 변주의 재미를 더 파고들 수도, 같은 가장조의 다른 얼굴을 만날 수도, 피아노라는 악기가 그려낸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도 있지요.
- 모차르트 — 12개의 변주곡 K.265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 — 1악장 변주의 재미를 한 곡 통째로 즐기고 싶다면.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3번 가장조 K.488 — 같은 가장조가 오케스트라와 만나면 어떤 빛이 되는지.
-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 소나타가 형식을 어떻게 폭발시키는지 보여주는 반대편 극단.
- 쇼팽 — 발라드 1번 g단조 Op.23 — 피아노 한 대로 그릴 수 있는 서사의 또 다른 절정.
- 모차르트 —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K.525 — 같은 빈 시절 모차르트의 가장 대중적인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