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장르
- 드라마 조코소 (Dramma giocoso)
- 전체 제목
- Il dissoluto punito, ossia il Don Giovanni
- 작곡 연도
- 1787년
- 악장 구성
- 2막
서곡 (Overture, D minor → D major)
1막 (Atto primo)
2막 (Atto secondo)
서곡 (D단조 → D장조)
1막
2막 - 편성
-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악 5부, 쳄발로(레치타티보)
- 초연
- 1787년 10월 29일, 프라하 에스타테스 극장
- 대본
- 로렌초 다 폰테 (Lorenzo Da Ponte)
- 연주 시간
- 약 170~180분 (인터미션 포함)
1787년 10월 28일 밤, 프라하의 한 숙소.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가 건네준 펀치를 홀짝이며 오선지 위에 펜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이 신작 오페라의 초연인데, 정작 오케스트라가 맨 처음 연주해야 할 서곡이 없었거든요.
원고 마감을 어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오페라 전체의 첫인상을 결정할 음악도 없이 초연 전야를 맞이한 셈입니다. 콘스탄체는 곁에서 잠들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남편을 깨웠고, 모차르트는 밤을 꼬박 새워 펜을 놀렸다고 전해집니다. 새벽녘에 완성된 악보를 필사자에게 건넸을 때 잉크조차 채 마르지 않았더군요. 물론 모차르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완성된 음악이었을 겁니다. 그에게 작곡이란 머릿속의 음악을 종이에 옮기는 작업이었던 까닭입니다.
결과가 어땠냐고요? 프라하의 청중은 열광했습니다. 초연은 대성공. 오늘날 모차르트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 서곡, 팽팽한 긴장감 위로 화산처럼 폭발하는 D장조 알레그로 어디에서도 그날 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연주자들이 잉크도 마르지 않은 악보를 초견(初見)으로 연주하며 조마조마해했다는 후일담도 내려옵니다. 어떤 연주자는 “틀리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차르트. 그리고 이것이 바로 <돈 조반니>입니다.
500년을 살아남은 방탕아, 돈 후안의 기원
돈 조반니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허구의 존재. 하지만 400년 가까이 유럽인의 상상력 속에서 살아 숨 쉬어 온 인물입니다. 이 캐릭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30년, 스페인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 초대객』에서였습니다. 귀족 신분을 믿고 여자를 농락하다가, 끝내 자신이 살해한 귀족의 석상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줄거리.

이 이야기는 왜 그토록 오래 살아남았을까요? 단순한 권선징악 설화로 보기엔 뭔가 복잡합니다. 돈 후안, 혹은 돈 조반니는 그저 그런 악당이 아니었거든요. 매력과 기지, 넘치는 카리스마까지 갖춘 인물. 미워하면서도 끌리는 존재. 작가들은 이 역설을 이미 꿰뚫고 있었습니다. 몰리에르는 1665년에 『돈 쥐앙』이라는 희곡을 썼고, 골도니는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 전통으로 이 소재를 변주했습니다. 심지어 모차르트 이전에도 주세페 가차니가가 같은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었는데, 다 폰테는 가차니가의 대본가 조반니 베르타티가 쓴 대본을 상당 부분 참조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모차르트와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가 이 소재를 선택한 시점은 1786년 말. 두 사람이 『피가로의 결혼』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직후입니다. 다 폰테는 모차르트와의 작업을 ‘다 폰테 3부작’으로 구상하고 있었지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이 세 작품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전통 위에서 유럽 사교계와 남녀 관계의 허위와 욕망을 정밀하게 해부하는 걸작들입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다 폰테는 당시에 무려 세 명의 작곡가와 각기 다른 대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모차르트, 다른 한 명은 살리에리, 마지막은 마르틴 이 솔레르.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지인의 질문에, 다 폰테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더군요. 밤에는 단테의 『인페르노』를 읽으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쓰고, 아침에는 페트라르카를 읽으며 살리에리의 작품을 쓰고, 저녁에는 타소를 읽으며 솔레르의 작품을 썼다고요. 그리고 가장 좋은 시간, 가장 깊은 집중은 가장 뛰어난 작곡가인 모차르트를 위해 아꼈다고 덧붙였습니다.
프라하는 모차르트에게 참으로 각별한 도시였습니다. 빈에서는 그저 그런 반응이었던 『피가로의 결혼』이 프라하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거든요. 거리 곳곳에서 피가로의 선율이 흘러나올 정도. 모차르트는 편지에 “프라하에서는 온통 피가로입니다. 사람들은 피가로만 연주하고, 피가로만 노래하고, 피가로만 휘파람을 불고, 피가로만 이야기합니다”라고 썼습니다. 프라하의 에스타테스 극장이 신작을 의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 못한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드레스 리허설까지 다 마쳤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서곡이 없었던 거죠. 모차르트가 의도적으로 미뤘을까요, 아니면 정말 깜빡 잊은 걸까요? 당시 관행상 서곡은 오페라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하는 곡이라 마지막에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로시니도 비슷한 습관이 있었지요. 다만 초연 전날 밤까지 미룬 건 모차르트조차 드문 사례입니다.
이 오페라의 초연 성공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프라하를 방문하기 직전,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1787년 5월 28일. 아버지와의 관계는 복잡 미묘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유럽을 누비며 아버지의 철저한 관리 아래 성장했지만, 빈에 정착하며 독립한 뒤로는 관계가 소원해졌고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돈 조반니』에서 아버지와 같은 기사장이 죽고, 석상이 되어 돌아와 복수하는 장면. 유독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는 추측의 영역이지만, 수많은 음악학자가 주목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저서 『모차르트』에서 이 오페라에 아버지의 죽음이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돈 조반니』가 단순한 희극이 아니라 죽음과 초자연적 심판에 대한 성찰이 된 배경에 이 개인적 경험이 작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무대 위의 일곱 명, 등장인물 소개
돈 조반니(Don Giovanni, 바리톤)는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자 최대의 수수께끼입니다. 스페인의 젊은 귀족으로, 여성 편력이 전설적인 수준. 하인 레포렐로가 기록한 ‘카탈로그’에 따르면 정복한 여성이 2,065명에 달합니다. 쾌락 그 자체를 추구하는 존재이며, 신의 심판 앞에서도 끝내 회개를 거부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물. 그런데 묘하게도 관객은 이 악당에게 은근히 매력을 느낍니다. 그의 자유와 불굴의 의지에 대한 감탄일까요? 키르케고르는 돈 조반니를 ‘관능적 천재’라 정의하며, 그의 매력은 음악으로만 표현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레포렐로(Leporello, 베이스)는 돈 조반니의 하인이자 이 오페라의 코미디 엔진입니다. 주인을 욕하면서도 따르고, 속으면서도 충성하는 모순적인 인물이지요. 유명한 ‘카탈로그 아리아’에서 주인의 여성 편력을 줄줄이 읊는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웃긴 순간 중 하나. 셰익스피어의 팰스태프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돈 조반니와 옷을 바꿔 입는 2막 장면에서는 하인과 주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사회적 풍자까지 담고 있습니다.
도나 안나(Donna Anna, 소프라노)는 기사장의 딸로, 돈 조반니에게 아버지를 잃은 인물입니다. 복수를 맹세하며 극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의 축. 약혼자 돈 오타비오(Don Ottavio, 테너)와 함께 돈 조반니를 추적합니다. 오타비오는 성실하지만 다소 수동적인 인물로, “나의 보물이여(Il mio tesoro)”라는 테너 아리아의 명곡을 부릅니다. 이 아리아는 테너에게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는 까닭에 오디션곡으로도 자주 쓰입니다.
도나 엘비라(Donna Elvira, 소프라노)는 돈 조반니에게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분노와 집착,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인물이죠. “아 누가 알까(Ah, chi mi dice mai)”부터 “나를 배신한 그 자(Mi tradì quell’alma ingrata)”까지, 그녀의 아리아는 감정적으로 가장 격렬합니다. 흥미로운 건, 빈 초연을 위해 모차르트가 추가한 아리아들 중 상당수가 엘비라의 몫이었다는 점입니다. 프라하 초연본보다 빈 초연본에서 엘비라의 비중이 눈에 띄게 커졌더군요.
체를리나(Zerlina, 소프라노)와 마세토(Masetto, 베이스)는 결혼을 앞둔 시골 커플입니다.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의 유혹에 잠시 흔들리지만 결국 마세토에게 돌아가는 인물. “약을 줄 테니(Vedrai, carino)”에서 마세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장면은 오페라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어디가 아픈지 봐봐, 내가 약을 줄게”라며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 이 아리아는 성악 입문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기사장/석상(Il Commendatore, 베이스)은 1막 서두에 죽지만, 2막 피날레에서 석상으로 돌아와 돈 조반니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초자연적 존재입니다. 트롬본 세 대가 뒷받침하는 그의 음성은 공포 그 자체. 모차르트는 당시 오페라 관행을 깨고 트롬본을 극 중 음악에 사용했는데, 이 악기가 교회 음악과 장례 음악에서 주로 쓰이던 점을 고려하면 석상의 ‘신성한 심판자’ 이미지를 음향으로 구현한 셈입니다.
1막, 살인으로 시작되는 밤
1막
서곡이 끝나면 무대 위에 레포렐로가 홀로 서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하인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Notte e giorno faticar).” 주인을 기다리며 투덜거리는 이 장면은 웃기지만, 분위기가 급반전합니다. 돈 조반니가 도나 안나의 방에서 뛰쳐나오고, 뒤따라 나온 도나 안나의 아버지 기사장과 결투가 벌어지죠. 칼이 번뜩이고, 기사장은 쓰러집니다. 극이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살인 사건이 터진 겁니다. 이 도입부의 속도감은 당시 오페라로서는 파격적이었습니다. 보통은 서곡 뒤에 합창이나 레치타티보로 상황을 설명하는데, 모차르트는 관객을 곧바로 사건 한복판에 던져넣었습니다.

도나 안나는 약혼자 돈 오타비오와 함께 복수를 맹세합니다. 한편 돈 조반니 앞에는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나죠.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도나 엘비라. 세비야에서 그녀를 버리고 도주한 돈 조반니에게 분노를 쏟아붓는 엘비라를, 레포렐로가 대신 달래며 꺼내드는 것이 그 유명한 ‘카탈로그 아리아’입니다.
“마님, 이것이 바로 그 목록입니다. 제 주인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인들의 목록이지요. 이탈리아 640명, 독일 231명, 프랑스 100명, 터키 91명,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1,003명.”
합계 2,065명. 과장이 섞였겠지만, 이 아리아야말로 1막의 핵심을 요약합니다. 돈 조반니는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낭만적 연인이 아닙니다. 정복 그 자체가 목적인 인물이죠. 레포렐로가 “뚱뚱한 여자는 겨울에, 마른 여자는 여름에”라며 주인의 취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지지만, 그 숫자의 무게를 생각하면 웃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마을에서는 체를리나와 마세토의 결혼 축하연이 한창입니다. 돈 조반니는 어김없이 체를리나에게 접근하고, “저기서 손잡아요(Là ci darem la mano)”라는 이중창이 시작됩니다. 유혹하는 바리톤과 흔들리는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처음에는 따로 노래하다가 점차 하나로 합쳐지는 음악적 구조. 가사의 내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설계입니다. 베토벤이 이 선율에 영감을 받아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변주곡(WoO 28)을 썼을 정도로 매혹적인 곡이기도 합니다.
1막의 클라이맥스는 돈 조반니 저택의 가장무도회. 여기서 세 가지 다른 춤 음악이 동시에 연주됩니다. 메뉴에트(3/4박자), 콘트르당스(2/4박자), 티롤 댄스(3/8박자)가 한데 뒤섞이는 순간. 무대 위 세 앙상블이 각기 다른 박자를 동시에 연주하는 이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최초의 폴리리듬 실험이었습니다. 왜 이런 시도를 했을까요? 귀족은 메뉴에트에 맞춰, 부르주아는 콘트르당스에 맞춰, 농민은 티롤 댄스에 맞춰 춤을 추는 것. 18세기 계층 사회를 음악 하나로 그려낸 겁니다. 세 가지 박자가 뒤섞이는 혼란 속에서 체를리나의 비명이 들리고, 돈 조반니의 만행이 탄로나면서 1막이 격렬하게 마무리됩니다.
2막
2막은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가 옷을 바꿔 입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돈 조반니는 하인 복장으로 도나 엘비라의 하녀를 유혹하려 하고, 레포렐로는 주인 행세를 하며 엘비라를 쫓아내는 역할을 맡죠. 정체극(正體劇)의 교과서 같은 전개. 이 장면에서 모차르트는 음악만으로 두 인물의 정체를 관객에게 알려줍니다. 같은 옷을 입어도 노래하는 방식이 다르거든요.
상황은 점점 돈 조반니를 옥죄어 옵니다. 도나 안나, 도나 엘비라, 마세토까지 그를 잡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 마세토가 직접 패거리를 이끌고 돈 조반니를 찾아다니지만, 하인 옷을 입은 돈 조반니에게 오히려 두들겨 맞는 아이러니까지 벌어집니다. 체를리나가 맞고 돌아온 마세토를 달래며 부르는 “약을 줄 테니(Vedrai, carino)”는 폭력과 유머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잡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장면이 옵니다. 묘지에서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가 밤의 모험을 자랑하며 웃고 있을 때, 느닷없이 기사장의 석상이 말을 걸어옵니다. “웃음을 그치라. 새벽이 오기 전에 네 웃음은 끝날 것이다.” 트롬본과 낮은 현악기가 빚어내는 석상의 목소리. 레포렐로는 공포에 질리지만, 돈 조반니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석상을 자신의 저녁 만찬에 초대하기까지 합니다. 모차르트는 초자연적 존재의 목소리를 트롬본에 맡겼는데, 당시 오페라 피트에서 트롬본이 쓰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교회 음악, 장례 음악의 악기. 그 음색이 묘지 위에 울려 퍼지는 순간의 효과를 모차르트는 정확히 계산했던 겁니다.
만찬 장면. 돈 조반니가 식사를 즐기는 동안, 무대 위 소규모 앙상블이 당시 인기 오페라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비센테 마르틴 이 솔레르의 『우나 코사 라라』, 주세페 사르티의 『이웃 간의 분쟁』, 그리고 모차르트 자신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나온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ù andrai)”. 레포렐로가 “이건 귀에 너무 익은 곡이군!”이라고 하는 순간, 객석은 폭소합니다. 자기 작품을 자기가 패러디한 것. 이런 유머 감각이 바로 모차르트입니다.
약속대로 석상이 찾아옵니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과 함께 D단조의 화음이 울립니다. 서곡의 그 선율입니다. “회개하라(Pentiti).” 석상의 손을 잡는 순간, 얼음장 같은 냉기가 돈 조반니의 몸을 관통합니다. “회개하라!” 돈 조반니는 끝내 거부합니다. “아니(No)!” 세 번의 거부. 지옥의 불길이 치솟고, 합창단의 포효 속에 돈 조반니는 그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전통적인 오페라의 결말이라면 여기서 끝나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살아남은 여섯 명이 무대에 다시 나와 각자의 앞날을 노래하는 6중창(Questo è il fin)을 덧붙였습니다. 도나 안나는 1년 뒤에 결혼하겠다 약속하고, 레포렐로는 새 주인을 찾아 떠나겠다고 선언하죠. “이것이 악인의 최후로다(Questo è il fin di chi fa mal).” 이 마지막 장면의 해석을 두고 연출가에 따라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빈 궁정 오페라 지휘 시절 6중창을 삭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석상 장면의 극적 충격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느 쪽이 모차르트의 본래 의도에 더 가까운지, 그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해석의 갈림길
초연 포스터에는 ‘드라마 조코소(Dramma giocoso)’라는 낯선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직역하면 ‘유쾌한 드라마’. 오페라 부파(희극)와 오페라 세리아(정극)의 경계를 허무는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그 둘을 아우르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 바로 이 지점입니다.

실제로 <돈 조반니>는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레포렐로와 마세토가 등장하면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지만, 기사장이 죽거나 석상이 복수하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 방금 웃다가도 다음 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이 불편함이야말로 <돈 조반니>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요?
연출가들은 이 양면성을 놓고 극적으로 다른 선택을 합니다. 1950~60년대 전통 연출에서 돈 조반니는 ‘멋진 악당’이었습니다. 조르조 스트렐러가 1987년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선보인 연출은 18세기 풍의 화려한 무대 위에서 돈 조반니를 카리스마 넘치는 귀족으로 그렸습니다. 관객은 그에게 매혹됐지요. 사무엘 래미의 카리스마 넘치는 타이틀 롤이 이 해석을 뒷받침했습니다.
반면 클라우스 구트가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올린 연출은 전혀 달랐습니다. 돈 조반니를 심리적 붕괴 상태에 놓인 현대인으로 읽어낸 것이죠. 화려한 궁전 대신 병원 복도를 연상시키는 공간. 유혹이 아니라 강박에 가까운 행동 패턴. 같은 음악, 같은 대사인데 전혀 다른 오페라가 됩니다. 이 연출은 잘츠부르크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었지만, 돈 조반니를 바라보는 시각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피터 셀러스는 1990년에 배경을 현대 뉴욕으로 옮겼습니다. 돈 조반니는 할렘의 마약상, 레포렐로는 떨이를 치는 하수인. 18세기 스페인 귀족의 방탕을 현대 도시의 범죄로 치환한 셈입니다. 요셉 로지의 1979년 영화 버전은 아예 베니스와 파도바의 실제 빌라에서 촬영하며 오페라 영화의 새로운 기준점을 세웠습니다. 루제로 라이몬디의 돈 조반니와 로린 마젤의 음악이 만나 시각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했더군요.
괴테는 이 오페라를 두고 “이보다 더 훌륭한 대본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며 극찬했습니다. E.T.A. 호프만은 “오페라 중의 오페라”라 칭했고,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돈 조반니의 음악에 담긴 관능적 욕망을 철학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음악 하나가 이토록 깊은 담론의 대상이 된 예가 또 있었을까요?
음악적 장치 또한 이 이중성을 정교하게 드러냅니다. 서곡의 암울한 D단조 도입부는 오페라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입니다. 같은 선율이 2막 마지막 석상 장면에서 섬뜩하게 다시 등장할 때, 모차르트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획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웃음으로 시작해 공포로 끝나는 이 천재적인 구조가 250년이 지나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까닭입니다.
놓치면 아까운 아리아와 장면
서곡(Overture)은 D단조의 위협적인 화음으로 문을 엽니다. 이 선율이 2막 마지막 석상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죠. 모차르트는 시작부터 결말을 암시한 겁니다. 어둠의 D단조가 돌연 밝은 D장조 알레그로로 전환되는 순간, 오페라 전체의 성격이 압축됩니다.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치밀한 설계. 서곡만 따로 연주회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올려지기도 합니다.

카탈로그 아리아(Madamina, il catalogo è questo)는 1막에서 레포렐로가 도나 엘비라에게 주인의 여성 편력 기록을 읊어주는 베이스 아리아입니다. 1,003명이라는 숫자를 읊는 베이스의 목소리에서는 묘한 자랑스러움마저 느껴집니다. “금발은 예의 바르다고 칭찬하고, 갈색 머리는 성실하다고 추켜세우고, 흰 머리는 부드럽다고 치켜올리지요.” 각 나라별 숫자를 나열하다가 마지막에 “스페인에서는… 천, 세, 명(mille e tre)”을 강조하는 대목. 이 순간 극장이 들썩일 만큼 웃음이 쏟아집니다.
저기서 손잡아요(Là ci darem la mano)는 돈 조반니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이중창으로, 단 두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유혹과 갈등이 완성됩니다. 처음에는 각자 따로 노래하다가, 체를리나가 마음이 흔들리면서 두 목소리가 점차 같은 리듬, 같은 선율로 합쳐지는 구조. 음악이 심리적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셈입니다. 베토벤이 이 선율로 변주곡을 쓴 것은 이미 유명한 일이고, 쇼팽도 같은 주제로 변주곡 Op.2를 작곡했습니다. 슈만이 이 곡을 듣고 “모자를 벗으시오, 신사 숙녀 여러분, 천재입니다”라고 평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묘지 장면에서 석상이 대답하는 순간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트롬본과 첼로가 빚어내는 석상의 목소리는 20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만찬 초대에 응하며 내뱉는 짧고 강렬한 한마디, “Sì(예).” 극장 전체가 얼어붙는 그 순간의 충격은 설명으로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만찬 장면과 지옥행(Finale)은 오직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돈 조반니>를 감상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석상이 악수를 청하고, “회개하라”는 요구를 돈 조반니가 세 번 거부하는 순간. 오케스트라가 지옥의 아수라장을 그려내고, 돈 조반니는 불길 속으로 사라집니다. D단조의 맹렬한 하강 음형이 무대 위의 불길과 겹치는 이 순간은, 오페라가 영화보다 먼저 ‘시각적 스펙터클과 음악의 완벽한 결합’을 이루어낸 사례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세 시간에 달하는 이탈리아어 오페라. 자막까지 읽으며 감상해야 하는 음악이니, 부담스러운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돈 조반니>는 좀 다릅니다. 이야기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음악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해도 눈을 뗄 수 없거든요.

💡 서곡의 첫 16마디, D단조의 위협적인 팡파르에 귀를 맡겨 보세요. 이 선율이 2막 마지막에 다시 등장합니다. 모차르트는 시작부터 결말을 암시했습니다.
핵심 포인트 다섯 가지. 첫째, 카탈로그 아리아(1막). 2,065명이라는 숫자의 임팩트. 오페라를 처음 접하더라도 이 장면에서 웃음이 터질 겁니다. 둘째, ‘저기서 손잡아요’. 단 두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유혹과 갈등이 완성되는 이중창. 셋째, 가장무도회의 세 박자 동시 연주. 귀족, 부르주아, 농민이 같은 공간에서 각기 다른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넷째, 묘지에서 석상이 대답하는 순간. 다섯째, 피날레의 만찬 장면과 지옥행. 이 다섯 포인트만 기억하고 들어가도 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겁니다.
자막은 필수입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더라도 레치타티보(대사 부분)의 내용을 따라가면 극의 흐름이 잡히거든요. 영상으로 본다면 한글 자막이 있는 버전을 추천합니다. 자막 없이 듣더라도 서곡과 피날레만큼은 음악 자체의 힘만으로 충분히 압도적입니다.
실제 공연을 간다면 사전에 줄거리를 한 번 읽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어떤 갈등이 있는지를 미리 파악해두면 음악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레치타티보를 따라가느라 진이 빠지는 것보다, 줄거리를 알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편이 훨씬 풍부한 경험이 될 겁니다.
250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이유
후대 작곡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베토벤은 ‘저기서 손잡아요’의 선율로 피아노 변주곡을 썼고, 쇼팽은 같은 주제로 변주곡 Op.2를 작곡했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돈 조반니의 후예를 그린 교향시 『돈 후안』을 1889년에 발표하며 일약 스타 작곡가가 됐지요. 베르디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의 앙상블 기법을 발전시켰고, 리하르트 바그너마저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영상 매체에도 여러 번 올랐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요셉 로지의 1979년 영화 버전. 루제로 라이몬디의 돈 조반니와 로린 마젤의 음악이 만났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HD 생중계(Met: Live in HD)를 통해 전 세계 극장에서 <돈 조반니>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빈 초연(1788년 5월 7일)에서의 반응은 프라하와 사뭇 달랐습니다. 요제프 2세 황제가 “우리 빈 사람들의 입맛에는 너무 맵다”고 평하자 모차르트는 “그들에게 소화할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응수했다는 일화가 유명하죠. 과연 시간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었을까요? 현재 <돈 조반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코벤트 가든 등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시즌마다 무대에 오르는 레퍼토리입니다.
500년 전 방탕한 귀족 이야기가 왜 지금도 이토록 살아 숨 쉬는 걸까요? 욕망과 처벌, 매력과 파멸이라는 구조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돈 조반니는 사라졌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것인가, 끝까지 자유로울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250년째 관객들은 대답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추천 녹음
돈 조반니는 녹음의 역사가 유구합니다. 지휘자와 캐스팅에 따라 같은 오페라가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들립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9, EMI)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기준점으로 꼽히는 녹음입니다. 에베르하르트 베히터의 타이틀 롤과 주세페 타데이의 레포렐로, 두 사람의 대비가 선명하지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날카로운 질감이 오페라의 어두운 면모를 기막히게 잡아냅니다.
게오르크 솔티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0, Decca)
브린 터펠이 레포렐로를 맡아 화제가 된 녹음. 솔티의 거대한 스케일과 터펠의 존재감이 돋보입니다. 토마스 알렌의 돈 조반니도 출중합니다.
르네 야콥스 /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 (2006, Harmonia Mundi)
HIP(역사주의 연주) 진영의 대표 주자입니다. 당대 악기로 연주한 투명한 질감이 현대 오케스트라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석상 장면의 내추럴 트롬본 음색이 특히 인상적이더군요.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보며 감상하면, 모차르트가 각 장면에서 어떤 악기 조합을 선택했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거든요. 서곡의 D단조 도입부에서 트롬본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가장무도회에서 세 박자가 어떻게 겹치는지. 아래 영상은 서곡 전곡을 악보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영상입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