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곡명
-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합창’
- 조성
- d단조 (D minor)
- 작곡 기간
- 1818–1824년
- 악장
- 4악장
I.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d단조)
II. Molto vivace (d단조)
III. Adagio molto e cantabile (B♭장조)
IV. Presto – Allegro assai (d단조 → D장조)
1악장. 빠르지 않게, 약간 장엄하게
2악장. 매우 빠르게
3악장. 매우 느리게, 노래하듯이
4악장. 매우 빠르게 – 충분히 빠르게 - 편성
- 독창(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혼성 합창, 피콜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현 5부
- 초연
-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미하엘 움라우프 (지휘) - 연주 시간
- 약 65–74분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그날 무대 위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서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서 있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지휘한 건 악장 미하엘 움라우프였죠. 베토벤은 이미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였거든요. 그는 악보 위 템포를 몸짓으로 나타낼 뿐, 오케스트라가 내는 소리는 한 음도 듣지 못했습니다. 리허설 때부터 문제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템포 지시와 움라우프의 실제 지휘가 자꾸 어긋나, 단원들은 움라우프만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죠.

프로그램에는 교향곡 9번 외에 장엄미사 중 세 곡(키리에, 크레도, 아뉴스 데이)과 서곡 ‘헌당식’ Op.124가 올랐습니다. 당시 빈의 극장 규정상 종교 음악을 세속 무대에서 연주할 수 없었기에, 장엄미사 곡들은 ‘세 편의 대찬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됐죠. 규정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였던 셈입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은 폭발했습니다. 기립박수와 함께 손수건과 모자가 공중을 날았죠. 당시 궁정 관습에 따르면 황제에게도 세 번까지만 박수를 치는 것이 예의였는데, 관객들은 다섯 번이나 환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베토벤은 여전히 객석을 등진 채 악보만 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운게르가 그의 소매를 붙잡고 돌려세워야 했죠. 그제야 베토벤은 자기 음악이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귀로 듣지 못한 박수를 눈으로 본 겁니다. 이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은 객석 여기저기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초연은 예술적으로는 대성공이었지만 재정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베토벤에게 돌아간 수익은 고작 몇 주 생활비에 불과했거든요. 베토벤은 흥행사가 수익을 횡령했다며 크게 분노했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편성에 따른 출연료와 극장 대관료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한 탓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의 초연이 작곡가에게 남긴 것은 감동적인 장면 하나와 텅 빈 정산서뿐이었죠.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시작된 길
시간을 22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1802년, 서른두 살의 베토벤은 빈 외곽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동생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입니다. 이 편지는 실제로 부치지 않았고, 베토벤 사후 그의 서랍에서 발견되었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 주시오, 나는 귀가 들리지 않소’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음악가가 자신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고백하겠는가.”
이미 1798년경부터 청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음의 이명이었고, 점차 대화를 알아듣기 어려워졌죠. 베토벤은 빈의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시도했지만 허사였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 온 것도 시골의 조용한 환경이 치료에 도움이 될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고요.
그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유서에는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조금만 더.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어쩌면 나아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결심이 서 있다.”
하지만 그는 유서를 쓰고도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적었기 때문이죠.
“오직 예술만이 나를 붙잡았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문장이야말로 교향곡 9번의 씨앗인 셈입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직후, 베토벤은 오히려 더 맹렬하게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죠. 청각 상실이라는 절벽 앞에서 베토벤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 전력 질주를 택한 겁니다.
그러나 1814년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마지막 공개 연주에서는 피아노를 너무 세게 내리쳐 줄이 끊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대화는 ‘대화 노트’라는 필담으로만 가능해졌죠. 이런 상태에서 교향곡 9번의 본격적인 작곡이 시작된 겁니다. 1818년경부터 스케치가 등장해 1822년에서 1824년 사이 집중적으로 완성했죠.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이 2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위한 70분짜리 대곡을 오직 머릿속으로만 써낸 거예요.

실러의 시, 30년의 집착
베토벤이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에 처음 매료된 것은 1792년, 본에 머물던 시절이었습니다. 스물두 살 청년이 이 시에 곡을 붙이겠다고 마음먹었던 거죠. 이 사실은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바르톨로메우스 피슐레니히가 실러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남아 있습니다. 그로부터 무려 32년이 지나서야 그 약속은 지켜집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단순히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에게 이 시는 너무나 큰 주제였거든요.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1785년에 발표된 시로, 프랑스 혁명 직전의 계몽주의 이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형제애, 신과 자연과 인간의 합일, 모든 존재의 기쁨. 이것을 음악으로 담아낸다는 건 곧 인류 전체를 노래한다는 뜻이었으니까요.
“기쁨이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 엘리시움의 딸이여 / 우리 모두 불꽃에 취해 / 천상의 존재여, 그대의 성소에 들어가리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
베토벤은 이 시의 여러 연을 추려내고 순서를 재배치해 4악장에 사용했습니다. 실러의 원시 전체를 쓴 것이 아니라, 보편적 형제애와 기쁨에 초점을 맞춘 구절들을 골라낸 거죠.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직접 쓴 도입부까지 덧붙였습니다. 시인의 글을 가져오되, 작곡가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겁니다.
교향곡이라는 순수 기악 장르에 사람의 목소리를 넣는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확립한 교향곡의 전통에서 성악은 교향곡의 영역 밖이었거든요. 베토벤 이전에도 페터 폰 빈터 같은 작곡가가 교향곡에 성악을 넣은 적이 있었지만, 오늘날 레퍼토리로 살아남은 곡은 없습니다. 교향곡의 클라이맥스에 합창단과 네 명의 독창자를 배치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개막이었죠.
베토벤은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없이 망설였다고 합니다. 4악장을 순수 기악으로 쓸 것인가, 성악을 넣을 것인가. 그의 스케치북에는 기악 피날레의 초안이 여러 개 남아 있죠. 실제로 그중 하나는 훗날 현악 사중주 Op.132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성악을 택했고, 그 선택이 음악사의 흐름을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베를리오즈, 말러,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 교향곡에 성악을 도입하는 것은 하나의 전통이 됐으니까요.

1악장: 혼돈에서 질서로
d단조,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운 포코 마에스토소. 소나타 형식의 거대한 1악장입니다.

1악장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현악기 위에서 라(A)와 미(E)의 텅 빈 5도 음정이 떨리듯 울리는, 조성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죠. d단조인지 D장조인지, 심지어 a단조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마치 우주가 형성되기 직전의 원초적 진동 같다고 할까요. 바그너는 이 도입부를 두고 “세상의 시작”이라 불렀을 정도니까요.
이 안개 속에서 첫 번째 주제가 터져 나오는 순간은 실로 강렬합니다. d단조의 으뜸화음이 온 오케스트라에서 유니슨으로 폭발하거든요. 단숨에 안개를 걷어버리는 느낌이죠. 마치 “이것이 세계다”라고 선언하는 듯합니다. 이 주제는 하강하는 선율 윤곽을 지니는데, 도입부의 5도 음정에서 파생되어 구조적 통일감이 대단합니다.
두 번째 주제는 B♭장조로 넘어가면서 한결 서정적인 분위기를 띱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서정성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곧바로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제시부가 마무리되죠.
발전부는 15분짜리 악장 안에서도 유독 격렬한 부분입니다. 주제가 조각나고 뒤틀리며 다시 조합되는 과정이 마치 거대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거든요. 특히 발전부 중간에 나타나는 장송 행진곡 풍의 구간은 이 악장의 비극적 성격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재현부에서 첫 주제가 돌아올 때의 충격은 들을 때마다 새로워요. 제시부에서는 피아니시모의 안개에서 포르테시모의 선언으로 넘어갔다면, 재현부에서는 처음부터 포르티시모로 으르렁거리며 돌아오거든요.
코다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보통 고전파 교향곡의 코다는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이지만, 베토벤의 코다는 사실상 두 번째 발전부나 다름없죠. 악장이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죠.
2악장: 악마적 에너지
d단조, 몰토 비바체.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보통 교향곡의 스케르초는 3악장에 놓이지만, 베토벤은 여기서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이런 배치는 교향곡 9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현악 사중주 Op.18-4에서 시도한 적 있고, 피아노 소나타 ‘함머클라비어’ Op.106에서도 스케르초를 2악장에 두었죠. 느린 악장을 뒤로 미루어 1, 2악장 연속으로 긴장과 에너지를 밀어붙이려는 설계인 셈입니다.
팀파니가 옥타브 도약으로 주제를 던지는 시작부는 지금 들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팀파니가 d-d-d-d를 두드리면 현악이 푸가토(모방 진행)로 화답하거든요. 그 리듬의 추진력이란 실로 대단하죠. 3/4박자이지만 체감상으로는 한 박 단위로 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트리오 부분에서는 D장조로 잠시 전환되며 숨 돌릴 틈을 줍니다. 여기서 오보에가 연주하는 목가적인 선율은 4악장 ‘환희’ 주제의 전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숨 돌릴 틈은 길지 않습니다. 곧바로 d단조의 소용돌이로 되돌아가니까요.
이 악장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팀파니의 역할이죠. 베토벤은 팀파니를 단순한 리듬 보조 악기가 아니라 선율을 연주하는 존재로 격상시켰거든요. 악장 첫머리부터 팀파니가 주제를 제시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하이든이 교향곡 103번 ‘큰북 연타’에서 팀파니를 독주처럼 사용하긴 했지만, 베토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팀파니를 아예 주제를 이끄는 악기로 다루고 있죠.
3악장: 천상의 노래
B♭장조,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 느린 악장입니다.
1, 2악장의 격렬함 뒤에 오는 이 악장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열어줍니다. 두 개의 주제가 번갈아 나타나며 점점 아름답게 장식되는 이중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죠.
첫 번째 주제는 B♭장조, 4/4박자의 긴 선율입니다. 현악기가 노래하는 이 부분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 선율의 아름다움은 꾸밈없는 순수함, 바로 그 단순함에 있거든요. 이어서 두 번째 주제는 D장조, 3/4박자로 나타나 조성과 박자가 모두 바뀝니다. 한결 따뜻하고 춤추는 듯한 성격을 갖고 있죠. 이 두 주제가 번갈아 변주를 거듭하며 새로운 옷을 입는데, 이때 현악기가 펼쳐내는 장식적인 변주는 베토벤이 쓴 가장 정교한 오케스트라 텍스처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악장을 듣고 있으면 묘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베토벤은 이 곡을 쓸 당시 이 선율을 직접 들을 수 없었으니까요. 머릿속으로만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악보에 옮겨 적은 셈입니다. 음표 하나하나의 울림을 상상만으로 구성해야 했다는 사실이 실로 경이롭죠. 이 사실을 알고 들으면, 이 느린 악장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베토벤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고백처럼 다가옵니다.
중간에 갑자기 팡파르가 터지는 부분이 두 번 나옵니다. 호른과 트럼펫이 갑작스레 끼어드는 이 팡파르는 4악장의 ‘환희’ 주제를 살짝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음악은 다시 고요한 명상으로 돌아가죠. 두 번째 팡파르는 12/8박자 위에서 더욱 격렬하게 터지는데, 이 순간이 지나면 악장은 차분히 사그라들며 끝을 맺습니다. 마치 꿈에서 깨기 직전, 가장 깊은 고요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줍니다.

4악장: 모든 것이 하나로
d단조에서 D장조로, 프레스토에서 알레그로 아사이까지. 교향곡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복잡하며, 가장 야심 찬 피날레가 펼쳐집니다. 이 4악장 하나만 해도 약 25분에 달하며, 구조적으로는 자유로운 변주곡과 소나타 형식, 합창 칸타타가 뒤섞인 독특한 하이브리드 형식을 띱니다.
공포의 팡파르와 회상
4악장은 ‘공포의 팡파르'(Schreckensfanfare)라 불리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합니다. 목관과 금관, 팀파니가 한꺼번에 d단조의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내지르는데, 듣는 이를 단번에 각성시키는 효과가 있죠. 바그너가 바로 이 화음에 ‘공포의 팡파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레치타티보처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레치타티보는 오페라에서 대사를 읊조리듯 노래하는 창법인데, 여기서는 성악이 아닌 악기가 ‘말’을 하는 셈입니다. 이 기악 레치타티보는 바리톤이 등장하기에 앞서, 악기로 그 역할을 먼저 예고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1, 2, 3악장의 주제가 차례로 회상됩니다. 각 악장의 주제가 잠시 나타났다가, 첼로와 베이스의 레치타티보에 “아니, 이것도 아니다”라며 거부당하죠. 1악장의 격렬한 첫 주제가 돌아오면 레치타티보가 밀어내고, 2악장 스케르초가 나타나면 또 밀어냅니다. 3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에는 잠시 머무는 듯하다가도 결국 고개를 젓습니다. 마치 베토벤이 이제껏 시도한 모든 것을 돌아보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선언하는 듯합니다.
‘환희의 송가’ 등장
그리고 마침내 그 선율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아주 조용히, 거의 속삭이듯 ‘환희의 송가’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하거든요. 이 선율은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순차 진행 위주에 음역도 좁아,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죠. 하지만 바로 그 단순함에 이 곡의 힘이 있습니다. 보편적 형제애를 노래하는 주제가 전문 음악가만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선율이었다면, 메시지와 음악이 겉돌지 않았을까요?
주제는 점점 악기를 더해가며 커져만 갑니다. 첼로와 베이스만의 독백에 비올라가 합류하고, 제1바이올린이 더해지며, 목관이 가세하더니, 마침내 전체 오케스트라가 이 선율을 노래하기에 이릅니다. 한 줄기 선율이 온 세상을 채우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죠. 이러한 점진적 확장은 베토벤이 치밀하게 의도한 드라마인 셈입니다. 한 사람의 속삭임이 온 인류의 합창으로 번져나가는 과정 자체가 실러가 쓴 시의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하니까요.
성악의 진입
다시 한번 공포의 팡파르가 터지고, 이번에는 바리톤 독창이 나섭니다.
“오, 친구들이여, 이런 소리가 아닐세! 우리 모두 더욱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세나!”
이 가사는 실러의 원시에는 없는, 베토벤이 직접 붙인 말입니다. 그의 스케치북에는 이 도입 가사를 수십 번 고쳐 쓴 흔적이 남아있죠. 바리톤이 기악으로 먼저 연주되었던 ‘환희’의 주제를 사람의 목소리로 처음 노래하자, 합창이 이에 화답합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교향곡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인데, 순수 기악의 세계에 인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울려 퍼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터키 행진곡과 이중 푸가
합창이 한바탕 환희를 노래한 뒤,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타악기(심벌즈, 트라이앵글, 큰북)가 가세하고, 테너 독창이 군대 행진곡풍 리듬 위에서 노래하기 시작하죠. 이른바 ‘터키 행진곡’ 스타일의 구간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터키 군악대 음악을 차용한 것인데, 이 교향곡에서 가장 파격적인 순간이라 할 만합니다. 엄숙한 교향곡 한가운데에 거의 오페라 같은 장면이 끼어든 셈이니까요. 바셋 호른이나 피콜로 같은 악기들이 여기서 특히 빛을 발합니다.
이후 대규모 합창 구간에서는 이중 푸가가 펼쳐집니다. “기쁨이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라는 환희의 주제와,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는 형제애의 가사가 동시에 엮이면서 음악적 복잡성은 정점에 달하죠. 여기에 “별이 빛나는 하늘 너머에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시리라”(Über Sternen muß er wohnen)라는 신을 향한 찬가까지 더해집니다. 합창단에게는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대단원
마지막 구간은 점점 빨라지며 D장조의 환희를 향해 돌진합니다. 독창 사중창이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을 외치면, 합창은 “Seid umschlungen, Millionen!”(포옹하라, 수백만이여!)으로 화답하죠. 합창과 오케스트라, 네 명의 독창자가 모두 하나 되어 환희를 노래하는데, 그 에너지는 실제 공연장에서 마주하면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입니다.
프레스티시모로 치달으며 마지막 화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청중은 200년 전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관객들처럼 일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 교향곡이 단순한 음악 작품이 아니라 인간이 빚어낸 가장 위대한 선언문 중 하나임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죠.
왜 이 곡이 특별한가
교향곡 9번이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입니다.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교향곡에 성악을 도입한 최초의 주요 작품이라는 점이죠. 이후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교향곡’,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과 8번 ‘천인 교향곡’,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까지 수많은 작곡가가 이 선례를 따랐습니다. 베토벤이 이 문을 열지 않았다면 이 작품들이 존재했을까요?
둘째, 순수 음악의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3악장까지 기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 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인간의 목소리를 불러들인 거죠. 이건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철학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으니까요.
셋째, 유럽연합 공식 찬가로 채택됐습니다. 1985년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는 4악장 ‘환희의 송가’ 멜로디를 공식 찬가로 지정했죠. 카라얀이 편곡한 관악 버전인데, 가사 없이 멜로디만 사용합니다. 특정 언어의 가사가 아니라 음악 자체가 전달하는 보편적 메시지를 택한 거예요.
넷째,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이 곡이 등장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레너드 번스타인이 동서독 합동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이 곡을 연주했죠. 이때 번스타인은 “Freude”(기쁨)를 “Freiheit”(자유)로 바꿔 불렀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동서독의 음악가들이 한 무대에서 자유를 노래한 셈이죠. 그 외에도 일본의 연말 ‘다이쿠'(제9) 전통,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시절 여성 합창단의 저항 연주 등, 이 곡은 계속해서 인류의 중요한 순간과 함께해왔습니다.
다섯째, CD 규격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죠. 필립스와 소니가 CD를 개발할 때, 카라얀의 베토벤 9번 녹음(약 74분)이 한 장에 담겨야 한다는 기준이 디스크 용량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죠.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이 곡의 상징적 위상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인 건 분명합니다.

명연주 가이드
이 곡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어떤 연주를 들어야 할까요? 200년간 쌓인 녹음 중에서 반드시 들어야 할 연주를 골라봤습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 (1951)
전설 중의 전설입니다. 1951년 바이로이트 축제 재개 공연의 실황 녹음이죠. 2차 세계대전 뒤 바이로이트가 다시 문을 연 역사적 순간의 라이브인 만큼, 연주에 담긴 무게가 남다릅니다. 나치 협력 혐의로 비나치화 재판을 거친 푸르트벵글러가 복귀한 무대이기도 했고요. 모노 녹음이라 음질이 완벽하진 않지만, 이 연주가 주는 영적인 강렬함은 어떤 최신 녹음도 따라오지 못하죠.
특히 3악장의 깊은 명상이 압권입니다. 푸르트벵글러는 이 악장에서 시간을 거의 멈추다시피 하거든요. 그리고 4악장에서 바리톤이 “오 친구들이여!”를 외치며 합창이 터져 나오는 순간, 지금까지 쌓인 모든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옵니다. 이 연주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클래식 음악 녹음 역사에서 이 레코딩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목록이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1962)
카라얀은 베토벤 9번을 네 번 녹음했는데, 1962년 DG(도이체 그라모폰) 녹음이 가장 균형 잡힌 명연으로 꼽힙니다. 베를린 필의 웅장한 사운드, 카라얀 특유의 유려한 흐름, 그러면서도 4악장의 폭발적 에너지까지. 독창진에 군두라 야노비츠(소프라노), 발터 베리(바리톤) 등 최정상급 가수를 배치한 것도 이 녹음의 강점이죠. 처음 이 곡을 듣는 분이라면 이 녹음으로 시작하는 걸 추천합니다. 음질도 좋고, 해석도 표준적이면서 깊이가 있거든요.
게오르크 솔티 / 시카고 심포니 (1972)
솔티의 베토벤은 날이 서 있습니다. 시카고 심포니 특유의 강렬한 금관과 정밀한 앙상블이 이 곡의 드라마틱한 면을 극대화하죠. 1악장의 추진력, 2악장 스케르초의 팽팽한 긴장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데카의 우수한 녹음 기술이 시카고 심포니의 찬란한 사운드를 완벽하게 포착했고요. 푸르트벵글러가 영적 체험이라면, 솔티는 음향적 쾌감에 가깝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합창’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대략 65–70분입니다. 지휘자에 따라 60분대 초반에서 80분 가까이까지 차이가 나죠. 푸르트벵글러의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은 약 74분으로 상당히 느린 편이고, 카라얀의 1962년 녹음은 약 66분입니다. 로저 노링턴이나 존 엘리엇 가디너 같은 시대악기 지휘자들은 60분대 초반까지 줄이기도 합니다. 4악장 하나만 해도 25분 안팎이니, 교향곡 하나가 거의 오페라 한 막 분량인 셈입니다.
‘합창’ 교향곡은 왜 마지막 교향곡이 됐나요?
베토벤은 교향곡 10번을 구상하고 스케치까지 남겼습니다. 하지만 9번 완성 이후 주로 현악 사중주에 몰두했고, 1827년 3월 26일 세상을 떠나면서 10번은 실현되지 못했죠. 만년의 현악 사중주들(Op.127, 130, 131, 132, 135)은 교향곡 못지않은 깊이를 가진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베토벤이 교향곡이라는 형식을 넘어 더 내밀한 표현의 세계로 나아가려 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특히 현악 사중주 Op.131의 7악장 연속 구조는 교향곡 9번 이상의 구조적 야심을 보여주죠.
4악장에서 성악이 들어오기 전까지 왜 그렇게 긴가요?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베토벤은 기악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것을 3악장까지 보여준 뒤, 4악장 초반에서 이전 악장들의 주제를 회상하며 하나씩 거부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인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거죠. 이 긴 기악 서론이 없으면 성악이 등장하는 순간의 충격이 반감될 테니까요. 약 8분간의 서주는 4악장의 드라마적 설득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구간입니다.
유럽연합 찬가로 쓰이는 건 정확히 어떤 부분인가요?
4악장의 ‘환희의 송가’ 멜로디입니다. 다만 가사 없이 순수 기악 편곡으로 사용하죠. 1972년 유럽평의회가 카라얀에게 편곡을 의뢰했고, 그는 피아노 독주, 관악, 관현악 세 가지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이 중 관악 버전이 공식 행사에 주로 쓰입니다. 특정 언어의 가사를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유럽의 ‘다양성 속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음악 자체로 전달하려는 의도인 셈입니다.
이 곡을 처음 듣는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4악장의 ‘환희의 송가’ 주제부터 들어보세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그 멜로디입니다. 익숙한 선율을 확인한 뒤,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1악장의 혼돈에서 시작해 4악장의 환희로 끝맺는 거대한 여정으로 경험하는 것이 이 곡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이거든요.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1962년 녹음이 입문용으로 좋지요. 좀 더 현대적인 음향을 원하신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과 함께한 2000년 실황 음반도 훌륭한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