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곡명
-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합창’
- 조성
- d단조 (D minor)
- 작곡 기간
- 1818–1824년
- 악장
- 4악장
I.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d단조)
II. Molto vivace (d단조)
III. Adagio molto e cantabile (B♭장조)
IV. Presto – Allegro assai (d단조 → D장조)
1악장. 빠르지 않게, 약간 장엄하게
2악장. 매우 빠르게
3악장. 매우 느리게, 노래하듯이
4악장. 매우 빠르게 – 충분히 빠르게 - 편성
- 독창(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혼성 합창, 피콜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현 5부
- 초연
-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미하엘 움라우프 (지휘) - 연주 시간
- 약 65–74분
이 곡은: 1824년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던 베토벤이 완성한 교향곡 9번 합창.
왜 읽어야 하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부터 초연 비하인드까지, 실러의 환희의 송가 30년 여정, 악장별 감상 가이드, 푸르트벵글러 바이로이트·카라얀·솔티 명연주 추천과 자주 묻는 질문까지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핵심 키워드: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기이한 초연 · 하일리겐슈타트의 서랍 속 편지 · 30년을 묵혀둔 젊은 날의 호기심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기이한 초연
그날 무대 한가운데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서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을 뿐 실질적인 지휘봉은 극장 카펠마이스터 미하엘 움라우프의 손에 쥐어져 있었죠.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였거든요. 그는 악보를 넘기며 몸짓으로 템포를 지시했지만, 정작 오케스트라가 쏟아내는 소리는 단 한 음도 듣지 못했습니다. 리허설부터 상황은 꽤 곤란하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격렬한 손짓과 움라우프의 실제 박자가 자꾸만 엇갈리는 바람에, 단원들은 결국 움라우프의 지휘만 따라가라는 은밀한 지시를 받아야만 했죠.

이날 프로그램에는 교향곡 9번과 더불어 장엄미사 중 세 곡(키리에, 크레도, 아뉴스 데이), 그리고 서곡 ‘헌당식’ Op.124가 나란히 올랐습니다. 당시 빈의 극장 검열 당국은 종교 음악을 세속적인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장엄미사의 일부는 ‘세 편의 대찬가’라는 그럴듯한 간판으로 둔갑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규정의 그물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위한 일종의 눈속임이었던 셈입니다.
마지막 음표가 멎자 객석에서는 그야말로 우레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기립박수는 기본이고, 사방에서 손수건과 모자가 허공을 갈랐죠. 당시 궁정 예법상 황제에게조차 세 번의 박수로 예우를 갖추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관객들은 무려 다섯 번이나 열광적인 갈채를 쏟아냈습니다. 정작 이 거대한 소동의 주인공인 베토벤은 객석을 등진 채 악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지만요. 결국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웅거가 다가가 그의 소매를 쥐고 돌려세우고 나서야,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이 일으킨 파동을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청력 대신 시각으로 쏟아지는 박수를 확인하던 이 기막힌 찰나에,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참 얄궂게도 이 초연은 예술적으로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금전적으로는 완벽한 참패였습니다. 베토벤의 손에 쥐어진 수익금은 고작 몇 주 치 생활비가 전부였거든요. 당장 작곡가 본인은 흥행사가 표값을 빼돌렸다며 길길이 분노했지만, 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무대에 올린 인원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연주자들의 출연료와 극장 대관료로 수익의 대부분이 고스란히 빠져나간 탓이었죠.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교향곡의 첫 무대가 정작 창조자에게 남긴 전리품은, 시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명장면 하나와 먼지 날리는 텅 빈 정산서가 전부였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서랍 속 편지
시계를 22년 전으로 되감아 보겠습니다. 1802년, 서른한 살의 베토벤은 빈 외곽의 조용한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두 동생에게 긴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훗날 사람들에게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고 불리게 될 바로 그 문서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편지는 끝내 수신인에게 발송되지 않은 채, 훗날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의 서랍에서 발견되었죠.

낡은 종이 위에는 이런 참담한 고백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 주시오, 나는 귀가 들리지 않소’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음악가가 자신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고백하겠는가.” 평생 소리를 빚어내야 할 사람이 정작 그 소리의 세계에서 단절되어 간다는 끔찍한 모순, 바로 그 사실이 청년 베토벤의 숨통을 가장 무겁게 조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귓가에 불길한 징조가 나타난 건 이미 1798년 무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고음을 찌르는 이명에서 출발했지만, 증상은 서서히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앗아가는 쪽으로 번져갔죠. 베토벤은 빈 시내의 용하다는 의사들을 전전하며 매달렸으나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그가 번잡한 도심을 떠나 하일리겐슈타트까지 흘러들어온 것 역시, 한적한 시골의 정적이 병세에 조금이나마 차도를 주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기대 때문이었고요.
그곳에서 그는 아주 깊고 진지하게 죽음을 대면했습니다. 편지의 여백에는 이런 문장도 등장합니다.
“조금만 더.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어쩌면 나아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결심이 서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주저하던 한 인간의 밑바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유서를 써두고도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떨리는 펜 끝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죽음이 아니라 다음 문장이었거든요.
“오직 예술만이 나를 붙잡았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처절한 다짐이야말로 훗날 교향곡 9번을 잉태하게 될 단단한 씨앗이었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밤을 기점으로, 베토벤은 오히려 활화산처럼 맹렬하게 오선지 위로 달려들었습니다.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을 비롯해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 같은 굵직한 명작들이 바로 이 시기에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죠. 소리가 사라진다는 아득한 절벽 앞에서 베토벤은 뒷걸음질 치는 대신, 차라리 벼랑 끝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버리는 길을 택한 겁니다.
야속하게도 1814년을 기점으로 그의 상태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됩니다. 마지막으로 나섰던 공개 연주 무대에서는 피아노 건반을 너무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줄이 끊어지는 참사가 벌어졌고, 타인과의 소통은 오로지 종이 위에 글씨를 적는 ‘대화 노트’로만 간신히 이어갔죠. 바로 이 칠흑 같은 적막 속에서 교향곡 9번의 뼈대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818년 무렵부터 악보에 조각조각 파편이 등장하더니, 1822년부터 182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살이 붙어 마침내 거대한 형체를 드러냈죠. 외부의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된 한 인간이, 200명이 훌쩍 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뿜어내야 할 70분짜리 대서사시를 오직 자신의 머릿속 공간에서만 직조해 낸 것입니다.

30년을 묵혀둔 젊은 날의 호기심
베토벤이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에 처음 꽂힌 것은 고향 본에서 지내던 풋풋한 청년 시절의 일입니다. 스물두 살 무렵 이 시를 읽고 기어코 곡을 붙이겠노라 단단히 벼르고 있었죠. 이 당찬 포부는 1793년 1월, 그의 벗이자 후원자였던 바르톨로메우스 피슐레니히가 실러의 아내에게 띄운 편지 속에 고스란히 화석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날의 혈기 왕성한 선언이 실제 악보로 구현되기까지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할 줄은 아마 본인도 몰랐겠지만요.
도대체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단순히 작곡가가 게으름을 피워서가 아닙니다. 베토벤의 세계에서 이 시가 품고 있는 덩치가 지나치게 거대했거든요. 1785년에 세상에 나온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프랑스 혁명의 불길이 번지기 직전, 계몽주의가 꿈꾸던 이상을 정면으로 읊고 있습니다. 보편적 형제애, 신과 자연과 인간의 완전한 결합,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가 누려야 할 환희. 이 거창한 개념들을 오선지 위로 번역해 낸다는 것은 결국 인류 전체를 대변하는 연설을 작성하는 것과 다름없는 무게였을 겁니다.
“기쁨이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 엘리시움의 딸이여 / 우리 모두 불꽃에 취해 / 천상의 존재여, 그대의 성소에 들어가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선언,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 베토벤이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음표로 꽂아 넣고야 만 핵심 뼈대가 바로 이 두 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베토벤이 실러의 텍스트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는 시의 여러 연을 이리저리 뜯어내고 순서를 재배치하여 4악장에 끼워 넣었습니다. 원시의 모든 구절을 낭송하는 대신, 보편적인 형제애와 기쁨이라는 목적지에 맞춰 필요한 구절만 과감하게 골라낸 셈이죠. 심지어 그 앞에는 자신이 직접 쓴 서주까지 덧붙여 놓았습니다. 시인의 언어를 빌려오긴 했지만, 철저히 작곡가 자신의 입맛과 논리에 맞게 해체하고 재조립한 것입니다.
애초에 교향곡이라는 완고한 순수 기악의 성채에 사람의 육성을 들이민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 기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파격이었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단단하게 다져놓은 전통 안에서 성악은 교향곡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었거든요. 물론 베토벤 이전에도 페터 폰 빈터 같은 이들이 교향곡에 목소리를 섞어본 적은 있지만, 애석하게도 오늘날 연주회장에서 살아남은 작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교향곡의 대미를 합창단과 네 명의 독창자로 장식하는 설계도는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영토를 개척하는 첫 곡괭이질이었죠.
베토벤 본인조차 이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직전까지 숱하게 망설였다고 합니다. 4악장을 순수 기악으로 맺을 것인가, 아니면 기어이 성악을 밀어붙일 것인가. 그의 스케치북 한구석에는 기악 피날레를 위한 초안들이 어지럽게 맴돌고 있죠. 재미있게도 그중 하나는 훗날 현악 사중주 Op.132의 재료로 알뜰하게 재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끝없는 저울질 끝에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택했고, 그 단호한 붓질 한 번이 음악사의 물길을 통째로 틀어버립니다. 훗날 베를리오즈와 말러,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에 성악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선택이 징검다리를 놓아준 덕분이니까요.

1악장: 짙은 안개 속에서 벼려낸 기원
d단조,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운 포코 마에스토소. 복잡한 지시어가 나란히 붙은 소나타 형식의 거대한 1악장입니다.

첫 악장은 형태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공백 한가운데서 꿈틀거리며 시작합니다. 현악기가 짚어내는 라(A)와 미(E)의 텅 빈 5도 음정이 미세하게 떨리듯 울려 퍼지는데, 조성조차 뚜렷하게 확립되지 않은 기묘한 상태죠. d단조인지 D장조인지, 아니면 a단조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마치 우주가 형태를 갖추기 직전에 떠도는 원초적인 미립자의 진동을 듣는 듯합니다. 훗날 바그너가 이 기나긴 도입부를 가리켜 “세상의 시작”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꽤 그럴듯한 감상이죠.
이 막막한 안개를 찢고 첫 번째 주제가 터져 나오는 찰나의 효과는 대단히 극적입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d단조의 으뜸화음을 일제히 유니슨으로 내리꽂거든요.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장막을 걷어버리며 “이곳이 바로 세계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위력입니다. 하강하는 윤곽을 그리는 이 묵직한 선율은 사실 앞서 맴돌던 5도 음정의 조각들에서 뻗어 나온 뼈대라, 곡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통일성마저 치밀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바통을 넘겨받은 두 번째 주제는 B♭장조로 슬쩍 자리를 옮기며 한결 유려하고 서정적인 얼굴을 내밉니다. 하지만 이 교향곡에서 서정성이란 찰나의 휴식에 불과하죠. 금세 다시 태엽이 감기며 날 선 긴장감이 솟구치고, 그렇게 폭풍 같았던 제시부가 문을 닫습니다.
발전부는 15분에 달하는 기나긴 악장 안에서도 유독 거칠고 사나운 구간입니다. 멀쩡하던 주제가 산산조각 나고, 비틀리고, 엉뚱한 형태로 다시 달라붙는 궤적이 거대한 드라마처럼 쉴 새 없이 펼쳐지거든요. 특히 중간 지점을 가로지르는 장송 행진곡 풍의 대목은 이 1악장이 품고 있는 서늘한 비극성을 뼈저리게 각인시킵니다. 빙빙 돌던 전개를 지나 재현부에서 첫 주제가 다시 등장하며 빚어내는 타격감은 늘 새롭습니다. 제시부가 작은 피아니시모의 안개에서 시작해 포르테시모의 외침으로 몸집을 불렸다면, 재현부는 아예 처음부터 포르티시모의 굉음을 뿜어내며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귀환하거든요.
종착지인 코다의 씀씀이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고전파 선배들이 써먹던 교향곡의 코다가 흩어진 짐을 싸며 얌전하게 인사하는 마무리 용도였다면, 베토벤의 코다는 짐을 풀다 못해 아예 두 번째 발전부를 엽니다. 악장이 저무는 마지막 순간까지 듣는 이의 멱살을 쥐고 긴장을 풀어주지 않죠. 곡이 끝을 향해 갈 때, 반음계로 기어 내려가는 어두운 저음 위에서 첫 주제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포효합니다. 음산한 장송 행진곡의 그림자를 드리운 이 코다는, 1악장 전체를 비극이라는 육중한 관에 넣고 단단히 봉인해 버리는 서늘한 마침표 역할을 해냅니다.
2악장: 몰아치는 스케르초와 팀파니의 반란
d단조, 몰토 비바체.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관습적인 교향곡이라면 3악장에 느긋하게 자리 잡았을 스케르초를, 베토벤은 과감하게 앞으로 당겨 배치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순서 뒤집기가 교향곡 9번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피아노 소나타 ‘함머클라비어’ Op.106에서 스케르초를 2악장에 전진시키는 실험을 마친 상태였죠. 느린 악장의 고요함을 뒤로 미루고, 1악장의 팽팽한 긴장감을 2악장까지 고스란히 끌고 와 에너지를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려는 치밀한 건축적 설계입니다.
팀파니가 옥타브를 넘나들며 도약하는 주제로 문을 여는 시작부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뒤흔드는 강렬한 타격감을 선사합니다. 팀파니가 벼락처럼 d-d-d-d를 꽂아 넣으면, 현악 파트가 푸가토(모방 진행) 기법으로 기민하게 꼬리를 물며 화답하거든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이 리듬의 추진력은 실로 매섭습니다. 악보 위에는 3/4박자로 적혀 있지만, 막상 쏟아지는 소리의 속도감은 아예 한 박 단위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듯한 청각적 착시를 일으킵니다.
트리오 구간에 접어들면 조성이 D장조로 슬쩍 바뀌면서 매섭던 질주가 잠시 숨을 고릅니다. 이 대목에서 오보에가 둥글게 다듬어 불어주는 목가적인 선율은 훗날 4악장에서 만개할 ‘환희’ 주제의 윤곽을 미리 엿보는 듯하죠. 하지만 이 평화로운 도피처는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습니다. 금세 덜미를 잡혀 다시 d단조의 거친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가차 없이 빨려 들어가니까요.
무엇보다 이 악장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팀파니의 눈부신 신분 상승입니다. 베토벤은 팀파니를 뒤에서 박자나 맞추는 타악기 조수쯤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당당히 선율을 주도하는 주연급으로 끌어올렸거든요. 악장의 맨 앞줄에 팀파니를 세워 주제를 던지게 한 발상은 당대 음악계의 문법을 완전히 쪼개버리는 일격이었습니다. 선배인 하이든이 교향곡 103번 ‘큰북 연타’에서 팀파니의 독주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베토벤은 한 발 더 나아가 타악기에게 곡 전체의 고삐를 쥐여주는 혁신을 이 악장에서 기어이 완성해 낸 겁니다.
3악장: 적막 속에서 길어 올린 선율
B♭장조,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 마침내 등장하는 느린 악장입니다.
1, 2악장이 쉴 새 없이 휘몰아치며 에너지를 쏟아낸 뒤에 열리는 이 공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대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주제가 번갈아 얼굴을 내밀고, 등장할 때마다 한 겹씩 정교한 장식을 덧입는 이중 변주곡의 뼈대를 띠고 있죠.
첫 번째 주제는 B♭장조, 4/4박자를 타고 흐르는 호흡이 긴 선율입니다. 현악기가 유려하게 자아내는 이 구간은 음표들이 허공에 유영하는 듯한 독특한 정지감을 줍니다. 복잡한 기교 없이 뼈대만 남긴 단순함이 오히려 선율 자체의 순수함을 극대화하거든요. 뒤이어 바통을 받는 두 번째 주제는 D장조, 3/4박자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납니다. 앞선 주제보다 한결 온기를 머금은 채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이는 성격을 띠죠. 이 두 주제가 교대로 자리를 바꾸며 변주의 살을 붙여가는데, 이때 현악 파트가 직조해 내는 치밀한 장식음의 그물망은 베토벤이 남긴 가장 정교한 오케스트라 텍스처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 악장의 투명한 흐름은 작곡가가 처했던 당시의 물리적 상태와 겹쳐지며 곡의 무게를 달리 만듭니다. 베토벤이 이 선율을 악보에 적어 내려갈 당시, 외부의 어떤 소리도 그의 귀를 통과하지 못했으니까요. 오직 머릿속 공간에만 맴도는 화성의 질감을 건져 올려 오선지에 묶어둔 결과물인 셈입니다. 수십 대의 악기가 섞여 빚어내는 미세한 울림을 오로지 내면의 청력으로만 셈하여 완성했다는 사실은, 이 느린 악장을 한낱 우아한 간주곡이 아닌 칠흑 같은 적막 속에서 써 내려간 치열한 기록으로 읽히게 합니다.
평온하게 흘러가던 물결은 중간에 두 번, 금관악기의 팡파르가 끼어들며 예고 없이 요동칩니다. 호른과 트럼펫이 불쑥 찢고 들어오는 이 날카로운 외침은 다가올 4악장의 ‘환희’를 살짝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막을 올릴 때가 아니라는 듯, 음악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차분한 흐름을 이어가죠. 두 번째 팡파르는 12/8박자의 넘실대는 리듬 위에서 한층 거세게 폭발하지만, 이 찰나의 균열이 봉합되고 나면 악장은 점점 희미한 잔향을 남기며 사그라듭니다. 거대한 에너지를 터뜨리기 직전, 오케스트라가 가장 깊고 고요한 숨을 들이마시는 방식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입니다.

4악장: 흩어진 세계를 엮어내는 피날레
d단조의 어둠에서 D장조의 빛으로, 숨 가쁜 프레스토에서 알레그로 아사이까지. 교향곡이라는 장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길고 복잡한 피날레가 마침내 막을 올립니다. 이 4악장 하나가 차지하는 시간만 대략 25분에 달하는데, 그 거대한 몸집 안에는 자유로운 변주곡과 소나타 형식, 심지어 합창 칸타타까지 빈틈없이 얽혀 들어가 전례 없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완성해 냅니다.
파괴적인 팡파르와 과거의 거절
4악장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은 몹시 사나운 불협화음입니다. 목관과 금관, 팀파니가 한데 엉켜 d단조의 날 선 비명을 내지르며 앞선 악장의 잔향을 무자비하게 끊어내죠. 훗날 바그너는 이 첫 타격에 ‘공포의 팡파르'(Schreckensfanfare)라는 서늘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화음 자체가 듣는 이를 단번에 각성시키는 효과를 지녔거든요.
이 거친 폭발이 잦아들면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슬며시 레치타티보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본래 레치타티보란 오페라 무대에서 가수가 대사를 읊조리듯 부르는 성악 기법인데, 여기서는 사람의 목소리 대신 저음 현악기들이 그 역할을 꿰차고 ‘말’을 건네죠. 이 기묘한 기악 레치타티보는 머지않아 무대 위로 올라올 바리톤 독창자의 자리를 미리 닦아두는 정교한 예열 장치입니다.
뒤이어 1, 2, 3악장의 파편들이 차례로 무대 위로 소환됩니다. 하지만 과거의 주제들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첼로와 베이스는 단호한 레치타티보로 퇴짜를 놓습니다. 1악장의 격렬한 첫인사가 돌아와도 손사래를 치고, 2악장의 맹렬한 스케르초 역시 가차 없이 밀어내 버리죠. 3악장의 유려한 선율 앞에서는 잠시 흔들리는 듯하다가 끝내 고개를 가로저어 버리거든요. 마치 작곡가 스스로 자신이 방금까지 쌓아 올린 세계를 하나씩 돌아보며, 지금부터 펼칠 이야기는 이 구시대의 유물들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만 같습니다.
단순함이 품은 ‘환희의 송가’
마침내 긴 탐색 끝에 진정한 주제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까다로운 심사관 같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아주 은밀하게, 거의 귓속말을 건네듯 ‘환희의 송가’ 선율을 조심스레 켜기 시작하거든요. 악보 위에 놓인 이 주제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단출합니다. 도약 없이 이웃한 음으로만 순차 진행하고 음역마저 비좁아서, 특별한 기교 없이도 누구나 입을 뗄 수 있는 구조죠. 하지만 이 의도적인 헐거움이야말로 곡을 지탱하는 강력한 뼈대입니다. 모든 인간의 형제애를 부르짖는 마당에 극소수의 훈련된 성악가만 부를 수 있는 화려한 선율을 내놓았다면, 음악이 품은 메시지는 스스로 모순에 빠지고 말았을 테니까요.
얇은 실선 같던 주제는 악기들이 하나둘 달라붙으며 거대한 밧줄로 꼬여갑니다. 저음 현악기들의 고독한 독백에 비올라가 화음을 얹고, 제1바이올린이 맑은 소리로 덧칠을 하더니, 이윽고 목관이 가세하며 마침내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나의 선율을 향해 포효합니다. 이 점진적인 팽창은 베토벤이 철저히 계산해 둔 음향적 드라마입니다. 단 한 사람의 조용한 발화가 수많은 인파의 합창으로 증폭되어 가는 이 과정 자체가, 실러의 시가 설파하던 보편적 화합의 원리를 소리로 증명해 내고 있거든요.
육성의 진입과 파격
다시 한번 날카로운 불협화음의 팡파르가 오케스트라를 찢고, 마침내 무대 앞의 바리톤 독창자가 입을 엽니다.
“오, 친구들이여, 이런 소리가 아닐세! 우리 모두 더욱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세나!”
흥미롭게도 이 문장은 실러의 원본 시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베토벤 본인이 직접 끼워 넣은 대사입니다. 그의 낡은 스케치북에는 이 짧은 안내문을 완벽하게 가다듬기 위해 수십 번을 썼다 지운 치열한 흔적이 남아 있죠. 바리톤이 앞서 현악기가 연주했던 ‘환희’의 주제를 인간의 육성으로 또렷하게 발음해 내자,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합창이 쏟아지며 화답합니다. 이 대목은 오랫동안 기악만의 견고한 요새였던 교향곡의 성벽이 무너지고, 오늘날 살아남은 주요 레퍼토리 가운데 처음으로 인간의 언어가 침투해 들어온 서양 음악사의 중대한 분기점입니다.
터키 군악과 치밀한 푸가
합창단이 한바탕 기쁨을 토해내고 나면, 공기의 흐름이 묘하게 뒤틀립니다. 심벌즈와 트라이앵글, 큰북 같은 타악기들이 요란하게 난입하더니, 테너 독창자가 씩씩한 군대 행진곡 리듬에 맞춰 노래를 뽑아내기 시작하죠. 이른바 ‘터키 행진곡’ 양식을 차용한 구간입니다. 당대 유럽 사교계를 휩쓸던 터키 예니체리 군악대의 이국적인 스타일을 교향곡에 그대로 끌고 온 셈인데, 매우 파격적인 장치입니다. 무게 잡는 교향곡의 중심부에 희극 오페라에서나 볼 법한 익살스러운 장면이 버젓이 자리를 차지한 꼴이니까요. 이 대목에서는 콘트라바순이나 피콜로 같은 악기들이 특유의 음색을 뽐내며 극적인 효과를 끌어올립니다.
행진이 끝나고 다시 판이 커진 대규모 합창 구간에서는 고도의 이중 푸가가 맞물려 돌아갑니다. “기쁨이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를 외치는 환희의 주제와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고 선언하는 형제애의 선율이 하나의 직물처럼 촘촘하게 엮여 들어가며 음향의 복잡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죠. 여기에 “별이 빛나는 하늘 너머에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시리라”(Über Sternen muß er wohnen)라며 신을 우러르는 찬가까지 덧입혀집니다. 여러 성부가 엇갈리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탓에, 합창단원들에게는 기술적인 기량이 가장 낱낱이 시험받는 험난한 고개이기도 합니다.
질주하는 대단원
마지막 구간에 다다르면 음악은 박차를 가하며 D장조의 정점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합니다. 네 명의 독창자가 한데 뭉쳐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을 쏘아 올리면, 거대한 합창이 “Seid umschlungen, Millionen!”(포옹하라, 수백만이여!)이라는 파도로 덮쳐오죠. 오케스트라의 거센 파동 위로 합창단과 독창자들이 겹겹이 엉겨 붙어 쏟아내는 음향적 포화는, 물리적인 공기의 밀도마저 다르게 빚어낼 만큼 맹렬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프레스티시모의 속도감으로 치달아 마지막 화음을 쾅 하고 내리찍고 나면, 연주회장의 공기는 순식간에 200년 전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그 펄펄 끓던 객석으로 되돌아갑니다. 음표들의 숨 가쁜 질주가 완전히 멈춰 서는 바로 그 찰나, 이 방대한 교향곡은 한낱 잘 짜인 음악을 넘어 끈질긴 인간의 의지가 벼려낸 굳건한 선언문처럼 남게 됩니다.
교향곡 9번이 남긴 굵직한 유산들
이 작품이 서양 음악사 한가운데에 꽂아 넣은 깃발의 무게는 그야말로 남다릅니다. 오선지 안팎으로 어떤 거대한 궤적들을 남겼는지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교향곡의 뼈대 안에 성악을 정식으로 편입시킨 최초의 굵직한 사례라는 점입니다. 이후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교향곡’,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과 8번 ‘천인 교향곡’,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에 이르기까지 숱한 후배 작곡가들이 이 닦여진 길을 밟고 지나갔죠. 베토벤이 맨 앞에서 이 견고한 문을 걷어차지 않았다면, 훗날 쏟아져 나온 성악 교향곡들의 계보는 아예 다른 형태를 띠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둘째, 순수 기악 음악이 그어진 한계선을 스스로 넘어섰습니다. 3악장까지 악기들의 울림으로 묘사할 수 있는 극한을 보여준 뒤, 기어코 언어를 품은 인간의 육성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결단이거든요. 이는 단순한 양식의 파괴나 호기심 어린 실험을 넘어섭니다. 소리라는 매개체가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음악의 근원적인 쓸모를 정면으로 되묻는 철학적인 도약에 가깝죠.
셋째, 국경을 허물고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찬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2년 유럽평의회가 4악장 ‘환희의 송가’ 선율을 공식 찬가로 지정하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편곡 지휘봉을 맡겼고, 1985년에는 유럽공동체(EU의 전신)가 이를 공동체의 상징으로 온전히 받아들였죠. 흥미로운 건 언어로 된 가사를 떼어내고 기악 멜로디만 울려 퍼지는 카라얀의 관악 편곡 판본을 채택했다는 사실입니다. 특정 국가의 언어라는 장벽 대신, 음악 그 자체가 품고 있는 화합의 메시지만을 오롯이 솎아낸 셈입니다.
넷째, 역사가 요동치는 굵직한 분기점마다 이 곡의 선율이 배경음악처럼 깔렸습니다. 1989년 굳게 닫혀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직후, 레너드 번스타인은 동서독 연합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이 교향곡을 무대에 올렸죠. 이때 번스타인은 가사 속 “Freude”(기쁨)라는 단어를 “Freiheit”(자유)로 슬쩍 바꿔 부르게 했습니다. 갈라졌던 음악가들이 성탄절에 한데 모여 자유를 합창한 이 날의 연주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일본의 연말 ‘다이쿠'(제9) 전통, 칠레의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절 억압에 맞서던 여성 합창단의 시위 연주 등, 이 작품은 세기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늘 곁에 있었습니다.
다섯째, 현대 음반 산업의 표준 규격을 정하는 데도 흥미로운 족적을 남겼습니다. 과거 필립스와 소니가 처음 CD를 개발하던 시기, 카라얀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녹음 분량인 약 74분을 원판 한 장에 끊김 없이 담아내야 한다는 조건이 디스크 용량의 뼈대가 되었다는 널리 알려진 일화죠. 기술 업계 내부에서는 이 낭만적인 탄생 비화의 진위를 두고 옥신각신하기도 하지만, 신기술의 척도로 베토벤을 끌어다 쓴 것만 보아도 이 곡이 지닌 독보적인 위상을 짐작하기엔 모자람이 없습니다.

송년회의 단골손님이 된 동아시아의 ‘제9’
해마다 달력이 12월로 넘어가면 한국과 일본의 대형 연주회장에서는 어김없이 교향곡 9번이 울려 퍼집니다. 한 해를 닫는 송년 음악회의 가장 익숙한 풍경이죠. 그렇다면 수백 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이 오케스트라 작품이, 도대체 어떤 연유로 바다 건너 동아시아의 굳건한 연말 세시풍속으로 자리를 잡은 걸까요?
그 기이한 인연의 시작점은 일본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 땅에서 이 교향곡 9번 전곡이 처음 울린 것은 1918년 6월 1일, 도쿠시마현에 자리한 반도 포로수용소 안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칭다오 전투에서 생포되어 끌려온 독일군 포로들이 철조망 안에서 이 곡을 연주해 낸 겁니다. 적국의 수용소 한가운데서 포로가 된 군인들이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를 합창한 이 기막힌 아이러니가 씨앗이 된 셈이죠. 이후 일본 대중 사이에서 ‘다이쿠(第九)’, 즉 ‘제9’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기 시작했고, 2차 대전 직후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교향악단들이 짭짤한 연말 수입을 노리고 12월마다 이 대곡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묘하게 국민적인 관습으로 굳어버렸습니다.
바다 건너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이 오면 국내 주요 교향악단들은 으레 거대한 합창단을 등 뒤에 세우고 이 곡의 악보를 펼칩니다. 이 글 맨 위에 걸어 둔 정명훈 지휘 KBS교향악단의 2025년 연말 실황 역시 그런 왁자지껄한 송년 무대의 생생한 단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묵은해의 갈등을 털어내고 보편적인 화합을 다지는 메시지 자체가 새해를 기다리는 대중의 정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겠죠. 200년 전, 소리와 단절된 채 칠흑 같은 적막 속에서 악보를 더듬던 작곡가의 끈질긴 다짐이 오늘날 지구 반대편의 겨울밤마다 수만 명의 인파를 한 지붕 아래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예정 공연
- 2026.11.20.(금) 19:30공주문예회관, 충남출연 정나라, 이창호
- 2026.12.1.(화) 19:30국립극장, 서울출연 김성진, 박소영, 김정미, 김효종, 송일도
- 2026.12.2.(수) 19:30세종예술의전당, 세종출연 김성진, 박소영, 김정미, 김효종, 송일도
- 2026.12.22.(화) ~ 12.23.(수) 19:30대전예술의전당, 대전출연 여자경, 조예희, 김향은, 민현기, 박주성
- 2026.12.23.(수) 19:30부천아트센터, 경기출연 아드리앙 페뤼송, 김지현, 이아경, 김재석, 양준모
공연 일정과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명연주 가이드
이 곡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어떤 연주를 들어야 할까요? 200년간 쌓인 녹음 중에서 반드시 들어야 할 연주를 골라봤습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 (1951)
전설 중의 전설입니다. 1951년 바이로이트 축제 재개 공연의 실황 녹음이죠. 2차 세계대전 뒤 바이로이트가 다시 문을 연 역사적 순간의 라이브인 만큼, 연주에 담긴 무게가 남다릅니다. 나치 협력 혐의로 비나치화 재판을 거친 푸르트벵글러가 복귀한 무대이기도 했고요. 모노 녹음이라 음질이 완벽하진 않지만, 이 연주가 주는 영적인 강렬함은 어떤 최신 녹음도 따라오지 못하죠.
특히 3악장의 깊은 명상이 압권입니다. 푸르트벵글러는 이 악장에서 시간을 거의 멈추다시피 하거든요. 그리고 4악장에서 바리톤이 “오 친구들이여!”를 외치며 합창이 터져 나오는 순간, 지금까지 쌓인 모든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옵니다. 이 연주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클래식 음악 녹음 역사에서 이 레코딩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목록이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1962)
카라얀은 베토벤 9번을 네 번 녹음했는데, 1962년 DG(도이체 그라모폰) 녹음이 가장 균형 잡힌 명연으로 꼽힙니다. 베를린 필의 웅장한 사운드, 카라얀 특유의 유려한 흐름, 그러면서도 4악장의 폭발적 에너지까지. 독창진에 군두라 야노비츠(소프라노), 발터 베리(바리톤) 등 최정상급 가수를 배치한 것도 이 녹음의 강점이죠. 처음 이 곡을 듣는 분이라면 이 녹음으로 시작하는 걸 추천합니다. 음질도 좋고, 해석도 표준적이면서 깊이가 있거든요.
게오르크 솔티 / 시카고 심포니 (1972)
솔티의 베토벤은 날이 서 있습니다. 시카고 심포니 특유의 강렬한 금관과 정밀한 앙상블이 이 곡의 드라마틱한 면을 극대화하죠. 1악장의 추진력, 2악장 스케르초의 팽팽한 긴장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데카의 우수한 녹음 기술이 시카고 심포니의 찬란한 사운드를 완벽하게 포착했고요. 푸르트벵글러가 영적 체험이라면, 솔티는 음향적 쾌감에 가깝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합창’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대략 65–70분입니다. 지휘자에 따라 60분대 초반에서 80분 가까이까지 차이가 나죠. 푸르트벵글러의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은 약 74분으로 상당히 느린 편이고, 카라얀의 1962년 녹음은 약 66분입니다. 로저 노링턴이나 존 엘리엇 가디너 같은 시대악기 지휘자들은 60분대 초반까지 줄이기도 합니다. 4악장 하나만 해도 25분 안팎이니, 교향곡 하나가 거의 오페라 한 막 길이이죠.
‘합창’ 교향곡은 왜 마지막 교향곡이 됐나요?
베토벤은 교향곡 10번을 구상하고 스케치까지 남겼습니다. 하지만 9번 완성 이후 주로 현악 사중주에 몰두했고, 1827년 3월 26일 세상을 떠나면서 10번은 실현되지 못했죠. 만년의 현악 사중주들(Op.127, 130, 131, 132, 135)은 교향곡 못지않은 깊이를 가진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베토벤이 교향곡이라는 형식을 넘어 더 내밀한 표현의 세계로 나아가려 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특히 현악 사중주 Op.131의 7악장 연속 구조는 교향곡 9번 이상의 구조적 야심을 보여주죠.
4악장에서 성악이 들어오기 전까지 왜 그렇게 긴가요?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베토벤은 기악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것을 3악장까지 보여준 뒤, 4악장 초반에서 이전 악장들의 주제를 회상하며 하나씩 거부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인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거죠. 이 긴 기악 서론이 없으면 성악이 등장하는 순간의 충격이 반감될 테니까요. 약 8분간의 서주는 4악장의 드라마적 설득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구간입니다.
유럽연합 찬가로 쓰이는 건 정확히 어떤 부분인가요?
4악장의 ‘환희의 송가’ 멜로디입니다. 다만 가사 없이 순수 기악 편곡으로 사용하죠. 1972년 유럽평의회가 카라얀에게 편곡을 의뢰했고, 그는 피아노 독주, 관악, 관현악 세 가지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이 중 관악 버전이 공식 행사에 주로 쓰입니다. 특정 언어의 가사를 넣지 않고, 유럽의 ‘다양성 속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음악 자체로 전하려는 뜻이지요.
이 곡을 처음 듣는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4악장의 ‘환희의 송가’ 주제부터 들어보세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그 멜로디입니다. 익숙한 선율을 확인한 뒤,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1악장의 혼돈에서 시작해 4악장의 환희로 끝맺는 거대한 여정으로 경험하는 것이 이 곡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이거든요.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1962년 녹음이 입문용으로 좋지요. 좀 더 현대적인 음향을 원하신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과 함께한 2000년 실황 음반도 훌륭한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