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 박수를 버리고 침묵으로 끝낸 30분

당대가 '소음'이라 부른 피아노의 정점

1854년, 리스트는 30분짜리 피아노 소나타 한 곡을 로베르트 슈만에게 헌정했습니다. 15년 전 슈만이 자신에게 《환상곡 C장조》를 바친 데 대한 뒤늦은 답례였어요. 그런데 악보가 슈만의 집에 도착했을 무렵, 슈만은 이미 본 근교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습니다.

헌정받은 사람은 끝내 이 곡을 단 한 음도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의 아내 클라라가 악보를 펼쳐 보고는 일기에 한 줄을 남겼지요 — “그저 맹목적인 소음.” 리스트가 평생을 걸고 쓴 회심작에 돌아온 첫 반응이, 정작 헌정받은 집안에서 나온 그 한 줄이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 1858년 초상 사진
1858년의 리스트. 순회 연주를 접고 바이마르에 들어앉아, 책상 앞에서 새로운 형식을 빚어내던 시기의 모습입니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
작품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
작곡 시기
1853년 완성 (1854년 출판,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헌정
로베르트 슈만
초연
1857년 1월, 베를린 — 한스 폰 뷜로 (피아노)
편성
피아노 독주
연주 시간
약 30분
악장 수
단일 악장 (4악장 구조를 하나로 압축)

이 곡은 — 4악장짜리 소나타를 끊김 없이 한 호흡에 부어 넣은, 단 하나의 악장으로 된 30분짜리 거대한 생각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곡을 여는 일곱 개의 내려가는 음. 이 짧은 씨앗 하나가 30분 내내 악마도 되고 기도도 됩니다.

첫 음반 — 마르타 아르헤리치, 도이체 그라모폰 (1972년 발매).

슈만에게 바친 곡, 슈만은 한 음도 못 들었다

헌정이란 보통 존경의 악수입니다. 그런데 이건 받는 사람이 끝내 손을 내밀지 못한 악수였어요. 리스트가 하필 슈만을 고른 데는 오래 묵은 사연이 있습니다. 1839년, 슈만은 자신의 가장 야심 찬 피아노곡 《환상곡 C장조》를 리스트에게 헌정했거든요. 두 사람은 라이프치히와 빈을 오가며 서로의 재능을 알아본 사이였고, 리스트는 그 빚을 십수 년 동안 마음 한구석에 담아 두었습니다.

답례의 타이밍은 잔인하게 어긋났습니다. 리스트가 자필 악보에 완성 날짜를 적은 건 1853년. 출판은 이듬해였는데, 바로 그 1854년 초에 슈만은 한겨울의 라인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다행히 어부들에게 구조됐지만, 그는 곧 본 근교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 자진해 들어갔습니다. 악보가 뒤셀도르프의 슈만 집에 닿았을 때, 그 집의 주인은 이미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 청중은 클라라가 됐습니다. 남편을 병원에 두고 여섯 아이를 건사하던 그녀는, 마침 집에 드나들던 스무 살 청년 브람스에게 이 곡을 쳐 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들어 본 뒤 일기에 남긴 평이 짧고 차가웠습니다. “그저 맹목적인 소음. 건강한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다.” 헌정의 따뜻함을 기대했다면 완벽한 배신입니다. 하지만 이 차가운 반응이야말로, 이 곡이 그 시대의 귀에 얼마나 낯설었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였습니다.

바이마르에 눌러앉은 마법사

이 곡을 이해하려면 리스트가 어디에서 이걸 썼는지를 봐야 합니다. 1847년, 서른여섯의 리스트는 돌연 순회 연주를 접습니다. 유럽 전역을 휩쓸며 객석을 졸도시키던, 역사상 첫 ‘스타 피아니스트’가 무대를 내려온 거예요. 그러고는 작은 공국 바이마르의 궁정 악장 자리에 눌러앉습니다.

바이마르는 한때 괴테와 실러가 살던 도시였습니다. 리스트는 그 문화의 무게를 등에 업고, 알텐부르크라는 저택에 작업실을 차렸습니다. 여기서 그는 연주자이기를 그만두고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살았습니다. 망명 중이던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세계 초연으로 무대에 올린 것도 이 바이마르 시절이었고,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줄줄이 만들어 낸 것도 이때입니다.

젊은 작곡가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무리를 ‘신독일악파’라 불렀습니다. 음악이 형식의 틀을 지키는 데 머물지 말고, 시와 드라마와 사상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b단조 소나타는 바로 이 작업실의 공기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객석의 환호를 노린 묘기가 아니라, 한 작곡가가 “음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시험한 실험실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리스트라는 이름에 잘못 붙은 꼬리표

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어요. 무대 위에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건반을 부수듯 두드리고, 객석의 귀부인들이 기절하던 19세기 최초의 록스타. 연주가 끝나면 손수건과 장갑이 기념품으로 뜯겨 나가던 그 남자. 이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우리는 오랫동안 리스트를 ‘내용 없는 묘기꾼’ 정도로 깎아 보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시인 하이네는 리스트의 연주회에서 벌어지는 광란을 보고 ‘리스토마니아’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 정도였습니다. 여자들이 그가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목걸이에 넣고 다녔고, 끊어진 피아노 줄을 차지하려 다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따라다녔습니다. 200년 전에 이미 아이돌 굿즈 쟁탈전이 벌어진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대를 내려와 30분짜리 침묵의 곡을 썼다는 게, 이 소나타를 더 묘하게 만듭니다.

b단조 소나타는 정확히 그 꼬리표를 찢는 곡입니다. 여기엔 박수를 노린 잔재주가 없습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끔찍하게 어려워요. 그런데 그 어려움은 관객을 놀래키려는 종류가 아닙니다. 단 하나의 생각을 30분 동안 끊지 않고 밀어붙이려니 손이 치러야 하는 대가일 뿐이에요. 화려한 리스트가 아니라, 무서울 만큼 진지한 리스트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평생 신앙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 사람이었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젊은 날엔 사제가 되려 했고, 말년엔 실제로 수도원에 들어가 하급 성직자가 됐습니다. 그 사이엔 백작 부인들과의 떠들썩한 연애가 있었습니다. 천사와 악마가 한 몸에 살던 사람. 이 곡이 왜 그토록 양극단을 오가는지, 작곡가의 삶을 알면 조금 더 보입니다.

악장의 벽을 허문 30분

이 곡이 왜 혁명인지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리스트는 악장과 악장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보통 소나타는 빠른 1악장, 느린 2악장, 춤곡 3악장, 휘몰아치는 4악장으로 나뉘어 사이사이 숨을 고릅니다. 박수도 치고, 기침도 합니다. 리스트는 그 네 덩어리를 숨도 안 쉬고 한 호흡에 부어 버렸습니다.

완전히 맨땅에서 나온 발상은 아니었습니다. 슈베르트가 《방랑자 환상곡》에서 네 부분을 끊김 없이 잇는 실험을 먼저 했고, 리스트는 그 곡을 무척 아껴 직접 편곡까지 했습니다. 다만 슈베르트가 문을 살짝 열었다면, 리스트는 그 문으로 통째로 걸어 들어가 집을 다시 지었습니다.

비결은 ‘주제 변형’이라 부르는 수법입니다. 곡 전체가 사실 서너 개의 짧은 동기에서 자라납니다. 같은 음형이 어떤 자리에선 악마처럼 이를 드러내고, 다른 자리에선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멜로디를 계속 새로 짜내는 게 아니라, 한 줌의 씨앗을 비틀고 늘리고 뒤집어 거대한 나무로 키우는 방식입니다. 30분이 단 하나의 유기체처럼 숨 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음악학자들은 이걸 ‘이중 기능 형식’이라 부릅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뜻은 단순해요. 하나의 거대한 소나타 악장, 그러니까 제시부와 발전부와 재현부를 갖춘 한 덩어리가, 동시에 4악장짜리 교향곡의 윤곽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두 개의 설계도를 같은 종이 위에 겹쳐 그린 셈입니다. 이걸 1853년에 해냈다는 게 지금 들어도 아찔합니다.

큰 틀에서 지도를 그려 보면 이렇습니다. 격렬하게 몰아치는 앞부분이 빠른 1악장 노릇을 하고, 가운데 느리고 노래하는 대목이 2악장의 안단테가 됩니다. 뒤이어 비뚤어진 푸가가 3악장 스케르초처럼 끼어들고, 모든 재료를 한자리에 끌어모으는 마지막이 4악장 피날레로 닫힙니다. 그런데 이 네 토막 전체가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소나타 형식으로도 읽힙니다. 한 곡이 두 개의 시간표로 동시에 흐르는 거예요. 처음 들을 땐 굳이 이 지도를 외울 필요 없습니다. 다만 “지금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싶을 때, 새 악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이구나 짐작하면 길이 한결 또렷해집니다.

마리암 바차쉬빌리의 실황. 30분이 한 호흡으로 흐른다는 게 무슨 말인지, 화면을 보면 손이 한 번도 길게 쉬지 않는 걸로 확인됩니다.

세 개의 씨앗이 자라는 법

그 ‘한 줌의 씨앗’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까요. 곡은 거의 들리지 않는 저음에서 시작해, 같은 재료를 데리고 30분을 여행합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운데, 아래 세 장면만 귀에 담아 두면 지도가 생깁니다.

문을 여는 일곱 개의 음

곡은 팡파르 대신 침묵에 가깝게 문을 엽니다. 저음에서 일곱 개의 음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옵니다. 화려한 리스트를 기대하고 온 사람은 이 음산한 시작에서 한 번 멈칫합니다. 어둠 속을 더듬는 듯한, 불안한 발소리 같아요. 그런데 이 내려가는 음형이 바로 모든 것의 씨앗입니다. 곡이 어디로 튀든, 이 일곱 음이 가면을 바꿔 쓰고 끈질기게 돌아옵니다. 도입부의 정적을 기억해 두면, 30분 뒤 그 음이 다시 떨어질 때 소름이 돋아요.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처음, 저음이 어둠 속에서 계단을 천천히 밟고 내려오는 순간. 화면이 거의 정지한 듯 조용하다가, 곧이어 건반을 내리치는 첫 폭발이 터집니다. 이 정적과 폭발의 낙차를 들어 보세요.

악마와 기도가 같은 음에서 나온다

곡의 한복판에서 그 씨앗은 두 얼굴로 갈라집니다. 한쪽에선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며 건반을 옥타브로 짓밟습니다. 손이 무대를 가로질러 달리고, 화음이 천둥처럼 떨어집니다. 그러다 돌연 음이 무릎을 꿇어요. 같은 동기가 이번엔 느리고 따뜻한 합창처럼, 거의 종교적인 평온으로 번집니다. 방금 전까지 칼을 휘두르던 손이, 어느새 성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곡에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읽어내는 게 바로 이 대목 때문입니다. 악마와 성자가 한 핏줄이라는 걸, 음악이 직접 증명해 버립니다. 두 인물이 따로 서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의 음형이 빛과 어둠으로 갈라지는 광경입니다. 신앙과 욕망 사이에서 평생 찢긴 리스트 본인의 초상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 중반, 격렬하게 휘몰아치던 흐름이 갑자기 숨을 죽이고 느린 노래로 바뀌는 지점. 방금 전까지 악마였던 음형이 어떻게 기도가 되는지, 그 변신의 이음매를 따라가 보세요.

악마가 추는 푸가

곡의 후반부, 리스트는 가장 학구적인 음악 형식인 푸가를 꺼내 듭니다. 푸가라고 하면 보통 바흐의 단정하고 경건한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리스트의 푸가는 다릅니다. 짓궂고, 비뚤어졌고, 거의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대목을 두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조롱’이라 부릅니다. 악마가 신성한 형식을 빌려다 키득거리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푸가가 그냥 장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주제가 점점 몸집을 불리더니, 마침내 곡 전체를 마지막 절정으로 떠밀어 올립니다. 조롱이 어느새 거대한 환희로 자라는 거예요. 형식을 비웃다가 그 형식으로 정상에 오르는, 리스트다운 역설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후반부, 단선율 하나가 빠르고 또렷하게 기어 나와 다른 성부들이 차례로 그 뒤를 쫓는 지점. 경건해야 할 푸가가 어쩐지 능글맞게 들리는 그 묘한 표정을 잡아 보세요.

사라지는 끝

여기가 이 곡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입니다. 30분을 달려온 곡은 마지막에 폭죽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곡의 거의 끝자락에서 한 번 거대한 절정이 솟구치긴 해요. 그런데 리스트는 거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식어 가고, 도입부의 그 일곱 음이 유령처럼 돌아오고, 저 아래 b음 하나가 거의 들리지 않게 떨어진 뒤, 정적이 옵니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자필 악보를 보면, 리스트는 원래 써 두었던 시끌벅적한 엔딩을 펜으로 그어 지우고 이 조용한 결말로 바꿔 놓았거든요. 박수가 쏟아질 끝을 일부러 버리고, 침묵을 택한 겁니다. 작곡가가 객석의 환호보다 곡의 진실을 앞에 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명연일수록 이 마지막이 무섭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끝. 마지막 저음이 떨어지고 손이 건반에서 떠난 뒤의 그 정적까지가 곡입니다. 연주자가 손을 너무 빨리 떼지 않는 명연일수록, 이 침묵이 음악처럼 들립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자필 악보 한 페이지
소나타의 자필 악보. 곳곳에 그어 지운 자국과 붉은 손질이 보입니다. 리스트가 끝을 통째로 바꿔 넣은, 그 고민의 흔적입니다.

💡 사실은요 — 흔히 이 곡을 ‘파우스트 소나타’라 부르며 리스트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음악으로 옮긴 표제음악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리스트는 악보 어디에도 표제나 줄거리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파우스트’든 ‘에덴동산’이든 전부 후대 학자들이 곡에 입힌 해석일 뿐, 작곡가 본인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파우스트인가, 성경인가, 리스트 자신인가

그래서 이 곡엔 해석이 넘쳐납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파우스트설입니다. 으르렁대는 동기는 메피스토펠레스, 노래하는 동기는 그레트헨, 영웅적인 주제는 파우스트라는 식입니다. 음형이 둘로 갈라지는 그 구조가 워낙 극적이라, 줄거리를 붙이고 싶은 유혹이 큰 거예요. 리스트가 따로 《파우스트 교향곡》을 쓴 사람이라는 점도 이 해석에 힘을 보탭니다.

다른 쪽에선 성경을 읽습니다. 신과 루시퍼, 뱀과 인간의 타락이라는 도식입니다. 곡을 여는 하강 음형을 ‘에덴에서의 추락’으로 보는 식입니다. 또 누군가는 아예 리스트 자신의 내면, 신앙과 욕망 사이에서 평생 찢긴 한 인간의 자화상으로 봅니다. 말년에 수도원으로 들어간 리스트를 떠올리면, 이 해석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어느 해석도 결정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리스트가 단서를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이 침묵이 오히려 곡의 가장 큰 힘입니다. 줄거리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듣는 사람마다 자기 이야기를 곡 위에 얹게 됩니다. 같은 30분을 누구는 신화로, 누구는 신앙고백으로, 누구는 그냥 순수한 음의 건축으로 듣습니다. 이 소나타가 백 년 넘게 늙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초연, 그리고 한 평론가의 사형선고

곡이 세상에 처음 울린 건 1857년 1월, 베를린이었습니다. 친 사람은 리스트의 제자이자 훗날 사위가 되는 한스 폰 뷜로였습니다. 작곡가 본인이 아닌 제자의 손으로 초연됐다는 것부터가, 이 곡이 ‘리스트의 묘기 쇼’가 아니라 ‘리스트의 작품’으로 다뤄지길 바란 흔적처럼 보입니다.

이 뷜로라는 인물의 운명도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그는 같은 1857년에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코지마는 훗날 뷜로를 떠나 바그너의 품으로 갑니다. 스승의 곡을 세상에 처음 알린 제자가, 스승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가 스승의 동지에게 빼앗기는 이야기입니다. 이 곡 한 곡에 19세기 음악계의 인간관계가 통째로 얽혀 있습니다.

반응은 험했습니다.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였던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이 곡을 두고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곡을 듣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구제불능이다.” 농담이 아니라 활자로 박힌 평이었습니다.

이 혹평을 제대로 읽으려면 당시의 진영 싸움을 알아야 합니다. 19세기 중반 음악계는 둘로 쪼개져 있었어요. 한쪽엔 음악이 시와 드라마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리스트와 바그너의 ‘신독일악파’가 있었고, 반대편엔 음악은 그 자체의 형식으로 완결돼야 한다고 믿는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그리고 한슬리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낭만주의 전쟁’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클라라의 ‘소음’도, 한슬리크의 ‘구제불능’도, 순수한 감상평이라기보다 전선의 포격에 가까웠습니다. 이 소나타는 태어나자마자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진 거예요.

그렇다고 모두가 등을 돌린 건 아니었습니다. 같은 편 진영에선 열광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그너는 1855년 카를 클린트보르트의 연주로 이 곡을 사적으로 처음 듣고는 리스트에게 격찬을 쏟아 냈습니다. 한쪽에선 ‘소음’이라 욕하고 다른 쪽에선 걸작이라 떠받들었습니다. 같은 30분을 두고 평가가 이렇게까지 갈렸다는 건, 거꾸로 이 곡이 그만큼 새로웠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미지근한 반응은 누구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한스 폰 뷜로 초상 사진
한스 폰 뷜로. 이 난해한 곡을 처음 무대에 올린 사람이자, 훗날 리스트의 사위가 됩니다.

브람스가 졸았다는 그 날

이 곡엔 유명한 일화가 하나 따라붙습니다. 1853년 바이마르, 리스트가 젊은 음악가들 앞에서 이 소나타를 직접 쳐 보였을 때의 장면이었습니다. 그 자리엔 스무 살의 브람스도 있었습니다. 막 데뷔를 앞둔, 아직 무명에 가깝던 청년이었어요.

현장에 있던 미국 피아니스트 윌리엄 메이슨이 회고록에 적은 바로는, 리스트가 한창 연주하다 브람스 쪽을 흘끗 봤더니 그가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고 합니다. 리스트는 아무 말 없이 곡을 끝까지 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건 한참 뒤에 쓰인 회고이니, 기억이 장면을 조금 부풀렸을 가능성은 열어 둬야 합니다.

진위를 떠나, 이 일화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방 안엔 19세기 음악의 두 갈래 길이 함께 앉아 있었지요. 형식을 폭파하려는 리스트, 그리고 고전의 틀을 끝까지 지키려는 브람스. 졸음 한 번에 두 거장의 노선 차이를 통째로 욱여넣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좀처럼 놓지 못하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그 청년 브람스는 훗날 클라라와 함께, 리스트의 반대편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 됩니다.

당대가 못 들은 것

그렇게 이 곡은 태어나자마자 묻힐 뻔했습니다. 클라라가 소음이라 했고, 한슬리크가 구제불능이라 했고, 한 세대 내내 의심받았으니까요. 19세기 내내 이 소나타는 ‘난해하고 형식이 무너진 괴작’이라는 평판을 떼지 못했습니다. 한 베를린 신문의 평론가는 이 곡을 두고 “야유와 발 구르기로의 초대장”이라 비꼬았을 정도였습니다. 박수가 아니라 야유를 부른다는 조롱이었습니다.

부활의 신호탄을 쏜 건 20세기였습니다. 호로비츠를 비롯한 거장들이 이 곡을 다시 무대 한복판으로 끌어올렸고, 평론의 무게추도 서서히 기울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은 이 곡을 두고 베토벤과 슈베르트 이후 쓰인 가장 독창적이고 강렬하며 지적인 소나타라고 못 박았습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구제불능’이라 불리던 곡에 대한 평가치고는 완벽한 역전입니다.

형식 실험의 불씨도 리스트 한 사람에서 꺼지지 않았습니다. 악장을 나누지 않고 모든 걸 한 덩어리에 담는 발상은, 다음 세대에게 새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스크랴빈의 후기 소나타들, 쉼 없이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여러 20세기 작품들이 리스트가 밀어 둔 그 문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당대엔 ‘괴작’이라 손가락질받던 구조가, 한 세대 뒤엔 작곡가들이 따라 쓰고 싶어 하는 본보기가 됐습니다. 욕먹던 실험이 교과서가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곡은 피아니스트에게 일종의 에베레스트입니다. 체력도 머리도 다 받쳐 줘야 정상에 닿는, 콩쿠르와 리사이틀의 단골 시험대입니다. 한 곡으로 연주자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 큰 무대를 준비하는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넘고 싶어 하는 봉우리입니다. 당대가 못 들은 건 곡의 잘못이 아니라 귀의 잘못이었던 셈입니다. 시대가 곡을 따라잡는 데 반세기가 걸렸습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헌정받은 슈만은 끝내 못 들었고, 그의 아내는 소음이라 했던 그 곡. 백 년 하고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소음’을 듣겠다고 음악당에 줄을 섭니다. 클라라가 틀렸다고 비웃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음악은, 자기를 들어 줄 귀가 자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줄 안다는 뜻입니다. 리스트는 그 기다림을 견딜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1854년 초판 표지
1854년 초판 표지. 슈만에게 바친다는 헌정 문구가 또렷이 박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손이 떨리는 이유

이 곡이 왜 ‘에베레스트’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선 30분을 통째로 외워야 합니다. 그것도 중간에 숨 돌릴 악장 휴지가 없으니, 한 번 흐름을 놓치면 매달릴 난간이 없습니다. 마라톤을 전력 질주로 뛰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교의 함정도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양손이 건반 끝에서 끝으로 도약하는 대목, 옥타브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대목, 그러다 갑자기 실 한 올처럼 여린 음을 짚어야 하는 대목이 쉴 새 없이 교차합니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후반부에 손이 굳고, 아끼기만 하면 곡의 폭발이 살지 않습니다. 체력과 절제 사이에서 줄을 타야 하는 겁니다. 큰 콩쿠르 결선과 거장의 리사이틀에 이 곡이 단골로 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곡이 끝난 직후의 객석입니다. 마지막 저음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나면, 관객은 박수를 쳐야 할지 말지 몰라 잠시 얼어붙습니다. 워낙 조용히 끝나니, 곡이 진짜 끝난 건지 다들 눈치를 봅니다. 명연일수록 이 침묵이 길어집니다. 어색한 정적이 아니라, 30분을 함께 통과한 사람들이 동시에 숨을 참는 시간입니다. 그 몇 초가, 사실은 이 곡이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죄르지 치프라의 연주에 악보를 얹은 영상. 일곱 음의 씨앗이 어떻게 곡 전체로 번지는지 눈으로 따라가면 훨씬 잘 들립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누구나 무료로요.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연주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짐승이 됩니다. 불로 시작할지, 설계도로 시작할지 — 성격이 뚜렷이 다른 세 장을 골랐습니다.

👑 첫 감상 추천

마르타 아르헤리치

도이체 그라모폰 · 1972년 발매

도이체 그라모폰에 남긴 전설적인 녹음. 불꽃처럼 즉흥적이라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다만 한 음 한 음 또박또박 짚어 들으려는 분께는 너무 휘몰아칠 수 있어요.

레퍼런스

크리스티안 지머만

도이체 그라모폰 · 1991년 발매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건축가의 연주. 곡의 설계도를 이해하기엔 최고예요. 대신 아르헤리치 같은 광기를 바란다면 다소 단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국내 연주자

조성진

도이체 그라모폰 · 2020년 발매

앨범 《더 원더러》에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나란히 담겨, 단악장 혁신의 계보를 한 장에 묶었습니다. 정갈하고 투명한 해석이라, 거장의 거친 광기를 기대하면 얌전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는 왜 악장이 하나뿐인가요?

리스트가 의도적으로 악장 사이의 휴지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보통 소나타는 빠른 악장·느린 악장·춤곡·끝곡으로 나뉘지만, 리스트는 이 네 부분의 성격을 끊김 없이 한 악장 안에 압축했습니다. 음악학에서는 이를 하나의 소나타 형식과 4악장 구조가 겹쳐 작동하는 ‘이중 기능 형식’이라 부릅니다. 덕분에 약 30분이 단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집니다.

이 곡이 정말 ‘파우스트’를 그린 표제음악인가요?

아닙니다. 리스트는 악보에 어떤 표제나 줄거리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파우스트, 성경, 작곡가의 자전적 고백 같은 해석은 모두 후대에 덧붙은 것이며, 어느 하나도 작곡가가 확인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트 소나타’라는 별칭은 널리 쓰이긴 해도 공식 제목은 아닙니다.

곡을 헌정받은 슈만은 이 곡을 들었나요?

들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악보가 출판된 1854년 무렵 슈만은 이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그 상태로 185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신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이 악보를 보고 일기에 “맹목적인 소음”이라는 혹평을 남긴 것이, 헌정받은 집안의 첫 반응으로 전해집니다.

처음 듣는데 어떤 음반이 좋을까요?

불꽃 같은 첫인상을 원한다면 마르타 아르헤리치(DG, 1972년 발매)를 추천합니다. 곡의 구조를 또렷이 따라가고 싶다면 크리스티안 지머만(DG, 1991년 발매)이 좋고, 국내 연주자로는 조성진의 음반(DG, 2020년 발매)이 정갈한 해석을 들려줍니다.

곡 끝이 왜 이렇게 조용하게 끝나나요?

리스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고쳤습니다. 자필 악보를 보면 원래 화려한 마무리를 써 두었다가 지우고, 저음의 b음 하나가 거의 들리지 않게 가라앉으며 정적으로 끝나는 결말로 바꿔 놓았습니다. 박수를 부르는 끝 대신 침묵을 택한, 작곡가의 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손끝에서 자란 다른 나무들

클래식은 곡과 곡이 서로 손을 잡고 있을 때 더 크게 울립니다. 헌정으로 얽힌 슈만, 졸음으로 얽힌 브람스, 그리고 같은 피아노 한 대로 저마다 다른 우주를 연 작곡가들을 나란히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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