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 1732~1809) - 작품명
- 현악 사중주 제35번 f단조 Op.20 No.5, Hob.III:35
- 조성
- f단조
- 작곡 연도
- 1772년
- 악장 구성
- 4악장
I. Allegro moderato (F minor)
II. Menuetto (F minor)
III. Adagio (F major)
IV. Finale: Fuga a due soggetti (F minor)
1악장 보통 빠르게 (f단조)
2악장 미뉴에트 (f단조)
3악장 느리게 (F장조)
4악장 피날레: 두 주제에 의한 푸가 (f단조) - 편성
-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 초연
- 1772년경, 에스테르하자 궁정 (Esterháza)
1772년 어느 날, 하이든은 악보를 내려놓았습니다. 에스테르하자 궁정의 악장 자리. 방금 완성한 마지막 악장은 푸가였습니다. 현악 사중주에 푸가로 끝을 맺는다는 것, 당시로선 대단히 이례적인 선택이었죠. 흔한 론도나 경쾌한 알레그로로 마무리하던 관례를 버리고 바흐 시대의 대위법을 꺼내든 겁니다. 그것도 f단조로. 어둡고, 날카롭고, 그 어디에도 타협이 없는 곡으로 말이죠.
이 곡이 바로 Op.20의 여섯 곡 중 다섯 번째, 사람들이 ‘태양 사중주’라 부르는 세트에서도 가장 어두운 한 곡입니다. ‘태양’이라는 별명은 이 곡 자체에 붙은 이름이 아닙니다. 1779년경 암스테르담의 출판사 후멜(Hummel)이 Op.20 전곡을 악보로 펴내면서 표지에 떠오르는 태양 그림을 넣었고, 그게 이 세트 전체의 별명이 됐습니다. 정작 그 세트에서 가장 강렬한 곡은 온통 어둡고 단호한 f단조 사중주라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곡에 대한 반응은 흥미롭게 엇갈립니다. 한쪽에서는 Op.20을 Op.76보다 높게 치기도 합니다.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후기 작품들과 달리, Op.20에는 ‘영혼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무언가가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처음 이 곡을 접한 청취자들은 압도적인 어두움과 4악장 푸가의 냉혹함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이 곡은 ‘현악 사중주가 얼마나 어두울 수 있는지’의 기준점이 됩니다.
1772년의 하이든, 고별 교향곡의 해
하이든이 이 곡을 쓴 1772년은 그의 나이 마흔 살이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 궁정의 악장으로 취임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이었죠. 겉으로 보면 안정적인 자리였습니다. 봉급도 나오고, 악단도 있고, 연주할 무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헝가리 습지 한가운데 세워진 에스테르하자 궁전(Esterháza)은 빈에서 한참 멀었거든요. 하이든은 말 그대로 고립돼 있었습니다. 바깥 세계와의 접촉은 제한적이었고, 제대로 된 음악 비평도, 다른 동료 작곡가들과의 교류도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하이든 본인이 이렇게 회상했죠. “나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나를 방해하거나 내 길을 잘못 이끌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독창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고립이 낳은 것이 Op.20이었습니다. 1772년에 쓴 여섯 곡의 현악 사중주. 이 곡들에서 하이든은 그 전까지 자신이 써온 현악 사중주와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더 진지해졌고, 더 어두워졌습니다. 귀족들의 식사 자리를 배경 음악으로 채우던 경쾌한 디베르티멘토풍에서 벗어나, 네 사람이 각자 대등한 목소리로 말하는 진지한 음악적 대화로 바뀌었습니다.
음악학자들은 이 시기를 하이든의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질풍노도)’ 시기라고 부릅니다. 18세기 독일 문학과 예술을 휩쓴 감정 과잉의 조류가 하이든의 음악에도 스며들었던 때입니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것보다 2년 앞선 시점입니다. 강렬한 단조, 갑작스러운 음량 변화, 불안한 리듬. 이 모든 것들이 Op.20에 집결해 있고, No.5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까지 밀고 나간 곡입니다.
바로 같은 해에 하이든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곡을 썼습니다. ‘고별 교향곡'(Symphony No.45 f♯단조)입니다. 에스테르하자의 여름 별장 체류가 길어지면서 단원들이 가족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야 했고, 하이든은 악장이 끝날 때마다 단원들이 한 명씩 촛불을 끄고 무대를 떠나는 방식으로 귀가를 호소했죠. 니콜라우스 공작은 그 의중을 알아차리고 다음날 빈으로의 귀환을 허락했다고 전합니다.
실제로 에스테르하자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당시 단원들의 증언에서 드러납니다. 궁전은 호화로웠지만, 빈에서 단절된 채 반년 이상 지내야 했습니다. 고별 교향곡에서 단원들이 한 명씩 퇴장하는 장면은 지금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퍼포먼스’였습니다. 그 프로테스트가 통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당시 하이든의 권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같은 해 쓰인 Op.20 No.5는 그 고립을 음악적 언어로 내면화한 결과물입니다.
이 맥락에서 흥미로운 비교가 하나 있죠.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는 “하이든을 Op.76으로 처음 접하면 장인의 솜씨에 감탄하고, Op.20으로 처음 접하면 그 이면의 인간을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Op.76은 완숙한 기교의 산물이고, Op.20은 고립된 마흔 살 작곡가의 내면이 거름망 없이 쏟아진 작품이라는 뜻이죠. No.5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날것에 가까운 곡입니다.
‘고별 교향곡’과 Op.20 No.5. 같은 해, 같은 공간에서 나온 두 곡입니다. 하나는 고립된 단원들의 귀가 소망을 담은 곡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립이 낳은 내면적 어두움을 f단조와 푸가로 응결시킨 곡이죠. 에스테르하자가 어떤 곳이었는지, 그리고 하이든이 그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두 곡을 나란히 놓으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푸가로 끝난다는 것의 의미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이 가장 당황하는 순간은 4악장입니다. 보통 현악 사중주의 마지막 악장은 경쾌하고 빠른 리듬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합니다. 그게 18세기의 불문율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이든은 여기서 바흐를 꺼내들었습니다.

‘Fuga a due soggetti’, 두 개의 주제에 의한 푸가. 이것이 4악장의 표제입니다. 푸가(Fuga)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선율 주제가 성부들 사이를 돌아가며 모방하는 대위법적 구조입니다. 하나의 주제가 첼로에서 시작하면 비올라가 같은 선율로 뒤따르고, 이어 제2바이올린, 제1바이올린이 차례로 가담합니다. 이것이 바로크 시대의 바흐가 정점을 보여줬던 형식입니다. 하이든이 활동하던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던 형식이었습니다.
하이든이 왜 이걸 꺼냈는가. 단순히 기교를 과시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Op.20의 여섯 곡 중 세 곡(No.2, No.5, No.6)이 모두 푸가로 끝납니다. 하이든은 현악 사중주라는 형식이 단순한 귀족 취향 오락이 아닌, 진지한 음악적 담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푸가는 그 진지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떤 감정적 호소도 없이, 철저한 논리와 구조만으로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하이든이 이 선택을 ‘구식’이라고 인식하면서도 굳이 택했다는 겁니다. Op.20 No.5와 같은 세트의 다른 푸가 피날레 악보들에는 ‘al rovescio'(역행 기법)이나 ‘per figuram retardationis'(지연에 의한 기법) 같은 대위법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마치 ‘나는 이 오래된 기법을 의도적으로 쓴다’고 선언하듯이요. 가장 새로운 현악 사중주 형식을 만들어가면서, 동시에 가장 오래된 기법으로 그것을 마무리한 역설입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충격적인가 하면, 이 4악장 푸가는 지금 들어도 서늘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짧고 날카롭고 불안합니다. 두 번째 주제가 거기 합류하면서 두 선율이 씨름하듯 뒤엉킵니다. 네 현악기가 각자 독립적인 성부를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철저한 논리 안에서 움직입니다. 해결이 되는가 싶으면 다시 당깁니다. f단조의 어두운 중력이 마지막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악장별 핵심 장면
1악장 — 열린 질문과 사나운 재촉
1악장 Allegro moderato. 첫 음이 울리는 순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f단조, 그것도 개방적이고 불안한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제1바이올린이 주제를 제시하는데 단호하고 연속적입니다. 여기서 ‘소나타 형식’이라는 구조를 굳이 몰라도 됩니다. 그냥 첫 음부터 뭔가 물음표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걸 인식하면 충분합니다.

주목할 건 이 악장의 내부 긴장이 결코 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전 소나타라면 이른바 ‘제2주제’에서 기분 전환이 돼야 합니다. 조성도 f단조에서 밝은 쪽으로 이동하거나요. 그런데 하이든은 여기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꽉 붙잡습니다. 잠깐 열린 것 같으면 다시 당깁니다.
전개부에서 하이든이 택하는 방식도 특이합니다. 보통은 주제를 가지고 ‘발전’시키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주제를 해체하고 압축합니다. 마치 이 물음표를 더 작고 날카롭게 만들어서 계속 찌르는 것 같습니다. 재현부가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도 잠깐입니다. 하이든이 1악장에서 구사하는 또 한 가지 수법은 ‘침묵의 사용’입니다. 예기치 않은 쉼표(休止)가 박자 안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다가 갑자기 멈추는 그 순간들이 이 악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듭니다. 마치 말을 하다가 갑자기 중단하는 것처럼요. 그 침묵 안에 긴장이 쌓입니다.
이 1악장은 ‘해소’ 없이 끝납니다. LA 필하모닉 공식 해설이 이 악장을 두고 “어두운 분위기를 심화시키는 곡”이라 표현했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2악장 — 미뉴에트의 표면 아래
2악장은 미뉴에트(Menuetto)입니다. 미뉴에트라고 하면 보통 우아하고 격조 있는 춤곡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18세기 귀족들이 사교 모임에서 추던 그 춤이 음악 형식으로 굳은 겁니다. 미뉴에트 악장은 보통 긴장을 풀어주는 사이 쉼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릅니다. 하이든의 2악장 미뉴에트는 여전히 f단조입니다. 우아함은 어디로 가고, 뭔가 쓴 뒷맛이 납니다. 표면은 세 박자 춤곡의 형식을 유지하지만, 내부에서 흐르는 정서는 무겁습니다.
중간에 트리오(Trio) 섹션이 나옵니다. 미뉴에트는 보통 미뉴에트-트리오-미뉴에트의 세 부분 구조인데, 트리오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제공하는 부분이죠. 여기서도 하이든은 완전한 밝음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f단조에서 잠깐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있는데, 그 잠깐이 너무 짧습니다. 다시 미뉴에트가 돌아왔을 때의 어두움이 오히려 더 깊게 느껴집니다. 안도감을 줬다 빼앗는 방식이죠.
이 악장을 가리켜 “단순히 무서운 것이 아니라 격식을 갖춘 채 무서운 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고 예의를 지키는 채로 어둡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더 불편합니다.
3악장 — 단 하나의 빛
이 곡에서 유일하게 ‘쉬는’ 구간이 바로 3악장 Adagio입니다. 그것도 f단조를 완전히 벗어나 F장조로 씁니다. 같은 F인데, 장조와 단조의 차이가 이 곡에서는 거의 극적인 전환처럼 들립니다. 앞의 두 악장이 내내 어두웠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3악장은 느립니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제1바이올린이 긴 선율을 풀어가는 동안 나머지 세 악기가 아주 조용히 받칩니다. 이 균형이 이상할 만큼 정교합니다. 네 악기 중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튀지 않습니다. 마치 네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잠시 침묵이 흐른 것처럼, 각자 공간을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음악학 사이트 이어센스(earsense)는 이 악장에 대해 “어둡고 때로는 폭력적인 분위기와 푸가로 절정에 이르는 이 곡에서 극적인 환기 구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이 3악장 하나만으로도 이 곡이 정서적으로 얼마나 풍부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악장이 시작되는 순간, 그 F장조의 안도가 얼마나 일시적인 것이었는지 깨달을 때의 충격 역시 이 악장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F장조로 쓴 Adagio. 그것이 이 어두운 사중주 안에 삽입된 단 하나의 빛입니다. 그 빛 때문에 나머지 어두움이 더 어두워집니다.
4악장 — 두 주제로 끝내는 논쟁
4악장 Fuga a due soggetti. 두 주제로 이루어진 푸가입니다. 첫 번째 주제가 등장하면, 그 짧고 날카로운 선율이 첼로에서 비올라로, 제2바이올린으로, 제1바이올린으로 순서대로 올라갑니다. 각 성부가 앞 성부의 주제를 받아서 모방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제가 합류합니다. 이 두 주제는 함께 움직이면서도 내내 서로 팽팽하게 맞섭니다. 한 목소리가 아니라 두 목소리가 동시에 논쟁하는 구조입니다.
이 4악장의 냉혹함은 하나입니다. f단조로 끝납니다. 전통적으로 단조 곡은 마지막에 장조로 전환하여 ‘끝났으니 이제 쉬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c단조로 시작해 C장조의 승리로 끝나는 식으로요. 그런데 하이든은 그러지 않습니다. f단조로 시작해서 f단조로 끝납니다. 해결 없이 종결. 이 사중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질문 자체의 형태로 끝나는 곡입니다.
4악장 푸가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스트레토(stretto) 기법의 사용입니다. 스트레토란 각 성부가 주제를 모방할 때 이전 성부가 미처 주제를 다 끝내기 전에 다음 성부가 겹쳐 들어오는 기법입니다. 대화가 점점 빨라지면서 서로 말이 겹치는 것처럼요. 하이든은 이 기법으로 4악장 후반부의 긴장을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그 압축된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종결 화음으로 끊기는 순간, 그 단절감이 이 곡의 마지막 인상으로 남습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분들도 이 악장을 들을 때 느끼는 게 있습니다. 뭔가 빡빡하다는 느낌. 숨 쉬기가 좀 불편하다는 느낌. 그게 바로 하이든이 원한 겁니다. 280년 전 헝가리 습지의 고립된 궁정에서 마흔 살의 작곡가가 만든 긴장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Op.20이 현악 사중주 역사를 바꾼 방식
‘현악 사중주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하이든에게 붙은 건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별명이 다소 오해를 부르기도 합니다. 하이든이 현악 사중주라는 편성을 ‘발명’한 건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음악은 있었습니다.

하이든이 한 건, 그 네 악기가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든 겁니다. Op.20 이전의 현악 사중주에서 제1바이올린이 주연이고 나머지 셋은 조연이었다면, Op.20에서 하이든은 네 악기 모두에게 독립적이고 동등한 발언권을 줬습니다. 특히 No.5에서 첼로는 단순히 베이스 라인을 받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선율과 논리를 갖고 움직이죠. 푸가 악장에서 첫 주제를 먼저 제시하는 것도 첼로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후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가 쓴 모든 위대한 현악 사중주들이 이 구조 위에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Op.33을 보고 영감을 받아 ‘하이든 사중주’ 세트를 썼고, 직접 하이든에게 헌정했습니다. 베토벤은 그 다음 세대에서 현악 사중주를 교향곡 이상의 무게로 끌어올렸고요. 그 계보의 원점 중 하나가 Op.20 No.5입니다.
Wikipedia는 Op.20을 두고 “다음 200년간 이 매체를 정의할 작곡 기법들을 발전시킨 작품”이라 표현하죠. 과장이 아닙니다. 이 곡에서 확립된 네 악기의 동등한 발언권, 그리고 단조와 푸가를 통한 진지한 음악적 담론의 방식, 이후 모든 현악 사중주 작곡가들이 배우고 뛰어넘어야 할 출발점이 됐습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곡이 포함된 Op.20이 ‘교과서 하이든’의 이미지와 얼마나 거리가 먼지입니다. 하이든을 규칙적이고 예의 바르고 가볍다는 선입견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이 곡을 들려주면 대부분 생각이 바뀝니다. 어두움의 강도, 형식적 실험의 대담함,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해결을 거부하는 그 고집스러움. 이건 ‘아버지 하이든’의 온화한 이미지와 거리가 멉니다. 한 청취자 커뮤니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Op.20은 “영혼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음악이고, Op.76은 “위대하게 숙성된 장인의 작품”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 사람에 따라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는지가 갈립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Op.20은 출판 시점에 바로 주목받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빈의 음악 비평계는 하이든의 이 새로운 방향을 ‘너무 진지하다’거나 ‘어렵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귀족들이 식사 중에 편안하게 즐기는 음악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반세기 후, 이 작품들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사중주를 통해 재발견되면서 진가를 인정받았습니다. 베토벤의 초기 현악 사중주 Op.18을 들을 때, 그 언어의 출처가 어디인지 귀를 세워보면 Op.20 No.5와의 연결고리가 여러 곳에서 들립니다.
이 곡을 연주하는 현대 연주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4악장 푸가의 ‘얼마나 드라이하게 칠 것인가’입니다. 너무 감정을 실으면 바흐 시대의 바로크 푸가처럼 들리고, 너무 냉정하게 치면 하이든 고유의 인간적 온기가 사라집니다.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처럼 정밀하게 가는 선택도 있고, 쿼투르 모자이크처럼 시대 악기의 음색으로 투명하게 가는 선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이 두 선택이 각각 이 음악의 다른 측면을 드러냅니다.
실내악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현악 사중주라는 편성 자체가 낯설 수 있습니다. 교향곡처럼 웅장하지 않고, 독주곡처럼 한 악기가 돋보이지도 않는 형식이거든요. 네 명이 대등하게 말을 나누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이든 Op.20 No.5는 그 입문 장벽이 다소 높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곡만큼 실내악의 본질을 직접 보여주는 곡이 드물기도 합니다. 네 악기가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하나의 음악적 논리 안에서 만나는 방식, 그것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것이 이 곡의 4악장 푸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실내악 곡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곡은 그 원리가 유독 투명하게 보입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처음에는 이 곡 전체를 한 번에 들으려 하지 말고 4악장 푸가 3분만 먼저 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 이런 음악이구나’ 하는 감을 잡은 뒤에 전체를 들으면, 왜 1악장부터 이렇게 무겁게 시작하는지 납득이 갑니다.
마지막으로 이 곡과 연관된 재미있는 사실 하나. ‘태양 사중주’ 세트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가장 많이 녹음된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밝은 E♭장조의 No.1이 아니라 이 어두운 f단조의 No.5입니다. 연주 빈도로 보면 Op.20 전체 중에서도 No.5가 압도적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연주자들 입장에서 이 곡이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4악장 푸가는 네 명이 각자 독립된 성부를 유지하면서도 전체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앙상블의 시금석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잘 되면 탁월하고, 흐트러지면 금방 티가 납니다.
그래서 현악 사중주단의 오디션이나 챔버 음악 페스티벌에서 이 곡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량과 앙상블 능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거든요. 하이든이 1772년에 의도했든 아니든, Op.20 No.5는 지금도 현악 사중주라는 형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준점으로 살아 있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이 곡은 밝아지지 않습니다. f단조로 시작해서 f단조로 끝납니다. 3악장 Adagio에서 잠깐 F장조로 전환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죠. 어둡고 긴장된 음악이 ‘억지로 밝아지는 결말’ 없이 끝나는 경험입니다.

4악장 푸가에 집중하세요. 처음 들으면 복잡해 보이지만, 귀를 한 악기에 고정하고 그 선율이 어디서 나타나고 어디서 사라지는지 따라가면 됩니다. 첼로가 처음 주제를 꺼내면 비올라가 같은 선율로 이어받는 방식이거든요. 그 추적 게임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 악장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3악장과 4악장의 대비. 이 두 악장을 연속으로 듣는 경험이 이 곡의 핵심입니다. 3악장의 F장조 Adagio가 끝나고 4악장의 f단조 푸가가 시작될 때의 감촉, 하이든이 왜 이 순서를 선택했는지 단번에 납득이 갑니다.
연주 시간은 약 23~27분. 현악 사중주치고는 긴 편이죠. 빠른 악장이 없어서 더 그렇습니다. 한 번에 다 듣기 힘들다면 3악장 Adagio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하이든이 얼마나 섬세한 균형 감각을 가진 작곡가인지 느낄 수 있거든요.
악기를 구별해서 듣는 것도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전체를 듣지 말고, 첼로 하나만 집중해서 따라가 봅시다. 특히 4악장에서 첼로가 얼마나 독립적인 발언을 하는지 확인하면, 현악 사중주가 ‘주연 한 명과 조연 셋’이 아니라는 게 귀로 느껴집니다.
추천 녹음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 (Alban Berg Quartet), EMI, 1979년 녹음
이 곡의 레퍼런스 녹음으로 오랫동안 꼽히는 연주입니다. 정밀하고 냉정합니다. f단조의 어두운 성격을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게 잡아주는 균형감이 탁월합니다. 4악장 푸가에서 각 성부의 독립성을 명확하게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긴장을 잃지 않습니다. Op.20 전곡이 담겨 있어서 다른 곡들과 비교 청취하기에도 좋습니다.
쿼투르 모자이크 (Quatuor Mosaïques), Astree/Naïve, 1994년 녹음
시대악기 연주 그룹입니다. 18세기에 사용된 현악기와 고전 활로 연주합니다. 음색 자체가 현대 현악기와 다릅니다. 훨씬 투명하고, 공명이 다르고, 어떤 면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들립니다. f단조의 날카로움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연주입니다.
옐로 반 서머 페스티벌 (Yellow Barn Summer Festival), 2025년 실황
미국 버몬트주의 실내악 축제 2025년 여름 실황입니다. 요즘 세대 연주자들이 이 곡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음반 녹음과 달리 실황의 날것 같은 긴장감이 있고, 4악장 푸가의 에너지가 특히 생생합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Op.20 전곡의 악보는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합니다. 악보를 보며 감상하면 4악장 푸가에서 각 성부가 주제를 받아가는 방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귀만으로 들을 때보다 훨씬 구조가 선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