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 곡명
- 발라드 1번 g단조, Op.23
- 작곡 기간
- 1831–1835
- 악장
- 단악장 — 보통 빠르기에서 불처럼 매우 빠르게 (g단조)
Single movement: Moderato – Presto con fuoco - 편성
- 피아노 독주
- 초연
- 1836년, 파리(추정) / 정확한 날짜 미상
- 헌정
- 남작 나타나엘 폰 슈토크하우젠 (Baron Nathaniel von Stockhausen)
로베르트 슈만이 쇼팽의 집을 나오면서 메모 하나를 남겼습니다. 1836년 가을, 라이프치히에서 쇼팽을 직접 만나 새 악보를 받아 든 날이더군요. “쇼팽의 천재성에 가장 가까운 작품.” 슈만은 이렇게 적었고, 쇼팽에게 직접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이 당신 작품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거예요.” 잠깐의 침묵. 그러자 쇼팽이 단호하게 답합니다. “저도요. 이 곡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피아노 소품으로 이름난 작곡가가 자신의 수백 곡 중에서 이 한 곡을 꼽은 겁니다. 야상곡도 아니고, 폴로네이즈도 마주르카도 아닌, 이 낯선 형식의 단악장 작품.
왜 이 곡이었을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1831년의 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빈, 1831년 — 망명자의 스케치
스물한 살의 쇼팽이 빈에 도착한 건 1830년 11월이었습니다. 연주 여행 겸 경력 확장을 위한 여정이었는데, 도중에 폴란드에서 혁명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더군요. 11월 봉기. 러시아 제국에 맞선 폴란드의 독립 투쟁이었습니다. 전쟁은 이듬해까지 이어졌고, 바르샤바는 결국 함락됐습니다. 쇼팽의 동기들 여럿이 체포됐고, 가족들은 위험에 처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완전히 막혀버린 상황.
쇼팽은 다시는 폴란드에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망명자로 산 셈입니다.
빈에서의 8개월은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살롱 공연 기회는 기대보다 적었고, 돈은 늘 모자랐거든요. 가족과 연인 콘스탄치아 그워드코프스카에게 보내는 편지는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 시기의 쇼팽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남아 있더군요. “나는 폴란드인이 아닌 것처럼, 프랑스인이 아닌 것처럼, 독일인처럼 살도록 운명 지어졌는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태. 그 감정이 음악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쇼팽이 빈 체류 중에 발라드 1번의 스케치를 시작했다는 건 여러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폴란드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의 서사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이 오랫동안 유력하게 받아들여졌더군요. 미츠키에비치는 리투아니아의 전설과 비극적 사랑을 담은 서사시들을 썼는데, 쇼팽이 파리에서 그를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쇼팽은 어떤 편지에도, 어떤 기록에도 이 연결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먼저였을까요, 이야기가 먼저였을까요. 그 답은 지금도 열려 있습니다. 쇼팽은 음악에 제목이나 이야기를 붙이는 것을 대체로 거부한 사람이거든요. 리스트가 자신의 피아노 작품에 온갖 문학적 제목을 붙인 것과 달리, 쇼팽은 음악 자체를 음악으로 놓아두길 원했습니다.
확실한 건 파리에서의 완성 과정입니다. 1831년 12월 쇼팽은 마침내 파리에 도착했고, 여기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리스트, 멘델스존, 들라크루아, 하이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그를 금세 환영했더군요. 리스트는 쇼팽의 연주를 듣고 “내가 피아노 앞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과장이겠지만, 그 정도로 쇼팽의 피아노는 파리 살롱에서 충격이었던 겁니다.
레슨 수입이 생겼고, 출판 계약도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사이 발라드 1번 스케치는 천천히 살이 붙었고, 1835년에 완성을 봅니다. 헌정 대상은 하노버 공국의 프랑스 주재 대사 슈토크하우젠 남작. 외교관이자 쇼팽의 후원자였습니다. 가난한 망명 예술가가 4년 만에 외교관의 후원을 받는 자리까지 올라간 셈입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발라드 1번.
형식의 반란, 소나타도 변주도 아닌 것
발라드 1번은 단악장입니다. 악장 구분이 없는 곡. 그런데 다 듣고 나면 이야기 하나를 통째로 읽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왜 그럴까요.

쇼팽이 이 곡에서 하나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나타 형식처럼 두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키는가 하면, 변주 형식처럼 같은 선율이 다른 옷을 입고 돌아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그 어떤 형식에도 속하지 않는 폭발이 터져 나오는 셈입니다. 이론으로 설명하면 복잡하겠지만, 귀로 들으면 “아, 이야기가 이렇게 가는구나” 싶은 자연스러움.
쇼팽 이전에 피아노 음악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없었습니다. 소나타는 여러 악장으로 나뉘어 서사를 펼쳤고, 단악장 피아노 작품은 주로 짧은 성격 소품에 머물던 시대. 그런데 쇼팽은 단악장 안에 소설 한 편을 집어넣었습니다. 슈만이 이 곡에서 쇼팽의 천재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평한 이유, 바로 이 형식의 독창성 때문이었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머지 세 발라드(2번, 3번, 4번)는 모두 6/8박자인데, 첫 번째 발라드만 6/4박자로 쓰였다는 사실. 서주는 4/4박자, 코다에 이르면 2/2박자로 바뀌더군요. 박자 자체를 이야기의 긴장감을 조절하는 도구로 쓴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허투루 놓인 박자가 단 하나도 없는 곡.
두 주제, 두 세계, 악곡의 흐름
곡은 조용한 서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첫 화음부터 의외더군요. g단조 곡에서 A♭장조 화음이 등장하거든요. 음악 이론으로는 ‘나폴리탄 화음’이라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기대를 한 번 어긋나게 하는 시작’인 셈입니다. 뭔가 불안정한 느낌,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 이 화음은 마지막 코다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처음과 끝을 하나의 고리로 잇는 장치인 겁니다.

> 💡 처음 듣는다면: 전체 10분 중 처음 8분은 쇼팽답게 아름다운 선율이 이어집니다. 조용하고 서정적인 흐름이죠. 그런데 마지막 2분(코다 Presto con fuoco)에서 곡이 갑자기 터집니다. 바로 이 전환이 곡의 핵심. 처음 들을 때는 ‘갑자기 왜 이러나’ 싶지만, 두 번째 들으면 앞의 모든 부분이 코다를 향한 복선이었음을 깨닫게 되더군요. 두 번째 청취가 첫 번째보다 훨씬 재밌는 곡인 까닭입니다.
서주가 끝나면 첫 번째 주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8마디 즈음, g단조. 쇼팽이 이 선율을 쓸 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처음 들으면 이야기가 시작되는 느낌이 드는 선율이더군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을 꺼내는 내레이터처럼, 그렇게 첫 문장을 엽니다.
제1주제, 어두운 물음
첫 번째 주제는 g단조입니다. 무겁고 낮게 시작해서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선율. 이 주제를 처음 들으면 뭔가 물음이 제기되는 느낌이 들죠. 문장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다음이 기다려지는 느낌이거든요. 발전부에서 변형된 뒤 재현부에서 다시 돌아올 때는 처음보다 훨씬 더 긴장된 형태를 띱니다. 처음에는 조용한 물음이었다가, 나중에는 절박한 물음으로 바뀌는 셈입니다. 같은 선율인데 감정은 전혀 다르더군요.
제2주제, 잠깐의 안도
68마디 즈음에서 두 번째 주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E♭장조. 첫 번째 주제의 어두운 g단조와는 사뭇 다른, 밝고 따뜻한 색채더군요. 잠깐이지만 안심이 되는 순간인 셈입니다. 여러 연주자가 특별히 주목하는 대목이기도 하죠. 너무 아름다워서 여기서 음악이 멈추면 좋겠다 싶은 순간. 그런데 쇼팽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안도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발전부에서 두 주제는 변형되고, 조성이 바뀌며 서로 충돌합니다. 긴장이 겹겹이 쌓이는 구간이죠. 재현부에서 두 주제가 돌아오는데, 순서가 뒤바뀌더군요. 원래 1주제가 먼저였지만 재현부에서는 2주제가 먼저 등장합니다. 소나타 형식의 규칙을 깨뜨린 셈입니다. 이 결정이 코다를 한층 더 충격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되는 겁니다.
코다, 불처럼
Presto con fuoco. ‘아주 빠르게, 불처럼.’ 단 하나의 화음이 내려치며 시작되고, 그 순간부터 음악은 통제 불능 상태입니다. 나폴리탄 화음이 다시 나타나 처음과의 연결을 상기시키고, 양손이 달리기 시작하죠. 마지막에는 건반 전체를 가로지르는 스케일이 질주하며 끝을 맺습니다. 이 마지막 2분이 앞의 8분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꿔놓는 겁니다.
이 코다는 피아노 레퍼토리 전체에서 손꼽히는 난곡입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난이도 때문만이 아니더군요. 앞의 8분을 어떻게 쌓아왔는지가 폭발력의 밀도를 좌우하거든요. 코다만 잘 친다고 되는 게 아닌 셈입니다.
처음 듣는 분을 위한 핵심 가이드
이 곡을 처음 들을 때 어디를 들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세 가지만 잡으세요.

첫 번째, 첫 선율이 돌아오는 순간. 곡 초반에 나온 g단조 첫 선율이 중반부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처음과 다르더군요. 더 긴장되고, 더 불안합니다. 악장이 진행되면서 같은 선율이 다른 감정을 품고 돌아온 셈입니다. 이 차이를 느끼면 이 곡의 절반은 이해한 겁니다.
두 번째, E♭장조 두 번째 선율. 약 2분 30초쯤 나오는 밝고 따뜻한 선율입니다. 처음에는 “아, 분위기가 바뀌었구나” 하고 넘기기 쉬운 대목. 그런데 이 선율이 발전부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재현부에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는지 주목해 보세요. 쇼팽이 감정의 온도를 얼마나 정밀하게 조절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간입니다.
세 번째, 코다의 시작. 갑자기 쾅 하고 떨어지는 화음, 바로 코다의 신호입니다. 이 순간부터는 생각을 내려놓으세요. 음악이 어디로 가는지 예측하려 하지 말고, 그 속도와 에너지에 그냥 휩쓸리면 됩니다.
이 곡을 듣다가 하던 일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 코다가 시작됐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피겨, 만화, 현대에서의 발라드 1번
슈만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주목한 건 형식의 혁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7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곡은 완전히 다른 맥락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2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2차 세계대전 중 폐허가 된 바르샤바에서 홀로 살아남은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이 건물 안에 숨어 있다가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제나우트에게 발각됩니다. 장교는 스필만에게 피아노를 가리키며 쳐보라고 했고, 무엇을 치겠냐는 물음에 스필만이 답한 곡이 바로 발라드 1번. 그 연주를 듣고 장교는 그를 살려줬습니다.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습니다. 스필만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살았고, 호제나우트는 소련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쳤더군요. 발라드 1번이 사람의 목숨을 구한 셈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을 따라가는 분들이라면 이 곡이 더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하뉴 유즈루가 2014년부터 4시즌 동안 이 곡으로 쇼트 프로그램을 탔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2개, 세계 기록 5개. 스포츠 역사상 가장 높은 쇼트 프로그램 점수 전부가 이 발라드 1번에서 나왔습니다. 하뉴는 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쇼팽의 발라드는 서정적으로 시작해서 폭발적으로 끝나는데, 그 구조가 스케이팅과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더군요.
애니메이션을 보는 분들에게는 ‘4월은 너의 거짓말’이 더 친숙할 겁니다. 주인공 아리마 코세이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으면서 선택한 곡이 바로 발라드 1번. 음악을 잃어버린 소년이 음악을 되찾는 과정, 그 상징으로 이 곡이 쓰였습니다.
2010년에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장 앨런 러스브리저가 1년을 바쳐 이 곡 하나를 배우는 과정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제목은 ‘다시 한번 연주해(Play It Again: An Amateur Against the Impossible)’. 세계 최고의 신문사를 이끄는 사람이 1년을 쏟아부어도 쉽게 칠 수 없는 곡인 셈입니다.
2013년에는 채널4 다큐멘터리 ‘쇼팽이 내 목숨을 구했다(Chopin Saved My Life)’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위기를 이 곡 연주로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목 자체가 이 곡이 단순한 음악 이상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지니고 있다는 방증.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곡은 오랫동안 ‘언젠가 꼭 치고 싶은 곡’ 목록 상위권을 차지해왔습니다.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곡이 주는 특별한 성취감 때문일 겁니다. 마지막 코다를 제대로 치는 날,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람스와 리스트, 이 곡이 열어준 문
슈만의 찬사를 들은 리스트는 이 곡을 직접 연주 레퍼토리에 올렸습니다. 벨기에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Eugène Ysaÿe)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편곡을 남겼더군요. 쇼팽 사후 여러 작곡가가 이 곡에 경의를 표한 셈입니다.
영향은 더 깊은 곳까지 이어졌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발라드 4개(Op. 10),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단악장 안에 극적인 서사를 담는 이 방식은 발라드 1번이 열어놓은 길이었더군요. 브람스가 직접 영향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형식적 실험의 선후 관계까지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는 교향곡 21번 ‘카디시’에서 발라드 1번을 직접 인용했습니다. 홀로코스트 추모곡에 쇼팽의 선율이 들어간 건 우연이 아니었더군요. 폴란드 출신 작곡가들에게 쇼팽의 발라드란 민족의 기억 그 자체였던 겁니다.
그리고 쇼팽 자신. 이 발라드를 쓴 뒤 세 개의 발라드를 더 완성했습니다. 모두 단악장, 모두 서사적, 모두 대규모. 1번이 형식을 열었고, 나머지 셋이 그 가능성을 탐색한 셈입니다. 4번 f단조 발라드를 쇼팽의 가장 심오한 작품으로 꼽는 피아니스트가 적지 않더군요. 그 출발점, 바로 이 1번.
쇼팽은 왜 발라드를 선택했는가
‘발라드’라는 형식 이름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중세 유럽의 발라드는 민간 구전 이야기를 담은 노래였습니다. 영웅의 비극, 사랑의 슬픔, 초자연적인 사건들. 슈베르트의 ‘마왕’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피아노 독주에 이 이름을 처음 붙인 작곡가는 다름 아닌 쇼팽.
왜 이 이름을 골랐을까요. 쇼팽 본인이 설명을 남기지 않았으니 확실히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곡을 들어 보면 이유가 저절로 느껴지더군요. 시작이 있고, 전개가 있고, 결말이 있는 구조. 그것도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마지막 코다가 불현듯 터져 나오는 건 이야기가 돌연 끊기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피아노 한 대로 서사를 전달하겠다는 의지, 그것이 쇼팽의 발라드였겁니다.
쇼팽이 이 형식을 창안하자 동시대 작곡가들이 뒤따랐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발라드 4곡, 리스트의 두 편의 발라드가 모두 그 흐름 위에 놓인 작품. 20세기에 들어서도 피아노 발라드라는 형식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쇼팽이 이름을 붙이고 길을 낸 셈입니다.
발라드 형식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들으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쇼팽이 얼마나 새로운 무언가를 빚어내고 있었는지 비로소 느껴지습니다. 당시에 이런 구조의 피아노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전례 없는 영역을 열어젖히는 작곡가의 담대함, 그런 것이 이 곡 안에 고스란히 서려 있더군요.
청취 경험의 측면에서도 이 곡은 독특합니다. 처음 들을 때와 두 번째 들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른 곡이습니다. 처음엔 아름다운 선율에 빠져들다 코다의 돌연한 폭발에 움찔하는 경험. 두 번째에는 앞선 서정적인 부분 전체가 이 코다를 향한 준비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청취가 훨씬 풍요롭더군요. 세 번째, 네 번째로 갈수록 이전엔 놓쳤던 결이 하나둘 드러나는 곡. 한 번에 깊이가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이 곡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까닭입니다.
연주자마다 해석의 폭이 넓은 곡이기도 합니다. 코다의 속도를 얼마나 빠르게 몰아치느냐, 두 번째 주제를 얼마나 서정적으로 노래하느냐, 서주를 어떤 무게감으로 여느냐. 같은 악보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셈입니다. 여러 연주자의 버전을 비교해 듣는 재미, 이 곡에서는 그 즐거움이 각별하더군요.
추천 녹음
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
아르헤리치의 발라드 1번은 위험합니다. 코다 부분의 속도와 에너지가 다른 연주자들과 차원이 다르더군요. 아름다운 선율을 부드럽게 다루다가 코다에서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이게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 처음 듣는 분들에게 먼저 권합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 (Krystian Zimerman, 1980, DG)
구조가 들리는 연주입니다. 첫 선율부터 코다까지, 각 부분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명확하더군요. 아르헤리치가 감정의 연주라면 짐머만은 설계의 연주인 셈입니다. 이 곡을 처음 들은 뒤 두 번째로 들을 때 짐머만 버전을 권합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1970년대, DG)
폴리니가 이 곡을 녹음했을 때 불과 2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주에는 젊음의 무모함이 없더군요. 오히려 성숙한 절제 그 자체. 코다의 난이도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면서도 음악의 무게를 잃지 않는 연주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보며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 발라드 1번 악보 보기 (IMS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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