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 곡명
- 발라드 1번 g단조, Op.23
- 작곡 기간
- 1831–1835
- 악장
- 단악장 — 보통 빠르기에서 불처럼 매우 빠르게 (g단조)
Single movement: Moderato – Presto con fuoco - 편성
- 피아노 독주
- 초연
- 1836년, 파리(추정) / 정확한 날짜 미상
- 헌정
- 남작 나타나엘 폰 슈토크하우젠 (Baron Nathaniel von Stockhausen)
1836년 가을, 라이프치히. 로베르트 슈만이 쇼팽을 자기 집에서 배웅하며 메모 하나를 남겼습니다. 쇼팽을 직접 만나 새 악보를 건네받은 바로 그날이었죠. 훗날 “쇼팽의 천재성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낼 만큼, 슈만은 이 곡에 단단히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슈만은 쇼팽에게 직접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곡이 당신 작품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거예요.” 잠깐의 정적. 이내 쇼팽이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저도요. 이 곡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피아노 소품으로 이름난 작곡가가 자신의 수백 곡 중에서 하필 이 한 곡을 꼽은 겁니다. 우아한 야상곡도 아니고, 폴로네이즈도 마주르카도 아닌, 이 낯설기 짝이 없는 형식의 단악장 작품을 말이죠.
대체 왜 하필 이 곡이었을까요. 그 이유를 캐물으려면 시계를 돌려 1831년의 빈으로 가야 합니다.
빈, 1831년 — 망명자의 스케치
스물한 살의 쇼팽이 빈에 첫발을 디딘 건 1830년 11월이었습니다. 연주 여행으로 경력을 넓혀보려던 참이었는데, 하필 그 여정 도중에 폴란드에서 혁명이 터졌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죠. 이른바 11월 봉기. 러시아 제국에 맞선 폴란드의 독립 투쟁이었습니다. 전쟁은 이듬해까지 이어졌고, 바르샤바는 끝내 함락되고 맙니다. 동기 여럿이 체포되고 가족들은 위험에 처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완전히 막혀버린 상황이었죠.
쇼팽은 두 번 다시 폴란드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기약 없는 망명자로 살아야만 했죠.
빈에서 버텨낸 8개월은 그저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기대했던 살롱 공연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고, 주머니 사정은 늘 쪼들렸거든요. 가족과 연인 콘스탄치아 그워드코프스카에게 띄우는 편지에는 갈수록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이 무렵 쇼팽의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나는 폴란드인이 아닌 것처럼, 프랑스인이 아닌 것처럼, 독일인처럼 살도록 운명 지어졌는가.”
그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부유 상태. 그 헛헛한 감정이 마침내 음악이라는 출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쇼팽이 이 빈 체류 기간에 발라드 1번의 스케치를 시작했다는 데에는 여러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가 존재합니다. 오랫동안 유력하게 받아들여진 설은 폴란드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의 서사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겁니다. 리투아니아의 전설과 비극적 사랑을 노래한 미츠키에비치를 훗날 파리에서 만났을 때, 쇼팽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하지만 흥미롭게도 쇼팽은 어떤 편지나 기록에서도 이 둘의 연결 고리를 직접 입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음악이 먼저 태어났는지, 이야기가 먼저였는지 그 답은 지금도 묘연하게 열려 있죠. 애초에 쇼팽은 자신의 음악에 꼬리표처럼 제목이나 이야기를 달아두는 걸 몹시 꺼리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자신의 피아노 작품에 온갖 문학적 수사를 갖다 붙인 리스트와는 정반대로, 쇼팽은 그저 음악이 음악 자체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그나마 확실한 건 파리에서 곡을 깎고 다듬어간 과정입니다. 1831년 12월, 파리에 도착한 쇼팽의 인생은 그야말로 뒤집혔습니다. 리스트, 멘델스존, 들라크루아, 하이네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두 팔 벌려 그를 환영했거든요. 심지어 리스트는 쇼팽의 연주를 듣고 “내가 피아노 앞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입니다. 아무리 과장이 섞였다 쳐도, 파리 살롱에서 쇼팽의 피아노가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주머니를 채워줄 레슨 수입이 생겼고 출판 계약도 줄을 이었습니다. 그 사이사이 발라드 1번의 스케치는 천천히 살이 붙었고, 1835년에 마침내 완성을 봅니다. 헌정 대상은 하노버 왕국의 프랑스 주재 대사였던 슈토크하우젠 남작이었습니다. 외교관이자 쇼팽의 후원자였죠. 가난한 망명 예술가가 4년 만에 외교관의 후원을 받는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발라드 1번입니다.
형식의 반란, 소나타도 변주도 아닌 것
발라드 1번은 단악장입니다. 악장과 악장을 가르는 벽이 아예 없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곡이 끝날 무렵이면 거대한 이야기 한 편을 통째로 읽어 내린 듯한 기분에 휩싸입니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요.

쇼팽이 이 곡에서 단 하나의 형식만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나타 형식처럼 두 주제를 꺼내어 발전시키다가도, 어느새 변주 형식처럼 같은 선율에 다른 옷을 입혀 다시 무대에 올리죠. 그러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폭발을 터뜨립니다. 이론으로 풀자면 복잡하기 짝이 없겠지만, 막상 귀로 들으면 “아,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자연스러움이 있거든요.
쇼팽 이전의 피아노 음악에서 과연 이런 시도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없었다’입니다. 소나타는 으레 여러 악장으로 나뉘어 서사를 펼쳤고, 단악장 피아노 작품이라고 해봐야 주로 짧은 성격 소품에 머물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쇼팽은 이 단악장 안에 소설 한 편을 고스란히 밀어 넣었습니다. 슈만이 이 곡을 두고 쇼팽의 천재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평가한 이유도, 필시 이런 형식의 독창성 때문이었을 겁니다.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머지 세 발라드(2번, 3번, 4번)는 하나같이 6/8박자인 반면, 첫 번째 발라드만 6/4박자로 쓰였습니다. 서주는 4/4박자로 열어젖히고, 곡의 마무리를 짓는 코다에 다다르면 2/2박자로 표정을 바꿉니다. 박자 그 자체를 이야기의 긴장감을 쥐락펴락하는 도구로 쓴 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허투루 버려진 박자가 단 하나도 없는 곡이거든요.
두 주제, 두 세계, 악곡의 흐름
곡은 고요한 서주로 막을 올립니다. 그런데 첫 화음부터 영 의외죠. g단조 곡에서 돌연 A♭장조 화음이 튀어나오거든요. 음악 이론에서는 이를 ‘나폴리탄 화음’이라 부르는데, 쉽게 말해 기대를 기분 좋게 어긋나게 하는 시작입니다. 어딘가 불안정한 느낌, 이야기가 펼쳐지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죠. 이 화음은 마지막 코다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처음과 끝을 단단한 고리로 이어 붙이는 장치인 셈입니다.

💡 처음 듣는다면 — 전체 10분 중 앞선 8분은 그야말로 쇼팽다운 아름다운 선율이 흐릅니다. 조용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죠. 그런데 마지막 2분(코다 Presto con fuoco)에 접어들면 곡이 갑자기 터져 나옵니다. 바로 이 전환이 곡의 핵심입니다. 처음 들을 때는 ‘갑자기 왜 이러나’ 싶지만, 두 번째 들을 때는 앞의 모든 흐름이 이 코다를 향해 깔아둔 복선이었음을 깨닫게 되거든요. 두 번째 청취가 첫 번째보다 훨씬 재미있는 곡입니다.
서주가 끝나면 첫 번째 주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8마디 즈음, g단조. 쇼팽이 이 선율을 쓸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처음 들으면 곧바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느낌을 주는 선율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입을 떼는 내레이터처럼, 그렇게 첫 문장을 엽니다.
제1주제, 어두운 물음
첫 번째 주제는 g단조입니다. 무겁고 낮게 시작해서 조심스레 올라가는 선율이죠. 이 주제를 처음 들으면 무언가 물음이 제기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문장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다음이 기다려지거든요. 발전부에서 모습을 바꾼 뒤 재현부에서 다시 돌아올 때는, 처음보다 훨씬 팽팽하게 긴장된 형태를 띱니다. 처음에는 조용한 물음이었다가, 나중에는 절박한 물음으로 뒤바뀌어 돌아오죠. 똑같은 선율인데도 감정은 전혀 다릅니다.
제2주제, 잠깐의 안도
68마디 즈음에 다다르면 두 번째 주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E♭장조. 첫 번째 주제의 어두운 g단조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밝고 따뜻한 색채입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안심이 되는 순간이죠. 여러 연주자들이 각별히 주목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여기서 음악이 멈추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거든요. 하지만 쇼팽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안도감이 오래가지 못하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발전부에서 두 주제는 변형되고, 조성이 바뀌며 서로 충돌합니다. 긴장이 겹겹이 쌓이는 구간입니다. 재현부에서 두 주제가 돌아오는데, 순서가 훌쩍 뒤바뀝니다. 원래 1주제가 먼저였지만 재현부에서는 2주제가 먼저 등장하거든요. 소나타 형식의 규칙을 깨뜨린 대목입니다. 이 결정이 마지막 코다를 한층 더 충격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되는 셈입니다.
코다, 불처럼
Presto con fuoco. ‘아주 빠르게, 불처럼.’ 단 하나의 화음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시작되고, 바로 그 순간부터 음악은 걷잡을 수 없이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앞서 맴돌던 나폴리탄 화음이 다시 나타나 첫머리를 떠올리게 하더니, 이내 양손이 건반 위를 내달리거든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건반 전체를 가로지르는 스케일이 질주하며 끝을 맺습니다. 이 마지막 2분이 앞선 8분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뒤바꿔놓는 겁니다.
이 코다는 전체 피아노 레퍼토리 중에서도 손꼽히는 난곡입니다. 그저 손가락이 돌아가는 기술적인 난이도 때문만은 아니죠. 앞선 8분을 어떻게 켜켜이 쌓아 올렸느냐에 따라 이 코다의 폭발력이 판이하게 달라지니까요. 결국 코다 하나만 기교적으로 잘 친다고 해결될 곡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처음 듣는 분을 위한 핵심 가이드
이 곡을 처음 접할 때 대체 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막막하시다면, 딱 세 가지만 짚고 넘어가시죠.

첫 번째, 첫 선율이 돌아오는 순간. 곡 초반에 깔렸던 g단조의 첫 선율이 중반부에 접어들며 다시 고개를 듭니다. 그런데 처음 들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거든요. 한층 더 긴장되고, 어딘가 불안합니다. 악장이 진행되면서 똑같은 선율이 전혀 다른 감정을 품고 되돌아오는 것이죠. 바로 이 온도 차를 감지하셨다면 이 곡의 절반은 이미 이해하신 셈입니다.
두 번째, E♭장조 두 번째 선율. 약 2분 30초쯤 흘렀을 때 흘러나오는 밝고 따뜻한 선율입니다. 처음 들을 때는 “아,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구나” 하고 무심코 넘기기 십상인 대목이죠. 그런데 이 선율이 발전부에서 어떻게 모양을 바꾸는지, 재현부에서는 또 어떤 얼굴로 돌아오는지 한 번 주목해 보세요. 쇼팽이 감정의 온도를 얼마나 정밀하게 다루는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간이거든요.
세 번째, 코다의 시작. 예고도 없이 갑자기 ‘쾅’ 하고 떨어지는 화음, 그게 바로 코다가 시작된다는 신호입니다. 이 순간부터는 복잡한 생각을 다 내려놓고 들으시면 됩니다. 음악이 대체 어디로 튈지 예측하려 들지 말고, 그 압도적인 속도와 에너지에 그냥 몸을 맡기듯 휩쓸리면 그만이죠.
이 곡을 듣다가 불현듯 하던 일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 코다가 시작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피겨, 만화 속 발라드 1번
슈만이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주목한 건 다름 아닌 형식의 혁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7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곡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맥락들 속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죠.

2002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2차 세계대전 중 폐허가 된 바르샤바에서 홀로 살아남은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이 건물 안에 숨어 있다가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Wilm Hosenfeld)에게 발각됩니다. 장교는 스필만에게 피아노를 가리키며 쳐보라고 했고, 무엇을 치겠냐는 물음에 스필만이 고른 곡이 바로 발라드 1번이었습니다. 그 연주를 듣고 장교는 그를 살려줬죠. 이 만남과 구조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스필만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살았고, 호젠펠트는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1952년 생을 마쳤습니다. 쇼팽의 피아노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고, 영화는 그 자리에 발라드 1번을 얹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스필만이 남긴 실제 회고록을 보면 그가 호젠펠트 앞에서 연주한 곡은 녹턴 c♯단조였거든요. 영화 〈피아니스트〉가 이 결정적인 장면의 곡을 발라드 1번으로 바꿨던 겁니다. 영화 속에 흐르는 연주는 폴란드 피아니스트 야누시 올레이니차크가 녹음한 것으로, 9분에 달하는 원곡을 장면에 맞춰 줄여낸 판본이죠. 책 속의 실화와 영화 속 곡이 다르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을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오히려 이 곡이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뉴 유즈루가 2014년부터 무려 4시즌 동안 이 곡에 맞춰 쇼트 프로그램을 탔거든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이 곡으로 쇼트프로그램을 연기한 뒤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고, 이 곡으로 받아낸 쇼트 점수는 여러 차례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습니다. 훗날 하뉴는 이 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쇼팽의 발라드는 서정적으로 시작해서 폭발적으로 끝나는데, 그 구조가 스케이팅과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죠.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4월은 너의 거짓말’이 훨씬 친숙하게 다가올 겁니다. 주인공 아리마 코세이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으며 선택한 곡이 바로 이 발라드 1번이거든요. 음악을 잃어버린 소년이 기어코 자신의 음악을 되찾아가는 그 과정의 상징으로 이 곡이 쓰인 셈입니다.
2010년에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장 앨런 러스브리저가 꼬박 1년을 바쳐 이 곡 하나에 매달린 과정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다시 한번 연주해(Play It Again: An Amateur Against the Impossible)’입니다. 세계 유수의 신문사를 이끄는 수장조차 1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 겨우 칠 수 있는 곡이라는 얘기죠.
2013년에는 채널4 다큐멘터리 ‘쇼팽이 내 목숨을 구했다(Chopin Saved My Life)’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위기를 이 곡 연주로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죠. 다큐멘터리의 제목 자체가, 이 곡이 사람들에게 단순한 음악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곡은 오랫동안 ‘언젠가 꼭 치고 싶은 곡’ 목록 상위권을 차지해 왔습니다. 워낙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 곡이 안겨주는 남다른 성취감 때문일 겁니다. 마지막 코다를 제대로 쳐내는 그날,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브람스와 리스트, 이 곡이 열어준 문
슈만의 찬사를 들은 리스트는 이 곡을 직접 연주 레퍼토리에 올렸습니다. 쇼팽 사후에도 이 곡은 당대 거장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죠.
그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뻗어나갔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발라드 4개(Op. 10)나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단악장이라는 좁은 틀 안에 극적인 서사를 밀어 넣는 방식은 발라드 1번이 처음 닦아놓은 길이었습니다. 훗날 브람스가 그 영향을 입 밖으로 직접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이 치열한 형식적 실험의 선후 관계마저 덮어버리긴 어렵습니다.
작곡가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는 20세기에 이르러 교향곡 21번 ‘카디시’에서 발라드 1번을 직접 인용했습니다. 홀로코스트 추모곡에 쇼팽의 선율이 들어간 일도 우연만은 아니었죠. 폴란드 출신 작곡가들에게 쇼팽의 발라드란 민족의 기억 그 자체였던 겁니다.
그리고 쇼팽 자신. 이 발라드를 쓴 뒤 세 개의 발라드를 더 완성했습니다. 모두 단악장에, 모두 서사적이고, 모두 대규모였죠. 1번이 형식을 열었고, 나머지 셋이 그 가능성을 탐색했습니다. 4번 f단조 발라드를 쇼팽의 가장 심오한 작품으로 꼽는 피아니스트가 적지 않은데, 그 출발점이 바로 이 1번입니다.
쇼팽은 왜 발라드를 선택했는가
애초에 ‘발라드’라는 형식의 이름표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발라드란 민간에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담아낸 노래였거든요. 영웅의 비극이나 사랑의 슬픔, 초자연적인 사건들 말입니다. 슈베르트의 ‘마왕’이 바로 그 맥락 위에서 탄생한 작품이죠. 그런데 가사 없는 피아노 독주곡에 이 이름을 처음 턱 하니 붙인 작곡가가 다름 아닌 쇼팽이었습니다.
쇼팽이 왜 이 이름을 골랐는지는 확실히 알 길이 없습니다. 본인이 이렇다 할 설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만 음악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 이유가 저절로 느껴집니다. 시작이 있고, 전개가 있으며, 결말에 다다르는 구조거든요. 그것도 비극적인 결말로 말입니다. 마지막 코다가 불현듯 터져 나오는 건 숨 가쁜 이야기가 돌연 끊기는 것과 같습니다. 피아노 한 대로 서사를 전달하겠다는 의지, 바로 그 마음이 쇼팽의 발라드를 낳았던 것입니다.
쇼팽이 이 낯선 형식을 빚어내자 동시대 작곡가들도 뒤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발라드 4곡과 리스트의 발라드 두 편 모두 그 거대한 물결 위에 놓인 작품들이죠. 20세기에 들어선 후에도 피아노 발라드라는 형식은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쇼팽이 이름을 붙이고 묵묵히 길을 낸 결과입니다.
발라드 형식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들으면 훌쩍 풍경이 달라집니다. 쇼팽이 얼마나 낯선 무언가를 빚어내고 있었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되거든요. 당시만 해도 이런 구조를 가진 피아노 음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전례 없는 영역을 기어이 열어젖히는 작곡가의 담대함, 바로 그런 에너지가 이 곡 안에 고스란히 서려 있습니다.
듣는 경험 측면에서도 이 곡은 꽤나 유별납니다. 처음 들을 때와 두 번째 들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딴판이거든요.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선율에 흠뻑 빠져 있다가 코다의 돌연한 폭발에 화들짝 놀라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들을 때는, 앞선 그 모든 서정적인 흐름이 결국 이 코다를 향해 깔아둔 복선이었음을 깨닫게 되죠. 그래서 두 번째 청취가 첫 번째보다 훨씬 풍요로워집니다. 세 번째, 네 번째로 거듭할수록 이전엔 미처 몰랐던 결들이 하나둘 정체를 드러내는 곡입니다. 단 한 번의 감상으로는 그 속내를 다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게 바로 이 곡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진짜 이유입니다.
연주자에 따라 해석의 진폭이 유독 넓은 곡이기도 합니다. 코다의 속도를 얼마나 매섭게 몰아칠 것인가, 두 번째 주제를 얼마나 서정적으로 노래할 것인가, 서주의 첫 문을 대체 어떤 무게감으로 열어젖힐 것인가. 분명 똑같은 악보를 펼쳐 놓고도 연주자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거든요. 그러니 여러 연주자의 버전을 요리조리 비교해 듣는 재미, 적어도 이 곡에서는 그 즐거움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콩쿠르의 결선곡, 그리고 조성진
발라드 1번은 5년 주기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결선 단골 레퍼토리로 통합니다. 한 곡 안에 서정과 폭발력을 모두 증명해야 하기에, 연주자의 음악성과 기교를 동시에 평가하기에 이만큼 적합한 곡도 드뭅니다. 무대 위에서 코다의 질주를 흔들림 없이 끝까지 몰아붙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험대와 같습니다.
한국 청중에게 유독 친숙하게 다가오는 연주는 조성진의 무대일 것입니다. 2015년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그는 발라드 1번을 다양한 무대와 음반을 통해 선보여 왔습니다. 본문 상단에 있는 ‘옐로 라운지’ 실황 역시 그중 하나로, 클럽 분위기의 공간에서 관객과 밀접하게 호흡하며 곡의 서정성과 코다의 폭발력을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동일한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상단의 조성진 실황과 하단의 아르헤리치, 짐머만 음원을 비교해 들어보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추천 녹음
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
아르헤리치의 발라드 1번은 그야말로 위험합니다. 코다 부분에서 뿜어내는 속도와 에너지가 다른 연주자들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거든요. 그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 코다에 진입하는 순간 돌연 완전히 딴 사람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진짜 같은 사람이 치는 거 맞나” 싶을 정도로요. 이 곡을 처음 듣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권해드리고 싶은 버전입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 (Krystian Zimerman, 1980, DG)
곡의 뼈대가 고스란히 들리는 연주입니다. 첫 선율부터 마지막 코다에 이르기까지, 각 부분이 대체 왜 하필 그 자리에 놓여 있는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짚어내거든요. 아르헤리치가 본능적인 감정의 연주를 들려준다면, 짐머만은 치밀한 설계의 연주를 보여줍니다. 이 곡을 다른 연주로 한 번 맛본 뒤, 두 번째로 각 잡고 들을 때 특히 이 짐머만 버전을 권합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1970년대, DG)
폴리니가 이 곡을 녹음했을 때 불과 2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주에는 젊음의 무모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숙한 절제 그 자체죠. 코다의 난이도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 내면서도 음악의 무게를 잃지 않는 연주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직접 펼쳐놓고 감상하실 수도 있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이 가능하거든요. → 발라드 1번 악보 보기 (IMS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