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작품명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 조성
- A장조
- 작곡 연도
- 1791년
- 악장 구성
- 3악장
I. Allegro (A major)
II. Adagio (D major)
III. Rondo: Allegro (A major)
1악장 빠르게 (A장조)
2악장 느리게 (D장조)
3악장 론도: 빠르게 (A장조) - 편성
- 클라리넷 독주(바세트 클라리넷), 플루트·바순, 호른, 현악
- 초연
- 1791년 10월 16일 추정, 프라하 (안톤 슈타들러 독주)
악보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저 흔한 필사본이 아닙니다. 다름 아닌 모차르트가 직접 음표를 그려 넣은 자필 악보가 통째로 증발해 버렸죠.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기가 막히게도 이 곡을 의뢰한 장본인이자 모차르트의 절친한 친구, 안톤 슈타들러(Anton Stadler)였습니다. 훗날 미망인 콘스탄체는 그가 빚을 갚으려고 악보를 전당포에 헐값에 넘겼을 거라고 이를 갈았거든요. 반면 슈타들러 본인은 여행 중에 억울하게 도난당했다고 항변했죠.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요? 진실은 200년이 흐른 지금도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 감상하는 K.622는 꽤 오랜 세월 ‘복원본’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원본 악보와 대체 얼마나 딴판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사실상의 리메이크 버전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이 곡은 음악사에서 손에 꼽히는 클라리넷 협주곡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잃어버린 악보에서 피어난 음악이 클라리넷 레퍼토리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니, 곱씹을수록 기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라진 악보와 두 친구의 기묘한 우정
1791년 10월 초, 빈으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바덴에서 요양 중이던 아내에게 짤막한 편지를 띄웠습니다. “슈타들러의 론도를 완성했다.” 정말이지 그게 전부였습니다. 역사적인 명곡의 탄생을 알리는 거창한 선언이나 의미심장한 수식어 따위는 없었죠. 하지만 그 소박한 ‘론도’가 바로 K.622의 3악장이었습니다. 무심하게 툭 던진 편지 한 줄이, 사실상 위대한 협주곡의 완성 신고서였던 겁니다.

모차르트는 그해 11월 20일 병석에 누웠고, 결국 12월 5일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향년 35세. 이렇게 K.622는 그가 온전히 완성한 마지막 기악 협주곡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훗날 음악 평론가 앙리 게옹(Henri Ghéon)이 이 작품을 가리켜 모차르트의 ‘백조의 노래(swan song)’라고 명명한 이후, 이 수식어는 곡의 운명처럼 찰거머리같이 따라붙었죠.
안톤 슈타들러는 그저 돈을 주고 곡을 산 단순한 의뢰인이 아니었습니다. 모차르트와는 같은 프리메이슨 단원으로서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었고,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이 들어가는 악보를 펼칠 때면 조건반사처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었거든요. 1789년에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 K.581 역시 슈타들러에게 바친 곡이었으니, 사실상 그의 연주를 염두에 두지 않은 클라리넷 곡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정은 꽤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슈타들러는 밥 먹듯이 빚을 지고 살았고 심지어 모차르트에게까지 손을 벌렸습니다. 정작 모차르트 본인의 주머니 사정도 썩 좋지 않았는데, 그 궁핍한 와중에도 기꺼이 친구에게 돈을 쥐여준 거예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콘스탄체가 슈타들러를 향해 공공연히 분노를 표출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자필 악보의 분실 또한 전적으로 그의 탓이라고 못을 박았으니까요.
그럼에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명확합니다. 모차르트는 오직 슈타들러를 위해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이 곡을 썼다는 점이죠.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개량하던 특수 악기, 바로 ‘바세트 클라리넷’이 가진 잠재력을 바닥까지 긁어내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협주곡이었거든요. 그 음표의 설계도가 얼마나 정교했는지는 바세트 클라리넷이 걸어온 발자취를 들여다보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1791년 가을, 한 사람의 마지막 몇 달
K.622가 세상에 나온 1791년의 가을은 모차르트에게 유독 기이하고 기막힌 계절이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턱밑까지 다가온 사람이 이토록 무서운 속도로 걸작을 쏟아낸 사례는, 기나긴 음악사를 통틀어 봐도 결코 흔치 않거든요.

그해 9월 6일, 프라하에서는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La clemenza di Tito)》가 초연 무대를 가졌습니다. 이어 9월 30일에는 빈에서 그 유명한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의 막이 올랐죠. 그리고 10월, 마침내 K.622를 완성해 냅니다. 심지어 이 숨 가쁜 일정 사이사이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뢰인이 주문한 《레퀴엠》을 악착같이 붙들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가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바로 그 미사곡 말입니다.
오페라 두 편, 협주곡 한 편, 거기에 레퀴엠까지. 이 모든 게 불과 두 달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사방에서 빚 독촉이 쏟아지고 병세마저 짙어지던 벼랑 끝 같은 시기였죠. 그런데 이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클라리넷 협주곡만은 기이할 정도로 투명하고 맑습니다. 《레퀴엠》이 서늘한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음악이라면, K.622는 그 곁에 고요히 앉아 햇살 비추는 창밖을 내다보는 음악 같습니다. 같은 사람의 손끝에서, 그것도 거의 같은 날에 태어난 곡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그러니 이 곡을 감상하면서 굳이 모차르트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지레 얹어가며 무겁게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당사자인 모차르트는 자신이 두 달 뒤에 눈을 감을 거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거든요. 그저 아끼는 친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푹 빠져있던 악기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음악을 지었을 뿐입니다. 그 아름다운 곡이 우연히 생애 마지막 협주곡이 되어버린 건 순전히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 처음부터 눈물콧물 빼려고 작정한 이별의 노래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에 빠진 순간
사실 모차르트가 처음부터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와 사랑에 빠졌던 건 아닙니다. 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의 궁정 오케스트라에는 애초에 클라리넷이란 악기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천재 작곡가가 이 매혹적인 소리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건, 훌쩍 자라 스물두 살 청년이 되어 도착한 만하임에서였습니다.
1778년 만하임의 궁정 오케스트라는 유럽에서 가장 앞선 악단으로 꼽혔습니다. 음량을 키웠다 줄이는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렸고 새 악기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거든요. 그 새로운 물결 속에 바로 클라리넷이 있었습니다. 이 소리에 푹 빠진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아, 우리에게도 클라리넷이 있다면!” 천재의 마음속 깊은 부러움이 고스란히 활자로 남은 셈이죠.
그 간절한 부러움은 13년 뒤 K.622라는 이름표를 달고 화려하게 돌아옵니다. 빈에 정착한 모차르트는 슈타들러라는 연주자를 만나 클라리넷의 가능성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게 됐죠. 만하임에서 시작된 긴 짝사랑이 마지막 협주곡에서 마침내 옹골찬 결실을 맺은 겁니다.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을 위해 남긴 두 걸작, 5중주 K.581과 협주곡 K.622가 모두 생애 마지막 몇 해에 몰려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평생토록 흠모하던 악기를 제 몸처럼 다룰 명수를 드디어 만났으니까요.
바세트 클라리넷 ― 오직 한 악기를 위해 다시 쓰다
바세트 클라리넷(basset clarinet)은 일반 클라리넷보다 저음역이 딱 4음 더 내려가는 악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표준 클라리넷은 악보상 낮은 E에서 멈추지만 바세트 클라리넷은 C까지 거침없이 파고들거든요. 고작 몇 음 차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미지의 음역에서 클라리넷의 가장 어둡고 묵직한 진가가 터져 나옵니다.

모차르트는 이 악기를 1787년 무렵부터 손에 쥐었고 K.622는 그 가능성을 가장 눈부시게 꽃피운 작품입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슈타들러마저 악보를 잃어버리자 1801년 무렵 세 출판사가 잇달아 이 곡의 악보를 찍어냈죠. 앙드레(André), 지베르(Sieber),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Breitkopf & Härtel)이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은 선택을 저질렀습니다. 바세트 클라리넷 전용 저음부를 일반 클라리넷이 낼 수 있는 안전한 음역으로 억지로 끌어올려 펴낸 겁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일단 팔리려면 사람들이 연주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세트 클라리넷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슈타들러가 죽은 뒤에는 악기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고, 그가 쓰던 형태에 정확히 들어맞는 바세트 클라리넷 실물은 지금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황당한 결과 덕분에 우리는 무려 150년 넘게 ‘개편본’을 ‘원본’으로 굳게 믿고 들어왔습니다. 특정 악절에서 모차르트가 원래 쓴 음보다 훨씬 높은 음이 튀어나오는데도 아무도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음악학자들이 “여기 왜 이렇게 높은 음이 나오지?”라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겁니다.
잃어버린 소리를 찾는 첫걸음은 1951년 프라하에서 시작됐습니다. 클라리넷 주자 요세프 야노우시(Josef Janouš)가 이르지 크라토흐빌(Jiří Kratochvíl)이 되살린 악기로 가장 이른 바세트 클라리넷 녹음을 남겼죠. 그 뒤 1960년대 들어 스위스의 한스 루돌프 슈타들러(Hans Rudolf Stalder, 안톤과는 무관한 인물)가 복원판 연주를 당당히 국제 무대에 올렸고 자비네 마이어(Sabine Meyer), 앤서니 페이(Antony Pay), 폴 메이어(Paul Meyer)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지금은 이 바세트 버전이 역사적으로 더 정확한 연주로 인정받습니다. 그렇다고 친숙한 일반 클라리넷 버전이 무대에서 쫓겨난 건 아닙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며 우열을 가리기보다 두 버전을 나란히 놓고 들어보는 게 이 곡의 밑바닥까지 이해하는 가장 현명한 길이니까요.
악장별 감상 가이드
이 곡이 처음이라면 2악장부터 들어보세요. 클라리넷이 오케스트라 위로 사뿐히 떠올라 홀로 노래하는 그 먹먹한 순간을 먼저 겪고 나면 나머지 악장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단박에 이해되거든요. 1악장은 정다운 대화, 2악장은 깊은 독백, 3악장은 후련한 해소입니다.

1악장, 클라리넷이 대화를 틔우는 방식
1악장은 A장조로 출발하는데 첫인상부터 퍽 독특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먼저 툭 던져놓으면 잠시 뒤 클라리넷이 슬그머니 들어오죠. 그런데 이 클라리넷은 으스대며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정하게 말을 건네듯 섞여 듭니다. 마치 오랜 친구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악장에서 모차르트가 기가 막히게 영리함을 뽐낸 대목은 바로 독주 악절입니다. 클라리넷 독주가 흘러나오면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조용히 길을 내어줍니다. 협주곡에서 독주 악기를 돋보이게 하는 흔하디흔한 수법 같지만 모차르트의 방식은 결이 다릅니다. 클라리넷이 짧게 노래를 마치면 현악이 마치 “그래서?”라고 묻듯 잽싸게 뒷말을 받아치고 클라리넷이 다시 대답하거든요. 두 주체가 탁구 치듯 번갈아 말을 주고받는 유쾌한 구조입니다.
저음역을 바세트 클라리넷 버전으로 들으면 이 핑퐁 같은 대화가 한결 풍성해집니다. 클라리넷이 현악의 묵직한 음역대까지 쑥 내려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대화를 넘어 완벽한 합주처럼 들리는 짜릿한 순간이 탄생합니다. 독주 악기와 반주가 위아래 없이 같은 높이에서 진득하게 말을 섞는 셈입니다.
1악장 끝자락에 등장하는 카덴차, 즉 독주자가 홀로 기량을 뽐내는 구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정작 모차르트 본인은 카덴차 악보를 남기지 않았거든요. 덕분에 오늘날 연주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텅 빈 악보를 채워 넣습니다. 똑같은 곡을 연주하는데도 이 대목만큼은 연주자마다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는 이유죠.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카덴차와 마주치는 재미, 이 협주곡을 거듭 들어야 할 분명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2악장,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D장조
2악장 아다지오(Adagio)입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선율을 담고 있습니다. 조성은 D장조입니다.
첫머리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현악기들이 발소리를 죽인 채 조용히 화음을 깔아주면, 클라리넷이 홀연히 등장하죠. 그때부터 클라리넷은 말 그대로 철저히 혼자 노래합니다. 반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주 멀찍이 물러나 있습니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오직 클라리넷뿐입니다.
선율 자체는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눈 돌아가는 화려한 기교 따위는 없죠. 하지만 그 뼈대만 남은 단순함이 도리어 무서운 무기가 됩니다. 모차르트는 다름 아닌 클라리넷으로 ‘아리아’를 써 내려간 셈입니다. 오페라 가수가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내는 바로 그 아리아 말입니다. 가사만 없을 뿐, 한 편의 가곡입니다.
특히 2악장 중반부, 클라리넷이 낮은 음역을 향해 끝없이 내려가는 순간이 압권입니다. 바세트 클라리넷 버전으로 들으면 이 대목의 깊이는 한층 아득해집니다. 마치 모차르트가 그 악기가 품은 가장 캄캄하고 어두운 밑바닥까지 내려가 은밀하게 무언가를 속삭이려는 듯하죠.
이 대목에서 오케스트라 역시 꽤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안 그래도 이 곡에는 오보에도 트럼펫도 없습니다. 모차르트가 애초에 악기 편성에서 빼버렸거든요. 그런데 2악장에 접어들면 소리의 여백은 더욱 넓어집니다. 플루트와 호른마저 자리를 비우고, 남은 건 클라리넷과 바순 그리고 현악기들뿐입니다. 반주가 얇아진 덕분에 클라리넷의 목소리는 시리도록 또렷해집니다. 혼자 남겨진 상태, 바로 그 ‘고립’이 2악장을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3악장, 슬픔 뒤의 가벼운 발걸음
3악장 론도(Rondo)는 어딘가 기묘합니다. 조성은 A장조로 넘어왔고 퍽 경쾌하게 발을 구릅니다. 방금 전 2악장에서 쏟아낸 그 깊고 무거운 감정들을 아예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뚝 떼는 모양새죠.
하지만 귀를 바짝 기울여보면 속내는 다릅니다. 번듯한 주제 선율 사이사이로 단조 삽입구가 불쑥 끼어들거든요. 볕이 드는 길 위로 찰나의 먹구름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입으로는 “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눈빛만큼은 완전히 무너진 사람의 서글픈 미소랄까요. 이 묘한 양면성이야말로 3악장을 흔해 빠진 경쾌한 피날레 그 이상의 명곡으로 빚어냅니다.
론도는 핵심 주제가 거듭 등장하는 구조를 띱니다. ‘주제 → 에피소드 → 주제 → 에피소드 → 주제’로 이어지는 패턴입니다. 모차르트는 원래의 선율이 되돌아올 때 발생하는 심리적 효과를 영리하게 다룹니다. 에피소드 구간에서 잠시 색채를 어둡게 가라앉혔다가 다시 본래의 주제가 등장하며 분위기를 환하게 전환하는 명확한 대비가 곡 전체에 역동적인 호흡을 만들어냅니다.
3악장의 독주 파트 역시 기술적인 난도가 상당합니다. 클라리넷이 극단적으로 높고 낮은 음역을 쉴 새 없이 빠르게 넘나드는 악절이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하지만 곡의 설계는 이러한 기교적 어려움을 철저히 감춥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테크닉을 겉으로는 한없이 유려하고 편안해 보이게 포장하는 방식은 모차르트의 탁월한 장기입니다. 연주자가 감당해야 할 맹렬한 도약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그저 유유히 흘러가는 매끄러운 선율로만 전달됩니다.
쌍둥이 같은 곡, 클라리넷 5중주 K.581
K.622를 논하는 자리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될 곡이 하나 있습니다.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입니다. 이 두 곡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나란히 A장조를 입었고 같은 악기를 위해 태어났으며, 두 곡 모두 슈타들러의 클라리넷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5중주가 세상에 나온 것이 1789년, 협주곡이 1791년입니다. 불과 2년이라는 틈을 두고 모차르트는 같은 악기를 향해 두 번의 절절한 고백을 던진 셈입니다. 5중주가 클라리넷과 현악 4중주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누는 내밀한 실내악이라면, 협주곡은 그 클라리넷을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세워 더 넓은 공간에서 노래하게 한 작품이죠. 이 두 곡을 연거푸 듣고 나면 모차르트가 대체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에서 무엇을 끄집어내려 했는지 선명해집니다. 허공을 떠다니는 듯한 소리,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빼닮은 악기의 맨얼굴 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5중주 역시 슈타들러의 바세트 클라리넷을 위해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K.622가 그랬듯, 이 곡에도 후대 출판에서 일반 클라리넷용으로 악보를 손본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죠. 같은 악기, 같은 친구, 그리고 똑같은 문제까지. 모차르트가 이 악기의 매력에 얼마나 지독하게 빠져 있었는지 증명하는 한 쌍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2악장을 기준점으로 잡으세요. 이 악장부터 듣고 나면 나머지 퍼즐은 거짓말처럼 다 맞춰집니다. 클라리넷이 덩그러니 남아 홀로 노래하는 바로 그 순간, 그것이 이 곡의 중심이거든요.

클라리넷의 음역이 훅 낮아지는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특히 바세트 클라리넷으로 연주한 버전을 들으면 유독 짙고 어두운 바닥의 소리가 울립니다. 일반적인 클라리넷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낼 수 없는 그 깊은 음이, 실은 모차르트가 원래 의도했던 진짜 목소리거든요.
1악장은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한쪽이 선율을 제시하면 다른 쪽이 이어받는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3악장은 한층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유쾌한 마무리입니다. 앞선 악장의 깊이를 덜어내고 쾌활하게 산책길에 나서는 듯한 묘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단조 구간은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3악장을 단순한 피날레 그 이상으로 뒤바꾸는 흥미로운 장치입니다.
K.622가 20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
이 곡은 세상에 악보가 출판된 1801년 이후, 단 한 번도 무대에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무려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클라리넷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기준으로 군림해 왔죠.
도대체 비결이 뭘까요. 연주하기엔 까다롭기 그지없지만, 결코 기교를 뽐내려 드는 얄팍한 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는 서로를 짓누르며 경쟁하는 대신 묵묵히 협력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그 엄청난 2악장이 있습니다.
이 협주곡은 1985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에 2악장이 삽입되며 다시 한번 커다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극 중 카렌 블릭센(메릴 스트립)이 아프리카 들판 위를 비행하는 장면에 바로 이 선율이 흐릅니다. 영화 속 장면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때 나온 곡이 이거구나” 하며 이 곡을 찾아오는 경우가 지금도 꾸준합니다.
클라리넷 입문자들이 단골 목표로 삼는 곡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탁월한 기술적 완성도와 음악적 깊이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이 곡 연주하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이 흔하게 나옵니다. 쉬워 보이는 겉모습 뒤에 최고 수준의 난이도가 도사리고 있는 역설입니다. 훨씬 화려한 기교를 요구하는 클라리넷 협주곡이 있음에도 유독 이 곡이 가장 어렵다고 평가받습니다. 음악 자체로 조금의 거짓말도 허용하지 않는 곡이기 때문입니다. 클라리넷이 홀로 주선율을 이끄는 2악장에서는 연주자의 모든 기량이 가감 없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클라리넷 협주곡이라는 장르 전체를 둘러봐도 K.622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베버의 두 클라리넷 협주곡,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들, 닐센의 클라리넷 협주곡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죠. 하지만 클라리넷 협주곡의 대표작으로 K.622가 널리 거론되곤 합니다. 악기와 협주곡 형식의 만남이 이만큼 자연스럽게 이뤄진 사례가 드물다는 방증입니다.
결국 클라리넷이라는 악기가 가진 고유한 본질과, 이 협주곡이 가리키는 방향이 기적처럼 일치한 결과입니다. 흔히 클라리넷을 두고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라고 꼽습니다. 입김을 불어넣어 직접 소리를 빚어내는 방식 자체가 인간의 발성과 닮아 있고, 음색이 변하는 폭도 무척 넓거든요. 모차르트는 바로 그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사를 적어주었습니다. 현란한 말솜씨로 기교를 부리는 대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진심을 툭 던지는 방식을 택한 셈입니다. 그렇기에 K.622는 그저 수많은 ‘협주곡 중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습니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나아가 협주곡이라는 그릇이 무엇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한꺼번에 증명해 낸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추천 녹음
수많은 K.622 녹음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 클라리넷 버전과, 원래 의도를 살린 바세트 클라리넷 복원 버전이죠.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 따지기보다는, 두 가지를 모두 들어보는 것이 이 곡의 세계를 가장 넓고 깊게 이해하는 지름길입니다.
자비네 마이어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한스 폰크 (1980년대, EMI)
바세트 클라리넷 버전의 기준 녹음입니다. 마이어의 연주는 음색이 유독 어둡고 깊습니다. 2악장에서 저음역이 선명하게 연주되어 이 버전이 지닌 의미를 잘 전달합니다. 바세트 클라리넷을 처음 접할 때 좋은 입문점이 됩니다.
앤서니 페이 /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1986, L’Oiseau-Lyre)
또 다른 바세트 클라리넷 버전입니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음색과 칼같이 떨어지는 정확한 템포가 일품이죠. 페이가 고악기를 깊이 파고든 전문가라는 사실이 연주 곳곳에서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일반 클라리넷과 바세트 클라리넷의 그 미묘한 저음역 차이를 한층 또렷하게 분해해서 들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히 권합니다.
잭 브라이머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피터 마그 (1950년대 후반, Decca)
일반 클라리넷 버전의 명반입니다. 60년이 넘은 녹음인데도 여전히 자주 추천되거든요. 2악장의 긴 호흡이 유독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클래식 녹음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연주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놀랍게도 K.622의 자필 악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그 기막힌 슈타들러 사건 때문이죠. 그래도 실망하긴 이릅니다. 무료 악보 사이트인 IMSLP에 접속하면 1801년의 첫 출판 악보를 포함해 다양한 판본들을 거뜬히 찾아볼 수 있거든요. 심지어 바세트 클라리넷을 위해 꼼꼼하게 다시 복원한 버전의 악보까지도 나란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악보 보기 (IMS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