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작품명
-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Op.57 ‘열정(Appassionata)’
- 작곡 시기
- 1804–1805년 (일부 1806년 추정)
- 조성
- f단조
- 악장 수
- 3악장
- 악장 구성
- I. Allegro assai (F minor) — 1악장 매우 빠르게 (f단조)
II. Andante con moto (D♭장조) — 2악장 움직임을 가지고 걸으며
III.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f단조) — 3악장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매우 빠르게 - 연주 시간
- 약 25–27분
- 편성
- 피아노 독주
- 헌정
- 프란츠 브룬스비크 백작 (Count Franz Brunswick)
- 출판
- 1807년 2월, 빈
천하의 베토벤도 이 곡의 악보를 강물에 던져버릴 뻔했습니다.
1806년 여름, 베토벤은 친구인 브룬스비크 백작과 마차를 타고 헝가리로 여행을 하던 길이었습니다. 맑은 날씨에 방심한 탓일까요,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마차 안으로 빗물이 들이치며 ‘열정’ 소나타의 자필 악보가 흠뻑 젖어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았죠. 하지만 우리의 고집불통 작곡가는 이 처참하게 손상된 악보를 쿨하게 버리는 대신, 잉크가 무자비하게 번지고 음표가 얼룩진 상태 그대로 곡을 끝까지 완성해 냅니다. 이 끈질긴 생명력의 원고는 지금도 빈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겉표지에는 베토벤 자신의 손글씨로 “La Pasionata”라는 문구가 또렷하게 적혀 있죠.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정작 ‘열정(Appassionata)’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은 베토벤이 붙인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이나 흐른 1838년, 한 출판사가 피아노 4손 편곡판을 슬쩍 내놓으면서 임의로 붙여버린 별명에 불과했거든요. ‘월광’이 그렇고 ‘비창’이 그렇듯, 우리가 아는 베토벤 소나타의 그럴싸한 별명들은 대부분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막힌 발명품입니다. 정작 작곡가 본인은 이 불타오르는 곡을 무미건조하게 “소나타 f단조 57번”이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비록 남이 지어준 이름이라지만, 사람들이 굳이 ‘열정’이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턱 하니 붙인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곡을 처음 듣는 순간, 마치 무언가에 맹렬히 쫓기는 듯한 기이한 압박감이 밀려오거든요. 등 뒤에서 정체모를 무언가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것만 같죠. 1악장부터 단 한 번의 양보 없이 몰아치더니, 3악장에 다다르면 아예 마지막 음표가 떨어질 때까지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25분짜리 곡이 맹렬하게 휘몰아치고 나면 피아노 앞의 연주자도, 객석의 청중도 영혼까지 털려 기진맥진해지고 맙니다. 200년 전에 얼떨결에 붙은 별명이 지금까지도 찰떡같이 살아남은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별명을 베토벤이 직접 짓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악보를 보자마자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열정’이라는 단어를 단숨에 떠올렸다는 건, 이 음악이 내뿜는 에너지가 그만큼 압도적이고 한결같다는 증거니까요. 20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반응은 소름 돋게 똑같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조차 이 선율이 무언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됩니다. 과연 그 숨 가쁜 질주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피아노의 마지막 타건이 끝날 때까지 끈질기게 들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쓴 가장 폭발적인 곡
베토벤이 이 가혹한 곡의 첫 음표를 끄적이기 시작했던 1804년 무렵, 그의 청력은 야속하게도 이미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그보다 2년 앞선 1802년, 그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절망에 빠진 채 유서까지 썼습니다. 동생들에게 비장하게 남긴 그 편지에는 “나의 불행은 두 배로 고통스럽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숨어야만 했다”라는 뼈아픈 고백이 적혀 있었죠. 당시 베토벤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콧대 높은 빈 음악계에서 이미 상당한 명성을 단단하게 쌓아 올리고 있었습니다. 행여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사실이 세상에 까발려지면, 그동안 쌓아온 화려한 경력과 명성이 모래성처럼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까 봐 그는 지독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일은, 이 처절한 유서를 쓰고 난 직후부터 베토벤이 봇물 터지듯 더 폭발적이고 거대한 곡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교향곡 3번 ‘영웅’(1803년 완성)을 필두로,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1803)와 피아노 협주곡 4번(1805년 완성), 그리고 마침내 이 피 끓는 ‘열정’ 소나타까지 모조리 이 즈음에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음악학자들은 이 숨 막히는 창작의 시기를 베토벤의 ‘중기’라고 점잖게 부릅니다. 세상의 소리를 점점 잃어가던 한 인간이, 역설적이게도 오직 귀로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청각 예술의 절정을 미친 듯이 쏟아낸 참으로 기막힌 시대였던 셈입니다.
이 곡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서늘한 역설이 피부에 와닿습니다. 1악장을 여는 저음 아르페지오, 그러니까 화음을 하나하나 펼쳐서 짚어가는 그 스멀거리는 움직임은 피아노가 낼 수 있는 가장 깊고 낮은 음역대를 파고듭니다. 당시 피아노의 물리적 한계점이던 최저음 F1을 그야말로 바닥까지 박박 긁어 쓰는 방식이죠. 소리를 점차 잃어가던 베토벤이 건반의 가장 어둡고 깊은 바닥을 필사적으로 더듬고 있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대목은 단순한 화성학 이야기를 넘어 묵직한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릅니다.
영광스럽게도 이 불타는 작품은 프란츠 브룬스비크 백작에게 헌정되었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꽤나 열성적인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베토벤의 허물없는 친구였던 그는, 작곡가가 빈과 헝가리를 뻔질나게 오가며 짙은 우정을 나누던 인물이었거든요. 이후 1807년 2월, 마침내 빈에서 문제의 악보가 출판되는데요.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 곡은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당시의 점잖은 피아노로는 이 곡의 맹렬한 요구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겁니다. 1800년대 초의 피아노는 지금 우리가 아는 육중한 그랜드 피아노와 달리 훨씬 가볍고 울림도 얄팍했거든요. 베토벤은 머릿속으로 폭풍을 그리며 이미 그 시절 악기의 물리적 한계를 훌쩍 초월해버린 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직후부터 피아노 제조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더 강력하고 짱짱한 소리를 버텨내는 악기를 만들어내라는 빗발치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죠. 한 작곡가의 광기가 악기의 진화마저 강제로 멱살 잡고 이끌어버린 셈입니다.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면 묘한 타이밍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소나타가 탄생한 시기는 하필이면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걸었던 뜨거운 환상이 산산조각 나던 때와 기막히게 겹치거든요. 교향곡 3번 ‘영웅’이 원래 나폴레옹에게 바쳐질 예정이었다가, 그가 떡하니 황제 자리에 오르자 뚜껑이 열린 베토벤이 헌정 페이지를 벅벅 찢어버렸다는 일화는 꽤나 유명하죠. 그 배신감과 들끓는 분노가 이 시기 작품들 기저에 시퍼렇게 흐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요. 그러니 ‘열정’ 소나타를 휘감고 있는 그 집요한 추진력과 숨 막히는 긴장감에서, 그저 순수한 음악적 탐구 이상의 살벌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베토벤이 이 맹렬한 소나타를 혼자 조용히 연주하곤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성가신 방문자가 없는 고요한 시간, 그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먹먹한 상태로 피아노 앞에 앉아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내리쳤다고 합니다. 소리 대신, 손가락이 건반을 때릴 때 만들어내는 그 강렬한 진동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연주했다는 것이죠. 공기를 울리는 소리는 잃었을지언정 뼈를 울리는 진동은 남김없이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이야기가 팩트인지 훗날 덧붙여진 낭만적인 각색인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 곡은 그토록 처절한 이야기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작품이거든요.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Allegro assai: 조용한 위협과 갑작스러운 폭발
1악장을 처음 듣게 되면 아마 꽤나 당혹스러우실 겁니다.
시작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너무 조용하거든요. pp(피아니시모, 매우 여리게)로 바닥을 기어가듯 시작하는 저음 아르페지오라니, 묘하게 으스스한 한기마저 감돕니다. 그런데 폭풍전야 같던 정적이 흐르다 냅다 ff(포르티시모, 매우 크게) 화음이 안면을 강타하듯 날아옵니다. 방심하고 듣다가 귀가 얼얼해질 지경이죠.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다시 죽은 듯이 조용해집니다.
베토벤은 이 1악장이 끝날 때까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극단적인 패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집니다. 은밀하게 속삭이다가 화산처럼 폭발하고, 간신히 진정하고 다시 속삭이는가 싶더니 여지없이 또 폭발해 버리죠. 이 롤러코스터가 수십 번을 반복되는데도 묘하게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폭발의 타이밍을 절대 빤히 보이게 두지 않는 베토벤의 얄미운 계산 때문입니다. 청중이 긴장을 늦추는 바로 그 찰나를 귀신같이 노리고 들이치거든요.
기술적으로 따져봐도 참으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이 악장에서 베토벤은 ‘나폴리 화음(Neapolitan chord)’이라는 제법 특수한 화음 진행을 마치 비밀 무기처럼 반복해서 꺼내 씁니다. 나폴리 화음이란 우울한 단조 조성으로 묵묵히 가다가 난데없이 반음 위 장조의 엉뚱한 색채가 쓱 끼어드는 기묘한 진행인데요. 어두컴컴한 f단조임에도 갑자기 밝은 g♭장조의 감각이 불청객처럼 끼어드는 바로 그 순간들 말입니다. 그게 이 악장이 끝없이 불안하고 심장을 옥죄게 들리는 진짜 이유죠. 게다가 이 치밀한 나폴리 화음 진행은 3악장의 주요 주제를 떠받치는 뼈대로 또다시 등장합니다. 작품의 처음과 끝이 완벽하게 같은 재료로 꿰매져 있는 셈입니다.
이 악장의 뼈대는 소나타 형식(sonata-allegro form)입니다. 주제를 슬쩍 던져놓고 이리저리 굴리며 발전시키다가 기어코 제자리로 돌아오는 얄미운 구조인데, 마치 추리소설의 복선-전개-반전-결말을 따라가는 논리와 꼭 닮아 있죠. 여기서 12/8박자라는 박자표를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이 박자가 물 흐르듯 끊임없이 굴러가는 듯한 지독한 추진력을 만들어내거든요.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브레이크가 완전히 고장 난 기계 같다는 섬뜩한 인상. 바로 그것이 이 악장 전체를 팽팽하게 지배하는 핵심 정서입니다.
1악장에는 우리가 기필코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숨어 있습니다. 주요 주제(main theme)가 가진 두 가지 뾰족한 특징인데요. 하나는 두 손이 같은 음을 옥타브 간격으로 나란히 때리는 옥타브 유니즌(octave unison)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짧고 앙칼진 점음표(dotted rhythm)가 끈질기게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의 독한 조합이 바로 악장을 지탱하는 척추 역할을 하죠. 겉보기엔 그토록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악장이, 알고 보면 이렇게나 단순한 리듬 패턴 하나에서 뻗어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베토벤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지독할 만큼 경제적으로 음악적 재료를 쥐어짜 냈는지 새삼 경악하게 되거든요.
으레 전통적인 피아노 소나타의 1악장이라면, 제1주제와 제2주제라는 두 개의 뚜렷한 간판을 내거는 것이 점잖은 관례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여기서 묘한 수작을 부립니다. 제2주제마저 제1주제의 재료를 고스란히 빼다 쓰는 만행을 저지르거든요. 통상적으로 두 주제는 서로 멱살을 잡듯 성격이 확연히 대비되어야 마땅한데, 베토벤은 똑같은 재료를 조물딱거려 뻔뻔하리만치 전혀 다른 색채를 빚어내고 맙니다. 바로 이 교묘한 재활용의 마법이, 이 악장 깊숙이 숨어 있는 진짜 묘미입니다.
코다(coda, 마무리 부분)에 이르면 아주 작정을 한 듯합니다. 마치 신들린 즉흥연주처럼 쏟아지는 광대한 아르페지오가 피아노 건반 전체를 사정없이 휩쓸고 지나가죠. 이 미친 구간에서 연주자들은 그야말로 악기가 산산조각 날 것처럼 건반을 내리찍어야 합니다. 무려 9분에서 11분 사이를 미친 듯이 내달리는 이 악장은, 고작 1악장 하나만 떼어놓고 봐도 웬만한 얌전한 피아노 소품 전체를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합니다.
흥미롭게도 발트슈타인 소나타(21번)와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이 악장의 괴팍한 개성이 한층 더 선명하게 도드라집니다. 두 작품 모두 1804년 무렵 쌍둥이처럼 태어났는데, 발트슈타인이 눈부신 빛과 도약의 에너지를 뿜어낸다면 열정의 1악장은 끝없는 어둠과 숨 막히는 압박으로 점철되어 있죠. 같은 시기, 같은 작곡가, 심지어 같은 형식 안에서 어쩜 이토록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세계가 튀어나올 수 있을까요. 베토벤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연처럼 깊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오싹한 증거입니다.
실제 연주를 감상하실 때 써먹기 좋은 한 가지 팁이 있습니다. 1악장에서 pp 구간이 은밀하게 고개를 들 때마다, 그 소리의 덩치를 집요하게 추적해 보는 겁니다. 얼마나 쥐죽은 듯이 시작해서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ff로 냅다 터져버리는지, 그 아찔한 낙차를 뼈저리게 의식하며 듣는 거죠. 그러면 이 악장이 그저 무식하게 ‘시끄러운 곡’이 아니라 소름 돋도록 정교하게 직조된 스릴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 들을 땐 그저 폭발음만 귀에 맴돌겠지만, 곡에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그 숨죽인 구간들이 더 오싹하게 다가옵니다. 그 섬뜩한 고요함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다음 폭발을 예열하는 끔찍한 카운트다운이니까요.
2악장 Andante con moto: 폭풍 속의 눈
그렇게 휘몰아친 뒤, 2악장은 놀랍게도 D♭장조의 평온한 얼굴로 등장합니다.
1악장의 그 음침한 f단조에서 D♭장조로 넘어오는 이 기막힌 전환은 결코 억지스럽거나 생뚱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빛 한 줌 안 들던 축축한 지하실에 갇혀 있다가 덜컥 창문이 열려버린 듯한 묘한 안도감에 가깝죠. 눈이 부시게 밝아진다기보다는, 막혔던 숨통이 마침내 탁 트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숨 막히는 악장은 변주곡 형식(variations)의 뼈대를 취하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단출한 16마디짜리 주제가 무려 네 번이나 변주를 겪어내죠. 처음엔 그저 차분하고 굼뜬 멜로디가 맴돕니다. 그러다 첫 변주에서 왼손이 슬그머니 주제를 비틀며 은근한 리듬감을 불어넣고, 두 번째 변주로 넘어가면 16분음표로 잘게 쪼개진 잰걸음이 주제 주변을 화려하게 맴돕니다. 세 번째 변주에 이르면 아예 32분음표들이 소나기처럼 건반 위로 쏟아져 내리죠. 특히 이 세 번째 변주는 이른바 ‘더블 변주(double variation)’라는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며 양손이 얄밉게 서로의 역할을 맞바꿔버립니다. 마지막 4번째 변주 즈음에 다다르면 연주자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말 그대로 훨훨 날아다녀야 합니다. 처음엔 볼품없어 보이던 그 단순한 주제가, 마치 작은 씨앗이 쩍쩍 갈라지며 거대한 나무로 팽창하듯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는 셈입니다.
본래 변주곡 형식이란 한 가지 주제를 물고 늘어지며 이리저리 옷을 갈아입히는 구성인데, 베토벤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멜로디에 예쁜 장식을 덧대는 수준의 얄팍한 변주가 주류였습니다. 선배 격인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주제를 공들여 예쁘장하게 꾸미는 데 만족했다면, 엇나가는 기질의 베토벤은 아예 주제를 바닥까지 해체해버리고 자기 입맛대로 뜯어고쳐 버립니다. 이 2악장의 지독한 변주들이야말로 그 잔혹한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죠. 분명 그 얌전하던 주제에서 출발했건만, 변주가 거듭될수록 원래 멜로디가 도대체 어디 숨어있는지 숨바꼭질을 해야 할 정도로 음악의 뼈대 자체가 기괴하게 변모해 버리거든요.
이 악장에서 가장 기묘한 구석을 꼽으라면 단연 베이스의 역할입니다. 겉보기엔 그저 얌전하고 단순해 보이는 주제 아래로,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저음이 슬그머니 깔리거든요. 수면 위는 고요한데 물밑에서는 정체 모를 무언가가 스멀스멀 꿈틀거리는 형국이랄까요. 베이스 성부(bass voice)는 윗선율을 고분고분 떠받치는 시종 노릇에 만족하지 않고, 제멋대로 반음계를 밟으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습니다. 그 삐딱하고 독립적인 움직임이 2악장 전체에 불길한 긴장감을 팽팽하게 불어넣죠. 귀는 차분하게 듣고 있는데 속은 까닭 없이 달랑거리는, 그 기분 나쁜 불안감이 바로 이 악장의 핵심 정서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2악장 막바지에 등장하는 전조. 느닷없이 감7화음(diminished seventh chord, 지독하게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화음)이 불쑥 끼어들더니, 1악장을 짓누르던 그 칙칙하고 어두운 기운이 다시 독기를 품고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3악장으로 건너가는 위태로운 다리 역할인데, 얄짤없이 곧바로 내달려 버리거든요. 바로 그 서늘하게 이어지는 찰나에 목덜미가 서늘해진다는 평판이 자자합니다.
이 2악장에서 기필코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다름 아닌 ‘단순함의 힘’입니다. 까놓고 말해 주제 자체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단순하거든요. 16마디 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머리 아픈 리듬이나 건방지게 치고 들어오는 화성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앙상한 주제가 네 번의 변주를 거치며 서서히 괴물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뒤쫓다 보면, 이 구조가 얼마나 지독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었는지 깨닫게 되죠. 그저 얄팍한 단순함에서 조잡한 복잡함으로 넘어가는 뻔한 수작이 아니라, 단순함의 뼈대는 그대로 둔 채 수직으로 깊이만 후벼 파는 악랄한 방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베토벤이 이 고요한 악장에서 노렸던 진짜 속내였습니다.
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끝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
3악장은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쉼 없이 질주합니다.
2악장의 마지막 화음이 채 허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3악장이 무자비하게 들이닥칩니다. 지옥 같은 f단조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16분음표의 연속 패시지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죠. 쳇바퀴 돌듯 끊임없이 회전하는 모티프. 가엾은 연주자에게 이 지독한 회전에서 벗어나 숨을 돌릴 틈 따위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중간쯤에 얄밉게도 잠깐 숨을 고르는 구간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찰나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코다(Presto)로 접어드는 순간 자비 없이 템포가 한 단계 더 튀어 오르고,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악보 끝을 향해 광적으로 가속하거든요. 곡이 끝나는 마지막 몇 십 초는, 과연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두들겨 패는 것인지 피아노가 피아니스트를 쥐고 흔드는 것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을 지경입니다.
이 미쳐 날뛰는 3악장이 사실 1악장 주제와 징그러울 만큼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곡을 듣는 재미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1악장에서 불길하게 등장했던 그 나폴리 화음 진행이, 3악장의 주요 주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뼈대로 재활용되거든요. 25분짜리 곡 전체가 결국 하나의 지독한 악상에서 출발해 기어이 그 악상으로 회귀하고 마는 폐쇄적인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처음에 독을 품은 씨앗을 뿌려두고, 2악장에서 능청스럽게 숨을 고르는 척하다가, 3악장에 이르러 그 씨앗이 괴물처럼 폭발적으로 자라나 온 사방을 뒤덮어버리는 끔찍한 방식이죠.
3악장의 마지막 구간(Presto)은 이 불길한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막 나가는 극단적인 지점입니다. 템포가 미친 듯이 솟구치는 건 기본이고 화성 진행마저 숨 막히게 빨라지죠. 1악장에서 떡밥처럼 던져졌던 불길한 음악적 요소들이 이곳에서 한꺼번에 해소되는데요. 가만, 해소라는 얌전한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폭발적으로 소진되어 재가 된다’는 표현이 훨씬 와닿거든요. 에너지가 기품 있게 흘러넘치는 게 아니라,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깡그리 불태워버리는 파괴적인 방식입니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난 뒤에 무겁게 짓누르는 정적이 유독 더 귀가 먹먹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3악장에서는 소름 돋는 구조적 특징 하나를 기필코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로 f단조로 문을 열어 끝내 f단조로 문을 닫는다는 점이죠. 베토벤의 숱한 작품들이 으레 단조의 고난으로 시작했다가 찬란한 장조로 전환하며 해방감을 안겨주는 뻔한 공식을 따르는 반면, 이 독한 소나타는 끝끝내 f단조의 늪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흔한 카타르시스나 해소 따위는 애초에 없죠. 팽팽한 긴장이 그보다 더 기괴한 긴장으로, 훨씬 가학적인 속도로 타들어 갈 뿐입니다. 바로 이 지독한 결말이 이 곡을 다른 베토벤 작품들과 확연히 선 긋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죽어라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는 있는데, 그 처절한 질주의 끝에 기다리는 것이 결코 구원의 빛이 아니라는 절망감. 그럼에도 도무지 멈춰 설 수 없다는 이 지독한 역설이야말로, 이 곡이 200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는 진짜 비결입니다.
‘열정’은 왜 지금도 피아니스트의 등용문인가
피아노를 배우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이 지독한 ‘열정’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됩니다.
기술적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이 곡은 산전수전 다 겪은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만만찮은 골칫거리입니다. 양손이 쉴 새 없이 동시에 전혀 다른 짓을 해내야 하는 데다, 요구하는 강약의 폭이 그야말로 극단적이거든요. pp에서 ff까지,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듯한 찰나에서 건반이 와장창 부서져라 때려야 하는 순간으로 롤러코스터 타듯 곧장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 난리를 치면서도 음악이 깡패처럼 무식하고 폭력적으로 들려서는 절대 안 된다는 얄미운 조건까지 붙어 있으니까요.
이 악랄한 조합이 왜 그토록 피를 말리는지 따져보면 결국 ‘절제’라는 얄미운 단어에 도달합니다. 힘이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피아니스트라면 ff 구간에서야 신나게 건반을 두들겨 팰 수 있겠죠. 하지만 pp 구간에서 쥐죽은 듯 여리게 치면서도 악보가 집요하게 요구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묘기에 가깝습니다. 이 곡은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무식하게 강하게 칠 수 있는지보다 얼마나 얄밉게 여리게 치면서 청중의 멱살을 틀어쥐고 놓지 않는지를 더 집요하게 시험하거든요.
3악장에서 쏟아지는 16분음표 연속 패시지 역시 만만찮은 골칫거리입니다. 손가락이 마비될 듯 지쳐가는 와중에도 그 지독한 긴장감을 끝끝내 유지해야 하니까요.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내리쳐야 하는데 정작 소리는 기계처럼 차갑게 들려서는 안 된다는 기막힌 모순. 바로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것이 이 악장이 연주자에게 들이미는 진짜 잔혹한 관문입니다.
현대 팝컬처에서도 이 지독한 곡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입니다. 1악장의 그 음산한 첫 아르페지오는 피 말리는 긴장감이 필요한 영화나 드라마 클라이맥스 장면에 아주 단골로 불려 나오거든요. 처음 몇 음만 스쳐 지나가도 ‘아 이거’ 하며 무릎을 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무려 200년 묵은 곡이 여전히 펄펄 살아서 현역으로 구르는 이유는 참으로 단순명료합니다. 단 몇 초 만에 주변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장악력이 있으니까요.
이 무자비한 작품은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중 과연 어느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을까요. 흔히 8번 ‘비창’과 14번 ‘월광’ 그리고 21번 ‘발트슈타인’과 23번 ‘열정’ 마지막으로 29번 ‘함머클라비어’가 굵직한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베토벤 본인조차 이 곡을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폭발적인 소나타”로 여겼다고 하죠. 훗날 등장한 29번 ‘함머클라비어’가 어마어마한 덩치로 이 곡을 짓누르긴 했지만 ‘열정’이 품고 있는 그 숨 막히게 압축된 밀도와 광적인 폭발력만큼은 다른 어떤 소나타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영역입니다.
깐깐한 음악학의 잣대를 들이대면 이 소나타는 이른바 ‘중기 베토벤’의 살벌한 완성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얌전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우아한 전통에서 출발해 기어코 자기만의 괴팍한 언어를 찾아 헤매던 기나긴 여정이 비로소 섬뜩한 결실을 맺은 셈이죠. 극단적인 강약의 롤러코스터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리듬 그리고 악기를 부서지라 닦달하는 잔혹한 기술적 요구. 이 모든 지독한 요소들이 ‘열정’이라는 용광로 안에 빈틈없이 쑤셔 박혀 있습니다. 훗날 슈만과 쇼팽, 그리고 리스트로 요란하게 이어지는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앞날을 이 작품이 일찌감치 스포일러하고 있다는 꽤 그럴싸한 분석도 존재합니다.
이 곡이 처음 세상에 툭 던져졌을 때 콧대 높은 빈의 비평가들이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기록은 유감스럽게도 썩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소나타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거든요. 하늘을 찌르던 베토벤의 명성도 한몫 단단히 했겠지만 무엇보다 이 곡 자체가 연주자들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대는 훌륭한 도발이자 기막힌 증명의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출판되자마자 허무하게 잊히는 곡이 있는가 하면 연주자들이 앞다투어 낚아채서 청중의 귀에 때려 박는 곡이 있죠. 영악하게도 ‘열정’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철저하게 후자였습니다.
이 피 말리는 작품이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유독 약효가 잘 듣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귀에 꽂히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게 되거든요. 고상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까만 건 악보요 하얀 건 종이일지라도 이 선율이 무언가를 향해 미친 듯이 멱살 잡고 내달리고 있다는 직감만큼은 누구나 똑같이 받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그저 지루하고 졸리다는 케묵은 선입견을 단박에 때려 부수기에 이보다 더 확실한 망치는 없죠. 처음부터 욕심내지 말고 1악장만 살짝 맛보는 것도 아주 훌륭한 전략입니다. 25분이라는 전체 시간이 버겁다면 1악장의 그 숨 막히는 10분만으로도 펀치력은 충분하니까요. 일단 그렇게 시작을 끊고 나면 나머지 악장들은 알아서 줄줄이 끌려오기 마련입니다.
강철 같던 혁명가 레닌조차 이 소나타에 푹 빠져 살았다는 기록은 꽤나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집니다. 막심 고리키가 남긴 회고록을 들춰보면, 레닌이 이 곡에 정신을 빼앗긴 채 “이게 예술이라면, 나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는 기막힌 대목이 나오죠. 이 음악이 뿜어내는 마력이 지나치게 강렬한 나머지 차라리 귀를 막아버리는 편이 냉혹한 혁명 활동에 덜 방해가 되겠다고 섬뜩한 고백을 털어놓은 셈입니다. 그게 바로 이 음악이 품은 진짜 맹독입니다. 마냥 고상하고 아름답기보다는 사람의 밑바닥을 사정없이 쥐고 흔들어버리니까요. 200년 전의 낡은 곡 하나가 세상을 뒤엎던 피도 눈물도 없는 혁명가를 그토록 나약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소나타의 악랄한 힘을 가장 완벽하게 증명해 줍니다. 음악이 사람을 정말로 움직인다는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구체적인 증거죠.
이 지독한 곡이 피아니스트들의 피 말리는 등용문으로 자리 잡은 배경도 꽤나 흥미롭습니다. 19세기 유럽 무대에서 어떤 피아니스트가 연주회 포스터에 이 소나타를 떡하니 올려두면, 그건 곧 “이 사람은 베토벤을 다룰 능력이 있다”는 노골적인 과시나 다름없었죠. 그 화려한 프란츠 리스트마저 이 곡을 기꺼이 자신의 레퍼토리 한구석에 모셔두었고, 제자들에게 베토벤을 해석하는 비법을 전수할 때 이 소나타를 교본처럼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 살벌한 전통이 끈질기게 이어져, 지금도 콧대 높은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베토벤 소나타 과제곡으로 이 녀석이 단골로 불려 나오는 겁니다.
여기서 기필코 하나 덧붙이자면, 이 곡의 진짜 공포는 단순히 손가락이 꼬이는 기술적인 장벽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요리하느냐를 빤히 지켜보면, 그 인간이 베토벤이라는 거인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 얄팍한 속내가 낱낱이 까발려지거든요. 어떤 이는 1악장의 그 미친 폭발력을 있는 힘껏 쥐어짜 극적으로 몰아가고, 또 다른 이는 2악장의 그 병적인 섬세함에 현미경을 들이댑니다. 똑같이 인쇄된 악보를 눈앞에 두고도 이토록 기괴하리만치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베토벤이 악보 위에 ‘건반을 어떻게 누를지’ 따위의 친절한 지시문 대신, ‘네 속의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지’라는 지독한 숙제를 첩첩이 숨겨놓았기 때문이죠.
피아노 건반 좀 두드려봤다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피할 수 없이 이 거대한 장벽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처음 악보를 펴면 당장 눈앞에 놓인 기술적 늪부터가 까마득할 지경이죠. 당장 3악장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16분음표 패시지만 봐도 헛웃음이 나오며 손가락이 꼬이기 일쑤니까요. 그런데 이 곡이 연주자의 목을 조르는 진짜 이유는 얄팍한 손가락 기술이 아니라 그 너머의 팽팽한 음악적 상상력입니다. 미친 듯이 속도를 높이면서도 운전대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피아노를 때려 부술 듯 내리치면서도 소리가 깡패처럼 천박해져서는 안 된다는 모순. 그 기막힌 외줄 타기를 기어코 해내라는 게 이 악보의 잔인한 요구입니다. 손가락 기술이야 방구석에서 죽어라 연습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그 아슬아슬한 균형감각만큼은 이 음악의 밑바닥을 뼛속까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 쟁취할 수 없습니다.
무려 25분이라는 기나긴 연주 시간 역시 피아니스트의 진을 빼놓는 지독한 장애물입니다. 피아노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독주 작품치고는 꽤나 숨 막히게 긴 마라톤이거든요. 1악장 첫 음부터 3악장의 마지막 음표가 떨어질 때까지 일정한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한 치도 놓치지 않고 끌고 가야 합니다. 1악장에서 멋모르고 에너지를 모조리 탕진해 버리면 정작 3악장에서는 손가락이 방전되어 허우적대고, 반대로 3악장을 위해 얄밉게 힘을 아끼다 보면 1악장의 서슬 퍼런 칼날이 속절없이 무뎌지고 맙니다. 이 살벌한 에너지 배분 싸움이야말로 이 곡을 정복하기 위한 전체 해석의 알파요 오메가죠. 이름난 거장들의 연주를 뜯어보면, 이 체력 안배의 묘수가 연주자마다 어떻게 기막히게 널뛰는지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꽤 쏠쏠한 분석이 완성됩니다.
추천 녹음
관현악곡과 달리 피아노 소나타 녹음 현장에는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지휘자 따위는 없습니다. 오직 고독한 피아니스트 한 명의 독단적인 판단이 곡의 운명을 모조리 결정지어 버리죠. 똑같이 생긴 흑백 악보를 눈앞에 두고서도 연주자의 손끝에서 얼마나 소름 돋게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오는지 관찰하는 것, 그게 바로 이 곡을 음원별로 골라 듣는 숨은 재미입니다.
에밀 길렐스 (1980, DG)
길렐스의 ‘열정’은 흔히 “교과서”라고 불립니다. 쓸데없는 과장이나 억지로 짜낸 인위적인 드라마 따위는 굳이 찾아볼 수 없거든요. 그저 베토벤이 악보에 적어놓은 것만 고지식할 정도로 정확하게 연주해 내는데, 참 얄궂게도 그 정직함이 이미 충분히 소름 돋게 무섭습니다. 1악장의 널뛰는 강약 대비가 얼마나 극적인지는 길렐스 버전이 가장 잘 보여줍니다. 러시아 거장 특유의 단단하고 선명한 터치가 이 악랄한 곡에 아주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셈이죠.
조성진 (2009 하마마츠 콩쿠르 우승 무대)
조성진이 우승을 거머쥐었던 2009년 하마마츠 콩쿠르 실황을 틀어보면, 십 대의 한국 피아니스트가 그 살벌한 국제 무대에서 이 집요한 곡을 어떻게 포악하게 밀어붙였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악장을 유심히 들어보세요.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대목에서 그저 무작정 건반을 후려치는 대신, 셈여림의 지층을 하나하나 무서울 정도로 또렷하게 쌓아 올립니다. 젊은 피의 맹렬한 추진력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콩쿠르 무대 특유의 핏발 선 긴장감이 선율 사이사이에 고스란히 엉겨 붙어 있습니다.
발렌티나 리시차 (공식 영상)
리시차의 손끝에서 탄생한 열정은 아예 종자가 다릅니다. 한마디로 미친 듯이 빠릅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속도위반이라며 혀를 내두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작정하고 내달리는 3악장의 Presto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 그 막무가내 같은 속도전이 도리어 섬뜩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맹렬하게 건반을 휩쓰는 연주. 이 피 말리는 소나타에 처음 발을 들이는 분이라면, 멱살을 잡고 무자비하게 끌고 가는 이 버전의 에너지가 꽤나 자극적인 입구가 되어줄 겁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혹시라도 이 끔찍한 악보의 실체가 궁금하시다면 원본이 IMSLP에 무료로 널려 있으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악보 보기 (IMS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