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곡명
-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C장조 K.467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 작곡 연도
- 1785년 (완성: 1785년 3월 9일)
- 악장
- 3악장: Allegro maestoso · Andante (F장조) · Allegro vivace assai
- 편성
- 독주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 2, 바순 2, 호른 2(C조), 트럼펫 2(C조), 팀파니, 현악 5부
- 초연
- 1785년 3월 10일, 빈 부르크테아터. 모차르트가 직접 독주 피아노 연주.
완성 16시간 뒤 직접 무대에 오른 협주곡
초연 전날 밤에 완성된 곡
1785년 3월 9일. 모차르트가 마지막 음표를 악보에 올린 날이 초연 전날이었습니다.
하루 뒤 무대에 오를 곡을. 직접 독주자로서 연주할 곡을. 전날 저녁에 완성했습니다.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기 모차르트가 어떤 속도로 작곡하고 있었는지 보면 맥락이 달라집니다. 1785년 2월 10일 K.466 d단조 피아노 협주곡이 완성됐습니다. 2월 17일 K.466 초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20여 일 만인 3월 9일, K.467이 완성됐습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대형 피아노 협주곡 두 편이 연달아 탄생한 겁니다.
이 리듬이 가능했던 건 ‘예약 연주회(Akademie)’라는 사업 모델 때문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출연하는 구독 기반 연주회를 운영했거든요. 지금으로 치면 아티스트가 직접 멤버십 공연 플랫폼을 운영하는 형태입니다. 구독자들은 시즌 시작 전에 돈을 납부하고, 모차르트는 매 공연마다 새 작품을 들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가 남긴 구독자 명단을 보면 최대 174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네요. 귀족, 상인, 음악 애호가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죠.
모차르트는 이 예약 연주회 시스템을 통해 1784년과 1785년에 놀라운 생산성을 보였습니다. 1784년 한 해에만 K.449부터 K.459까지, 피아노 협주곡을 여섯 편 완성했습니다. 협주곡 하나에 보통 세 개의 악장이 있고, 오케스트라 편성에 독주 파트까지 포함하는 대형 작품인데, 두 달에 하나 꼴로 써낸 셈이죠.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릅니다. 174명의 구독자는 새 협주곡을 원하고, 모차르트는 초연 전날까지 악보를 마무리합니다. 이 압박이 K.467 같은 곡을 만들어냈습니다. 전날 완성이라는 사실이 이 협주곡의 품질을 낮추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줍니다.
K.466 d단조가 폭풍 같은 작품이라면, K.467 C장조는 다릅니다. 밝고 행진하듯 나아가는데, 어딘가 내면에 무언가를 꾹 눌러두고 있는 느낌입니다. 특히 2악장이 그렇습니다. C장조 협주곡인데 2악장은 F장조로 이동하고, 현악기가 약음기를 달고 세잇단음표 리듬을 반복합니다. 겉보기엔 단순한 구조인데,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네요.
이 2악장이 나중에 어떤 운명을 맞는지는 뒤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가 이 무대를 직접 봤
1785년 봄,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빈을 방문했습니다. 2월부터 5월까지, 석 달이 넘는 긴 방문이었죠.
레오폴트는 아들의 연주회를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K.466 초연이 있던 2월 17일에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고향 잘츠부르크의 지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오케스트라는 훌륭했고 관객은 열광적이었다.” 아들의 성공을 솔직하게 인정한 드문 기록이죠.
모차르트와 레오폴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았더군요. 어린 시절 레오폴트는 아들을 유럽 전역에 데리고 다니며 신동으로 전시했습니다. 아이가 궁정에서 귀족들 앞에 앉아 연주하고, 레오폴트는 그 옆에서 매니저 겸 아버지로 서 있는 그림이죠. 모차르트는 세 살 때 건반 앞에 앉혔고, 여섯 살 때 뮌헨 궁정에서 첫 공연을 가졌고, 이후 유럽 전역을 몇 년에 걸쳐 투어했습니다.
이 어린 시절의 투어는 대단한 성공이었지만, 어린 모차르트에게는 동시에 고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겨울은 추웠고, 이동은 길었고, 아이는 공연 후 낯선 귀족들의 무릎에 앉혀져 귀엽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거든요. 모차르트가 성인이 되어서 잘츠부르크 이외의 세계를 강하게 원했던 건, 어쩌면 그 유년의 투어가 보여준 다른 세계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관계는 어른이 된 모차르트에게 부담이 됐습니다.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독립한 것도, 레오폴트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한 것도, 그 독립을 향한 몸부림이었죠. 두 사람은 이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긴장은 늘 있었습니다. 레오폴트의 편지에는 충고와 비판이 많았고, 모차르트의 답장에는 변명과 자기 정당화가 섞였거든요.
그런 레오폴트가 1785년 빈에 왔을 때, 아들은 이미 다른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174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연주회를 운영하며, 한 달에 협주곡을 두 편씩 써내는 작곡가. 더 이상 레오폴트가 관리해야 할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레오폴트는 아들의 아파트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편지에 썼습니다.
K.467 초연은 3월 10일이었습니다. 레오폴트는 그 자리에 있었을 겁니다. 아들이 직접 피아노에 앉아, 전날 완성한 협주곡을 초연하는 장면을 아버지가 객석에서 봤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기록에 없죠.
그로부터 6주 뒤, 레오폴트는 잘츠부르크로 돌아갔습니다. 빈에 오기 전 잔소리가 많던 편지들과 달리, 이번 방문 후 편지에서는 아들의 성공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내용이 더 많아졌거든요. 레오폴트는 2년 뒤인 178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785년 봄 빈 방문이 그가 아들과 함께한 마지막 긴 시간이었습니다. K.467은 그 시간을 배경으로 태어난 작품이죠.
K.467을 듣기 전에: 모차르트 협주곡이 왜 특별한가
모차르트 협주곡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협주곡이라는 형식 자체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더군요.
협주곡(concerto)은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형식입니다. 독주자가 오케스트라를 배경 삼아 혼자 활약하는 게 협주곡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차르트의 협주곡은 그렇지 않거든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는 형태입니다. 때로는 피아노가 주도하고 오케스트라가 받아치고, 때로는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끌어가다가 피아노가 그것을 변형합니다. 두 파트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이 형식을 모차르트가 완성했다는 평가가 있네요. 바로크 시대 협주곡(비발디 등)에서는 독주 악기가 전면에 나서고 오케스트라는 주로 반주를 했습니다. 모차르트 이전에도 협주곡 형식이 있었지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대등한 대화 상대로 다루는 형식은 모차르트가 체계화했죠. K.467은 그 형식이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된 협주곡 중 하나입니다.
이 배경을 알고 들어보면, 각 악장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가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K.467은 모차르트가 이 ‘대화 협주곡’ 형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시점의 작품입니다. K.466 d단조가 바로 직전에 나왔고, K.467은 그 d단조 협주곡의 반대편에 있더군요. d단조의 폭풍과 갈등을 쓴 직후, 같은 손이 C장조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썼습니다. 모차르트가 두 극단을 한 달 사이에 모두 다룰 수 있는 작곡가였다는 것을 이 두 협주곡이 함께 보여줍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행진곡인데 이상하게 무겁
C장조 협주곡이니까 밝고 화창하게 시작하겠구나, 예상하고 들으면 살짝 당황합니다.
1악장이 시작되면 현악기가 조용히 행진곡 리듬을 시작합니다. 피치카토(pizzicato, 활 대신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주법) 베이스 위에서 바이올린이 두두두두 두두두두, 규칙적으로 치고 나갑니다. 행진곡인데 밝지 않더군요. 승리의 행진이 아니라 뭔가를 결의하고 나아가는 느낌입니다. 이 첫 8마디가 곡 전체의 분위기를 세팁니다.
거기서 관악기가 팡파르처럼 주제를 선언하고, 이제 활기찬 C장조로 바뀌는가 했더니, 갑자기 G단조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구간이 나옵니다. 이 G단조 통로의 선율이 3년 뒤 쓴 교향곡 40번 K.550의 주제 선율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있네요. K.467이 1785년, K.550이 1788년이니, 모차르트가 이 음형을 의도적으로 재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더군요. 두 곡을 나란히 들어보면 연결고리가 느껴집니다. 교향곡 40번을 알고 있다면 이 구간에서 살짝 반가운 느낌이 들 겁니다. 한 작곡가가 비슷한 음형을 여러 작품에 걸쳐 다르게 발전시키는 방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모차르트 음악을 더 깊이 듣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독주 피아노가 등장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화려하게 뛰어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오케스트라 서주가 끝나고, 피아노가 짧은 ‘Eingang'(카덴차 직전에 나오는 짧은 임시 음형)을 연주한 뒤, G음에서 트릴을 치며 현악기의 행진 주제 위로 조용히 스며듭니다. ‘내가 왔다’가 아니라 ‘나 여기 있었어’ 같은 등장입니다. 이 입장 방식이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예고합니다. 경쟁이 아니라 합류입니다.
피아노가 등장한 뒤 전개 과정도 흥미롭더군요. 피아노는 C장조에서 G장조로 조성을 이동하면서 새로운 주제를 제시합니다. 이 두 번째 주제가 나왔다 싶으면 오케스트라가 G단조로 받아서 다시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이 긴장-이완의 패턴이 발전부를 거쳐 재현부까지 이어집니다. 서주에서 드러난 행진곡 에너지와 단조로의 일탈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1악장 전체를 통해 반복됩니다. 20분 가까운 악장이지만 단조롭지 않은 이유입니다.
소나타 형식으로 전개되고, 1악장 말미에 카덴차가 있네요. 카덴차(cadenza)란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독주자가 혼자 연주하는 즉흥 연주 구간입니다. 독주자의 기량을 직접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고, 작품 전체의 클라이맥스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모차르트가 쓴 카덴차 원본은 소실됐습니다. 현재 연주에서는 클라라 슈만이 쓴 카덴차, 브람스가 쓴 카덴차, 또는 연주자 본인이 쓴 카덴차가 사용됩니다. 연주자에 따라 선택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곡의 다른 녹음을 비교해보면 카덴차 부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부분이 각 연주자의 개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2악장: 1967년 스웨덴 영화가 이 선율에 불을 질렀
1967년에 스웨덴 영화 한 편이 나왔습니다. 감독 보 비데르베리(Bo Widerberg)의 ‘Elvira Madigan’.
줄타기 곡예사 엘비라와 귀족 출신 탈영병 식스텐의 도피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두 사람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비극인데, 영화 전체에 걸쳐 K.467 2악장이 배경음악으로 흘렀습니다. 영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면서 K.467 2악장은 갑자기 전 세계인이 아는 선율이 됐습니다.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별명이 생겼죠.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협주곡 전체가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으로 불렸습니다.
모차르트가 붙인 제목이 아닙니다. 1967년 스웨덴 영화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200년 된 협주곡이 영화 한 편으로 재발견된 겁니다.
2악장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F장조. 현악기 전체가 약음기(뮤트)를 달고 세잇단음표 아르페지오를 조용히 반복합니다. 그 위로 피아노 멜로디가 올라옵니다. 가운데 f단조로 내려갔다가 F장조로 돌아오는 3부 형식(ABA). 교과서 설명으로는 단 세 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들으면 단순하지 않네요. 약음기 낀 현악기의 세잇단음표는 계속 흔들리는 느낌을 줍니다. 실은 매우 규칙적으로 움직이는데, 흔들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규칙적인 흔들림 위에서 피아노 멜로디가 균형을 찾아갑니다. 잠들기 직전 반쯤 꿈속에 든 상태처럼요. 현실인지 꿈인지 경계가 흐릿합니다.
가운데 f단조 구간이 그 경계를 한 번 깨뜨립니다. 피아노가 반음계로 천천히 내려가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갑자기 음악의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F장조가 돌아올 때 그 명료함이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들립니다. 어두운 데 잠깐 갔다 왔기 때문에, 밝음이 더 밝게 들리는 방식입니다.
2악장의 또 다른 특징은 오케스트라 입장에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전체 현악기가 약음기를 달고 반주합니다. 약음기가 없는 상태와 비교하면 음량이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음색 자체가 달라집니다. 유리를 통해 들리는 것처럼요. 이 음색 변화가 피아노 멜로디와 만날 때 독특한 질감이 만들어집니다. 피아노 혼자만 투명하게 들리고, 뒤에서 오케스트라 현악기가 안개처럼 감싸는 느낌입니다.
이 악장이 영화 ‘Elvira Madigan’과 맞아떨어진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 속 두 연인도 현실과 꿈의 경계 위에서 살다 간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영화 감독 비데르베리가 이 악장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면, 2악장은 처음 듣는 사람과 수십 번 들어본 사람이 전혀 다르게 경험하는 악장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에 남습니다. 몇 번 더 들으면 현악기의 세잇단음표 반주가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섬세하게 조율돼 있는지 들리기 시작합니다. 또 몇 번 더 들으면 f단조 구간의 역할이 보입니다. 들을수록 더 많은 게 보이는 악장이죠. 많이 들은 곡인데 지루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3악장: 억눌렸던 C장조의 폭발
2악장이 꿈속이라면, 3악장은 그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입니다.
‘Allegro vivace assai.’ 매우 생동감 있고 빠르게. 론도(rondo) 형식으로 피아노가 C장조 주제를 제시합니다. 론도 형식이란 A-B-A-C-A처럼, 주제가 반복해서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중간에 다른 내용이 나와도 결국 주제로 돌아옵니다. 청중 입장에서는 ‘아, 다시 왔다’는 인식이 생기고, 그것이 음악에 친근감을 줍니다. 모차르트 협주곡에서 3악장이 론도 형식인 경우가 많은 건 이 친근감 효과를 의도했기 때문입니다.
1악장에서 결의하듯 눌려 있던 에너지가 여기서 터져 나옵니다. 같은 C장조인데 1악장과는 전혀 다른 C장조입니다. 1악장이 결의였다면, 3악장은 해방입니다. 1악장 첫 8마디의 그 무거운 행진곡 리듬이 3악장에서는 뛰는 느낌으로 바뀝니다. 같은 조성이지만 무게가 다릅니다.
3악장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더군요. 중간에 론도 주제가 단조로 바뀌는 구간입니다. 장조로 달려가던 리듬이 갑자기 조성을 바꾸며 색깔이 어두워집니다. 짧은 구간이지만 이 대비 때문에 론도 주제가 돌아올 때 C장조가 더 강렬하게 들립니다. 위기 후 귀환처럼요. 이 대비 기법은 모차르트 협주곡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패턴입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는 방식도 이 악장의 특징입니다. 피아노가 선율을 제시하면 오케스트라가 받아서 확장하고, 다시 피아노가 변형해서 돌려줍니다. 당시 협주곡 형식에서는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경쟁하거나, 오케스트라가 단순히 반주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차르트는 그 구조를 바꿔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대등한 파트너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K.467 3악장이 그 대화 구조가 가장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악장으로 꼽히는 이유죠.
3악장 끝으로 갈수록 속도감이 붙습니다. 마지막에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C장조를 강하게 선언하며 곡이 마무리됩니다. 1악장에서 억눌려 있던 C장조의 에너지가 3악장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구조입니다.
모차르트 협주곡의 3악장은 단순한 ‘마무리’가 아닙니다. 1악장에서 제시하고 2악장에서 변형한 정서적 여정을 3악장에서 귀환시키는 역할입니다. K.467에서 그 귀환이 가장 명쾌하게 이루어집니다. 1악장의 무거운 결의, 2악장의 꿈같은 부유, 3악장의 경쾌한 착지. 세 악장이 이 순서로 연결될 때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3악장이 끝나고 나면 1악장을 처음부터 다시 듣고 싶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3악장을 들은 다음에야 1악장의 그 행진곡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이 남긴 것, 그리고 K.467의 오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27개입니다. 그 중 K.467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2악장 하나로 설명됩니다.
2악장 Andante의 선율은 클래식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멜로디 중 하나입니다. 영화 음악으로, CF 배경음악으로, 다큐멘터리 배경으로. 가장 유명한 활용이 1967년 ‘Elvira Madigan’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 선율은 ‘꿈같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필요한 장면마다 소환됐습니다. 200년 이상 된 선율이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쓰인다는 건, 이 멜로디가 시대를 타지 않는 무언가를 건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클래식 입문자에게 K.467이 자주 추천되는 데는 이유가 있네요. K.466 d단조처럼 어둡고 격렬하지 않고, K.488 A장조처럼 완전히 밝고 단순하지도 않거든요. 1악장의 행진곡 에너지, 2악장의 꿈같은 분위기, 3악장의 경쾌한 귀환이 균형을 잡고 있어서, 어떤 감정 상태로 들어도 어딘가에서 걸립니다. 처음 듣는 사람이 “이 중에 2악장이 좋다”고 말하면, 그건 영화 ‘Elvira Madigan’ 덕분에 이미 어딘가서 들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더군요.
이 곡이 피아니스트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더군요. K.467은 독주 피아노 파트가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렵더군요. 특히 1악장에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의 행진 주제를 받아서 확장하는 구간,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대화 구간이 그렇죠. 그런데 그 어려움이 음악 표면에 드러나지 않거든요. 기술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음악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 기술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K.467을 들고 나올 때, 연주자마다 해석이 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해진 답이 없는 곡이기 때문에, 연주자의 해석 공간이 큽니다.
한 가지 더 있네요. 이 곡은 모차르트가 빈에서 가장 성공적이던 시기에 쓴 작품입니다. 1785년, 스물아홉 살. 재정적 어려움이 닥치기 전이었고, 구독 연주회는 성황이었고, 아버지가 그 성공을 직접 확인하러 빈까지 왔습니다. 그 시기의 에너지가 이 협주곡에 담겨 있더군요.
그런데 2악장의 그 흔들리는 현악기 아르페지오는 왜 그렇게 불안정하게 들릴까요. 성공한 사람이 쓴 음악인데, 왜 저렇게 흔들릴까요. 잠들기 직전 같기도 하고, 지금 이 행복이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은 예감 같기도 합니다. 모차르트가 어떤 생각으로 이 악장을 썼는지는 알 수 없더군요. 전날 밤 완성하느라 잠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요.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완벽한 협주곡 형식’을 꼽을 때 K.467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이든이 협주곡 형식을 정립하기 시작했고, 모차르트가 그것을 완성했다는 평가가 있네요.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진정으로 대화하는 형태, 어느 쪽도 단순한 반주로 전락하지 않는 형태. K.467은 그 형식이 가장 자연스럽게 완성된 예 중 하나로 꼽힙니다.
모차르트 이후 베토벤은 협주곡 형식을 더 확장했고, 브람스는 독주 파트와 오케스트라 파트의 긴장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 셈입니다. 그런데 그 확장과 드라마화 과정에서, K.467이 갖고 있던 자연스러운 대화의 균형감은 오히려 드물어졌죠. 모차르트 이후 협주곡은 더 커지고 더 화려해졌지만, K.467 같은 가벼운 균형은 다시 만들기가 쉽지 않았네요.
K.467은 1785년 3월 10일 초연 이후 소실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지금도 세계 각지의 연주회장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됩니다. 27개의 협주곡을 스물아홉에 21번째까지 써낸 사람이 남긴 유산입니다.
모차르트는 K.467을 완성한 지 6년 뒤인 179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다섯 살이었죠. 잘츠부르크 교구는 그에게 묘석도 없는 공동묘지 매장을 허용했습니다. 1785년 봄의 그 성공한 스물아홉 살이 어떤 경로를 거쳐 그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는, K.467 이후에 쓴 곡들을 들어보면 조금씩 알 수 있더군요. K.467은 바로 그 전체 경로의 시작점 부근, 가장 밝고 화창한 자리에 놓여 있네요. K.467이 좋다면, 이 곡을 발판 삼아 K.466 d단조나 K.488 A장조, 나아가 K.503 C장조로 이어지는 협주곡 여정을 충분히 따라가볼 수 있거든요. 모차르트가 남긴 27개의 협주곡은 그의 성장 경로를 거의 그대로 담고 있더군요. K.467은 그 27개 중에서 가장 자주 처음으로 듣게 되는 곡이기도 하고, 가장 오래 되풀이해서 찾게 되는 곡이기도 합니다.

추천 녹음
조성진 / 파리 오케스트라 (2017, DG)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DG와 녹음한 모차르트 협주곡 앨범입니다. 피아노 터치가 맑고 정밀합니다. 2악장에서 약음기 낀 현악기와 피아노 사이의 균형 감각이 특히 돋보입니다. 차갑지 않으면서 감상적이지도 않은 절제된 연주입니다. K.467에 처음 입문하는 분께 자주 추천됩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66, Decca)
아쉬케나지가 전성기였던 1960년대에 Decca에서 녹음한 음반입니다. K.467의 기준 녹음 중 하나로 반세기 이상 인정받아왔습니다. 반세기 전 녹음이지만 음질이 나쁘지 않더군요. 2악장에서 현악기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질감이 지금도 자주 레퍼런스로 언급됩니다.
손열음 /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이브)
손열음이 체코 필하모닉과 협연한 라이브 영상입니다. 기술적 완성도와 악장 간 흐름을 끊지 않는 집중력이 인상적이죠. 3악장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화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한국 피아니스트가 유럽 명문 악단과 이 곡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볼 수 있는 연주입니다.
얀 리시에츠키 / 안드레아 바티스토니 / NPO (2014)
1995년생 캐나다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의 녹음입니다. 데뷔 초반의 신선함과 정확성이 살아있죠. 1악장 카덴차 처리가 개성 있고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의 대화 감각이 살아있네요. 세대가 다른 연주자가 K.467을 어떻게 접근하는지 비교해보기 좋은 녹음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 원본은 IMSLP에 무료로 공개돼 있더군요.
→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K.467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언제 완성됐나요?
1785년 3월 9일에 완성됐습니다. 초연 전날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해에 K.466 d단조 협주곡도 작곡했고, 두 작품이 한 달 사이에 연달아 초연됐습니다. 모차르트가 빈에서 예약 연주회를 운영하며 매번 새 곡을 공급해야 했던 시기의 산물이죠.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이 ‘엘비라 마디간’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967년 스웨덴 영화 ‘Elvira Madigan'(감독 Bo Widerberg)의 배경음악으로 K.467 2악장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이 협주곡 전체가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모차르트가 붙인 제목이 아닌 후대의 별명입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몇 악장인가요?
3악장입니다. 1악장 Allegro maestoso(C장조), 2악장 Andante(F장조), 3악장 Allegro vivace assai(C장조)로 구성됩니다. 전체 연주 시간은 약 28~32분입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처음 듣는다면 어떤 녹음이 좋을까요?
조성진이 파리 오케스트라와 2017년에 DG에서 녹음한 앨범이 자주 추천됩니다. 음색이 맑고 2악장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연주입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1966년 Decca 녹음도 오랫동안 기준 녹음으로 인정받아온 역사적 레퍼런스입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초연은 누가 했나요?
1785년 3월 10일 빈 부르크테아터에서 모차르트 본인이 독주 피아노를 연주하며 초연했습니다. 전날 완성한 곡을 작곡자 본인이 직접 초연 무대에 올린 셈입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1악장 카덴차는 누가 썼나요?
모차르트가 작성한 원본 카덴차는 소실됐습니다. 현재 연주에서는 클라라 슈만이 작성한 카덴차, 브람스가 작성한 카덴차, 또는 각 연주자가 직접 작성한 카덴차가 쓰입니다. 같은 곡의 다른 녹음에서 카덴차가 다른 경우가 많아, 비교해서 듣는 재미가 있네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개 중 21번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악장 Andante의 선율이 영화, 광고, 다큐멘터리 등에 수없이 인용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1967년 영화 ‘Elvira Madigan’ 이후 이 선율의 인지도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구성이 균형 잡혀 있어서 클래식 입문자에게 자주 추천되는 곡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