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작품명
-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 Op.13
- 원제
- Grande sonate pathétique
- 조성
- c단조
- 작품번호
- Op. 13
- 편성
- 피아노 독주
- 악장 구성
- 1악장 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 2악장 Adagio cantabile / 3악장 Rondo: Allegro
- 작곡 연도
- 1798–1799년
- 출판 연도
- 1799년
- 헌정
- 카를 폰 리히노프스키 공작
- 연주 시간
- 약 17–20분
이 곡의 제목은 베토벤이 붙인 게 아닙니다. 출판사 사장이 붙였습니다.
1799년 빈의 한 악보 출판사. 원고를 받아 든 편집자가 이 소나타를 보고 한 단어를 골랐습니다. ‘Pathétique’라는 프랑스어였습니다. ‘비창(悲愴)’, 즉 슬프고 비통하다는 뜻이더군요. 베토벤이 이 제목을 직접 선택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딱히 이의를 달지 않았죠. 뭔가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원제는 ‘Grande sonate pathétique’이었습니다. ‘위대한 비창 소나타’라는 뜻이네요. 출판사가 붙인 이 이름은 광고 카피처럼 정확하게 작동했더군요. 이 소나타는 실제로 크고, 실제로 슬프며, 실제로 위대합니다. 틀림없는 제목이에요. 편집자의 직관이 맞았거든요.
솔직히 말해봅시다. 비창 소나타는 누구나 아는 곡이더군요. 그런데 이 곡을 만든 베토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왜 하필 이 곡이 200년이 지나도 피아노를 배우는 모든 사람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더군요. 그걸 지금부터 이야기하려 합니다.
스물여덟 살 베토벤, 빈에서 세상을 향해 내지른 주먹
1798년, 베토벤은 빈에 온 지 6년째였습니다.
그가 고향 본(Bonn)을 떠나 빈으로 온 건 1792년이었습니다. 당시 22세. 하이든에게 배우겠다는 야망을 품고 왔죠. 하이든 밑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더군요. 베토벤은 독립적이었고, 때로는 오만했거든요. 하이든은 그를 능력 있는 제자로 인정하면서도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빈에서의 베토벤은 빠르게 이름을 쌓고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즉흥연주로 살롱을 장악했고, 귀족들의 후원도 들어왔죠. 피아노 소나타 8번을 헌정받은 카를 폰 리히노프스키 공작도 그중 한 명이었죠. 리히노프스키는 베토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용돈을 주었으며, 자신의 저택 연주회에 베토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무렵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1793년부터 1799년 사이에 소나타를 열두 편 남겼으니까요. 그중에서도 8번, 즉 ‘비창’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이전 소나타들보다 훨씬 어두웠고, 규모도 컸으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네요.
피아노 소나타 번호에 대해 하나 짚고 넘어갈게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32번까지 있네요. 8번은 비창, 14번은 월광, 17번은 폭풍, 21번은 발트슈타인, 23번은 열정, 26번은 고별, 29번은 함머클라비어라는 부제가 붙어 있더군요. 이 중에서 일반 대중에게 가장 먼저 알려지는 게 비창과 월광입니다. 두 곡 모두 도입부가 강렬해서 처음 듣는 사람도 바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하나 알아두면 좋은 게 있네요. 당시 피아노 소나타는 교육용이거나 살롱에서 가볍게 즐기는 장르로 여겨졌습니다. 베토벤의 스승 하이든도 소나타를 주로 귀족 연주회용 소품으로 썼죠. 모차르트 역시 소나타를 거리낌 없이 쓰긴 했지만, 교향곡이나 협주곡만큼 묵직하게 다루지는 않았더군요. 소나타는 그냥 거실 음악이었습니다.
베토벤은 그 틀을 깼습니다. 비창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도 교향곡만큼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다는 선언인 셈이네요. 길이도 길어졌고, 구성도 복잡해졌으며, 감정의 스펙트럼도 확장됐습니다. 단순히 기교를 보여주는 곡이 아니라, 뭔가를 말하려는 곡이었습니다.
그 무게를 베토벤은 어디서 가져왔을까요? 1798년의 베토벤 개인 사정을 보면 조금 납득이 됩니다. 이 무렵 그는 이미 귀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네요.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음악가에게 청력 문제는 치명적이니까요. 그 불안을 음악 안에 가두고, 폭발시켰다고 보는 시각이 있더군요.
그 선언을 베토벤은 첫 음에서부터 내질렀습니다. 그라베 서주의 첫 화음은 오랫동안 연주해온 피아니스트들도 매번 다르게 접근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첫 순간을 표현하느냐가 연주 전체의 성격을 정합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서주가 돌아온다는 것의 의미
피아노를 처음 누르는 순간부터 이상합니다.

‘그라베(Grave)’, 그러니까 ‘무겁고 엄숙하게’라고 표기된 서주가 먼저 나옵니다. 저음의 화음이 쿵 하고 내려앉습니다. 긴 음표들이 천천히, 무겁게 진행되죠. 마치 궁정의 문이 열리기 전 울리는 종소리 같습니다. 이 서주 자체가 이미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빠른 알레그로로 전환됩니다. 1악장 본체가 시작되는 거죠.
여기서부터가 특이합니다. 소나타 형식(하나의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키고, 다시 돌아오는 구조)이라는 틀 안에서 베토벤은 규칙을 하나 어겼습니다. 발전부가 끝나고 재현부로 넘어가기 직전, 그 느리고 무거운 서주가 다시 나타나는 겁니다.
당시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서주는 그냥 도입부였습니다. 한 번 나오면 끝이었죠. 그런데 베토벤은 이 서주를 악장 중간에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마치 한 번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는 것처럼요.
그 서주가 두 번째로 등장하는 순간, 뭔가 달라진 느낌이 납니다. 처음 들을 때는 그냥 무거운 시작이었는데, 이 위치에서 다시 들으면 다릅니다. 조금 지쳐 보이기도 하고, 조금 더 슬퍼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음악인데 맥락이 바뀌면 의미도 바뀝니다.
1악장을 끝까지 들으면 그 서주가 세 번 등장합니다. 시작, 발전부 끝, 그리고 코다 직전. 처음에는 선언처럼 들리던 것이, 두 번째는 경고처럼 들리고, 세 번째는 작별처럼 들립니다. 같은 선율이 반복될수록 의미가 깊어지는 이 구조, 베토벤은 이걸 27세 때 썼습니다.
1악장 알레그로 본체에서도 베토벤의 체스 두는 방식이 보입니다. 주제를 두 개 제시하는데, 첫 번째 주제는 공격적이고 빠릅니다. 로켓처럼 두 옥타브를 치고 올라가면서, 왼손은 떨리는 옥타브(트레몰로)로 바닥을 받쳐줍니다. 그러다 두 번째 주제에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더 서정적이고 조금 더 내면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더군요. 이 두 주제의 대비가 1악장 전체를 이끄는 엔진입니다.
당시 피아노의 음역과 음색이 지금과 달랐다는 것도 감안하면 더 흥미롭더군요. 1800년대 초 포르테피아노는 지금의 그랜드 피아노보다 음이 훨씬 가볍고 잔향이 짧았습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쓸 때 상상한 소리와 지금 우리가 듣는 소리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이 1악장은 어떤 악기에서도 힘을 잃지 않더군요. 구조 자체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2악장: 200년을 살아남은 멜로디
2악장은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1악장이 끝난 뒤, 조성이 c단조에서 내림가장조(A♭장조)로 바뀝니다. 온도가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아다지오 칸타빌레(Adagio cantabile)’, 즉 ‘노래하듯 느리게’라고 쓰인 지시어대로, 2악장은 피아노 오른손이 아주 천천히, 노래처럼 선율을 펼칩니다. 왼손은 그 아래에서 리듬감 있게 반주를 놓습니다. 처음 몇 소절만 들어도 “아, 이 곡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만큼 귀에 익은 선율이네요.
이 선율이 얼마나 유명해졌냐면, 현대 팝 음악에서 수도 없이 샘플링됐습니다. 팝 가수들이 이 선율 위에 노래를 얹었고, 광고 음악으로도 쓰였죠.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영국 가수 브라이언 애덤스의 발라드가 이 선율과 유사한 구조를 띤다는 점, 그리고 여러 게임 OST에서 이 구조를 차용했다는 점입니다.
이 악장을 처음 듣는 사람도 어딘가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더군요. 착각이 아닙니다. 이 선율은 200년 넘게 팝, 광고, 영화 음악이 직간접으로 차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2악장에서 주목할 순간이 하나 있네요. 선율이 한 차례 어두운 조성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는 중간 부분이더군요. 그 짧은 전환 이후 처음 선율이 다시 돌아올 때, 같은 음인데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뭔가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먼 곳에서 오는 것처럼요. 이게 바로 베토벤이 설계한 감정의 흐름입니다. 말없이 전달합니다.
2악장의 구조는 A-B-A 형식, 즉 처음 선율이 나오고, 중간에 대조적인 부분이 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형식입니다. 이 형식 자체는 특별하지 않네요. 그런데 베토벤의 처리가 특별합니다. 처음 A 부분이 돌아올 때, 선율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고 조금 더 장식을 넣어서 돌려보냅니다. 처음보다 더 풍성해진 채로 돌아옵니다.
처음 들을 때 몰랐던 걸, 한 번 경험하고 돌아온 뒤에는 알게 되는 것처럼요. 선율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입니다. 베토벤이 이 단순한 형식 안에 넣어둔 감정의 여정입니다.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이 악장을 혼자 연주해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더군요. “처음엔 쉬워 보였는데, 실제로 쳐보니 전혀 쉽지 않다”고요. 기술적으로 어렵다기보다, 이 선율을 ‘노래처럼’ 만드는 게 어렵더군요. 음표를 치는 것과 노래하는 것은 다릅니다. 2악장은 피아노로 노래하는 법을 배우는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3악장: 조용하지만 끝까지 달리는 선율
3악장은 론도(Rondo) 형식입니다. 론도는 주제가 여러 번 돌아오는 구조인데, 쉽게 말하면 ‘주제-에피소드-주제-에피소드-주제’로 이어지는 순환 형식입니다.
이 3악장의 첫 주제는 상당히 담담합니다. 1악장의 무게도 아니고, 2악장의 서정도 아닙니다. 그냥 계속 앞으로 달립니다. 방향이 뚜렷하고, 멈추지 않더군요.
그런데 듣다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네요. 이 3악장의 주제가 2악장 선율과 닮아 있다는 겁니다. 정확히 같은 건 아니지만, 리듬 패턴과 선율 윤곽이 비슷합니다. 베토벤이 의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음악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3악장이 끝날 때, 소나타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연결된 느낌이 납니다.
3악장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게 있더군요. 에피소드 부분들입니다. 주제가 돌아오는 사이사이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집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조금 더 어두운 반음 진행을 씁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더 서정적으로 기웁니다. 그러다 주제가 다시 돌아올 때마다, 같은 선율인데도 앞선 에피소드를 통과하고 왔기 때문에 약간 다른 빛깔로 들립니다. 1악장 서주가 반복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베토벤은 이 기법을 소나타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씁니다.
3악장은 조용하게 끝납니다. 마지막 화음이 사라지고 나면, 뭔가 길게 달려온 느낌이 납니다. 1악장의 폭발, 2악장의 노래, 3악장의 묵묵한 진행. 이 세 가지를 다 겪고 나면, 비창 소나타가 단순히 슬픈 곡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소나타에는 슬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차분함이 있네요.
3악장을 들으며 베토벤이 이 곡을 완성한 직후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할 때가 있더군요. 스물여덟 살. 귀가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 세 악장짜리 소나타를 써서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제목은 출판사가 붙였습니다. 비창이라고요. 베토벤은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뭔가를 느꼈을 겁니다. “맞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네요.
3악장은 마무리이지만 포기처럼 들리지 않네요. 계속 앞으로 움직이고, 방향을 잃지 않더군요. 그게 이 소나타 전체의 성격이기도 합니다. 비창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은 쓰러지지 않네요.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더군요. 그 균형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을 살아있게 합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이 3악장을 연습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하나 있더군요. 론도의 주제가 돌아올 때마다 기계적으로 치기 쉽다는 겁니다. 처음 나왔을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사이에 뭔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게 뭔지 파악하기 어렵네요. 베토벤이 에피소드를 통해 주제를 조금씩 다른 빛 아래 보여주려 했다는 걸 이해하고 나면, 연주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 3악장을 제대로 치려면 먼저 이 곡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곡이 특별한 이유: 베토벤이 스물여덟 살에 남긴 것
비창 소나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네요.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하던 무렵 이미 청력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한 건 1798년 무렵부터였습니다. 비창 소나타를 작곡하던 바로 그 시기였죠. 물론 그 당시엔 완전히 들리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아직 공연도 하고 있었고, 빈 살롱에서 즉흥연주로 청중을 압도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걸.
당시 베토벤은 의사에게 이 문제를 털어놓기 시작했고, 의사는 빈 외곽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1802년에 베토벤은 그곳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유서를 썼습니다. 동생들에게 쓴 이 편지에서 베토벤은 이렇게 썼습니다. “6년 전부터 나는 불치의 병에 걸려 있다. 어리석은 의사들에게 기만당했고, 해마다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결국 영원한 장애에 직면해야 할 것 같다.” 그 유서를 쓰기 4년 전, 비창 소나타가 나왔습니다.
이 유서는 베토벤이 살아있는 동안 발표되지 않았더군요. 그가 죽은 뒤 1827년에 발견됐죠. 베토벤은 유서를 쓴 뒤 실제로 죽지 않았네요. 오히려 그 이후 작품들이 더 강렬해졌거든요. 교향곡 3번 ‘영웅’, 교향곡 5번, 피아노 소나타 ‘열정’. 이 곡들이 모두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이후에 나왔습니다. 비창은 그 전야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창이라는 제목은 우연히 붙은 게 아닌지도 모릅니다. 베토벤이 굳이 반대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비창 소나타를 들으면, 생각보다 처절하지가 않네요. 1악장이 무겁긴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더군요. 2악장은 슬픔보다 아름다움이 앞섭니다. 3악장은 아예 계속 앞으로 달립니다. 베토벤이 이 시기에 처했던 상황과 음악이 묘하게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게 오히려 이 작품의 핵심일 수 있더군요. 베토벤은 비참하게 쓰지 않았더군요. 저항처럼 썼죠.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음악으로 세상에 대고 뭔가를 주장하고 있네요. 그 주장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겠지만, 이 곡이 의지를 가진 음악이라는 건 누구나 느낍니다.
비창 소나타가 나온 1799년은 베토벤의 초기 빈 시절입니다. 아직 ‘영웅 교향곡’도, ‘열정 소나타’도 나오기 전입니다. 그런데도 이 소나타는 후기 베토벤과 연결되는 면을 이미 가지고 있더군요. 감정을 내지르는 게 아니라 구조 안에 담아내는 방식, 서주가 반복되는 아이디어, 악장들이 서로 선율을 공유하는 설계. 이런 것들이 나중에 만들어질 교향곡과 후기 소나타들의 밑그림이 됩니다. 이 곡을 들으면, 베토벤이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갔는지의 시작점이 보입니다.
왜 지금도 중요한가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곡입니다. 콩쿠르 레퍼토리에도 자주 등장하고, 음대 입시 곡 목록에도 들어갑니다. 그게 이 곡이 중요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이 곡이 먼저 중요해진 뒤에, 교육 커리큘럼에 들어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중요해졌을까요?
한 가지는 이 곡이 가진 접근성입니다. 2악장은 처음 듣는 사람도 금방 따라갑니다. 선율이 직접적이고, 박자가 명확하며, 길이도 짧더군요. 클래식 음악 입문자에게 “이 한 곡만 들어봐”라고 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나타입니다.
또 하나는 이 곡이 가진 구조적 통일감이에요. 3악장 소나타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가 쉽지 않네요. 악장 사이의 연결이 끊기기 쉽죠. 그런데 비창은 1악장의 서주가 반복되는 구조, 2악장과 3악장의 선율 유사성 덕분에 전체가 하나처럼 들립니다. 베토벤이 20대에 이 설계를 해냈다는 점이 놀랍더군요.
현대 팝컬처에서도 이 곡의 흔적은 진합니다. 여러 TV 드라마와 영화가 감정의 전환점에서 이 곡을 썼습니다. 특히 2악장은 “누군가 떠나는 장면”이나 “긴 이별 앞에서 말이 없어지는 순간”에 어울린다는 이유로 자주 선택됩니다. 200년 전 곡이 지금도 편집자의 감각에서 통한다는 건, 이 음악이 시간을 이기는 무언가를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사람도, 콘서트홀에 가본 적 없는 사람도, 비창 소나타 2악장은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가능성이 높더군요. 그 선율이 낯설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이미 이 음악이 당신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네요.
이 곡이 지금도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베토벤 음악 전체를 이해하는 입문점으로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의 초기-중기-후기를 연결하는 흐름을 공부하고 싶다면, 비창 소나타가 좋은 출발점이죠. 이 곡에서 이미 베토벤의 언어가 시작됩니다.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 대비와 반복을 쓰는 방식, 서주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나중에 베토벤이 교향곡 5번이나 9번에서 보여주는 것들의 씨앗이 여기에 있네요.
클래식 음악이 처음인 사람에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어떤 순서로 들으면 좋을지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비창을 초반에 놓습니다. 너무 어렵지도, 너무 단순하지도 않기 때문이죠. 2악장은 입문자도 바로 들어올 수 있고, 1악장은 조금 더 집중해서 들을 때 구조가 보입니다. 3악장은 전체를 이해했을 때 비로소 제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 소나타는 세 번 이상 들어야 합니다. 처음과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다르게 들리는 곡입니다.
비창 소나타는 베토벤이 25년 후에 쓴 후기 소나타들과도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 소나타 32번(Op.111)의 1악장 서주가 비창의 그라베 서주와 같은 정신을 공유한다고 보는 분석도 있더군요. 둘 다 묵직하게 시작해서,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다가, 조용해집니다. 베토벤은 자신이 확립한 언어를 평생 발전시켰고, 그 언어의 초기 문법이 비창에 들어 있네요.
비창 소나타와 베토벤의 자리: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베토벤은 흔히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다리라고 불립니다. 하이든, 모차르트로 이어진 고전주의의 완성자이면서,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로 이어질 낭만주의의 문을 연 사람이라는 거죠.
비창 소나타는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더군요. 형식은 고전주의입니다. 소나타 형식, 론도 형식, 악장의 조성 관계. 이 모든 게 하이든이 확립한 틀 안에 있네요. 그런데 내용이 다릅니다. 1악장의 그라베 서주, 그게 다시 돌아오는 구조, 2악장의 노래 같은 선율. 이건 교과서에서 배운 규칙을 따르면서도, 그 규칙 너머에 있는 뭔가를 향해 나아갑니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이 곡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쇼팽은 베토벤 소나타들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소나타에 그 영향이 보입니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Op.35, ‘장송 행진곡’)의 어두운 서주와 비창의 그라베를 나란히 들으면 연결선이 보입니다. 물론 쇼팽이 의도한 오마주라는 증거는 없지만, 적어도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죠.
리스트는 베토벤의 소나타들을 콘서트에서 직접 연주했고, 이 곡들을 대중 앞에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19세기 중반, 피아노 소나타가 살롱 음악에서 콘서트홀 음악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비창 소나타는 표준 레퍼토리가 됩니다. 그 이동을 가능하게 한 건 이 곡이 가진 극적 완결성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두는 힘이 있더군요.
지금 우리가 클래식 콘서트에서 피아노 독주 리사이틀을 당연하게 보는 문화, 그 문화의 뿌리 중 하나가 베토벤 소나타입니다. 그리고 비창은 그 뿌리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이고요. 200년 넘게 살롱에서, 무대에서, 연습실에서, 그리고 지금은 유튜브에서. 이 곡은 계속 울립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네요. 비창 소나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악보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곡 중 하나라고 합니다. 초급자도 2악장을 연습하고, 중급자도 1악장을 공부합니다. 고수들도 이 곡을 계속 연주합니다. 에밀 길렐스나 바렌보임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경력의 정점에서도 이 곡을 무대에 올린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한 곡이 이렇게 넓은 수준의 연주자들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게 이 소나타가 가진 특별한 성질입니다. 쉬운 듯 보이지만, 들어가면 깊더군요.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더 흥미롭거든요.
추천 녹음
비창 소나타는 피아니스트 개인의 해석이 굉장히 크게 드러나는 곡입니다. 같은 악보인데,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특히 1악장 서주 처리 방식이 다르고, 2악장의 템포와 감정 밀도가 다릅니다. 아래 세 가지는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진 대표적인 녹음입니다.

에밀 길렐스 (Emil Gilels, 1980년대 녹음)
길렐스는 소련 출신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소나타 해석의 표준으로 꼽힙니다. 1악장 서주에서 그가 내는 무게감은 다른 연주자들과 다릅니다. 느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더군요. 2악장은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표정만 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길렐스는 1985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남겨진 녹음들은 지금도 기준점으로 쓰입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Vladimir Ashkenazy, Decca 베토벤 소나타 전집)
아쉬케나지의 비창은 유연합니다. 1악장 알레그로가 다른 연주자들보다 좀 더 가볍게 달리는 느낌이고, 2악장은 노래에 더 가깝습니다. 처음 이 곡을 접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기 좋은 녹음입니다. 진입 장벽이 낮고, 듣기 편합니다. 그러면서도 3악장의 집중력은 잃지 않더군요. 아쉬케나지는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두 번 녹음했는데, 두 번 모두 완성도가 높죠.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DW Classical Music 공식 채널)
바렌보임은 이 곡을 꽤 오랫동안 연주하고 가르쳐온 피아니스트입니다. 그의 연주에는 거의 강의 같은 면이 있네요. 각 악절이 왜 이 방향으로 가는지가 들립니다. 음악을 분석하는 귀를 가진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1악장 서주의 처리 방식이 독특합니다. 바렌보임은 비창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이 곡에 대한 강의 영상도 여럿 남긴 셈입니다. 악보와 함께 구조를 설명하는 영상을 찾아보면, 이 곡이 더 입체적으로 들립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피아노 악보를 보면서 감상하면 베토벤이 어느 순간에 화음을 바꾸는지, 왼손이 어떤 리듬 패턴을 유지하는지가 시각적으로 보입니다. 악보를 따라가며 들으시면 특히 1악장 서주의 재등장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바로 파악하게 됩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악보 보기 (IMSL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