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세 소나타
- 8번 ‘비창’ Op.13 (1798)
14번 ‘월광’ Op.27 No.2 (1801)
23번 ‘열정’ Op.57 (1804~05) - 별명을 붙인 사람
- 비창 = 베토벤 본인
월광 = 시인 렐슈타프 (사후 1832)
열정 = 함부르크 출판사 (사후 1838) - 공통점
- 모두 단조, 어두운 기조, 형식 실험
- 입문 추천 순서
- 월광 1악장 → 비창 2악장 → 열정 1악장
- 전체 연주 시간
- 세 곡 합쳐 약 55분
베토벤의 최고작은, 사실 이 셋이 아닙니다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세 곡이 있습니다. 비창, 월광, 열정. 베토벤이 남긴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고, 가장 많이 검색되고, 음반 가게에서도 가장 먼저 팔려 나가는 세 곡이지요. 흔히 ‘베토벤 3대 피아노 소나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비밀을 먼저 깨고 시작하겠습니다. 피아니스트와 평론가들에게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정점이 어디냐”고 물으면, 의외로 이 세 곡을 첫손에 꼽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거의 언제나 후기예요. 29번 ‘함머클라비어’ Op.106, 그리고 마지막 32번 Op.111.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베토벤이 도달한, 거의 다른 세계의 음악이거든요.
그러니까 ‘3대 소나타’는 베토벤의 가장 위대한 세 곡이라기보다, 가장 사랑받는 세 곡에 가깝습니다. 셋 다 서른넷 이전의 작품이고요.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후기의 깊은 소나타가 아니라 이 세 곡을 먼저 떠올릴까요. 답은 셋이 공통으로 가진 것에 있습니다. 귀에 박히는 별명, 한 곡 안에 응축된 드라마, 그리고 “나도 언젠가 쳐 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적당한 손맛이지요.
실제로 이 세 곡은 음악의 울타리를 일찌감치 넘어갔습니다. 비창 2악장은 광고와 팝송으로, 월광 1악장은 영화와 휴대폰 벨소리로, 열정은 콩쿠르 무대의 단골 결선곡으로 말이지요. 클래식을 한 곡도 모른다는 사람조차 이 셋 중 하나쯤은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좋은 별명은 그 자체로 곡의 생존 장치라는 점이에요. ‘비창’, ‘월광’, ‘열정’ 같은 짧은 이름은 사람들 입에 쉽게 오르내리고,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습니다. 반면 베토벤이 진짜 마지막 힘을 쏟은 후기 소나타들에는 그런 이름이 없지요. ‘Op.111’을 흥얼거리며 친구에게 권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음악의 깊이와 대중의 기억이 늘 같은 방향을 보지는 않는다는 것, 3대 소나타는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세 곡이 어떻게 그런 자리에 올랐는지, 비창에서 열정까지 단 7년 사이에 베토벤이 어떻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를 따라갑니다.

비창 — 스물일곱의 베토벤이 직접 붙인 이름
세 곡 중 가장 먼저 태어난 비창부터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곡에는 다른 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비창(悲愴)’이라는 이름을 베토벤이 직접 붙였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히는 출판 당시부터 악보 표지에 ‘대(大) 비창 소나타(Grande Sonate pathétique)’라고 박혀 있었어요. 32곡 가운데 작곡가 본인이 별명을 새긴 거의 유일한 소나타입니다.
한 가지 오해부터 풀고 가지요. ‘pathétique’를 ‘슬픈’으로 옮기면 절반만 맞습니다. 이 단어는 ‘비장한’, ‘격정에 찬’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비창은 눈물을 흘리는 음악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가슴을 펴는 음악입니다. 곡을 들어 보면 압니다. 1악장 첫머리의 그 무겁고 단호한 화음이, 슬픔이라기보다 포효에 가깝다는 걸 말이지요. 스물일곱의 청년이 빈 음악계에 “나 여기 있다”고 외친 명함 같은 곡이었습니다.

베토벤이 부순 첫 번째 규칙
비창이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건 별명만이 아니었습니다. 1악장은 느릿하고 비장한 서주(Grave)로 문을 여는데, 보통의 소나타라면 이 서주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도입부였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이 서주를 곡 한가운데로, 그리고 마지막 직전으로 다시 불러옵니다. 빠른 본문이 한창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고 그 무거운 서주가 유령처럼 되돌아오는 순간, 듣는 사람은 등골이 서늘해지지요. 27세의 베토벤이 “도입부는 한 번만 쓴다”는 관습에 처음으로 칼을 댄 자리입니다.
화성도 당돌했습니다. 첫 화음부터 당시 귀에는 충격적이던 감7화음을 내리꽂고, 조성을 불안하게 흔들며 긴장을 끌고 갑니다. 비평가들은 “너무 거칠다”고 했지만, 바로 그 거칢이 젊은 청중을 사로잡았어요. 비창은 출판되자마자 베토벤의 이름을 빈 너머로 퍼뜨린 첫 히트작이 되었습니다.
세 악장, 그리고 빌리 조엘
1악장 그라베–알레그로 디 몰토가 그렇게 비장하게 몰아친다면,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는 정반대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한 번도 안 들어 본 사람이 드물 정도예요. 느리고 노래하듯 흐르는 이 선율은 광고와 영화에 수없이 쓰였고, 팝의 영역까지 건너갔습니다. 빌리 조엘이 1983년 발표한 ‘This Night’의 후렴이 바로 이 2악장 선율을 그대로 빌려 온 것이거든요. 200년 전 빈의 비장한 노래가 1980년대 뉴욕의 팝송으로 되살아난 거예요. 3악장 론도는 다시 분주하게 마음을 흔들며 곡을 닫습니다.
비창은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됐습니다. 빈에서 베토벤을 후원하던 귀족이었지요. 다만 둘의 사이가 늘 좋았던 건 아닙니다. 몇 년 뒤 베토벤은 이 후원자와 크게 다투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공작, 당신이 지금의 당신인 건 우연한 출생 덕이지만,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소.” 귀족의 후원에 기대 살던 음악가가 이런 말을 내뱉던 시대가 막 저물고 있었습니다. 비창은 그 변화의 문턱에서 태어난 곡이기도 합니다.

월광 — 달빛은 베토벤이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두 번째 곡, 월광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통념을 깨야겠네요. 많은 분이 ‘월광’을 베토벤이 어느 달밤에 영감을 받아 붙인 제목으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베토벤이 악보에 적은 제목은 전혀 다른 말이었거든요. ‘환상곡풍 소나타(Sonata quasi una fantasia)’.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은 자유로운 곡이라는 뜻입니다.
‘월광’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지난 1832년에 붙었습니다. 독일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이 곡 1악장을 두고 “루체른 호수 위에 비친 달빛 같다”고 적었는데, 그 비유가 너무 근사해서 별명으로 굳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월광’이라 부를 때마다, 우리는 베토벤이 아니라 어느 평론가의 상상을 부르고 있는 셈입니다.

베토벤이 부순 두 번째 규칙
월광 역시 형식의 관습을 정면으로 거슬렀습니다. 당시 소나타는 빠르고 활기찬 1악장으로 시작하는 게 거의 법이었는데, 베토벤은 가장 느린 악장을 맨 앞에 놓았습니다. 그 유명한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예요. 끝없이 이어지는 세잇단음 위로 선율이 가만히 떠오르는, 듣는 순간 마음이 가라앉는 그 음악 말이지요. ‘환상곡풍’이라는 부제는 바로 이 파격을 미리 일러두려는 베토벤의 양해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곡은 베토벤의 제자였던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헌정됐습니다. 당시 갓 스물을 앞둔 젊은 백작 영애였고, 서른을 넘긴 베토벤은 그녀에게 마음을 두었던 듯합니다. 신분의 벽 탓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지요. 그래서 월광 1악장의 고요한 슬픔을 이 짝사랑과 엮어 읽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만 그건 후대의 낭만적 덧칠에 가깝고, 정작 곡을 쓰던 무렵 베토벤의 편지에는 다른 여성의 이름이 더 자주 등장하더군요. 음악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실제 인생보다 더 그럴듯하게 남은 경우입니다.
1악장만 아는 당신이 놓친 것
월광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따로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1악장만 알고 곡이 끝났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베토벤이 진짜 공을 들인 자리는 마지막 3악장, 프레스토 아지타토입니다. 1악장의 고요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손가락이 건반 위를 폭풍처럼 내달리는 격렬한 음악이 터져 나오거든요. 리스트는 2악장 알레그레토를 두고 “두 심연 사이에 핀 한 송이 꽃”이라 불렀습니다. 고요한 1악장과 사나운 3악장, 그 두 심연 사이 말이지요. 1악장에서 멈춘 사람은 이 드라마의 절반밖에 듣지 못한 것입니다.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는 이 곡을 두고 “밤의 정경”이라 풀이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떠올리는 ‘달빛’의 이미지가 어쩌면 스승 곁에서 곡을 익힌 제자에게서부터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재미있게도 정작 베토벤은 이 곡이 누리는 인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는 분명 이보다 더 나은 곡들을 썼는데” 하고 투덜거렸다는 이야기가 체르니를 거쳐 전해지거든요. 만든 사람의 자평과 세상의 사랑이 어긋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모양입니다. 아래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세 악장을 모두 연주한 영상입니다. 1악장의 그 달빛이 어떻게 마지막 폭풍으로 번져 가는지, 끝까지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열정 — 하일리겐슈타트의 절망 다음에 온 폭발
세 번째 곡 열정은, 별명의 출처로 보면 비창과 정반대 자리에 있습니다. ‘Appassionata’라는 이름은 베토벤과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38년, 함부르크의 한 출판사가 곡의 격렬함을 따 붙인 상표 같은 이름입니다. 베토벤에게 이 곡은 그저 ‘Op.57’이었습니다.
이름은 빌려 온 것이지만, 음악만큼은 별명에 한 치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열정은 셋 중 가장 격렬하고, 가장 어렵고, 감정의 진폭이 가장 넓은 곡이에요. 가장 여린 ppp에서 가장 사나운 fff까지, 같은 피아노가 낼 수 있는 양극단을 한 곡 안에 다 욱여넣었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곡이 태어난 시기를 봐야 합니다.

유서에서 영웅으로
1802년, 서른두 살의 베토벤은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씁니다. 귀가 점점 멀어 간다는 사실을 견디다 못해 죽음까지 떠올린, 절망의 기록이었어요. 그런데 베토벤은 그 절망에서 스스로 걸어 나옵니다. “예술이 나를 붙잡았다”고 적으면서요. 그 직후 시작된 시기를 우리는 ‘영웅적 중기’라 부릅니다. 교향곡 3번 ‘영웅’이 여기서 나왔고, 열정 소나타도 바로 이 한복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열정을 단순한 ‘격정의 음악’으로만 듣는 건 아쉽습니다. 이 곡의 사나움은 분풀이가 아니라 응전이거든요. 운명에 멱살을 잡힌 사람이 도리어 운명의 멱살을 되잡는 소리에 가깝습니다. 제가 세 곡 중 하나만 제대로 듣겠다는 분께 늘 열정을 권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비창의 비장함도, 월광의 고백도 결국 여기, 절망을 딛고 선 이 폭발 안에 다 들어 있다고 느끼거든요.
레닌이 두려워한 음악
열정에 얽힌 일화 하나가 이 곡의 힘을 잘 보여 줍니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이 곡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열정보다 위대한 음악을 알지 못한다. 매일이라도 듣고 싶다. 하지만 자주 들을 수는 없다. 신경을 건드리니까. 이런 다정한 말을 하고 싶어지고,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거든. 그런데 지금은 누구의 머리도 쓰다듬어선 안 되는 때다.” 한 곡의 음악이 혁명가의 결심마저 무르게 만들까 두렵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열정이 가진 설득의 힘이 그만큼 깊었다는 뜻이지요.
쉼 없이 몰아치는 세 악장
1악장 알레그로 아사이는 조용히 웅크렸다가 폭발하기를 반복하며 긴장을 끌고 갑니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는 변주곡인데, 셋 중 유일하게 마음을 내려놓는 평온한 자리예요. 그런데 이 평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2악장 끝의 한 화음이 그대로 3악장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가 쉴 틈 없이 휘몰아치기 시작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베토벤은 더 빠르게(Presto) 가속 페달을 밟아 곡을 절벽 아래로 내던집니다. 끝까지 듣고 나면 손에 땀이 배는 음악이지요.
아래는 안나 페도로바의 전곡 연주입니다. 열정이 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꼽히는지, 그 폭과 속도를 눈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일곱 해의 거리 — 같은 피아노, 전혀 다른 세 사람
이제 세 곡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비창이 1798년, 월광이 1801년, 열정이 1805년. 첫 곡과 마지막 곡 사이가 고작 7년입니다. 그런데 그 7년 동안 베토벤은 같은 악기를 들고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되었어요. 비창의 고전적인 비장함에서, 월광의 내밀한 고백을 거쳐, 열정의 영웅적 폭발까지. 별명 셋을 외우는 것보다, 이 변화의 곡선을 느끼는 편이 세 곡을 훨씬 오래 사랑하게 만듭니다.
| 곡 | 작곡 | 별명을 붙인 사람 | 부순 규칙 | 한마디 | 난이도 |
|---|---|---|---|---|---|
| 비창 (8번) | 1798 | 베토벤 본인 | 서주를 본문에 다시 불러옴 | 이를 악문 비장함 | 중 |
| 월광 (14번) | 1801 | 시인 렐슈타프 (사후) | 느린 악장으로 시작 | 고요와 폭풍 사이 | 중상 |
| 열정 (23번) | 1804~05 | 출판사 (사후) | 다이내믹의 극단 | 절망을 딛고 선 폭발 | 최상 |
입문하는 분께 권하는 순서는 단순합니다. 가장 듣기 편한 월광 1악장으로 문을 열고, 누구나 아는 비창 2악장의 선율로 귀를 데운 다음, 마지막에 열정 1악장의 팽팽한 긴장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처음부터 세 곡을 통째로 다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한 악장을 붙잡고 며칠 반복해 듣다 보면, 어느새 나머지가 궁금해지는 날이 오거든요. 베토벤을 좋아하게 되는 길은 대개 그렇게 한 악장에서 시작됩니다.
명연주, 어디서 들을까
같은 세 곡이라도 누가 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립니다. 입문하는 분께 도움이 될 만한 갈래를 몇 가지만 짚어 보겠습니다. 정답은 없으니, 마음에 드는 소리를 고르는 재미로 들어 보세요.
- 균형과 품격 — 다니엘 바렌보임은 세 곡 모두를 안정된 호흡으로 들려줍니다. 처음 전곡을 통으로 듣기에 무리가 없는 연주예요.
- 불꽃 같은 열기 — 열정이라면 에밀 길렐스나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 같은 옛 거장들의 폭발하는 음색을 권합니다. 곡의 사나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거든요.
- 지금 우리 시대의 소리 — 한국의 조성진을 비롯한 동시대 피아니스트들의 비창은, 거장들과는 또 다른 투명하고 단정한 결을 들려줍니다. 페이지 맨 위의 연주가 그 한 예입니다.
좋아하는 한 곡을 정했다면, 같은 곡을 서로 다른 두 연주자로 들어 보길 권합니다. 그 차이가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클래식을 ‘감상’하기 시작한 것이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선율의 정체가 궁금해질 때는 악보를 따라가며 듣는 편이 가장 빠릅니다. 아래는 폴 바턴이 비창 전곡을 악보와 함께 연주한 영상입니다. 1악장의 그 무거운 서주가 본문 한가운데로 어떻게 되돌아오는지, 음표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세 곡의 악보를 직접 펼쳐 보고 싶다면, 저작권이 풀린 원본을 IMSLP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