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장르
- 바이올린 소나타
- 악장 구성
- 4악장
I. Allegro (F major)
II. Adagio molto espressivo (B♭ major)
III. Scherzo: Allegro molto (F major)
IV. Rondo: Allegro ma non troppo (F major) - 조성
- F장조
- 작품 번호
- Op. 24
- 작곡 연도
- 1800~1801년
- 출판
- 1801년
- 헌정
-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
(Count Moritz von Fries) - 연주 시간
- 약 23~26분
- 편성
- 바이올린, 피아노
‘봄’이라는 이름, 베토벤이 붙인 게 아닙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누군가 슬쩍 끼워 넣은 별명이죠. 그런데 참 기막히게도 이 별명, 곡의 분위기와 딱 떨어집니다. 1악장의 첫 소절만 들어도 절로 봄이 떠오르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이 세상에 나온 1800년, 베토벤은 화사한 봄을 만끽할 처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귓병이 서서히 그의 귓가를 잠식해 들어가던 시기였거든요. 2년 전인 1798년부터 낌새가 나타났지만, 그는 이 끔찍한 비밀을 극소수에게만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가까운 벗에게 쓴 편지에는 “2년 넘게 제 귀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씁쓸한 고백이 적혀 있습니다.
그 캄캄한 절망의 한복판에서, 베토벤은 가장 밝고 따뜻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피워냈습니다. ‘봄’이라는 별명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지독한 역설처럼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과 1801년의 베토벤
1800년 전후의 베토벤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빈 음악계에 막 뿌리를 내리려던 젊은 작곡가였습니다. 이름값도 꽤 올랐고 악보도 심심찮게 팔렸지만, 당시 자유 음악가의 삶이란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줄타기 같았죠. 오로지 작곡에만 파묻히려면 든든한 동아줄 같은 후원자가 절실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입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부호이자 베토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인물이죠. 프리스 백작은 1801년 한 해에만 현악 오중주 Op.29, 바이올린 소나타 4번, 그리고 이 ‘봄’ 소나타까지 무려 세 작품을 헌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한 해에 세 작품씩이나 헌정받을 정도면, 두 사람 사이가 어지간히 끈끈했던 듯합니다. 이 인연은 꽤 길게 이어졌거든요. 베토벤은 한참 뒤인 1816년에 교향곡 7번까지 프리스 백작의 품에 안겨줍니다. 다만 반전이 있다면, 한때 빈의 하늘을 찌르던 이 엄청난 부호도 말년에는 사업 실패로 씁쓸하게 파산하고 말았다는 사실이죠. 화려했던 물주의 너무나도 초라한 뒷이야기입니다.
1801년은 베토벤의 펜촉이 유난히 바쁘게 움직인 다작의 해였습니다. 현악 사중주 여섯 곡(Op.18)이 세상에 나오고,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 화려하게 무대에 오르던 시기거든요. 빈 음악계에서 베토벤이라는 이름 석 자가 쾌속 질주하던 때였으니, ‘봄’ 소나타에도 그 넘치는 자신감과 펄떡이는 활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베토벤이 애초에 ‘봄’ 소나타를 4번 소나타(Op.23)와 한 쌍으로 묶어 발표할 작정이었다는 겁니다. 두 곡이 묘하게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었기 때문이죠. 4번이 폭풍우처럼 격렬하고 어두운 a단조라면, ‘봄’은 햇살처럼 빛나고 여유로운 F장조입니다. 애당초 두 곡은 나란히 한 작품 번호를 달고 출판될 뻔했지만, 인쇄 과정에서 판형이 엇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결국 Op.23과 Op.24로 생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봄’의 진짜 짝꿍은 저 유명한 크로이처 소나타가 아니라 바로 이 4번 소나타랍니다.
1801년에 세상의 빛을 본 이 소나타는 출판 당시부터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습니다. 베토벤이 남긴 열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서도 이 곡이 유독 끈질기게 사랑받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가장 큰 무기는 바로 4악장 구성이죠.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4악장짜리는 단 세 곡뿐인데, ‘봄’이 그 영광의 첫 곡이거든요. 교향곡처럼 뼈대가 굵직한 실내악이라니, 당시로서는 아주 대담하고 발칙한 도발이었습니다.
봄이 들어오는 방식 — 1악장의 첫 8마디
바이올린 소나타의 첫 악장이 이런 식으로 문을 여는 경우는 참 보기 드뭅니다. 피아노 반주 하나 없이, 바이올린이 홀로 우뚝 서서 첫 멜로디의 빗장을 풉니다. 지극히 조용하고 또 단순하죠. 그 선율이 F장조 화음 위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광경은, 마치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아침을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합니다. 베토벤이 이 선율을 직조해 낸 방식, 정말 어이없을 만큼 단순하거든요. 화음을 타고 위로 오르는 아르페지오에 불과한데, 역설적이게도 이 단순함이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냅니다. 배배 꼬아놓지 않은 덕분에 처음 듣는 사람도 단숨에 멜로디의 꼬리를 잡을 수 있죠. 바로 이 투명한 단순함이 ‘봄’이라는 직관적인 이미지와 그야말로 찰떡같이 맞아떨어집니다.
뒤이어 피아노가 그 선율을 덥석 받아 안으면 어떨까요. 멜로디는 그대로지만 음량이 확 커지면서 질감이 한결 묵직하고 두툼해집니다. 바이올린의 쓸쓸한 독백이 두 악기의 핑퐁 같은 대화로 둔갑하는 짜릿한 순간입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악장마다 귀를 쫑긋 세워야 할 포인트는 이렇습니다. 처음이시라면 1악장은 바이올린이 고독하게 문을 여는 첫 8마디에, 2악장은 피아노 위를 유영하며 노래하듯 펼쳐지는 선율에 집중해 보세요. 4악장의 론도 주제가 빼꼼 고개를 내밀 때 “아, 다시 봄이구나” 싶은 그 짜릿한 감각, 절대 놓치지 마시고요.
1악장 — 바이올린이 먼저 나서는 아침
연주 시간은 약 8~9분.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악장은 바이올린의 쌩뚱맞은 독주로 막을 올립니다. 피아노 반주?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 시절 바이올린 소나타 동네에서 이런 첫인사는 정말이지 희귀한 도발이었습니다. 고전 시대 소나타는 으레 피아노가 헛기침하며 주제를 꺼내면 바이올린이 얌전히 뒤를 따르는 꼴이었거든요. 베토벤은 그 고리타분한 관례를 보란 듯이 엎어버렸습니다.
F장조의 1주제가 소박하게 엉덩이를 붙이면, 두 악기는 슬그머니 C장조의 2주제로 넘어갑니다. 조성이 슬쩍 바뀌었을 뿐인데 선율의 표정은 확 달라지죠. 1주제가 티 없이 맑게 갠 공기라면, 2주제는 한결 유려하게 핑그르르 도는 움직임을 뽐냅니다. 이 두 녀석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며 팽팽한 긴장과 나른한 이완을 쉼 없이 주고받습니다.
발전부에 이르면 베토벤은 이 두 주제를 도마 위에 올리고 온갖 기상천외한 실험을 벌입니다. 그중에서도 f단조로 환승하는 찰나가 단연 압권이죠. 세상 해맑던 주제가 순식간에 시커먼 먹구름을 뒤집어쓰는데, 그 극명한 대비가 뒤통수를 칠 만큼 강렬합니다. 덕분에 재현부에서 1주제가 다시 돌아올 때의 그 화사함이란! 칙칙한 f단조의 터널을 방금 빠져나온 참이라, 먹구름 걷힌 뒤의 푸른 하늘처럼 그 밝음이 훨씬 더 또렷하게 가슴에 꽂히거든요.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 1악장의 템포 설정은 언제나 피 튀기는 해석의 전쟁터입니다. 너무 달리면 봄날의 나른한 여유가 증발해 버리고, 너무 늘어지면 알레그로 특유의 톡톡 튀는 생동감이 죽어버리니까요. 여러 명반들을 슬쩍 견주어만 봐도 그 선택지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갈리는지 뻔히 보입니다.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이 느긋하게 뒷짐 지고 걷는 쪽이라면, 펄만과 아쉬케나지는 한결 생기발랄하게 등을 떠밉니다. 똑같은 악장표를 들고도 완전히 다른 봄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죠.
악장 끝자락에는 아주 짤막한 코다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습니다. 남은 에너지를 꽉 움켜쥐며 미련 없이 단칼에 매듭을 짓죠. 요란하고 거창한 피날레 따위 없어도 배부른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 참으로 베토벤다운 기막힌 균형 감각 아닙니까.
2악장 — 피아노 위에서 노래하는 바이올린
연주 시간은 약 5~6분. 느릿하게 흘러가는 악장입니다.
‘봄’ 소나타를 안주 삼아 떠들 때 사람들의 입에 가장 먼저 오르내리는 악장입니다. ‘매우 표현적으로, 아주 느리게’라는 뜻을 품은 Adagio molto espressivo. 피아노가 숨죽인 화음으로 스르륵 배경을 깔아주면, 그 위로 바이올린이 기나긴 선율의 노래를 얹기 시작합니다.
이 악장이 유독 각별한 건 그저 느릿하고 예쁘장해서가 아닙니다. 선율의 호흡이 기가 막히게 길어서, 좀처럼 끊어질 기미를 안 보이거든요. 한 문장이 다음 문장으로 물 흐르듯 스며드는 꼴이 꼭 한 편의 유려한 산문시를 읽는 것 같습니다. 대체 어디서 마침표를 찍을지 종잡을 수 없다 보니, 막상 곡이 멈춰 서면 짙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게 되죠.

수많은 녹음 사이에서 연주자의 지문이 가장 선명하게 묻어나는 곳도 바로 이 2악장입니다. 피아노가 얼마나 솜털처럼 부드럽게 받쳐주는지, 바이올린이 얼마나 길게 숨을 이어가는지. 이 아슬아슬한 미묘한 균형 하나로 곡의 첫인상이 완전히 뒤바뀌거든요. 피아노가 눈치 없이 너무 크게 튀어나와 버리면 바이올린의 우아한 노래는 속절없이 뒤로 밀려나고 맙니다.
흥미롭게도 이 균형 문제는 악기 자체의 태생과도 얽혀 있습니다. 베토벤 시대의 피아노인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면, 현대 그랜드 피아노보다 음량이 작아 두 악기의 기싸움 없이 균형이 자연스레 잡히죠. 반면 현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는 피아니스트가 기를 쓰고 의식적으로 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2악장은 피 말리는 ‘균형의 악장’인 셈입니다.
악장 안에는 반복 기호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연주자에 따라 되풀이 여부가 휙휙 갈립니다. 반복을 택하면 악장이 꽤 길어지는데도, 이 얄미운 선율은 두 번 들어도 도통 지겹지가 않습니다. 도리어 처음 들을 때와 두 번째 들을 때 낚아채는 디테일이 달라지는 쏠쏠한 재미가 있죠. 피아노의 양손이 벌이는 역할극도 꼭 눈여겨봐야 합니다. 왼손이 든든하게 저음 화음을 깔아주면, 오른손은 바이올린 선율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바이올린이 슬쩍 숨을 고르며 쉴 때면 어김없이 피아노 오른손이 그 빈자리를 꿰차는데, 이렇게 두 악기가 핑퐁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 쫀득한 방식이 악장 전체의 튼튼한 골격을 완성합니다.
3악장 — 짧지만 강렬한 스케르초
연주 시간은 약 1분. ‘봄’ 소나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짧은 악장입니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이 찰나의 짧음이 도리어 기막힌 효과를 냅니다. 2악장의 길고 나른한 서정 뒤에 갑자기 빠르고 날카로운 리듬이 훅 치고 들어오면, 듣는 사람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거든요. ‘농담’이라는 뜻을 지닌 스케르초답게, 느릿한 악장 뒤에 슬쩍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얄미운 장난꾸러기 같은 존재입니다.
뼈대 자체는 앙상할 만큼 단순하지만, 두 악기가 리듬을 주고받는 솜씨 하나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합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엎치락뒤치락 리듬 조각을 던지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질주하는 순간의 짜릿한 쾌감이 압권이죠. 너무 금방 끝나버려 설마 “이게 다야?” 싶을 수도 있지만, 4악장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야무지게 해냅니다. 중간의 트리오에서 잠깐 숨을 고른 뒤 다시 스케르초가 튀어나오는 구성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봄바람의 얼굴을 꼭 닮아 있습니다.
베토벤은 대체 왜 이렇게 감질나는 짧은 스케르초를 떡하니 끼워 넣었을까요. 아마도 뒤따라올 론도를 향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려는 고도의 계산이었을 겁니다. 2악장에서 온몸의 긴장을 충분히 풀었으니 3악장에서 벼락같이 속도를 끌어올리고, 그 폭발적인 에너지를 4악장으로 고스란히 떠넘기는 셈이죠. 짧아서 오히려 더 치명적인, 참으로 영리한 한 수입니다.
4악장 — 봄이 다시 돌아오는 론도
연주 시간 약 6~7분. 론도 형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대망의 마지막 악장은 론도입니다. 하나의 굵직한 주제(A)가 다른 에피소드(B, C)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구조(A-B-A-C-A)죠. ‘봄’ 소나타 4악장의 론도 주제는 1악장이 뿜어내던 그 해사한 밝음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번 끄집어냅니다. 마침내 “아, 다시 봄이구나” 하는 뭉클한 반가움이 확 밀려드는 순간이거든요.
론도는 베토벤이 피날레에 심심찮게 써먹던 단골 형식이지만, ‘봄’에서는 유독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합니다. 피 튀기게 극적이지도, 쫓기듯 급작스럽게 문을 닫지도 않거든요. 1악장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봄기운이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잦아드는 느낌입니다. 론도 주제가 한 바퀴 돌아올 때마다 묘하게 표정을 바꾸는데, 마치 해마다 꼬박꼬박 봄이 찾아와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늘 새롭고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에피소드 B와 C는 저마다의 조성과 표정으로 전혀 다른 얼굴을 내밉니다. B가 론도 주제보다 한층 진지하게 무게를 잡는다면, C는 아주 짧은 찰나에 에너지를 빈틈없이 꽉 뭉쳐놓은 모습이죠. 마침내 론도 주제가 빙그르르 한 번 더 돌아오면서, ‘봄’ 소나타 전체는 F장조가 쏟아내는 눈부신 빛의 장막 속에서 완벽하게 막을 내립니다.
피날레 무대에서 두 악기가 벌이는 역할 분담도 퍽 흥미진진합니다. 멜로디의 첫 운을 떼는 주도권이 쉴 새 없이 엎치락뒤치락하거든요. 처음엔 바이올린이 론도 주제의 빗장을 열고, 다음 턴에선 피아노가 덥석 이어받습니다. 다시 주제가 한 바퀴 돌아올 때는 아예 두 녀석이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내달리기도 하죠. 25분짜리 거대한 소나타의 마침표를 찍는 방식치고, 이토록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광경은 참 보기 드뭅니다.
봄이라는 이름의 역설
여기에 아주 기막힌 아이러니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봄’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은 베토벤 사후에 누군가 슬쩍 붙여준 것인데도, 이름표와 알맹이가 이토록 오차 없이 찰떡처럼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정작 이 곡을 오선지에 끄적이던 무렵의 베토벤은 화사한 봄기운을 느낄 심리적 여유라곤 단 한 줌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의 고질적인 귓병은 이듬해인 1802년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맙니다. 그 폭풍 직전인 1800~1801년, 바로 이 ‘봄’ 소나타를 빚어내던 시기에 베토벤은 이미 자신의 귀가 멀어가고 있다는 서늘한 파국을 직감한 채 그 끔찍한 진실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었죠. 평생 소리를 만져야 할 음악가의 청력이 무너진다는 건, 그야말로 목을 조여오는 사형 선고나 다를 바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불안과 절망의 한복판에서 이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소나타가 튀어나왔습니다. 학자들은 묘하게도 이 시기 베토벤의 작품들이 오히려 한층 더 개방적이고 쾌활한 얼굴을 띠게 되었다고 입을 모으죠. 터질 듯한 불안을 억누르려던 처절한 심리적 반작용이었을까요, 아니면 오직 작곡만이 자신을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유일한 동아줄이라는 지독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요. 그 속내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참담한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결과물이 지금껏 우리 곁에 남은 가장 눈부신 ‘봄’ 소나타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곡에 흠뻑 빠져드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등하게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거든요. 고전 시대 소나타만 해도 피아노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주연이고 바이올린은 그저 뒤에서 거드는 조연처럼 취급받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봄’은 태생부터 다릅니다. 두 악기는 주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극을 이끌고, 때로는 각자 치고 나가며 발을 맞춰 걷는 팽팽한 두 명의 동업자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열 곡의 한가운데 — ‘봄’이 놓인 자리
베토벤이 평생 남긴 바이올린 소나타 열 곡을 한 줄로 쫙 세워놓고 보면, ‘봄’이 차지한 자표가 아주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초창기에 쓴 세 곡(Op.12)만 해도 아직 선배인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거대한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거든요. 꽤나 우아하고 단정하긴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불도저 같은 ‘베토벤다움’이 터져 나오기 전의 모습이죠. 4번(Op.23)과 5번 ‘봄’에 당도하고 나서야, 비로소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완벽하게 대등한 동반자로 링 위에 마주 서게 됩니다.
4악장이라는 골격 자체가 당시 얼마나 발칙한 파격이었는지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대개 피아노가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세 악장 남짓의 덩치였습니다. 바이올린은 그저 피아노 곁에서 알짱거리며 반찬을 얹어주는 역할에 머물 때가 많았죠. 베토벤은 바로 이 틈바구니에 스케르초 한 악장을 불쑥 끼워 넣어 교향곡에 맞먹는 웅장한 4악장의 틀을 세워버렸고, 그 판 안에서 바이올린을 피아노와 똑같은 체급으로 멱살 잡아 끌어올렸습니다. ‘봄’이 그저 귀족들 심심풀이용 살롱 음악이 아니라, 뼈대 굵은 본격 실내악으로 평가받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이 발칙한 흐름은 곧장 7번(Op.30-2)과 9번 ‘크로이처'(Op.47)가 뿜어내는 피 튀기는 격렬한 드라마로 직행합니다. 특히 크로이처에 이르면 거의 대형 협주곡 뺨치는 스케일로 두 악기를 사정없이 맞붙이는데, 그 어마어마한 폭발의 씨앗이 이미 ‘봄’이 세워둔 기막힌 균형 감각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봄’은 흔히 얌전했던 초기 양식과 불을 뿜는 중기 걸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잇는 다리로 불립니다. 겉보기엔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지만 뼛속까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베토벤 인생의 서늘한 전환점에 우뚝 선 명곡입니다.
훗날 낭만주의 작곡가들도 알게 모르게 이 곡에 단단히 빚을 졌습니다. 깐깐한 학자들조차 슈만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뒤적이다 ‘봄’의 흔적을 심심찮게 짚어 내거든요. 두 악기가 선율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 편의 농밀한 대화를 엮어내는 작법, 그 눈부신 출발점 중 하나가 바로 이 곡입니다. 연주자들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한 무대에 올릴 때 유독 ‘봄’ 소나타가 가장 따뜻한 박수갈채를 훔쳐 가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죠.
오늘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음반에 도전장을 내밀 때도 ‘봄’은 아주 훌륭한 출발점 역할을 도맡습니다. 연주 기교가 만만해서가 아닙니다. 음악 자체가 그만큼 맑고 투명하게 마음에 곧장 꽂히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발걸음으로 베토벤의 묵직한 실내악 세계에 발을 들이는 문, 그 문패에 적힌 이름이 바로 ‘봄’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이 곡과 처음 인사하는 자리라면, 딱 세 가지만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첫째, 바이올린이 혼자 시작합니다. 1악장을 여는 첫 8마디, 피아노의 호위 없이 바이올린이 덩그러니 먼저 선율을 풀어놓습니다. 그 고요하고 쓸쓸한 독백에 피아노가 슬며시 합류하는 찰나가 이 곡 전체의 성격을 고스란히 웅변하거든요. 한마디로, 둘이서 도란도란 나누는 음악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2악장을 귀하게 들으세요. ‘봄’ 소나타 팬들 사이에 섞여 보면 이 2악장을 가장 애지중지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템포도 느릿하고 호흡도 꽤 길지만, 그 흘러가는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죠. 바이올린의 선율이 피아노라는 우아한 융단 위에서 어떻게 숨 쉬고 노래하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셋째, 4악장 론도 주제를 기억해 두세요. 1악장을 물들였던 그 눈부시게 밝은 기운이 피날레에서 전혀 다른 화장술을 거쳐 다시 돌아옵니다. 듣다 보면 ‘아, 이 느낌’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짜릿한 찰나가 있죠. 그 반가운 순간이 바로 론도 주제입니다.
전체 연주 시간은 약 25분. 결코 가벼운 길이는 아니지만 마지막 음표가 스러질 때까지 듣고 나면,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왜 하필 ‘봄’이 가장 자주 무대를 차지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추천 녹음
다비드 오이스트라흐(violin) / 레프 오보린(piano) (1962, Philips)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기싸움 없는 이상적인 균형이 일품입니다. 오이스트라흐 특유의 굵고 따뜻한 음색은 ‘봄’ 소나타에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안성맞춤이거든요. 여기에 오보린의 피아노는 섣부른 주연병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어깨를 맞대고 달리는 든든한 동반자처럼 훌륭히 판을 깔아 줍니다.
이작 펄만(violin) /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piano) (1970년대, Decca)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유려한 해석을 들려줍니다. 젊은 날의 터질 듯한 에너지가 꽉 들어차 있어 ‘봄’ 특유의 청량한 맛과 기막히게 잘 어우러지죠. 처음 귀를 여는 입문용으로도 더없이 완벽하고, 오래오래 꺼내 들어도 도통 물리지 않는 명반입니다. 아래 영상으로 전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르투르 그뤼미오(violin) / 클라라 하스킬(piano) (1957, Philips)
두 거장이 빚어내는 아득한 만남입니다. 그뤼미오의 바이올린이 서슬 퍼렇도록 고고하고 선명하게 허공을 가르면, 하스킬의 피아노는 한껏 몸을 낮춘 채 기품 있게 절제된 소리를 토해냅니다. 특히 2악장의 고요함 속에서 이 숨 막히는 조합의 진짜 가치가 눈부시게 폭발하죠.
악보와 함께 듣기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의 악보는 국제악보도서관(IMSLP)에서 무료로 챙겨갈 수 있습니다. 오선지 위 악보를 눈으로 찬찬히 따라가며 귀를 열어 보세요. 두 악기가 시소 타듯 주제를 주고받는 그 정교한 구조가 한결 선명하고 또렷하게 머릿속에 박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