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4번 — 5번 값 받고 떠넘긴 곡

오페르스도르프 사기 사건과 바순의 8마디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곡명
교향곡 4번 B♭장조, Op.60
(Symphony No. 4 in B-flat major)
작곡 시기
1806년 여름, 헝가리 마르톤바샤르 브룬스비크 영지
악장
4악장
I. Adagio — Allegro vivace (b♭단조 → B♭장조)
II. Adagio (E♭장조)
III. Allegro vivace · Trio: Un poco meno allegro (B♭장조)
IV. Allegro ma non troppo (B♭장조)

1악장. 느린 서주 — 빠르고 생기 있게
2악장. 느리게 노래하듯
3악장. 빠른 춤과 트리오
4악장.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편성
플루트,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1·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초연
1807년 3월, 비엔나 로프코비츠 궁 사적 연주회
지휘: 루트비히 판 베토벤
헌정
프란츠 폰 오페르스도르프 백작 (Franz von Oppersdorff)
연주 시간
약 33분
3줄 요약
  • 베토벤이 5번 교향곡 작업을 잠시 멈추고 1806년 여름 헝가리에서 먼저 완성한 곡으로, 후원자 오페르스도르프 백작과 나눈 묘한 거래 끝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 안갯속을 헤매듯 조성을 감추는 38마디 서주와, 오케스트라 오디션의 단골 관문인 4악장 바순 8마디 솔로가 이 곡의 하이라이트입니다.
  • 슈만이 ‘두 거인(3번 영웅·5번 운명) 사이에 선 그리스 처녀’라 부른, 우아함으로 살아남은 교향곡입니다.

1807년 3월, 비엔나 로프코비츠 궁. 슐레지엔에서 마차를 달려온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은 그날 자신을 위해 쓰인 새 교향곡의 초연을 지켜봅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른 건 그가 내심 점찍어 두었던 ‘다음 곡’이 아니었거든요. 백작이 베토벤에게 부친 선금의 일부는, 끝내 약속한 그 곡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울린 새 교향곡이, 오늘 우리가 ‘교향곡 4번’이라 부르는 작품입니다. 백작은 그다음 교향곡, 그러니까 5번까지 욕심내 돈을 댔지만 정작 5번은 다른 귀족들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옵니다. 선금을 치르고 손에 남은 건 4번 한 장. 거칠게 말하면 후원자를 상대로 한 사기에 가까운 거래가, 하필 베토벤 교향곡 가운데 가장 우아한 곡을 세상에 남긴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어 해설은 왜 이 사건을 ‘오페르스도르프에게 헌정’이라는 점잖은 한 줄로만 적고 넘어가는 걸까요?

요제프 카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초상
후원자 한 명을 상대로 이런 거래를 벌이던 시기의 베토벤. 귀는 이미 빠르게 닫히고 있었습니다.

500플로린의 함정 — 오페르스도르프가 산 것은 4번이 아니었다

오페르스도르프는 슐레지엔의 영주였습니다. 자기 영지에 전속 오케스트라까지 거느릴 만큼 음악 후원에는 진심인 사람이었습니다. 1806년, 그는 새 교향곡 값으로 베토벤에게 500플로린을 보냈습니다. 당시 음악가에게 이 정도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백작은 한 곡으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곧이어 “다음 교향곡도 내 것”이라며 5번 선금까지 부쳤습니다. 베토벤은 그 돈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정작 5번을 라주모프스키 백작과 로프코비츠 공후(Prince Lobkowitz)에게 헌정해 버립니다. 받을 돈은 받아놓고, 물건은 다른 손님 이름으로 내줬습니다.

클래식사 연구자 루이스 록우드는 《Beethoven: The Music and the Life》(2003)에서 이 사건을 ‘이중 헌정’이라는 점잖은 말로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이중 매매에 가깝습니다. 오페르스도르프 손에 끝내 남은 건 5번이 아니라 4번이었으니까요. 5번에 돈을 대고 4번을 받아 쥔 거래, 그게 진실에 더 가깝습니다.

한국어 클래식 해설은 대개 이 일을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에게 헌정”이라는 한 줄로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헌정이 아니었습니다. 보상금 대신 떠안긴 곡, 그게 오늘 우리가 ‘베토벤 4번’이라 부르는 작품입니다. 백작 입장에서는 5번 값까지 미리 냈는데 받아 쥔 건 다른 곡 한 장뿐. 후원자를 상대로 한 사기라 불러도 크게 억울할 게 없는 거래였습니다.

게다가 4번이 1807년 3월 비엔나에서 초연될 때, 같은 무대에 오른 곡들은 코리올란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습니다. 오페르스도르프는 자신이 점찍었던 5번 대신 4번이 초연되는 그 무대를 객석에서 끝까지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 기분이 어땠을지는 상상만 할 수 있어요.

얄궂은 건, 그날 밤 무대를 채운 다른 곡들이 하나같이 묵직했다는 점입니다. 코리올란 서곡의 비장함, 피아노 협주곡 4번의 깊은 사색 — 그 틈에서 4번 교향곡만 유독 밝고 가벼웠습니다. 5번을 손꼽아 기다리던 백작에게는, 하필 그 가벼움이 더 약을 올리는 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마르톤바샤르의 여름 — 5번을 멈추고 4번을 먼저 쓰다

1806년 여름, 베토벤은 비엔나가 아니라 헝가리 마르톤바샤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브룬스비크 백작 가문의 영지였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하던 일은 하나였습니다 — 백작의 누이 요제피네 브룬스비크에게 마음을 통째로 빼앗기는 일. 작곡 일정을 자꾸 미뤄두던, 짝사랑에 빠진 사내의 여름이었습니다.

헝가리 마르톤바샤르의 브룬스비크 성
베토벤이 그 여름을 보낸 마르톤바샤르의 브룬스비크 저택. 4번은 이 정원 어딘가에서 자랐습니다.

동시에 그는 5번 교향곡 1악장을 한창 붙들고 있었습니다. 스케치북 ‘Mendelssohn 15’에는 c단조의 그 유명한 네 음 — ‘따따따단’ — 이 이미 적혀 있었습니다. 4번이 시작되기도 전의 일입니다. 통념상으로는 “4번 다음에 5번”이지만, 실제 착상 순서는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한국어 해설에서는 좀처럼 짚지 않는 사실입니다.

요제피네 브룬스비크 초상
요제피네 브룬스비크. 그해 여름 베토벤의 머릿속을 절반쯤 차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요제피네에게 부친 편지 몇 통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애정을 굳이 감추지 않은 구절이 적지 않습니다. 신분의 벽이 끝내 둘을 갈라놓긴 했지만, 그해 여름 들뜬 마음이 4번의 환한 표면과 영 무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운명을 쓰던 손이 잠깐 사랑에 한눈을 판 사이, 전혀 다른 색의 교향곡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던 베토벤이 쓰던 5번을 잠시 밀쳐두고 4번을 먼저 끝냅니다. 변덕이었을까요, 오페르스도르프에게 넘길 곡이 급했던 걸까요, 아니면 헝가리의 여름이 그를 다른 색으로 끌고 갔던 걸까요?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또렷하지요 — 베토벤이 그때 5번을 멈추지 않았다면, 4번이라는 교향곡은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말하자면 4번은 5번의 탄생을 늦춘 막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막간극이 33분짜리 교향곡으로 멀쩡히 살아남았습니다. 영국 음악학자 배리 쿠퍼가 《Beethoven》(2008)에서 짚었듯, ‘따따따단’의 씨앗은 4번이 끼어들기 전부터 노트 한 페이지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4번은 그 위대한 운명을 잠깐 옆으로 비켜서게 만든, 우아한 훼방꾼이었습니다.

b♭단조에서 솟구치는 38마디 — 일부러 길을 잃게 만드는 서주

1악장 첫 음을 듣는 순간, 청자는 길을 잃습니다. 베토벤이 작정하고 그렇게 설계해 두었거든요.

시작부터 조성이 수상합니다. 곡 전체는 B♭장조인데, 도입부 38마디는 b♭단조의 그늘에 잠겨 좀처럼 밝은 쪽으로 빠져나오질 않습니다. 1806년 무렵, 교향곡 1악장 서주를 단조로 여는 일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이든도, 모차르트도 좀처럼 손대지 않던 수법이었습니다. 그걸 베토벤이 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이 38마디는 가만히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화성이 자꾸 딴 길로 미끄러집니다. 어두운 색에서 잠깐 빠져나오나 싶으면 어느새 b♭단조로 되돌아오고, 그러다 또 엉뚱한 데로 흘러갑니다. 청자는 “이 곡, 대체 어느 조에서 시작하는 거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38마디 내내 답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 마디 39. 갑자기 전곡이 B♭장조 알레그로 비바체로 솟구쳐 오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같은 진부한 비유로는 한참 모자랍니다. 어디인지도 모른 채 헤매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혀 환한 곳으로 끌려 나오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베토벤은 청자를 일부러 길 잃게 만들고, 마디 39에서 손목을 낚아채 빛 한가운데로 끌어냅니다.

영국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는 《Essays in Musical Analysis》(1935)에서 이 38마디를 두고 “음악사상 가장 신비로운 도입부”라 꼽았습니다. 토비가 빈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걸 생각하면, 이건 사실상 극찬입니다. 그리고 이 도입부의 그림자는 17년 뒤 9번 교향곡 1악장 서주에 다시 길게 드리웁니다. 베토벤은 제 손으로 만든 수법을 한참 뒤에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지휘자에게 이 38마디는 곡 전체의 문턱입니다. 여기서 해석이 갈립니다. 어둠을 어둠인 채로 남겨둔 채 마디 39를 날카롭게 밀어붙이는 지휘자가 있고, 도입부를 매끈하게 풀어 흘려보내는 지휘자가 있습니다. 같은 4번이 누구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됩니다. 어떤 손에서는 길 잃은 38마디로 들리고, 어떤 손에서는 그저 우아한 서곡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세계 모든 오케스트라 오디션이 떠는 그 8마디

4악장은 관객 입장에선 가장 가벼운 악장입니다. 16분음표가 쉼 없이 질주하는 무궁동(perpetuum mobile) — 빠르고, 즐겁고, 우아하게 흘러갑니다. 한 번 시동이 걸리면 마지막 마디까지 엔진이 식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대 위 바순 주자에게는 정반대입니다. 마디 184 부근, 발전부 끝자락에서 1바순 솔로가 슬그머니 등장합니다. 8마디 동안 반주는 한껏 얇아지고, 바순이 혼자 16분음표를 빠르게 굴려야 합니다. 숨을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빠른 바순 솔로 자체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두 가지인데요. 첫째, 바순은 애초에 빠른 패시지와 그리 친한 악기가 아닙니다. 둘째, 이 솔로는 “여기 솔로 나갑니다” 하고 드러내놓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슬쩍 모습을 비춥니다. 관객은 그저 가벼운 4악장이 흘러가는 줄로만 압니다.

그래서 이 8마디는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 바순 오디션의 단골 발췌곡이 됐습니다. 빈 필, 베를린 필, 보스턴 심포니, LA 필 — 이름난 악단의 바순 자리에 지원하려면 마디 184부터 191까지를 통째로 외워 들어가야 합니다. 관객은 평생 모르고 지나칠 8마디가, 연주자에겐 평생 따라붙는 관문입니다.

정작 객석에서는 잘 모릅니다. 4악장이 끝나고 박수가 터질 때, 무대 한쪽에서 1바순 주자가 슬쩍 어깨를 푸는 작은 동작을 본 적 있다면 — 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디션마다 모두가 떨며 굴리던 그 8마디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안도였습니다.

베토벤이 왜 하필 바순에게 이 자리를 떠넘겼는지를 두고는 두 가지 설이 오갑니다. 하나는 바순의 굵은 음색이 무궁동 한가운데서 유난히 다른 색을 낸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냥 베토벤이 바순 주자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었다는 추측입니다. 어느 쪽이 맞든 결과는 똑같습니다 — 200년 동안 전 세계 바순 주자들은 4번 4악장 악보를 펴는 순간 손이 굳습니다.

클라이버가 콘세르트헤바우와 남긴 4번 실황. 4악장 무궁동 속 바순의 그 8마디를 귀로 좇아보세요.

네 악장이 짓는 네 표정

1악장 — 어둠을 등에 업은 우아함

도입부 38마디는 앞에서 실컷 다뤘으니 마디 39 이후를 보겠습니다. 1주제는 가벼운 도약으로 출발합니다. 슈만이 훗날 ‘그리스 처녀’를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우아함입니다 — 이 이야기는 아래에서 따로 풀겠습니다.

재미있는 건 발전부 한가운데입니다. 베토벤이 도입부의 b♭단조를 슬쩍 다시 끌고 옵니다. 마치 “시작이 어느 조였는지 벌써 잊으셨나요?”라고 묻듯 짧게 어둠을 한 번 더 들이밀고는, 재현부에서 다시 B♭장조로 돌아옵니다. 끝낼 때도 우아함만 곱게 남기지 않습니다. 코다에서 화성을 한 번 더 비틀고서야 마침표를 찍습니다. 가벼워 보이는 1악장 이면에는 도입부의 어둠이 내내 주석처럼 따라붙습니다.

2악장 — 박동 위에서 숨 쉬는 노래

첼로의 일정한 박동 위로 1바이올린이 긴 노래를 펼칩니다. 구조는 단순하게 들리지만, 베토벤이 아래에서 박동을 한결같이 붙들고 있는 동안 그 위의 선율은 자유롭게 숨을 쉽니다. 받쳐주는 손이 흔들리지 않으니 노래가 마음껏 늘어질 수 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A Travers Chants》(1862)에서 이 악장을 두고 천상의 천사가 켜는 노래에 빗댔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평론가가 베토벤의 한 악장 앞에서 종교적 비유까지 꺼내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이 음악에 얼마나 사로잡혔는지를 말해줍니다. 듣는 사람마다 평은 갈립니다. 누군가에겐 4번에서 가장 따분한 악장이고, 누군가에겐 베토벤의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깊은 노래입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 박동 위에서 선율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끝까지 따라가느냐, 도중에 놓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3악장 — 메뉴엣의 탈을 쓴 스케르초

악보상 이름은 메뉴엣이지만, 실제로 들려오는 건 스케르초에 훨씬 가깝습니다. 메뉴엣 특유의 점잖은 박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음악이 빠르게 몰아붙입니다. 궁정 무도회의 우아함을 기대했다간 멱살을 잡힙니다.

메뉴엣 사이에 끼어드는 대조 단락(트리오)에서는 목관이 색채를 한꺼번에 풀어놓습니다. 오보에·클라리넷·바순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데, 가만히 들으면 4악장 마디 184 바순 솔로의 예고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베토벤은 바순에게 건넬 농담을 트리오에서 미리 한 번 흘려뒀습니다. 메뉴엣과 트리오를 두 번씩 반복하는 구조 자체도 모차르트·하이든의 표준에서 한 발 비켜난 형태인데, 베토벤은 슬쩍 형식을 늘려놓고는 늘렸다는 티조차 내지 않습니다.

4악장 — 멈추지 않는 엔진과 마지막 숨

16분음표 무궁동이 끝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마디 184 바순 솔로는 앞에서 다뤘으니 여기선 코다를 보겠습니다. 마지막 18마디 직전, 베토벤은 갑자기 박자를 흐트러뜨립니다. 줄곧 달려오던 무궁동이 잠깐 멈칫합니다. 그러다 다시 대열을 맞추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렇게 달려왔으니 한 번쯤 숨 고르고 가자”는 듯한 농담입니다.

4악장이 끝나는 순간, 청자는 33분이 흘렀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게 4번의 가장 큰 매력이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5번·3번에 줄곧 묻혀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인상으로 강하게 박히기엔 너무 가뿐하게 지나가 버리는 곡. 그런데 한 번 듣고 나면, 두 번째에 비로소 무궁동의 단단함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두 거인 사이의 그리스 처녀 — 슈만 인용을 뒤집어 옮긴 한국어 해설

한국어 클래식 해설에서 베토벤 4번 항목에 슈만 인용이 빠진 글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두 북유럽 거인 사이에 낀 가냘픈 그리스 처녀” — 대부분 이 문장을 끌어옵니다. 그리고 상당수가 이 문장을 거꾸로 옮깁니다.

로베르트 슈만 초상
로베르트 슈만. ‘그리스 처녀’라는 비유의 진짜 의도는 오랫동안 오해받아 왔습니다.

슈만이 이 문장을 쓴 건 1835년, 라이프치히의 《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실린 짧은 비평에서였습니다. 원문은 독일어로 “eine schlanke griechische Maid zwischen zwei Nordlandriesen”. 두 북유럽 거인은 명백히 3번 ‘영웅’과 5번 ‘운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한국어 해설에서 흔히 보이는 풀이는 “4번이 3번·5번에 비해 약하다는 슈만의 평”입니다. 뜻이 정반대로 뒤집혔습니다. 슈만의 의도는 오히려 “두 거인 사이에 끼어 있어 그 우아함이 더 도드라진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평론가로서 베토벤을 누구보다 열렬히 옹호하던 슈만이, 4번을 굳이 ‘약한 곡’으로 깎아내릴 이유도 없었습니다.

한 줄짜리 인용이 한국어로 건너오는 동안 어디서 의미가 뒤집혔는지, 그 경로까지 추적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입니다. 베토벤 4번을 “약한 곡, 그래도 들을 만한 곡”으로 소개하는 한국어 해설은, 슈만을 거꾸로 읽은 결과라는 것. 슈만은 4번을 약하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거인 사이에 낀 처녀가 어느 쪽보다 아름다운가 — 그건 듣는 사람의 취향이지, 슈만이 정해준 답이 아니었습니다.

3번과 5번 사이에서 4번이 끝내 살아남은 법

3번 ‘영웅’은 50분이 넘습니다. 5번 ‘운명’은 35분이고, 도입부 네 음부터 청자의 멱살을 잡습니다. 그 사이에 낀 4번은 33분. 도입부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조용히 손목을 잡는 곡입니다.

이 차이는 의외로 결정적입니다. 베토벤 교향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9번 ‘합창’부터 들려주면 대개 부담스러워합니다. 5번을 권하면 첫 네 음에 압도되거나 괜히 긴장합니다. 그런데 4번은 도입부 38마디의 신비를 한 번 통과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한결 가뿐합니다. 처음 만나는 베토벤 교향곡으로 이만한 곡도 흔치 않습니다.

바그너는 《Über das Dirigieren》(1869)에서 4번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영웅 서사가 없으니 자신의 미학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서 4번을 즐겨 지휘했습니다. 영웅 서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쪽이 4번을 아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4번은 묘한 악순환에 갇혀 있기도 했습니다. 영웅 서사가 없으니 화제가 덜 되고, 화제가 덜 되니 무대에 덜 오르고, 덜 오르니 또 그만큼 묻히는 — 그 쳇바퀴 한가운데 4번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5번·3번에 가려 좀처럼 들리지 않던 사정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비롯됩니다.

베토벤을 ‘영웅·운명·환희’ 세 글자로만 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4번은 그 도식을 깨주는 입구가 됩니다. 베토벤에게는 가벼운 베토벤도 있었습니다. 무겁기만 한 게 베토벤은 아니었어요. 가볍다고 단순한 게 아니라, 가벼운 표면 아래 38마디짜리 어둠을 숨겨둔 베토벤입니다. 5번 값을 치르고 손에 쥔 그 한 장이, 알고 보면 베토벤의 가장 영리한 얼굴이었던 셈입니다.

추천 연주 — 한 장만 고른다면

4번을 딱 한 장만 고르라면 카를로스 클라이버 + 바이에른 슈타츠카펠레, 1982년 라이브(Orfeo)입니다. 다른 후보를 아무리 떠올려도 이 선택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클라이버가 평생 정식으로 녹음한 교향곡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그 짧은 목록 안에 4번이 들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설명은 절반쯤 끝납니다. 도입부 38마디의 어둠을 끝까지 어둠으로 남겨두고 마디 39를 칼처럼 베어 들어가는, 거의 유일한 녹음이거든요.

다만 이 해석이 누구에게나 맞는 건 아닙니다. 4번을 “우아하고 가벼운 교향곡”으로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클라이버의 단단함이 도리어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께는 카라얀 1962년 베를린 필 사이클(DG)이 더 잘 맞습니다. 매끈하고, 균형 잡혀 있고, 모든 마디가 깔끔하게 정렬됩니다. 옛 거장의 4번이 궁금하다면 푸르트벵글러가 1952년 빈 필과 남긴 라이브도 있습니다 — 단, 1952년 음질을 감수할 각오는 필요합니다. 첫 한 장은 클라이버, 카라얀의 매끈함과 푸르트벵글러의 굵직함은 그다음에 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색으로 갈래를 나눠 따라가는 4번. 1악장 38마디와 4악장 바순 솔로가 눈으로도 보입니다.

1악장 도입부 38마디와 4악장 마디 184~191 바순 솔로, 이 두 군데를 악보와 함께 짚어가면 베토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었는지가 가장 또렷하게 보입니다. 도입부에서는 흐름을 따라가다 마디 39에서 B♭장조 알레그로 비바체로 들어서는 지점을 표시해두고 들으면, 어둠과 빛의 경계가 마디 단위로 드러납니다. 바순 솔로는 패시지 자체가 짧으니 마디 184부터 191까지 손가락으로 한 번 따라가 보세요 — 객석에서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던 그 8마디의 노출감이 단번에 잡힐 겁니다. 직접 눈으로 보면 느낌이 또 다를 거예요.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4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베토벤 교향곡 4번은 33분이라는데 짧은 편인가요?

5번(약 35분)·3번(약 50분)에 비하면 짧고, 9번(약 70분)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베토벤 교향곡을 처음 듣는 분께 4번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분량입니다. 부담 없이 한 번 통째로 들을 수 있으면서도, 그 33분 안에 도입부의 어둠과 4악장의 무궁동을 모두 통과하게 됩니다.

4번을 한 장만 고른다면 어느 녹음을 들어야 하나요?

카를로스 클라이버 + 바이에른 슈타츠카펠레의 1982년 라이브(Orfeo)를 첫 장으로 권합니다. 클라이버가 평생 정식 녹음한 교향곡이 열 곡 남짓인데, 그 목록 안에 4번이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거의 모든 평을 대신합니다. 도입부 38마디의 어둠을 어둠인 채로 두고 마디 39를 칼처럼 베어 들어가는, 거의 유일한 녹음입니다. 카라얀이나 푸르트벵글러는 그다음에 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슈만이 “그리스 처녀”라고 한 게 4번을 깎아내린 건가요?

아닙니다. 1835년 《Neue Zeitschrift für Musik》 원문은 “두 북유럽 거인 사이에 낀 가냘픈 그리스 처녀(eine schlanke griechische Maid zwischen zwei Nordlandriesen)”인데, 의도는 두 거인(3번·5번) 사이에서 그 우아함이 더 도드라진다는 칭찬에 가깝습니다. 한국어 해설들이 이걸 “약하다는 평”으로 옮긴 건 의미를 거꾸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평론가로서 베토벤을 열렬히 옹호하던 슈만이 4번을 깎아내렸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4번이 5번보다 먼저 작곡됐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완성 순서로는 4번이 먼저지만, 착상 순서는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베토벤은 1806년 5번 1악장을 한창 쓰던 중 작업을 멈추고 4번을 먼저 끝냈습니다. 스케치북 ‘Mendelssohn 15’에 5번의 c단조 네 음 동기 — ‘따따따단’ — 이 4번 작곡 전부터 적혀 있었습니다. 4번은 5번의 탄생을 늦춘 막간극이고, 그 막간극이 33분짜리 교향곡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은 결국 어떻게 됐나요?

5번 교향곡 선금까지 베토벤에게 부쳤지만, 5번은 끝내 받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이 5번을 라주모프스키 백작과 로프코비츠 공후에게 사실상 다시 넘겼습니다. 백작이 손에 쥔 건 4번 한 곡뿐이었고, 우리가 지금 “오페르스도르프 헌정”이라 부르는 그 헌정이 실은 보상금 대신 떠넘긴 곡이라는 뜻입니다. 베토벤의 인간적 결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후원자 사기 사건으로, 록우드의 《Beethoven: The Music and the Life》(2003)에 자세히 정리돼 있습니다.

이어서 듣기 — 베토벤이라는 숲을 더 걷고 싶다면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들을 때보다, 서로 이어진 이야기를 함께 알 때 훨씬 크게 울립니다. 4번이 ‘영웅’과 ‘운명’ 사이에 끼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보았으니, 이제 그 양옆의 거인들과 4번 이후의 베토벤까지 차례로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베토벤의 다른 작품 해설 모아보기 →

베토벤의 다른 작품 해설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