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 귀를 잃어가며 쓴 27년의 일기

초기·중기·후기, 세 시기로 읽는 32개의 자화상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곡명
피아노 소나타 전곡 32곡
(Piano Sonatas, Op.2 No.1 ~ Op.111)
작곡 기간
1795 ~ 1822 (약 27년)
시기 구분
초기 (1~15번, ~1800)
중기 (16~27번, 1801~1814)
후기 (28~32번, 1816~1822)
대표곡
8번 ‘비창’, 14번 ‘월광’,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 29번 ‘함머클라비어’, 32번
헌정
리히노프스키 공작, 발트슈타인 백작, 루돌프 대공 등
전곡 연주 시간
약 10시간

흔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피아노의 신약성서’라고 부릅니다. 바흐의 평균율이 구약성서이고, 그 뒤를 이 32곡이 받았다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거창한 별명에는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성서라는 말이 붙는 순간, 우리는 이 곡들을 경건하게 1번부터 32번까지 줄 세워 들어야 할 것처럼 느끼거든요.

정작 베토벤 본인은 이 곡들을 성서처럼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향곡이나 현악사중주처럼 남들 앞에 내놓는 ‘공식 석상’에서는 차마 못 할 위험한 실험을, 그는 이 88개의 건반 위에서 먼저 몰래 해봤습니다. 27년에 걸쳐 쓴 32곡은 그래서 완성된 교리집이 아니라, 한 인간이 귀가 멀어가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한 사적인 일기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꺼운 일기를, 우리는 대체 어느 페이지부터 펼쳐야 할까요?

1820년경 그려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초상
1820년경의 베토벤. 이미 귀가 거의 멀어버린 시기였지만, 후기 소나타라는 가장 깊은 페이지들은 바로 이 침묵 속에서 쓰였습니다.

성서가 아니라 실험실이었다

베토벤에게 피아노는 첫 번째 모국어였습니다. 본에서 궁정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가장 먼저 정복한 악기가 건반이었고, 빈에 올라와 처음 이름을 알린 것도 작곡가가 아니라 즉흥 연주로 좌중을 압도하는 피아니스트로서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할 때 가장 먼저 손이 간 곳이 피아노였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교향곡은 1년에 한 곡 나올까 말까 한 큰 행사였습니다. 오케스트라 수십 명을 모으고, 후원자를 설득하고, 연주회장을 빌려야 했지요. 반면 피아노 소나타는 책상 앞에 앉아 혼자 쓰고 혼자 쳐볼 수 있었습니다. 실패해도 아무도 모르고요. 그래서 베토벤은 교향곡 9곡을 쓰는 동안 소나타는 32곡을 썼습니다. 거의 세 배가 넘는 분량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교향곡 1번이 이미 단정한 정장 차림이라면, 같은 시기의 초기 소나타들에서는 베토벤이 넥타이를 풀고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보는 게 보입니다. 한 악장을 통째로 장송 행진곡으로 채우거나(12번), 악장 사이 경계를 허물어 한 호흡으로 흘려보내거나(월광), 마지막에 푸가를 욱여넣는(29번, 31번) 식의 모험은 대부분 소나타에서 먼저 터졌습니다. 일기장에 먼저 적어본 문장이 나중에 공식 연설문으로 다듬어진 것이지요.

실제 사례 하나만 들어볼까요. 12번 소나타(Op.26)에는 느린 장송 행진곡 악장이 들어 있습니다. 1801년 일이지요. 그로부터 2년 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의 2악장을 다시 장송 행진곡으로 씁니다. 교향곡 사상 가장 유명한 장례 음악이 된 그 악장의 아이디어가, 사실은 2년 먼저 피아노 소나타에서 한 번 시험을 거친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먼저 소나타, 나중에 교향곡’ 순서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니 32곡을 ‘경전’으로 모시는 태도는 베토벤의 의도와 정반대입니다. 이건 완결된 진리가 아니라, 한 사람이 27년 동안 자기 한계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매번 다시 시험한 기록입니다. 일기를 읽듯 들어야 재미있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1악장부터 듣다 잠든 당신에게 — 32곡 지도

베토벤 소나타를 제대로 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1번 Op.2-1부터 차례대로 트는 거예요. 그러다 대개 4번이나 5번쯤에서 스르르 잠이 듭니다. 초기 소나타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1795년의 베토벤은 아직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우아한 그림자 안에 서 있던, ‘될성부른 신예’였을 뿐이거든요.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그 폭풍 같은 베토벤은 한참 뒤에야 등장하거든요.

그래서 번호순보다 훨씬 친절한 길이 있습니다. 32곡을 세 개의 시기로 나눠, 각 시기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먼저 파악하는 거죠. 27년치 일기를 무작정 첫 장부터 읽는 대신, 목차를 먼저 펼쳐 보는 방법입니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초기는 단정하고 예의 바른 청년의 목소리, 중기는 주먹을 불끈 쥔 영웅의 목소리, 후기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현자의 목소리예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결이 다르지요. 이 세 목소리의 차이를 귀로 구별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사실 베토벤 소나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첫 관문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각 시기를 한 명의 인물처럼 만나 보겠습니다.

초기 (1~15번, 1795~1800) — 스승의 그늘에서 칼을 가는 시간

초기 15곡은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완성해 놓은 고전 소나타의 문법 위에서 출발합니다. 단정한 4악장 구성, 균형 잡힌 형식. 하지만 자세히 들으면 곳곳에서 젊은 베토벤이 스승의 옷이 답답하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게 느껴집니다. 갑자기 거칠어지는 화음, 예상보다 길게 끄는 침묵 같은 것들이지요.

이 시기의 작은 사건 하나가 의미심장합니다. 맨 처음 출판한 소나타 세 곡(1·2·3번, Op.2)을 베토벤은 다름 아닌 스승 하이든에게 헌정했습니다. 존경의 표시 같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쌓인 미묘한 긴장이 있었습니다. 특히 1번 Op.2-1은 헌정사가 무색하게도 어둡고 진지한 단조 작품이어서, 마치 “스승님, 저는 이런 음악을 쓸 사람입니다”라고 정중하게 통보하는 듯한 인상마저 줍니다.

그 들썩임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 8번 ‘비창'(1798)입니다. 묵직한 도입부의 충격적인 불협화음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스물여덟 살 청년이 “나는 스승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라고 처음으로 큰 소리로 선언한 작품이지요. 초기를 통틀어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곡을 딱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비창입니다.

크리스티안 호르네만이 1803년경 그린 베토벤 초상
1803년경의 베토벤. 비창과 월광을 막 써낸, 자신감과 위기감이 동시에 끓어오르던 서른세 살의 얼굴입니다.

중기 (16~27번, 1801~1814) — 귀를 잃고 폭발한 영웅의 시기

중기를 이해하려면 1802년 여름으로 가야 합니다. 빈 근교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서른한 살의 베토벤은 두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유서를 씁니다. 점점 들리지 않는 귀, 음악가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그 사실 앞에서 그는 한 번 죽음을 생각했지요. 그러나 편지는 끝내 부치지 않았고, 그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지요.

위기 직전인 1801년, 베토벤은 이미 14번 ‘월광’으로 초기의 끝과 중기의 문턱을 동시에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서를 쓰고 다시 일어선 뒤로는, 우리가 아는 ‘영웅적인 베토벤’이 본격적으로 쏟아집니다. 21번 ‘발트슈타인'(1804)과 23번 ‘열정'(1805)이 바로 그 한복판이지요. 형식은 더 커지고, 음량은 더 거칠어지고, 감정의 진폭은 끝과 끝을 오갑니다. 죽음을 한 번 통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음악입니다.

중기 끝자락에는 베토벤이 보기 드물게 ‘이야기’를 담은 곡도 있습니다. 26번 ‘고별(Les Adieux)’ Op.81a인데, 세 악장에 각각 ‘작별 – 부재 – 재회’라는 부제가 붙어 있거든요. 1809년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포위했을 때,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제자였던 루돌프 대공이 도시를 떠났다가 돌아온 일을 음악으로 옮긴 것입니다. 첫 세 음에 베토벤이 직접 ‘Le-be-wohl(잘 가요)’이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을 만큼, 헤어짐과 그리움과 반가움의 감정이 음표에 그대로 박혀 있지요.

1802년 베토벤이 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원본
1802년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부치지 못한 이 편지 한 장이 중기 소나타들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후기 (28~32번, 1816~1822) — 아무도 못 듣는 자리에서 쓴 음악

후기에 이르면 베토벤은 거의 완전히 듣지 못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깊고 자유로운 음악은 바로 이 침묵 속에서 나왔습니다. 청중의 박수도, 자기 연주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잘 들리는 음악’을 만들 이유 자체가 사라졌거든요. 오롯이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음악을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후기 다섯 곡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형식의 틀을 넘어섭니다. 30번 Op.109와 31번 Op.110은 끝악장을 변주곡과 푸가로 마무리하는데, 특히 31번에서는 슬픔에 잠긴 ‘비탄의 노래(Arioso dolente)’ 뒤에 푸가가 일어서며 마치 절망을 딛고 다시 걸어 나가는 듯한 흐름을 보여 주거든요. 바흐의 대위법을 후기 베토벤이 자기 식으로 되살린 대목입니다.

29번 ‘함머클라비어’는 연주 시간만 40분이 넘는 거대한 산이고, 마지막 32번 Op.111은 단 두 악장으로 끝납니다. 특히 32번의 2악장은 변주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마치 재즈처럼 들리는 리듬으로 흩어지는데, 1822년에 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토마스 만은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32번에 세 번째 악장이 없는 것은 두 악장만으로 이미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풀어냅니다. 후기는 입문 단계에서 무리해 들으면 어렵게만 느껴지니, 초기와 중기로 귀를 충분히 데운 뒤 마지막에 펼치시길 권해요.

에밀 길렐스가 연주하는 8번 ‘비창’. 초기의 베토벤이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낸 순간을, 악보가 함께 흐르는 영상으로 따라가 보세요.

악기가 바뀌자 베토벤도 달라졌다

32곡이 시기마다 표정이 다른 데는 베토벤의 내면만큼이나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가 손에 쥔 피아노 자체가 27년 사이 완전히 다른 악기로 변했거든요. 우리는 흔히 ‘피아노’를 시대 불문 똑같은 물건으로 여기지만, 베토벤의 초기 소나타와 후기 소나타는 사실상 서로 다른 악기를 위해 쓰인 음악입니다.

초기 소나타를 쓰던 1790년대의 빈식 포르테피아노는 음역이 다섯 옥타브 남짓에, 음량도 현대 피아노보다 훨씬 작고 음색은 섬세했습니다. 그 가벼운 악기로 베토벤은 이미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격렬한 부분에서 건반을 어찌나 세게 두드렸는지, 연주 도중 현이 끊어지거나 망치가 부서지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악기가 작곡가를 못 따라오던 시절이었던 거예요.

그러다 1818년, 영국의 명품 피아노 제작사 브로드우드가 베토벤에게 자사의 그랜드 피아노를 선물합니다. 음역이 더 넓고 음량도 훨씬 큰, 당대 최고 사양의 악기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무렵 작곡된 곡이 후기의 거대한 산, 29번 ‘함머클라비어'(Op.106)입니다. 40분에 이르는 이 곡의 압도적인 규모와 두꺼운 음향은, 마침내 작곡가의 상상을 받아낼 만큼 강해진 악기가 있었기에 비로소 종이 위에 적힐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거의 듣지 못하게 된 바로 그 시기에 악기는 가장 커졌다는 사실이, 후기 소나타의 역설을 한 겹 더 깊게 만듭니다.

별명의 거의 전부는 베토벤이 붙인 게 아니다

‘월광’, ‘비창’, ‘열정’, ‘발트슈타인’. 우리가 베토벤 소나타를 부를 때 쓰는 이 정겨운 별명들에는 작은 비밀이 있습니다. 거의 전부 베토벤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는 거예요.

가장 유명한 오해가 14번 ‘월광’입니다. 베토벤이 이 곡에 직접 붙인 부제는 ‘환상곡풍 소나타(Sonata quasi una Fantasia)’였을 뿐, 달빛은 한 글자도 없었습니다. ‘월광’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인 1832년, 독일의 음악 평론가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1악장을 두고 “루체른 호수 위 달빛에 흔들리는 작은 배 같다”라고 평한 데서 나왔습니다. 평론가의 비유 한 줄이 곡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놓았습니다.

독일 음악 평론가 루트비히 렐슈타프의 초상
‘월광’이라는 별명의 진범, 평론가 루트비히 렐슈타프. 그의 한마디가 200년 가까이 살아남았습니다.

23번 ‘열정(Appassionata)’ 역시 베토벤이 아니라 후대 출판사가 붙였고, 21번 ‘발트슈타인’은 그저 헌정받은 발트슈타인 백작의 이름일 뿐입니다. 흥미로운 예외는 8번 ‘비창’입니다. 이건 드물게도 베토벤 본인이 초판 악보에 ‘비창적인 대소나타(Grande Sonate Pathétique)’라고 직접 새긴, 진짜 작곡가표 별명이거든요. 별명이 베토벤 것이냐 아니냐를 가려 듣는 재미만으로도 32곡 산책이 한결 쫄깃해지거든요.

발렌티나 리시차가 연주하는 14번 ‘월광’. 렐슈타프가 떠올렸다는 그 흔들리는 달빛을, 1악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어디서 시작할까 — 입문 5선

이제 가장 실용적인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32곡 중 딱 다섯 곡만 골라 듣는다면? 번호순의 함정을 피하면서도 베토벤의 세 시기를 골고루 통과하는, 가장 효율 좋은 다섯 곡을 순서대로 추천합니다.

① 8번 ‘비창’부터 시작하세요. 묵직한 도입부 한 방으로 “아, 이게 베토벤이구나” 하고 단숨에 알게 되는 곡입니다. ② 14번 ‘월광’으로 넘어가면, 같은 베토벤이 이렇게까지 조용하고 어두울 수 있다는 데 놀라게 되지요. 1악장의 그 유명한 셋잇단음표는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습니다.

③ 21번 ‘발트슈타인’은 밝고 광활합니다. 마지막 악장에서 손이 건반 위를 끝없이 달리는데, 자동차로 치면 고속도로에 막 올라선 느낌입니다. ④ 23번 ‘열정’은 그 반대편 극단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산이 끓다가 마지막에 폭발해 버리는, 중기 베토벤의 가장 격렬한 자화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⑤ 32번 Op.111입니다. 앞의 네 곡으로 귀가 충분히 데워졌다면, 이 마지막 일기의 마지막 장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울리는지 비로소 들릴 거예요.

이 다섯 곡을 순서대로 듣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짧은 전기 영화처럼 흘러갑니다. 비창에서 세상에 도전장을 내미는 청년을 만나고, 월광에서 그 청년의 가장 내밀한 밤을 엿보고, 발트슈타인에서 위기를 통과한 사람의 트인 시야를 느끼고, 열정에서 그가 끝내 폭발하는 모습을 본 뒤, 32번에서 모든 소란이 가라앉은 자리에 남은 평온에 도착하는 식이지요. 한 곡 한 곡을 따로 듣기보다, 이 다섯 정류장을 이어 달리는 한 편의 여정으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그게 32곡이라는 큰 산을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깊이 맛보는 길입니다.

이미 당신은 베토벤을 듣고 있었다

여기까지 읽으며 “그래도 클래식은 나랑 먼 세계”라고 느꼈다면, 작은 반전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당신은 이미 이 32곡을 어딘가에서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토벤 소나타는 200년 동안 영화·광고·대중가요 속으로 끊임없이 스며들었거든요.

가장 재미있는 예가 8번 ‘비창’의 2악장입니다. 더없이 서정적인 이 느린 악장의 선율을, 미국 팝의 거장 빌리 조엘이 1983년 자기 노래 ‘This Night’의 후렴에 통째로 가져다 썼거든요. 심지어 그는 음반 크레딧에 작곡가로 베토벤의 이름을 나란히 올려두기까지 했습니다. 200년 전 빈에서 청년 베토벤이 적은 멜로디가, 1980년대 뉴욕의 팝송 후렴이 되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14번 ‘월광’의 그 나직한 1악장은 또 어떻고요. 슬프거나 사색적인 장면이 필요한 곳이면 영화와 드라마, 게임은 물론 휴대폰 광고에까지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정작 베토벤은 이 곡을 ‘달빛’이라 부른 적도 없는데, 우리는 그 음악만 들으면 자동으로 푸른 밤 풍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좋은 음악은 이렇게 작곡가의 의도를 넘어 제 발로 멀리까지 걸어갑니다.

같은 곡, 전혀 다른 32곡 — 전집 녹음 이야기

입문 5선으로 곡과 친해졌다면, 그다음 즐거움은 ‘누구의 연주로 듣느냐’입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집은 피아니스트에게 일종의 등반 기록 같은 것이어서, 같은 32곡이라도 연주자마다 전혀 다른 산이 되지요.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사람은 아르투르 슈나벨입니다. 그는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2곡 전곡을 음반으로 녹음한 최초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음질은 옛날 것이지만, 악보 너머의 의도를 읽어내려는 그 진지함은 지금 들어도 묵직합니다.

이후의 명연들은 성격이 뚜렷이 갈립니다. 빌헬름 켐프는 노래하듯 서정적이고 따뜻한 결로, 빌헬름 박하우스는 군더더기 없이 견고한 고전적 균형으로 유명합니다. 알프레트 브렌델은 곡의 구조를 또박또박 읽어주는 지적인 해석으로 사랑받았고,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후기 소나타에서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투명한 음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앞선 영상들에서 만난 에밀 길렐스는, 깊고 묵직한 음색으로 베토벤 해석의 한 기준점으로 꼽히는 연주자입니다.

소련 출신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의 초상
에밀 길렐스.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남긴 녹음만으로도 해석의 기준이 된 피아니스트입니다.

예전에는 이 방대한 전집을 들으려면 LP나 CD 박스세트를 통째로 사야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유튜브만 켜도 앞서 소개한 영상들처럼 명연들이 줄지어 올라와 있고,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거의 모든 전집이 들어와 있지요. 마음먹으면 오늘 밤에 당장 비창부터 32번까지 한 바퀴 돌 수 있는 시대인 셈입니다. 부담 없이 한 곡씩 골라 듣다 보면, 어느새 32곡 전체의 지형이 머릿속에 그려지거든요.

처음부터 “어느 전집이 정답이냐”를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입문 5선을 좋아하는 한 연주자로 충분히 들어본 다음, 같은 곡을 다른 피아니스트로 한 번 더 틀어보는 것만으로도 32곡의 세계는 두 배로 넓어지거든요.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내 귀에 맞는 동행을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베토벤은 32번을 끝으로 더 이상 피아노 소나타를 쓰지 않았습니다. 아직 5년을 더 살며 후기 현악사중주라는 또 다른 우주를 열어젖혔는데도 말이지요. 그가 32번에서 멈춘 건 소재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이 형식 안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이미 다 가버렸기 때문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32곡이라는 숫자는 어중간한 중단이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을 걸어 도달한 끝의 표식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오늘 그 27년치 일기를 처음부터 다시 펼쳐 읽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악보와 함께 듣기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23번 ‘열정’을 베토벤의 자필 원본 악보와 나란히 듣는 영상입니다. 음표가 종이 위에서 어떻게 폭발하는지 눈으로 따라가 보세요.

32곡 전곡의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곡 하나를 골라 악보를 띄워두고 들으면, 귀로만 들을 때는 놓치던 베토벤의 장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모두 몇 곡인가요?

작품번호가 붙은 정식 소나타는 총 32곡입니다. 1번 Op.2-1부터 32번 Op.111까지, 1795년경부터 1822년까지 약 27년에 걸쳐 작곡했습니다. 여기에 작품번호 없는 초기 ‘선제후 소나타’ 세 곡 등을 더하기도 하지만, 보통 ‘전집’이라고 하면 이 32곡을 가리킵니다.

32곡을 꼭 1번부터 차례대로 들어야 하나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흔하고 가장 지치기 쉬운 방법이에요. 초기 소나타는 아직 하이든·모차르트의 영향이 짙어 입문자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비창 → 월광 → 발트슈타인 → 열정 → 32번 순으로 세 시기를 골고루 통과하는 입문 5선을 권합니다.

‘월광’이라는 별명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건가요?

아닙니다. 베토벤이 붙인 부제는 ‘환상곡풍 소나타’였습니다. ‘월광’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32년, 평론가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1악장을 ‘루체른 호수 위 달빛에 흔들리는 배’에 비유한 데서 나왔습니다. 반대로 8번 ‘비창’은 드물게 베토벤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입니다.

피아노를 갓 배운 사람도 칠 수 있는 소나타가 있나요?

19번 Op.49-1과 20번 Op.49-2가 가장 쉬운 편으로, 소나티네 수준의 기교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25번 Op.79가 중급 학습자에게 적당합니다. 비창·월광·열정 같은 유명곡은 듣기에는 좋지만 연주 난도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후기 소나타(28~32번)는 왜 어렵다고 하나요?

청력을 거의 잃은 베토벤이 ‘잘 들리는 음악’을 만들 이유에서 자유로워진 뒤 쓴 곡들이라, 형식이 대담하고 사색이 깊습니다. 29번 함머클라비어는 40분이 넘고, 32번은 단 두 악장으로 끝나지요. 입문 단계에서 무리하기보다, 초기·중기로 귀를 충분히 데운 뒤 마지막에 펼치기를 권합니다.

전집 녹음은 누구 것부터 들으면 좋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따뜻하고 노래하는 결을 좋아하면 빌헬름 켐프, 견고한 고전미를 원하면 빌헬름 박하우스, 구조를 또박또박 읽어주는 해석을 원하면 알프레트 브렌델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한 연주자로 입문 5선을 들은 뒤, 같은 곡을 다른 피아니스트로 다시 들어보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한 권으로 안 끝나는 베토벤의 서재

입문 5선이 베토벤이라는 작곡가의 문을 열어줬다면, 이제 그 안쪽 방들을 하나씩 둘러볼 차례입니다. 소나타에서 시작해 교향곡과 협주곡으로 건너가 보면, 같은 사람이 무대 크기에 따라 어떻게 다른 목소리를 내는지가 또렷이 들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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