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이 막 끝난 참이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2세 니콜라우스 대공은 어딘가 언짢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묻고 말았죠.
“베토벤 선생, 그래서 이게 뭡니까?”
-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곡명
- 미사 C장조 Op.86 (Messe C-Dur, Op. 86)
- 작곡 시기
- 1807년
- 악장
- 6악장
I. Kyrie (C장조)
II. Gloria (C장조)
III. Credo (C장조)
IV. Sanctus (C장조)
V. Benedictus (F장조)
VI. Agnus Dei (C장조) - 편성
- 소프라노 · 알토 · 테너 · 베이스 독창,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팀파니, 혼성 합창
- 초연
-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 에스테르하지 궁정 예배당
- 1807년 에스테르하지 대공의 의뢰로 단숨에 쓴 미사 — 초연은 후원자의 냉담과 후멜의 웃음으로 참담하게 끝났습니다.
- 하이든식 궁정 예배 음악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미사에 교향곡 규모의 드라마를 입힌 실험작입니다.
- 16년 뒤 〈미사 솔렘니스〉(Op.123)에서 만개할 모든 아이디어가 이미 여기 있습니다 — 가려졌을 뿐 결코 습작이 아닌 작품.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 궁정 예배당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베토벤 본인이 직접 지휘봉을 쥐고 미사 초연을 성대하게 마쳤건만, 정작 지갑을 연 후원자의 감상평이 고작 저랬거든요. 설상가상으로 곁에 있던 궁정 악장 후멜은 그 자리에서 픽 웃음까지 터뜨렸더군요. 불같은 베토벤이 가만있었겠습니까? 그는 그야말로 격분했고,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빈으로 훌쩍 돌아가 버렸습니다.
베토벤 미사 C장조 Op.86의 첫날은 이토록 참담한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기막힌 아이러니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날 음악학자들이 이 곡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대공이 “이게 뭐냐”며 기가 막혀 했던 반응도 영 무리는 아니었거든요. 이 미사는 그 시절 사람들이 흔히 듣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얌전한 미사곡과는 뼛속부터 달랐습니다. 베토벤은 당대의 점잖은 관습을 보란 듯이 비틀어버렸고, 청중이 짐작하던 안락한 음악적 흐름에 번번이 찬물을 끼얹었죠. 대공이 황당해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역설적으로 완벽한 증거가 됩니다. 이 곡이 그만큼 전례 없이 낯설었다는 훈장 같은 증거 말입니다.
그리고 2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지금, 당시의 그 불쾌했던 낯섦은 오히려 이 미사를 빛내는 가장 큰 매력이 되었습니다.
후원자의 주문, 베토벤의 반란, 1807년 아이젠슈타트
애당초 베토벤이 이 곡에 손을 대게 된 사연 자체는 꽤 단순합니다. 에스테르하지 2세 니콜라우스 대공이 자기 아내의 성명축일 예배에 올릴 번듯한 미사를 원했거든요. 날짜는 9월 8일, 바로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이었죠. 원래라면 매년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묵묵히 채워온 작곡가는 다름 아닌 하이든이었습니다. 하지만 1807년 당시 하이든은 이미 75세의 늙고 지친 몸으로 펜을 꺾고 은퇴한 상태였거든요. 아쉬워하던 대공이 대타로 베토벤의 문을 두드린 겁니다.

하지만 베토벤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까다로운 제안이 아니었거든요. 미사곡이라는 묵직한 장르에는 수백 년 동안 겹겹이 쌓인 전통이 짓누르고 있었고, 무엇보다 궁정 예배용이니 남들 하는 만큼의 고상한 형식은 지켜줘야 했으니까요. 라틴어 텍스트가 나오는 순서며 구조까지 얄짤없이 정해져 있었죠. 문제는 베토벤이 남들이 정해놓은 틀에 맞추는 데는 눈곱만치도 흥미가 없는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교향곡 5번과 6번을 양손에 쥐고 주무르면서, 이미 온갖 음악적 관습이란 관습은 다 뒤집어엎던 참이었거든요. 교향곡 5번 초연이 1808년이었으니, 미사 C장조와 거의 한 배에서 나온 쌍둥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베토벤이 내놓은 호기로운 결론은 이랬습니다. “껍데기인 미사의 형식은 지켜주지. 하지만 그 안의 음악은 내 방식대로 한다.”
당장 첫머리인 키리에(Kyrie,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가 울려 퍼지는 순간부터 공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가 알던 하이든식의 장엄하고도 둥글둥글한 도입부가 아니거든요. 베토벤은 예열도 없이 처음부터 퍽 단호하게 치고 들어옵니다. 경건하게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차라리 광장에서 외치는 꼿꼿한 선언에 가까운 느낌이랄까요. 초연 날 대공이 미사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면, 십중팔구 이 키리에의 첫 음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이미 심기가 불편했을 겁니다.
이어지는 글로리아(Gloria, 영광)에 다다르면 아예 오케스트라의 체급을 교향곡 스케일로 냅다 끌어올려 버립니다. 하이든의 미사곡들이 궁정 예배당의 차분한 공기에 딱 맞춰 재단된 정갈한 규모였다면, 베토벤의 글로리아는 빈의 시끌벅적한 대형 공연장 지붕이라도 뚫어버릴 수준에 가깝습니다. 1807년 당시 아이젠슈타트 궁정의 소박한 소규모 합창단원들이 이 압도적인 사운드를 소화하느라 꽤나 진땀을 뺐을 게 뻔합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눈총을 받아도 베토벤은 자신의 불도저 같은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훗날 이 미사가 출판될 때, 황태자 루돌프에게 헌정하며 “이 작품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본인 손으로 꾹꾹 눌러 적었거든요. 당시 콧대 높은 베토벤을 흔들림 없이 밀어주던 몇 안 되는 진지한 지지자 루돌프 대공은, 훗날 그 거대한 장엄 미사(미사 솔렘니스)를 헌정받은 바로 그 인물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두 미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굵직한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죠.
하이든의 그늘, 베토벤의 선택, 전임자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
돌이켜보면 에스테르하지 가문과 하이든의 끈끈한 관계는 서양 음악사 전체를 털어봐도 꽤나 각별한 장면입니다. 하이든은 장장 30년 가까운 세월을 이 뼈대 있는 집안의 전속 악장으로 충성했으니까요. 아이젠슈타트 궁정은 사실상 하이든이 쏟아낸 거의 모든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 그리고 수많은 미사곡이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요람이나 다름없었거든요. ‘천지창조’나 ‘사계’ 같은 숨 막히는 대작들도 이 가문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툭 튀어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거대한 그림자 밑에서 베토벤이 펜을 굴리며 하이든을 의식하지 않기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웠을 겁니다. 하이든이 만년에 벼려낸 미사곡들, 특히 ‘전시 미사(Missa in tempore belli, 1796)’를 필두로 ‘테레지아 미사(1799)’와 ‘창조 미사(1801)’ 같은 명작들은 당대 유럽을 통틀어 가장 세련되고 완벽한 교회 음악의 교본으로 꼽혔거든요. 하필이면 같은 깐깐한 의뢰인을 위해, 심지어 매년 똑같이 치러지던 바로 그 날짜에 올려야 하는 곡이라니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장 전임자와의 숨 막히는 보이지 않는 비교가 불을 뿜을 수밖에 없는 아찔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애당초 베토벤과 하이든, 두 천재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참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베토벤이 1790년대 빈에 갓 입성했을 무렵 하이든 밑에서 잠시 가르침을 받긴 했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처음부터 팽팽하고 건조한 긴장감이 감돌았더군요. 전통을 중시하던 하이든은 툭하면 엇나가는 베토벤의 초기 작품들에 대놓고 쓴소리를 던졌고, 뒤끝 하나는 세계 최고였던 베토벤은 그 상처를 가슴 깊숙이 꽤 오래 품었습니다. 오죽하면 훗날 사람들에게 “난 하이든한테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을 정도니까요.
베토벤이 택한 무기는 정면충돌이 아니라 영리한 차별화였습니다. 겉보기엔 하이든의 ‘창조 미사’처럼 얌전하게 C장조를 골라잡았죠. 하지만 막상 음악의 뚜껑을 열어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길로 빠집니다. 얽히고설키는 화성 처리와 대위법의 텍스처를 뜯어보면, 베토벤은 하이든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불온한 선택을 툭툭 던지거든요. 특히 크레도(Credo, 신앙고백)에 이르면 각 성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벼랑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입으로는 “나는 믿습니다”라고 경건하게 노래하는데, 정작 음악은 그 속에서 격렬하게 뒤틀리고 충돌하는 기이한 느낌이랄까요. 평생을 질서정연하게 살아온 하이든의 사전에는 결코 없었을 도발이었습니다.
오늘날 음악학자들이 이 크레도 구간을 베토벤 필생의 가장 독창적인 결정 중 하나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저 납작하고 단순한 신앙 고백에 그치지 않고, 굳건한 믿음 이면에 숨죽인 인간적인 갈등과 서늘한 의혹, 그리고 그 모든 늪을 건너 마침내 도달하고야 마는 확신의 과정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옮겨냈거든요. 말하자면 딱딱한 종교 텍스트를 피가 도는 생생한 심리 드라마로 뒤바꿔버린 셈입니다.
훗날 베토벤은 이 낯선 미사를 돌아보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신을 향해 쓸 수 있는 가장 진솔한 것을 썼다.” 비록 이 문장의 정확한 토씨 하나하나를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 오가지만, 적어도 그가 이 곡을 남의 돈 받고 대충 써낸 뻔한 위촉 작품 이상으로 무겁게 여겼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이 선명합니다.
Kyrie부터 Agnus Dei까지, 악장별 감상 안내
Kyrie, 무릎 꿇되 고개는 드는 간청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으레 미사곡에서 이 장엄한 첫 기도는 땅에 납작 엎드려 무릎을 꿇는 지극한 겸손함으로 그려지기 마련입니다. 선배인 하이든이 늘 그랬고, 모차르트 역시 의심 없이 따르던 굳건한 공식이었죠.

하지만 베토벤은 역시 달랐습니다. 키리에의 막이 오르면 목관악기가 슬며시 부드러운 길을 여는 듯하다가도, 곧장 현악기가 단호한 일격으로 받아치며 합창을 끌고 들어오거든요. 굳이 비유하자면 무릎은 꿇었으되 고개만큼은 빳빳하게 쳐든 자세랄까요.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주제에 한 치의 당당함도 잃지 않는 묘한 배짱이 넘칩니다. 고작 6~7분에 불과한 이 첫 악장 안에, 베토벤이 이 불온한 미사를 통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 했는지가 이미 투명하게 드러나더군요.
곡 중간, ‘크리스테 엘레이손(Christe eleison,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구간에 이르면 소프라노와 알토가 은밀하게 주고받는 대화가 등장합니다. 몰아치던 음악이 여기서 잠시 한 발짝 슥 물러나거든요. 마치 절박한 간청이 아니라 귓속말처럼 내밀한 대화로 들리는 아스라한 순간입니다. 두 목소리가 다정하게 서로를 부르고 화답하며, 앞서 쏟아지던 대형 합창의 날 선 선언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직조해 냅니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전체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맹렬하게 밀고 들어와 처음의 그 단호한 기세로 곡을 닫아버리죠.
정말이지 이 첫 키리에 하나만 떼어놓고 봐도 이 미사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곡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그 교묘한 특이함을 단숨에 꿰뚫어 보기는 다소 까다로울 수 있죠. 하이든의 반듯한 미사곡을 한두 곡쯤 먼저 귀에 담은 뒤에 이 키리에를 틀어보세요. 그제야 두 천재 사이의 서늘한 차이가 훨씬 입체적이고 선명하게 귓가에 꽂힐 겁니다.
Gloria, 궁정 예배당을 교향악단 규모로 채운 시도
글로리아는 전체 미사를 통틀어 가장 길고 덩치가 큰 악장입니다. “글로리아 인 엑첼시스 데오(Gloria in excelsis Deo,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라는 외침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첫 순간부터, 쏟아지는 음향의 스케일이 숨을 턱 막히게 할 만큼 압도적입니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이 거대한 폭발 직후에 이어지는 극적인 전개입니다. “라우다무스 테(Laudamus te, 우리가 당신을 찬양합니다)” 구간으로 넘어가면, 방금 전까지 포효하던 음악이 돌연 숨을 죽이며 실내악 수준으로 사그라들거든요. 네 명의 독창자가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노래를 뽑아내고, 무대를 호령하던 합창단은 슬그머니 배경으로 물러납니다. 베토벤은 이렇듯 거대한 붓결과 세밀한 터치, 요란한 공적인 찬양과 고요한 개인적 고백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자신만의 거대한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도미네 데우스, 렉스 카엘레스티스(Domine Deus, Rex caelestis, 주 하나님, 하늘의 왕이시여)” 구간에 다다르면 다시금 독창자들이 무대 한가운데로 치고 나오고, 그 위를 합창이 묵직하게 덮으며 올라탑니다. 정교하게 겹쳐지는 성부들 사이를 헤집다 보면, 묘하게도 저마다 서로 다른 감정으로 똑같은 신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죠. 개인적으로 이 대목의 짜릿한 대비는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음반에서 유독 날카롭게 빛을 발하더군요.
“키 투 솔루스 상투스(Qui tu solus sanctus, 오직 당신만이 거룩하십니다)” 구간은 일방적인 선언이라기보다 조심스러운 ‘확인’의 과정에 더 가깝게 들립니다. “당신만이 거룩하다”는 텍스트를 고집스럽게 여러 차례 곱씹으면서, 텅 비어있던 음악이 마침내 단단한 확신으로 가득 채워져 가는 밀도 높은 쾌감이 전해집니다.
마지막 “인 글로리아 데이 파트리스. 아멘(In gloria Dei Patris. Amen, 성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아멘)”의 푸가는 끝을 향해 에너지를 맹렬히 밀어붙입니다. 푸가(fuga)란 여러 성부가 같은 주제를 번갈아 이어받는 대위법적 형식인데 베토벤의 푸가는 학구적이라기보다 강인한 근육질에 가깝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초연 청중이 왜 황당해했는지 온전히 이해가 되더군요. 경건한 예배 음악인 동시에 역동적인 교향곡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Credo, 믿음의 진술이 충돌하는 방식
이윽고 등장하는 미사의 심장, 바로 크레도입니다. 빽빽한 신앙 고백의 조문을 쉼 없이 낭독해야 하는 이 악장은 숙명적으로 미사 전체에서 가장 길고 버거운 텍스트를 감당해야만 하죠. 그렇기에 작곡가가 이 방대한 문장들을 어떻게 썰고 다듬느냐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날 것 같은 개성이 낱낱이 까발려지기 마련입니다.
베토벤의 크레도에서 가장 허를 찌르는 대목은 단연 “에트 인카르나투스 에스트(Et incarnatus est, 성령으로 인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구간입니다. 멀쩡히 흐르던 음악이 돌연 어둡게 가라앉고 화성이 기괴하게 뒤틀리거든요. 마치 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는 그 낯선 찰나와 고통을 오선지 위에 고스란히 빚어내려는 것처럼 들립니다. 둥글둥글하고 매끄럽게 크레도를 뽑아내던 하이든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불온한 선택이죠.
이윽고 “크루치픽수스(Crucifixus,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구간에 이르면 음악은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에 도달합니다. 합창은 한껏 숨을 죽인 채 무겁게 밑으로 내려앉죠. 마치 짓누르는 무게감이 더해지는 것처럼요. 그러다 “에트 레수렉시트(Et resurrexit, 부활하시어)” 부분에서 돌연 눈이 부실 만큼 환한 빛을 향해 치솟아 오릅니다. 이 극단적인 전환이 어찌나 갑작스러운지, 처음 듣는 이라면 행여나 편집 오류가 난 건 아닐까 착각할 정도거든요. 하지만 틀림없이 그것이 베토벤의 서늘한 의도였을 겁니다. 죽음에서 부활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전환은 응당 그토록 극적이어야만 한다는 선언 말입니다.
크레도의 후반부, “에트 비탐 벤투리 세쿨리. 아멘(Et vitam venturi saeculi. Amen, 내세의 생명을 믿으며. 아멘)”은 거대한 푸가로 끝을 맺습니다. 앞선 글로리아의 맹렬한 푸가와는 결이 다릅니다. 여기서는 목을 조이는 듯한 묘한 압박감이 느껴지거든요. “내세를 믿는다”는 고백이, 어쩌자고 이토록 안간힘을 쓰며 선언되어야만 했을까요?
결국 크레도는 이 미사를 통틀어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베토벤다운 악장으로 남았습니다. 신앙 고백을 음악으로 직조해 내면서, 베토벤은 안락한 타협 대신 껄끄러운 진실을 택했죠. 그리고 그 진실 안에는 치열한 갈등이 날것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던 셈입니다.
Sanctus와 Benedictus, 고요함이 찾아오는 순간
크레도의 그 숨 막히는 격렬함이 휩쓸고 간 자리, 상투스(Sanctus, 거룩하시도다)는 짧지만 묵직한 선언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호산나 인 엑첼시스(Hosanna in excelsis, 높은 곳에서 호산나)”가 합창 전체의 목소리로 웅장하게 울려 퍼질 때, 비로소 이 낯선 미사에서 가장 익숙하고 전통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죠.
그리고 이어지는 베네딕투스(Benedictus,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찬미). 감히 단언컨대, 이 미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네 명의 독창자가 정교한 실타래처럼 얽혀들며 합창 없이 노래하는 이 구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단숨에 미사 전체의 무게 중심을 이쪽으로 끌어당겨 버립니다. 베토벤이 대규모 합창의 입을 닫고 오직 네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이 아스라한 순간을 빚어낸 건 그야말로 소름 돋게 정확한 판단이었더군요. 덜어낼수록 남은 소리들이 훨씬 더 깊게 파고드는 법이니까요.
베네딕투스 구간에서 소프라노가 투명한 선율을 이끌고 나머지 세 성부가 그 아래를 다정하게 받쳐주는 폼새는, 문득 모차르트가 남긴 유려한 미사곡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늘 핏대를 세우던 베토벤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버거운 투쟁의 무기를 툭 내려놓고, 순도 높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가닿으려 했다는 느낌이랄까요. 이 약 8~9분짜리 구간이 스르르 끝나고 나면, “아, 이 고집불통 작곡가도 이런 음악을 쓸 줄 아는구나” 하며 헛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이 숨 막히는 베네딕투스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이토록 눈부신 곡이 1807년 그날 참담한 실패로 낙인찍혔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아쉽게 다가옵니다. 정말이지 이 단 하나의 악장만으로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귀 기울일 가치는 차고 넘치거든요.
Agnus Dei, 마지막 간청과 절제된 여운
아뉴스 데이(Agnus Dei, 하나님의 어린 양)는 어느 미사에서나 전통적으로 묵직한 마침표 역할을 합니다.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으로 저무는 이 마지막 기도를, 베토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써 내려갔을까요.
의외일 정도로 차분하고 고요합니다. 앞서 크레도와 글로리아에서 그토록 불을 뿜었으니 마지막 엔딩 역시 우레와 같이 끝맺을 법도 한데, 베토벤은 정반대로 슬며시 고개를 숙이거든요. “평화를 주소서”라며 악을 쓰는 대신, 텅 빈 공간에 대고 나직하게 청하는 겁니다. 독창자들의 유려한 앙상블과 합창이 번갈아 가며 이 기도를 다듬을수록, 음악은 점점 더 아득하고 조용한 심연으로 잦아듭니다. 그 지독한 절제가 도리어 가장 서늘한 여운으로 남더군요.
어떤 지휘자들은 이 스산한 마무리를 베토벤의 처절한 개인적 심경과 나란히 겹쳐 읽어내기도 합니다. 1807년은 베토벤의 귓병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를 걷던 시기였죠. 1802년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 이후로 그는 평생 청력 상실이라는 유령과 사투를 벌여왔고, 이 미사를 쓸 무렵엔 이미 일상마저 흔들릴 만큼 상당한 수준의 청각 손상을 입은 상태였거든요. 세상의 소리가 멀어져 가는 한 인간이 떨리는 손으로 적어 내려간 “평화를 주소서”라는 마지막 기도. 그 처연하고도 절제된 마무리가 주는 무게감은 결코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편, 훗날 탄생한 미사 솔렘니스의 아뉴스 데이는 전장의 공포를 생생하게 담아낸 완전히 다른 성격의 맹수 같은 음악으로 거듭납니다. 그 살벌한 분위기에 비하면 미사 C장조의 마무리는 낯설 만큼 평온해 보이기까지 하죠. 이 두 미사의 아뉴스 데이를 나란히 틀어놓고 귀 기울여보면, 16년이라는 거친 세월 동안 베토벤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가장 날카롭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미사 솔렘니스의 그늘에 가려진 실험실, 두 미사 비교
베토벤의 미사 C장조가 오늘날 덜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같은 아버지를 둔 거대한 형제, 미사 솔렘니스(Op.123, 1823)의 그늘이 지나치게 짙고 컸기 때문이죠.

미사 솔렘니스는 베토벤이 무려 4년에 걸쳐 뼈를 깎아 완성한 필생의 대작입니다. 연주 시간만 80분에 육박하고, 극단적인 연주 난이도에 네 명의 독창자와 합창, 그리고 완전한 관현악까지 욱여넣었거든요. 베토벤 스스로 “내 최고 작품 중 하나”라며 치켜세웠고, 오늘날 음악사에서도 교회 음악의 정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거대한 산맥 옆에 덜렁 놓여 있으니 미사 C장조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미사를 순서대로 이어 들어보면, 미사 C장조에서 조심스레 시도했던 씨앗들이 훗날 미사 솔렘니스에서 얼마나 거대하게 만개하는지 훤히 보입니다. 딱딱한 종교 텍스트를 교향악적 긴장감으로 요리하는 방식부터, 크레도에서 믿음의 얄궂은 갈등을 음악으로 엮어내는 솜씨, 그리고 베네딕투스에서 독창 앙상블로 묵직한 정점을 찍는 영리한 구조까지. 놀랍게도 이 모든 묵직한 한 방들이 미사 C장조에 먼저 등장하거든요. 미사 솔렘니스는 사실상 이 곡의 거대한 확장판인 셈입니다.
결국 미사 C장조는 그 자체로 완성된 안락한 목적지라기보단, 다가올 거작을 위한 치열한 실험실이었던 겁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기막힌 아이러니가 등장합니다. 베토벤 본인은 그 처참한 초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미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옹호했거든요. 심지어 악보를 출판할 때는 “피아노 협주곡 4번과 같은 시기에 나온 작품”이라고 손수 강조하기까지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협주곡 4번은 지금도 그의 가장 서정적이고 눈부신 피아노 협주곡으로 꼽히죠. 베토벤은 굳이 두 곡을 나란히 진열대 위에 올리며 세상에 쏘아붙이고 싶었던 겁니다. “이 낯선 미사도 딱 그 정도 수준의 걸작이다”라고요.
무지한 청중이 당장 알아주지 않아도 나 자신만큼은 똑똑히 안다는 그 오만한 확신. 그게 바로 베토벤이라는 인간이었으니까요.
비록 오늘날 이 미사를 다룬 음반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재생 버튼을 누를 때마다 매번 낯선 비경이 새롭게 발견되더군요. 처음 들을 때는 하이든과 엇나가는 낯섦에 흠칫 놀라고, 두 번째 들을 때는 비로소 크레도의 서늘한 논리가 눈에 밟히며, 세 번째 들을 때쯤엔 베네딕투스의 그 처연한 아름다움이 가슴을 치고 전면에 나섭니다. 단 한 번의 감상으로 섣불리 재단하기엔 여간 까다로운 곡이 아닙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불친절함마저도 지극히 베토벤답지 않습니까.
사실 이 이질적인 두 미사를 같은 저울에 올리는 것 자체가 베토벤 입장에서는 꽤나 불공평한 처사입니다. 미사 솔렘니스는 베토벤 특유의 난해한 후기 양식이 만개한 정점의 작품이고, 미사 C장조는 그보다 16년이나 앞서 완전히 딴판인 조건에서 태어난 곡이거든요. 둘은 애당초 전혀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미사 C장조에는 그 거대한 미사 솔렘니스에도 없는 단 하나의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다정할 정도의 친밀함이죠. 덩치를 키우고 야심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 미사 솔렘니스는 때로 듣는 이를 너무 강하게 압도한 나머지 묘한 거리감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미사 C장조는 그보다는 훨씬 사람의 체온이 닿을 법한 거리에 머물러 있거든요. 특히 베네딕투스에서 네 명의 독창자가 엮어내는 앙상블은, 대규모 합창의 요란한 선언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은밀하게 찾아오는 내밀한 대화처럼 들립니다.
이 두 미사 중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제법 진땀을 빼겠지만, 막상 두 곡의 속내를 모두 아는 이들 중에서는 미사 C장조가 어쩐지 더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와닿는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깐깐한 의뢰에 억지로 응하면서도 끝내 자기만의 언어는 굽히지 않았던 그 지독한 고집, 그리고 초연의 쓴맛을 보고도 꿋꿋이 이 곡을 지켜낸 그 단단한 확신이 음악 구석구석에 짙게 배어있는 까닭일 테죠.
조금 더 악보 가까이 다가가 볼까요. 베토벤이 이 미사를 직조할 때 책상머리에 두었을 법한 자료들을 떠올려 봅시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완벽했던 하이든의 미사곡들을 분명 꿰뚫고 있었죠. 모차르트의 크레도 미사(K.257)나 대관식 미사(K.317) 역시 훤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나아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그 장엄한 미사 b단조는 그가 뼛속 깊이 존경해 마지않던 작품이었거든요. 놀라운 건 그 거대한 전통의 강물들을 남김없이 빨아들인 뒤에, 베토벤은 그들 중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날 선 방식으로 곡을 토해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이 미사 속에서 바흐의 그림자를 집요하게 찾아내는 음악학자들도 있습니다. 크레도의 빽빽한 대위법 처리, 특히 후반부로 치닫는 푸가 구간에서 바흐 특유의 서늘한 엄밀함이 묻어난다는 주장이죠. 반면 베네딕투스의 독창 앙상블이 뿜어내는 유려한 감각은 영락없이 모차르트의 유산에 가깝습니다. 앙숙 같았던 하이든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운 정갈한 형식 감각도 뼈대 어딘가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있고요.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이 모든 파편을 쥐고 흔들어 하나로 통합해 낸 거대한 언어는 오직 베토벤만의 것. 세상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시작하십시오
이 낯선 미사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십중팔구 가장 먼저 뱉는 불평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 명색이 교회 음악인데 왜 이렇게 시끄럽냐.”

정답입니다. 바로 그 당혹스러움이 이 미사를 관통하는 진짜 핵심이거든요. 베토벤은 다름 아닌 미사곡의 껍데기를 빌려 교향곡을 써버렸습니다. 예배당의 고요한 공기를 가르던 조용하고 경건한 위로가 아니라, 거대한 콘서트홀을 빈틈없이 채우고도 남을 압도적인 교향악적 드라마를 종교 텍스트 위에 냅다 씌워버린 셈이죠.
그러니 이 미사를 감상하실 때는 굳이 엄숙한 종교적 맥락에 얽매이기보다, 살아 펄떡이는 음악 그 자체에 귀를 맡기는 편이 훨씬 더 흥미진진합니다.
첫째, 고민할 것 없이 키리에(1악장)부터 틀어보십시오. 길어봐야 6~7분 남짓인데다, 이 불온한 미사의 전체 성격이 가장 밀도 높게 압축되어 있거든요. 신을 향한 간청이 이토록 꼿꼿하고 단호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신선한 첫인상으로 다가올 겁니다.
둘째, 크레도(3악장)의 “에트 인카르나투스 에스트” 구간을 예의 주시하십시오. 멀쩡하던 음악이 돌연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바로 그 지점이 있거든요. 신앙이 품은 서늘한 역설을 베토벤이 오선지 위에 음표로 박아넣은 아찔한 순간입니다. 그러다 “에트 레수렉시트”에 이르러 눈이 부시게 밝아지는 그 극단적인 전환도 부디 놓치지 마십시오.
셋째, 베네딕투스(5악장)는 오직 네 명의 독창자만이 남아 무대를 지키는 고요한 순간입니다. 이 거친 미사에서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구간이자, 역설적이게도 가장 베토벤답지 않아서(그래서 한층 더 소름 돋는) 대목이기도 하죠. 잠시 숨을 고르고 온전히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소리의 밀도가 훨씬 선명하게 다가올 겁니다.
넷째,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뉴스 데이(6악장)가 세간의 예상보다 훨씬 스산하고 조용하게 막을 내린다는 사실을 미리 염두에 두십시오. 그 지독한 절제야말로 이 낯선 미사 전체를 닫는 진짜 마침표거든요.
다섯째, 만약 그 거대한 미사 솔렘니스를 이미 맛보셨다면, 반드시 이 미사부터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자칫 감상 순서가 뒤집히면 이 곡이 억울할 만치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위험이 있거든요. 미사 C장조는 그 자체로 오롯이 완성된 하나의 세계이지, 결코 미사 솔렘니스를 위한 예행연습 따위가 아닙니다.
낯선 라틴어를 몰라도 그만입니다. 복잡한 종교적 배경지식도 내려놓으십시오. 그저 각 악장의 이름 정도만 곁눈질하며 순서대로 따라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껍데기 안에서 베토벤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음악이 직접 귓가에 대고 낱낱이 일러줄 테니까요.
이 미사를 마주할 때 한 가지 더 챙겨두면 쏠쏠한 배경이 있습니다. 이 곡이 베토벤의 굴곡진 인생사에서도 꽤나 기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거든요. 고질적인 귓병이 악화되어 사람들과의 사회생활마저 삐걱거리던 시기, 저 멀리 나폴레옹이 온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뒤흔들던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 교향곡 5번과 6번이라는 무시무시한 역사적 걸작들을 양손에 쥐고 주무르던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1807년의 베토벤은 그야말로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폭발적인 창작의 절정기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죠.
미사 C장조를 그 펄떡이는 시대적 맥락 위에 올려놓고 들어보면, 왜 이 곡이 얌전한 교회 음악으로 얌전히 머물 수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실 겁니다. 애당초 베토벤이라는 인간에게 창작이란 자신의 전 존재를 쥐어짜 내 쏟아붓는 지독한 투쟁이었으니까요. 장르가 고상한 미사라고 해서 굳이 얄팍한 예외를 둘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덧붙여, 이 험악한 미사를 합창단석에 서서 직접 목청껏 불러본 이들의 증언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둥글둥글한 성부 간의 조화보다 뾰족한 독립성을 고집한 베토벤 특유의 작법 탓에, 각 파트가 남의 소리를 곁눈질하며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그야말로 가시밭길 같은 도전이라고들 하더군요. 하이든의 미사곡들이 처음부터 각 성부가 매끄럽게 얽혀 들어가도록 친절하게 재단되어 있다면, 베토벤의 이 곡은 성부들이 저마다 독자적으로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기적처럼 거대한 전체 그림이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기이한 방식입니다. 그 팽팽한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은 객석에 앉은 청취자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죠.
끝으로, 이 구석진 미사가 왜 하필 지금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아 마땅한지 짧게 보태겠습니다. 하루가 멀게 매년 수십 편의 쟁쟁한 미사 신보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유독 베토벤의 미사 C장조만큼은 여전히 녹음된 음반 수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편이거든요. 이걸 뒤집어 생각해보면, 뒤늦게나마 이 곡의 진가를 알아채는 이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진짜 숨겨진 보물 상자를 열어젖힌 듯한 짜릿한 쾌감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거대한 미사 솔렘니스의 눈부신 명성에 가려 숨죽이고 있을 뿐, 바로 그 짙은 그늘 아래 이토록 날 선 작품이 웅크리고 있으니까요.
추천 녹음, 이 미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선택지
존 엘리엇 가디너 / 몬테베르디 합창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1994, Archiv)
고음악 해석의 깐깐한 권위자 가디너가 이끄는 이 음반은 무엇보다 텍스처가 유리알처럼 투명합니다. 각 성부의 복잡한 움직임이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또렷하게 들리고, 베토벤이 작정하고 심어둔 충돌과 해소의 과정이 더없이 분명하게 까발려지거든요. 덩치를 매끄럽게 억제하면서도 펄떡이는 에너지만큼은 조금도 잃지 않는 그 줄타기 같은 균형 감각이 무척 인상적이죠. 이 낯선 미사를 처음 대면할 때 가장 자신 있게 권장할 만한 길잡이입니다. 특히 크레도의 그 서늘하고 어두운 구간이 유독 섬뜩할 정도로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아놀트 쇤베르크 합창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00, Teldec)
반면 아르농쿠르의 도발적인 해석은 가디너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맹렬하게 역주행합니다. 빈 필하모닉의 그 풍성하고 기름진 음향을 넉넉히 살려두면서도, 정작 각 악장 안에서 꿈틀대는 내적 긴장감은 숨이 턱 막힐 때까지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거든요. 크레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땐 등줄기에 오싹하게 소름이 돋을 정도더군요. 이 얌전해 보이는 미사가 속으로는 얼마나 위험하고 날이 시퍼렇게 선 음악인지 뼈저리게 체감하고 싶은 분들의 구미에 딱 맞는 선택입니다. 아르농쿠르 특유의 그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해석이 묘하게도 이 미사와 찰떡처럼 맞아떨어집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8, DG)
번스타인은 자신의 주특기답게 규모와 감정을 바닥까지 닥닥 긁어내어 아낌없이 쏟아붓습니다. 깐깐한 일각에서는 부담스러운 과장이라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이 미사를 웅장한 대형 교향곡처럼 호쾌하게 부풀려 듣고 싶다면 이보다 더 통쾌한 선택지는 없거든요. 특히 글로리아가 터져 나오는 순간의 그 화산 같은 폭발감은 단연 압권이더군요. 훗날의 거대한 미사 솔렘니스에 푹 빠져 있는 분들이라면 가장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 같은 음반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안타깝게도 전곡의 궤적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친절한 단일 스코어 영상은 아직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앞서 본문에서 짚어드렸던 크레도의 짜릿한 전환점, “에트 레수렉시트”가 악보 위에서 활화산처럼 어떻게 솟구쳐 오르는지는 아래 영상에서 생생하게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베토벤의 미사 C장조 Op.86은 언제, 누구를 위해 작곡되었나요?
초연 당시 에스테르하지 대공의 반응이 어땠나요?
미사 C장조와 미사 솔렘니스(Op.123)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미사 C장조의 편성과 악장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이 미사를 클래식 초보자도 감상할 수 있을까요?
참고자료
- Wikipedia — Mass in C major, Op. 86 (Beethoven)
- IMSLP — Mass in C major, Op.86 (악보 원본)
- Britannica — Ludwig van Beetho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