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C장조 Op.15

출판사가 나중에 완성된 곡에 1번을 붙인 이유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작품명
피아노 협주곡 제1번 C장조 Op.15
작곡 시기
1795~1798년 (초고 1793년경)
조성
C장조
악장 구성
3악장
I. Allegro con brio (C major)
II. Largo (A♭ major)
III. Rondo: Allegro scherzando (C major)

1악장 힘차고 빠르게 (C장조)
2악장 매우 느리게 (A♭장조)
3악장 론도, 유쾌하게 빠르게 (C장조)

편성
피아노 독주, 플루트 1,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악
초연
1795년 3월 29일, 빈 부르크테아터 (베토벤 독주)
연주 시간
약 35~38분

‘제1번’이라는 착각

음악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착각을 하나 골라야 한다면, 이 곡을 추천하겠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이름만 보면 당연히 베토벤이 처음 쓴 협주곡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베토벤이 먼저 완성한 건 ‘제2번’이었거든요. C장조 협주곡은 그 뒤에 나왔고, 두 곡이 동시에 출판될 때 출판사가 번호를 매긴 겁니다. 더 세련되고 야심 찬 곡에 1번을, 먼저 쓰인 곡에 2번을 달았습니다.

그러니까 ‘1번’이라는 이름 자체가 처음부터 편의상 붙은 라벨입니다.

출판사 아르타리아의 속셈은 단순했습니다. 더 완성도가 높고 팔릴 가능성이 높은 곡을 앞세우려 한 거니까요. 베토벤은 이 결정에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본인도 같은 판단이었을 겁니다. C장조 협주곡이 자신의 초기작 중 더 나은 곡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 판단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합니다. ‘베토벤 협주곡 1번’이라 하면 누구나 이 C장조 곡을 떠올리거든요. ‘2번’은 비전문가 중에 자주 찾는 사람이 드뭅니다. 번호 하나가 작품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1번’이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먼저 연주되고, 먼저 녹음되고, 먼저 리뷰가 쌓였습니다. 번호가 음악의 운명을 바꿨다. 베토벤이 그 출판사 결정에 고마워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결과는 그가 원한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빈에서 피아노를 두드리던 청년의 야망

1795년 3월, 베토벤은 빈 부르크테아터 무대에 섰습니다. 스물네 살. 하이든의 제자로 빈에 온 지 3년째, 도시에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그 밤 그가 연주한 곡이 바로 이 Op.15입니다.

당시 베토벤은 즉흥 연주의 달인이었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악보 없이도 청중을 사로잡았고, 경쟁자들을 꺾는 ‘피아노 배틀’에서 연전연승했거든요. 빈의 귀족 살롱에서는 그를 초대하려는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자작 협주곡을 직접 연주하는 이 무대는 그의 강점을 최대로 끌어올릴 자리였던 겁니다. 오케스트라가 서주를 마치면 독주자 베토벤이 등장하는 구조. 청중은 작곡가와 연주자가 한 몸인 무대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이 협주곡을 쓰기 시작한 건 빈 입성 이전이었습니다. 고향 본에서 이미 초고를 잡아두었고, 빈에서 수정하고 또 수정했거든요. 1795년 초연 이후에도 손을 댔다. 1798년 프라하 공연 때 쓴 버전이 지금 우리가 듣는 판본에 가장 가깝습니다. 출판은 1801년에야 나왔으니, 처음 구상부터 출판까지 거의 10년이 걸린 셈입니다.

이 10년이 왜 중요하냐면, 협주곡에 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초고의 흔적과 무르익은 수정이 공존하는 곡이거든요. 어떤 부분에서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그림자가 보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훗날 ‘황제’ 협주곡의 씨앗이 엿보입니다.

유심히 들어본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악장의 규모와 야심이 20대 초반 작곡가 작품이라기엔 너무 크다는 점. 모차르트 협주곡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더 공격적인 구간이 나옵니다. 베토벤이 빈에서 입지를 세우려고 얼마나 전략적으로 이 곡을 다듬었는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초상 (1820년경)
요제프 카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초상화 (1820년).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쌓은 뒤, 청력을 서서히 잃어가던 시기의 모습이다.

한 가지 더. 베토벤은 이 협주곡 초연 때 카덴차를 미리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쳤거든요. 당시 피아니스트들에게는 흔한 관행이었습니다. 적어도 초기 몇 년간은 매 공연마다 카덴차가 달랐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악보로 보는 카덴차는 나중에 따로 작성된 것이니까요. 베토벤이 여러 개를 써두었는데, 그중 1809년 작성분이 가장 많이 연주됩니다. 초연에서의 즉흥과, 귀가 거의 들리지 않던 1809년 사이. 그 두 시간대를 잇는 다리가 바로 이 협주곡입니다.

악장별 감상

1악장 ― 오케스트라가 먼저 밥상 차리는 16분

1악장은 길고 구조가 복잡합니다. 약 16분. 협주곡 1악장치고 꽤 긴 편이거든요.

시작은 오케스트라 혼자입니다. 피아노 없이 주제를 펼쳐 놓고, 발전시키고, 조율합니다. 이 서주만 거의 2분. 그러다가 피아노가 들어옵니다. 혼자서. 오케스트라가 잠시 물러서는 순간 피아노가 C장조 음계를 타고 올라가는데, “이제 내 차례야”라고 선언하는 듯한 등장입니다.

이 구조는 모차르트에게 배운 겁니다. 오케스트라 서주 → 독주자 등장. 전형적인 고전주의 협주곡 형식이니까요. 그런데 베토벤은 그 형식 안에서 이상한 짓을 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제시한 주제를 피아노가 그대로 반복하지 않거든요. 살짝 비틉니다. 어딘가 다르게, 더 개인적으로. 모차르트가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를 대화 상대로 다루었다면, 베토벤은 독주자를 주인공 자리에 올려놓은 겁니다.

1악장의 결정적 순간은 발전부 후반입니다. 조성이 계속 이리저리 흘러다니다가 C단조로 기울어지는 지점이 나옵니다. 장조 협주곡인데 갑자기 단조 분위기. 거기서 피아노가 혼자 조용히 줄을 당기다가 다시 C장조로 돌아오는데, 1악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입니다. 베토벤이 이 한 구간을 위해 앞의 모든 걸 준비했다는 느낌마저 드네요.

그리고 카덴차. 독주자가 오케스트라 없이 혼자 연주하는 무반주 구간입니다. 베토벤이 나중에 따로 작성한 카덴차가 있는데, 좀 특이합니다. 본문 전체 분위기보다 훨씬 어둡고 기술적으로 어렵거든요. 1809년에 썼는데, 그때 베토벤은 이미 거의 귀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청력을 잃어가는 작곡가가 자신의 스물네 살 곡에 덧붙인 카덴차. 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카덴차에는 피아노가 저음부에서 무거운 화음을 쌓는 구간이 있습니다. 원곡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 어둠이더군요. 1795년 베토벤이 이걸 썼을 리 없고, 1809년 베토벤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음악입니다. 두 시간대가 한 악보 안에 공존하는 셈입니다.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이 카덴차를 다루는 방식이 제각각인 것도 흥미롭습니다. 어떤 이는 원곡 분위기에 맞춰 최대한 밝게 연주하고, 어떤 이는 1809년의 무게를 그대로 살려서 어둡게 가니까요. 두 접근이 만드는 결과물은 상당히 다릅니다. 같은 악보인데 연주에 따라 전혀 다른 협주곡이 되는 겁니다. 짐머만과 번스타인은 어두운 쪽이고, 페라이아는 밝은 쪽에 가깝습니다. 처음 접한다면 두 버전을 카덴차 지점에서 멈추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악장 ― A♭장조, 기이하게 고요한 다른 세계

2악장이 시작되면 뭔가 이상합니다.

C장조 협주곡인데 2악장은 A♭장조거든요. 관계가 멀어 보이는 두 조성입니다. 이 선택은 1795년 기준으로 꽤 파격이었습니다. 하이든이라면 속조나 관계장조를 골랐을 겁니다.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였을 테고요. 베토벤은 그 대신 C장조에서 단6도 아래인 A♭장조를 택한 겁니다.

빈 부르크테아터 (구관), 미하엘러 광장
1795년 베토벤이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초연한 빈 부르크테아터. 당시 베토벤은 스물네 살의 신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결과는 놀랍습니다. 1악장의 당당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세상이 고요해지거든요. 피아노가 물 위를 걷듯 가볍게 움직이는데, 그 아래에서 현악이 받쳐 줍니다. 악보 지시어는 ‘Largo’, 가장 느리게. 그런데 실제로 들으면 느리다기보다 떠 있는 느낌이더군요.

이 구조가 나중에 쇼팽의 야상곡에 영향을 줬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쇼팽이 베토벤의 2악장에서 무언가를 봤을 거라는 추측인데, 들어보면 꽤 설득력이 있거든요. 오른손이 노래하고 왼손이 리듬을 받치는 구조, 그 안에서 선율이 길게 늘어지는 방식이 야상곡의 원형처럼 들립니다.

2악장 중간부에서 잠깐 어두워집니다. 장조였다가 단조로 기울면서 피아노의 음형이 복잡해지니까요. 클라리넷과 파곳이 잠깐 소곤거리고, 그러다 다시 A♭장조로 돌아옵니다. 잠시 흐린 날씨가 왔다가 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악장 전체가 약 10분인데, 10분이 10분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훨씬 짧게 지나가더군요.

한 가지 더. 이 악장 끝에서 피아노가 조용히 선율을 마무리하면,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화음을 아주 부드럽게 받습니다. 큰 마침이 아닙니다. 방문을 소리 없이 닫듯 조용히 닫히는 겁니다. 그러고는 바로 3악장이 쾌활하게 터져 나옵니다. 그 낙차가 강렬할 수밖에요.

3악장 ― 베토벤 20대의 장난기

3악장은 밝고 빠릅니다. 론도 형식 — 주제가 반복해서 돌아오는 구조 — 인데, 베토벤은 여기에 ‘scherzando’, 즉 ‘유쾌하게’라는 지시어를 붙였습니다.

실제로 유쾌합니다. 장난기가 넘칩니다. 피아노가 주제를 던지면 오케스트라가 받고, 다시 피아노가 변형해서 돌려주거든요. 이 주고받기가 거의 장난에 가깝습니다. 1악장의 무게나 2악장의 내면은 여기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협주곡 전체에서 유일하게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구간입니다.

중간에 피아노가 기교적인 패시지를 밀어붙이다가 갑자기 멈추는 순간이 나옵니다. 오케스트라도 따라서 멈춥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브레이크 앤 런’ 구조가 청중을 속이거든요. “아 끝나는구나” 싶은 순간에 또 치고 나가니까요.

론도를 쉽게 풀면 ‘A-B-A-C-A’ 구조입니다. 주제(A)가 나오고, 다른 소재(B)로 잠깐 벗어났다가 A로 돌아오고, 또 다른 소재(C)로 갔다가 A로 돌아옵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 멜로디 어디서 들었더라” 싶은 느낌을 받을 겁니다. 바로 그 멜로디가 주제입니다. 돌아올 때마다 약간 다르게, 더 장식되고 더 발전한 형태로 돌아오는 것이 론도의 묘미입니다.

베토벤은 이 론도를 3악장에 즐겨 썼습니다. 제4번, 제5번도 3악장이 론도거든요. 유쾌하게 마무리하는 게 취향이었던 듯합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무거운 1악장, 심오한 2악장 끝에 이 밝은 3악장을 만나면 마음이 가벼워지니까요. 베토벤이 정확히 노린 효과입니다.

3악장에서 목관악기 솔로 구간도 짧지만 귀에 걸립니다. 클라리넷이나 파곳이 잠깐 선율을 받아서 노래하고, 피아노가 다시 가져가는 구조이거든요. 오케스트라 전체가 아니라 소수 악기와 피아노가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이 미시적인 대화가 3악장 내내 반복되는데, 그 섬세함이 외형상 장난스러운 3악장에 뜻밖의 깊이를 더하더군요.

모차르트 초상화 (요제프 랑게, 1782년)
요제프 랑게가 그린 모차르트 초상 (1782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모차르트 협주곡의 언어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어느 지점에서 선을 넘는다.

특히 끝 부분이 재밌습니다. 결론으로 향하다가 피아노가 속도를 확 줄이는 구간이 나옵니다. 아다지오 정도 템포로. 오케스트라도 멈추고, 피아노가 홀로 즉흥연주처럼 몇 마디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갑자기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로 폭발하면서 끝이 납니다. 베토벤이 직접 초연에서 이 구간을 쳤을 때, 청중 반응이 어땠을까요? 아마 웃음과 환호가 뒤섞였을 겁니다.

카덴차라는 이름의 타임캡슐

이 협주곡에서 가장 기묘한 대목은 앞에서 잠깐 언급한 카덴차입니다.

1809년, 베토벤은 제자 루돌프 대공의 부탁으로 이 협주곡의 1악장 카덴차를 새로 작성했습니다. 14년 전에 쓴 자신의 협주곡에 덧붙이는 무반주 솔로 구간입니다. 그런데 이 카덴차를 들으면 원곡과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원곡 1악장은 어디에서도 이 정도로 어두워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1809년 카덴차는 C단조로 급격하게 내려앉는 순간이 있습니다. 기술 난이도도 훨씬 올라갔죠. 베토벤이 자신의 젊은 시절 곡을 다시 펼쳐놓고, 1795년의 자기가 쓰지 못한 걸 덧붙인 셈입니다.

당시 베토벤의 청각 상실은 거의 완성 단계였습니다. 1809년이면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거든요.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의 스물네 살 협주곡을 위한 카덴차를 쓴 겁니다. 청각이 멀쩡할 때 만든 협주곡에, 소리를 잃은 뒤 마침표를 찍은 까닭입니다.

그 카덴차를 피아니스트들은 오늘도 연주합니다. 짐머만도, 페라이아도, 아르헤리치도 이 카덴차를 쓰거든요. 14년의 시간 차이, 두 명의 베토벤이 한 악보에 공존하는 이 장면. 이 협주곡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대목입니다.

모차르트와의 대화, 그 선을 넘어

이 협주곡을 들을 때 계속 머릿속에 걸리는 이름이 있습니다. 모차르트.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철저하게 공부했습니다. 빈에서 배운 것 중 상당 부분이 모차르트 협주곡의 문법이었거든요. 그 문법 위에서 자신만의 문장을 쓰는 게 초기 베토벤의 과제였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인의 언어를 빌려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요. 이 협주곡이 흥미로운 건, 그 과정이 악보 위에서 실시간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이 1792년 빈에 처음 왔을 때, 모차르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1791년 12월에 죽었거든요.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다. 열여섯 살 때 짧은 방문으로 한 번 만났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베토벤이 빈의 음악 씬에 들어왔을 때, 모차르트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야 할 전설이었던 겁니다.

피아노 협주곡에서 특히 그 압박이 심했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당시 이미 표준이었거든요. 27개의 협주곡이 그 장르의 문법을 결정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거기서 뭔가 다른 걸 보여주려면 형식을 완전히 깨든지, 아니면 그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야 했습니다.

베토벤이 선택한 건 두 번째 방법이었습니다. 형식은 고전주의를 따랐거든요. 오케스트라 서주, 독주자 등장, 발전부, 재현부, 카덴차.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는 방식, 조성 변화의 대담성, 무엇보다 독주자의 존재감. 모차르트 협주곡에서 독주자는 대화 상대입니다. 베토벤 협주곡에서 독주자는 주인공입니다.

포르테피아노 (베토벤 시대 피아노, 세비야 미술관 소장)
18세기 말 포르테피아노. 베토벤이 이 협주곡을 초연할 때 사용한 악기와 유사한 형태다. 현대 피아노에 비해 음량이 작고 음색이 더 섬세하다.

이 전환이 이후 협주곡이라는 장르 전체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쇼팽, 슈만, 브람스, 차이콥스키 협주곡이 모두 베토벤이 놓은 이 방향을 따라간 건 그 때문이거든요.

모차르트 시절에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동등한 대화 상대였습니다. 베토벤 이후 독주자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라섰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그 주인공을 받쳐주는 쪽으로 이동한 겁니다. 낭만주의 협주곡 전반이 이 구도를 따릅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약하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데, 사실 쇼팽은 그 구도를 더 극단으로 밀어붙였을 뿐이거든요. 피아니스트가 전부고, 오케스트라는 배경입니다. 그 경향의 출발선 중 하나가 베토벤 제1번입니다.

물론 이후 베토벤 자신이 이 방식을 계속 수정했습니다. 제4번에서는 다시 오케스트라와의 대화를 강조하고, 제5번 ‘황제’에서는 거의 교향곡에 가까운 무게를 협주곡에 부여하니까요. 그 발전의 출발점이 제1번인 셈입니다.

재밌는 비교가 하나 있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d단조)과 베토벤 제1번을 나란히 놓으면, 두 작곡가의 관계가 더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모차르트 20번은 단조 협주곡인데도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와 팽팽하게 맞섭니다. 베토벤 제1번은 장조 협주곡인데 독주자가 훨씬 더 지배적입니다. 조성의 밝기와 독주자의 위상이 반비례하는 셈이네요. 그 역전이야말로 베토벤다운 방식입니다.

빈 공연장에서 오늘 무대까지 ― 이 곡이 살아남은 이유

베토벤 협주곡 5개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건 단연 ‘황제(제5번)’입니다. 제4번도 팬이 많죠. 제1번은 그보다는 뒤에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1번을 택하는 피아니스트가 늘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체로 비슷한 답이 돌아오더군요. “가장 자유로운 곡이에요.” 제5번은 워낙 정해진 해석이 있어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거든요. 제1번은 다릅니다. 청중의 기대치가 덜 고정되어 있고, 그만큼 연주자가 자기 색깔을 넣을 여지가 큰 까닭입니다.

2악장에서 특히 그 차이가 납니다. A♭장조라는 독특한 선택 때문에, 연주자마다 이 악장을 다르게 해석하거든요. 어떤 이는 꿈속을 거니는 듯 몽환적으로, 어떤 이는 단단하고 명료하게. 같은 악보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옵니다.

목관악기 처리도 연주마다 달라집니다. 클라리넷과 파곳이 중간에 등장할 때, 어떤 지휘자는 이 부분을 피아노만큼 도드라지게 만들고, 어떤 지휘자는 배경처럼 뒤로 물리거든요. 그 선택 하나가 2악장 전체의 색깔을 바꿉니다. 실황에서는 특히 이 부분의 밸런스가 결정적이니까요. 홀의 음향, 오케스트라의 성향, 지휘자의 해석이 한꺼번에 부딪히는 지점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 협주곡은 실황에서 더 빛나는 곡이거든요. 즉흥적인 에너지가 잘 맞는 구조입니다. 3악장의 장난기, 1악장 카덴차의 자유, 연주자가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결정하는 뉘앙스들. 베토벤이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청중을 사로잡았던, 그 현장감이 살아있는 곡이니까요. 스튜디오 녹음보다 라이브 음반이 더 화제가 되는 까닭입니다.

클래식 공연에서 이 곡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었어요.” 교과서에서 ‘초기작’으로 분류된다는 것만 보고 얌전한 곡을 기대했다가, 실제로는 꽤 박력 있는 음악을 만나게 되거든요. 그게 이 협주곡의 첫인상이기도 합니다.

존 호프너가 그린 하이든 초상화, 1791년
베토벤의 스승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존 호프너, 1791). 베토벤은 1792년 하이든의 제자로 빈에 왔고, 이 협주곡의 초고가 그 시기 다듬어졌다.

음악 관점에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협주곡은 베토벤이 모차르트 협주곡 언어를 완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자기 언어를 처음 선보이는 지점입니다. 제4번이나 제5번 ‘황제’는 완전히 베토벤의 세계거든요. 모차르트의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1번은 그 중간 어딘가입니다. 모차르트에게 배우면서 동시에 그를 넘어서려는 흔적이 곳곳에 있거든요. 그래서 이 곡은 두 가지를 동시에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언어와, 그 언어를 비틀어 나가는 베토벤의 의지.

베토벤 협주곡 다섯 개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1번부터 5번까지가 하나의 이야기 같다.” 제1번의 활기찬 청년에서 시작해, 제4번의 내면적 성숙, 제5번 ‘황제’의 장엄한 도달까지. 협주곡이라는 형식이 베토벤의 손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추적하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의 첫 문장이 제1번이고, 첫 문장치고는 상당히 잘 쓴 문장입니다.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이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듣는 걸 권합니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거든요. 1악장의 에너지가 2악장에서 가라앉고, 3악장에서 다시 밝게 일어납니다. 그 흐름을 한 자리에서 따라가다 보면, 베토벤이 이 협주곡에서 무엇을 하려 했는지 느껴질 겁니다. 세 악장 사이의 낙차가 생각보다 크니까요. 처음 들을 때 그 낙차에 놀라는 것도, 이 협주곡을 경험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베토벤은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했던 겁니다.

이 협주곡이 시대를 건너온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를 가르치는 교재로도 자주 쓰이거든요. 고전주의 협주곡의 형식을 배우면서 동시에 베토벤 특유의 주관성을 경험하는 곡이니까요. 음악 학교에서 처음 협주곡 연주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이 곡을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황제’보다 쉬우면서도, 베토벤다운 힘과 개성이 살아있거든요. 무대에서 처음 협주곡을 독주하는 경험을 이 곡으로 하는 셈인데, 베토벤이 스물네 살에 이 곡을 직접 연주했다는 사실이 묘한 평행선을 그립니다.

이 협주곡이 긴 세월을 살아남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이겁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연주자마다 다르다는 점. 같은 악보에서 매번 다른 결정이 나옵니다. 카덴차를 어떻게 칠 것인지, 2악장을 얼마나 느리게 가져갈 것인지, 3악장의 장난기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지. 이 협주곡에는 ‘정답 연주’가 없습니다. 베토벤 본인이 초연 때부터 즉흥으로 뭔가를 덧붙였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셈이니까요. 200년이 지나도 그 자유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 지금도 연주회장 프로그램에 오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정된 걸작이 아니라 매번 새로 써지는 악보. 그 개방성이 이 협주곡을 살아있게 만든 겁니다. 1795년의 베토벤이 거기까지 계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습니다.

추천 녹음

이 협주곡을 처음 접한다면 어떤 버전으로 시작할지 고민이 생깁니다. 녹음마다 성격이 뚜렷하게 달라서, 같은 곡인지 의심될 정도거든요. 아래 세 개의 녹음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이 협주곡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 / 빈 필하모닉,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1989, DG)

지금까지 나온 녹음 중 가장 논란이 많은 버전 중 하나입니다. 번스타인은 이 협주곡을 느리게 가져갑니다. 1악장 서주부터 여유를 부리거든요. 짐머만은 거기에 맞춰 들어오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묘하게 살아있습니다. 카덴차는 두껍고 무게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버전이 너무 무겁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게 진짜 베토벤이라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한 번 들으면 의견이 생기는 녹음입니다.

머레이 페라이아 /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1985, CBS/Sony)

이쪽은 정반대입니다. 깔끔하고 빠릅니다. 군더더기 없이 음표 하나하나가 제자리에 있거든요. 2악장에서 페라이아의 선율이 특히 좋은데,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온기가 있습니다. 하이팅크의 오케스트라 처리가 탄탄해서 피아노와 현악의 밸런스가 흠잡을 데 없습니다. 구조가 잘 들리는 버전이라, 처음 이 협주곡을 접하는 분들께 가장 권하기 쉬운 녹음이기도 합니다.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1820년경)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기의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이 협주곡이 초연된 부르크테아터와 함께 당시 빈 음악 생활의 중심지였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다수의 실황 녹음)

아르헤리치는 이 곡을 여러 차례 공연했습니다. 스튜디오 버전보다 실황 녹음들이 더 화제가 되거든요. 그의 연주는 악보를 살짝 벗어납니다. 정확히 악보 그대로 치는 것보다 더 자유롭고, 때로는 더 충동적이니까요. 베토벤이 자신의 협주곡을 직접 연주하던 방식이 이랬을 거라고 상상하게 만드는 연주입니다. 2019년 실황(Martha Argerich, Scintilla)이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 녹음을 비교할 때 공략 포인트가 있습니다. 1악장 1809년 카덴차 구간, 2악장 중간 단조로 기우는 구간, 3악장 끝의 브레이크-앤-대시 구간. 이 세 곳에서 각 연주자가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하는지 들으면, 이 협주곡이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되는 곡인지 실감하게 될 겁니다. 같은 악보가 세 개의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든다는 사실. 이 협주곡이 오래도록 무대에서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펼쳐놓고 따라가면 귀에 걸리는 대목이 확 늘어납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 무료로 올라와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15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실제로는 먼저 쓴 곡이 아니라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제1번’이라는 이름은 출판 순서 때문에 붙었습니다. 베토벤은 B♭장조 협주곡(지금의 제2번, Op.19)을 먼저 작곡했거든요. C장조 협주곡(Op.15)은 그보다 나중에 완성됐습니다. 1801년 두 곡을 동시에 출판하면서, 완성도가 더 높은 C장조 쪽에 ‘1번’을 붙인 겁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연주 시간이 어느 정도인가요?

보통 35~38분 정도입니다. 1악장이 15~17분으로 가장 길고, 2악장 9~11분, 3악장 8~9분이에요. 연주자마다, 또 어떤 카덴차를 택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2악장이 A♭장조인 이유가 있나요?

베토벤의 의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관습대로라면 C장조 협주곡의 느린 악장은 F장조나 a단조 정도로 쓰는 게 보통이었거든요. 베토벤은 C장조와 꽤 먼 A♭장조를 골랐습니다. 덕분에 1악장에서 2악장으로 넘어가는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이 조성 선택이 2악장의 신비로운 색감을 만든 핵심 요인입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입문자 추천 연주는 무엇인가요?

머레이 페라이아 + 하이팅크/콘세르트헤보우 버전(1985, CBS/Sony)을 먼저 권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주라 악보 구조가 잘 들리거든요. 좀 더 강렬한 쪽을 원한다면 짐머만 + 번스타인/빈 필 버전(1989, DG)도 좋습니다. 두 연주의 분위기가 꽤 다르니, 비교하며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중 어떤 곡이 먼저 만들어졌나요?

제2번(B♭장조, Op.19)이 먼저입니다. 베토벤이 본 시절부터 B♭장조 협주곡 스케치를 시작했고, C장조 협주곡은 그보다 뒤에 완성됐거든요. 출판할 때 완성도가 더 높은 C장조 쪽에 ‘1번’을 매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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