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 곡명
- 교향곡 5번 B♭장조, D.485
(Symphony No. 5 in B-flat major) - 작곡 기간
- 1816년 9월 ~ 10월 (작곡가 19세)
- 악장
- 4악장
I. Allegro (B♭장조)
II. Andante con moto (E♭장조)
III. Menuetto. Allegro molto (g단조)
IV. Allegro vivace (B♭장조)
1악장. 빠르게
2악장. 움직임을 띤 안단테
3악장. 미뉴에트, 매우 빠르게
4악장. 빠르고 생기 있게 - 편성
- 플루트 1, 오보에 2, 바순 2, 호른 2, 현5부
(클라리넷·트럼펫·팀파니·제2 플루트 없음) - 초연
- 1816년 가을, 빈 쇼텐호프(Schottenhof) 내 오토 하트비히 자택 살롱
(비공개)
공개 초연: 1841년 10월 17일, 빈 요제프슈타트 극장
지휘: 미하엘 라이터마이어 - 출판
- 1885년, Breitkopf & Härtel
(슈베르트 사후 57년) - 연주 시간
- 약 27~30분
슈베르트는 자신이 쓴 교향곡 5번이 인쇄되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악보가 처음 출판된 건 1885년,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57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5번 악보를 품고 있던 사람은 작곡가의 형 페르디난트 단 한 명이었습니다. 27분짜리 4악장 교향곡 한 편이 반세기 넘게 형의 책상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권 해설지가 이 곡을 부르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모차르트풍의 청춘 교향곡’.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풍(風)이 아니라 편지였어요. 19세 보조교사는 모차르트의 스타일을 흉내 낸 게 아니라, 모차르트에게 답장을 쓰고 있었던 겁니다. 그 답장이 어쩌다 거실 한 칸에서 태어났는지, 지금부터 따라가 봅니다.

19세 보조교사가 모차르트에게 부친 편지
1816년 6월 13일, 슈베르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 모차르트여, 불멸의 모차르트여! 그대는 더 밝고 더 좋은 삶의 자취를 우리 영혼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끝없이 새겨 두었던가!” 오토 에리히 도이치가 엮은 슈베르트 사료집(『Schubert: A Documentary Biography』)에 전하는, 열아홉 살 보조교사의 일기 한 대목입니다.
이 일기를 쓴 사람의 직업을 알면 문장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당시 슈베르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빈 외곽 힘멜포어트그룬트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어린아이들에게 알파벳과 셈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이 일을 진심으로 싫어했답니다. 교실 칠판 앞에서의 하루가 그에게는 견디는 시간이었습니다.
퇴근하면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모차르트를 향한 헌사를 썼고, 석 달 뒤에는 그 모차르트의 어법을 빌려 자신의 교향곡을 만들었습니다. 5번의 작곡 시기는 1816년 9월에서 10월. 일기와 작곡 사이에 여름 한 계절이 놓여 있었던 겁니다. 펜으로 쓴 팬레터가 음표로 된 편지로 번역되기까지, 딱 그만큼이 걸린 거예요.
그러니 ‘모차르트풍’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풍이라는 건 멀찍이서 흉내 낸다는 뜻이지만, 슈베르트는 흉내가 아니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모차르트의 악보를, 다른 손에는 자기 펜을 쥐고서요. 19세 소년이 죽은 거장에게 보내는 답장, 그게 바로 5번 교향곡의 정체인 셈입니다.

거실이 곧 무대였다, 하트비히의 살롱 오케스트라
이 편지가 어디서 연주됐는지를 알면 5번 편성의 비밀이 풀립니다. 슈베르트는 빈의 큰 콘서트홀이 아니라, 어느 동네 음악 애호가의 거실에서 5번을 초연했습니다.
이야기는 슈베르트 가족의 사중주 모임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르가 첼로를, 형 페르디난트와 이그나츠가 두 대의 바이올린을, 막내 프란츠가 비올라를 맡았습니다. 네 식구가 모이면 먼저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한 시간씩 연주했답니다. 슈베르트는 작곡가이기 전에, 집에서 매주 활을 켜던 비올라 주자였습니다.
동네 애호가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이 사중주는 작은 관현악단으로 불어났습니다. 인원이 늘자 슈베르트 집 거실로는 비좁아졌고, 오토 하트비히라는 음악 애호가가 자기 집 살롱을 내주었습니다. 하트비히가 살던 곳은 빈의 쇼텐호프였습니다. 19세 슈베르트가 비올라를 끼고 매주 ‘출근’하던 무대가 그렇게 생긴 겁니다.

하트비히의 거실이 빈에서 유일한 가정 음악회였던 건 아닙니다. 1810년대 빈에는 시민들이 자기 거실에 사람을 모아 연주하던 작은 모임이 여럿 있었습니다. 공개 무대에 서려면 귀족 후원자가 필요하던 시절이라, 음악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자기 집을 빌려 작은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1820년대부터 슈베르트의 친구들이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 부르게 될 모임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 살롱이 바로 슈베르트의 전속 악단이었습니다. 새 교향곡 악보를 들고 가면 같은 주에 곧장 초연이 가능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자기 작품을 언제든 올릴 자체 무대를 가진 작곡가였던 겁니다. 빈 시립 악단의 부킹을 몇 년씩 기다릴 필요가 없는, 작곡가에게는 꿈같은 인프라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건 19세 작곡가에게 보기 드문 행운이었습니다.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새 교향곡을 올리려면 후원자와 극장, 흥행을 두고 씨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악보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비올라를 들고 가 동료들과 소리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 상상이 일주일 만에 귀로 검증되는 환경. 그게 19세의 슈베르트가 교향곡을 거푸 써 내려간 비결이기도 했습니다. 자, 그 거실에서 실제로 어떤 소리가 났는지 한 번 들어 볼까요?
클라리넷이 빠진 자리, 19세의 편성 다이어트
편성표를 직접 보면 그 인상이 더 또렷해집니다. 5번에 나오는 관악기는 플루트 1대, 오보에 2대, 바순 2대, 호른 2대. 전부 합쳐 일곱 대뿐입니다. 4년 앞서 나온 베토벤 7번이 같은 자리에 열두 대를 채워 넣은 것과 견주면, 슈베르트는 거의 절반으로 살을 깎았습니다. 클라리넷도, 트럼펫도, 팀파니도, 둘째 플루트도 없습니다. 1816년 빈에서 이런 편성은 분명히 눈에 띄는 선택이었답니다.
이유는 크게 셋입니다.
첫째는 인력의 한계였습니다. 하트비히 살롱에는 마침 클라리넷을 맡을 주자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연주자가 없으면 파트를 쓸 수가 없습니다. 작곡가가 무대를 고른 게 아니라, 무대가 악보를 정해 준 겁니다. 거실의 사정이 곧 오선지의 사정이었어요.
둘째는 모차르트를 향한 의식이었습니다. 모차르트 40번 g단조는 원전판이 클라리넷 없이 짜여 있고, 39번은 클라리넷이 들어가도 음색이 가벼운 편입니다. 슈베르트는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의 가볍고도 어딘가 비극적인 결을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편성을 줄이는 일이 곧 모차르트에게 가까이 다가앉는 일이었습니다.
셋째는 베토벤과의 거리 두기였습니다. 1816년 빈에서 베토벤은 살아 있는 거인이었습니다. 슈베르트는 그 거인 옆에 자기 자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비어 있던 모차르트 옆자리로 가서 앉은 겁니다. 5번의 편성 다이어트는 후퇴가 아니라, 어디에 앉을지를 아는 자의 선택이었습니다.
악장마다 다른 얼굴
이제 곡 안으로 들어갑니다. 27분 동안 슈베르트가 모차르트에게 어떤 편지를 써 내려가는지 따라가 봅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용어 두 개만 일러둘게요. 교향곡 한 악장은 보통 네 단락으로 흐릅니다. 주제를 처음 들려주는 제시부, 그 주제를 끌고 다니며 비트는 발전부, 처음 주제가 다시 돌아오는 재현부, 그리고 끝을 정리하는 코다 순서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자주 나오는 ‘마디’는 악보의 칸 한 개 단위인데, 5번처럼 빠른 곡에서는 마디 하나가 대략 1~2초쯤 됩니다. 여덟 마디라면 10초 남짓한 구간으로 이해하시면 되고요.
1악장 Allegro, 거실 문이 열리는 노크
1악장은 첫 네 마디에서 이 곡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 줍니다. 현악기가 가볍게 두 박을 깔면, 다섯째 박에서 플루트가 8분음표로 위를 향해 솟아오릅니다. 베토벤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주먹으로 화음을 내리쳤을 테지만, 슈베르트는 조용히 노크를 합니다. 살롱 음악이니까요.
그러다 발전부에서 슈베르트가 슬쩍 어두워지는 대목을 내밀습니다. g단조로 비껴가는 짧은 구간인데, 평온하던 거실 음악이 갑자기 깊이를 들키는 순간이거든요. 19세 작곡가가 모차르트 어법 위에 처음으로 자기 손가락 자국을 눌러 찍는 자리입니다.
중요한 건 이 어둠이 짧게 끝난다는 점입니다. 베토벤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어둠을 한 악장 길이로 늘렸을 텐데, 슈베르트는 어두운 문을 잠깐 열어 보이고 곧 닫아 버립니다. 거실의 매너였습니다. 동네 아저씨들 앞에서 한 악장짜리 비극을 펼치면 분위기가 깨질 테니까요. 그런데도 그 짧은 그림자 속에는 훗날 『겨울 나그네』에서 흘러나올 장단조 미끄러짐의 씨앗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후기 슈베르트 비극의 작은 모형이 19세의 펜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2악장 Andante con moto, 모차르트 40번 옆자리
여기가 편지의 본문입니다. 5번에서 가장 모차르트에게 가까이 다가앉은 악장입니다.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드는 『Schubert: The Music and the Man』(1997)에서 이 안단테가 모차르트 후기 어법과 얼마나 가까운지 짚었습니다. E♭장조의 노래하는 첫 주제는 화성의 걸음걸이도, 악기를 배치하는 손길도 모차르트의 그것과 나란히 서 있습니다. 우연이라 부르기엔 닮은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이걸 표절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표절이라면 숨겼을 테니까요. 5번 안단테는 모차르트의 악보 위에 19세 소년이 자기 사인을 적어 넣은 편지입니다. “당신 글씨를 빌렸으니 봐주세요” 하는 그 마음이, 주제가 두 번째로 돌아올 때 슬며시 드러납니다. 이때 슈베르트는 갑자기 C♭장조 쪽으로 미끄러지는데, 본조에서 두어 정거장쯤 떨어진 다른 동네로 차를 몰고 가는 듯한 색감 변화입니다. 모차르트는 좀처럼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차르트풍’이 아니라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답장’이라는 말이, 바로 이 순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점이 있습니다. 슈베르트가 편지를 부친 상대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슈베르트가 태어나기 6년 전에 떠났으니, 만날 수도 답장을 받을 수도 없는 상대였습니다. 5번 안단테는 애초에 닿지 못할 편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슈베르트는 이 편지를 가장 정성껏 써 내려간 듯합니다. 닿지 못할 줄 알면서도 쓰는 글에는 묘한 진심이 배어들거든요. 2악장이 유난히 깊게 들리는 건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3악장 Menuetto, g단조라는 신호
3악장에 들어가기 전 용어 한 줄만 짚을게요. 미뉴에트는 18세기 궁정에서 추던 3박자 춤곡이고, 그 자리를 더 빠르고 거칠게 대신한 형식이 스케르초입니다. 미뉴에트 한가운데에는 분위기가 다른 단락이 한 번 끼는데, 그게 ‘트리오’라 불리는 중간 부분입니다. 보통 미뉴에트 → 트리오 → 미뉴에트 순서로 돌아옵니다.
이 악장의 조성을 보면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g단조입니다. 모차르트 40번의 미뉴에트와 똑같은 조성입니다. 슈베르트가 우연히 같은 조성을 골랐을 리는 없습니다.
여기서 시대의 격차가 한눈에 보입니다. 베토벤은 이미 1802년 2번 교향곡부터 미뉴에트 자리에 스케르초를 들여놓았습니다. 1816년의 빈에서 미뉴에트는 한 세대 전의 형식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19세 슈베르트는 굳이 미뉴에트를 골랐고, 조성까지 모차르트와 맞췄습니다. 어떤 책은 이걸 두고 “보수적”이라 부릅니다. 베토벤이 앞서갔는데 슈베르트가 한 발 뒤에 있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일까요? 베토벤이 앉은 자리는 빈에 한 자리뿐이었고, 모차르트 옆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으니, 슈베르트는 뒤처진 게 아니라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4악장 Allegro vivace, 편지를 봉투에 넣는 시간
4악장은 가벼움이 정말로 가벼운 악장입니다. 슈베르트 만년 가곡들의 어두운 톤 옆에 두면, 5번의 끝악장은 거의 다른 사람이 쓴 곡처럼 들릴 정도입니다.
현악기가 16분음표로 달리고, 관악기가 끼어들었다 빠지고, 슈베르트가 좋아하는 뜻밖의 조성 전환이 두어 번 스쳐 갑니다. 그래도 내내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슈베르트는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습니다. 베토벤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다른 조성으로 발을 들여놓고 한 단락짜리 사건을 만들었을 텐데, 슈베르트는 미끄러지듯 들어왔다가 미끄러지듯 본조로 돌아옵니다. 뜻밖의 전환을 큰 사건으로 부풀리지 않는 것, 그게 4악장의 미덕입니다.
코다에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네 마디로 끝낼 마무리는 네 마디로 끝납니다. 5번의 결말은 1악장 첫머리의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울리는 식인데, 거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온 음악이 같은 문으로 가만히 빠져나가는 모습입니다. 끝까지 거실의 매너를 지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페이지를 마무리한 다음 날, 슈베르트는 다시 학교로 출근해 어린아이들의 알파벳 수업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교향곡이 멈춘 8년, 거실이 사라진 뒤
1817년, 하트비히가 결혼을 합니다. 살림을 차리려면 거실이 필요하니, 살롱도 내줘야 했습니다. 슈베르트의 전속 악단이 그렇게 해산된 겁니다.
그 직후 슈베르트의 교향곡 작곡은 멈춰 버립니다. 1818년에 6번을 마친 뒤로는 어떤 교향곡도 끝맺지 못했습니다. 7번은 단편으로 남았고, 8번 『미완성』은 두 악장에서 멈췄으며, 9번 『대(大)』를 본격적으로 붙든 게 1825년이니, 거실이 사라진 시점부터 따지면 사실상 여러 해의 공백이 벌어졌습니다.
음악사 책은 이 공백을 보통 “슈베르트의 교향곡 위기”라 부릅니다. 베토벤의 그늘이 너무 컸다, 작곡 기법이 무르익는 과정이었다, 이런 분석이 표준입니다.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합니다. 슈베르트는 들어줄 사람을 잃었던 겁니다.
1816년의 슈베르트는 새 교향곡을 쓰면 다음 주에 비올라를 들고 하트비히 거실로 가서 동네 아저씨들과 초연할 수 있는 작곡가였습니다. 1818년의 슈베르트는 그 무대가 사라진 사람이었고, 빈 콘서트홀에서 자기 곡을 올릴 통로도 없는 작곡가였습니다. 교향곡을 4악장까지 완성해도 들어줄 무대가 없는데, 누가 끝까지 펜을 들겠습니까. 슈베르트가 교향곡을 멈춘 건 재능이 식어서가 아니라, 들어줄 거실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같은 시기 그의 다른 출력에 남아 있습니다. 거실이 사라진 뒤로 슈베르트는 가곡을 쏟아 냅니다. 가곡은 친구 거실에서 누군가 피아노 앞에 앉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초연이 되는 장르입니다. 반면 교향곡은 서른 명 안팎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야 하는 30분짜리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작곡가의 펜이 가곡 쪽으로 쏠린 건 재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들어줄 무대가 어느 쪽에 남아 있었느냐의 문제였어요. 그래서 5번이 특별합니다. 자기 무대를 가지고 쓴 마지막 교향곡입니다.

페르디난트가 지킨 그 악보가 마침내 활자로 찍힌 건 1885년이었습니다.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슈베르트 전집을 펴내면서 5번부터 8번까지를 한데 묶은 교향곡 권이 그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작곡가가 펜을 놓은 1816년 가을부터 따지면 69년, 사후로 따지면 57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19세에 쓴 거실용 교향곡 한 편이 활자가 되기까지 사람의 한평생만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전집의 교향곡들을 손봐 인쇄에 부친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세요? 요하네스 브람스였거든요.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를 누구보다 깊이 흠모하던 그 브람스 말입니다. 19세 소년이 죽은 모차르트에게 부친 편지를, 반세기 뒤 또 다른 거장이 펜을 들어 봉투에서 꺼내 읽은 셈입니다. 형의 서랍에서 잠들어 있던 27분짜리 편지는 그렇게 브람스의 손을 거쳐 온 세상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됐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슈베르트 5번은 클래식 입문자에게 권하기 좋은 곡입니다. 베토벤 9번처럼 한 시간 넘게 의자에 붙들려 있을 일도 없고, 슈베르트 후기 가곡처럼 우울에 잠길 일도 없으니까요. 27분, 그게 전부입니다. 출퇴근 지하철 한 번 타고 내릴 동안 끝납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머릿속에 그림 한 장이 떠오릅니다. 1816년 빈, 하트비히 자택 거실, 의자 서른 개쯤, 19세 슈베르트가 비올라를 들고 동네 아저씨들 사이에 끼어 앉아 첫 박을 긋는 모습. 그 그림이 떠오르면 곡의 규모가 이해됩니다. 5번은 본디 거실용 음악입니다. 큰 콘서트홀에서 들으면 오히려 결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리고 2악장이 시작될 때 모차르트 40번 2악장을 옆에 켜 두고 번갈아 들어 보세요. 19세 슈베르트가 어떤 종이 위에 자기 사인을 적었는지 귀로 보일 겁니다. 두 곡 사이의 닮음과 어긋남을 직접 짚어 보는 재미가 5번을 두 배로 키워 줍니다.
추천 음반, 편파 리뷰
비첨과 로열 필하모닉(1959, EMI)을 입문 1순위로 권합니다. 활을 종이장처럼 가볍게 쓰는 우아함이 5번을 왜 ‘모차르트적’이라 부르는지 가장 쉽게 알려 줍니다. 다만 너무 매끈해서 어두운 모서리는 잘 안 보이는 게 흠입니다. 그 모서리까지 듣고 싶다면 아르농쿠르와 콘세르트헤바우(1992, Teldec)가 답입니다. 시대악기 발상을 모던 오케스트라에 들이부어 현이 거칠게 살아나는데, 호불호는 분명히 갈립니다. 1816년 거실 규모 그대로를 듣고 싶다면 매케러스와 스코틀랜드 챔버 오케스트라(Hyperion)가 제격입니다. 편성을 작게 줄여 살롱의 친밀함을 21세기에 재현하는데, 대신 큰 음향의 두께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추천 연주 영상
유튜브에서 5번 전곡을 고를 때는 콘서트홀 규모와 지휘자의 의도를 함께 봐야 합니다. 살롱 곡을 거대한 홀에 올리면 곡이 조금 외로워 보이기도 하니까요. 카를 뵘과 빈 필하모닉의 실황은 그 균형을 잘 잡은 연주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본문에서 짚은 세 지점은 악보를 펴 놓고 들으면 훨씬 또렷하게 잡힙니다. 1악장 첫머리 플루트가 솟아오르는 노크, 2악장 첫 주제가 모차르트 40번과 나란히 걷는 대목, 그리고 3악장 미뉴에트가 g단조로 들어서는 순간입니다. 세 곳만 귀에 담아도 5번이 어떤 편지인지 절반은 읽힙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1885년 Breitkopf & Härtel 전집 스캔으로 받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슈베르트가 끝내 보지 못한 그 출판본입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5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슈베르트 교향곡을 처음 듣는데 5번부터 들어도 괜찮을까요?
왜 클라리넷·트럼펫·팀파니가 빠진 작은 편성을 골랐나요?
슈베르트가 자신의 5번 출판본을 정말 보지 못하고 떠났나요?
초연이 거실에서 이뤄졌다는 게 사실인가요?
‘모차르트풍’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 표현인가요?
음악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
클래식은 서로 이어진 이야기를 알게 될 때 울림이 더 커집니다. 5번이 모차르트에게 부친 편지였다면, 아래 곡들은 그 편지가 오간 길목에 놓인 이정표입니다. 슈베르트가 답장을 쓴 원본부터, 거실을 잃은 뒤 그가 도착한 자리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