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 만프레드 서곡, Op.115

자기혐오에 불타던 슈만의 12분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
곡명
만프레드 서곡, 작품번호 115
(Manfred Overture, Op. 115)
작곡 시기
1848년 8월~10월 (서곡), 11월 (전곡 부수음악 완성)
형식
느린 서주와 코다를 갖춘 소나타 형식의 단일 악장 서곡
내림마단조 (E♭ minor / Es-moll), 4/4박자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팀파니, 현 5부
초연
서곡 — 1852년 3월, 라이프치히 (슈만 지휘)
전곡 — 1852년 6월 13일, 바이마르 궁정극장 (프란츠 리스트 지휘)
연주 시간
약 12분

이 곡은 — 죄의식 속에서 구원도 속죄도 거부한 채 스스로 무너지는 바이런의 영웅을, 슈만이 12분짜리 오케스트라 한 곡에 통째로 욱여넣은 서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첫 총주가 쾅 터진 직후 홀로 읊조리는 오보에 선율. 이 한 가닥이 곡 전체의 씨앗이거든요.

첫 음반 — 조지 셸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Sony / Epic). 구조가 또렷해 입문에 가장 안전합니다.

1848년 드레스덴, 슈만은 오페라 《게노베바》를 겨우 끝낸 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숨 돌릴 법도 한데, 이 양반은 곧장 바이런의 극시 《만프레드》에 달려들었거든요. 서곡을 포함해 16곡짜리 부수음악을 단숨에 써냈는데, 그중 오늘날 연주회 무대에 살아남은 건 딱 한 곡. 이 서곡뿐입니다.

슈만 자신이 “내 모든 작품 중 가장 강렬한 것”이라 자부했던 12분. 그런데 정작 이 곡을 끌어낸 원작은 무대에 올릴 수도 없는, 책상 앞에서 혼자 읽으라고 쓴 극이었습니다. 연기할 수 없는 드라마에서 어떻게 12분짜리 명곡이 나왔을까요?

조지 고든 바이런 초상화, 리처드 웨스톨 작
록스타 같았던 시인, 바이런. 그가 만든 영웅이 한 세대의 예술가들을 사로잡았지요.

알프스 절벽 끝에 선 남자, 그리고 슈만

조지 고든 바이런. 낭만주의 시대의 록스타라 불러도 과장이 아닌 인물이지요. 1817년에 내놓은 극시 《만프레드》는 알프스 고성에 틀어박힌 귀족 만프레드의 이야기입니다. 금지된 사랑이었던 아스타르테는 죽고, 만프레드는 그 죄책감에 짓눌려 초자연적 존재들을 불러내 기억을 지워달라 구걸하거든요. 돌아오는 건 매번 거절뿐이었습니다.

신에게도 악마에게도 끝내 무릎 꿇지 않은 채, 만프레드는 제 의지로 죽음을 맞습니다. “내 파멸은 내 안에 있었으며, 내 것이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는 거죠. 누구의 구원도 받지 않겠다는 이 오만한 고독 — 19세기판 안티히어로의 정석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 무대극이 아닙니다. 바이런 본인이 “읽기 위한 드라마(closet drama)”라고 못을 박았거든요. 배우가 연기하라고 쓴 게 아니라 책상 앞에서 눈으로 읽으라고 쓴 극이라는 뜻입니다. 3막 구성이긴 한데 줄거리보다는 만프레드의 독백과 내면 고백이 거의 전부예요. 1막에선 정령들에게 망각을 빌어 보지만 아스타르테만은 끝내 잊지 못하고, 2막에선 알프스의 요정 왕과 지하세계의 아리마네스 앞에 끌려가며, 3막에선 수도원장이 내민 구원의 손마저 밀어냅니다.

존 마틴이 그린 융프라우 위의 만프레드 (1837)
존 마틴, 《융프라우 위의 만프레드》(1837). 발밑으로 입을 벌린 심연 — 슈만이 음표로 옮기려던 정서가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바이런이 빚어낸 ‘바이런적 영웅(Byronic hero)’은 당대 유럽 예술가들에게 일종의 밈이었습니다. 사회에 반항하면서도 죄의식에 짓눌리는 이 독특한 캐릭터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더불어 낭만주의의 양대 축을 이뤘지요. 화가들도 앞다투어 만프레드를 그렸는데, 그중 영국 화가 존 마틴이 1837년에 남긴 그림 한 점이 특히 유명합니다. 까마득한 융프라우 절벽 끝에 홀로 선 사내, 그 발밑으로는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어요. 슈만이 음악으로 붙잡으려 한 정서가 바로 이 장면에 응축돼 있는 셈입니다.

차이콥스키도 훗날 같은 텍스트로 교향곡을 남겼습니다만, 슈만의 접근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 시간짜리 교향곡으로 펼치는 대신, 서곡 한 곡 안에 만프레드의 심리적 궤적 전부를 12분으로 압축해 넣은 거죠. 농축의 기술이라고 할까요. 그 농축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려면, 당시 슈만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드레스덴 — 무너지는 정신, 폭발하는 창작

1844년 말, 슈만은 라이프치히를 떠납니다. 건강이 무너진 탓이었죠. 자신이 창간한 《신음악잡지》 편집장직마저 내려놓은 직후였습니다. 행선지는 드레스덴. 우울증과 청각 이상, 정신적 불안 — 상태는 누가 봐도 좋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창작욕만은 거꾸로 폭발했거든요. 교향곡과 실내악, 오페라를 닥치는 대로 써 내려가던 바로 그 시기에 바이런의 《만프레드》와 마주친 겁니다.

클라라 슈만의 일기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슈만은 《만프레드》를 소리 내어 읽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였다는 거예요. 스케치는 1848년 8월에 시작됐고, 서곡 자체는 그해 10월에 완성됐습니다. 나머지 부수음악은 11월에 마무리됐고요. 몇 달 만에 전곡을 써낸 셈이니, 천재라고 마감이 느린 건 아니었나 봅니다.

로베르트 슈만, 1850년 다게레오타이프
1850년경의 슈만. 만프레드를 쓰던 무렵, 그는 이미 자기 안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만프레드라는 인물이 슈만에게 왜 그토록 각별했을까요? 짐작이 어렵지 않습니다. 고독, 내면의 분열, 세상과의 불화 — 만프레드의 이야기이자 드레스덴 시절 슈만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요. 이미 정신적 위기의 징후를 보이던 슈만이, 극시 속 만프레드의 번뇌에 자기 자신을 포갰을 가능성이 큽니다. 남의 이야기를 쓰는 척하면서 실은 제 이야기를 쓴 거죠.

서곡 초연은 1852년 3월, 라이프치히에서 슈만 본인의 지휘로 올랐습니다. 전곡 초연은 같은 해 6월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였는데 — 지휘봉을 잡은 사람이 누구였느냐면, 프란츠 리스트였습니다. 리스트는 이 작품을 두고 슈만의 음악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라 평했다고 전해지지요. 리스트가 빈말로 칭찬을 흘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이쯤 되면 진심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리스트가 이 곡을 무대에 올린 게 단순한 친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바이마르는 리스트를 중심으로 문학과 음악을 잇는 실험이 한창이던 곳이었거든요. 시와 극에서 출발한 음악, 그러니까 표제적 발상은 리스트가 평생 밀어붙인 방향이었습니다. 바이런의 극시에서 길어 올린 슈만의 만프레드는 그 흐름에 딱 들어맞았죠.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던 슈만의 음악이 가장 진보적인 진영의 손에서 빛을 봤다는 것 —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16곡 중 15곡은 어디로 사라졌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우리가 ‘만프레드 서곡’이라 부르는 이 곡은, 원래 거대한 부수음악의 첫 번째 조각일 뿐이었거든요. 슈만은 바이런의 극을 통째로 무대에 올릴 작정이었고, 그래서 서곡 말고도 합창과 독창, 기악곡까지 모두 16개의 음악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있는 건 사실상 이 서곡 하나뿐이죠. 나머지 15곡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답은 형식 그 자체에 있습니다. 슈만이 쓴 부수음악의 상당 부분이 ‘멜로드라마(melodrama)’였던 까닭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멜로드라마는 신파극이 아니라, 배우의 대사 낭독 위에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깔아주는 기법을 가리킵니다. 노래도 아니고 순수한 기악도 아닌, 말과 음악의 경계에 걸친 형태죠. 만프레드의 독백이 흐르는 동안 음악이 그 밑에서 일렁이는 식이고요.

문제는 이게 배우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만으로 재현하기가 어려우니, 자연히 연주 빈도가 곤두박질친 거예요. 그러니 살아남은 서곡이 더더욱 특별해집니다. 배우도, 대사도, 합창도 없이 오로지 오케스트라만으로 만프레드의 비극 전체를 압축해낸 유일한 조각이니까요. 나머지 15곡이 정기 연주회 무대에서 자취를 감춘 자리를, 이 서곡 하나가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 셈입니다.

12분 안에 일어나는 네 번의 붕괴

이제 곡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서곡은 4/4박자에 내림마단조(E♭ minor), 느린 서주와 마무리 코다를 갖춘 소나타 형식입니다. 크게 네 영역으로 나뉘는데 — 각 영역마다 만프레드의 심리 상태가 바뀐다는 게 이 곡을 듣는 열쇠거든요. 위 ‘먼저 듣기’ 영상을 틀어 두고, 네 번의 국면 전환을 귀로 따라가 보세요.

서주 — 문을 걷어차고 들어오는 침묵

곡이 시작되자마자 짧은 총주(tutti)가 쾅 터집니다. 마치 문을 걷어차듯이요. 그런데 곧바로 템포가 급격히 주저앉으면서, 오보에 한 대가 반음계 선율을 홀로 읊기 시작하지요. 바로 이 선율이 작품 전체의 씨앗입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 번 포효한 직후에 오보에 하나가 넋두리하는 이 대비 — 슈만이 깔아 둔 극적 설계의 첫 단추인 셈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시작하자마자 터지는 총주가 가라앉으면, 오보에가 혼자 남아 한숨처럼 선율을 흘립니다. 이 가느다란 한 가닥을 기억해 두세요. 곡 내내 모습을 바꿔 가며 다시 찾아오거든요.

제시부 — 정박을 놓치는 발

“격정적인 빠르기로(In leidenschaftlichem Tempo)”라는 지시어와 함께 주부가 출발합니다. 제1주제는 서주의 음형을 싱커페이션과 점음표 리듬으로 비틀어낸 것인데, 이 엇박 리듬이 핵심이에요. 정박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느낌 — 만프레드가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불안을 음악으로 옮긴 까닭입니다.

이어 음악은 밝은 쪽 조성으로 잠시 옮겨가고, 그 위로 제2주제가 떠오릅니다. 제1바이올린이 이끄는 이 선율은 아스타르테를 향한 그리움을 노래하듯 서정적이지요. 몰아붙이는 제1주제와 애틋한 제2주제, 이 둘의 대비가 제시부의 뼈대를 이룹니다.

발전부 — 끝나지 않는 고통

슈만은 이 곡의 발전부를 유독 길게 끌고 갑니다. 보통 발전부가 제시부보다 짧거나 비슷한 데 비하면 꽤 이례적인 비율이죠. 그런데 이 불균형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만프레드의 고통이 얼마나 길고 질긴지를, 음악의 구조가 직접 말해 주는 거예요. 서주의 동기와 제1주제의 싱커페이션, 제2주제의 서정적 파편이 뒤엉키고 충돌하며 긴장을 끌어올리다가 — 한 번 숨을 고르는 지점에서 잠시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발전부가 한참 달아오르다 돌연 멈칫하는 대목이 옵니다. 그 짧은 정적이 만프레드가 잠깐 숨을 고르는 순간이에요. 곧이어 음악은 다시 무너지기 시작하지요.

재현부와 코다 — 박수가 터지지 않는 끝

다시 으뜸조로 복귀하며 재현부가 시작됩니다. 여기까지는 소나타 형식의 교과서적 전개예요. 이 곡의 진짜 묘미는 그다음, 코다에 있습니다. 제2주제가 다시 나타나고, 금관과 목관의 화성 위로 제1바이올린이 느린 템포로 노래하지요. 두 주제의 파편이 뒤섞이며 점점 옅어지다 사라집니다.

화려한 피날레 대신 슈만이 택한 건 적막이었습니다. 만프레드의 죽음, 그 자체죠. 끝나고도 박수가 곧장 터지지 않습니다. 그 몇 초의 침묵이야말로 이 서곡이 남기는 마지막 한 방입니다.

약점이 필살기가 되는 순간

2관 편성에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악기 구성만 떼어 놓고 보면 비교적 평범합니다. 그런데 슈만이 이 편성에서 뽑아내는 색깔은 결코 평범하지 않아요. 서주의 오보에 독주, 발전부에서 현악과 금관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식, 코다에서 목관이 빚어내는 투명한 화성 — 1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이 모든 게 응축돼 있거든요.

특히 눈여겨볼 건 트롬본 세 대입니다. 슈만 당대만 해도 트롬본은 교회 음악이나 장송 행렬에서나 끌어오던 묵직한 악기였거든요. 베토벤이 교향곡 5번 피날레에 와서야 조심스레 불러들였을 만큼, 함부로 쓰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트롬본을 12분짜리 서곡에 세 대나 박아 넣었다는 건, 슈만이 처음부터 이 곡을 어떤 무게로 끌고 갈지 작정했다는 뜻이지요. 발전부가 정점으로 치달을 때 트롬본이 받쳐 주는 저음은, 만프레드가 짊어진 죄의 무게를 그대로 소리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사실 슈만의 관현악법은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유명한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죠. 성부 간 역할 분담이 흐릿하고 중음역대에 소리가 뭉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만프레드 서곡》에서는 바로 이 단점이 장점으로 뒤집힙니다. 음역대가 겹치며 생기는 묵직하고 답답한 음향이, 만프레드의 어둡게 막힌 내면 세계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까닭이에요.

다른 곡에서는 약점이던 것이 이 곡에서는 필살기가 된 겁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목관이 떨리는 듯한 선율을 부르는 대목 — 이 서곡에서 가장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 중 하나로 꼽고 싶습니다. 결함이라 불리던 것이 정서의 핵심을 정통으로 찌르는, 이런 역설이 또 있을까요.

차갑게, 그리고 뜨겁게 — 야노프스키와 하딩

같은 악보를 손에 쥐어도 지휘자에 따라 만프레드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합니다. 위 ‘먼저 듣기’ 플레이어의 마레크 야노프스키와 hr-신포니오케스트라 연주는 구조적 명료함에 방점을 찍어요. 서주의 총주와 오보에 독주를 또렷이 갈라놓고, 발전부의 충돌을 흐트러짐 없이 쌓아 올리지요. 만프레드의 고뇌를 한 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조망하는 해석이라 할 만합니다.

아래 영상은 다니엘 하딩이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끈 실황입니다. 젊은 연주자들로 꾸려진 악단답게 날것의 에너지가 펄떡이거든요. 야노프스키가 설계도를 차분히 펼쳐 보인다면, 하딩은 그 설계도에 불을 지릅니다. 같은 12분을 두고 한쪽은 차갑게, 한쪽은 뜨겁게 —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 자체가, 이 서곡이 품은 해석의 깊이를 증명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다니엘 하딩 ·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젊은 단원들의 패기가 서곡의 격정과 정면으로 만나는 실황입니다.

이 12분을 200% 즐기는 법

이 곡을 들을 때 세 가지만 마음에 담아 두면, 음악이 확 다르게 들립니다.

첫째, 서주의 오보에를 붙잡으세요. 첫 총주가 쾅 터진 직후 등장하는 오보에의 반음계 선율 — 이것이 작품 전체의 씨앗입니다. 이 한 가닥이 주부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뒤틀리는지 따라가다 보면, 소나타 형식의 논리와 만프레드의 심리 변화가 겹쳐서 들리기 시작하거든요. 오보에 특유의 가느다란 음색이 만프레드의 고독과 맞아떨어진다는 건, 슈만이 의도했든 아니든 절묘한 선택이었습니다.

둘째, 싱커페이션의 불안을 몸으로 느껴 보세요. 주부 제1주제의 엇박 리듬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에요. 만프레드가 어디에도 발을 딛지 못하는 상태를 그대로 음악으로 옮긴 것이지요. 슈만이 피아노 음악에서 즐겨 쓰던 리듬적 모호함이 오케스트라로 확대되면 이런 모양이 됩니다. 정박에 닿지 못하고 계속 엇나가는 리듬 — 12분 내내 만프레드가 평안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듣는 사람이 몸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장치예요.

셋째, 코다에서 숨을 참아 보세요. 마지막에 제1바이올린이 느린 템포로 제2주제를 회상하며 곡이 스르르 꺼지는 장면. 이게 만프레드의 죽음입니다. 대부분의 서곡이 화려한 종결로 관객을 일으켜 세우는 것과 정반대의 전략이죠. 끝나고도 박수가 바로 터지지 않습니다. 그 몇 초의 침묵까지가 이 서곡의 일부라는 걸, 직접 객석에서 겪어 보면 잊히지 않을 겁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건넨 불씨 — 브람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이 서곡에서 불씨를 얻었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 두 작품을 나란히 틀어 보면 놀라울 만큼 겹치는 지점이 있어요. 도입부의 어두운 에너지, 싱커페이션 활용,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발전부 구성까지요. 브람스가 교향곡 1번 1악장 초고를 클라라에게 처음 내보인 게 1862년이고, 완성까지는 그로부터 14년이 더 걸렸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 슈만의 이 12분짜리 서곡이 브람스에게 얼마나 무거운 기준점이었는지 짐작이 가지요.

로베르트 슈만 초상화 (1839년 리토그래프)
1839년의 슈만 — 요제프 크리후버 리토그래프. 훗날 한 무명 청년의 데뷔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특히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의 서주를 이 서곡의 서주와 포개 보면 말이죠. 어둠 속에서 음악이 움트는 방식이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팀파니의 집요한 반복 위로 현악이 솟아오르는 브람스의 도입부는, 슈만의 총주-서주 전환 구조를 한 단계 더 키운 것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어요. 스승의 12분을 제자가 45분으로 늘려 잡은 셈이라고 할까요.

여기에 한 가지 드라마가 더 얹힙니다. 1853년, 스무 살의 브람스가 뒤셀도르프의 슈만 집을 찾아왔을 때 — 슈만은 《신음악잡지》에 “새로운 길”이라는 글을 써서 이 무명 청년을 세상에 소개했거든요. 19세기판 공식 데뷔식이었던 셈이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3년 뒤, 슈만은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을 완성한 1876년이면, 그는 이미 스승의 관현악 유산을 20년 넘게 곱씹은 뒤였습니다.

같은 만프레드, 다른 길 — 차이콥스키

바이런의 《만프레드》에 음악을 붙인 건 슈만만이 아니었습니다. 차이콥스키도 1885년에 《만프레드 교향곡》을 완성했지요. 4악장 구성의 표제 교향곡으로, 각 악장이 극시의 특정 장면을 그리는 구조예요. 1악장은 만프레드의 방황, 2악장은 알프스의 요정, 3악장은 산간 마을의 목가, 4악장은 지하 궁전과 죽음.

접근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슈만이 12분짜리 서곡에 만프레드의 심리를 응축했다면, 차이콥스키는 한 시간 가까운 교향곡에 서사를 활짝 펼쳐 놓았으니까요. 슈만의 방식이 내면의 농축이라면, 차이콥스키의 방식은 외면의 확장인 셈입니다. 재미있는 건 차이콥스키 1악장의 만프레드 주제가, 슈만 서곡 서주의 반음계적 하강과 묘하게 닮은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점이에요. 차이콥스키가 슈만의 서곡을 접했을 법도 하지만, 직접 언급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요. 누가 더 원작에 충실한가를 따지기보다, 같은 텍스트에서 두 작곡가가 무엇을 읽어냈는지를 견줘 보는 쪽이 훨씬 흥미로운 감상법이지요.

악보와 함께 듣기

총보를 따라가며 듣는 만프레드 서곡 — 오보에 동기가 어떻게 곡 전체로 번지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만프레드 서곡 Op.115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서곡은 20세기 이후 독일·오스트리아 지휘자들의 단골 레퍼토리였습니다. 그만큼 명연도 많은데, 성격이 또렷이 갈리는 세 장만 골라 봤어요. 입문이라면 위에서부터 차례로 듣는 걸 추천합니다.

👑 첫 감상 추천

조지 셸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Sony / Epic · 1960년대 녹음

구조적 명료함과 감정의 깊이 사이에서 균형을 정확히 잡아냅니다. 처음 이 곡을 만나는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출발점이에요.

레퍼런스

레너드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

Sony Classical

극적 대비를 끝까지 밀어붙인 해석. 발전부에서 터지는 에너지가 압도적이지만, 차분한 슈만을 기대한 사람에겐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리카르도 샤이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Decca · 슈만 관현악 전집

슈만 특유의 내성적 음향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읽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서도 어두운 핵심은 놓치지 않는 줄타기가 일품입니다.

역사적 명연으로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서주를 극단적으로 느리게 끌어, 만프레드의 고뇌가 거의 물리적으로 만져질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연주회에서 이 서곡은 보통 프로그램 첫 곡으로 놓여요. 12분이라는 길이가 오프닝에 딱 맞고, 어두운 분위기가 뒤이어 올 교향곡의 정서적 토대를 깔아 주니까요. 슈만 교향곡과 묶이는 경우가 많지만 브람스 교향곡 앞에 배치되기도 하는데 — 두 작품의 인연을 떠올리면 더없이 자연스러운 짝이지요.

자주 묻는 질문

슈만 만프레드 서곡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영국 시인 바이런의 극시 《만프레드》에서 영감을 받은 곡입니다.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구원도 속죄도 거부한 채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비극을, 약 12분의 관현악에 압축해 담았습니다. 슈만 자신이 가장 강렬한 작품으로 꼽았을 만큼, 어둡고 격정적인 정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지배합니다.

만프레드 서곡의 조성과 연주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내림마단조(E♭ minor)로, 느린 서주와 코다를 갖춘 소나타 형식의 단일 악장 서곡입니다. 연주 시간은 약 12분이고, 2관 편성에 트롬본 3대까지 더해진 오케스트라로 연주됩니다. 짧지만 밀도가 대단히 높아, 낭만주의 연주회용 서곡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만프레드 서곡 외에 다른 부수음악도 있나요?

네. 슈만은 바이런의 극 전체를 위해 서곡을 포함해 모두 16곡의 부수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다만 나머지 곡 상당수가 배우의 낭독 위에 음악을 까는 멜로드라마 형식이어서, 배우 없이 연주하기 어려운 탓에 오늘날 연주회장에서는 사실상 서곡만 살아남았습니다.

슈만 서곡과 차이콥스키 만프레드 교향곡은 어떻게 다른가요?

둘 다 바이런의 같은 텍스트에서 출발했지만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슈만은 12분짜리 서곡에 만프레드의 심리를 응축했고, 차이콥스키는 1885년에 네 악장짜리 표제 교향곡으로 극의 서사를 펼쳐냈습니다. 슈만이 내면의 농축이라면, 차이콥스키는 외면의 확장이라 할 수 있지요.

만프레드 서곡의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구조적 명료함을 원한다면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녹음이, 극적 긴장을 원한다면 번스타인과 뉴욕 필하모닉의 녹음이 정평이 나 있습니다. 슈만 관현악 전집으로는 리카르도 샤이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현대적 해석이 호평받지요. 실황 영상으로는 본문에 소개한 다니엘 하딩·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를 추천합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어둠을 통과한 음악들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들을 때보다, 서로 잇닿은 이야기를 알게 될 때 훨씬 깊게 울리거든요. 만프레드의 어둠을 통과했다면, 그 불씨를 이어받은 곡과 슈만의 또 다른 얼굴을 나란히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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