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 만프레드 서곡, Op.115

자기혐오에 불타던 슈만의 12분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
곡명
만프레드 서곡, 작품번호 115
(Manfred Overture, Op. 115)
작곡 시기
1848년 8월~10월 (서곡), 11월 (전곡 부수음악 완성)
형식
느린 서주와 코다를 갖춘 소나타 형식의 단일 악장 서곡
내림마단조 (E♭ minor / Es-moll), 4/4박자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팀파니, 현 5부
초연
서곡 — 1852년 3월, 라이프치히 (슈만 지휘)
전곡 — 1852년 6월 13일, 바이마르 궁정극장 (프란츠 리스트 지휘)
연주 시간
약 12분

이 곡은 — 죄의식 속에서 구원도 속죄도 거부한 채 스스로 무너지는 바이런의 영웅을, 슈만이 12분짜리 오케스트라 한 곡에 통째로 욱여넣은 서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첫 총주가 쾅 터진 직후 홀로 읊조리는 오보에 선율. 이 한 가닥이 곡 전체의 씨앗이거든요.

첫 음반 — 조지 셸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Sony / Epic). 구조가 또렷해 입문에 가장 안전합니다.

1848년 드레스덴, 오페라 《게노베바》의 무거운 짐을 겨우 내려놓은 참이었습니다. 평범한 작곡가라면 한숨 돌릴 법도 한데, 슈만은 기수를 꺾어 곧장 바이런의 극시 《만프레드》로 돌진했거든요. 서곡을 포함해 16곡짜리 부수음악을 그야말로 맹렬하게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체는 꽤나 가혹했지요. 그 묵직한 꾸러미 중 오늘날 연주회 무대라는 생존 게임에서 끝내 살아남은 건 딱 한 곡, 바로 이 서곡뿐입니다.

작곡가 본인부터가 “내 모든 작품 중 가장 강렬한 것”이라며 어깨에 힘을 잔뜩 주었던 12분입니다. 그런데 묘한 모순이 하나 있죠. 이 불꽃 튀는 음악을 낳은 원작은 정작 무대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책상 앞 독서용 극이었습니다. 배우가 연기할 수 없는 활자 속 드라마는 대체 무슨 수로 12분짜리 명곡으로 탈바꿈했을까요?

조지 고든 바이런 초상화, 리처드 웨스톨 작
록스타 같았던 시인, 바이런. 그가 만든 영웅이 한 세대의 예술가들을 사로잡았지요.

알프스 절벽 끝에 선 남자, 그리고 슈만

조지 고든 바이런. 낭만주의 시대의 록스타라 불러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이름이지요. 그가 1817년에 세상에 던진 극시 《만프레드》는 알프스 고성에 스스로를 가둔 귀족 만프레드의 이야기입니다. 금지된 사랑이었던 아스타르테가 세상을 떠나자, 죄책감에 짓눌린 그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소환해 제발 기억 좀 지워달라고 처절하게 구걸하거든요.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고도 일관된 거절뿐이었습니다.

신의 옷자락도, 악마의 손길도 끝내 뿌리친 만프레드는 오직 자신의 의지로 죽음과 마주합니다. “내 파멸은 내 안에 있었으며, 내 것이었다.” 이 서늘한 한 마디를 툭 던지고 숨을 거두는 거죠. 어느 누구의 구원 따위는 받지 않겠다는 지독하고도 오만한 고독 — 가히 19세기판 안티히어로의 정석이라 할 만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이 애초에 무대 위로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는 겁니다. 바이런 본인이 대놓고 “읽기 위한 드라마(closet drama)”라고 쐐기를 박았거든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 대신, 고요한 책상 앞에서 오직 독자의 눈으로만 따라가야 하는 극이라는 뜻입니다. 3막이라는 번듯한 뼈대는 갖췄지만, 화려한 줄거리 대신 만프레드의 끝없는 독백과 처절한 내면 고백이 지면을 거의 다 채우죠. 1막에서 정령들에게 망각을 빌면서도 아스타르테만은 끝내 지우지 못하고, 2막에선 알프스의 요정 왕과 지하세계의 아리마네스 앞에 끌려가며, 3막에 이르면 수도원장이 내민 구원의 동아줄마저 매몰차게 쳐냅니다.

존 마틴이 그린 융프라우 위의 만프레드 (1837)
존 마틴, 《융프라우 위의 만프레드》(1837). 발밑으로 입을 벌린 심연 — 슈만이 음표로 옮기려던 정서가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바이런이 주조해 낸 이른바 ‘바이런적 영웅(Byronic hero)’은 당시 유럽 예술가들 사이에서 거대한 신드롬이었습니다. 세상에 날을 세우면서도 스스로의 죄의식에 짓눌려 허덕이는 이 기묘한 캐릭터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낭만주의의 두 축을 굳건히 떠받쳤지요. 붓을 든 화가들도 질세라 만프레드를 화폭에 담아냈는데, 그중 영국 화가 존 마틴이 1837년에 남긴 그림 한 점이 유독 눈길을 끕니다. 아찔한 융프라우 절벽 끝에 외톨이처럼 선 사내, 그 발밑으로는 검은 심연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죠. 슈만이 오선지 위로 기어코 낚아채려 했던 정서가 바로 이 한 폭의 장면에 빈틈없이 응축돼 있는 셈입니다.

훗날 차이콥스키 역시 같은 텍스트를 쥐고 교향곡을 남겼습니다만, 슈만이 택한 길은 사뭇 달랐습니다. 느긋하게 한 시간짜리 교향곡으로 펼쳐내는 대신, 서곡 단 한 곡 안에 만프레드의 그 복잡다단한 심리적 궤적 전부를 12분으로 꽉꽉 눌러 담은 거죠. 기가 막힌 농축의 기술이랄까요. 대체 이 지독한 농축액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그 뿌리를 알려면, 당시 슈만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슬쩍 들여다봐야 합니다.

드레스덴 — 무너지는 정신, 폭발하는 창작

1844년 말, 슈만은 짐을 싸서 라이프치히를 뜹니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린 건강 때문이었죠. 제 손으로 세운 《신음악잡지》의 편집장 타이틀마저 씁쓸하게 반납한 직후였습니다. 새 둥지를 튼 곳은 드레스덴. 우울증에 청각 이상, 널뛰는 정신적 불안까지 겹쳐 겉보기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는데, 참 기괴하게도 창작욕만은 거꾸로 맹렬하게 타올랐거든요. 교향곡부터 실내악, 오페라까지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악보를 채워 나가던 바로 그 폭발적인 시기에, 바이런의 《만프레드》와 마주친 겁니다.

아내 클라라 슈만의 일기를 들춰보면 꽤나 흥미로운 대목이 튀어나옵니다. 슈만이 《만프레드》를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갈 때마다 어김없이 눈물을 글썽였다는 이야기죠. 스케치의 첫 삽을 뜬 게 1848년 8월이었고, 서곡 자체의 마침표는 그해 10월에 찍혔습니다. 꼬리표처럼 붙은 나머지 부수음악들도 11월에 싹 정리가 됐고요. 고작 몇 달 만에 전곡을 속전속결로 뽑아낸 셈이니, 천재라고 해서 늘 마감 속도가 느린 건 아니었나 봅니다.

로베르트 슈만, 1850년 다게레오타이프
1850년경의 슈만. 만프레드를 쓰던 무렵, 그는 이미 자기 안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만프레드라는 캐릭터가 슈만에게 왜 그토록 각별하게 다가왔을까요? 그리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짐작이 갑니다. 짙은 고독, 쩍쩍 갈라지는 내면의 분열, 삐걱거리는 세상과의 불화 — 이건 만프레드의 서사이기도 했지만, 드레스덴 시절 슈만 자신의 서늘한 민낯이기도 했으니까요. 이미 위태로운 정신적 위기의 징후를 보이던 슈만이, 활자 속 만프레드의 지독한 번뇌 위에 자기 자신을 슬쩍 포갰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쓰는 척하면서, 실은 자기 고해성사를 써 내려간 셈이죠.

서곡이 처음 세상의 공기를 마신 건 1852년 3월, 라이프치히에서 슈만 본인의 지휘봉 아래서였습니다. 전곡이 통째로 무대에 오른 건 같은 해 6월 바이마르 궁정극장이었는데 — 이때 지휘석을 꿰찬 주인공이 누구였느냐면, 바로 프란츠 리스트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리스트는 이 작품을 두고 슈만의 음악 중 단연 가장 뛰어나다고 평했다 전해지지요. 그가 립서비스로 빈말을 흘리고 다닐 위인은 결코 아니었으니, 이쯤 되면 뼛속까지 우러나온 진심이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잘나가는 리스트가 굳이 이 곡을 무대에 올린 게 얄팍한 친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바이마르는 리스트를 사령탑으로 삼아 문학과 음악을 한데 엮는 도발적인 실험이 펄펄 끓고 있던 곳이었거든요. 활자화된 시와 극에서 출발하는 음악, 그러니까 표제적 발상은 리스트가 평생을 바쳐 밀어붙인 거대한 방향성이었습니다. 바이런의 극시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슈만의 만프레드는 그 톱니바퀴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던 거죠. 늘 보수적이라 꼬리표가 붙던 슈만의 음악이 당대 가장 진보적인 진영의 손아귀에서 찬란하게 빛을 봤다는 사실 — 참으로 묘하고도 짜릿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16곡 중 15곡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나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흥미로운 미스터리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만프레드 서곡’이라 부르는 이 작품, 실은 거대한 부수음악 세트의 첫 번째 조각에 불과했거든요. 애초에 슈만은 바이런의 극을 통째로 무대 위에 올릴 원대한 작정을 품었고, 그래서 서곡 말고도 합창과 독창, 기악곡을 싹 긁어모아 무려 16개의 음악을 빈틈없이 이어 붙였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오늘날 연주회장에서 살아남아 들려오는 건 사실상 이 서곡 단 하나뿐이죠. 정성 들여 쓴 나머지 15곡은 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요?

범인은 다름 아닌 ‘형식’ 그 자체에 숨어 있습니다. 슈만이 야심 차게 써 내려간 부수음악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멜로드라마(melodrama)’였던 까닭입니다. 오해는 마시죠. 여기서 말하는 멜로드라마는 눈물 쏙 빼는 통속극이 아니라, 배우가 묵직하게 대사를 낭독하면 오케스트라가 그 밑으로 음악을 쫙 깔아주는 기법을 뜻하거든요. 노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한 기악도 아닌, 그야말로 말과 음악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터앉은 형태입니다. 만프레드의 고뇌 어린 독백이 흐르는 내내 음악이 그림자처럼 그 밑바닥에서 일렁이는 식이지요.

치명적인 맹점은 바로 여기서 터집니다. 이 기묘한 형태가 낭독하는 ‘배우’ 없이는 아예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오케스트라만 덩그러니 앉은 콘서트홀에서 이를 온전히 재현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니, 자연스레 연주 빈도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겁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끝까지 살아남은 서곡이 더더욱 각별해집니다. 배우도, 구구절절한 대사도, 웅장한 합창도 다 덜어내고 오로지 오케스트라만으로 만프레드의 비극 전체를 밀도 높게 압축해 낸 유일한 조각이니까요. 15곡의 형제들이 정기 연주회 무대에서 쓸쓸히 자취를 감춘 그 거대한 공백을, 이 서곡 하나가 꿋꿋하고도 꽉 차게 메워내고 있는 셈입니다.

12분 안에 일어나는 네 번의 붕괴

자, 이제 본격적으로 곡의 심장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서곡은 4/4박자 내림마단조(E♭ minor)를 입고, 느린 서주와 마무리 코다를 단단히 갖춘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곡은 크게 네 영역으로 쪼개지는데 — 영역을 넘어갈 때마다 만프레드의 심리 상태가 요동치며 바뀐다는 사실이 이 곡의 빗장을 푸는 핵심 열쇠거든요. 위쪽에 걸어둔 ‘먼저 듣기’ 영상을 재생해 두고, 이 네 번의 극적인 국면 전환을 귀로 바짝 뒤쫓아 보시죠.

서주 — 문을 걷어차고 들어오는 침묵

곡이 출발선을 끊자마자 짧은 총주(tutti)가 사정없이 쾅 터져 나옵니다. 누군가 닫힌 문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차고 들이닥치듯이요. 그런데 그 맹렬한 기세가 무색하게 곧바로 템포가 풀썩 주저앉아 버리더니, 오보에 한 대가 쓸쓸한 반음계 선율을 홀로 읊조리기 시작하죠. 명심하세요. 바로 이 위태로운 선율이 작품 전체를 움트게 하는 씨앗입니다. 덩치 큰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바탕 포효를 쏟아낸 직후, 가녀린 오보에 하나가 처량하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이 기막힌 대비 — 이것이야말로 슈만이 치밀하게 깔아 둔 극적 설계의 첫 단추인 셈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시작하자마자 폭발하던 총주가 스르르 가라앉고 나면, 오보에가 홀로 남아 깊은 탄식처럼 선율을 툭 흘려보냅니다. 이 가느다란 한 가닥의 끈을 꼭 쥐고 계셔야 합니다. 곡이 흐르는 내내 교묘하게 얼굴을 바꿔 가며 불쑥불쑥 다시 찾아오거든요.

제시부 — 정박을 놓치는 발

“격정적인 빠르기로(In leidenschaftlichem Tempo)”라는 불길한 지시어와 함께 본격적인 주부가 출발선에서 튕겨 나갑니다. 제1주제는 방금 전 서주의 음형을 싱커페이션과 점음표 리듬으로 묘하게 비틀어버린 꼴인데, 바로 이 엇박 리듬이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정박에 단단히 발을 딛지 못한 채 자꾸만 헛디디며 미끄러지는 듯한 아슬아슬한 감각 — 만프레드가 세상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짙은 불안을, 슈만이 기어코 음악으로 통역해 낸 까닭이죠.

뒤이어 음악은 잠시 볕이 드는 밝은 쪽 조성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위로 스멀스멀 제2주제가 떠오릅니다. 제1바이올린이 앞장서 이끄는 이 선율은 잃어버린 아스타르테를 향한 뼈저린 그리움을 토해내듯 지독하게 서정적이지요.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제1주제와 가슴 시리도록 애틋한 제2주제, 이 극단적인 두 얼굴의 대비가 제시부를 떠받치는 단단한 뼈대가 됩니다.

발전부 — 끝나지 않는 고통

슈만은 이 곡의 발전부를 유난히 집요하고 길게 질질 끌고 갑니다. 통상적으로 발전부가 제시부보다 짧거나 엇비슷한 덩치를 뽐내는 데 비하면 꽤나 낯설고 이례적인 비율이죠. 그런데 기막히게도 이 불균형 자체가 하나의 묵직한 메시지입니다. 만프레드가 짊어진 고통이 얼마나 끝이 없고 질긴지를, 다름 아닌 음악의 뼈대가 직접 웅변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서주에서 던져진 동기와 제1주제의 불안한 싱커페이션, 그리고 제2주제의 서정적인 파편들이 사정없이 뒤엉키고 충돌하며 팽팽한 긴장을 벼려내다가 — 한차례 폭풍이 멎는 찰나의 지점에서 벼락같이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펄펄 끓어오르며 질주하던 발전부가 돌연 브레이크를 밟듯 멈칫하는 대목이 찾아옵니다. 그 찰나의 날카로운 정적이 바로 만프레드가 잠깐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이에요. 하지만 안도하기엔 이릅니다. 곧이어 음악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맹렬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니까요.

재현부와 코다 — 박수가 터지지 않는 끝

음악은 다시 으뜸조로 슬며시 복귀하며 재현부의 막을 올립니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소나타 형식의 모범적인 교과서 전개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됩니다. 이 곡이 감춘 진짜 예리한 비수는 그다음, 꼬리표처럼 붙은 코다에 도사리고 있거든요. 제2주제가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고, 금관과 목관이 쌓아 올린 서늘한 화성 위로 제1바이올린이 한없이 느린 템포로 노래를 읊조립니다. 두 주제의 파편이 허공에서 맥없이 뒤섞이다, 마치 불꽃이 재가 되어 바스러지듯 점점 옅어지며 증발해 버리지요.

팡파르가 울리는 화려한 피날레 대신 슈만이 기어코 택한 결말은 소름 끼치는 적막이었습니다. 만프레드의 쓸쓸한 죽음, 그 차가운 질감 자체를 무대에 덩그러니 던져 놓은 거죠. 곡이 완전히 끝난 뒤에도 객석에선 곧장 환호나 박수가 터져 나오지 못합니다. 섣불리 침을 삼키기조차 두려운 그 몇 초간의 묵직한 침묵 — 그것이야말로 이 서곡이 청중의 명치에 꽂아 넣는 가장 서늘하고도 강렬한 마지막 한 방입니다.

약점이 필살기로 둔갑하는 순간

2관 편성에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악기 명단만 쭉 늘어놓고 보면 꽤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슈만이 이 흔한 재료들로 빚어내는 색채는 결코 만만치가 않죠. 서주의 쓸쓸한 오보에 독주부터 시작해, 발전부에서 현악과 금관이 브레이크 없이 정면충돌하는 쾌감, 그리고 코다에 이르러 목관이 스르르 풀어놓는 투명한 화성까지 — 고작 1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이 모든 극적인 풍경이 빽빽하게 들이차 있거든요.

여기서 유독 시선을 잡아끄는 건 트롬본 세 대의 존재감입니다. 슈만이 살던 시대만 해도 트롬본은 신성한 교회 음악이나 엄숙한 장송 행렬에나 불려 가던, 꽤나 무겁고 진지한 악기였거든요. 그 베토벤조차 교향곡 5번의 피날레에 이르러서야 조심스레 무대 위로 불러올렸을 만큼 섣불리 꺼내 들 패가 아니었죠. 그런 금단의 악기를 고작 12분짜리 서곡에 세 대나 대수롭지 않게 쾅 박아 넣었다는 건, 슈만이 첫 스케치 단계부터 이 곡을 얼만큼 무겁고 서늘하게 끌고 갈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발전부가 폭발할 듯 정점으로 치달을 때 트롬본이 바닥에 묵직하게 깔아주는 저음은, 만프레드의 어깨를 짓누르던 그 끔찍한 죄의 무게를 고스란히 음표로 번역해 놓은 듯하죠.

솔직히 말해 슈만의 관현악법은 꽤나 오랜 세월 도마 위에 오르내리던 단골 안줏거리였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뼈아픈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으니까요. 각 악기의 역할 분담이 묘하게 엉켜 있고, 소리가 자꾸 중음역대에서 한 덩어리로 뭉쳐버려 답답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죠. 그런데 참 얄궂게도, 이 《만프레드 서곡》에서는 그토록 놀림받던 맹점이 도리어 묵직한 장점으로 완벽하게 뒤집힙니다. 악기들의 음역대가 겹치며 빚어내는 그 답답하고 먹먹한 음향이, 빛 한 줌 들지 않는 만프레드의 꽉 막힌 내면세계와 소름 돋도록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까닭이죠.

남들에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던 요소가 이 곡에선 단숨에 목줄을 쥐는 필살기로 둔갑한 겁니다. 특히 후반부에 접어들며 목관 악기들이 마치 미세하게 떨리는 듯한 선율을 토해내는 대목 — 감히 이 서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예리하게 등골을 긁고 지나가는 순간 중 하나로 꼽고 싶습니다. 치명적인 결함이라 손가락질받던 얼룩이 도리어 작품 정서의 한복판을 정통으로 꿰뚫어 버리는, 이토록 통쾌하고 서늘한 역설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차갑게 식히거나, 뜨겁게 불태우거나 — 야노프스키와 하딩

똑같은 오선지를 들이밀어도, 포디움에 선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만프레드는 전혀 딴 사람의 얼굴을 꺼내 듭니다. 위쪽 ‘먼저 듣기’ 플레이어에 걸려 있는 마레크 야노프스키와 hr-신포니오케스트라의 합은 철저하게 ‘구조적 명료함’이라는 뼈대에 칼같이 방점을 찍어내죠. 벼락같은 서주의 총주와 헐벗은 오보에 독주 사이의 틈새를 서늘하게 갈라치고, 폭발하는 발전부의 거친 충돌마저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층을 쌓아 올립니다. 무대 위 만프레드의 핏발 선 고뇌를, 객석에 한 발짝 물러앉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냉정하게 조망하는 해석이라 할 수 있죠.

반면, 아래 영상 속 다니엘 하딩이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고삐를 틀어쥔 실황은 완전히 다른 궤도를 달립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 피들로 뭉친 악단답게 제어되지 않은 날것의 에너지가 펄떡펄떡 튀어 오르거든요. 야노프스키가 잘 다림질된 건축 설계도를 책상 위에 차분히 펼쳐 보인다면, 하딩은 그 설계도에 다짜고짜 불부터 지르고 봅니다. 똑같이 주어진 12분을 두고 한쪽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다른 한쪽은 용광로처럼 뜨겁게 — 이토록 양극단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뱉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서곡이 품은 밑도 끝도 없는 해석의 깊이를 묵묵히 증명해 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니엘 하딩 ·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젊은 단원들의 패기가 서곡의 격정과 정면으로 만나는 실황입니다.

이 12분을 200%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법

스피커 볼륨을 올리기 전, 딱 세 가지만 머릿속에 챙겨 두세요. 그 순간부터 고막을 때리는 소리의 풍경이 완전히 뒤집힐 테니까요.

첫째, 서주를 여는 오보에의 멱살을 바짝 쥐고 따라가세요. 포문을 여는 첫 총주가 쾅 터지고 난 직후,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오보에의 반음계 선율 — 바로 이것이 작품 전체를 싹 틔우는 단 하나의 씨앗입니다. 이 가냘픈 한 가닥의 실선이 맹렬한 주부 한가운데서 어떤 식으로 처참하게 비틀리고 일그러지는지 눈을 부릅뜨고 쫓아가 보세요. 어느 순간 거대한 소나타 형식의 논리와 만프레드의 요동치는 심리 변화가 하나의 화폭에 완벽하게 겹쳐지며 들리기 시작하거든요. 애처롭고 얇은 오보에 특유의 음색이 만프레드의 지독한 고독과 찰떡같이 엉겨 붙는다는 것, 슈만이 치밀하게 짠 판이든 우연이 겹친 기적이든 참으로 소름 돋게 절묘한 한 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싱커페이션의 불안을 몸으로 느껴 보세요. 주부로 진입하자마자 터져 나오는 제1주제의 엇박 리듬은, 단순히 지휘봉을 뽐내려는 얄팍한 기교가 아닙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온전히 발을 딛지 못한 채 허공을 헤매는 만프레드의 처참한 상태를 고스란히 오선지로 떠온 결과물이지요. 평소 피아노 악보에서 즐겨 써먹던 슈만 특유의 리듬적 모호함이 오케스트라의 덩치로 확대되면 정확히 이런 기괴한 질감이 나옵니다. 정박에 시원하게 닻을 내리지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엇박의 굴레 — 12분 내내 만프레드가 평안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듣는 이의 온몸으로 직접 체감하게 만드는 기막힌 장치인 셈입니다.

셋째, 코다의 끄트머리에선 기어코 숨을 참아 보세요. 종착역에 다다라 제1바이올린이 지독하게 느린 템포로 제2주제를 곱씹듯 뱉어내다 곡이 연기처럼 스르르 사그라지는 장면. 이토록 허무하고 고요한 증발이 바로 만프레드가 맞이한 죽음의 진짜 얼굴입니다. 통상적인 서곡들이 천장을 뚫을 듯한 화려한 팡파르로 관객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것과는 완벽하게 대척점에 서 있는 반항적인 전략이죠. 음악이 숨을 거둔 뒤에도 객석에선 곧바로 환호나 박수가 터져 나오질 못합니다. 공기를 짓누르는 그 몇 초간의 아찔한 침묵조차 이 서곡이 작정하고 세팅한 무대의 일부라는 걸, 콘서트홀 의자에 파묻혀 직접 피부로 겪어내는 순간 영원히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건넨 불씨 — 브람스

브람스가 필생의 역작으로 남긴 교향곡 1번이 바로 이 서곡에서 결정적인 불씨를 얻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두 작품의 악보를 나란히 펼쳐놓고 틀어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절묘하게 겹쳐지는 지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거든요. 짓누르는 듯한 도입부의 어두운 에너지부터 시작해 엇나가는 싱커페이션의 노련한 활용, 끈질기고 긴 호흡으로 몰아치는 발전부의 구조까지 말입니다. 브람스가 교향곡 1번 1악장의 첫 스케치를 클라라에게 조심스레 들이민 게 1862년이었고, 기어코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거기서부터 자그마치 14년이 더 걸렸습니다. 이 숨 막히는 숫자를 가만히 떠올려 보면 — 슈만이 남긴 이 12분짜리 서곡이 제자인 브람스에게 얼만큼 거대하고 묵직한 기준점으로 버티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

로베르트 슈만 초상화 (1839년 리토그래프)
1839년의 슈만 — 요제프 크리후버 리토그래프. 훗날 한 무명 청년의 데뷔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특히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의 서주를 이 《만프레드 서곡》의 서주 위에 조용히 겹쳐 놓고 보면 꽤나 기막힌 풍경이 펼쳐집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음악이 꿈틀대며 움트는 방식이 쌍둥이처럼 닮아 있거든요. 팀파니의 집요한 타격 위로 현악기가 맹렬하게 솟구쳐 오르는 브람스의 도입부는, 슈만이 썼던 그 극적인 ‘총주-서주’ 전환 구조를 덩치만 한껏 부풀려 놓은 확장판으로 읽어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스승이 뼈를 깎아 남긴 12분의 세계를, 제자가 45분짜리 거대한 우주로 길게 늘려 잡은 셈이랄까요.

여기에 서늘한 드라마 한 편이 더 얹힙니다. 1853년, 갓 스무 살이 된 풋내기 브람스가 뒤셀도르프에 있던 슈만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 슈만은 《신음악잡지》에 “새로운 길”이라는 기념비적인 글을 발표하며 이 이름 없는 청년을 화려하게 세상에 데뷔시켰습니다. 19세기판 가장 완벽한 스포트라이트였던 셈이지요.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그로부터 불과 3년 뒤 슈만은 쓸쓸히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고 맙니다. 브람스가 기어코 교향곡 1번의 펜을 놓은 1876년이면, 그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스승의 관현악 유산을 홀로 20년 넘게 질기도록 곱씹고 또 곱씹은 뒤였습니다.

같은 만프레드, 다른 길 — 차이콥스키

바이런의 《만프레드》를 붙들고 오선지와 씨름한 작곡가가 비단 슈만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바다 건너 차이콥스키 역시 1885년에 웅장한 《만프레드 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았거든요. 4악장으로 꽉 짜인 이 표제 교향곡은, 악장 하나하나가 원작 극시의 특정 장면들을 정밀화처럼 묘사해 내는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1악장엔 끝없이 헛도는 만프레드의 방황을, 2악장엔 알프스 폭포의 요정을, 3악장엔 산간 마을의 한가로운 목가를, 그리고 마지막 4악장엔 섬뜩한 지하 궁전과 죽음을 차례차례 그려 넣었지요.

두 거장의 접근법은 물과 기름처럼 완벽하게 정반대였습니다. 슈만이 단 12분짜리 서곡 안에 만프레드의 짓눌린 심리를 독하게 쥐어짜 냈다면, 차이콥스키는 한 시간 남짓 넉넉한 교향곡의 캔버스 위에 서사를 시네마스코프처럼 시원하게 펼쳐 놓았으니까요. 슈만의 칼끝이 ‘내면의 농축’을 찌른다면, 차이콥스키의 붓끝은 ‘외면의 확장’을 그리는 셈입니다. 여기서 참 묘하게 시선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차이콥스키 1악장을 꿰뚫는 만프레드의 주제가 슈만 서곡 서주의 그 처절한 반음계적 하강과 소름 돋게 닮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는 점입니다. 정황상 차이콥스키가 슈만의 악보를 훑어봤을 법도 하지만, 그가 직접 이에 대해 입을 연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지요. 그러니 누가 더 원작의 멱살을 제대로 잡았는지 무의미한 판정승을 따지기보다는, 완전히 똑같은 텍스트를 쥐고 이 두 작곡가가 각자 어떤 심연을 읽어냈는지 가만히 견줘 보는 쪽이 훨씬 더 쏠쏠하고 흥미로운 감상법이 될 겁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총보를 따라가며 듣는 만프레드 서곡 — 오보에 동기가 어떻게 곡 전체로 번지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만프레드 서곡 Op.115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서곡은 20세기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호령하던 거장 지휘자들에게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레퍼토리였습니다. 닳고 닳도록 연주된 만큼 숨 막히는 명연도 수두룩한데, 그중에서도 성격이 칼로 벤 듯 또렷하게 엇갈리는 세 장의 음반만 매섭게 추려 봤습니다. 만약 이 곡과 처음 낯을 붉히는 입문자라면,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내려오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첫 감상 추천

조지 셸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Sony / Epic · 1960년대 녹음

구조적 명료함과 감정의 깊이 사이에서 균형을 정확히 잡아냅니다. 처음 이 곡을 만나는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출발점이에요.

레퍼런스

레너드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

Sony Classical

극적 대비를 끝까지 밀어붙인 해석. 발전부에서 터지는 에너지가 압도적이지만, 차분한 슈만을 기대한 사람에겐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리카르도 샤이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Decca · 슈만 관현악 전집

슈만 특유의 내성적 음향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읽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서도 어두운 핵심은 놓치지 않는 줄타기가 일품입니다.

역사적 명연으로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서주를 극단적으로 느리게 끌어, 만프레드의 고뇌가 거의 물리적으로 만져질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실제 연주회장에서 이 서곡은 보통 프로그램 첫 곡의 자리를 꿰차곤 하죠. 12분이라는 길이가 오프닝 무대에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데다, 곡 특유의 어두운 기운이 뒤이어 등장할 교향곡의 정서적 밑그림을 근사하게 깔아 주거든요. 자연스레 슈만의 교향곡들과 묶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종종 브람스 교향곡 바로 앞자리에 배치되기도 하는데 — 두 작품의 서늘하고도 끈끈한 인연을 떠올려 보면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짝꿍도 없겠지요.

자주 묻는 질문

슈만 만프레드 서곡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영국 시인 바이런의 극시 《만프레드》에서 영감을 받은 곡입니다.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구원도 속죄도 거부한 채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비극을, 약 12분의 관현악에 압축해 담았습니다. 슈만 자신이 가장 강렬한 작품으로 꼽았을 만큼, 어둡고 격정적인 정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지배합니다.

만프레드 서곡의 조성과 연주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내림마단조(E♭ minor)로, 느린 서주와 코다를 갖춘 소나타 형식의 단일 악장 서곡입니다. 연주 시간은 약 12분이고, 2관 편성에 트롬본 3대까지 더해진 오케스트라로 연주됩니다. 짧지만 밀도가 대단히 높아, 낭만주의 연주회용 서곡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만프레드 서곡 외에 다른 부수음악도 있나요?

네. 슈만은 바이런의 극 전체를 위해 서곡을 포함해 모두 16곡의 부수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다만 나머지 곡 상당수가 배우의 낭독 위에 음악을 까는 멜로드라마 형식이어서, 배우 없이 연주하기 어려운 탓에 오늘날 연주회장에서는 사실상 서곡만 살아남았습니다.

슈만 서곡과 차이콥스키 만프레드 교향곡은 어떻게 다른가요?

둘 다 바이런의 같은 텍스트에서 출발했지만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슈만은 12분짜리 서곡에 만프레드의 심리를 응축했고, 차이콥스키는 1885년에 네 악장짜리 표제 교향곡으로 극의 서사를 펼쳐냈습니다. 슈만이 내면의 농축이라면, 차이콥스키는 외면의 확장이라 할 수 있지요.

만프레드 서곡의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구조적 명료함을 원한다면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녹음이, 극적 긴장을 원한다면 번스타인과 뉴욕 필하모닉의 녹음이 정평이 나 있습니다. 슈만 관현악 전집으로는 리카르도 샤이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현대적 해석이 호평받지요. 실황 영상으로는 본문에 소개한 다니엘 하딩·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를 추천합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어둠을 통과한 음악들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들을 때보다, 서로 잇닿은 이야기를 알게 될 때 훨씬 깊게 울리거든요. 만프레드의 어둠을 통과했다면, 그 불씨를 이어받은 곡과 슈만의 또 다른 얼굴을 나란히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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