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곡명
- 교향곡 8번 F장조, Op.93
(Symphony No.8 in F major) - 작곡 기간
- 1812년 여름~10월 (테플리츠 · 린츠)
- 악장
- 4악장
I. Allegro vivace e con brio (F장조)
II. Allegretto scherzando (B♭장조)
III. Tempo di Menuetto (F장조)
IV. Allegro vivace (F장조)
1악장 빠르고 활기차게, 정열적으로
2악장 조금 빠르게, 익살맞게
3악장 미뉴에트 빠르기로
4악장 빠르고 활기차게 - 편성
-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 5부 - 초연
- 1814년 2월 27일, 빈 레두텐잘
지휘: 베토벤 본인
(7번 교향곡과 〈웰링턴의 승리〉는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에서 이미 초연, 이날은 재공연) - 연주 시간
- 약 26분 (베토벤 9개 교향곡 중 최단)
- 출판
- 1817년, 슈타이너 출판사(빈) — 7번은 한 해 앞선 1816년 출판
- 베토벤이 “7번보다 낫다”고 말한, 아홉 교향곡 중 가장 짧고 장난기 넘치는 곡입니다.
- 똑딱이 같은 2악장, 옛 미뉴에트로 돌아간 3악장, 4악장에 불쑥 끼어드는 C# 한 음까지 — 농담 같은 장치가 가득합니다.
- 느린 악장 없이 26분 만에 단숨에 끝나는, 베토벤의 ‘작은 F장조’ 교향곡입니다.
1814년 2월 27일 빈 레두텐잘. 그날 밤 무대 위로 세 곡이 올랐습니다. 그중 두 곡은 두 달 반 전에 초연을 거친 재공연작이었고, 청중 앞에 날것 그대로 처음 선 곡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바로 8번 교향곡이었죠.
공연이 막을 내리고 무대 뒤에서 제자 칼 체르니가 “청중은 7번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라며 조심스레 운을 떼자, 베토벤은 단칼에 잘라 말했습니다. “이게 훨씬 더 좋으니까.” 8번은 흔히 ‘베토벤 9곡 중 둘째 취급받는 막내’처럼 기억되지만, 정작 곡을 쓴 본인은 200년째 세상과 정반대의 평가를 고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베토벤은 대체 이 26분짜리 농담 속에서 무엇을 들었던 걸까요?

박수가 식어버린 초연의 밤
그날 무대를 장식한 세 곡의 면면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1812년 5월에 완성된 7번 교향곡, 같은 해 10월에 마침표를 찍은 8번 교향곡, 그리고 〈웰링턴의 승리〉라는 전투 묘사 작품이 나란히 섰거든요. 베토벤이 직접 지휘봉을 쥐었고, 빈은 나폴레옹이 무너진 직후의 묘한 흥분으로 들떠 있던 참이었습니다.
청중의 피를 가장 뜨겁게 데운 주인공은 뜻밖에도 〈웰링턴의 승리〉였습니다. 영국이 프랑스를 꺾은 1813년 비토리아 전투를 고스란히 음악으로 재현한 작품인데, 오케스트라가 대포 소리와 머스킷 총성까지 질펀하게 흉내를 냈거든요. 빈 사람들에게 그날 밤은 고상한 음악회라기보다 요란한 승전 퍼레이드에 가까웠습니다.
애초에 판 자체가 8번에게 묘하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음악회는 두 달 반 전 하나우 전투에서 다친 병사들을 돕자며 열렸다가 대성공을 거둔 자선 연주회의 틀을 고스란히 엎어온 자리였거든요. 8번만이 그날 처음 베일을 벗었을 뿐, 나머지 두 곡은 앞서 확실하게 검증받은 레퍼토리의 재탕이었습니다. 7번과 〈웰링턴의 승리〉가 이미 흥행 보증 수표를 단 ‘앙코르 흥행작’이었다면, 8번은 그 틈바구니에 덩그러니 끼어든 신상품이었던 겁니다. 애당초 관객은 두 번째 듣는 곡에 한 번 더 환호하러 모인 사람들이었던 셈이죠.
그다음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은 곡이 7번이었습니다. 훗날 바그너가 ‘춤의 신격화’라며 찬사를 바친 바로 그 작품이죠. 자연스레 세 곡 가운데 박수 소리가 가장 초라했던 쪽은 8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이어의 베토벤 전기(Thayer’s Life of Beethoven, 1967년 개정판) 역시 이 잔인한 순서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8번에도 박수가 터져 나오긴 했지만, 7번을 향해 쏟아진 환호에 비하면 어쩔 수 없이 미지근했습니다.
꽤나 머쓱한 그림입니다. 베토벤이 야심 차게 막내를 데리고 나와 형 옆에 세웠더니 이미 검증이 끝난 잘난 형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신곡 막내는 곁에서 멀뚱히 서 있어야 했던 겁니다. 9개 교향곡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농담쟁이는 그렇게 씁쓸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정작 곡을 낳은 아버지는 이 홀대받은 막내를 가장 노골적으로 편애했다는 데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게 훨씬 더 좋다” — 베토벤이 제 자식을 편든 드문 순간
무대 뒤에서 튀어나온 그 한마디는 체르니의 회고록 〈내 생애의 추억(Erinnerungen aus meinem Leben)〉 1842년 판본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원문으로는 “Weil sie viel besser ist.” 우리말로 풀자면 “왜냐하면 이게, 그러니까 8번이 훨씬 더 좋으니까”가 됩니다. 변명의 여지 없이 짧고 단호하죠. 콧대 높은 베토벤이 자신의 작품 하나를 다른 작품보다 낫다고 이토록 선명하게 못 박은 사례는 그의 거대한 작품 이력을 통틀어 뒤져봐도 손에 꼽습니다.

베토벤은 편지에서도 8번을 ‘meine kleine Sinfonie in F(나의 작은 F장조 교향곡)’라고 불렀습니다(Anderson, The Letters of Beethoven, 1961, 편지 376번). 여기서 굳이 ‘작은’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건 같은 F장조를 쓰는 6번 〈전원〉과 체급을 구별해두려던 것이지, 결코 곡을 얕잡아 본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머리 굵은 자식에게 끝까지 ‘우리 막내’라고 부르는 애틋한 뉘앙스에 훨씬 가깝거든요.
그렇다고 19세기 내내 온 세상이 베토벤 편에 서 준 건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8번은 7번이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에 파묻혀, 가볍고 짧은 막간극쯤으로 취급받는 수모를 겪었거든요. 이 반대편에서 가장 요란하게 손을 들어준 구원투수가 바로 바그너였습니다. 그는 1870년 〈베토벤〉이라는 글에서 8번을 가리켜 베토벤이 자기다움을 가장 자유롭게 풀어놓은 곡이라며 한껏 추어올렸습니다. 똑같은 곡을 두고 누군가는 미완성 스케치 취급하며 흘려들었는데, 누군가는 가장 베토벤다운 베토벤이라며 열광한 셈이죠.
정작 작곡가 본인의 입장은 그날 무대 뒤에서 진작에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8번이 더 낫다, 끝. 그런데도 얄궂게 두 곡의 운명은 출판 시점부터 삐걱대며 어긋났습니다. 7번이 1816년에 버젓이 세상에 나온 반면, 8번은 한 해가 늦은 1817년에야 슈타이너 출판사에서 간신히 인쇄기에 들어갔으니까요. 작곡에 마침표를 찍고 무려 5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1812년, 베토벤 인생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여름
8번이 티 없이 명랑하다고 해서 그 곡을 써 내려가던 시기까지 명랑했을 거라 지레짐작하면 큰 오해입니다. 베토벤이 8번을 완성한 1812년은 그의 굴곡진 인생을 통틀어서도 손꼽히게 소란스러운 해였거든요. 고작 한 계절 안에 굵직한 사건이 셋이나 폭풍처럼 몰아쳤습니다.
7월 6일과 7일, 보헤미아의 온천 도시 테플리츠. 베토벤은 끝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한 여성에게 긴 편지를 세 차례에 걸쳐 씁니다. 월요일 아침에 펜을 들어 그날 저녁, 그리고 이튿날 화요일 아침까지 꼬박 이어 쓴 편지였습니다. ‘Mein Engel, mein alles, mein Ich(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이여)’라는 절절한 문구로 시작하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수취인의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은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편지가 바로 이때 탄생했습니다.
같은 해 가을, 베토벤은 빈에서 린츠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다름 아닌 동생 니콜라우스 요한이 가정부 테레제 오버마이어와 동거를 시작했다는 기막힌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매이너드 솔로몬의 평전(Beethoven, 1998년 2판)을 뒤적여보면, 베토벤은 동생을 어르고 달래다 실패하자 급기야 린츠 경찰서까지 들이닥쳐 “이 결혼을 막아달라”고 정식으로 요청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생은 오히려 그 길로 보란 듯이 식을 서둘러 올려버렸습니다. 형이 막아설수록 더 냅다 결혼에 골인해 버린 겁니다.
비밀 편지와 깨진 사랑, 동생과의 진흙탕 다툼, 급기야 경찰서까지 찾아간 한바탕 소동. 기가 막히게도 이 난장판의 한복판에서 베토벤은 8번을 완성했습니다. 9개 교향곡 중에서 가장 짧고, 가장 밝으며, 가장 농담이 구석구석 밴 곡을 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겹게 헐떡이던 여름에 가장 유쾌한 음악이 튀어나왔다니, 어딘가 지독하게 앞뒤가 맞지 않는 풍경이죠.
바로 이 대목이 우리가 베토벤을 흔히 오해하고 마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슬프다고 꼭 슬픈 곡을 쥐어짜 내는 일차원적인 작곡가가 아니었거든요. 6번 〈전원〉이 더없이 평온하다고 해서 그때의 베토벤이 마냥 평온했던 것도 아니고, 5번이 숨 막히게 비장하다고 그가 매일 비장하게만 살았던 것도 아닙니다. 곡의 분위기와 작곡가의 감정선을 곧장 한 줄로 묶어버리려는 19세기식 독법은 유독 이 8번 앞에서는 그야말로 맥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멜첼 메트로놈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국어 자료를 뒤적이다 보면 8번 2악장 꼬리표처럼 거의 빠짐없이 따라붙는 단골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2악장의 똑딱거리는 리듬은 메트로놈 발명가 멜첼(Mälzel)에게 베토벤이 보낸 농담이다. 베토벤이 즉흥으로 만든 ‘Ta-ta-ta-ta lieber Mälzel’이라는 카논이 그 증거다.” 꽤 그럴듯하게 들리죠. 문제는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한 꺼풀만 벗겨내도 곧장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데 있습니다.
이 일화의 족보를 슬금슬금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사람의 이름에 가닿습니다. 바로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죠. 베토벤 말년의 비서이자 첫 공식 전기를 펴낸 인물입니다. 그리고 1977년 매이너드 솔로몬이 발표한 ‘Schindler and Beethoven’ 연구 이후로, 그는 베토벤의 〈대화록(Konversationshefte)〉 상당 부분을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 제 손으로 쓱싹 가필하고 조작해 냈다는 사실이 학계의 정설로 단단히 굳어진, 꽤나 문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풀어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쉰들러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 “베토벤은 이렇게 생각했다”는 내용을 제 손으로 쓱싹 적어 넣고는, 그걸 마치 “베토벤이 직접 남긴 메모”인 양 그럴싸하게 꾸며냈거든요. 멜첼 카논 일화 역시 그 수많은 위조 의심 사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애당초 출처부터가 밑동이 썩어 있는 불안한 이야기인 겁니다.
그런데 진짜 결정타는 따로 있습니다. 시간 순서 자체가 아예 거꾸로 뒤집혀 있거든요.
- 8번 교향곡 작곡 시기 — 1812년 여름부터 10월까지.
- 멜첼이 메트로놈에 특허를 낸 해 — 1815년.

베토벤이 1812년에 “멜첼의 메트로놈 소리를 듣고 그 리듬을 농담처럼 가져왔다”는 서사는 애초에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멜첼이 그 이전에 ‘크로노미터(chronometer)’라 부르던 시제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비로소 우리가 아는 메트로놈의 모습으로 번듯하게 자리 잡은 건 1815년 이후의 일이거든요. 리타 슈테블린의 〈조성 성격사(A History of Key Characteristics, 2002)〉 역시 이 얄궂은 시간 순서를 분명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멜첼이라는 이름 석 자까지 8번에서 통째로 지워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멜첼은 엄연한 실존 인물이었고 베토벤과도 꽤 가까운 사이였으니까요. 1813년 〈웰링턴의 승리〉를 야심 차게 함께 기획했다가 훗날 저작권 분쟁으로 사이가 틀어진 바로 그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니 2악장이 ‘멜첼을 겨냥한 어떤 장난’일 가능성마저 굳이 못 박아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 장난이 ‘메트로놈 소리를 듣고’ 튀어나온 건 아니라는 뜻이죠. 똑딱이 모티프가 메트로놈을 흉내 낸 결과물이라는 한 줄 해설은, 알고 보면 위조를 일삼던 비서가 야무지게 빚어낸 그럴듯한 도시전설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느린 악장이 없는, 단 하나의 베토벤 교향곡
8번이 도대체 얼마나 별난 곡인지 한눈에 꿰뚫어 보고 싶다면, 베토벤이 남긴 9개 교향곡의 2악장 빠르기 표시를 죽 늘어놓고 비교해 보는 게 가장 빠릅니다.
- 1번 — Andante cantabile con moto
- 2번 — Larghetto
- 3번 — Marcia funebre. Adagio assai
- 4번 — Adagio
- 5번 — Andante con moto
- 6번 — Andante molto mosso
- 7번 — Allegretto
- 8번 — Allegretto scherzando
- 9번 — Molto vivace (스케르초. 진짜 느린 악장은 3악장 Adagio로 밀려납니다)
8번을 뺀 나머지 모든 곡에는 진짜배기 느린 악장이 꼬박꼬박 하나씩 박혀 있습니다. 오직 8번에만 없지요. ‘Allegretto scherzando’를 우리말로 옮기면 ‘조금 빠르게, 익살맞게’ 정도가 되는데, 빠르기 지시어 자체가 이미 ‘느림’이라는 속성을 대놓고 걷어차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9곡 중 단 한 번, 청중에게 숨 고를 틈조차 내주지 않은 곡이 바로 8번이라는 이야기예요.
3악장 역시 별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표시는 ‘Tempo di Menuetto’, 곧 미뉴에트 빠르기입니다. 베토벤이 후기 교향곡(7·8·9번) 가운데 미뉴에트로 되돌아간 경우는 8번이 유일합니다. 7번과 9번은 모두 앞뒤 안 가리고 거칠게 몰아붙이는 스케르초인데, 8번만 18세기 궁정의 우아한 춤곡으로 시계를 훌쩍 거꾸로 돌려버렸습니다. 정리하자면 8번은 베토벤이 1812년에 내놓은 두 교향곡 가운데 진지함의 무게를 일부러 털어낸 쪽입니다. 7번이 펄펄 끓는 디오니소스라면, 8번은 가볍게 술 한 잔 걸친 아폴론에 가깝죠.
26분을 악장으로 걸어보기
이쯤에서 곡을 한 번 통으로 깔아두고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베토벤이 던진 농담의 톤을 가장 짓궂게 살려낸 연주 하나를 골랐습니다. 아래 영상을 배경 삼아 흘려두고, 이 26분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악장별로 슬슬 따라가 봅니다.
1악장 — 서주도 없이 들이닥치는 F장조
베토벤의 1번부터 7번까지, 예열하는 서주 없이 곧장 1주제로 직행하는 교향곡은 5번 하나뿐이었습니다. 8번이 그 두 번째에 해당하죠. 그런데 겉보기엔 같은 ‘서주 없는 시작’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이 영 딴판입니다.
5번이 ‘딴-딴-딴-딴—’ 네 음으로 다짜고짜 운명의 멱살을 거머쥐고 질력나게 끌고 간다면, 8번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일단 앞으로 직진부터 하고 봅니다. 망설임 없이 뻗어 나가는 건 똑같은데, 그 안에 묵직한 무게가 없습니다. 고작 4마디 만에 1주제 제시가 훌쩍 끝나버리거든요. 5번이 살벌한 멱살잡이라면, 8번은 어깨를 툭 치고 “야, 같이 뛰자”며 실없이 먼저 달려나가는 친구에 훨씬 가깝습니다.
이 맹렬한 직진의 비밀은 첫머리에 놓인 셈여림에 숨어 있습니다. 베토벤은 1주제를 포르테로 활짝 열어젖혔다가 곧장 피아노로 뚝 떨어뜨리고는, 다시 잔뜩 부풀렸다가 바람 빠지듯 꺼뜨리기를 얄밉게 반복합니다. 거대한 팡파르로 비장하게 문을 여는 ‘영웅’이나 ‘운명’과 달리, 8번은 큰 몸짓과 작은 몸짓을 한 호흡 안에서 쉴 새 없이 번갈아 던지며 어깨를 들썩입니다. 웅장하게 시작할 줄 몰라서 쪼그라든 게 아니라, 웅장함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일부러 벗어 던진 시작입니다. 첫 4마디 안에 이미 “나는 정색하지 않겠다”는 뻔뻔한 선언이 담겨 있는 셈이죠.
2악장 — 똑딱이 스케르찬도의 정체
목관악기가 16분음표 스타카토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똑딱거립니다. 흡사 시계 초침 같기도 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정하고 시계 초침을 흉내 내는 듯한 얄궂은 박자감이죠.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걸 굳이 “멜첼의 메트로놈에게 보내는 농담”이라고 규정하는 순간부터 시간 순서가 꼬여버리고 맙니다.
차라리 이렇게 듣는 쪽이 훨씬 정확합니다. 베토벤은 이 악장에서 ‘기계적인 박자’ 자체를 장난감처럼 손에 쥐고 놉니다. 오케스트라 전원이 거대한 시계라도 된 양 한껏 진지하게 박자를 쪼개는 동안, 작곡가는 무대 뒤에 숨어 그 뻣뻣한 진지함을 낄낄대며 즐기고 있는 그림이거든요. 멜첼이라는 억지 신화를 미련 없이 떼어내고 들으면 오히려 이 모티프가 품은 날것의 재미가 한층 더 또렷하게 살아납니다. 진짜 핵심은 빠르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빠르기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능글맞은 감각에 있습니다.
3악장 — 베토벤이 미뉴에트로 돌아간 단 한 번
바로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고개를 갸웃하곤 합니다. 이미 모차르트 시대에 한물간 유물로 취급받던 미뉴에트가, 〈운명〉과 〈전원〉을 빚어내고 7번까지 거침없이 마친 베토벤의 펜 끝에서 1812년에 대체 왜 다시 튀어나왔을까 하는 자연스러운 의문이죠.
해답은 베토벤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구식’ 형식을 끌어와 기발한 새 농담을 던지고 싶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후기로 갈수록 사납게 으르렁대던 스케르초 대신, 18세기 살롱에서나 빙글빙글 추던 매끈한 3박자를 꺼내 든 겁니다. 거기다 트리오 부분에는 호른과 클라리넷으로 사냥 나팔 음형을 떡하니 박아 넣어, 우아하기 짝이 없는 살롱 한복판에 진흙 묻은 장화 차림의 사냥꾼 둘이 불쑥 난입한 듯한 희극적인 장면을 빚어냅니다. 겉보기엔 매끈한데 어딘가 묘하게 삐걱대는 엇박자, 그 뻔뻔한 어색함이 바로 베토벤이 치밀하게 노린 과녁입니다.
4악장 — C# 한 음과 200년 묵은 펀치라인
피아니시시모(ppp)로, 그것도 아주 빠르게 문을 엽니다. 마치 발끝으로 살금살금 조심스레 걷는 듯한 현악기들의 움직임. 그러다 17마디에 이르면 느닷없이 포르티시시모(fff)로 ‘C#(올림 다)’ 한 음이 머리 위로 쿵 떨어집니다. F장조의 우아한 세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동네에서 문을 잘못 열고 들어온 불청객 같은 음이죠. 놀란 음악이 두 박자 동안 일시 정지하듯 멈칫하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원래의 주제로 천연덕스럽게 돌아갑니다.
한 번이면 우연이라 치부하겠지만 두 번이면 다분한 의도입니다. 똑같은 C#이 곡 중간에 버젓이 한 번 더 끼어들거든요. 그리고 진짜 결정적인 펀치는 맨 끝자락에 교묘하게 숨어 있습니다. 곡이 숨을 거둘 듯 말 듯 하여 청중이 슬슬 박수 칠 채비를 마쳤을 무렵, 베토벤은 뜬금없이 F# 단조 쪽으로 휙 비껴 가는 가짜 종지(false cadence)를 미끼처럼 툭 던져 넣습니다. 박수를 치려고 반쯤 올라가던 손 앞에서 음악이 얄밉게 다시 시작되어 버립니다. 청중은 머쓱하게 허공을 맴돌던 손을 슬그머니 도로 내리고, 그제야 비로소 진짜 마침표가 찾아옵니다.
영국의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는 저서 〈베토벤(Beethoven, 1944)〉에서 이 느닷없는 C#을 두고 베토벤 특유의 ‘장거리에 걸친 화성 효과(long-distance harmonic effects)’를 보여주는 예로 꼽았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온 듯한 이 한 음이, 실은 곡 전체의 거대한 화성 구조를 저 멀리까지 내다보고 치밀하게 심어 둔 지뢰 장치라는 뜻입니다. 베토벤은 4악장 전체를 오직 그 찰나의 한순간을 터뜨리기 위한 기나긴 빌드업으로 정교하게 짜 놓았던 겁니다. C#이 무방비 상태로 쿵 떨어지는 그 0.5초가 곡 전체의 멱살을 쥐고 인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 8번을 트는 사람에게
가볍게 말하겠습니다. 고작 26분짜리입니다. 7번의 그 압도적인 열기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8번은 따로 떼어내어 한 번쯤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7번이 피 끓는 록 페스티벌이라면, 8번은 넥타이 풀어헤친 친구 결혼식 2차 노래방에 훨씬 가깝거든요. 부담스럽게 끈끈하지도 않고, 각 잡고 진지하지도 않으며, 쓸데없이 잘난 척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장난을 알아채면 다 같이 한바탕 웃자”는 짓궂은 신호를 곡 구석구석에 슬쩍슬쩍 능청스럽게 흘려놓고 있을 뿐입니다.
“덜 유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은 8번에도 어느 정도 들어맞습니다. 베토벤이 이 곡을 마냥 얌전하게 쓰지만은 않았다는 뜻입니다. 4악장 C#처럼 청중을 멈칫하게 만드는 장치가 곳곳에 박혀 있어 한 번 쭉 듣고 나면 “아 좋다”보다 “어, 방금 뭐지?”가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그래서 이 곡을 사랑했고 청중은 그래서 7번을 먼저 끌어안았습니다. 동일한 이유가 한쪽에선 매력이 되고 다른 쪽에선 진입장벽이 됩니다.
처음 들을 때의 조건은 단순합니다. 일요일 늦은 오전, 커피 한 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26분. 길이가 짧아 한 번 더 듣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두 번째 재생했을 때 4악장 C#의 순간이 귀에 꽂히기 시작하면 바로 그때부터 이 곡이 좋아집니다. 장담하건대 그 0.5초를 한 번 알아챈 귀는 다시는 8번을 ‘둘째 취급받는 막내’로 듣지 못할 것입니다.
추천 음반 — 클라이버 · 카라얀 · 아르농쿠르
카를로스 클라이버 / 빈 필 (1983 ORF 라이브 영상). 8번에 관한 한 거의 정답에 가깝습니다. 클라이버는 8번을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농담에도 진심인 베토벤’으로 해석했습니다. 4악장 C#이 떨어지는 타이밍이 소름 끼치도록 정확합니다. 다만 표준 녹음과 같은 안정감을 바라는 분에게는 이 영상이 오히려 지나치게 날카롭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 (1977 녹음). 완벽하지만 웃음기는 덜합니다. 사운드가 매끈하고 균질해 어느 대목을 들어도 베를린 필 특유의 풍성한 음색이 살아 있습니다. 다만 4악장 C#이 장난스러운 일격이라기보다 묵직한 강조점처럼 들립니다. 베토벤이 들었다면 “그게 아닌데” 하고 아쉬워했을 법한 해석입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시대악기). 시대악기를 활용해 농담을 꾸밈없이 살려낸 연주입니다. 2악장 똑딱이가 정말 시계의 똑딱임처럼 다가오고 3악장 미뉴에트의 ‘의도된 구식’ 감각도 또렷합니다. 단 시대악기 특유의 거친 호른 질감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첫 음반으로 권하기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똑딱이 모티프와 4악장 C#이 악보 위에서 어떤 형태로 박혀 있는지 눈으로 따라가면 농담의 구조가 한결 선명해집니다. 아래 영상은 뵘과 빈 필의 연주에 총보를 얹어 음과 마디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만든 버전입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볼 수 있습니다. 똑딱이 2악장도 4악장의 그 황당한 C#도 직접 펼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8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베토벤 8번은 왜 이렇게 짧은가요? 26분이면 다른 교향곡의 절반인데요.
베토벤 7번과 8번 중 무엇부터 들어야 할까요?
2악장 똑딱이가 멜첼 메트로놈에게 보낸 농담이라는 말, 진짜인가요?
베토벤 본인이 정말 8번을 7번보다 좋아했나요?
4악장 끝에서 갑자기 튀는 그 음, 실수가 아니라 의도인가요?
베토벤 9곡 중 가장 덜 유명한 곡이 8번인가요?
8번 입문 음반을 딱 하나만 추천한다면요?
참고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손에서 나온 다른 얼굴들
클래식 음악은 한 곡만 따로 떼어 감상할 때보다 주변의 곡들과 나란히 놓고 들을 때 훨씬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8번이 ‘작은 F장조’로 불린 이유도 미뉴에트로 시계를 거꾸로 돌린 의미도 형제 같은 다른 곡들을 알고 나면 한층 또렷해집니다. 같은 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한 다른 얼굴들을 함께 감상해 보세요.
-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 8번과 같은 1812년, 같은 무대에서 초연된 자매작
-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Op.68 — 8번이 ‘작은 F장조’로 불린 이유가 된 또 하나의 F장조
-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Op.67 — 8번과 함께 서주 없이 시작하는 둘 중 하나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Op.125 — 미뉴에트를 마지막으로 보낸 베토벤이 향한 곳
-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Op.55 — 농담쟁이 막내가 나오기 전, 판을 뒤집은 맏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