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교향곡 제41번 다장조 ‘주피터’ K.551 — 본인이 한 번도 못 들었을 마지막 교향곡

잘로몬이 30년 뒤 붙인 이름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곡명
교향곡 제41번 다장조 K.551 《주피터》
(Symphony No. 41 in C major)
작곡 기간
1788년 6월 말 ~ 8월 10일, 비엔나
악장
4악장
I. Allegro vivace (C장조)
II. Andante cantabile (F장조)
III. Menuetto: Allegretto (C장조)
IV. Molto allegro (C장조)

1악장. 빠르고 생기 있게
2악장. 노래하듯 천천히
3악장. 미뉴엣: 조금 빠르게
4악장. 매우 빠르게
편성
플루트 1, 오보에 2, 바순 2 (클라리넷 없음),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 5부
초연
생전 연주 기록 없음
(1789년 라이프치히, 1790년 프랑크푸르트 대관식, 1791년 프라하 등 가설만 존재)
연주 시간
약 32~35분
3줄 요약
  • ‘주피터’는 모차르트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나고 30년 가까이 지나 런던의 흥행사 잘로몬이 붙인 별명입니다. 활자로는 1819년 에든버러에서 처음 인쇄됐습니다.
  • 빚과 딸의 죽음이 겹친 1788년 여름, 단 6주 만에 39·40·41번 세 교향곡을 한꺼번에 써 내려간 끝자락의 곡입니다.
  • 4악장은 다섯 개의 선율을 동시에 쌓아 올리는 5성부 푸가토로, 여덟 살에 쓴 ‘do-re-fa-mi’ 네 음이 마지막 교향곡으로 돌아옵니다.

베를린 국립도서관에는 종이 한 장이 보존돼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직접 쓴 ‘Vienna li 10 di Agosto 1788’. 이 문장이 적힌 페이지가 바로 그의 마지막 교향곡 자필 악보 마지막 장입니다.

그 페이지 어디에도 ‘주피터’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 이름이 활자로 처음 인쇄된 건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지난 1819년, 그것도 비엔나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였지요. 우리가 200년 넘게 불러 온 그 거창한 별명을, 정작 모차르트는 한 글자도 본 적이 없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름은 대체 누가, 왜 붙인 걸까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초상
델라 크로체가 그린 1780년경의 모차르트. 41번을 쓰기 여덟 해 전, 아직 빈의 총아였던 시절입니다.

잉글랜드 사람이 붙인 별명

모차르트가 직접 작성한 작품 목록(Verzeichnüss)에는 그저 ‘교향곡 한 곡(Eine Sinfonia)’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자필 악보 마지막 페이지에도 완성 일자만 있을 뿐, 별명 같은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부르는 ‘K.551’이라는 번호조차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71년 뒤인 1862년, 루트비히 폰 쾨헬이 붙인 정리번호입니다. 그러니까 작곡가 본인이 이 곡에 남긴 것은 완성 날짜와 ‘교향곡’이라는 단어 하나뿐입니다.

‘주피터’의 출처는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크사버의 증언입니다. 1829년, 그는 어머니 콘스탄체와 함께 영국 출판인 노벨로 부부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런던의 잘로몬(Johann Peter Salomon) 씨가 붙인 이름입니다.”

요한 페터 잘로몬 초상
‘주피터’라는 이름을 붙인 흥행사 잘로몬. 하이든을 런던으로 데려간 바로 그 사람입니다.

잘로몬은 하이든을 런던으로 데려가 ‘런던 12곡’ 교향곡을 받아낸 흥행사입니다. 18세기 후반 유럽 음악계를 주름잡던 거물이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잉글랜드 무대에 41번을 올리면서, 손님을 끌 별명 하나를 곡에 붙인 것입니다.

활자로 남은 첫 흔적은 1819년 10월 20일 에든버러 음악협회 콘서트 프로그램입니다. “Grand Overture – Jupiter – Mozart.” 이후 별명은 영국과 아일랜드권에서 먼저 퍼졌고, 정작 독일어권에서는 19세기 내내 ‘끝에 푸가가 붙은 교향곡(Sinfonie mit der Schlussfuge)’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같은 곡이 영불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콘스탄체 모차르트 초상
별명의 출처를 증언한 콘스탄체. 1829년, 아들과 나란히 앉아 노벨로 부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주피터’라는 이름은 우연히 나온 게 아닙니다. C장조에 트럼펫과 팀파니가 들어가면, 18세기 음악인들은 자연스럽게 ‘황제의 조성(Imperial key)’을 떠올렸습니다. 대관식, 신년의 예포, 군주가 입장하는 자리에서 울리던 바로 그 음색이었습니다. 잘로몬은 이 곡이 이미 두르고 있던 위엄을 로마 최고신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입니다(Elaine Sisman, Mozart: The Jupiter Symphony, 1993). 음악사에 길이 남은 카피라이팅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영국과 독일이 같은 곡에서 서로 다른 걸 먼저 들었다는 거예요. 잉글랜드 사람들은 곡의 위풍당당함, 그러니까 ‘황제 같은 겉모습’에 반해 주피터라 불렀습니다. 반면 독일어권 음악인들은 마지막 악장에 쌓인 푸가의 설계, 그 안쪽 구조에 먼저 눈이 가서 ‘끝에 푸가가 붙은 교향곡’이라 불렀습니다. 별명 하나에 두 나라가 이 곡을 어떻게 들었는지가 고스란히 갈려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흥행사가 붙인 화려한 쪽 이름이 200년을 이겼습니다.

빚과 장례의 여름, 6주에 세 곡

1788년 6월 17일, 모차르트는 친구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이 저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저는 행복합니다(Wenn Sie, liebster Bruder, mich nicht verlassen, so bin ich glücklich).”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그로부터 9일 뒤인 6월 26일, 그는 39번을 완성합니다. 7월 25일에는 40번, 8월 10일에는 41번. 6주 만에 교향곡 세 편이 나온 것입니다. 누가 지어낸 전설이 아니라, 모차르트 본인이 작품 목록에 직접 날짜를 적어 둔 사실입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K.551 자필 악보 첫 페이지
41번 자필 악보의 첫 장. ‘Sinfonia’, ‘Von Mozart’, ‘1788’ — 위엄 가득한 별명 대신 작곡가가 남긴 표시는 이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같은 6월, 다른 일도 함께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6월 29일, 모차르트의 생후 6개월 된 딸 테레지아가 세상을 떠납니다. 39번을 완성한 지 사흘 뒤, 그리고 40번에 손을 대기 직전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모차르트 가족은 비엔나 시내를 벗어나 외곽의 베링거가세(Währingerstrasse)로 이사합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으니까요(Otto Erich Deutsch, Mozart: A Documentary Biography, 1965). 7월 말에 푸흐베르크에게 다시 보낸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칩거하며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Wir leben so eingezogen und still).” 한때 빈을 들었다 놨다 하던 흥행 작곡가가 스스로를 설명하며 고른 단어가 ‘칩거’였습니다.

1788년 한 해 동안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차용 편지만 최소 8통에 이릅니다(Bärenreiter 전집). 보통 평전들이 ‘천재의 황금기’라 부르는 이 여름은, 실제로는 빚진 친구에게 또 손을 벌리고, 딸의 장례를 치르고, 짐을 싸서 외곽으로 옮기던 여름이었습니다.

헨헨이 이끄는 작은 편성의 전곡 연주. 빚에 쫓기던 책상 위에서 나온 소리가 이렇게 단정하다는 게 도리어 서늘합니다.

이 곡이 정작 무대에 오르긴 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습니다. 작곡 직후 예약 콘서트가 무산됐다는 가설은 1962년 H. C. 로빈스 랜던이 처음 제기했고, 도이치가 엮은 자료집(1961)에도 모차르트 생전에 41번이 연주됐다는 기록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닐 자슬로는 1789년 라이프치히 여행, 1790년 프랑크푸르트 대관식, 1791년 프라하 콘서트에서 연주됐을 가능성을 짚어 보았지만(Mozart’s Symphonies, 1989), 확정된 증거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1788년 여름, 자기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한 음 한 음 적어 내려가던 이 곡을, 모차르트는 단 한 번도 귀로 듣지 못한 채 1791년에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평생의 마지막 교향곡 세 편이 빚더미 위에서 태어났지만, 작곡가는 끝내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같은 책상, 같은 6주에서 나온 이 세 곡은 표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39번은 따뜻하게 노래하고, 40번은 g단조로 속을 졸이며 떨고, 41번은 C장조로 위엄을 곧추세웁니다. 한 사람이, 그것도 가장 궁핍하던 여름에, 슬픔과 불안과 당당함을 각기 다른 곡에 나눠 담았습니다. 그래서 41번만 따로 떼어 듣기보다, 40번을 먼저 들은 뒤 41번으로 건너오면 그 낙차가 훨씬 또렷하게 잡힙니다.

악장마다 다른 얼굴

1악장 Allegro vivace — 서두를 생략한 작곡가

느린 도입부가 없습니다.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가운데 38번 《프라하》와 39번에는 진지한 서주가 깔리는데, 40번과 41번에는 그게 없어요. 41번은 인사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이닥칩니다.

첫 두 마디는 ‘C-C-(쉼표)-G-G’로 내리꽂는 강한 유니즌입니다. 당대 오페라 부파 서곡이 즐겨 쓰던 문법입니다. 모차르트가 그 직전까지 오페라 《돈 조반니》(1787년 프라하 초연) 작업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걸 떠올리면, 서곡의 어법이 그대로 교향곡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오페라의 막이 오르듯, 41번도 그렇게 시작합니다.

이 악장은 첫 마디부터 단도직입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듣는 사람에게 자세를 고쳐 앉을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1780년대 비엔나 청중을 향해 친절한 신호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냥, 시작합니다.

그 단호함이 묘하게 마음에 걸리지요. 빚 독촉 편지를 쓰고 딸의 관을 보낸 사람이, 정작 음악 안에서는 망설임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1악장 어디를 들어도 흔들리는 손은 보이지 않습니다. 삶이 무너지는 동안에도 작곡가의 펜은 한 치도 비틀거리지 않았습니다.

2악장 Andante cantabile — 딸이 죽은 그 주

F장조의 평온함이 흐르다가, 19~28마디에서 갑자기 c단조로 내려앉습니다. 화음이 갈라지고, 리듬이 비틀거리고, 노래가 잠깐 멈칫합니다.

모차르트 자필 악보의 바로 이 구간에는 음표 위로 잉크가 거칠게 그어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한때 ‘슬픔이 터진 자국’으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이 악장을 쓰던 시기(6월 말~7월 초)와 딸 테레지아의 사망일(6월 29일)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음악학계는 대체로 단순한 작곡 수정으로 봅니다. 그렇다 해도 자필 악보를 직접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손을 멈추게 됩니다.

이 구간은 그저 단조로 잠깐 색을 바꾼 삽화가 아닙니다. F장조 안단테가 흘러가다가 c단조 화음이 끼어들어 노래의 손목을 붙잡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F장조로 돌아옵니다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음악이 그렇게 움직입니다.

3악장 Menuetto: Allegretto — 황제의 미뉴엣

C장조로 돌아옵니다. 트럼펫과 팀파니도 다시 들어옵니다. 18세기 청중은 이 조합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의식’의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별명 ‘주피터’가 단지 잘로몬의 작명 솜씨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곡 자체가 이미 위엄 있는 음색을 두르고 있었고, 잘로몬은 30년 뒤 그 성격을 알아보고 이름표를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트리오에 작은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4악장을 끌고 갈 네 음 동기가 여기서 미리 한 번 흘러나옵니다. 마지막 악장의 주인공이 한 발 일찍 무대 뒤를 가로질러 가는 듯합니다. 모차르트가 깔아 둔 복선입니다.

4악장 Molto allegro — 여덟 살과 서른두 살이 만나는 4분

이 악장의 1주제는 단순합니다. ‘do-re-fa-mi’, 딱 네 음입니다. 그런데 절대 가볍게 넘길 단순함이 아닙니다.

이 네 음은 본래 모차르트의 발명품이 아닙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Lucis Creator optime’에서 출발해 팔레스트리나, 미하엘 하이든, 그리고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13번 4악장이 이미 가져다 썼습니다. 18세기 작곡가들이 함께 쓰던 공용 어휘에 가까웠습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모차르트도 이 네 음을 평생 만지작거렸습니다. 첫 사용은 1764년, 여덟 살에 쓴 1번 교향곡(K.16) 안단테였습니다. 두 번째는 1774년, 열여덟 살에 쓴 미사곡 F장조 K.192의 ‘Credo in unum Deum’. 그리고 서른두 살, 마지막 교향곡 4악장 첫 자리에 그 네 음이 다시 돌아옵니다.

여덟 살, 열여덟 살, 서른두 살. 24년에 걸쳐 같은 네 음이 세 번 손끝을 스쳐 간 거지요. 누군가에겐 그저 편한 음형이었을 테지만, 모차르트는 그걸 끝내 마지막 교향곡의 출발점으로 골랐습니다. 평생 머릿속 어딘가에 살아 있던 네 음을, 인생의 마지막 큰 악장 맨 앞에 도로 데려다 놓은 것이 그저 우연이었을까요?

래틀과 베를린 필의 4악장. 종결부로 갈수록 다섯 줄기 선율이 어떻게 한데 엉키는지 눈으로도 따라가 보시길.

그리고 종결부 코다 24마디. 다섯 개 주제가 동시에 쌓입니다. 5성부 푸가토입니다. 워런 커켄데일의 1963년 분석에 따르면, 이 다섯 성부는 24가지 순열로 위아래를 바꿔 끼워도 음악이 무너지지 않는 수학적 구조입니다. ‘invertible quintuple counterpoint’. 풀어 말하면, 다섯 사람이 동시에 떠드는데 누가 위로 가고 누가 아래로 가든 전부 말이 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다섯 주제를 하나씩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① 1주제 ‘do-re-fa-mi’ 네 음 동기, ② 활기차게 내달리는 16분음표 카운터서브젝트, ③ 트릴이 박힌 짧은 모티프, ④ 미끄러져 내리는 하행 스케일, ⑤ 마지막을 단단히 묶는 종지 모티프. 이 다섯이 24마디 안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하나씩 들으면 더없이 단순한데, 다섯이 겹치는 순간 어디서 어디까지가 누구의 선율인지 귀로 따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도 화성은 끝내 무너지지 않습니다. 커켄데일이 말한 ‘음악이 안 깨진다’는 말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대목은 굳이 이론을 몰라도 귀로 바로 느껴집니다. 종결부에 다다르면 멜로디 한 줄을 따라가려던 귀가 갑자기 갈 곳을 잃습니다. 분명 익숙한 네 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사방에서 다른 선율들이 동시에 밀려들어 어디에 귀를 둬야 할지 모르게 되는 순간. 그 어질어질함이 바로 커켄데일이 수식으로 증명한 구조를 몸으로 느끼는 방식입니다. 18세기의 청중도, 지금의 우리도 같은 지점에서 똑같이 휘청합니다.

클라리넷이 없는 교향곡

모차르트가 각별히 아낀 악기가 클라리넷입니다. 비엔나의 명연주자 안톤 슈타들러를 위해 클라리넷 5중주 K.581과 클라리넷 협주곡 K.622, 두 곡이나 헌정할 정도였습니다(Deutsch, 1965; Bärenreiter NMA 비평본). 그런데 41번에는 그 클라리넷이 없습니다. 39번에는 들어가 있고, 40번도 개정판에서 추가됐는데, 유독 41번만 처음부터 끝까지 빠져 있습니다.

이유는 시스먼의 1993년 분석에 있습니다. C장조에 트럼펫과 팀파니로 ‘의식적이고 황제다운’ 음색을 빚으려면, 부드러운 클라리넷의 따뜻함이 오히려 방해가 됐다는 것입니다. 41번 특유의 단단하고 날 선 빛은, 가장 사랑한 악기를 일부러 비워 둔 대가로 얻어진 결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41번은 따뜻함을 스스로 거절한 교향곡입니다. 평생 헌정곡까지 써 준 악기를 빼면서까지, 끝내 손에 넣고 싶었던 음색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꼭 들어야 할 4분

로베르트 슈만은 1841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곡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스 켈러는 1956년 BBC 방송에서 “인간이 쓴 가장 흥분되는 음악”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1886년 9월 일기에서 이 곡을 베토벤 9번과 직접 견준 뒤, 주피터 4악장 쪽으로 손을 들어 줍니다 — 1886년의 러시아 작곡가가 1788년의 오스트리아 작곡가를 그렇게 올려다본 것입니다.

전부 19~20세기 평론가들의 인용이라, 솔직히 그리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또렷합니다. 서른두 살에, 죽기 3년 전 마지막 교향곡을 쓰면서, 작곡가는 자신이 여덟 살에 만지작거리던 네 음을 마지막 악장 맨 앞자리에 다시 놓았습니다. 그리고 종결부 24마디에 그 네 음을 포함한 다섯 주제를 동시에 쌓아 올렸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게 슈만의 한 줄 인용만으로는 도무지 전해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4분짜리 종결부 안에서 여덟 살의 모차르트와 서른두 살의 모차르트가 처음으로 마주치는 셈이니까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직접 들어 보고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편파 음반 가이드

주피터 명연 후보는 차고 넘칩니다. 다만 골고루 칭찬만 늘어놓으면 첫 한 장을 고르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어느 음반이 어디서 빛나고 어디서 안 맞는지, 솔직하게 갈라 보겠습니다.

카를 뵘 / 베를린 필 (1960년대, DG). 묵직한 독일 정통 해석입니다. ‘끝에 푸가가 붙은 교향곡’이라는 19세기 독일어권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첫 선택입니다. 다만 ‘미친 4악장’을 기대한다면 다소 점잖게 들릴 수 있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 (1984, DG). 미친 듯이 달립니다. 코다 5성부 푸가토에서 정말로 끓어넘칩니다. 듣고 나면 다른 녹음이 죄다 미지근해지는, 그래서 좀 무서운 음반입니다. 단점이라면 1788년 비엔나의 규모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시대악기, 작은 편성, 빠른 템포. 잘로몬이 별명을 달기 전, 1788년 살롱에서 울렸을 법한 41번에 가장 가깝습니다. 큰 사운드를 좋아하는 분께는 가볍게 들릴 수 있습니다. 추천 순서는 번스타인으로 극한을 맛본 뒤, 뵘으로 진정시키고, 아르농쿠르로 1788년의 실제 크기에 가까운 소리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가 함께 흐르는 전곡 영상. 종결부에서 다섯 주제가 동시에 쌓이는 장면을 눈으로 짚어 보기에 좋습니다.

주피터를 두 번째로 들을 때 권하는 방법입니다. 종결부 24마디 5성부 푸가토를 악보로 따라가 보면, ‘다섯 주제가 동시에 쌓인다’는 추상적인 말이 눈앞에서 바로 풀립니다. 어느 성부가 ‘do-re-fa-mi’를 들고 있고 어느 성부가 다른 주제를 맡고 있는지 색이 다른 펜으로 표시해 보세요. 그 24마디가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2악장 19~28마디의 c단조 구간도 자필 악보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면 한 번 더 멈칫하게 됩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K.551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주피터’라는 이름은 모차르트가 붙인 건가요?

아닙니다. 런던에서 흥행사 요한 페터 잘로몬이 흥행용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크사버가 1829년 노벨로 부부 인터뷰에서 직접 증언한 사실이고, 활자로 남은 첫 흔적은 1819년 10월 20일 에든버러 음악협회 콘서트 프로그램입니다. C장조에 트럼펫·팀파니 조합이 18세기엔 ‘황제의 조성’으로 통했는데, 잘로몬이 그 위엄을 로마 최고신의 이름으로 포장해 붙인 것입니다. 모차르트 본인은 자필 악보와 작품 목록 양쪽에 그저 ‘Eine Sinfonia’라고만 적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직접 들어 본 적이 있나요?

학계 다수설은 ‘들었을 가능성이 낮다’입니다. 1788년 작곡 직후 예약 콘서트가 무산됐다는 가설이 1962년 H. C. 로빈스 랜던 이후 통용돼 왔고, 도이치 자료집(1961)에도 모차르트 생전 41번 연주 기록은 한 줄도 없습니다. 닐 자슬로(1989)는 1789년 라이프치히 여행, 1790년 프랑크푸르트 대관식, 1791년 프라하 콘서트에서 연주됐을 가능성을 짚었지만 확정된 증거는 없습니다. 결국 평생의 마지막 교향곡 세 편을 작곡가 본인이 한 번도 못 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4악장 푸가토가 왜 그렇게 대단하다는 건가요?

종결부 24마디에 다섯 개 주제가 동시에 쌓이는데, 워런 커켄데일(1963) 분석에 따르면 이 다섯 성부는 24가지 순열로 위아래를 바꿔 끼워도 음악이 무너지지 않는 수학적 구조입니다(invertible quintuple counterpoint). 다섯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데 누가 위로 가고 누가 아래로 가든 전부 말이 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1주제 ‘do-re-fa-mi’는 모차르트가 여덟 살에 쓴 1번 교향곡 K.16 안단테에 이미 나오고, 열여덟 살 미사곡 K.192에도 등장합니다. 서른두 살의 모차르트가 여덟 살의 자신과 만나는 4분이라고 생각하면, 추상적인 설명이 단번에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좋아한 클라리넷을 왜 41번에선 뺐나요?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영어권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집니다(Elaine Sisman, 1993). C장조에 트럼펫·팀파니로 ‘의식적이고 황제다운’ 음색을 만들려면 부드러운 클라리넷의 따뜻함이 방해가 됐다는 분석입니다. 모차르트는 안톤 슈타들러에게 클라리넷 5중주 K.581과 클라리넷 협주곡 K.622까지 헌정한 사람인데, 41번에서만 그 악기를 통째로 비워 뒀습니다. 39번엔 클라리넷이 있고 40번도 개정판에서 추가됐는데 41번만 처음부터 끝까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39·40·41번 중 무엇을 먼저 들어야 하나요?

보통은 40번 g단조부터 권합니다. 다만 이 글의 맥락에서는 41번 → 1번 교향곡 K.16 안단테 → 열여덟 살 미사곡 K.192 ‘Credo’ 순서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네 음 동기 ‘do-re-fa-mi’가 모차르트의 삶을 따라 어떻게 이어졌는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다음 39번·40번으로 돌아가면, 같은 6주 동안 같은 책상 위에서 나온 세 곡이 서로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가 비로소 보입니다.

이어서 듣기 — 같은 책상에서 나온 다른 이야기들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들을 때보다, 그 곁의 이야기를 함께 알 때 훨씬 크게 울립니다. 41번을 낳은 그 여름의 형제 곡부터, 41번이 일부러 비워 둔 악기의 주인공, 그리고 잘로몬이 런던으로 데려간 또 다른 거장까지. 아래 글들을 나란히 들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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