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 교향곡 제8번 b단조, D.759 ‘미완성’

두 악장만 쓰고 멈추더니 37년 뒤 발굴됐다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곡명
교향곡 7번 b단조 D.759 “미완성”
(Symphony No. 7 in B minor, D. 759 “Unfinished”)
작곡
1822
초연
1865년 12월 17일, 빈
조성
b단조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5부
악장 구성
2악장 (미완성)
I. Allegro moderato (b단조)
II. Andante con moto (E장조)

1악장. 보통 빠르기로 빠르게
2악장. 움직임을 담아 느리게
연주 시간
약 25분

1865년 어느 가을날, 71세의 노인이 오랜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한 저택. 늙은 음악가 안젤름 휘텐브레너(Anselm Hüttenbrenner)가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빈 궁정오페라 수석 지휘자 요한 폰 헤르벡. 그가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음악계에 수십 년째 떠도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혹시 슈베르트의 교향곡 악보를 갖고 계십니까?”

휘텐브레너는 잠시 망설이더니 서랍 깊숙한 곳에서 누렇게 바랜 악보 묶음을 꺼냈습니다. 두 악장짜리 교향곡 총보에 세 번째 악장 시작 부분 두 페이지가 덧붙은 형태. 편지를 쓰다 갑자기 펜을 놓은 것처럼, 음악이 중간에서 뚝 끊겨 있었습니다.

이 악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 정확히 37년.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가 이 곡을 쓰기 시작한 건 1822년이었고, 서른한 살로 세상을 떠난 건 1828년이었습니다. 악보가 마침내 빛을 본 것은 1865년이었습니다.

《교향곡 8번 B단조》(Symphony No. 8 in B minor, D. 759).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스터리, 이른바 ‘미완성 교향곡’의 이야기입니다. 슈베르트는 왜 이 걸작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37년간 악보를 숨긴 친구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두 악장만으로 어떻게 완벽한 교향곡이 될 수 있었을까. 이 200년 된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갑니다.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가 그린 프란츠 슈베르트 초상화(1875년 복제본, 원본 1825년). 슈베르트의 생전 모습을 전하는 가장 유명한 초상 중 하나입니다.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가 그린 프란츠 슈베르트 초상화(1875년 복제본, 원본 1825년). 슈베르트의 생전 모습을 전하는 가장 유명한 초상 중 하나입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이 왜 ‘미완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지 궁금합니다.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을 1822년에 작곡했으나, 1악장과 2악장만을 완성하고 3악장은 일부만 스케치한 채 미완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스물다섯 살 청년의 어두운 가을

1822년 가을, 빈. 스물다섯 살의 프란츠 슈베르트는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미 600곡이 넘는 가곡을 완성한 상태였죠. 《마왕》, 《물레 잣는 그레트헨》 같은 걸작들이 빈의 음악 살롱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친구들과의 비공식 모임 ‘슈베르티아데’에서 매주 새 곡을 선보이며 명성을 쌓아가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에게는 남모를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가곡의 왕이라 불리면서도 정작 교향곡에서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전 교향곡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습작에 가까웠습니다. 스물다섯이면 모차르트가 이미 걸작 교향곡을 쏟아내던 나이. 그 사실을 슈베르트 자신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그해 10월, 슈베르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교향곡에 착수했습니다. 조성부터 파격이었습니다. B단조. 밝고 장대한 교향곡이 주류이던 시절, 어둡고 불안한 색채의 조성입니다. 베토벤도, 하이든도, 모차르트도 B단조 교향곡은 쓰지 않았습니다. 슈베르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한 겁니다.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가 시작되는 순간, 뭔가 달라졌다는 걸 누구나 느낍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낮고 어두운 선율을 조용히 읊조립니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느낌. 이 도입부만으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세계와는 결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음악학자들이 이 곡을 ‘최초의 낭만주의 교향곡’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첫 소절에 있습니다.

🎵 첫 번째 추천: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페라라 실황 — 위의 플레이어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첫 번째 주제를 이어받으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호른 두 대가 단 네 마디 만에 G장조로 전조하는 겁니다. 보통 교향곡에서 조성이 바뀌려면 정교한 경과구를 거쳐야 합니다. 슈베르트는 네 마디로 세계를 통째로 뒤집어버립니다. 당시 음악 이론가들이라면 기겁했을 대담함입니다.

그리고 첼로가 부르는 두 번째 주제. 이 선율은 한 번 들으면 며칠이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음악 칼럼니스트 지그먼트 스패스는 이 선율에 가사까지 붙였죠. “이것은… 슈베르트가 쓰고… 끝내지 못한… 심포니…” 농담 같지만, 그만큼 이 멜로디가 중독적이라는 방증입니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는 E장조로 시작합니다. 1악장의 불안과 격렬함이 한 겹 벗겨진 자리에 서정과 체념이 교차합니다. 호른과 저음 현이 부르는 첫 번째 주제는 위안을 주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아프게 울립니다. 두 번째 주제가 단조로 전환되면 애절함은 더 깊어지죠. 2악장 마지막은 누군가가 조용히 방을 나서는 듯한 여운을 남깁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게.

그리고 3악장 스케르초. 슈베르트는 오케스트라 총보로 딱 두 페이지를 쓴 뒤 펜을 놓았습니다. 피아노 스케치는 거의 완성 상태였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은 거기서 멈춘 겁니다. 트리오 부분의 두 번째 단락은 피아노 스케치에서조차 비어 있었습니다. 문장 중간에 마침표를 찍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결정적으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이후 6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 6년 동안 《방랑자 환상곡》,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송어 5중주곡》, 거대한 교향곡 9번 《그레이트》,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까지 걸작을 쏟아냈습니다. 시간도 능력도 충분했다는 뜻이죠. 그런데 왜 이 교향곡만은 건드리지 않았을까요?

매독, 그리고 펜이 멈춘 진짜 이유

1822년 말 혹은 1823년 초, 슈베르트의 인생에 재앙이 닥쳤습니다. 매독 진단. 당시 매독은 사실상 사형선고였습니다. 항생제는 존재하지 않았고, 유일한 치료법이랍시고 쓰던 수은 요법은 병보다 더 잔인했습니다. 수은을 피부에 바르고, 먹고, 증기를 흡입하는 치료. 탈모, 치아 손상, 장기 손상이 뒤따랐습니다. 슈베르트는 이 시기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가발을 써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미완성 교향곡 3악장 스케르초 자필 악보 첫 페이지(1885년 팩시밀리). 슈베르트는 오케스트라 총보 두 페이지까지만 쓰고 펜을 놓았습니다.
미완성 교향곡 3악장 스케르초 자필 악보 첫 페이지(1885년 팩시밀리). 슈베르트는 오케스트라 총보 두 페이지까지만 쓰고 펜을 놓았습니다.

투병 시기와 교향곡 작업 중단 시기가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겹칩니다.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이 바로 이것입니다. 슈베르트가 매독 초기 증상의 충격 속에서 자신의 가장 야심 찬 교향곡을 내려놓았다는 것. 이 곡의 어두운 B단조가 갑자기 너무나 개인적인 비극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운명의 사운드트랙이 되어버린 음악을 계속 쓴다는 게 가능했을까요?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매독 진단 직후에도 슈베르트는 《방랑자 환상곡》이라는 기술적 난도가 극한인 대작을 완성했거든요. 작곡 능력이 마비된 건 분명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가설이 등장합니다.

3박자의 함정입니다. 1악장은 4분의 3박자, 2악장은 8분의 3박자, 3악장 스케르초도 4분의 3박자. 세 악장 연속 3박자는 고전파 교향곡 전통에서 극히 이례적입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이런 패턴은 사실상 없습니다. 4악장까지 비슷한 박자가 이어지면 구조적으로 단조로워진다는 걸 슈베르트도 느꼈을 겁니다. 실제로 3악장 피아노 스케치의 트리오 부분에서 확연히 막혀 있던 흔적이 보입니다.

세 번째 가설은 더 대담합니다. 4악장이 사실은 존재한다는 것. 영국의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드가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1823년 초 작곡된 극부수음악 《로자문데》의 B단조 간주곡이 이 교향곡의 원래 4악장이었다는 겁니다. 같은 B단조, 같은 오케스트라 편성, 같은 작곡 양식. 슈베르트가 교향곡 4악장을 급하게 필요해진 《로자문데》 공연에 재활용했다는 추론이죠. 증거는 모두 정황적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완성 교향곡은 완성된 적이 있었다는 반전이 됩니다.

어쩌면 이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매독의 충격, 구조적 난관, 새 작품에 대한 영감의 유혹. 확실한 건 하나뿐입니다. 슈베르트 자신은 이 곡이 ‘미완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디에도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37년의 침묵 — 휘텐브레너는 왜 악보를 숨겼을까

1823년, 그라츠 음악협회(슈타이어마르크 음악협회)가 슈베르트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슈베르트는 감사의 뜻으로 교향곡을 헌정하기로 했고, 협회의 핵심 멤버이자 오랜 친구 안젤름 휘텐브레너에게 악보를 보냈습니다. 두 악장 완성본에 3악장 시작 부분이 첨부된 총보였습니다.

그런데 휘텐브레너는 이 악보를 협회에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연주회에 올리지도, 존재를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1828년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37년 동안 철저히.

안젤름 휘텐브레너 초상. 슈베르트의 오랜 친구이자 작곡가였던 그는 미완성 교향곡 악보를 37년간 숨겼습니다.
안젤름 휘텐브레너 초상. 슈베르트의 오랜 친구이자 작곡가였던 그는 미완성 교향곡 악보를 37년간 숨겼습니다.

이 침묵의 이유에 대해서도 학계의 추론이 분분합니다.

첫째, 미완성이라 곤란했다는 설입니다. 두 악장만으로는 정식 연주회에 올리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슈베르트에게 돌려보내거나 협회에 사정을 설명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1~2년까지는 성립해도 37년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둘째, 소유욕. 휘텐브레너 자신도 작곡가였습니다. 베토벤에게 직접 사사할 만큼 진지한 인물이었지만 천재적 재능까지는 아니었죠. 슈베르트의 놀라운 악보를 손에 쥐고 차마 놓지 못했다는 해석입니다. 자기보다 위대한 친구의 원고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위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셋째, 가장 인간적인 가설. 죄책감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망각이었을 겁니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면 ‘그때 왜 전달 안 했어?’라는 질문이 두려워집니다. 10년이 지나면 변명할 수 없게 되고, 슈베르트가 죽은 뒤에는 친구의 유작을 방치했다는 것 자체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비밀이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백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법이니까요.

결국 1865년, 71세의 휘텐브레너는 자신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음악계의 소문을 끈질기게 추적한 헤르벡이 찾아왔을 때, 그는 마침내 서랍을 열었습니다. 3년 뒤 휘텐브레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악보를 내놓지 않았다면 이 교향곡은 영원히 사라졌을 겁니다.

베토벤의 《영웅》이 음악사의 물줄기를 바꿨듯, 이 미완성 교향곡도 세상에 나오자마자 충격을 안겼습니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바쳤다 찢어버린 《영웅》 교향곡의 혁명이 고전에서 낭만으로의 문을 열었다면, 슈베르트의 미완성은 그 문 너머 세계를 처음으로 보여준 증거였습니다.

1865년 12월 17일, 빈 — 43년 만의 첫 울림

헤르벡은 곧바로 초연을 준비했습니다. 1865년 12월 17일, 빈.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두 악장짜리 교향곡으로는 연주회가 성립하기 어려웠거든요. 헤르벡의 궁여지책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3번 D장조 마지막 악장을 3악장으로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미완성 교향곡의 두 악장이 만들어낸 깊이에 비하면, 교향곡 3번의 피날레는 지나치게 가볍고 밝았습니다. 조성도 B단조와 D장조로 전혀 안 맞았죠. 묵직한 비극 뒤에 갑자기 시트콤 엔딩을 붙인 꼴이었습니다.

요제프 텔처의 드로잉(1827년). 왼쪽부터 요한 바프티스트 옌거, 안젤름 휘텐브레너, 프란츠 슈베르트. 슈베르트 생전의 모습을 담은 귀중한 자료입니다.
요제프 텔처의 드로잉(1827년). 왼쪽부터 요한 바프티스트 옌거, 안젤름 휘텐브레너, 프란츠 슈베르트. 슈베르트 생전의 모습을 담은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청중의 반응은 그런 불균형을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빈의 저명한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가 열광적인 리뷰를 남겼습니다. 43년 동안 서랍 속에서 잠자던 곡이 빈 청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겁니다. 2년 뒤인 1867년, C.A. 슈피나 출판사에서 두 악장 악보가 최초로 출판되었습니다.

이후 이 곡은 놀라운 속도로 전 유럽의 핵심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변화가 뒤따랐습니다. 언제부턴가 지휘자들이 다른 악장을 끼워 넣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두 악장만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거죠. 놀랍게도 아무도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브람스가 베토벤의 그림자 아래서 21년을 고민한 끝에 교향곡 1번을 완성한 것처럼, ‘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네 악장을 다 채워야 완성일까요? 아니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말했을 때가 완성일까요?

두 악장으로 완벽한 교향곡

미완성 교향곡을 완성하려는 시도는 200년 가까이 이어져 왔습니다.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드가 3악장 스케르초의 피아노 스케치를 오케스트레이션해 연주 가능한 버전을 만들었고, 2019년에는 AI가 나머지를 ‘완성’하는 프로젝트도 등장했습니다. 화웨이가 후원한 이 프로젝트에서 인공지능이 슈베르트의 작곡 스타일을 학습해 3, 4악장을 생성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기술적으로는 인상적이었지만 음악적으로 납득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두 악장은 이미 완벽한 서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반 피셔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현대적 감각으로 두 악장의 극적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연주입니다.

1악장은 불안과 동경이 충돌하는 드라마입니다. 어둠 속에서 시작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멜로디와 격렬한 폭발을 오가다가 결국 어둠으로 돌아옵니다. 트롬본 세 대가 클라이맥스에서 주제를 포효하듯 연주하는 순간, 이건 더 이상 모차르트의 세계가 아닙니다. 온전히 슈베르트만의 언어입니다.

2악장은 폭풍 뒤에 찾아오는 서정과 위안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은 아닙니다. “괜찮을 거야”라는 조용한 속삭임에 가깝습니다. 확답이 아니라 바람. 약속이 아니라 위로.

이 두 악장의 관계는 질문과 불완전한 대답의 관계입니다. 3악장이나 4악장이 와서 확실한 결론을 내려버리면, 이 곡이 품고 있는 불확실성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파괴됩니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완벽한 역설.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답을 내리지 않을 때 더 깊은 울림을 남기는 법입니다.

음악 평론가들이 이 곡을 ‘최초의 낭만주의 교향곡’이라 부르는 것도 이 맥락입니다. 베토벤의 《영웅》에도 같은 수식어가 붙지만 성격이 다릅니다. 《영웅》이 바깥세계를 향한 선언이었다면, 미완성 교향곡은 안쪽으로 파고드는 독백입니다.

영웅은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외치지만, 미완성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속삭입니다.

때로는 외침보다 속삭임이 더 오래 남습니다.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을 쓰고 6년 뒤인 1828년 11월 19일, 서른한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식 사인은 장티푸스였지만 매독 합병증이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그가 남긴 유언 중 하나는 존경하던 베토벤 곁에 묻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빈 중앙묘지에서 두 거장의 무덤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미완성 교향곡은 어쩌면 슈베르트 자신의 초상일지도 모릅니다. 31년이라는 짧은 생, 천 곡이 넘는 작품,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천재. 그 자체로 미완성이면서 그 자체로 완벽한 한 인생.

볼프강 자발리슈 지휘. 정통 독일 스타일의 묵직하고 깊이 있는 해석으로, 미완성 교향곡의 고전적 기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따라가며 들을 수 있는 영상.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교향곡 제8번 ‘미완성’ b단조 D.759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은 정확히 몇 번 교향곡인가요?

전통적으로 8번으로 불려왔지만, 최근 개정된 도이치 카탈로그와 ‘새 슈베르트 전집(Neue Schubert-Ausgabe)’에서는 7번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작품번호는 D. 759. 연주회에서는 “교향곡 8번(7번) B단조 ‘미완성’”처럼 병기하는 경우가 많으니 두 번호 모두 같은 곡으로 기억하시면 됩니다.

미완성 교향곡을 처음 들을 때 추천 연주가 있나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1989년 페라라 실황이 입문용으로 탁월합니다. 과장 없이 슈베르트 특유의 선율미를 살리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연주입니다. 좀 더 개성 있는 해석을 원한다면,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추천합니다.

이 교향곡을 완성한 버전이 존재하나요?

여러 시도가 있었습니다.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드가 3악장 스케르초를 오케스트레이션하고 《로자문데》 간주곡을 4악장으로 배치한 버전이 학술적으로 가장 인정받습니다. 2019년 화웨이의 AI 완성 프로젝트도 화제가 되었지만 음악적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지휘자와 청중은 원작 그대로 두 악장만 연주하는 쪽을 택합니다. 미완성이야말로 이 곡의 정체성이니까요.

이 교향곡의 주요 특징과 연주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은 단 2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b단조의 조성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전체 연주 시간은 약 25분 정도이며, 초기 낭만주의 교향곡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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