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 슈베르트가 ‘소름 끼친다’고 부른 노래

죽음을 예감한 작곡가의 마지막 겨울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곡명
겨울 나그네, Op. 89, D. 911
(Winterreise)
작곡 기간
1827년 (1부 2월 · 2부 10월)
구성
전 24곡 연가곡
1. 안녕히 주무세요(Gute Nacht)
5. 보리수(Der Lindenbaum)
11. 봄의 꿈(Frühlingstraum)
24. 거리의 악사(Der Leiermann)
편성
성악(원전은 테너), 피아노
초연
1827년, 빈 쇼버의 집에서 친구들 앞 비공개 초연
1부 출판 1828년 1월 14일 (토비아스 하슬링거)
연주 시간
약 70~75분

이 곡은 — 슈베르트가 죽기 한 해 전, 사랑을 잃은 한 남자가 얼어붙은 들판으로 걸어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과정을 24곡에 새긴 가곡집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5번 《보리수》. 가장 다정하게 들리는 그 멜로디가 사실은 가장 위험한 순간이거든요.

첫 음반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 제럴드 무어 (DG, 1972). 바리톤 연가곡의 교과서.

먼저 듣기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 · 알프레트 브렌델(피아노). 70분 전곡입니다. 읽는 동안 1번 《안녕히 주무세요》만이라도 틀어두세요.

슈베르트는 이 노래들을 친구들에게 처음 들려주던 날, 이렇게 예고했습니다. “오늘 쇼버네 집으로 와. 소름 끼치는 노래들을 한 묶음 불러줄 테니까.” 친구 슈파운이 30년 뒤에 적어 남긴 기록입니다. 독일어로 ‘schauerliche Lieder’ — 끔찍한, 으스스한 노래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겨울 나그네》를 실연의 아픔을 달래는 서정 가곡집쯤으로 압니다. 1986년 강석우·이미숙이 나온 그 영화 제목으로 더 익숙한 분도 계실 테고요. 그런데 정작 곡을 쓴 사람은 이걸 위로의 음악이라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가 고른 단어는 ‘소름’이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가 그린 프란츠 슈베르트 초상
친구들이 “그와 가장 닮았다”고 입을 모은 리더의 초상. 이 그림 속 청년에게 남은 시간은 채 두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소름 끼치는 노래를 들려줄게”

그날 쇼버의 집에 모인 친구들은 당황했습니다. 슈베르트가 피아노 앞에 앉아 24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떨리는 목소리로 다 불렀거든요. 한 시간이 넘었지요. 그런데 노래가 하나같이 어둡고 음울했습니다. 사랑에 실패한 남자가 한겨울 마을을 떠나 정처 없이 걷는 이야기, 그게 끝도 없이 이어졌으니까요.

슈파운의 기록에 따르면, 친구들은 그 우울한 분위기에 완전히 얼어붙었습니다. 딱 한 사람, 쇼버만이 입을 열었어요. “그래도 《보리수》 하나는 마음에 든다.” 스물네 곡 중 단 한 곡. 나머지 스물세 곡은 친구들에게 통째로 외면당한 셈이지요.

잠깐 그 거실 풍경을 떠올려 볼까요. 슈베르트의 친구들은 결코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시인, 화가, 법률가… 빈에서 가장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청년들이 모여 ‘슈베르티아데’라는 음악 모임을 열던 이들이었지요. 슈베르트의 가곡 수백 곡을 가장 먼저, 가장 사랑으로 들어준 청중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조차 이 곡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어요. 그만큼 《겨울 나그네》는 그들이 알던 슈베르트와 달랐습니다.

그때 슈베르트가 벌떡 일어나 받아쳤습니다. “이 노래들이 다른 어떤 곡보다 내 마음에 들어. 너희도 언젠가 좋아하게 될 거다.” 그는 옳았습니다. 200년이 지난 지금, 《겨울 나그네》는 독일 가곡이 도달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불립니다. 친구들이 외면한 그 스물세 곡째까지 전부.

그러니 이 글에서 한 가지만 가져가신다면 이겁니다. 《겨울 나그네》는 실연을 위로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실연이 끝나버린 자리에서, 한 인간이 얼어붙은 들판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기록이에요.

모리츠 폰 슈빈트가 그린 슈베르티아데 — 피아노를 중심으로 모인 친구들
슈빈트가 기억에 의지해 그린 ‘슈베르티아데’. 바로 이런 모임에서, 친구들은 《겨울 나그네》를 듣고 말을 잃었습니다.

죽은 시인의 유고에서 건진 24편

이 노래들의 가사는 슈베르트가 직접 쓴 게 아닙니다. 빌헬름 뮐러라는 시인의 시예요. 슈베르트는 1823년 라이프치히에서 나온 한 문예 연감에서 《겨울 나그네》 연작시 12편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 12편에 곡을 붙인 게 1827년 2월. 이게 1부가 됐지요.

그런데 곡을 다 쓰고 나서야, 슈베르트는 뮐러가 같은 연작을 24편으로 늘려 시집에 실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12편이 전부인 줄 알고 한 덩어리로 완성했는데, 뒤늦게 절반이 더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해 10월, 나머지 12편에 다시 곡을 붙여 2부를 만듭니다. 우리가 듣는 24곡의 순서가 뮐러의 최종 시집 순서와 다른 건 그 때문이지요.

뮐러는 이 시집을 《어느 떠돌이 호른 연주자의 유고에서》라는 제목으로 묶어,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에게 헌정했습니다. 정작 자신의 시가 음악사에 길이 남을 가곡이 되리란 건 끝내 몰랐어요. 1827년 9월 30일,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슈베르트가 2부를 마무리하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시인은 작곡가의 노래를 한 곡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데사우에서, 한 사람은 빈에서 살았지요. 편지를 주고받은 기록도 없어요. 그런데도 슈베르트는 뮐러의 시에서 자기 마음을 그대로 읽어냈고, 거기에 음표를 입혀 시를 영원히 살려냈습니다. 서른두 살에 떠난 시인과 서른한 살에 떠난 작곡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두 요절한 청년이, 《겨울 나그네》라는 한 작품 안에서 비로소 만난 셈이지요.

겨울 나그네의 시를 쓴 시인 빌헬름 뮐러의 초상 판화
시인 빌헬름 뮐러. 슈베르트보다 한 해 먼저, 자기 시가 명곡이 된 걸 모른 채 떠났습니다.

병든 1827년, 그가 알고 있던 것

왜 하필 이 시였을까요. 1827년의 슈베르트는 이미 자기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몇 해 전부터 매독을 앓았고, 머리카락이 빠져 한동안 가발을 썼다는 기록도 있어요. 서른 살, 한창때의 청년이 자기 끝을 가늠하기 시작한 겁니다.

게다가 1827년은 슈베르트에게 죽음이 유난히 가까웠던 해입니다. 그해 3월, 그가 평생 우러러본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거든요. 슈베르트는 그 장례 행렬에서 횃불을 든 추모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거인의 관을 따라 걸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기 차례가 멀지 않았다는 예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는 이듬해 세상을 떠나, 빈 베링 묘지의 베토벤 바로 곁에 묻혔습니다. 《겨울 나그네》는 바로 그 1827년, 두 죽음 사이에서 태어난 곡이에요.

그런 사람 앞에 ‘길 떠나는 자의 노래’가 놓였습니다. 사랑을 잃고, 마을을 등지고, 눈밭을 걷는 한 남자. 뮐러의 화자는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릅니다. 그저 걷지요. 슈베르트는 이 익명의 방랑자에게서 자기 자신을 봤을 겁니다. 위로받으려고 쓴 게 아니라, 이미 도착해버린 자리를 음악으로 정직하게 옮긴 거예요.

그래서 이 연가곡엔 반전이 없습니다. 보통의 비극은 바닥을 친 뒤 빛을 향해 고개를 듭니다. 《겨울 나그네》는 그러지 않아요. 1번에서 이미 모든 게 끝나 있고, 곡이 진행될수록 더 깊이, 더 차갑게 가라앉습니다. 24곡 70분, 출구 표지판이 단 하나도 없는 길이지요.

평생 길 위에 있던 사람

방랑자라는 인물이 슈베르트에게 갑자기 찾아온 건 아닙니다. 그는 평생 그 단어 곁에 살았어요. 안정된 직장을 끝내 얻지 못했고, 궁정 자리에도 교사 자리에도 번번이 미끄러졌습니다. 자기 집이라 부를 곳이 마땅치 않아, 친구들 집을 옮겨 다니며 신세를 졌지요. 빈의 음악계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늘 그 가장자리를 맴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엔 ‘방랑자’가 거듭 등장합니다. 1816년에 쓴 가곡 《방랑자(Der Wanderer)》가 그렇고, 1822년의 《방랑자 환상곡》이 그렇지요. 《방랑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행복은, 네가 없는 그곳에 있다.” 여기 아닌 어딘가에 늘 답이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또 여기가 아닌 마음. 슈베르트는 그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겨울 나그네》의 방랑자는 그 인물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더는 ‘여기 아닌 어딘가’를 찾지 않아요. 찾을 것이 남지 않았거든요. 그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을 뿐이지요. 평생 길 위에 있던 작곡가가, 마침내 그 길의 끝을 음악으로 그린 셈입니다.

출구 없는 길 — 첫 곡에서 마지막 곡까지

그 길을 몇 개의 이정표로 따라가 봅시다. 어디서 발을 들이고, 어디서 멈칫하고, 어디서 마침내 무너지는지.

한 가지 미리 귀띔할 게 있어요. 이 곡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가 아닙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이지요. 노래하는 사람이 풍경을 말하면, 피아노가 그 풍경을 직접 그려냅니다. 눈밭을 밟는 발걸음, 뺨에 얼어붙는 눈물, 휘몰아치는 바람, 멀리서 울리는 우편 나팔, 마지막 거리 악사의 라이어까지. 성악가의 목소리만 좇지 말고 피아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함께 들어보세요. 그래야 이 겨울 풍경이 입체로 살아납니다.

1번 《안녕히 주무세요》 — 떠나는 자의 인사

첫 곡의 첫 줄이 이 모든 여정을 요약합니다. “낯선 자로 왔다가, 낯선 자로 떠난다.” 그는 한때 이 마을에서 사랑받았어요. 결혼까지 이야기되던 사이였지요. 그런데 봄이 가고, 사랑이 식고, 이제 한겨울에 혼자 짐을 쌉니다. 피아노는 처음부터 끝까지 또박또박 걷는 발걸음을 찍어냅니다. 멈추지 않아요. 누가 깨지 않게 대문에 “안녕히”라고 적어두고, 그는 어둠 속으로 발을 뗍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노래가 시작하면 피아노 왼손이 찍는 일정한 걸음을 따라가 보세요. 곡 끝 무렵, 단조였던 화음이 잠깐 장조로 풀리는 순간이 옵니다. 떠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짓는 서글픈 미소 같은 대목이에요.

5번 《보리수》 — 친구들이 유일하게 사랑한 함정

쇼버가 좋아한 그 곡입니다. 그럴 만해요. 24곡 중 가장 따뜻하고 가장 입에 붙는 멜로디거든요. 독일에서는 아예 민요처럼 불리고, 한국에서도 《보리수》라는 제목으로 음악 교과서에 실렸지요. 1986년 영화 《겨울 나그네》에 흐르던 그 선율도 바로 이 곡입니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성문 앞 우물가 보리수가 방랑자를 부릅니다. “이리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달콤한 초대지요. 문제는 그 안식의 정체예요. 나무 그늘 아래 영원히 눕는 것, 그건 곧 죽음의 권유입니다. 친구들이 유일하게 사랑한 그 노래가, 사실은 죽음이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는 순간이었던 거예요.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에 가장 위험한 유혹을 숨겨둔 슈베르트의 솜씨가 여기 있습니다.

음악도 그 양면을 그대로 비춥니다. 노래의 첫머리, 피아노가 잘게 떨리는 음들로 보리수 잎이 바람에 살랑이는 소리를 냅니다. 그러다 멜로디가 단조로 어두워졌다 다시 장조로 환해지기를 반복해요. 따뜻함과 서늘함이 한 곡 안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지요. 듣는 사람은 자장가 같은 평온함에 안기다가, 문득 그 평온이 영원한 잠을 가리킨다는 걸 깨닫고 흠칫합니다. 가장 귀에 익은 이 곡이, 사실은 가장 듣기 어려운 곡인지도 모르겠어요.

7번 《강 위에서》·13번 《우편마차》 — 얼어붙은 심장이 뛰는 순간

여정 초반, 방랑자는 꽝꽝 언 강 앞에 섭니다. 한때 거세게 흐르던 물이 이제 얼음장 아래 갇혔지요. 그는 그 얼음 위에 뾰족한 돌로 연인의 이름과 만남의 날짜를 새깁니다. 그러곤 자문해요. 내 심장도 이 강과 같은 게 아닐까. 겉은 이렇게 단단히 얼어 있어도, 그 밑에선 아직 무언가가 미친 듯이 흐르고 있는 건 아닐까. 음악이 조용히 시작해 갑자기 격류처럼 부풀어 오르는 대목입니다.

《우편마차》에선 그 얼어붙은 심장이 한 번 펄쩍 뜁니다. 멀리서 우편 나팔 소리가 들리거든요. 심장이 묻습니다. 혹시 그녀의 편지가 온 걸까? 음악이 모처럼 또각또각 경쾌하게 달립니다. 하지만 편지는 없어요. 그 우편마차는 그저 그녀가 사는 마을 쪽에서 왔을 뿐이지요. 희망이 솟았다가 제풀에 꺾이는 이 한 곡이, 24곡 가운데 가장 잔인한 가짜 위안인지도 모릅니다.

11번 《봄의 꿈》·15번 《까마귀》 — 환각과 그림자

여정의 한복판에서 방랑자는 잠깐 꿈을 꿉니다. 《봄의 꿈》에서 그는 꽃피는 5월과 사랑하는 사람을 봐요. 음악이 환하게 피어나지요. 그러다 까마귀 울음에 깹니다. 창에 성에가 낀 한겨울 새벽, 꿈은 산산조각 나고 음악은 다시 곤두박질칩니다. 환희와 추락이 한 곡 안에서 칼처럼 교차해요.

《까마귀》에 이르면 그 새 한 마리가 마을에서부터 그를 따라옵니다. 머리 위를 빙빙 돌지요. 방랑자는 묻습니다.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줄 셈이냐고. 시체를 노리고 따라붙는 새에게, 그는 차라리 동행을 청합니다. 이쯤 되면 그가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지 더 숨길 수도 없게 됩니다.

20번 《이정표》·21번 《여인숙》 — 죽음마저 그를 돌려보내다

여정의 끝자락, 방랑자는 길가에 선 이정표를 봅니다. 마을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지요. 그런데 그는 사람들이 다니는 그 길을 외면합니다. 대신 다른 길 하나가 보인다고 말해요. “아직 아무도 되돌아온 적 없는 길.” 어디로 가는 길인지 우리는 압니다. 그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여인숙》. 그는 묘지에 다다라, 그곳을 하룻밤 묵을 여인숙으로 여깁니다. 이제 여기서 쉬자고, 이 차가운 방에 눕자고 청하지요. 다시 말해, 죽음을 부탁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인숙엔 빈방이 없습니다. 묘지조차 그를 받아주지 않아요. 죽고 싶은데 죽음마저 문을 닫아건 셈이지요. 그는 지팡이를 고쳐 쥐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가장 낮은 바닥인 줄 알았던 곳에서, 한 칸 더 내려갈 데가 남아 있었던 거예요.

24번 《거리의 악사》 — 아무도 듣지 않는 라이어

그리고 마지막 곡. 마을 끝자락에 늙은 거리 악사가 서 있습니다. 맨발로 얼음 위에 서서, 곱은 손가락으로 라이어(손풍금)를 돌리지요. 동냥 접시는 비어 있고, 아무도 듣지 않고, 개들만 으르렁댑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고 똑같은 가락을 계속 돌립니다.

피아노는 단 두 음으로 라이어의 텅 빈 울림을 흉내 냅니다. 음악이라기보다 기계의 신음 같아요. 방랑자는 노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이상한 노인이여, 당신과 함께 가도 될까요? 내 노래에 맞춰 라이어를 돌려주겠소?” 많은 학자가 이 노인을 죽음의 형상으로 읽습니다. 드디어 동행할 상대를 찾은 거예요.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음악은 그냥, 끝나버립니다.

물론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거리 악사를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가락을 돌리는 한 예술가의 초상으로 읽는 거지요. 그렇게 보면 방랑자가 노인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절망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을 향한 희미한 동질감이 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슈베르트는 끝내 알려주지 않아요. 다만 그 마지막 두 음, 텅 빈 라이어의 울림만이 여운처럼 남을 뿐입니다. 70분을 함께 걸어온 청중에게, 그는 답 대신 침묵을 건넵니다.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 — 율리안 프레가르디엔(테너) · 라르스 포크트(피아노). 자막이 있어 가사를 따라가기 좋습니다. 끝나는 방식을 눈여겨보세요.

💡 사실은요 — 원제 ‘Winterreise’는 ‘겨울 나그네’가 아니라 ‘겨울 여행’에 가깝습니다. ‘나그네(방랑자)’는 한국어 제목이 더한 색채예요. 다만 슈베르트가 평생 ‘방랑자(Wanderer)’라는 인물에 매달렸던 걸 생각하면, 이 의역은 곡의 본질을 꽤 정확히 짚은 셈이지요. (출처: Wikipedia ‘Winterreise’, Britannica)

출판된 지 며칠 뒤, 그는 떠났다

1부는 1828년 1월 14일, 빈의 출판업자 토비아스 하슬링거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습니다. 작품번호 89번을 달고서요. 그런데 슈베르트는 자기 곡이 완성된 형태로 다 나오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1828년 11월 19일, 그는 서른한 살로 눈을 감습니다. 생의 마지막 며칠 동안 그가 붙들고 있던 일이 바로 《겨울 나그네》 2부의 교정쇄였어요. 그러니까 슈베르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손본 음표는, 아무도 듣지 않는 거리 악사의 라이어 소리였던 셈입니다. 2부는 그가 죽고 한 달 반 뒤인 12월 30일에야 출판됐습니다.

“소름 끼치는 노래”라던 그의 말이 무겁게 다가오는 건 이 대목입니다. 그는 자기 죽음을 예감하며 죽음의 노래를 썼고, 그 노래의 마지막 장을 다듬다 떠났어요. 친구들이 외면한 그 음울함은 엄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끝을 정면으로 응시한 기록이었던 거지요. 가장 어두운 곳을 끝까지 들여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노래가, 바로 이 24곡입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자필 악보 원고
《겨울 나그네》 자필 악보. 1부는 고친 흔적이 빼곡하고, 2부는 거의 단번에 쓴 정서본입니다. 손이 급했던 걸까요.

친구들이 틀렸다 — 거절당한 곡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너희도 언젠가 좋아하게 될 거다.” 쇼버의 거실에서 슈베르트가 남긴 그 말은, 200년에 걸쳐 천천히 증명됐습니다. 처음엔 당대 사람들도 어리둥절했어요. 살롱에서 가볍게 즐기던 가곡과 너무 달랐거든요. 위로도, 사랑의 결실도, 희망찬 결말도 없는 70분짜리 어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다들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타협 없는 정직함이야말로 이 곡의 힘이라는 걸요. 오늘날 《겨울 나그네》는 독일 가곡이 오른 가장 높은 봉우리로 꼽힙니다. 성악가들에게는 일종의 마라톤이자 시험대예요. 한 사람이 피아니스트 단 한 명과 함께, 70분 동안 무대 위에서 한 인간의 영혼이 무너지는 과정을 끌고 가야 하니까요.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는 이 곡 하나에 매달려 《슈베르트의 겨울 여행: 강박의 해부》라는 책 한 권을 썼습니다. 가곡 한 편을 두고 단행본이 나오는 일은 흔치 않지요. 친구들이 외면했던 그 스물세 곡째까지, 이제는 평생을 바쳐 파고들 가치가 있는 우주가 된 겁니다. 슈베르트가 옳았어요.

한국이 기억하는 겨울 나그네

한국에서 ‘겨울 나그네’라는 말은 슈베르트보다 먼저 다른 얼굴로 다가온 경우가 많습니다. 최인호의 소설, 그리고 1986년 곽지균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 강석우·이미숙·안성기가 나온 이 멜로 영화는 그해 크게 흥행했고, 영화 내내 흐르던 선율이 바로 슈베르트의 《보리수》였지요. 슈베르트의 가장 어두운 연가곡이, 한국에선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번안돼 들어온 셈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겨울 나그네》라는 다섯 글자가 우리에게 유독 애틋하게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정작 곡의 속살은 그 애틋함보다 훨씬 차갑고 깊은데도 말이지요.

제대로 된 전곡 연주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2009년 12월, 예술의전당에서 베이스 연광철이 《겨울 나그네》를 불렀거든요. 피아노 반주는 지휘자 정명훈이 맡았습니다. 세계적인 바그너 베이스와 마에스트로가 한 무대에서 빚어낸 이 실황은 음반으로도 남아 있어요. 한국어 해설과 함께 이 곡을 처음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출발점이지요.

베이스 연광철의 《겨울 나그네》. 묵직하고 어두운 저음이 이 곡의 추위와 유독 잘 맞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가장 다정한 함정, 첫 곡 《안녕히 주무세요》를 악보와 함께 따라가 보세요. 피아노 왼손의 걸음이 눈으로도 보일 겁니다.

첫 곡 《안녕히 주무세요》를 악보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8분음표가 곧 방랑자의 발걸음입니다.

전곡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겨울 나그네 악보 보기 (IMSLP)

어떤 노래로 시작할까

《겨울 나그네》는 목소리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이 됩니다. 바리톤은 품위 있게, 베이스는 더 캄캄하게, 테너는 더 날카롭게 이 추위를 그리지요. 입문용으로 세 장을 골랐습니다.

👑 첫 감상 추천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 제럴드 무어(피아노)

DG · 1972

바리톤 연가곡의 표준으로 통하는 녹음. 발음 하나하나가 또렷해 가사를 처음 따라가기에 가장 친절합니다. 단, 너무 ‘정통’이라 밋밋하게 느껴질 분도 있어요.

레퍼런스

마티아스 괴르네 · 알프레트 브렌델(피아노)

Decca · 2004

현대 녹음의 음질에 무겁고 어두운 해석을 더한 한 장. 깊이를 원한다면 이쪽이지만, 호흡이 느려 첫 감상엔 버거울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연광철(베이스) · 정명훈(피아노)

Sony · 2009 (예술의전당 실황)

한국 연주자의 실황 기록. 베이스의 어두운 저음이 겨울의 한기와 잘 맞습니다. 실황이라 완벽주의자에겐 작은 흠이 거슬릴 수도 있어요.

겨울 나그네는 교향곡인가요, 노래인가요?

노래입니다. 정확히는 한 명의 성악가와 피아노 한 대가 24곡을 이어 부르는 ‘연가곡(song cycle)’이에요. 오케스트라는 쓰이지 않습니다. 원전은 테너를 위해 쓰였지만, 오늘날엔 바리톤·베이스도 즐겨 부릅니다.

가사는 슈베르트가 직접 썼나요?

아닙니다. 시인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 24편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였습니다. 뮐러는 자기 시가 명곡이 된 걸 보지 못하고 1827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제일 유명한 곡은 무엇인가요?

5번 《보리수》입니다. 독일에서는 민요처럼 불릴 만큼 친숙하고, 한국에서도 음악 교과서와 1986년 영화 《겨울 나그네》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슈베르트의 친구들 가운데 이 곡을 유일하게 좋아한 사람이 있었을 만큼, 처음부터 대중적인 매력이 있었어요.

전곡을 들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연주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70~75분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1번 《안녕히 주무세요》, 5번 《보리수》, 24번 《거리의 악사》 세 곡만 먼저 들어봐도 곡의 분위기를 잡을 수 있어요.

왜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가요?

슈베르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던 1827년에 쓴 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 곡을 “소름 끼치는 노래”라고 소개했고, 실제로 위로나 희망 대신 한 인간이 끝을 향해 걷는 과정을 정직하게 담았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눈길 너머의 다음 발자국

클래식은 한 곡이 다른 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알게 될 때 훨씬 깊어집니다. 《겨울 나그네》의 추위가 마음에 남았다면, 그 여운을 데리고 다음 발자국을 떼어 보세요. 죽음을 응시한 슈베르트의 또 다른 얼굴부터, 같은 어둠을 다르게 그린 동시대 명곡까지 골라봤어요.

🎼 슈베르트의 다른 작품 해설 모아보기 →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