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 교향곡 제9번 C장조 D.944 ‘더 그레이트’

슈베르트가 끝내 못 들은 채 남긴 60분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곡명
교향곡 9번 C장조 D.944 ‘더 그레이트’
(Symphony No. 9 in C major, D.944 “The Great”)
작곡 기간
1825년 여름 ~ 1826년 봄·여름 완성
악장
4악장
I. Andante – Allegro ma non troppo (C장조)
II. Andante con moto (a단조)
III. Scherzo: Allegro vivace (C장조)
IV. Allegro vivace (C장조)

1악장. 느리게 – 빠르지 않게
2악장. 움직임을 갖고 느리게
3악장. 스케르초: 매우 빠르고 활기차게

4악장. 매우 빠르고 활기차게

편성
2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2트럼펫, 3트롬본, 팀파니, 현악기
초연
1839년 3월 2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펠릭스 멘델스존 (지휘)

※ 슈베르트 사후 10년

출판
1849년,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헌정
빈 게젤샤프트 데어 무지크프로인데

“너무 길고 어렵습니다.”

1826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의 한 음악협회(게젤샤프트 데어 무지크프로인데)가 프란츠 슈베르트에게 보낸 일종의 ‘입구컷’ 통보입니다. 슈베르트는 갓 완성한 교향곡 악보를 이 협회에 바쳤고 소정의 사례금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연주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협회 산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몇 번 훑어보더니 “이건 도저히 우리 수준이 아니다”라며 서랍 속에 처박아버린 겁니다.

슈베르트는 그로부터 2년도 채 안 돼 31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이 영혼을 갈아 넣은 이 대작이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걸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채로 말이지요.

그리고 딱 10년 뒤. 이 곡의 봉인을 해제한 천재가 등장합니다. 초연을 본 로베르트 슈만은 리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천상의 길이(göttliche Länge)다.” 똑같은 60분짜리 곡을 두고 한쪽은 “지루해서 못 해먹겠다”고 버렸고, 다른 한쪽은 “천국에 있는 기분”이라며 열광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악보는 토씨 하나 안 바뀌었으니까요. 변한 건 오직 이 압도적인 스케일을 소화할 수 있게 된 ‘세계의 수준’뿐이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기가 막힙니다. 작곡 완성(1826년)부터 초연(1839년)까지 13년, 악보 출판(1849년)까지 무려 23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이 곡이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위상을 생각하면 엄청난 낭비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어쩌면 이 거대한 교향곡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줄 청중이 나타날 때까지 캄캄한 서랍 속에서 묵묵히 때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생전의 슈베르트를 먹여 살린 건 웅장한 교향곡이 아니라 소박한 가곡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모여 피아노를 치며 새 노래를 부르던 ‘슈베르티아덴(슈베르트 모임)’이 그의 주 무대였지요. ‘인디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풀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몰래 준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9번 교향곡은 그의 인생을 건 마지막 도박이었습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D.944 자필 악보 마지막 페이지
슈베르트 교향곡 9번(D.944) 자필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 1826년 완성 후 서랍에 잠든 채 13년이 지나서야 세상 빛을 봤다.

대교향곡의 꿈, 갑자기 솟구쳐 오른 야심

1824년 3월, 스물일곱의 슈베르트가 친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나는 지금 ‘대교향곡(eine große Sinfonie)’을 쓰기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고 있네.”

단어가 주는 비장함이 느껴지시나요? 이미 교향곡을 여러 곡 써본 그였지만 이번엔 결이 달랐습니다. 당시 빈에는 거대한 장벽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입니다. 교향곡의 룰을 완전히 박살 내고 새로 쓴 이 ‘음악의 신’ 앞에서, 젊은 슈베르트는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베토벤 앞에서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말을 더듬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베토벤 역시 죽기 전 슈베르트의 악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신성한 불꽃이 있다.” 두 천재는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면서도 제대로 된 커피 한잔 못 한 채 스쳐 지나갔습니다.

1827년 3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납니다. 묵묵히 장례 행렬을 따라 걷던 슈베르트는 그날 밤 친구들과 포도주 잔을 부딪치며 외쳤습니다. “베토벤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건배사. “가장 먼저 그를 따르게 될 사람을 위하여!”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요. 불과 1년 7개월 뒤, 베토벤의 뒤를 따라간 사람은 슈베르트 자신이었습니다. 이 교향곡 9번은 바로 그 숨 막히는 시간 사이에 탄생했습니다.

작업 방식도 파격적이었습니다. 1825년 여름, 슈베르트는 번잡한 빈을 떠나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그문덴과 가슈타인으로 향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산속 펜션에 틀어박혀 스마트폰 끄고 곡만 쓴 ‘합숙 캠프’였습니다. 그렇게 1826년, 마침내 총보가 완성됩니다. 훗날 6번 교향곡(소 C장조)과 구분하기 위해 붙은 ‘대(大) C장조’라는 수식어는, 훗날 우리가 아는 ‘더 그레이트(The Great)’이라는 별칭의 훌륭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서랍행’이었습니다. 대교향곡의 웅장한 사운드를 들어보겠다는 스물아홉 청년의 꿈은, 1828년 11월 장티푸스와 함께 영원히 묻히고 맙니다.

프란츠 슈베르트 초상 (1875년 리더 작)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가 그린 슈베르트 초상화. 교향곡 9번을 완성하던 시기의 슈베르트를 상상케 하는 대표적 초상이다.

슈만이 열어젖힌 서랍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38년 겨울. 라이프치히의 스타 비평가이자 작곡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이 빈을 찾아옵니다.

그가 들른 곳 중 하나가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의 집이었습니다. 동생의 유품인 먼지 쌓인 미발표 악보 더미를 뒤적이던 슈만의 눈에 거대한 악보 하나가 들어옵니다. 직감적으로 악보를 훑어내려가던 슈만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미쳤다.”

그는 당장 사본을 챙겨 독일로 돌아갔고, 절친한 동료 펠릭스 멘델스존에게 이 폭탄 같은 악보를 쥐여줍니다. 멘델스존이 이끄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1839년 3월 21일,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본 이 곡의 세계 초연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슈만은 리뷰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 교향곡에는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는 세계가 있다. 천상의 길이란 이런 것이다.”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만약 슈만이 그날 페르디난트의 집에 가지 않았다면? 이 악보는 땔감으로 쓰였거나 영원히 서랍 속에서 썩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낭만주의 음악사에서 슈만이 해낸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가 바로 이 ‘먼지 털기’였던 셈입니다.

당시 슈만은 연인 클라라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예비 장인과 피 말리는 법적 소송 중이었습니다. 가장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시기, 서랍 속에서 10년을 버틴 슈베르트의 꿈을 발견했을 때 슈만은 어떤 동질감을 느꼈을까요. 그가 남긴 벅찬 찬사는, 어쩌면 자신과 슈베르트 모두를 향한 뜨거운 위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 초상 (1833년 에두아르트 마그누스 작)
에두아르트 마그누스가 그린 멘델스존 초상(1833년). 1839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슈베르트 9번을 세계 초연한 지휘자다.

첫 음이 흐르는 순간의 변화

첫 1악장이 시작되면, 40명이 넘는 현악기 단원들은 일제히 숨을 죽입니다. 오직 호른 두 대만이 조용히, 하지만 선명하게 C장조의 멜로디를 불어넣습니다.

이건 단순한 인트로가 아닙니다. 장장 60분에 달하는 거대한 서사의 ‘떡밥’입니다. 이 호른의 멜로디는 1악장을 지배하고, 50분 뒤 4악장 맨 마지막(코다)에서 오케스트라 전체의 굉음과 함께 다시 터져 나옵니다. 마치 영화 첫 장면에 무심코 지나갔던 대사가 결말에서 완벽한 복선으로 회수될 때의 소름 돋는 쾌감. 60분을 꾹 참고 들은 청중만이 “아, 이게 다 연결된 거였어?”라며 뒤통수를 맞게 되는 치밀한 순환 구조입니다.

게다가 슈베르트는 ‘화성의 마술사’였습니다. 베토벤이 짧고 강렬한 리듬을 망치처럼 두들겨 패며 음악을 짓는다면, 슈베르트는 물감의 색을 미묘하게 바꾸듯 장조와 단조를 넘나듭니다. 처음 들을 땐 갸우뚱하지만, 다 듣고 나면 “왜 이 곡은 계속 새롭게 들리지?”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비밀이 바로 이 화성 감각에 있습니다.

이 교향곡은 쇼츠(Shorts)나 틱톡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가혹할 수 있습니다. 짧은 클립으로는 이 곡의 진짜 매력을 10%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좁고 고요했던 시냇물이 거대한 강으로 합류해 바다로 쏟아지는 장엄한 스케일은,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에게만 허락됩니다.

1악장: 호른이 쌓아 올리는 탑

느린 서주가 끝나고 본격적인 템포(Allegro ma non troppo)가 시작되면, 오케스트라는 마치 씩씩하게 행진하듯 달려갑니다. 여기서 슈베르트의 주특기인 ‘집요한 반복’이 등장합니다.

“어? 또 이 멜로디야?” 싶을 때쯤 악기가 바뀌고, 볼륨이 커지고, 음역이 높아집니다. 똑같은 벽돌을 수백 번 쌓아 올려 거대한 로마네스크 성당을 짓는 느낌이랄까요. 절정에 달해 금관악기가 포르티시모(매우 강하게)로 내지르는 순간, 콘서트홀의 공기가 물리적으로 진동하는 것을 찌릿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 5번 교향곡에서 처음 도입했던 ‘트롬본’을 슈베르트가 얼마나 찰지게 써먹는지 확인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중간중간 낮고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트롬본 소리는 청중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듯한 압도감을 선사합니다. 60분 내내 풀가동되는 관악기 단원들의 체력 소모를 생각하면, 1826년 아마추어 악단이 “못 해먹겠다”고 도망친 것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2악장: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독백

2악장(Andante con moto)이 시작되면, 클래식을 처음 듣는 사람도 무언가에 홀린 듯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오보에가 부르는 어둡고 쓸쓸한 a단조의 선율. 마치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중얼거리는 내면의 독백 같습니다.

압권은 이 a단조의 멜로디가 A장조로 스르륵 바뀌는 순간입니다. 멜로디는 똑같은데 빛의 색조가 확 바뀝니다. 한국어로 치면 “그가 떠났다”가 “그가 다가온다”로 바뀌는 느낌이랄까요. 시제 하나 바꿨을 뿐인데 문장의 온도가 180도 달라지는 그 미묘한 감정을, 슈베르트는 조성 변화 하나로 기가 막히게 뽑아냅니다.

실제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감정적 클라이맥스에 이 악장이 쓰였습니다. 평생 600곡이 넘는 가곡을 쓰며 갈고닦은 슈베르트의 ‘감정 묘사 끝판왕’이 바로 이 15분에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에 오보에가 멀어지듯 사라진 뒤, 홀 안에 정적이 찾아올 때의 먹먹함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3악장: 농담인 줄 알았는데 뼈가 있네

스케르초(Scherzo)는 이탈리아어로 ‘농담’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교향곡의 3악장은 분위기를 환기하는 가벼운 파트지요.

그런데 이 농담, 듣다 보면 꽤나 진지해집니다. 발랄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집요해지고 무거워집니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비는 느낌이랄까요. 베토벤의 스케르초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면, 슈베르트의 스케르초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묵직한 펀치를 날립니다.

중간에 잠깐 쉬어가는 트리오(Trio) 부분에서 두 대의 호른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대목은 폭풍 전야의 고요 같습니다. 이 여백 덕분에 다시 스케르초가 터져 나올 때의 타격감이 두 배로 뻥튀기됩니다. 10분이 넘는 긴 ‘농담’이 결국 거대한 선언으로 둔갑하는 마법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4악장: 60분 빌드업이 터지는 피날레

앞선 세 악장이 이 마지막 4악장(Allegro vivace)을 위한 거대한 밑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브레이크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질주합니다. 현악기는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고, 팀파니는 심장 박동처럼 뒤에서 미친 듯이 채찍질을 해댑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1악장 맨 처음에 들었던 그 ‘호른 주제’가 다시 웅장하게 등장합니다. 55분의 여정을 끝내고 출발점으로 돌아와 깃발을 꽂는 순간입니다. 악장의 끝(코다)을 향해 미친 듯이 텐션을 끌어올리는 구조는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60분을 꼬박 투자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도파민 폭발의 순간이지요.

마지막 순간, 오케스트라가 C장조 화음을 쾅! 쾅! 쾅! 세 번 내리찍으며 곡이 끝납니다. “너무 길다”며 연주를 거부했던 1826년의 아마추어 단원들은 이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평생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로베르트 슈만 초상 (1839년)
1839년 요제프 크리후버가 그린 슈만 초상. 바로 이 해, 슈만은 슈베르트 9번을 발굴하여 멘델스존에게 전달했다.

거부당했다가 역사가 된 이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엄청난 명곡은 왜 거부당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 때문입니다. 1826년 당시 교향곡은 길어야 30~40분이 국룰이었습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는 직업 연주자가 아닌 동네 아마추어 동호회 수준이 많았지요. 동네 합창단한테 바그너의 오페라를 부르라고 던져준 격이니, “길고 어렵다”며 두 손 두 발 다 든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시기입니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스케치하기 직전인 1824년,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막 초연되었습니다.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개의 ‘9번’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셈이지요. 슈베르트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연주해 줄 사람이 없어도, 들어줄 청중이 없어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거대한 우주를 악보에 온전히 박아 넣었습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지금,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브루크너, 말러, 쇼스타코비치 등 후대 거장들이 만든 80분, 90분짜리 초대형 교향곡의 ‘원조 맛집’으로 바로 이 슈베르트 9번이 꼽힙니다. “너무 길다”던 비판이 “낭만주의 교향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은 이 곡을 무대에 올립니다.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깃털처럼 투명하게, 푸르트벵글러는 바위처럼 묵직하게 이 곡을 요리합니다. 악보 하나에 이렇게 다양한 우주가 담겨 있다는 것. 그것이 31세에 세상을 떠난 천재가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위대함(The Great)’일 것입니다.

추천 녹음

카를로스 클라이버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8년 녹음, DG)

슈베르트 9번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끝판왕’ 음반입니다. 클라이버는 리허설에서 단원들에게 “음표를 연주하지 말고, 음표가 공기 중에 떠오르게 하라”고 주문했다고 하지요. 그 말 그대로 무겁고 둔탁할 수 있는 60분의 곡이 깃털처럼 가볍고 투명하게 날아다닙니다. 4악장의 미친 속도감 속에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빈 필하모닉의 앙상블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2년 녹음)

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쏟아지던 1942년 베를린 라이브 녹음입니다. 클라이버가 날렵한 스포츠카라면, 푸르트벵글러는 육중한 전차 같습니다. 극도로 묵직하고 비장합니다. 전쟁의 공포와 광기 속에서 단원들이 어떤 심정으로 이 거대한 음향의 탑을 쌓아 올렸는지 상상하며 들어보십시오. 음악이 단순한 소리를 넘어 시대의 증언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실 수 있습니다.

카를 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63년 녹음, DG)

클래식 초심자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정석’ 같은 음반입니다. 클라이버처럼 화려하거나 푸르트벵글러처럼 극단적이지 않지만, 건축물로 치면 기둥 하나, 벽돌 하나가 완벽한 비율로 들어맞는 쾌감을 줍니다. 처음엔 다소 단정하게만 들릴지 몰라도, 두 번 세 번 들을수록 슈베르트가 얼마나 치밀하게 이 곡을 설계했는지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가이드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보며 클래식을 듣는다니, 왠지 전문가들만의 영역 같지요? 하지만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귀로만 듣던 현악, 목관, 금관, 타악기의 소리가 악보 위에서 어떻게 얽히고설키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쾌감이 제법 쏠쏠하거든요. 처음엔 콩나물 대가리들이 마치 암호문처럼 낯설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귀에 꽂히는 멜로디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설계도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실 겁니다. 악보 원본은 아래 IMSLP 링크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 한 번 도전해 보시지요.

슈베르트 교향곡 9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FAQ)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은 왜 ‘더 그레이트'(The Great)라고 불리나요?

시작은 아주 단순하고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슈베르트가 남긴 6번 교향곡도 우연히 같은 ‘C장조’였거든요. 헷갈림을 방지하기 위해 덩치가 작은 6번은 ‘소(小) C장조’, 규모가 압도적인 9번은 ‘대(大) C장조’로 구분해 불렀던 것이지요. 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The Great C major’입니다.그런데 참 묘합니다. 처음엔 그저 ‘사이즈가 크다’는 뜻으로 붙인 꼬리표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 곡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품과 격조에 너무나도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던 겁니다. 초연 직후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남긴 “천상의 길이”라는 극찬까지 더해지며, 이제 ‘더 그레이트'(The Great)라는 별칭은 이 교향곡의 웅장한 영혼을 대변하는 고유명사가 된 셈입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은 언제 초연됐나요?

초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 편의 영화가 따로 없습니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무려 10년이 흐른 1839년 3월 21일, 펠릭스 멘델스존의 지휘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비로소 세상에 첫선을 보였지요.사실 이 걸작은 영영 먼지 속에 묻힐 뻔했습니다. 1826년, 슈베르트가 빈 음악협회에 야심 차게 악보를 보냈을 때 돌아온 답변은 “너무 길고 연주하기 어렵다”는 차가운 거절뿐이었으니까요. 결국 슈베르트는 1828년 자신의 최고 걸작이 연주되는 것을 끝내 듣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이 불운한 명곡을 구출해 낸 은인이 바로 로베르트 슈만입니다. 1838년 빈을 방문한 슈만이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먼지 쌓인 악보 사본을 우연히 발견해 라이프치히로 가져온 덕분에, 이 위대한 교향곡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50~60분가량 소요됩니다. 악보에 꼼꼼하게 적힌 반복 지시를 곧이곧대로 다 지키면 무려 60~65분까지 훌쩍 늘어나지요.지금이야 1시간짜리 교향곡이 흔하지만, 1820년대 당시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못해 기형적으로 긴 분량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너무 길어서 연주 못 하겠다”는 거절이 당시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던 겁니다.하지만 슈베르트는 그저 시대를 너무 일찍 앞서갔을 뿐이었습니다. 훗날 안톤 브루크너나 구스타프 말러 같은 후배 작곡가들이 1시간을 가볍게 넘기는 거대한 교향곡들을 쏟아내며 낭만주의의 새로운 표준을 세웠으니까요. 슈베르트의 9번은 바로 그 웅장한 시대의 서막을 연 위대한 선구자였던 셈입니다.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의 초연을 들었나요?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아니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1826년 빈 음악협회에 악보를 넘겼을 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보를 대충 한 번 훑어보며 소리를 내본 것이 전부였지요. 각 잡힌 정식 무대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결국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 19일, 장티푸스 합병증으로 서른한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그가 혼신을 다해 빚어낸 이 찬란한 음표들이 온전한 교향곡의 형태를 갖추고 세상에 울려 퍼진 것은, 그가 눈을 감은 지 정확히 10년 4개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천재의 숙명이라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타임라인이 아닐 수 없군요.

슈만의 ‘천상의 길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 곡을 발굴해 낸 로베르트 슈만이 1839년 초연을 보고 남긴 리뷰에 등장하는 낭만적인 찬사입니다. 독일어 원문인 ‘göttliche Länge(괴틀리헤 랭게)’를 직역하면 ‘신성한 길이’, 혹은 ‘천상의 길이’가 되지요.당시 사람들은 60분이라는 낯설고 지루한 길이를 이 곡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슈만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 압도적인 길이가 오히려 이 작품만이 가진 대체 불가한 매력이자 본질이라고 꿰뚫어 본 것입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듯한 황홀함을 저 단어 하나로 완벽하게 요약해 낸 것이지요.오늘날 ‘천상의 길이’는 슈베르트 9번을 수식하는 가장 완벽한 카피라이팅으로 남았습니다. 고전주의의 낡은 틀을 부수고, 낭만주의 교향곡이 얼마나 거대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 역사적인 전환점을 상징하는 멋진 표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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