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종〉 Op.35 — 익명 편지 한 통과 장조로 끝난 장송

익명 편지 한 통과 장조로 끝난 장송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작품명
합창 교향곡 〈종〉 Op.35
(The Bells / Колокола)
작곡·개정
1913년 로마에서 완성
1936년 셰필드 페스티벌을 위해 3악장 합창 성부 개정
원시·가사
에드거 앨런 포의 시 〈The Bells〉
콘스탄틴 발몬트의 러시아어 번역(재창작)
편성
소프라노·테너·바리톤 솔로, 혼성 합창
대편성 오케스트라 · 첼레스타 · 하프 · 오르간
악장
4악장 (은종·금종·동종·철종)
I. Allegro ma non tanto, A♭장조
II. Lento, D장조
III. Presto, f단조
IV. Lento lugubre, c♯단조 → D♭장조
초연
1913년 11월 30일(율리우스력) / 현재 달력 12월 1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라흐마니노프 지휘
헌정
빌렘 멩엘베르크와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
약 35~38분

어느 날 라흐마니노프에게 발신인 이름이 없는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봉투 안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가 러시아어로 옮겨져 들어 있었고,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이 시가 음악이 될 것 같다”는 짧은 말을 덧붙였지요. 라흐마니노프는 정말로 그 시를 합창 교향곡으로 써냈습니다. 그러고도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는 죽을 때까지 몰랐고요.

그는 이 곡을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이 곡을 무대에서 들어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인생작이 익명의 편지에서 시작됐고, 장송으로 끝나는데 그 장송이 하필 장조로 마무리되는 곡. 라흐마니노프 〈종〉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상하고, 가장 덜 알려진 걸작이거든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초상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평생 종소리와 진노의 날을 따라다닌 사람이, 익명의 편지 한 통에서 인생작을 길어 올렸다.

30년 동안 발신인을 몰랐던 편지 한 통

편지가 도착한 건 1907년 초, 라흐마니노프가 로마에 머물던 무렵으로 전해집니다. 안에는 콘스탄틴 발몬트가 러시아어로 옮긴 포의 〈종〉이 들어 있었지요. 라흐마니노프는 그 시를 품고 있다가 1913년 로마에서 합창 교향곡으로 완성합니다. 시를 받은 지 6년 만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 끝내 몰랐다는 점입니다. 발신인의 정체는 라흐마니노프가 1943년 세상을 떠난 뒤에야 밝혀졌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젊은 첼로 전공생 마리아 다닐로바(Maria Danilova)였지요. 한국어로 아무리 검색해도 이 이름을 또렷이 적은 글을 찾기 어렵습니다. 작곡가의 인생작에 불씨를 던진 사람이, 정작 작곡가 본인에게는 평생 익명으로 남았던 거예요.

작곡가의 대표작이 출처 모를 편지 한 통에서 출발한 경우는 서양 음악사에서도 드뭅니다. 보통은 계기가 분명하거든요. 누가 위촉했거나, 어떤 사건이 있었거나, 영감의 출처가 적혀 있거나요. 라흐마니노프는 자기가 누구에게 빚졌는지도 모른 채 그 빚으로 인생작을 썼습니다.

작업실의 풍경도 묘했습니다. 그가 〈종〉을 쓴 방은 차이콥스키의 동생 모데스트가 한때 머물렀던 스페인 광장의 그 아파트였거든요(Bertensson & Leyda 1956). 러시아어로 옮긴 미국 시인의 시, 이탈리아의 햇볕, 그리고 차이콥스키 가문의 잔향. 이질적인 것들이 한 방 안에서 한 곡으로 녹아들었습니다.

포 + 발몬트 — 번역이 아니라 재창작

포는 184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해에 〈The Bells〉를 썼습니다. 발몬트는 1890년대 초에 이 시를 러시아어로 옮겼고요. 분량과 구성은 닮았는데, 단어 하나하나를 견주면 거의 다른 시입니다. 옮겼다기보다 다시 썼다고 봐야 정확하지요.

에드거 앨런 포 초상 다게레오타입
에드거 앨런 포. 죽기 직전 해에 쓴 시 〈The Bells〉가, 반세기 뒤 러시아 작곡가의 손에서 합창 교향곡이 됐다.

발몬트는 의미보다 소리를 앞세운 상징주의 시인이었습니다. 포가 영어 자음으로 종소리를 흉내 냈다면, 발몬트는 그것을 러시아어의 음향으로 다시 짜냈지요. 그래서 영어권 청중이 포의 시로 듣는 〈The Bells〉와, 러시아어 청중이 발몬트의 시로 듣는 〈Колокола〉는 같은 작품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영어 원시는 종소리의 음향 자체를 모사하는 데 무게를 두는데, 러시아어 텍스트는 종소리가 인생의 단계를 따라가는 알레고리 쪽으로 더 기울어 있거든요.

콘스탄틴 발몬트 초상
콘스탄틴 발몬트 — 포의 시를 러시아어로 재창작한 상징주의 시인 (발렌틴 세로프 그림, 1905).

발몬트의 뒷이야기도 라흐마니노프와 묘하게 겹칩니다. 그는 망명 시인이 됐다는 이유로 1920~30년대 소비에트에서 출판을 금지당했습니다. 그리고 1942년 파리에서 가난하게 눈을 감았지요. 라흐마니노프는 그 이듬해인 194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시인과 작곡가, 둘 다 조국을 떠나 망명지에서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종〉으로 한 번 만난 두 사람은, 그 뒤 다시 만나지 못했고요.

네 개의 종으로 그린 인생 — 악장 해설

〈종〉의 알레고리는 단순합니다. 인생을 네 개의 종으로 압축하거든요. 은종, 금종, 동종, 철종. 재료가 달라지면 종소리가 달라지고, 종소리가 달라지면 인생의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갑니다. 유년에서 결혼으로, 결혼에서 공포로, 공포에서 죽음으로요.

1악장 은종 — 썰매와 유년

은종이 가볍게 울립니다. 테너 솔로가 썰매를 끄는 종소리를 노래하지요. 〈종〉 네 악장을 통틀어 가장 밝은 30초가 여기 있습니다. A♭장조 · Allegro ma non tanto · 테너 솔로.

첫 페이지부터 첼레스타와 트라이앵글, 하프가 함께 등장합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게 종소리인지, 악기들이 어우러져 만든 짜임새인지 잠깐 헷갈리거든요. 여러 악기가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이 결을 음악에서는 ‘텍스처(texture)’라고 부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종을 흉내 낸 게 아니라 종 자체를 작곡했습니다. 어릴 적 노브고로드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들은 종소리가 그 출발점이었지요. 테너가 들어와 썰매와 유리알 같은 종소리를 노래하는데, 라흐마니노프 음악에서 이 정도로 가볍게 흥얼거릴 수 있는 대목은 손에 꼽을 만큼 드뭅니다.

2악장 금종 — 결혼

두 번째 종은 결혼식 종입니다. 소프라노 솔로가 행복을 노래하는데, 음악은 묘하게 어둡지요. 결혼 종소리 뒤에 이미 다음 종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쓴 듯한 음악입니다. D장조 · Lento · 소프라노 솔로.

소프라노 위로 합창이 파도처럼 깔립니다. 멜로디 라인은 분명한데 화성은 자꾸 어딘가로 흘러가고요. 라흐마니노프식 행복은 늘 이렇습니다. 행복을 그릴 때조차 그늘이 함께 드리워지거든요. 이 곡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불안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절정에서 이미 다음 종의 그림자를 들려주는 것, 그게 라흐마니노프가 행복을 다루는 방식이지요.

3악장 동종 — 솔로가 빠진 자리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무너집니다. 화재경보 종이거든요. 그리고 이 악장에는 솔리스트가 한 명도 없습니다. f단조 · Presto · 솔로 없음.

1악장에 테너, 2악장에 소프라노, 4악장에 바리톤이 나오는데 3악장만 합창과 오케스트라뿐입니다. 군중이지요. 공포는 익명입니다. 누구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거든요. 라흐마니노프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격렬한 구간 중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합창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고, 금관이 그 위로 다시 들이받지요. 이게 1913년에 쓰인 음악이라는 사실에 처음 듣는 사람은 한 번 멈칫하게 됩니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초연과 같은 해라는 점만 떠올려도 충분하더군요.

4악장 철종 — 장송, 그런데 장조

마지막 종은 장례의 종입니다. 바리톤 솔로가 죽음의 종소리를 낮게 깔지요. 그런데 끝이 이상합니다. c♯단조 → D♭장조 · Lento lugubre · 바리톤 솔로.

여기 이 곡의 가장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장송 악장이 장조로 끝나거든요. 장송곡·레퀴엠 계열은 거의 다 단조로, 혹은 단조의 잔향 위에서 끝납니다. 모차르트 〈레퀴엠〉도, 베르디 〈레퀴엠〉도, 브람스 〈독일 레퀴엠〉도 마지막 페이지의 무게가 어둠 쪽에 머물지요.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이 철종, 장례의 종 끝에서 음악을 c♯단조에서 D♭장조로 빠져나가게 만듭니다. 한국 클래식 글에서도 제대로 짚은 경우가 드문 모순이고요.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Dies Irae〉(진노의 날) 성가를 자기 음악 곳곳에 심어둔 사람입니다. 〈교향적 무곡〉, 〈파가니니 광시곡〉, 피아노 협주곡들. 그리고 이 4악장에서 그 강박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지요. 그런데 마지막 30~40마디에서 음악은 그 진노의 날을 벗어나 D♭장조로 풀려납니다. 평생 종말을 모티브로 작곡한 사람이, 자기 인생작의 마지막 종 끝에서 죽음 너머의 평안을 딱 한 번 빌려온 듯합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진노의 날을 비켜간 단 하나의 순간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결말을 두고 해석이 갈립니다. 누군가는 죽음 이후의 평안으로, 누군가는 부활의 빛으로, 또 누군가는 모든 걸 내려놓은 체념으로 읽지요. 발몬트의 원시는 철종에서 끝까지 어둡고 음울합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그 시의 결을 거슬러 마지막에 빛 한 줄기를 끼워 넣었거든요. 텍스트는 어둠으로 닫히는데 음악은 빛으로 열리는, 시와 음악이 정면으로 어긋나는 자리. 이 어긋남이 4악장을 〈종〉 전체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으로 만듭니다. 어느 쪽으로 듣든 정답은 없고, 그 모호함 자체가 이 곡의 깊이이기도 하지요.

Dies Irae와 노브고로드 — 두 가지 강박

라흐마니노프 음악에는 두 가지 소리가 평생 따라다녔습니다. 〈Dies Irae〉 성가, 그리고 노브고로드의 종소리입니다. 이 둘을 알면 그의 음악이 전부 다르게 들리거든요.

〈Dies Irae〉는 13세기 그레고리오 성가로, 진노의 날을 노래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멜로디를 〈교향적 무곡〉, 〈파가니니 광시곡〉, 그리고 이 〈종〉 4악장에 거듭 심어두었지요.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에서 한 번 인용한 모티브를,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붙들고 변주한 거예요. 죽음의 멜로디를 자기 서명처럼 들고 다닌 작곡가였거든요.

노브고로드 성 소피아 대성당
노브고로드 성 소피아 대성당. 라흐마니노프가 유년에 들은 이곳의 종소리가, 평생의 작품에 스며들었다.

노브고로드 성 소피아 대성당의 종소리는 그의 유년에서 출발해 거의 모든 작품에 스며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도입부의 그 유명한 화음도 사실 종소리고요. 전주곡 c♯단조 Op.3 No.2, ‘모스크바의 종’이라 불리는 그 곡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자기도 모르게 평생 종을 작곡한 사람이었습니다. 〈종〉은 그 강박의 정점이지요. 여기서 그는 무의식 전체를 풀어놓았습니다. “나는 종소리로 인생을 그렸다.” 그가 남긴 말입니다.

25년을 놓지 못한 작품 — 1913 → 1936 → 1943

1913년 11월 30일 마린스키 극장 초연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지휘봉을 잡았지요. 당시 러시아는 아직 옛 달력(율리우스력)을 쓰고 있어서, 지금 달력으로는 12월 13일 초연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 다음 해부터 거의 잊힙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잇따랐고,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조국을 떠나거든요. 망명 작곡가의 합창 교향곡을 러시아어로 올릴 만한 시기가 한동안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소비에트에서는 발몬트의 번역본 자체가 출판 금지였고요. 본국에서는 들을 길이 막히고, 망명지에서는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갈 곳 없는 걸작이 된 셈입니다.

1936년,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에 다시 손을 댑니다. 영국 셰필드 페스티벌에서 헨리 우드 경이 〈종〉을 올리기로 했는데, 3악장 동종의 합창 성부가 너무 까다로워 합창단이 감당하기 어려웠거든요. 라흐마니노프는 그 셋째 악장의 합창 파트를 한결 부르기 쉽게 다시 썼습니다. 초연으로부터 23년이 지난 뒤에도 자기 작품을 연주자의 손에 맞게 매만진 셈이지요.

그러니 3악장만큼은 두 가지 얼굴이 남게 됐습니다. 1913년 초판의 험준한 합창과, 1936년에 다듬은 한결 부르기 쉬운 합창이지요. 합창의 광기가 가장 거센 악장이 하필 가장 손보기 까다로운 악장이었던 셈입니다. 거친 야성을 그대로 살린 옛 사운드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또렷하게 정돈된 합창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요. 같은 곡인데 3악장에서 두 결이 갈리는 것, 그게 음반을 고를 때 은근히 신경 쓰이는 지점이거든요.

그리고 1942년 발몬트가 파리에서, 1943년 라흐마니노프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시인과 작곡가는 〈종〉 이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익명의 편지에서 시작된 이 곡은, 그렇게 두 망명자의 마지막 풍경까지 품고서야 비로소 닫힌 듯합니다.

한국에서 제대로 듣기 어려운 이유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가장 아꼈다고 밝힌 작품인데(Riesemann 1934), 한국 정기 연주회 레퍼토리에는 좀처럼 오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돈과 사람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합창단 수십 명, 대편성 오케스트라, 솔리스트 셋(소프라노·테너·바리톤), 그리고 러시아어. 합창단을 따로 꾸려야 하고, 러시아어 가사 발음 코치도 붙여야 하고, 솔리스트 세 명의 일정까지 맞춰야 합니다. 35분짜리 단일 곡을 위해 두 달 가까운 연습이 필요하지요. 말러 〈교향곡 8번〉, 베토벤 〈9번〉, 베르디 〈레퀴엠〉이 한국 무대에 가끔이라도 오르는 건 합창 페스티벌 형태로 기획되기 때문인데, 〈종〉은 35분이라 단독 프로그램으로 세우기 애매하고 다른 곡과 묶기에는 솔리스트 구성이 너무 특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음반으로 듣게 됩니다. 다행히 음반으로 들어도 충분히 좋아요. 오히려 가사를 천천히 따라가며, 멈췄다 되감으며 들을 수 있어서, 처음에는 음반이 무대보다 더 나은 입문 통로이기도 하고요. 라이브로 못 듣는 아쉬움을, 음반은 반복해서 곱씹는 즐거움으로 갚아주거든요.

음반 대결 — 세 가지 선택지

선택지는 크게 셋입니다. 세 음반이 각각 〈종〉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거든요. 정밀한 플레트네프, 야성적인 스베틀라노프, 무난한 아쉬케나지로 갈립니다.

Pletnev / Russian National Orchestra (DG 1996)

1936년 개정판의 표준으로 불리는 녹음입니다. 정확하고 균형이 잡혀 있고, 디테일도 또렷하지요. 처음 〈종〉을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필요한데, 이 녹음이 그 역할에 잘 맞습니다. 다만 거칠고 격한 〈종〉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차갑게 들릴 수 있어요. 1악장 은종이 너무 가지런해서, 썰매를 타는 게 아니라 박물관에서 썰매 모형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거든요. 텍스트의 야성보다 짜임새의 정밀함이 먼저 들리는 해석입니다.

Svetlanov / USSR State Symphony (Melodiya 1979)

거의 1913년 초판본에 가깝고, 거칠며, 압도적입니다. 3악장 동종은 이 녹음만큼 사람을 몰아붙이는 연주가 드물어요. 합창이 갈라지는 순간도 있는데, 그게 흠이라기보다 이 곡의 정체에 더 가깝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1913년에 무엇을 썼는지 듣고 싶다면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거든요. 단점은 음질입니다. 멜로디야 1979년 사운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권합니다. 깨끗한 소리를 원하는 청취자라면 1분도 버티기 어려울 수 있고요.

Ashkenazy / Concertgebouw (Decca, 1980년대)

영어권에서 표준으로 통하는 녹음입니다. 우아하고 정돈되어 있어요. 합창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고, 솔로 셋도 안정적이지요. 〈종〉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음반입니다. 다만 이 곡의 진짜 얼굴, 곧 3악장 동종의 군중성과 4악장 철종의 진노의 날을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 발짝 비켜선 해석이고요. 안전함이 미덕인 청취자에게 어울리는 첫 음반입니다.

음반판본·성격강점이런 분께
플레트네프 / RNO (DG 1996)1936 개정판 · 정밀또렷한 디테일, 균형처음 진지하게 공부할 때
스베틀라노프 / USSR (Melodiya 1979)1913 초판에 가까움 · 야성압도적 3악장, 날것의 에너지곡의 본 얼굴이 궁금할 때
아쉬케나지 / 콘세르트헤바우 (Decca)개정판 · 안전흐트러짐 없는 합창·솔로진입장벽 낮게 시작할 때
〈종〉 입문 음반 비교 — 정밀의 플레트네프, 야성의 스베틀라노프, 안전의 아쉬케나지.

결론은 이렇습니다. 스베틀라노프로 입문하지는 말되, 스베틀라노프 없이 끝내지도 마세요. 개정판의 정돈된 소리로 곡을 익힌 다음, 초판본에 가까운 그 거친 야성을 한 번은 통과해야 〈종〉의 두 얼굴이 다 보이거든요. 아래 영상은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의 2013년 연주입니다. 개정판 현대 명연으로, 플레트네프와는 또 다른 결을 들려주지요.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2013. 1936 개정판의 현대 명연 — 전곡을 한 번에 통과해보길.

악보와 함께 듣기

〈종〉은 35분짜리 대곡이라 한 번에 다 잡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악보 영상이 좋은 안내자예요. 아래 영상은 전곡 음원에 풀스코어를 얹어둔 것이라, 합창과 솔로가 어디서 들어오고 빠지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거든요. 특히 3악장 동종에서 솔리스트가 한 명도 없다는 점, 4악장 마지막에서 조성이 단조에서 장조로 미끄러지는 그 지점을 악보로 확인하면 곡의 구조가 단번에 잡힙니다.

전곡 음원에 풀스코어를 얹은 영상. 4악장 종결부에서 c♯단조가 D♭장조로 풀려나는 지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악보를 펼쳐보고 싶다면 IMSLP에서 풀스코어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IMSLP: 라흐마니노프 〈종〉 Op.35 악보

귀로만 잡아도 충분한 세 순간

악보를 읽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글 맨 위에 걸어둔 실황 영상이나 위 래틀 음반을 틀어놓고 이 세 군데만 집중해서 들어보세요. 〈종〉이 왜 인생작인지 한 번에 와닿거든요.

  • 1악장 도입부 (시작 직후 1분) — 첼레스타·트라이앵글·하프가 종소리의 짜임새를 만드는 첫 페이지. 라흐마니노프가 어떤 악기 조합으로 종을 빚었는지가 여기서 거의 다 드러납니다.
  • 3악장 클라이맥스 — 솔리스트 없는 합창의 광기가 절정에 이르는 부분. 합창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고 금관이 그 위를 들이받는 충돌이지요. 1913년에 이런 음악이 나왔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 4악장 마지막 30~40마디 — 단조에서 장조로 빠져나가는 결정적 순간. 어두운 종소리가 어떻게 평안의 화음으로 풀려나가는지, 이 마지막 1~2분이 〈종〉의 가장 이상한 대목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라흐마니노프가 평생 가장 사랑한 곡이 정말 〈종〉인가요?

본인이 여러 차례 그렇게 밝힌 기록이 있습니다. 회고록 〈Rachmaninoff’s Recollections〉(Riesemann 1934)에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종〉을 꼽은 진술이 들어 있고, 가족과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도 비슷한 표현이 반복됩니다. 흔히 함께 거론되는 다른 한 곡이 같은 1915년 무렵의 〈철야기도〉지요. ‘가장’ 사랑한 곡인지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인지는 인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가 〈종〉을 대표작 가운데 특히 애착이 컸던 곡으로 일관되게 꼽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국에서 〈종〉을 라이브로 들을 일이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합창단 수십 명, 솔리스트 셋, 러시아어 가사라는 진입장벽이 그대로 비용으로 이어지거든요. 가능성이 있는 경로는 합창 페스티벌, 라흐마니노프 기념 특별 프로젝트, 또는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경우입니다. 정기 연주회 레퍼토리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라흐마니노프 특별 시즌이 잡힐 때 발 빠르게 티켓을 잡는 편이 빠릅니다.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가사를 알고 들어야 하나요?

가사 한 줄 한 줄을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의 4단계 알레고리(은종-금종-동종-철종)라는 구조만 머리에 넣고 들으면, 가사를 몰라도 흐름을 잃지 않거든요. 더 알고 싶다면 플레트네프 DG 음반의 부클릿이나 영어 자막이 붙은 유튜브 영상을 한 번 따라가면 충분합니다. 음향 자체가 가사의 절반 이상을 이미 전달하기 때문에, 〈종〉은 다른 합창 작품보다 가사 의존도가 낮은 편입니다.

1913년 초판본과 1936년 개정판 중 뭘 들어야 하나요?

현재 표준은 1936년 개정판이고, 시중에 나온 음반 대부분도 이쪽입니다. 플레트네프 /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DG 1996)가 개정판의 대표 녹음이지요. 초판에 가까운 사운드를 듣고 싶다면 스베틀라노프 / USSR 국립 교향악단(Melodiya 1979)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인데, 음질은 감수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개정판으로 듣고, 두 번째에 초판본으로 넘어가 라흐마니노프가 23년 뒤 무엇을 고쳤는지 비교해보는 순서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종〉이 베토벤 9번처럼 합창 교향곡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종〉을 ‘합창 교향곡(choral symphony)’이라 불렀기 때문입니다. 4개 악장에 솔리스트 셋과 혼성 합창이 결합되는 구조 자체도 합창 교향곡의 형식을 따르고요. 베토벤 9번이 마지막 악장에서 합창을 불러들였다면, 라흐마니노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합창과 솔로를 교향곡의 뼈대로 삼았습니다. 분류 자체가 작곡가의 자기 규정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경우입니다.

4악장이 장조로 끝나는 게 정말 그렇게 드문 일인가요?

상당히 드문 사례입니다. 장송곡·레퀴엠·진혼곡 계열 대부분은 단조로, 혹은 단조의 잔향 위에서 끝나거든요. 모차르트 〈레퀴엠〉, 브람스 〈독일 레퀴엠〉, 베르디 〈레퀴엠〉 모두 마지막 페이지의 화성적 무게가 어둠 쪽에 머뭅니다. 라흐마니노프 〈종〉 4악장이 c♯단조에서 D♭장조로 빠져나가는 마지막 30~40마디는 그래서 더 도드라지지요. 이 결말이 죽음 이후의 평안인지, 부활인지, 체념인지에 대한 해석은 지금도 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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