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1882–1971) - 곡명
-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 - 작곡
- 1911–1913
- 초연
-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 편성
- 플루트 3(피콜로·알토 플루트 겸함), 오보에 4(잉글리시 혼 겸함), 클라리넷 3(E♭·베이스 겸함), 바순 4(콘트라바순 겸함), 호른 8, 트럼펫 4(피콜로 트럼펫·바스 트럼펫 겸함), 트롬본 3, 튜바 2, 팀파니 2조, 타악기 다수, 현 5부
- 악장 구성
- 2부
제1부: 대지에 대한 경배 (L’Adoration de la terre)
– 서곡 · 봄의 전조 · 유괴의 의식
– 봄의 론도 · 적대하는 부족의 유희 · 현자의 행렬
– 대지에 대한 입맞춤 · 대지의 춤
제2부: 희생의 의식 (Le Sacrifice)
– 서곡 · 소녀들의 신비스러운 모임
– 선택된 소녀의 찬양 · 조상의 소환
– 조상의 의식적 행동 · 선택된 소녀의 희생의 춤 - 연주 시간
- 약 35분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초연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스캔들로 남았습니다. 이 글은 1913년 파리 소동의 실제 정황, 이 음악이 그토록 파격적이었던 이유, 그리고 한 세기에 걸쳐 영화와 대중문화로 번진 영향력을 짚습니다. 봄의 제전을 처음 듣는 사람도, 더 깊이 알고 싶은 애호가도 함께 읽을 수 있는 해설입니다.
1913년 5월 29일 밤, 파리. 샹젤리제 극장의 막이 아직 오르지도 않았는데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한 음, 한 음.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바순은 본래 저음 목관악기, 오케스트라에서 묵직하게 바닥을 받쳐 주는 악기입니다. 그런 바순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음역에서 가까스로 소리를 쥐어짜고 있었습니다. 낮은 음역의 베이스 가수가 소프라노 고음을 억지로 내려고 애쓰는 소리와 비슷했습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파리 최고의 밤, 클래식 음악사 최대의 소란
막이 오르자 무대 위 풍경은 더 기이했습니다. 발레리나들이 우아하게 발끝으로 서 있지 않았습니다. 무용수들은 발을 안쪽으로 틀고,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 몸을 들썩였습니다. 고대 러시아의 이교 제의를 재현한 동작이었지만, 당시 파리 관객의 눈에는 그저 괴상한 실수처럼 보였습니다.
야유가 터졌습니다. 처음에는 몇몇이었다가 곧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지지하는 쪽도 질세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조용히 해!” 반대편이 더 크게 받아쳤습니다. “쓰레기!” 옆자리 신사가 모자를 집어던졌고, 한 귀부인은 돌아서서 뒷좌석 남자의 뺨을 때렸다고 합니다. 경찰이 극장 안으로 들어와 마흔 명가량을 끌어냈습니다.
무대 옆에서는 안무가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가 의자 위에 올라서서 박자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무용수들은 오케스트라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지휘자 피에르 몽퇴(Pierre Monteux)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지휘대를 떠나지 않고 지휘봉을 휘둘렀습니다. 주최자 세르게이 댜길레프(Sergei Diaghilev)는 객석 조명을 껐다 켰다 반복하며 관객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충격을 받아 무대 뒤로 달아났습니다.
그 곡이 바로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이었습니다.
무명 작곡가와 기상천외한 프로듀서의 만남
1909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젊은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는 자신이 만든 소품 《불꽃(Feu d’artifice)》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저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청중은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객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세르게이 댜길레프. 전직 법학도이자 현직 공연 기획의 천재, 그리고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듣고 결심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댜길레프의 발레 뤼스는 당시 유럽 예술계를 뒤흔들던 집단이었습니다. 음악가, 화가, 안무가, 의상 디자이너가 한데 모여 발레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집단의 음악을 맡아 《불새(L’Oiseau de Feu, 1910)》와 《페트루슈카(Petrushka, 1911)》를 잇달아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던 중, 스트라빈스키는 이상한 꿈을 꿉니다.
꿈 속에서 온 소녀 —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어느 날 나는 갑작스러운 환영을 보았다. 원로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있고, 그 앞에서 어린 소녀 하나가 춤을 추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봄의 신을 달래기 위한 제물로서.”
스트라빈스키가 자서전(1936)에 적은 《봄의 제전》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착상을 러시아의 민속학자이자 화가인 니콜라스 뢰리히(Nicholas Roerich)와 함께 다듬었습니다. 뢰리히는 고대 러시아의 이교 의식과 민속 예술을 평생 연구한 인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원시 슬라브족의 봄맞이 제의 — 처녀를 골라 제물로 바치는 의식 — 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제목도 처음에는 ‘위대한 제물(Velikaya zhertva)’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공간은 스위스 클라랑(Clarens)의 작은 하숙방이었습니다. 사방 두 걸음 반 남짓한 방에 소음 방지용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 책상 하나, 의자 둘. 그 좁은 방에서 1911년부터 1912년 겨울 내내 그는 악보를 써 내려갔습니다.
1913년 3월 8일, 그는 총보의 마지막 음표를 적고 서명했습니다. 완성이었지요.
초연을 앞두고 스트라빈스키는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와 함께 피아노 네 손 편곡을 연주해 보았습니다. 드뷔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한 편지에서, 이 곡의 초연이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초연(1902)에 견줄 만큼 중요한 사건이 되리라는 취지로 적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왜 그 음악은 그토록 충격적이었는가
1913년 파리 관객이 익숙하게 듣던 음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조성이 명확했습니다. 도-레-미-파-솔-라-시, 그 음계 안에서 멜로디가 움직였습니다. 박자도 규칙적이었습니다. 1-2-3-4, 아니면 1-2-3. 적어도 어디서 강박이 오는지는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봄의 제전》은 그 모든 것을 뒤집었습니다.
제1부 ‘봄의 전조(Les Augures printaniers)’가 시작되는 순간, 현악기 전체가 동시에 단 하나의 화음을 연타합니다. 그런데 박자가 번번이 어긋납니다. 어디서 ‘쾅’ 하고 떨어질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화음 자체가 두 개의 조성이 부딪치는 복조성(polytonality)으로, 흔히 E♭ 장조 계열의 7화음 위에 E 장조 삼화음이 포개진 구조로 분석됩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화음을 억지로 겹쳐 놓은 소리입니다.
불협화음입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의도된 불협화음.
오케스트라 규모도 남달랐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목관을 거의 두 배로 늘렸습니다.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을 저마다 서너 대씩 두고 거기에 피콜로·잉글리시 혼·콘트라바순 같은 보조 악기까지 겸하게 했으며, 호른만 여덟 대를 세웠습니다. 백 명 안팎의 대편성이 공격적인 리듬을 몰아붙였습니다. 이건 우아한 발레 반주가 아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자체가 원시적인 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 것도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에 다들 당황했으니까요.
리듬이 음악을 부수다 — 봄의 제전이 남긴 것
그렇다면 이 곡은 정확히 무엇을 무너뜨렸을까요. 핵심은 두 가지, 리듬과 화성입니다.
먼저 리듬. 그전까지 서양 음악은 한 마디 안의 박자가 대체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4분의 4박자면 끝까지 4박자, 4분의 3박자면 줄곧 3박자. 그런데 봄의 제전은 한 마디는 8분의 9박, 다음 마디는 8분의 5박, 그다음은 8분의 7박 식으로 박자표가 쉴 새 없이 바뀝니다. 제2부의 ‘희생의 춤(Danse sacrale)’은 거의 마디마다 박자가 달라져, 지휘자조차 마디 수를 세어 가며 팔을 휘둘러야 합니다. 멜로디가 아니라 리듬이 음악을 끌고 갑니다.
다음은 화성. 앞서 본 복조성처럼, 스트라빈스키는 서로 다른 조성과 화음을 겹쳐 일부러 거칠고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짧은 음형(motif) 하나를 조금씩 어긋나게 반복하며 긴장을 쌓아 올립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선율이 아니라, 망치질하듯 두드리는 음향입니다.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쓴다는 발상이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이 충격은 20세기 음악의 물길을 바꿔 놓았습니다. 변박과 되풀이되는 리듬 패턴은 훗날 미니멀리즘과 재즈, 영화 음악으로 흘러들었고, 거친 음향과 타악기적 어법은 수많은 현대 작곡가에게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구나’ 하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평론가들이 봄의 제전을 두고 “20세기 음악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니진스키의 파격 — 발레리나가 왜 발끝으로 서지 않는가
음악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안무도 똑같이 혁명적이었습니다. 당시 발레의 문법은 분명했습니다. 발레리나는 우아해야 하고, 발끝(포인트)으로 서야 하며, 팔은 곡선을 그려야 합니다. 무대 위는 아름다워야 했습니다.
니진스키의 안무는 그 문법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무용수들은 발을 안쪽으로 틀었습니다. 무릎은 구부러졌고, 팔은 뻣뻣했으며, 동작은 경련하듯 반복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원시적인 힘, 길들지 않은 생명력을 표현하려 한 것입니다.

리허설은 악몽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악보는 박자가 수시로 바뀌니,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박자를 세며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연 중에는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서로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니진스키가 무대 옆에서 필사적으로 박자를 외쳐도 역부족이었습니다.
리허설만 수십 번을 거듭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피에르 몽퇴는 이 모든 과정을 천사 같은 인내심으로 버텨 냈다.”
▲ 1987년 조프리 발레단의 복원 공연입니다. 니진스키의 원래 안무는 1913년 이후 사라졌다가, 수년에 걸친 고증 연구 끝에 이 무대로 되살아났습니다. 발끝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대지를 딛는 원시적인 동작에 주목해 보세요.
그날 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나
5월 29일 목요일 밤, 샹젤리제 극장은 파리 사교계 인사들로 가득 찼습니다. 화려한 드레스와 연미복, 보석. 발레 뤼스의 새 시즌 첫 공연이었으니까요.
막이 오르기 직전, 바순 독주가 시작됩니다. 바순은 본래 이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악기의 음역 최상단,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고음에서 가느다란 가락이 가까스로 새어 나왔습니다. 이 첫 가락은 스트라빈스키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리투아니아 민요를 모은 옛 선집에서 빌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낯선 옛 노래를 일부러 가장 어색한 음역에 얹어, 듣는 이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만든 셈입니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가 이 오프닝을 듣고 바순을 이렇게 쓰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분개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져 왔습니다. 정확히 그런 말을 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그가 공연을 보고 못마땅해했다는 정황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막이 오르자 소음이 폭발했습니다. 야유와 박수, 고함과 웃음이 한데 뒤섞였습니다.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서로 삿대질을 했습니다. 댜길레프가 조명을 껐다 켰다 반복해도 소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찰이 불려 왔고 마흔 명가량이 퇴장당했습니다.
무용수들은 오케스트라 소리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니진스키는 무대 옆에서 목이 쉬도록 박자를 외쳤고, 몽퇴는 끝내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훗날 이렇게 떠올렸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댜길레프의 셔츠 소매를 꽉 붙잡고 서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정작 댜길레프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정확히 내가 바라던 그대로였어.”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사이먼 래틀 경의 연주입니다. 초연의 아수라장과 달리, 지금 이 곡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관현악곡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같은 악보가 한 세기를 지나며 어떻게 다른 대접을 받게 되었는지 보여 주는 무대입니다.
반전 — 10년 뒤에 붙여진 ‘폭동’이라는 단어
여기서 짚고 갈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1913년 봄의 제전 초연 폭동(riot)’. 그런데 그 단어 ‘riot’은 정작 1913년 당시 언론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공연 다음 날 신문들은 “소란(scandale)”, “시위”, “야유” 같은 표현을 썼습니다. ‘폭동’이라는 강한 단어가 이 사건에 본격적으로 들러붙은 것은 한참 뒤, 곡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회고와 전설이 쌓이면서부터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기억하는 ‘역대 최악의 초연 폭동’은 세월에 걸쳐 부풀려지고 다듬어진 전설이라는 뜻입니다.
증거는 또 있습니다. 초연 이듬해인 1914년 4월, 파리에서 발레 없이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하는 콘서트 버전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휘는 다시 피에르 몽퇴. 이번에는 객석 반응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열광적인 박수와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고, 공연이 끝나자 팬들은 스트라빈스키를 어깨에 둘러메고 거리를 행진했다고 합니다.
같은 음악이었습니다. 같은 작곡가였습니다. 1년 전과 1년 후,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달라진 건 무대 위의 춤, 그리고 관객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폭동의 진짜 원인 — 음악인가, 안무인가
그 밤의 소동을 두고 음악학자들은 오래 논쟁해 왔습니다. 객석을 뒤집은 진짜 도화선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었는지, 니진스키의 안무였는지를 두고서입니다.
안무 쪽 손을 드는 근거는 분명합니다. 바로 1년 뒤 콘서트 버전이 환호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음악만 떼어 놓고 들었을 때 관객이 열광했다면, 1913년의 분노를 자극한 핵심은 무대 위 광경 — 발끝을 거부한 무용수들, 제물로 바쳐지는 소녀, 경련하는 군무 — 이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반대로 음악의 역할을 강조하는 쪽은, 막이 오르기도 전에 바순 도입부에서 이미 웃음이 새어 나왔다는 점을 듭니다. 관객은 무대를 보기 전부터 귀로 먼저 충격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사회적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날 객석에는 전통을 옹호하는 상류층과 새로운 예술을 지지하는 전위파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한쪽이 야유하면 다른 쪽이 반발하며 소란을 키웠습니다. 음악, 안무, 그리고 객석의 진영 대립 — 세 가지가 맞물린 결과가 그 밤의 아수라장이었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그토록 큰 소동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제물이 된 소녀, 그리고 역사의 필터
《봄의 제전》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두 부로 나뉩니다.
제1부 ‘대지에 대한 경배’에서는 원시 부족이 봄의 도래를 축하합니다. 예언자 노파가 등장하고, 처녀들이 강에서 올라오며, 부족들이 힘을 겨루는 의식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격렬한 ‘대지의 춤’으로 1부가 닫힙니다.
제2부 ‘희생의 의식’에서는 소녀들이 신비로운 원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중 한 명이 제물로 선택됩니다. 선택된 소녀는 원로들 앞에서 ‘희생의 춤’을 춥니다. 죽을 때까지. 단순하지만 무거운 이야기이고, 음악은 그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악보는 초연 뒤에도 수십 년간 손질되었습니다. 니진스키의 원래 안무는 고작 여덟 번 무대에 오른 뒤 레퍼토리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 오래도록 ‘사라진 안무’로 남았다가, 1987년 조프리 발레단이 기적적으로 복원해 냈습니다. 그 복원에만 수년의 연구가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이 곡은 20세기 음악에서 손꼽히게 자주 인용되는 작품입니다. 영화 음악, 광고, 게임 사운드트랙 곳곳에 그 리듬이 살아 있습니다. 정작 스트라빈스키 본인은 단 한 번도 “나는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꿈에서 소녀를 보았고, 그 환영을 음표로 옮겼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디즈니의 공룡에서 콘서트홀까지 — 봄의 제전의 두 번째 삶
초연의 소동이 가라앉은 뒤, 봄의 제전은 뜻밖의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갔습니다. 1940년,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Fantasia)》가 이 곡을 통째로 가져다 썼습니다. 지휘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화면에는 지구의 탄생과 원시 생명, 그리고 공룡의 등장과 멸종이 펼쳐졌습니다. 제의를 그린 원래 줄거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만, 스트라빈스키의 거친 리듬은 화산과 공룡의 세계에 놀랍도록 잘 어울렸습니다. 덕분에 발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많은 관객이 이 음악을 처음으로 귀에 담게 되었습니다.
디즈니는 곡의 순서를 바꾸고 일부를 잘라 냈고, 스트라빈스키는 그 편집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판타지아》는 봄의 제전을 콘서트홀 바깥으로 끌어내 한 세대에게 각인시킨 결정적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이 곡은 영화와 광고, 무용 무대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며 ‘가장 유명한 현대 클래식’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곡을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초연 이후로도 여러 차례 총보를 고쳐 썼는데, 특히 가장 까다로운 마지막 ‘희생의 춤’은 박자를 마디 단위로 다시 짜 연주자가 다루기 쉽도록 거듭 손봤습니다. 그렇게 여러 개정판이 나와 오늘날에도 함께 연주되고 있습니다. 봄의 제전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수십 년에 걸쳐 계속 손본 평생의 과제였습니다.
작곡가 자신은 머지않아 전혀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원시적 격렬함을 뒤로하고, 1920년 《풀치넬라(Pulcinella)》 무렵부터는 18세기 양식을 빌려 절제된 음악을 쓰는 신고전주의로 옮겨 갔습니다. 한 시대를 폭파한 사람이 머지않아 가장 정돈된 형식으로 걸어 들어간 셈인데, 이 변신 또한 스트라빈스키다운 행보였습니다.
어떤 연주로 들을까 — 명연 가이드
봄의 제전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따라 인상이 크게 달라지는 곡입니다. 입문용으로 참고할 만한 연주 몇 가지를 골라 봤습니다.
피에르 몽퇴 — 초연을 지휘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훗날 여러 차례 이 곡을 녹음했는데, 작품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지휘자의 해석이라는 역사적 무게가 남다릅니다. 거칠게 몰아붙이기보다 구조를 또렷이 들려주는 쪽입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에너지가 넘치고 대비가 극적인 연주로 유명합니다. 리듬의 야성을 한껏 끌어올려, 초연 당시 관객이 느꼈을 충격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이먼 래틀 / 런던 심포니 — 위 영상으로 소개한 현대적 명연입니다. 거대한 편성을 투명하게 정리하면서도 리듬의 날을 살려, 처음 듣는 사람도 구조를 따라가기 좋습니다.
이 밖에 발레리 게르기예프, 구스타보 두다멜처럼 젊고 강렬한 해석을 들려주는 지휘자들의 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같은 악보가 지휘봉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비교해 듣는 것도 이 곡을 즐기는 한 방법입니다.
악장 따라 듣기 — 두 부의 풍경
제1부 · 대지에 대한 경배
그 유명한 바순 독주로 막이 열립니다. 고음역에서 가까스로 떠오르는 선율이 봄의 첫 기척을 알립니다. 이어 ‘봄의 전조’에서 현악기가 그 불협화 화음을 집요하게 연타하기 시작하면, 곡의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집니다. ‘유괴의 의식’과 ‘적대하는 부족의 유희’를 거치며 음향은 점점 거칠어지고, 마지막 ‘대지의 춤’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 덩어리로 폭발하며 1부를 닫습니다.
제2부 · 희생의 의식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둡고 신비로운 서곡으로 밤이 깔리고, 소녀들이 원을 그리며 움직입니다. 그중 하나가 제물로 선택되고, ‘조상의 소환’을 지나 마침내 ‘희생의 춤’에 다다릅니다. 거의 마디마다 바뀌는 변박 위에서 선택된 소녀가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춥니다. 이 곡 전체에서 리듬이 가장 격렬하게 폭주하는 대목이니, 여기까지 들으면 봄의 제전의 정수에 닿은 것입니다.
같은 시대, 다른 충격들
《봄의 제전》처럼 전설적인 초연의 순간을 품은 명곡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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