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제2번 e단조 Op.27

한 선율이 네 악장을 관통하는 60분의 부활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작품명
교향곡 2번 e단조 Op.27
(Symphony No. 2 in E minor, Op. 27)
작곡 연도
1906년 10월–1907년 4월
악장 구성
4악장
I. Largo – Allegro moderato (E minor)
II. Allegro molto (A minor)
III. Adagio (A major)
IV. Allegro vivace (E major)

1악장 느리게 – 보통 빠르게
2악장 매우 빠르게
3악장 느리게
4악장 생기 있게 빠르게
편성
플루트 3(제3주자 피콜로 겸), 오보에 3(제3주자 잉글리시혼 겸), A·B♭ 클라리넷 2, A·B♭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소고, 베이스드럼, 심벌즈, 글로켄슈필, 현악 5부
초연
1908년 1월 26일, 마린스키 극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작곡가 직접 지휘
헌정
세르게이 타네예프 (Sergei Taneyev)
3줄 요약
  • 교향곡 1번 초연 참패로 3년간 절필했던 라흐마니노프가 드레스덴에서 다시 일어서며 쓴 부활의 교향곡입니다.
  • 1악장 첫머리에 나오는 ‘모토 주제’ 하나가 네 악장을 가로지르며 변형돼, 60분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입니다.
  • 3악장 아다지오의 클라리넷 독주는 영화·광고는 물론 1976년 팝 히트곡에까지 흘러든, 이 곡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율입니다.

1897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 여성 교육원의 연주회장. 스물네 살의 라흐마니노프가 객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야심 차게 준비한 그의 교향곡 1번이 울려 퍼지고 있었죠. 문제는 지휘봉을 잡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의 취기가 상당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는 예행연습조차 변변히 거치지 못한 상태였거든요. 결과는 굳이 길게 덧붙일 필요가 없는 처참한 초연이었습니다. 청중은 노골적으로 귀를 막아버렸고, 다음 날 지면에 실린 비평은 오늘날까지도 음악사에서 가장 잔혹한 리뷰 중 하나로 꼽힙니다.

당시 작곡가 체사르 퀴가 남긴 문장은 이렇습니다. “만약 지옥에 음악원이 있어서 재능 있는 학생이 ‘이집트 7대 재앙’을 묘사하는 교향곡을 쓴다면, 틀림없이 이런 작품이 나올 겁니다. 지옥에 사는 존재들이라면 매우 즐길 만할 것 같습니다.”

이 지독한 리뷰의 타격이 얼마나 컸는지, 라흐마니노프는 그날 이후 수년간 작곡 의뢰가 들어와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어찌저찌 펜을 들어도 곡을 완성하지 못했거든요.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교향곡을 내놓은 젊은 작곡가에게는 그야말로 회복 불능의 충격이었습니다. 실제로 교향곡 1번의 악보는 라흐마니노프 사후에야 비로소 출판되었습니다. 살아생전에는 다시는 그 악보를 꺼내보고 싶지 않았던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실패의 화살을 오롯이 곡에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지휘석의 글라주노프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증언이 여럿 전하고(물론 이를 의심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리허설 역시 충분치 않았으니까요. 라흐마니노프 주변 사람들은 두고두고 그날의 연주 자체가 형편없었다며 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상처 입은 스물네 살의 작곡가에게 그런 정황이 위로가 될 리 만무했습니다. 그의 귓가에 맴도는 건 서둘러 자리를 뜨는 청중의 소리와 다음 날 신문에 박힌 차가운 활자뿐이었죠.

그 뒤 3년 동안, 라흐마니노프는 단 한 음표도 쓰지 못했습니다.

드레스덴의 방 — 교향곡이 태어나기까지

자신의 작품이 공개적인 조롱거리가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벼운 경험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자신감이 약했던 라흐마니노프에게는 더욱 가혹했죠. 그 재앙 이후 깊은 창작 우울증의 늪에 빠진 그는, 결국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가 수개월에 걸쳐 최면 암시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때 달 박사가 주문처럼 매번 반복해서 들려준 말은 이랬습니다. “당신은 피아노 협주곡을 쓰게 될 겁니다. 그것은 아주 훌륭할 겁니다.”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그의 최면 암시 치료가 절필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다시 작곡대 앞에 앉혔다.

꽤나 터무니없는 주문 같아 보이지만,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1901년 마침내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세상에 나왔고, 청중은 열광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비로소 작곡가로서의 자신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습니다. 여전히 교향곡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조여들었거든요.

볼쇼이 극장의 지휘자로 두 시즌을 보내는 동안, 그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작곡가로 살고 싶다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공연 일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요. 1906년, 그는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데리고 미련 없이 독일 드레스덴으로 이주합니다. 러시아 제1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모스크바의 소음과 정치적 소란을 뒤로한 채, 오직 쓰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사실 드레스덴에서의 3년은 라흐마니노프에게 꽤나 어색한 시간이었습니다. 까놓고 말해 그는 이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더군요. 독일어도 거의 구사하지 못했고, 날씨마저 몸에 영 맞지 않았습니다. 여름이 오면 아내 쪽 가족의 영지인 이바노프카로 도망치듯 돌아갔지만, 나머지 계절만큼은 묵묵히 그 방 안에 틀어박혀 곡을 썼습니다. 교향곡 2번을 비롯해 교향시 ‘죽음의 섬’, 피아노 소나타 1번이 모두 이 드레스덴 시기에 탄생한 산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용한 망명과도 같았던 3년이 그의 가장 단단한 작품들을 길러낸 셈입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자필 악보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쓴 교향곡 2번 자필 악보 첫 페이지. 1906~1907년 드레스덴에서 작성됐다.

물론 작곡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1907년 4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교향곡을 마치면 하늘에 맹세코 다시는 쓰지 않겠습니다. 저주받을 것들. 교향곡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고,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같은 해 8월에는 이런 푸념도 남겼습니다. “작업이 너무 힘들고 느립니다. 이 속도라면 6개월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지독한 저주와 투덜거림 속에서도, 그는 펜을 놓지 않고 계속 썼습니다.

첫 초고를 마쳤을 때 라흐마니노프 스스로 내린 평가는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을 끈질기게 고쳐 쓴 뒤 1907년 후반에 다시 들여다보았을 땐, 더 이상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았죠. 1908년 1월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침내 초연의 막이 올랐습니다. 11년 전의 그 끔찍한 악몽이 어른거렸을 법도 하지만, 그날 밤의 공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청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고, 비평가들은 앞다투어 그를 “차이콥스키의 진정한 후계자”라 치켜세웠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이어진 2차 연주 뒤 비평가 율리 엥겔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4악장을 듣고 나서 시계를 보니 65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일반 관객에게는 약간 길 수 있지만, 얼마나 신선하고 아름다운가!” 이 작품으로 그는 다시 한번 글링카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예정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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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

60분의 감동 — 그런데 왜 35분짜리 음반이 있을까

이 곡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이 하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 교향곡을 온전한 형태로 감상한 사람이 드물었다는 사실입니다.

라흐마니노프 초상 사진 1910년대
1910년대 초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초연(1908) 직후로, 그의 명성이 회복된 시점이다.

원인은 곡의 길이에 있었습니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연주하면 약 60분에 달하거든요. 1940~50년대의 지휘자들은 이른바 ‘실용적인 판단’을 앞세워 반복 구간과 느린 악절을 가차 없이 도려냈습니다. 심지어 35분으로 쪼그라든 버전까지 등장할 정도였죠. 오케스트라도, 음반사도, 심지어 이를 소비하는 이들도 암묵적으로 이 난도질을 용인했습니다. 레코드판 한 면에 욱여넣어야 한다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삭제는 단순히 연주 시간을 덜어내는 차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토 주제가 네 악장에 걸쳐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는 구조야말로 이 곡의 핵심인데, 반복과 느린 악절을 잘라내는 순간 그 정교한 연결고리가 통째로 끊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절정을 향해 서서히 끓어오르던 긴장감이 맥없이 토막 나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그 훼손된 결과물이 ‘듣기 편한 라흐마니노프’로 통용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지휘자들이 하나둘 원본 악보를 다시 펼쳐 들기 시작했습니다. 앙드레 프레빈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1973년에 남긴 EMI 음반이 이 기류를 뒤바꾼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꼽힙니다. “삭제된 부분들이 빠지면 곡의 논리 자체가 부서진다”는 주장이 마침내 힘을 얻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연주가 원본 악보를 따릅니다. 60분이라는 시간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겁니다.

돌이켜보면 꽤나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 교향곡이 “낭만주의 음악의 과잉”이라는 날 선 비판을 받는 주된 이유가 바로 그 길고 긴 연주 시간인데, 정작 그 꼬리표가 붙은 길이를 온전히 듣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니까요.

모토 주제 — 이 교향곡을 하나로 묶는 실

이 교향곡의 중심에는 ‘모토 주제’라는 핵심 선율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1악장 첫머리, 현악기들이 어두운 저음에서부터 묵직하고 느리게 기어오르는 그 첫 선율이 바로 그것입니다. 결코 짧지 않죠. 스물두 개의 음표로 엮인 이 선율은 이후 네 악장 전체를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변형되고 팽창하며 모습을 드러냅니다.

1악장에서는 짓눌린 듯 무겁고 불안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2악장에 이르면 날카로운 형태로 쪼개져 변형되죠. 3악장에서는 서정적인 흐름 속에 완전히 녹아들고, 4악장에서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되돌아옵니다. 동일한 재료를 썼음에도 등장할 때마다 그 낯빛이 완전히 다릅니다. 마치 정교한 추리소설에 깔린 복선이 결말에 이르러 전혀 다른 진실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기법은 19세기 낭만주의 교향곡이 쌓아 올린 전통입니다.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에서 고정 악상(idée fixe)을 활용한 것이나, 브람스가 교향곡 전체를 단 하나의 주제 소재에서 뽑아낸 것과 정확히 맥을 같이하죠. 라흐마니노프는 이 유산을 온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흡수하여 특유의 온도를 불어넣었습니다. 교향곡 1번의 뼈아픈 실패 직후 “나는 교향곡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 작품은 그 자조적인 고백이 틀렸음을 완벽하게 증명해 냅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3악장 아다지오를 여는 클라리넷 독주 선율은 이 교향곡의 심장이라 부를 만합니다. 1악장 특유의 길고 어두운 도입부를 묵묵히 견뎌낸 끝에 3악장에 다다르면, 그 지난한 인내가 마침내 달콤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띠고 있죠. 그리고 4악장에 이르면 곡을 감싸던 무거운 공기가 걷히며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1악장 — 망설임 끝에 터지는 것

1악장은 일종의 영리한 속임수입니다. 첫 5분은 그저 느리고 어둡거든요. 악보의 지시어는 ‘Largo’, 즉 ‘넓게, 느리게’입니다. 현악기가 낮은 음역에서 무거운 선율을 툭 내려놓고, 잠시 뒤 이것이 교향곡 전체를 꿰뚫는 모토 주제로 덩치를 키웁니다. 듣다 보면 자연스레 “이게 시작이 맞나?” 싶은 의문이 들게 되죠.

그러다 예고도 없이 잉글리시혼 독주가 치고 들어옵니다. 바로 이 짧은 찰나가 곡의 기어를 완전히 바꿔놓죠. 알레그로 모데라토로 전환된 뒤, 현악기들이 부드러운 피치카토(손으로 줄을 튕기는 주법)를 이어가는 동안 상성부 현악기가 단순하면서도 예리하게 파고드는 선율을 얹습니다. 화음 진행이 거듭 꼬리를 물며 서서히 열기가 달아오릅니다.

1악장에서 곱씹어볼 지점은 특유의 이중성입니다. 어두운 도입부와 밝은 주제부가 교대로 등장하며 서로의 판을 뒤집거든요. 비유하자면 추리소설 작가가 세 장마다 꼬박꼬박 반전을 심어둔 꼴입니다. 온전한 연주로 들으면 약 22~25분, 반복 구간을 덜어내면 18분 정도가 걸립니다. 절대적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지만 극적인 전개 덕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죠.

2악장 — 내달리는 스케르초의 역설

2악장에 접어들면 성격이 돌변합니다. 현악기가 앞뒤 가리지 않고 쏜살같이 내달리는 스케르초(Scherzo, 해학 악장)거든요. 템포는 빠르고 날이 바짝 서 있습니다. “매우 빠르게”를 뜻하는 알레그로 몰토라는 지시어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죠.

막이 오르자마자 바이올린들이 허를 찌르는 빠른 음형을 쏟아냅니다. 꽤나 가볍고 짓궂은 인상이죠. 그런데 중간에 호른이 낮게 깔리며 일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지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서 들었던 모토 주제가 슬쩍 모습을 바꿔 등장합니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질주를 시작합니다. 1악장의 진지함에서 180도 방향을 튼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공통된 선율 소재가 끈질기게 흐르고 있는 겁니다.

연주 시간은 약 10분 안팎.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짧은 악장이지만 에너지 밀도만큼은 최고치를 찍습니다. 빈틈없이 빽빽하죠. 3악장에서 완전히 정지하기 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숨 가쁘게 달리는 형국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악장을 두고 ‘불필요하게 빠른 간주’라며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뒤이어 올 3악장의 고요함을 한층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장치라는 해석이 훨씬 설득력을 얻습니다.

3악장 — 클라리넷이 혼자 남는 순간

정말이지 이게 이 교향곡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악장 아다지오(Adagio, 느리게).

도입부는 고요합니다. 현악기들이 A장조의 화음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깔아두면, 그 위로 클라리넷 한 대가 홀로 걸어 나옵니다. 이윽고 시작되는 선율은 유장하게 호흡을 늘어뜨리며, 잊고 있던 짙은 그리움을 조심스레 들춰내죠. 사실 이 교향곡을 통틀어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구간이 바로 여깁니다. 영화와 광고에 수십 차례 삽입되었고, 처음 듣는 사람마저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선율이거든요.

클라리넷의 독주가 끝나면 현악기들이 그 선율을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아주 조금씩 음량이 덩치를 키우기 시작하죠. 오보에가 얹히고 이내 목관악기 전체가 합류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현악기들이 주도하여 이 선율을 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파도로 폭발시키는 찰나가 들이닥칩니다. 앞선 30분을 쉼 없이 달려온 끝에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이 압도적인 순간 때문에, 사람들은 이 교향곡 앞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맙니다. 공연장에서 이 악장이 끝난 직후에도 좀처럼 박수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죠. 섣부른 박수소리보다 무거운 침묵이 훨씬 진득한 반응일 때가 있으니까요.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등장합니다. 정작 라흐마니노프 본인은 이 악장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듣기에도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죠. 대중에게 가장 열렬히 사랑받는 자신의 분신을 창작자 본인이 되레 껄끄러워했다니. 참으로 라흐마니노프다운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4악장 — 어둠에서 빛으로, 그러나 가볍지 않게

4악장은 빠릅니다. 알레그로 비바체. 생기 있고 활기차게 뻗어나가죠. 조성은 E장조입니다. 출발했던 e단조에서 같은 E이되 장조로 완전히 전환된 겁니다. 어두운 시작이 밝은 결말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낭만주의 서사입니다.

그런데 그저 마냥 기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4악장에서도 어김없이 1악장의 모토 주제가 돌아오거든요. 이 주제가 처음 고개를 내밀었을 땐 한없이 무겁고 불안했지만, 여기서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습니다. 마치 드레스덴에서 3년을 보내며 스스로를 다시 써 내려간 라흐마니노프 본인처럼 말이죠. 코다에 이르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전력 질주를 시작합니다. 곡이 끝나고 나면,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전체 구조를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이겁니다. 1악장이 e단조에서 출발해 E장조로 방향을 틀고, 4악장이 마침내 E장조로 쐐기를 박는다는 사실이죠. 즉, 4악장이 단순하게 ‘아, 즐거웠다’ 하고 끝나는 뻔한 마무리가 아니라, 1악장이 던져둔 묵직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는 구조인 셈입니다. 장장 60분의 시간을 가로질러, 처음과 끝이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교향곡 형식의 마지막 거목 — 음악사 안에서의 위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 세상에 나온 1908년은 음악사에서 꽤나 흥미로운 시점입니다. 말러가 후기 교향곡을 한창 써 내려가던 시기였고, 쇤베르크가 견고했던 조성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도발적인 실험에 시동을 걸던 무렵이었으니까요. 한편 스트라빈스키는 불과 2년 뒤 ‘불새’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채비를 마쳐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 때문에,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마지막 대형 낭만주의 교향곡’ 중 하나로 꼽힙니다. 차이콥스키가 1893년 세상을 떠난 뒤, 러시아 낭만주의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높은 완성도로 갈무리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평가가 따르죠. 요컨대 브람스 사후 독일 낭만주의가 막을 내린 것처럼,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낭만주의의 빛나는 유산을 훌륭하게 정리해 낸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곡이 철 지난 옛것을 우려낸 단순한 복고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모토 주제를 네 악장에 걸쳐 끈질기게 발전시키는 순환 구조 자체는 19세기 독일 교향곡의 전통에서 빌려왔지만, 화성을 빚어내는 방식이나 선율 특유의 색채는 철저히 라흐마니노프만의 것이거든요. 특히 3악장 아다지오가 구사하는 화성 언어는 그 당시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혀를 내두를 만큼 풍성하고 정교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라흐마니노프 본인은 스스로를 한 번도 ‘보수적’이라고 깎아내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음악이라는 틀 안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감동이 여전히 숨 쉴 수 있다고 굳게 믿었을 뿐이죠. 시대가 변해도 그 촌스러운 믿음을 끝내 저버리지 않은 것이야말로 작곡가로서의 지독한 고집이었고, 역설적이게도 험난한 음악사에서 그를 끝까지 살아남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세 교향곡 — 2번은 어디쯤일까

라흐마니노프는 평생토록 단 세 곡의 교향곡만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얄궂게도 이 세 곡의 운명은 각기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립니다.

교향곡 1번(1895)은 우리가 앞서 목격했던 바로 그 참혹한 재앙입니다. 스물두 살 청년의 피 끓는 야심작이 초연 무대에서 산산조각 났고, 작곡가는 악보를 서랍 깊숙한 곳에 처박아버렸죠. 이 곡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건 라흐마니노프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오케스트라 파트보를 끌어모아 복원하면서였습니다. 지금에야 특유의 묵직한 매력으로 재평가받고 있다지만, 정작 곡을 낳은 작곡가 본인은 살아생전 다시는 듣지 못한 비운의 곡입니다.

반면 교향곡 2번(1907)은 그 처절했던 실패를 완벽하게 뒤집어버린 작품입니다. 11년이라는 간격, 그사이에는 한 사람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가 다시 일어서는 눈물겨운 회복의 드라마가 고스란히 들어 있죠. 세 곡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열렬히 사랑받고, 또 가장 빈번하게 무대에 오릅니다. 지금 이 글이 다루고 있는 곡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지막 교향곡 3번(1935~36)은 또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 혁명을 피해 조국을 등지고 미국과 유럽을 떠돌던 고단한 망명기,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의 별장에 머물며 써 내려간 곡이거든요. 2번보다 전체 길이는 짧고 움직임은 한결 날렵해졌지만, 잃어버린 조국 러시아를 향한 지독한 향수가 훨씬 더 건조하고 쓸쓸한 질감으로 묻어납니다. 초연 당시 청중의 반응은 다소 미지근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고향을 잃은 망명 작곡가의 가장 내밀하고 솔직한 자화상으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요컨대 2번이 ‘아직 조국 러시아에 두 발을 딛고 있던 라흐마니노프’라면, 3번은 ‘영영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라흐마니노프’인 셈입니다.

이렇게 세 곡을 나란히 늘어놓고 보면, 라흐마니노프라는 한 작곡가의 굴곡진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속절없이 무너졌다가(1번), 기적처럼 다시 일어서고(2번), 끝끝내 고향을 잃고 떠돌아야 했던(3번) 한 인간의 서사가 고스란히 담긴 음악이죠. 어쩌면 교향곡 2번이 유독 우리 귀에 그토록 따뜻하게 감기는 진짜 이유는, 그 포근한 온기가 벼랑 끝 같은 절망의 바로 다음 자리에 간신히 피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3악장이 팝 차트에 오른 사연 — 대중문화 속 라흐마니노프 2번

3악장 아다지오의 그 굽이치는 선율은 콧대 높은 콘서트홀 바깥에서도 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가장 기막힌 사례는 미국 가수 에릭 카먼의 일화죠. 어릴 적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으며 라흐마니노프를 열렬히 흠모했던 그는, 당연히 이 곡의 저작권이 소멸된 줄로만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3악장 선율을 통째로 가져다 1976년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을 뚝딱 만들어버리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 곡은 단숨에 빌보드 핫100 11위, 이지 리스닝 차트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노래 도입부에 귀를 기울여보면, 그 애절한 아다지오 선율이 숨길 생각도 없이 아주 또렷하게 흘러나오거든요.

에릭 카먼의 대범한 차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훨씬 더 익숙한 메가 히트곡 ‘All by Myself’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선율을 쏙 빼온 곡이거든요. 팝 작곡가 한 사람이 라흐마니노프의 두 작품을 발판 삼아 연달아 차트 히트를 쳐버린 셈입니다. 물론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죠. 저작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들통나면서, 그는 결국 라흐마니노프 유산 측과 사이좋게 인세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3악장이 이토록 집요하게 대중문화의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꽤나 단순합니다. 한 번만 들어도 머릿속에 찰싹 달라붙어 좀처럼 잊히지 않는 선율이기 때문이죠. 라흐마니노프 스스로는 “너무 감상적”이라며 내내 껄끄러워했던 바로 그 축축한 감성이, 100년이 흐른 뒤 대중음악과 영화 음악 창작자들이 탐욕스럽게 손을 뻗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니. 참으로 묘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휘자들이 이 곡 앞에서 달라지는 이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포디움에 오르는 지휘자에게 유독 까다로운 과제를 던집니다. 이 방대한 곡에는 딱 떨어지는 ‘정답’이라는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든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005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2005년).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핵심 레퍼토리다.

당장 템포 설정만 두고 봐도 그렇습니다. 저 아득한 3악장 아다지오를 도대체 어디까지 느리게 잡아당길 것인가. 어떤 지휘자는 13분 만에 산뜻하게 털고 일어나는 반면, 어떤 지휘자는 무려 18분 동안 진득하게 음표를 쥐어짭니다. 단 5분의 차이라지만, 이 간극은 악장의 근본적인 성격 자체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죠. 템포가 너무 빠르면 짙은 감정이 고일 틈이 없고, 반대로 너무 느려지면 곡을 지탱하는 구조가 맥없이 주저앉고 맙니다. 그 아슬아슬한 타협점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가 온전히 지휘자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또 다른 골칫거리는 1악장의 도돌이표입니다. 분명 악보상에는 반복 기호가 버젓이 찍혀 있지만, 고지식하게 이를 다 지키다가는 1악장 하나에만 25분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거든요. 작곡가의 지시를 따르면 곡의 구조적 균형은 탄탄해지겠지만, 과감히 생략해 버리면 전체적인 극의 비율과 속도감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물론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명쾌한 답안지 같은 건 없습니다.

바로 이런 틈새들 덕분에, 이 교향곡은 지휘자들이 자신의 은밀한 음악적 철학과 고집을 가장 노골적으로 내비칠 수 있는 레퍼토리로 통합니다. 똑같은 오케스트라를 앉혀놓고도 지휘봉을 쥔 사람만 바뀌면 마치 다른 곡인가 싶을 정도로 전혀 낯선 소리가 튀어나오곤 하죠. 이 곡이 지금도 새로운 음반만 나왔다 하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화제를 모으는 이유입니다.

한국 무대 위의 라흐마니노프 2번

이 거대한 낭만의 산맥은 한국 무대에서도 심심찮게 솟아오릅니다. 일례로 KBS교향악단은 2023년 5월, 핀란드 출신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과 호흡을 맞춰 이 곡 전곡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위에 띄운 영상이 바로 그날의 팽팽했던 실황입니다. 1악장의 그 짓눌린 어둠에서 출발해 4악장의 눈부신 코다에 닿기까지, 60분의 긴 여정을 끊김 없이 묵묵히 따라가 볼 수 있죠.

사실 라흐마니노프 2번은 객원 지휘자가 한국 악단과 처음 손발을 맞출 때 은근히 자주 꺼내 드는 카드이기도 합니다. 특유의 길고 유장한 호흡과 겹겹이 쌓인 화성이 오케스트라 현악 섹션의 민낯을 가감 없이 폭로해 버리거든요. 3악장 아다지오를 어느 악단이 더 포근하고 애절하게 당겨주는지, 4악장 코다에서 금관이 헛발질 없이 얼마나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지 비교하며 듣는 건 꽤나 쏠쏠한 재미입니다. 만약 압축된 음반으로만 이 곡을 접했다면, 한 번쯤은 국내 공연장을 찾아가 날것 그대로의 60분짜리 실황을 마주해 보시길 권합니다. 깐깐한 마이크로도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하는 서늘하고 끈적한 현악의 결이, 객석의 공기 중에는 여전히 살아 꿈틀대거든요.

처음 듣는다면 —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 3악장만 먼저 들어도 됩니다. 3악장 아다지오(약 15~16분)는 단독으로도 완전한 음악입니다. 클라리넷 선율이 기억에 남으면, 그때 처음부터 다시 들으세요.
  • 1악장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처음 5분이 느리고 어둡게 느껴져도 버티세요. 알레그로로 바뀌는 순간부터 보상이 시작됩니다.
  • 삭제본 음반을 조심하세요. 1970년 이전의 오래된 음반은 잘려나간 버전일 수 있습니다. 현대 지휘자의 녹음은 거의 원본 악보를 씁니다.
  • ‘달달한 낭만’이라는 선입견은 내려놓으세요. 20세기 전위 음악 지지자들은 라흐마니노프를 시대착오적이라 봤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공공연히 그를 구식이라 했고, 프로코피예프도 비슷했습니다. 그런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 곡은 100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낭만주의 ‘마지막 거인’ — 왜 지금도 중요한가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사에서 상당히 뻘쭘한 자리에 서 있는 작곡가입니다. 점잖은 음악사 교과서를 펼치면 그는 늘 “20세기 초에 태어났지만, 19세기 낭만주의의 문법으로 쓴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거든요. 잘나가던 동시대 동료들이 익숙한 조성 음악을 앞다투어 해체하며 낯설고 매운 새로운 언어를 찾아 헤맬 때, 그는 홀로 꿋꿋하게 옛날 방식 그대로 길고 아름다운 선율과 웅장한 화성을 짜내고 있었습니다.

깐깐한 비평가들이 물고 늘어진 대목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하지만 청중의 반응은 완전히 딴판이었죠. 사람들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앞에서 속절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악장 스케르초를 들으며 슬쩍 눈살을 찌푸리던 사람조차, 3악장 아다지오가 막을 올리면 표정이 싹 바뀌고 맙니다. 사실상 이 선율 앞에서는 어떤 방어막도 소용이 없거든요. 얄궂게도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비판 자체가, 오히려 이 선율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노골적으로 흔들어 놓는지를 고스란히 반증하는 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눈에 띕니다. 2000년대 이후 클래식 음악의 젊은 청중 사이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인기가 슬그머니 다시 치솟았거든요. 영화 음악이나 게임 음악이 낭만주의 화성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라흐마니노프가 귀를 자극하는 방식이 이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까닭입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복권’이라 부르기도 하죠. 오랫동안 감상적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당하던 작곡가가 마침내 합당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조국을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이바노프카 영지도, 켜켜이 쌓인 기억도, 드레스덴의 그 방마저 모조리 남겨둔 채 도망치듯 망명길에 올라야 했죠. 돌이켜보면 교향곡 2번을 써 내려가던 그 시절이, 그에게는 러시아 땅에서 작곡가로 온전히 숨 쉴 수 있었던 마지막 황금기였던 셈입니다. 3악장을 들으며 그가 겪어낸 상실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이 선율이 사뭇 다르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추천 녹음

앙드레 프레빈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3, EMI) — 무자비한 삭제본이 판을 치던 시절, 뚝심 있게 완전한 원본 악보로 밀어붙인 음반입니다. 속도 선택과 세밀한 표현이 기막힌 균형을 잡고 있으며, 무엇보다 3악장의 클라리넷 독주가 넋을 잃을 만큼 압도적으로 아름답죠. 처음 접하는 분께 가장 먼저 권해 드립니다.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 소련 국립 교향악단 (1971) — 특유의 어두운 러시아 색채가 눅진하게 깔린 연주입니다. 서양 지휘자들이 매끈한 선율의 아름다움을 앞세울 때, 스베틀라노프는 보란 듯이 이 곡의 밑바닥에 고인 러시아적 비애를 서늘하게 끄집어냅니다. 두 번째로 들을 음반으로 권합니다.

마리스 얀손스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86, Chandos) — 무척 젊고 펄떡이는 생기가 묻어나는 연주입니다. 4악장 피날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유독 뛰어나죠. 쓸데없는 군더더기 없이 칼같이 정확하면서도, 곡에 담긴 감정선만큼은 끈질기게 놓치지 않습니다.

아래는 안토니오 파파노가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을 이끌고 빚어낸 전곡 실황입니다. 다름 아닌 곡이 태어난 바로 그 도시, 드레스덴의 터줏대감 악단이 연주한다는 점이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전곡 실황.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 집요한 모토 주제가 어떻게 네 악장 곳곳에 흩어졌다가 기어이 다시 뭉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총보와 함께 듣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전곡.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왜 만들어졌나요?

1897년 교향곡 1번이 처참하게 실패한 후 라흐마니노프는 수년간 창작 활동을 멈췄습니다.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의 최면 치료로 회복한 뒤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1906년 드레스덴으로 이주해 모스크바의 소란에서 벗어나 집중적으로 작업한 결과가 교향곡 2번입니다. 1908년 1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초연에서 청중과 비평가 모두 열광했고,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3악장 아다지오는 클라리넷의 길고 서정적인 독주 선율로 시작됩니다. 이 선율은 점차 현악기에서 오케스트라 전체로 번지며 절정에 이릅니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낭만적 서정성이 가장 농축된 악장으로, 영화와 광고는 물론 에릭 카먼의 1976년 팝 히트곡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에까지 쓰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라흐마니노프 자신은 이 악장이 너무 감상적이라며 불편해했다고 전해집니다. 작곡가가 가장 유명해진 부분을 정작 좋아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가 이 악장에 얽혀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연주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완전한 원본 악보로 연주하면 약 55~65분이 걸립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는 반복 구간과 느린 악절을 대폭 삭제한 버전이 유행해 35~45분짜리 연주가 많았습니다. 1970년대부터 지휘자들이 원본 악보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모든 연주가 완전한 버전을 씁니다. 오래된 음반을 살 때는 삭제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처음 듣는 분께는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1973, EMI) 음반을 권합니다. 삭제본이 일반적이던 시절에 완전 원본 악보로 녹음했고, 3악장의 클라리넷 독주가 특히 뛰어납니다. 러시아 색채를 원한다면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와 소련 국립 교향악단(1971)이 잘 맞습니다. 마리스 얀손스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1986, Chandos)는 생기 있고 정확한 해석으로 또 다른 매력을 줍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처음 듣는다면 어디부터 들어야 하나요?

3악장 아다지오부터 들어보세요. 약 15~16분 길이로 단독으로도 완전한 음악이고, 이 곡에서 가장 사랑받는 클라리넷 선율이 여기 있습니다. 이 선율이 귀에 남으면 1악장 처음부터 전곡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1악장은 첫 5분이 느리고 어두워 인내가 필요하지만, 알레그로로 바뀌는 순간부터 보상이 시작됩니다. 60분이 부담스럽다면 한 악장씩 나눠 들어도 좋습니다.

이어서 듣기 — 라흐마니노프와 러시아 낭만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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