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 작품명
- 전주곡 c♯단조 Op.3 No.2
- 작곡 연도
- 1892년
- 악장 구성
- 단악장 (ABA 3부 형식)
Lento(느리게) , Agitato(격하게) , Lento - 편성
- 피아노 독주
- 초연
- 1892년 9월 26일, 모스크바 전기박람회 연주회 (라흐마니노프 직접 연주)
러시아 전역이 그 사내를 ‘종’ 소리로 기억했습니다.
19살 라흐마니노프가 처음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 때, 청중은 열광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런데 정작 그 곡을 쓴 본인은 나중에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나는 그 전주곡이 너무 싫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무슨 뜻이냐고요? 이 곡은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앙코르로 요구받았습니다. 어느 도시, 어느 공연장에 가든 청중은 연주가 끝나면 일제히 이 곡을 외쳤습니다. 결국 그는 죽을 때까지 이 2분짜리 곡을 수천 번 연주해야 했습니다. 원하지 않는데도.
단 2분. 62마디. 그런데 이 짧은 곡이 한 사람의 인생을 붙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이 곡에 무엇이 있길래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이것만을 요구했는지. 그 이야기를 지금 해보죠.
‘종소리’라는 별명이 붙은 사연
이 곡에는 비공식 별명이 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독일과 러시아에서는 ‘종소리(Das Glöckchen, The Bells)’ 또는 프랑스에서는 ‘Le Destin(운명)’이라고 불렸습니다. 어느 별명이 더 어울리는지는 직접 들어보면 압니다. 낮고 묵직한 반복 화음이 시작되는 순간, 누군가의 귓가에는 교회 종이, 다른 이의 귓가에는 장례 조종이 울립니다.

흥미로운 건 라흐마니노프 본인은 그 별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는 그냥 피아노 소품을 쓴 건데, 사람들이 거기다 온갖 의미를 붙인다”는 식으로 말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중은 달랐습니다. 이 곡에서 무언가를 봤거든요. 첫 화음이 떨어지는 순간 처음 듣는 사람도 무게감을 느낍니다. 그 무게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들어보는 게 빠릅니다.
러시아 정교회 문화권에서 종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고, 축제를 선포하며, 동시에 죽음을 고하는 신호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자라난 환경에서 종소리는 어릴 때부터 들어온 소리였습니다. 그가 이 곡을 ‘의도적으로’ 종소리처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죠. 그러나 그 화음 구조가 러시아인 청중에게 즉각적으로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건 분명합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19살이 쓴 곡이라는 사실, 탄생의 맥락
1892년.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그 전해에 피아노 협주곡 1번 초고를 완성한 상태였고, 동기들 사이에서는 기이한 천재로 불렸습니다. 손이 워낙 커서 보통 피아니스트들이 두 손으로 쳐야 할 음정을 한 손으로 쳤고, 그 손으로 악보 없이 몇 시간씩 즉흥 연주를 했습니다. 당시 그의 손 크기는 약 12도, 즉 건반 12개를 동시에 짚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보통 사람의 손이 7~8도를 닿는다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비정상적인 손인지 짐작이 갑니다.

그해 여름, 그는 단 며칠 만에 다섯 개의 소품을 작곡합니다. 나중에 ‘Morceaux de fantaisie(환상 소품집)’, 작품 번호 3번으로 출판될 모음집이었습니다. 그 중 두 번째가 전주곡 c♯단조였죠. 나머지 네 곡은 세레나데, 멜로디, 우울한 세레나데, 왈츠였는데 그 어떤 것도 이 두 번째 곡만큼 후대에 남지 않았습니다.
초연은 1892년 9월 2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기박람회 연주회였습니다. 박람회 부속 연주회라는 다소 소박한 무대였습니다. 역사적인 초연치고는 소박한 공간이었죠. 기록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건반에 앉았고, 청중 반응은 예상 밖으로 폭발적이었습니다. 초연이 이렇게 될 줄 본인도 몰랐겠죠. 당시 그의 스승이었던 알렉산더 질로티(Alexander Ziloti)는 “청중이 그 짧은 곡에 가장 강하게 반응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사촌이기도 했던 질로티는 이 초연 자리에서 이 곡이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 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출판하면서 저작권 계약을 허술하게 맺었습니다. 이게 나중에 큰 문제가 됩니다. 러시아 출판사에 판권을 넘기면서, 이 곡이 나중에 국제적으로 이렇게 큰 인기를 끌 줄 몰랐던 거죠. 결국 그는 이 곡으로 제대로 된 인세를 받지 못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곡이 가장 돈이 안 되는 곡이 된 겁니다. 그가 나중에 이 곡에 대해 씁쓸하게 언급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곡이 가장 돈이 안 된 곡이 된 셈이죠.
더 아이러니한 건 라흐마니노프가 1917년 러시아를 떠나 서방에 정착한 뒤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어느 도시에서 공연하든 청중은 이 전주곡을 앙코르로 요구했습니다. 가끔 그는 청중이 원하기 전에 먼저 이 곡을 연주해버리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요청할 거잖아요”라는 뜻으로. 그래도 청중은 다시 앙코르를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웃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30년 이상 이 상황이 반복됐다면 다른 느낌입니다.
ABA 구조, 단 62마디에 담긴 세 가지 세계
이 곡은 형식이 단순합니다. ABA, 3부 형식이라고 부릅니다. 쇼팽의 많은 전주곡들도 이 형식을 사용했고, 라흐마니노프는 그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추리소설로 치면 ‘사건 발생, 폭풍, 여운’ 구조입니다.

> 💡 처음 듣는다면: 처음 나오는 묵직한 저음 화음을 기억하세요. 그 화음이 세 번 반복되면서 무언가를 예고합니다. 그 다음 오른손 선율이 등장하면, 그게 이 곡의 ‘얼굴’입니다. 중간에 갑자기 격렬해지는 구간이 오고, 마지막엔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딱 이 흐름만 알면 됩니다.
A 섹션, 저음 화음이 선언하는 것
곡이 시작되면 왼손이 c♯단조의 낮은 화음을 세 번 칩니다. 강하게, 천천히. ‘Lento(느리게)’라는 지시 아래. 이 3회 반복 화음이 이 곡 전체의 무게 중심입니다. 일종의 닻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마치 무거운 문이 닫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교회 종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죠. 독일 청중이 ‘종소리’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어서 오른손이 선율을 제시합니다. 느리고, 어둡고, 그러나 단순히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어딘가 체념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열망하는, 이중적인 느낌이죠. 이 선율에는 러시아 음악의 어떤 전통이 배어있습니다. 글린카, 보로딘, 무소르그스키가 만들어온 러시아 특유의 ‘어두우면서 장중한’ 정서가 이 몇 마디 안에 압축돼 있습니다.
피아니스트에 따라 이 선율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곡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어떤 연주자는 이 부분을 무겁고 장중하게 처리하고, 어떤 연주자는 서정적으로 노래하듯 연주합니다.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녹음을 들으면 예상보다 빠르고 예리합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이 곡을 실제보다 느리고 무겁게 치는 경향이 있는데, 작곡가 본인의 의도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A 섹션에서 주목할 만한 음악적 기술이 있습니다. 오른손 선율(4분음표 기반)과 왼손 저음 반주(8분음표 기반) 사이의 리듬 대위법입니다. 서로 다른 리듬이 동시에 흐르면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초보 청취자에게는 잘 들리지 않지만, 이 층위 구조가 이 곡을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치밀한 건축물로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알고 들으면 전혀 다른 곡이 됩니다. 쇼팽의 전주곡들이 이런 방식으로 복잡성을 숨기는 전통을 이어받은 셈입니다.
B 섹션, 폭풍이 온다
A 섹션이 묵직하고 느린 세계라면, B 섹션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Agitato(격하게)’라는 지시 아래, 갑자기 템포가 달라지고 16분음표의 급박한 파사지가 쏟아집니다. 마치 댐이 무너지듯 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이 구간이 이 곡을 피아니스트의 기술적 도전으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 대비가 이 곡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죠. A에서 B로 넘어가는 그 한순간, 청중 대부분은 무의식 중에 앞으로 몸을 기울입니다. 갑자기 올라간 긴장 때문입니다. 피아니스트에게도 이 순간은 도전이 됩니다. 손이 충분히 커야 하고, 페달 처리가 정밀해야 하며, 강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도 음들이 뭉개지지 않아야 합니다.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손 크기를 생각해보면, 이 구간을 그가 어떻게 느꼈는지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피아니스트가 손을 쭉 뻗어야 겨우 닿는 음정을 그는 여유롭게 쳤을 테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을 위해’ 쓴 이 구간은 일반 피아니스트에게는 처음부터 장벽이 됩니다. 작곡가의 신체조건이 곡의 난이도를 결정한 셈입니다. 공평하지 않죠.
B 섹션에서 눈여겨볼 게 또 있습니다. A에서 제시된 선율이 변형되어 다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같은 멜로디인데 다른 감정으로 들립니다. 이를 음악학에서는 동적 재현이라고 부르는데, 처음 들었던 것을 다시 만나되 더 강렬한 맥락에서 경험하게 만드는 기법이죠. 베토벤이 즐겨 쓰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살에 이미 이 기법을 자연스럽게 활용했습니다. 천재라는 말을 쓰기 싫어하는 편인데, 이 경우엔 쓸 수밖에 없습니다.
A’ 섹션, 폭풍 후의 정적
B 섹션의 폭풍이 지나면, 처음 A 섹션이 돌아옵니다. 같은 선율인데 다르게 들립니다. B에서 격렬하게 움직인 뒤 다시 느린 세계로 돌아오는 이 전환이 이 곡의 정서적 핵심입니다. 폭풍을 경험한 뒤의 정적은 폭풍 이전의 정적과 다릅니다. 두 번째로 듣는 A는 첫 번째 A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상하게도.
마지막 몇 마디는 특히 인상적입니다. 처음 A 섹션에서 세 번 울렸던 저음 화음이 다시 한 번 등장하며 마무리됩니다. 처음엔 예고였는데, 마지막엔 결론이 됩니다. 같은 음형인데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게 바로 이 곡이 단순한 형식 이상인 이유죠.
연주가 끝나면 보통 잠깐의 침묵이 옵니다. 라이브 콘서트에서 이 곡 이후 박수가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 화음이 끝나고 여운이 가라앉는 시간을 청중이 본능적으로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도 이 곡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연주가 완전히 끝나야 박수를 쳐도 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곡입니다.
평생 나를 따라다닌 2분, 라흐마니노프의 딜레마
라흐마니노프의 연주 경력에서 이 곡이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합니다. 그는 1909년 미국 순회공연을 처음 시작했는데, 어느 도시에서나 이 전주곡을 앙코르로 요구받았습니다. 뉴욕, 보스턴, 시카고, 필라델피아. 공연장이 달라도 결말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한 번은 공연 도중 피아노 페달이 망가졌음에도 청중이 이 곡을 끝까지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어떤 공연에서는 그가 이미 두 번 연주한 뒤에도 청중이 계속 앙코르를 외쳤습니다. 그는 세 번째 연주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편지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내 곡이 가장 유명한 곡이 됐다. 그게 음악의 아이러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후기 작품, 특히 피아노 협주곡 2번이나 3번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청중에게 그는 ‘그 전주곡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이 간극, 흥미롭지 않습니까? 작곡가가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곡과 대중이 사랑하는 곡이 다른 경우, 음악사에서 이런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바흐도 살아 있을 때 지금 ‘바흐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곡들보다 다른 작품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죽고 나서 대표작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죠. 차이콥스키도 비창 교향곡보다 다른 교향곡들에 더 공을 들였습니다. 정작 비창이 사망 후 가장 유명해진 것처럼요.
라흐마니노프의 경우 더 특이한 건, 그가 이 곡을 싫어했음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청중이 원하니까. 그것이 연주자로서의 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작곡가로서의 자존심과 연주자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그는 언제나 연주자 쪽을 선택했습니다.
피아노 레퍼토리에서의 위치, 낭만주의 마지막 숨결
이 곡이 발표된 1892년, 피아노 음악은 낭만주의 말기였습니다. 쇼팽은 43년 전에 떠났고, 리스트도 전해에 타계했습니다. 낭만주의의 거장들이 하나씩 무대를 떠나던 시기이기도 했죠. 그래도 브람스는 건재했고, 그 젊은 세대들은 19세기와 20세기 사이 어딘가에서 음악의 방향을 찾고 있었습니다. 세기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이 전주곡은 여러 의미에서 ‘마지막 낭만주의’의 산물입니다. 쇼팽의 전주곡 미학을 이어받으면서도 훨씬 러시아적인 무게감을 얹었습니다. 쇼팽의 전주곡들이 섬세하고 시적이라면, 라흐마니노프의 c♯단조는 좀 더 육중하고 운명적입니다. 두 전주곡집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러시아 낭만주의와 폴란드 낭만주의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같은 낭만주의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발견이 있습니다.
그 후 라흐마니노프는 전주곡 23곡을 더 작곡합니다. 작품 23번에 10곡, 작품 32번에 13곡. 그러나 그 어떤 전주곡도 이 첫 번째 c♯단조만큼의 대중적 인지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전문 피아노 학도들 사이에서는 후기 전주곡들이 더 높이 평가받지만, 일반 청중에게는 여전히 이 곡이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의 전부나 마찬가지입니다.
동시대의 피아노 소품들과 비교하면 이 곡의 특수성이 더 명확해집니다. 드뷔시는 비슷한 시기에 아라베스크와 모음곡을 작곡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드뷔시의 소품들이 빛과 그림자의 유희라면, 라흐마니노프의 이 곡은 어두운 방에서 혼자 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두 작곡가가 거의 같은 시대에 얼마나 다른 음악 언어를 가졌는지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 저음 화음 3번: 시작 직후 왼손이 치는 낮고 묵직한 화음 세 번. 이 세 화음이 이 곡의 암호입니다. 그냥 음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 대비의 순간: 느린 서두가 끝나고 갑자기 빠르고 격렬해지는 순간을 포착하세요. 그 전환이 이 곡의 핵심 드라마입니다.
– 돌아옴: 폭풍이 지나고 처음 분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마지막 구간. 같은 선율이 다르게 들리면 이 곡을 제대로 들은 겁니다.
– 마지막 침묵: 연주가 끝난 뒤 잠깐 멈추세요. 여운이 사라지는 그 2~3초가 이 곡의 마지막 마디입니다.
– 연주자를 비교해보세요: 같은 악보를 두고 라흐마니노프 본인, 호로비츠, 키신이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는지 들어보면 이 곡의 해석 폭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납니다.
음악적 구조의 세밀함, 전문가가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
음악학자들이 이 곡을 분석할 때 가장 자주 언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화성의 진행 방식입니다.
c♯단조 주화음에서 시작하는 이 곡은 조성 체계 안에서 예상 가능한 경로를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B 섹션으로 넘어가면서 약간씩 기대를 비틀기 시작합니다. 해결되는 것 같으면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그 미묘한 불안정함이 음악에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이걸 더 쉽게 설명하면, 이야기에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는 물음표가 계속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화음이 울릴 때까지, 어딘가 완전히 안착하지 않은 긴장이 유지됩니다. 이 긴장이 청중을 붙들어 놓는 핵심 힘입니다.
페달 사용도 특이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A 섹션에서 페달을 길게 유지하여 음들이 서로 섞이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피아노 교육에서는 이렇게 하면 ‘흐린 소리가 난다’고 주의를 줍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그 ‘흐림’을 의도했습니다. 그 흐릿한 공명이 ‘종소리’라는 인상을 만들거든요. 기법적으로는 ‘나쁜 페달링’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B 섹션에서는 페달이 더 짧아집니다. 빠른 음표들이 서로 뭉개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A와 B 사이의 페달 처리 변화만으로도 두 섹션의 분위기 차이가 명확해집니다. 좋은 피아니스트는 이 변화를 눈에 보이지 않게, 그러나 귀에는 뚜렷하게 만들어냅니다.
이 곡이 왜 여전히 피아노 교육 현장에 살아있는가
클래식 음악에서 ‘살아있다’는 건 교과서에 실리는 게 아닙니다. 매년 실제 무대에서 연주되고, 피아노 학생들이 배우고,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찾아보는 겁니다.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c♯단조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합니다.
교육적 관점에서 이 곡의 가치는 명확합니다. ABA 형식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어떤 피아노 교육자든 “ABA 형식이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 곡을 틀어줄 수 있습니다. 2분 안에 설명이 끝납니다. 이론과 실제가 이렇게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곡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음색 다양성 훈련에도 이상적입니다. A 섹션의 깊고 느린 터치, B 섹션의 빠르고 강한 터치, 마지막 A’의 조절된 복귀. 세 가지 다른 음색 세계를 한 곡 안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이런 다양성을 요구하는 짧은 곡이 많지 않습니다.
연주 불안(performance anxiety) 극복 곡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짧기 때문에 처음 발표회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분이니까 끝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연주해보면 그 2분이 얼마나 긴지 알게 됩니다. 침묵을 견디는 법, 첫 화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 폭풍 같은 B 섹션에서 당황하지 않는 법. 이 모든 것이 이 짧은 곡 안에 있습니다.
무대에서 처음 이 곡을 연주하다 B 섹션에서 실수를 하면, 마지막 A’로 돌아왔을 때 다른 감정이 됩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아는 채로 음악을 이어가는 경험. 그것도 이 곡이 가르쳐주는 것 중 하나입니다. 실수하고도 계속하는 것.
라흐마니노프가 연습실에서 이 곡을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이건 가설이지만, 생각해볼 만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전주곡을 평생 수천 번 연주했는데, 그 수천 번의 연주가 모두 달랐을 겁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곡을, 같은 피아노로 연주해도 날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날의 컨디션, 공연장 분위기, 청중의 숨소리.
1920년대 그가 미국 투어를 하던 시절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연 후 호텔 방에서 이 전주곡을 혼자 연주하고 있었는데, 옆방 투숙객이 벽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무슨 소리냐”고.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몇 분 후 그 투숙객이 문을 두드렸고, 라흐마니노프는 문을 열고 “죄송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투숙객이 물었습니다. “혹시 라흐마니노프 아니세요?” 소문에 의하면 그 투숙객은 남은 투어 공연 전부를 보러 다녔다고 합니다.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런 유형의 일화가 라흐마니노프 주변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의 존재감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존재감의 상당 부분이 이 짧은 전주곡에서 비롯됐습니다.
추천 녹음
피아노 독주 곡인 만큼 해석의 폭이 넓습니다. 같은 악보를 두고도 연주자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921, Victor)
작곡가 본인의 녹음입니다. 1921년 빅터(Victor) 레이블에서 녹음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들으면 음질이 낡았지만, 작곡가가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요. 기대보다 훨씬 빠르고 예리합니다. “그 유명한 종소리 전주곡”의 낭만적 이미지와는 꽤 다른 느낌입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이 녹음이 첫 번째 선택이 될 겁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눈으로 따라가며 감상하면 ABA 구조와 각 성부의 흐름이 훨씬 선명하게 들립니다. A 섹션의 저음 화음 세 번, B 섹션에서 쏟아지는 16분음표, 그리고 A’의 복귀까지 — 악보와 소리를 함께 보면 이 62마디가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됐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전주곡 c♯단조 악보 보기 (IMS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