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교향적 무곡 Op.45

호로비츠와 단둘이 두 대의 피아노로 친, 작곡가 최후의 악보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작품명
교향적 무곡 Op.45 (Symphonic Dances, Op. 45)
작곡 연도
1940년
조성
a단조 (A minor)
악장 구성
3악장
I. Non allegro (A minor)
II. Andante con moto (F major)
III. Lento assai , Allegro vivace (A minor)

1악장 빠르지 않게 (a단조)
2악장 조금 움직이며 (F장조)
3악장 매우 느리게, 활발하고 빠르게 (a단조)

편성
피콜로, 플루트 2,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알토 색소폰,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 탬버린, 소고, 심벌즈, 베이스드럼, 탐탐, 실로폰, 글로켄슈필, 튜불러 벨, 하프, 피아노, 현악 5부
초연
1941년 1월 3일, 유진 오먼디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헌정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
약 35~40분

이름은 분명 ‘무곡(舞曲)’, 곧 춤곡입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 생전에는 이 곡으로 단 한 번도 춤을 추지 못했어요. 처음부터 발레를 위해 구상했고 안무가까지 점찍어 뒀는데도 그랬습니다. 가볍게 흥얼거릴 춤곡을 기대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첫 마디부터 당황하게 됩니다. 탁탁 끊기는 스타카토, 난데없는 알토 색소폰, 그리고 곡 끝에 박힌 죽음의 성가까지. 이건 춤곡의 탈을 쓴 35분짜리 자서전이거든요.

교향적 무곡 Op.45는 라흐마니노프가 완성한 마지막 작품입니다. 1940년 여름에 다 쓴 뒤 194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다시 펜을 들지 않았습니다. 작곡가로서 남긴 마지막 한마디였습니다. 그런데 이 고별사 안에는 평범한 인사 따위가 없습니다. 젊은 날의 처참한 실패, 러시아에 두고 온 모든 것, 죽음을 향한 평생의 응시,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내민 한 줄기 화해까지. 한 사람의 생애 전부가 35분 안에 접혀 들어가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쓴 마지막 곡, 작곡 배경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이 태어난 곳은 미국입니다. 러시아를 떠난 지 스물세 해째인 1940년, 그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센터포트(Centerport)에 있는 오처드포인트(Orchard Point)라는 저택에서 여름을 보냈습니다. 롱아일랜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그 집에서 이 곡의 거의 전부를 완성했습니다.

처음 제목은 ‘판타스틱 댄스(Fantastic Dances)’였습니다. 각 악장에 ‘정오(Noon)’, ‘황혼(Twilight)’, ‘자정(Midnight)’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하루의 세 시간대를 하나의 곡에 눌러 담으려 한 구상이었습니다. 부제들은 나중에 지워졌지만, 1악장이 빠른 낮의 에너지를, 2악장이 어스름한 왈츠를, 3악장이 자정의 어둠과 새벽을 담고 있다는 해석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악보 스케치에는 2악장 옆에 ‘dusk(황혼)’이라는 메모가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처음 권유한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 당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입니다. 1940년 여름 내내 편지가 오갔고, 8월 말 라흐마니노프는 오먼디에게 “곡이 완성됐고 오케스트레이션만 남았다”고 알렸습니다. 총보에 찍힌 완성 날짜는 그해 9월과 10월입니다. 초연은 1941년 1월 3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오먼디의 지휘로 무대에 올렸고, 곡은 바로 그들에게 헌정됐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왜 마지막 에너지를 이 곡에 쏟아부었을까요?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1939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가 발레로 무대에 오르는 걸 직접 봤습니다. 자기 음악이 무용수의 몸을 타고 새 생명을 얻는 장면이었습니다. 교향적 무곡 역시 처음부터 발레를 염두에 둔 곡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전설적인 안무가 미셸 포킨(Michel Fokine)에게 직접 피아노로 이 곡을 들려줬고, 포킨은 열정적으로 응했습니다. 그러나 포킨이 1942년 8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 계획은 사라졌습니다.

여기엔 묘한 인연이 얽혀 있습니다. 사실 라흐마니노프와 포킨의 발레 인연은 25년 전에 한 번 어긋난 적이 있거든요. 1914~15년경, 라흐마니노프는 ‘스키타이인(The Scythians)’이라는 발레 음악을 구상해 포킨에게 보였는데, 포킨은 “춤추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거절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를 떠나면서 그 스케치는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일부 음악학자는 그때 버려진 소재가 25년 뒤 교향적 무곡 1악장에 되살아났다고 봅니다. 다만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는 건 아닙니다. 한 번 거절당했던 발레 음악의 씨앗이, 한 번 거절했던 안무가의 손을 다시 기다리다 끝내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한번 쓴 음표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초상 (1921년경)
1921년경의 라흐마니노프.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연주자로 살아가던 시절의 모습이다.

자기 인용의 비밀, 숨겨놓은 메시지들

이 곡 곳곳에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다른 작품 선율이 숨어 있습니다. 단순한 셀프 오마주가 아닙니다. 그가 어떤 감정으로 이 곡을 썼는지 읽어낼 수 있는 암호입니다.

1악장 끝부분,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교향곡 1번(Op.13, 1897년 초연) 첫 주제를 짧게 인용합니다. 그냥 인용이 아닙니다. 원래 단조였던 선율이 장조로 바뀝니다. 교향곡 1번이 뭔지 알면 이 장면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처참한 실패작이었습니다. 초연이 끝난 뒤 평론가들은 혹평을 퍼부었고, 라흐마니노프는 그 충격으로 몇 해 동안 거의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 트라우마의 선율을 43년 후에 장조로 바꿔 다시 꺼낸 겁니다. 화해예요. 과거와 나누는 화해입니다.

교향곡 1번 초연 얘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1897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이 처음 연주되는 날이었습니다. 지휘는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그런데 글라주노프가 술을 마신 상태로 무대에 섰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진위는 분명치 않지만, 연주가 엉망이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초연은 재앙이었고, 평론가 체사르 큐이는 “지옥에 음악원이 있다면 이 교향곡이 거기서 1등을 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날 이후 한동안 깊은 우울에 빠졌습니다. 자신감을 거의 잃었습니다. 회복의 계기는 니콜라이 달 박사의 최면 치료였습니다. 그 처절했던 실패의 선율을 43년 후 교향적 무곡 1악장 끝에서 장조로 다시 꺼냅니다. 이번엔 제 박자에, 제 오케스트라와 함께. 복수도 부정도 아닌 화해였습니다.

3악장에는 더 묵직한 인용이 기다립니다. ‘Dies Irae(진노의 날)’와 자신의 종교 합창곡 철야기도(Op.37)에서 가져온 부활의 선율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Dies Irae는 라흐마니노프가 평생 집착하다시피 한 죽음의 주제입니다. 파가니니 랩소디, 피아노 협주곡 2번, 교향곡 2번 등 주요 작품 곳곳에서 이 선율이 얼굴을 내밉니다. 어린 시절 가까운 사람을 잇달아 잃은 경험에서 이 집착이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런데 3악장 마지막에서 Dies Irae가 밀려납니다. 부활의 선율이 점점 커집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 승리의 지점, 악보 위에 손글씨로 ‘Alliluya(할렐루야)’라고 써넣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강타를 내리치고 대형 징 같은 타악기 탐탐의 소리가 잦아들 때, 죽음의 주제는 이미 지워져 있습니다.

이 곡이 단순한 오케스트라 춤곡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을 한 곡 안에 접어 넣었습니다. 젊은 날의 실패, 러시아에 두고 온 것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에 손을 내민 희망까지. 클래식 청중 사이에서 이 곡을 ‘라흐마니노프의 비밀 유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유진 오르만디 — 교향적 무곡 Op.45 초연 지휘자
유진 오르만디. 1941년 1월 3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교향적 무곡 Op.45 세계 초연을 이끌었다.

알토 색소폰이 왜 거기 있나, 편성의 역설

교향악 악보에서 알토 색소폰을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비제의 《아를의 여인》, 라벨의 《볼레로》 같은 작품에서 간간이 얼굴을 내밀지만, 색소폰은 본래 클래식 레퍼토리의 주변부 악기입니다. 재즈와 팝의 냄새가 워낙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1악장의 핵심 솔로를 알토 색소폰에 맡겼습니다.

여기엔 미국인 작곡가 로버트 러셀 베넷(Robert Russell Bennett)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 편곡의 대가였던 베넷에게 라흐마니노프가 어떤 음역의 색소폰을 써야 할지 물었고, 베넷은 알토 색소폰을 추천했습니다. 전해지는 일화가 재미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전화기에 대고 초고를 직접 연주해 들려줬고, 베넷은 수화기 너머로 그 소리를 들으며 빙긋 웃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마지막 거장이 브로드웨이 편곡가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한 장면. 그가 미국 음악 문화를 실제로 흡수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결과는 기막혔습니다. 1악장 중반, 금관과 타악기의 포격이 잦아드는 순간 알토 색소폰이 홀로 선율을 꺼냅니다. 이질적입니다. 낯섭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낯섦이 곡의 정체성을 만듭니다. ‘유럽도 러시아도 아닌, 미국에서 쓴 라흐마니노프’라는 느낌입니다. 망명 음악가의 어딘가 붕 뜬 정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소리입니다.

나머지 편성도 방대합니다. 피콜로부터 콘트라바순까지,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하프, 거기에 탐탐·실로폰·글로켄슈필·튜불러 벨까지 총출동합니다. 35분짜리 곡에 이 규모면 낭비처럼 보일 법도 합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한 음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모든 악기가 자기 차례에 딱 한 번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탐탐이 3악장 마지막에 울리는 그 한 방, 35분 만에 처음 터지는 소리입니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오케스트라 안에 피아노를 집어넣었습니다. 그것도 협주곡처럼 무대 앞에 세운 독주 피아노가 아니라, 현악·관악 사이에 섞여 색채를 더하는 한 악기로 쓴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던 사람이, 평생의 마지막 작품에서는 피아노를 주인공 자리에서 끌어내려 오케스트라의 일부로 녹여버렸습니다. 화려한 협주곡으로 세계를 휘어잡던 거장이 마지막엔 그 악기를 묵묵히 합주 속에 앉혀 둔 것입니다. 무대 한복판이 아니라 다 함께 어우러진 소리. 그 선택만으로도 이 곡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빌라 세나르 (스위스 루체른 호수), 라흐마니노프의 유럽 망명지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의 빌라 세나르. 라흐마니노프는 1939년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두 대의 피아노로 먼저 태어난 곡

교향적 무곡은 오케스트라 총보가 완성되기 전에 다른 모습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Op.45a)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40년 8월 10일 이 2대 피아노 판본을 먼저 끝낸 뒤, 9월부터 10월까지 관현악으로 옮겼습니다.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이 곡은 처음부터 두 건반 위에서 울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 2대 피아노 버전에는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따라옵니다. 1942년 8월,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의 한 사적인 모임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한 대를 맡고, 맞은편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앉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두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을 함께 친 겁니다.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예순아홉. 세상을 떠나기 불과 일곱 달 전이었습니다. 작곡가가 제 손으로 자신의 마지막 악보를 울린 마지막 순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실 라흐마니노프에게 두 대의 피아노는 낯선 매체가 아니었습니다. 청년 시절 이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1번(Op.5)과 2번(Op.17)이라는 걸작을 남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두 건반이 주고받는 풍성한 대화는 그의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화려한 협주곡으로 출발한 작곡가가 마지막 작품도 결국 두 대의 피아노에서 빚어냈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 인생이 묘하게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오늘날에도 이 2대 피아노 버전은 무대에서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넬손 괴르너의 연주, 다닐 트리포노프와 세르게이 바바얀의 2024년 음반이 대표적입니다. 관현악의 거대한 색채가 두 건반으로 압축되면 곡의 골격, 그러니까 리듬의 날카로움과 화성의 긴장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거든요. 오케스트라 버전을 먼저 들은 분이라면, 같은 곡이 두 대의 피아노로 어떻게 다르게 들리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큽니다.


Play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넬손 괴르너가 연주하는 2대 피아노 버전 교향적 무곡(발췌, medici.tv).

전쟁의 한복판에서 쓴 작별

이 곡이 태어난 1940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떠올려 보면 곡의 무게가 또 달라집니다. 유럽은 2차 세계대전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고향 러시아도, 그가 망명 시절을 보낸 유럽도 전쟁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던 옛 세계가 두 번째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1917년 혁명으로, 또 한 번은 전쟁으로.

이 무렵 라흐마니노프가 보인 행동도 곱씹어 볼 만합니다. 그는 1941년부터 미국에서 연 자선 연주회의 수익을 소련 적군(赤軍)의 전쟁 구호 기금으로 보냈습니다. 1942년 2월에는 한 연주회의 수익 전액을 적군 기금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자신은 볼셰비키 혁명에 쫓겨 조국을 등진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내쫓은 그 체제의 군대를 위해 돈을 보낸 셈인데, 그에게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침략당한 고향 땅을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떠나온 러시아를 향한 그 복잡한 사랑이, 같은 시기에 쓴 교향적 무곡의 마지막 정교회 선율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 시기에 노년의 망명 작곡가가 쓴 마지막 곡이 ‘정오’에서 시작해 ‘자정’을 지나 새벽의 부활 선율로 끝납니다. 어둠이 깊어지는 시대에, 그는 끝내 어둠으로 곡을 닫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성가를 부활의 성가로 덮어버린 그 마지막 선택은, 개인의 고백인 동시에 무너지는 세계를 향한 한 사람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끝으로 침묵했고, 1943년 봄 미국 비벌리힐스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악장별, 세 번의 무도

1악장 Non allegro, 스타카토가 만드는 긴장

시작부터 다릅니다. 첫 마디, 탁탁탁 끊기는 스타카토 코드가 리듬을 끌고 나옵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라흐마니노프와 정반대입니다. 각진 리듬, 날카로운 액센트,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박동. 프로코피예프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평이 나올 만합니다. 같은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음악 언어처럼 들립니다.

그러다 중반, 알토 색소폰 솔로가 등장합니다. 앞서 말한 바로 그 순간입니다. 색소폰 선율이 흘러나오는 동안 오케스트라 전체가 숨을 죽입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이전 어떤 작품에서도 쓴 적 없는 음색입니다. 예순일곱의 작곡가가 새 악기를 배우듯 낯선 소리를 악보 안에 들여놓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교향곡 1번 인용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한번 알고 나면, 다음 감상 때 귀가 저절로 그 지점에서 멈춥니다. 단조로 시작됐던 젊은 날의 실패가 장조로 돌아옵니다. 40년 묵은 화해의 손짓입니다.

2악장 Andante con moto — 어두워지는 왈츠

느린 왈츠입니다. 그런데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빈의 무도회장을 떠올리면 곤란합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스케치에 남긴 메모는 ‘황혼(Dusk)’. 빛이 빠져나가는 시간대의 음악입니다. 시작부터 음산한 금관의 짧은 팡파르가 왈츠를 가로막고, 그 사이로 춤은 마치 지금 추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추었던 무도를 안개 너머로 더듬는 것처럼 들립니다. 현재의 춤이 아니라 기억 속의 춤입니다.

중간에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름답지만 뭔가 불안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화성, 풀리지 않은 채 걸려 있는 느낌입니다. 이 악장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가장 아름다운 느린 악장’이라는 쪽과 ‘감상적이고 늘어진다’는 쪽. 어느 편이든 듣고 나면 무언가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 자체로 이미 성공한 음악입니다.

지휘자마다 이 악장의 빠르기가 다릅니다. 느리게 잡으면 우울함이 깊어지고, 빠르게 몰면 왈츠의 유희가 살아납니다. 아쉬케나지의 1982년 콘세르트헤보우 녹음이 추천 1순위로 꼽히는 건 바로 그 템포 선택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황혼을 얼마나 어둡게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3악장 Lento assai, Allegro vivace, Dies Irae와 할렐루야

자정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악장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시작은 느립니다. 무겁습니다. 곧 Allegro vivace, 폭발하듯 달려나갑니다. 악장 하나 안에서 템포가 극단으로 오르내립니다. 느린 구간이 빠른 구간의 긴장을 끌어올립니다. 한 곡 안의 격동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이 실제로 맞붙는 소리입니다.

중간에 Dies Irae가 나옵니다. ‘진노의 날’, 심판과 죽음을 뜻하는 중세 전례 선율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걸 평생 썼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교향곡 2번, 파가니니 랩소디까지. 죽음이라는 주제를 끝내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율이 마지막 작품에도 박혀 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임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데 3악장 끝에서 그 Dies Irae가 밀려납니다. 이번엔 자신의 철야기도(Op.37)에서 가져온 부활의 선율이 점점 커집니다. 1915년 모스크바에서 초연한 철야기도는 러시아 정교회 전례를 음악으로 옮긴 대곡인데, 그중 부활을 노래하는 선율이 죽음의 주제를 밀어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 승리의 지점에 손글씨로 ‘할렐루야’라고 써넣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강타를 내리치고 대형 징 같은 타악기 탐탐의 소리가 잦아들 때, 죽음의 주제는 이미 지워져 있습니다.

마지막 3분. 이 구간이 교향적 무곡 전체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춤곡이라기보다 고백이에요. 그 고백의 마지막 단어는 ‘할렐루야’였습니다.

악장 원래 부제 성격 핵심 장치
1악장 Non allegro 정오(Noon) 각진 스타카토 행진 알토 색소폰 솔로 · 교향곡 1번 인용(장조로 변형)
2악장 Andante con moto 황혼(Dusk) 불안한 느린 왈츠 해결되지 않는 화성 · 목관과 현의 대화
3악장 Lento assai → Allegro vivace 자정(Midnight) 느림과 폭발의 교차 Dies Irae 대 철야기도 부활 선율 · 악보 위 손글씨 ‘할렐루야’
하루의 세 시간대로 읽는 교향적 무곡의 구조.

첫 감상 전 필수 체크포인트

이 곡이 처음이라면, 세 가지만 기억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세요.

  • 1악장 중반, 색소폰 솔로를 찾을 것.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뚝 잠잠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거기서 낯선 선율 하나가 스며 나오는데, 알토 색소폰입니다. 교향악에 색소폰을 주인공으로 세운 작곡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처음엔 “이게 맞나?” 싶은 이질감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두 번째 들으면 바로 그 이질감이 이 곡의 정체성이라는 걸 눈치챕니다.
  • 3악장, 속도가 폭발하는 순간에 주목. 느리게 시작하다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지점. 여기가 이 곡의 심장입니다. 거기서 마지막까지 단숨에 내달립니다. 그 가속에 몸이 앞으로 쏠리는 감각, 한 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습니다.
  • 마지막 화음 뒤, 탐탐이 울리는 2~3초를 놓치지 말 것. 라흐마니노프가 악보에 손으로 써넣은 ‘할렐루야’. 그 의미가 소리로 들리는 순간입니다. 탐탐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절대 자리를 뜨지 마세요.

전체 연주 시간은 약 35~38분. 처음엔 길어 보여도 3악장 중반을 넘기면 어느새 끝나 있습니다. 한 번은 그냥 틀어 두고, 두 번째는 헤드폰을 끼고 집중해 보세요. 완전히 다른 곡이 귀에 꽂힙니다.

라흐마니노프 최후의 음악 — 지금도 연주되는 이유

교향적 무곡은 오랫동안 무시당한 곡입니다. 라흐마니노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나 3번에 가려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도 까다롭고, 처음 듣는 귀에도 만만찮은 곡이니까요. 작곡가가 살아 있을 때조차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1941년 초연 직후의 반응부터 미적지근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곡을 두고 라흐마니노프가 옛 양식에 머물러 있다고 적었고, 화려한 협주곡을 기대한 청중에게도 이 어두운 춤곡은 낯설었습니다. 작곡가가 가장 정성을 쏟은 마지막 작품이 오히려 가장 늦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 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휘자들이 이 곡을 재발견하기 시작한 겁니다. 20세기 러시아 오케스트라 음악의 정점을 논할 때 이 곡을 빼면 목록이 불완전하다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진짜 최고작’이라고 주장하는 음악학자도 늘고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 낫다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곡이 너무 정직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말년에 자신이 구시대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가 현대 음악을 이끌던 시대에, 혼자 낭만주의 선율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비판도 적잖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향적 무곡에서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뭐라 하든, 자기가 가진 전부를 쏟아부었습니다. 그 자세가 소리 안에서 들립니다.

한 가지 더. 발레가 되지 못한 이 곡은 작곡가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무대 위에서 춤을 추게 됐습니다. 1994년 피터 마틴스가 뉴욕 시티 발레를 위해 안무했고, 2017년에는 리암 스칼렛이 로열 발레를 위해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렸습니다. 처음부터 발레를 위해 구상됐지만 정작 라흐마니노프 생전엔 춤이 붙지 못한 곡. 반세기가 지나서야 무대 위에서 몸을 얻었습니다. 포킨이 조금만 더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지, 답 없는 궁금증만 남습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초상 — 라흐마니노프의 절친한 동료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미국 망명 시절 라흐마니노프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다. 1942년 두 사람은 2대 피아노 버전 교향적 무곡을 함께 연주했다.

망명지에서 쓴 러시아, 향수의 완성곡

1917년, 라흐마니노프는 잠깐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방 돌아올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잠깐’은 영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이 러시아를 통째로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귀족 지주 집안 출신인 그가 돌아갈 자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악으로 러시아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교향곡 3번(1936년)이 그 향수의 산물이었고, 교향적 무곡은 그 완결판입니다.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 작곡가다. 내 조국이 내 음악을 형성했다.” 미국 땅에서 쓴 마지막 작품인데, 그 안에 러시아 정교회 전례 선율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으니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1악장 스타카토 리듬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러시아 민속 무도의 박자가 얼핏 스칩니다. 3악장은 한술 더 뜹니다. 철야기도 선율을 대놓고 인용합니다. 정확히는 철야기도 Op.37의 아홉 번째 곡, 부활을 노래하는 ‘주여, 당신은 복되시나이다(Blagosloven yesi, Gospodi)’의 선율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5년 모스크바에서 초연한 이 철야기도를 자기 음악의 정점이자 러시아 정교회 전통의 결정체로 여겼습니다. 생의 마지막 작품에서, 죽음의 성가 Dies Irae를 누르고 끝내 승리하는 자리에 바로 그 부활의 선율을 앉혀 둔 겁니다. 미국 땅에서 쓴 곡의 가장 깊은 곳에 러시아 교회의 소리가 흐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가까운 이에게 철야기도의 다섯 번째 곡 ‘이제 떠나게 하소서’를 자기 장례식에서 불러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 떠남과 받아들임. 그 종교적 정서는 말년의 그를 줄곧 따라다녔고, 교향적 무곡은 그 정서가 음악으로 응결된 마지막 결정체였습니다.

이민자의 향수. 이 감정만큼 보편적인 것도 드뭅니다. 고향이 그립지만 돌아갈 수 없고, 기억 속 그곳은 이미 딴 세상이 되어 버린. 교향적 무곡을 들으면 바로 그 감정이 소리로 들린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청중이 러시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상실의 감각은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좋은 음악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마지막 3년, 그리고 작별

교향적 무곡을 끝낸 뒤 라흐마니노프에게는 3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새 작품에 쓰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무대로 돌아갔습니다. 미국 전역을 도는 빡빡한 연주 여행을 이어갔습니다. 망명 시절 그는 작곡이 아니라 피아니스트 활동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일흔을 앞둔 노인이 한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끝없이 이동하며 건반 앞에 앉았습니다.

그 강행군이 몸을 갉아먹었습니다. 1943년 초, 라흐마니노프는 미국 남부 순회 도중 건강이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진단은 진행성 흑색종이었습니다. 마지막 연주회는 그해 2월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1943년 3월 28일,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일흔 번째 생일을 나흘 앞둔 날이었죠. 교향적 무곡은 그가 남긴 마지막 음악적 유언이 됐고, 비벌리힐스는 불과 일곱 달 전 그가 호로비츠와 두 대의 피아노로 이 곡을 쳤던 바로 그 도시였습니다.

곡을 다시 들어 보면, 3악장 끝의 ‘할렐루야’가 단순한 음악적 장치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죽음을 평생 음악으로 응시해 온 사람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마디에서 그 죽음을 부활로 덮었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받아들임. 끝이 아니라 넘어감. 그가 떠난 뒤 들으면 그 한 마디의 무게가 또 달라집니다.

추천 녹음 세 장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1982, Decca)
지금도 가장 많이 추천되는 녹음입니다. 아쉬케나지 자신이 러시아 출신 망명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향수와 고립을 몸으로 겪어본 사람의 연주입니다. 2악장 왈츠 템포가 특히 좋은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딱 그 경계입니다. 이 곡이 처음이라면 여기서 출발하길 권합니다.

마리스 얀손스 /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3, EMI)
러시아 오케스트라 특유의 날것 에너지가 살아 있습니다. 3악장 속도 변화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세련미보다 야생을 원한다면 이 녹음입니다.

유진 오먼디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Columbia)
초연을 직접 지휘한 오먼디의 스튜디오 녹음입니다. 라흐마니노프에게서 이 곡의 의도를 직접 전해 들은 지휘자입니다. 음질은 요즘 녹음에 못 미치지만, 작곡가가 원한 소리에 가장 가까운 해석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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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적 무곡을 악보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영상입니다. B&H 공식 출판사 악보 영상.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교향적 무곡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인가요?

네, 교향적 무곡 Op.45는 라흐마니노프가 완성한 마지막 작품입니다. 1940년에 완성한 뒤 194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새 작품을 쓰지 않았습니다. 미국 체류 시절 완성한 유일한 전곡 관현악 작품이기도 합니다.

교향적 무곡 Op.45의 악장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3악장 구성입니다. 1악장 Non allegro(a단조), 2악장 Andante con moto(F장조), 3악장은 Lento assai로 시작해 Allegro vivace로 전환됩니다(a단조). 원래 각 악장에 ‘정오’, ‘황혼’, ‘자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으나 출판 시 삭제됐습니다. 전체 연주 시간은 약 35~40분입니다.

교향적 무곡은 어떤 오케스트라가 초연했나요?

1941년 1월 3일, 유진 오먼디 지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초연했습니다. 작품 역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헌정됐습니다. 오먼디가 직접 라흐마니노프에게 작곡을 권유하고, 1940년 여름 내내 편지로 소통하며 완성을 독려한 결과입니다.

라흐마니노프가 교향적 무곡에 Dies Irae를 넣은 이유가 뭔가요?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Dies Irae(죽음의 심판 주제)를 여러 작품에 인용했습니다. 파가니니 랩소디, 교향곡 2번 등이 대표적입니다. 죽음과 영원을 향한 그의 오랜 응시가 담겨 있습니다. 교향적 무곡 3악장에서는 Dies Irae가 자신의 철야기도(Op.37)에서 가져온 부활 선율과 정면충돌하는데, 마지막에는 부활 선율이 승리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 악보에 직접 ‘할렐루야’라고 써넣었습니다.

교향적 무곡에 두 대의 피아노 버전이 있다는데 어떤 곡인가요?

네, 라흐마니노프는 관현악 총보보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Op.45a)을 먼저 완성했습니다. 1942년 8월 비벌리힐스의 사적인 모임에서 작곡가 본인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함께 이 버전을 연주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오늘날에도 아르헤리치·괴르너, 트리포노프·바바얀 등 정상급 듀오가 즐겨 무대에 올립니다.

교향적 무곡이 교향곡과 다른 점이 뭔가요?

교향곡은 보통 4악장 구성에 소나타 형식 같은 엄격한 구조를 따릅니다. 반면 교향적 무곡은 3악장의 자유로운 형태로, 이름 그대로 춤(무곡)의 리듬감을 살린 장르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은 ‘교향악적 규모의 춤 음악’에 가깝지만, 막상 들으면 교향곡 못지않은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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