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교향적 무곡 Op.45

67세 망명자가 호로비츠에게 먼저 들려준 유언장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작품명
교향적 무곡 Op.45 (Symphonic Dances, Op. 45)
작곡 연도
1940년
조성
a단조 (A minor)
악장 구성
3악장
I. Non allegro (A minor)
II. Andante con moto (F major)
III. Lento assai , Allegro vivace (A minor)

1악장 빠르지 않게 (a단조)
2악장 조금 움직이며 (F장조)
3악장 매우 느리게, 활발하고 빠르게 (a단조)
편성
피콜로, 플루트 2,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알토 색소폰,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 탬버린, 소고, 심벌즈, 베이스드럼, 탐탐, 실로폰, 글로켄슈필, 튜불러 벨, 하프, 피아노, 현악 5부
초연
1941년 1월 3일, 유진 오먼디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헌정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
약 35~40분

1940년 8월,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저택 응접실. 피아노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67세. 맞은편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입니다. 라흐마니노프가 막 완성한 2대 피아노 편곡을 꺼냈고, 두 사람은 갓 태어난 이 곡을 처음으로 함께 연주했습니다.

청중은 없었어요. 공식 초연도 아니었죠. 하지만 그날 울린 곡이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후 3년을 더 살았지만, 작곡가로서 펜을 다시 들지 않았어요. 교향적 무곡 Op.45, 그의 고별사입니다. 다만 이 고별사에 평범한 인사말 따위는 없었죠. 화해와 공포와 승리, 한 생의 전부가 담긴 곡이니까요.

죽음 앞에서 쓴 마지막 곡, 작곡 배경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이 태어난 곳은 미국입니다. 러시아를 떠난 지 22년째인 1940년, 그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오처드포인트(Orchard Point)라는 저택에서 여름을 보냈어요. 롱아일랜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그 집에서 이 곡의 거의 전부가 완성됐죠.

처음 제목은 ‘판타스틱 댄스(Fantastic Dances)’였어요. 각 악장에 ‘정오(Noon)’, ‘황혼(Twilight)’, ‘자정(Midnight)’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죠. 하루의 세 시간대를 하나의 곡에 눌러 담으려 한 셈입니다. 부제들은 나중에 지워졌지만, 1악장이 빠른 낮의 에너지를, 2악장이 어스름한 왈츠를, 3악장이 자정의 어둠과 새벽을 담고 있다는 해석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어요. 악보 스케치에는 2악장 옆에 ‘dusk(황혼)’이라는 메모가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처음 권유한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 당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예요. 1940년 여름 내내 편지가 오갔고, 8월 말 라흐마니노프는 오먼디에게 “곡이 완성됐고 오케스트레이션만 남았다”고 알렸습니다. 총보에 찍힌 완성 날짜는 그해 9월과 10월이에요. 초연은 1941년 1월 3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오먼디의 지휘로 무대에 올렸고, 곡은 바로 그들에게 헌정됐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왜 마지막 에너지를 이 곡에 쏟아부었을까요? 단서가 하나 있어요. 1939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가 발레로 무대에 오르는 걸 직접 봤습니다. 자기 음악이 무용수의 몸을 타고 새 생명을 얻는 장면이었죠. 교향적 무곡 역시 처음부터 발레를 염두에 둔 곡입니다. 실제로 안무가 미셸 포킨(Michel Fokine)과 발레화를 논의했고, 포킨은 열정적으로 응했어요. 그러나 포킨이 1942년 8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 계획은 사라졌습니다.

더 오래된 이야기도 섞여 있습니다. 1914~15년, 라흐마니노프는 ‘스키타이인(The Scythians)’이라는 발레를 구상했지만 러시아를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겼어요. 그 소재 일부가 교향적 무곡에 녹아들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5년 전 버려진 스케치가 마지막 작품 안에서 되살아난 셈이에요. 라흐마니노프는 한번 쓴 음표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초상 (1921년경)
1921년경의 라흐마니노프.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연주자로 살아가던 시절의 모습이다.

자기 인용의 비밀, 숨겨놓은 메시지들

이 곡 곳곳에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다른 작품 선율이 숨어 있습니다. 단순한 셀프 오마주가 아니에요. 그가 어떤 감정으로 이 곡을 썼는지 읽어낼 수 있는 암호입니다.

1악장 끝부분,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교향곡 1번(1897년) 첫 주제를 짧게 인용합니다. 그냥 인용이 아닙니다. 원래 단조였던 선율이 장조로 바뀝니다. 교향곡 1번이 뭔지 알면 이 장면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처참한 실패작이었습니다. 초연이 끝난 뒤 평론가들은 ‘이 곡은 쓰레기’라고 썼고, 라흐마니노프는 그 충격으로 3년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을 정도입니다. 그 트라우마의 선율을 43년 후에 장조로 바꿔 다시 꺼낸 겁니다. 화해예요. 과거와의 화해.

교향곡 1번 초연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1897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이 처음 연주되는 날이었습니다. 지휘는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그런데 글라주노프가 술을 마신 상태로 무대에 섰다는 얘기가 있어요. 연주는 엉망이었고, 초연은 재앙이었습니다. 평론가 체사르 큐이는 “이 곡은 지옥에서 음악 레슨을 받은 악마가 보낸 작품”이라고 썼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날 이후 3년간 아무것도 쓰지 못했어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자기 신뢰를 완전히 잃었죠. 회복의 계기는 최면 치료였습니다. 그 처절했던 실패의 선율을 43년 후 교향적 무곡 1악장 끝에서 장조로 다시 꺼냅니다. 이번엔 제 박자에, 제 오케스트라와 함께. 복수도 부정도 아닌 화해였어요.

3악장에는 더 묵직한 인용이 기다립니다. ‘Dies Irae(죽음의 날)’와 ‘주여, 축복하소서(Blagosloven yesi, Gospodi)’. 두 전례 선율이 정면으로 충돌해요. Dies Irae는 라흐마니노프가 평생 집착하다시피 한 죽음의 주제입니다. 파가니니 랩소디, 피아노 협주곡 2번, 교향곡 2번 등 주요 작품 곳곳에서 이 선율이 얼굴을 내밉니다. 평론가들은 어린 시절 연이어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경험에서 이 집착이 비롯됐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의 누나와 친한 친구들이 유년 시절 잇달아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3악장 마지막에서 Dies Irae가 밀려납니다. 철야기도에서 가져온 부활의 선율이 점점 커져요. 라흐마니노프는 악보에 손글씨로 ‘할렐루야(Hallelujah)’라고 써넣었더군요.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강타를 내리치고 탐탐 소리가 잦아들 때, 죽음의 주제는 이미 지워져 있습니다.

이 곡이 단순한 오케스트라 춤곡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을 한 곡 안에 접어 넣었습니다. 젊은 날의 실패, 러시아에 두고 온 것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에 손을 내민 희망까지. 클래식 청중 사이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비밀 유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유진 오르만디 — 교향적 무곡 Op.45 초연 지휘자
유진 오르만디. 1941년 1월 3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교향적 무곡 Op.45 세계 초연을 이끌었다.

알토 색소폰이 왜 거기 있나, 편성의 역설

교향악 악보에서 알토 색소폰을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비제의 아를의 여인, 라벨의 볼레로 같은 작품에서 간간이 얼굴을 내밀지만, 색소폰은 본래 클래식 레퍼토리의 주변부 악기입니다. 재즈와 팝의 냄새가 너무 강합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1악장 핵심 솔로를 알토 색소폰에 맡겼습니다.

여기에 미국인 작곡가 로버트 러셀 베넷(Robert Russell Bennett)이 개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 편곡의 대가였던 베넷이 색소폰 사용을 권유했다는 겁니다. 라흐마니노프가 미국 음악 문화를 실제로 흡수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결과는 기막혔습니다. 1악장 중반, 금관과 타악기의 포격이 잦아드는 순간 알토 색소폰이 홀로 선율을 꺼냅니다. 이질적이죠. 낯설고. 그런데 바로 그 낯섦이 곡의 정체성을 만듭니다. ‘유럽도 러시아도 아닌, 미국에서 쓴 라흐마니노프’라는 느낌. 망명 음악가의 어딘가 붕 뜬 정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소리입니다.

나머지 편성도 방대합니다. 피콜로부터 콘트라바순까지,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하프, 피아노, 거기에 탐탐·실로폰·글로켄슈필·튜불러 벨까지 총출동합니다. 35분짜리 곡에 이 규모면 낭비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한 음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모든 악기가 자기 순간에 딱 한 번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탐탐이 3악장 마지막에 울리는 그 한 방, 35분을 기다린 끝에 터지는 소리입니다.

빌라 세나르 (스위스 루체른 호수), 라흐마니노프의 유럽 망명지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의 빌라 세나르. 라흐마니노프는 1939년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악장별, 세 번의 무도

1악장 Non allegro, 스타카토가 만드는 긴장

시작부터 다릅니다. 첫 마디, 탁탁탁 끊기는 스타카토 코드가 리듬을 끌고 나옵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라흐마니노프와 정반대. 각진 리듬, 날카로운 액센트,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박동입니다. 프로코피예프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평이 나올 만하죠. 같은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음악 언어처럼 들립니다.

그러다 중반, 알토 색소폰 솔로가 등장합니다. 앞서 말한 바로 그 순간이죠. 색소폰 선율이 흘러나오는 동안 오케스트라 전체가 숨을 죽입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이전 어떤 작품에서도 쓴 적 없는 음색입니다. 67세의 작곡가가 새 악기를 배우듯 낯선 소리를 악보 안에 들여놓은 셈입니다.

마지막에는 교향곡 1번 인용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알아채기 어렵죠. 하지만 그 자리를 한번 알고 나면, 다음 감상 때 귀가 저절로 그 지점에서 멈추더군요. 단조로 시작됐던 젊은 날의 실패가 장조로 돌아옵니다. 40년 묵은 화해의 손짓.

2악장 Andante con moto — 어두워지는 왈츠

느린 왈츠입니다. 그런데 전혀 가볍지 않죠. 빈의 무도회장을 떠올리면 곤란합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스케치에 남긴 메모는 ‘황혼(Dusk)’. 빛이 빠져나가는 시간대의 음악입니다.

중간에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름답지만 뭔가 불안하죠.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화성, 해결되지 않고 걸려 있는 느낌. 이 악장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가장 아름다운 느린 악장’이라는 쪽과 ‘감상적이고 느리다’는 쪽. 어느 편이든 듣고 나면 무언가 말하고 싶어지더군요. 그 자체로 이미 성공한 음악인 셈입니다.

지휘자마다 이 악장의 빠르기가 다릅니다. 느리게 잡으면 우울함이 깊어지고, 빠르게 몰면 왈츠의 유희가 살아나죠. 아쉬케나지의 1982년 콘세르트헤보우 녹음이 추천 1순위로 꼽히는 건 바로 그 템포 선택 때문이기도 합니다. 슈베트라노프는 같은 악장을 3분이나 더 느리게 끌고 갑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냐고요? 황혼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이니까요.

3악장 Lento assai, Allegro vivace, Dies Irae와 할렐루야

자정이에요. 라흐마니노프는 모든 카드를 이 악장에 걸었습니다.

시작은 느립니다. 무거워요. 곧 Allegro vivace, 폭발하듯 달려나가죠. 악장 하나 안에서 템포가 극단으로 오르내리거든요. 느린 구간이 빠른 구간의 긴장을 끌어올립니다. 한 곡 안의 격동이 아니에요. 삶과 죽음이 실제로 맞붙는 소리.

중간에 Dies Irae가 나옵니다. ‘진노의 날’, 심판과 죽음을 뜻하는 중세 전례 선율이에요. 라흐마니노프는 이걸 평생 썼거든요. 피아노 협주곡 2번, 교향곡 2번, 파가니니 랩소디까지. 죽음이라는 주제를 끝내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율이 마지막 작품에도 박혀 있어요. 이번이 마지막임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데 3악장 끝에서 그 Dies Irae가 밀려납니다. 철야기도에서 가져온 부활의 선율이 점점 커져요. 라흐마니노프는 악보에 손글씨로 ‘할렐루야’라고 써넣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강타를 내리치고 탐탐 소리가 잦아들 때, 죽음의 주제는 이미 지워져 있어요.

마지막 3분. 이 구간이 교향적 무곡 전체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춤곡이라기보다 고백이에요. 그 고백의 마지막 단어는 ‘할렐루야’였습니다.

첫 감상 전 필수 체크포인트

이 곡이 처음이라면, 세 가지만 기억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세요.

  • 1악장 중반, 색소폰 솔로를 찾을 것.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뚝 잠잠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거기서 낯선 선율 하나가 스며 나오는데, 알토 색소폰이에요. 교향악에 색소폰을 주인공으로 세운 작곡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처음엔 “이게 맞나?” 싶은 이질감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두 번째 들으면 바로 그 이질감이 이 곡의 정체성이라는 걸 눈치챕니다.
  • 3악장, 속도가 폭발하는 순간에 주목. 느리게 시작하다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지점. 여기가 이 곡의 심장입니다. 거기서 마지막까지 단숨에 내달리거든요. 그 가속에 몸이 앞으로 쏠리는 감각, 한 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습니다.
  • 마지막 화음 뒤, 탐탐이 울리는 2~3초를 놓치지 말 것. 라흐마니노프가 악보에 손으로 써넣은 ‘할렐루야’. 그 의미가 소리로 들리는 순간입니다. 탐탐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절대 자리를 뜨지 마세요.

전체 연주 시간은 약 35~38분. 처음엔 길어 보여도 3악장 중반을 넘기면 어느새 끝나 있습니다. 한 번은 그냥 틀어 두고, 두 번째는 헤드폰 끼고 집중하세요. 완전히 다른 곡이 귀에 꽂힙니다.

라흐마니노프 최후의 음악 — 지금도 연주되는 이유

교향적 무곡은 오랫동안 무시당한 곡입니다. 라흐마니노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나 3번에 가려 수십 년을 보냈거든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도 까다롭고, 처음 듣는 귀에도 만만찮은 곡이니까요. 작곡가가 살아 있을 때조차 반응은 미지근했더군요.

최근 20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지휘자들이 이 곡을 재발견하기 시작한 겁니다. 얀손스, 라틀, 위르겐스키, 페트렌코. 20세기 러시아 오케스트라 음악의 정점을 논할 때 이 곡을 빼면 목록이 불완전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더군요. ‘라흐마니노프의 진짜 최고작’이라고 주장하는 음악학자도 늘고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 낫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니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곡이 너무 정직하거든요. 라흐마니노프는 말년에 자신이 구시대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가 현대 음악을 이끌던 시대에, 혼자 낭만주의 선율을 고집한 셈이니까요. 비판도 적잖이 받았더군요. 그런데 교향적 무곡에서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겁니다. 시대가 뭐라 하든, 자기가 가진 전부를 쏟아부었으니까요. 그 자세가 소리 안에서 들리더군요.

한 가지 더. 이 곡은 발레로도 여러 번 무대에 올랐습니다. 1994년 피터 마틴스가 뉴욕 시티 발레를 위해 안무했고, 2017년에는 리암 스칼렛이 로열 발레를 위해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렸더군요. 발레를 위해 구상됐지만 발레가 되지 못한 곡. 8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무대 위에서 춤을 추게 된 셈입니다. 포킨이 살아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초상 — 라흐마니노프의 절친한 동료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미국 망명 시절 라흐마니노프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다. 두 사람은 롱아일랜드 인근에서 자주 만나며 교유했다.

망명지에서 쓴 러시아, 음악적 노스탤지어의 완성

1917년, 라흐마니노프는 잠깐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방 돌아올 거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그 ‘잠깐’은 영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이 러시아를 통째로 뒤집었으니까요. 귀족 지주 집안 출신인 그가 돌아갈 자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악으로 러시아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교향곡 3번(1936년)이 그 노스탤지어의 산물이었고, 교향적 무곡은 완결판인 셈입니다.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있거든요. “나는 러시아 음악가다. 내 조국이 내 음악을 형성했다.” 미국 땅에서 쓴 마지막 작품인데, 그 안에 러시아 정교회 전례 선율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으니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1악장 스타카토 리듬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러시아 민속 무도의 박자가 얼핏 스치거든요. 3악장은 한술 더 뜹니다. 철야기도 선율을 대놓고 인용하죠. 라흐마니노프는 1915년 모스크바에서 초연한 자신의 철야기도를 러시아 음악 전통의 결정체로 여겼습니다. 마지막 작품에서 그 소리를 다시 꺼내 든 까닭입니다.

이민자의 향수. 이 감정만큼 보편적인 것도 드뭅니다. 고향이 그립지만 돌아갈 수 없고, 기억 속 그곳은 이미 딴 세상이 되어 버린. 교향적 무곡을 들으면 바로 그 감정이 소리로 들린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청중이 러시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거든요. 상실의 감각은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좋은 음악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추천 녹음 세 장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1982, Decca)
지금도 가장 많이 추천되는 녹음입니다. 아쉬케나지 자신이 러시아 출신 망명 피아니스트였거든요. 라흐마니노프의 향수와 고립을 몸으로 아는 사람의 연주인 셈이죠. 콘세르트헤보우 특유의 홀 울림까지 더해져 세부가 하나하나 선명하게 잡히더군요. 2악장 왈츠 템포가 특히 기막힌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딱 그 경계. 이 곡이 처음이라면 여기서 출발하는 게 맞겠습니다.

마리스 얀손스 /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3, EMI)
얀손스의 두 녹음 중 첫 번째. 러시아 오케스트라 특유의 날것 에너지가 살아 있습니다. 3악장 속도 변화가 무서울 정도거든요. 예고 없이 처음 들으면 숨이 턱 막히더군요. 세련미보다 야생을 원한다면 이 녹음입니다.

유진 오먼디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1960, Columbia)
초연을 직접 지휘한 오먼디의 스튜디오 녹음입니다. 라흐마니노프에게서 이 곡의 의도를 직접 전해 들은 지휘자거든요. 음질은 요즘 녹음에 못 미치지만, 작곡가가 원한 소리에 가장 가까운 해석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초연 지휘자가 20년 뒤 같은 곡을 다시 녹음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이야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감상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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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Op.45 전곡 감상

악보와 함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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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적 무곡을 악보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영상입니다. B&H 공식 출판사 악보 영상.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교향적 무곡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인가요?

네, 교향적 무곡 Op.45는 라흐마니노프가 완성한 마지막 주요 작품입니다. 1940년에 완성한 뒤 194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새 작품을 쓰지 않았거든요. 미국 체류 시절 완성한 유일한 전곡 작품이기도 합니다.

교향적 무곡 Op.45의 악장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3악장 구성입니다. 1악장 Non allegro(a단조), 2악장 Andante con moto(F장조), 3악장은 Lento assai로 시작해 Allegro vivace로 전환됩니다(a단조). 원래 각 악장에 ‘정오’, ‘황혼’, ‘자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으나 출판 시 삭제됐고요. 전체 연주 시간은 약 35~40분입니다.

교향적 무곡은 어떤 오케스트라가 초연했나요?

1941년 1월 3일, 유진 오먼디 지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초연했습니다. 작품 역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헌정됐고요. 오먼디가 직접 라흐마니노프에게 작곡을 권유하고, 1940년 여름 내내 편지로 소통하며 완성을 독려한 결과입니다.

라흐마니노프가 교향적 무곡에 Dies Irae를 넣은 이유가 뭔가요?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Dies Irae(죽음의 심판 주제)를 여러 작품에 인용했습니다. 파가니니 랩소디, 교향곡 2번 등이 대표적이죠. 죽음과 영원에 대한 그의 오랜 집착이 담긴 셈입니다. 교향적 무곡 3악장에서는 Dies Irae가 자신의 철야기도에서 가져온 부활 선율과 정면충돌하는데, 마지막에는 부활 선율이 승리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 악보에 직접 ‘할렐루야’라고 써넣었거든요.

교향적 무곡이 교향곡과 다른 점이 뭔가요?

교향곡은 보통 4악장 구성에 소나타 형식 같은 엄격한 구조를 따릅니다. 반면 교향적 무곡은 3악장의 자유로운 형태로, 이름 그대로 춤(무곡)의 리듬감을 살린 장르이고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은 ‘교향악적 규모의 춤 음악’에 가깝지만, 막상 들으면 교향곡 못지않은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초연 당시 일부 청중이 “이게 교향곡 아닌가?”라고 반응했을 정도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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