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54

아버지와 법정까지 싸운 사랑의 첫 음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
곡명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54
(Piano Concerto in A minor, Op. 54)
작곡
1841–1845
초연
1846년 1월 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조성
a단조
편성
피아노 독주,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악장 구성
3악장
I. Allegro affettuoso (a단조)
II. Intermezzo: Andantino grazioso (F장조)
III. Allegro vivace (A장조)

1악장. 애정을 담아 빠르게
2악장. 간주곡: 조금 느리고 우아하게
3악장. 활기차고 빠르게
연주 시간
약 31분

1836년 봄, 라이프치히의 어느 연습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은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더군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거든요. 당대 최고의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의 제자로 들어가 하루에 여섯 시간씩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진도가 더뎠죠. 네 번째 손가락만 유독 독립적으로 움직이질 않았네요. 슈만은 직접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한 손가락씩 개별적으로 강화하는 기계였죠. 나머지 손가락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해두고, 네 번째 손가락만 강제로 반복 운동을 시켰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셈입니다. 힘줄이 손상됐거든요. 영구적으로.

연주자의 꿈이 그렇게 끝난 겁니다. 스물두 살 이후로 슈만은 다시는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동급생들이 유럽 무대를 누비는 동안, 슈만은 악보지와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신 글을 썼죠. 「음악 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라는 음악 저널을 창간해 평론가로 이름을 알렸겠네요. 쇼팽을 처음 발견한 것도, 브람스를 세상에 소개한 것도 슈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서진 손가락에서, 훗날 낭만주의 피아노 문학의 정점이 될 협주곡이 태어납니다. 정작 본인은 무대에서 연주할 수 없는 협주곡. 그 협주곡이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음악을 들을 때 전혀 다른 것이 들릴 겁니다.

로베르트 슈만 다게레오타입 (1850, 작가 미상) — 피아니스트의 꿈이 꺾인 뒤 작곡가로 남은 얼굴입니다.
로베르트 슈만 다게레오타입 (1850, 작가 미상) — 피아니스트의 꿈이 꺾인 뒤 작곡가로 남은 얼굴입니다.

클라라를 향한 싸움 — 아버지와의 법정 전쟁

슈만이 피아니스트 꿈을 접고 작곡에 집중하던 무렵, 그의 삶에 또 하나의 전선이 열렸는군요. 스승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 클라라 비크(Clara Wieck)와 사랑에 빠진 거죠.

클라라는 신동이었습니다. 아홉 살에 첫 연주회를 열었고, 열두 살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무대에 섰습니다. 열여섯에 이미 유럽 전역을 순회 연주 여행으로 돌았으니까요. 빈의 청중들은 그녀에게 황실 연주자 칭호를 헌정했기도 합니다. 파리에서 쇼팽은 그녀의 연주를 듣고 “이보다 더 나은 해석을 찾기 어렵다”고 했죠.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는 딸의 커리어에 인생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직접 가르치고, 투어를 기획하고, 평단에 홍보했거든요. 클라라는 비크의 작품이자, 비크의 수입원이자, 비크의 자존심이었던 셈이죠.

클라라 슈만 초상 (1853경, 작가 미상) — 이 협주곡의 초연자이자 평생의 수호자였습니다.
클라라 슈만 초상 (1853경, 작가 미상) — 이 협주곡의 초연자이자 평생의 수호자였습니다.

그 딸이 손가락을 망가뜨린 전 제자와 결혼하겠다고 한 겁니다.

비크의 반응은 맹렬했이랄까요. 단순한 반대가 아니었어요. 조직적인 훼방이었죠.

슈만을 알코올중독자로 소문냈습니다. 재정 능력이 부족하다고도 했더군요.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로채고, 두 사람의 만남을 물리적으로 막았습니다. 클라라를 데리고 드레스덴으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더군요. 슈만이 라이프치히에 있으면 클라라는 다른 도시에 있는 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비밀 편지를 주고받았네요. 중간에서 전달해줄 믿을 만한 사람들을 통해서요. 클라라는 이 시기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마음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슈만은 편지마다 클라라에게 피아노 소품을 써 보냈셈입니다. 「클라라에게 바치는 로망스」, 「클라라 테마에 의한 즉흥 변주곡」. 연주를 대신한 사랑 고백이었던 거예요.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은 건반 앞에 앉을 수 없었지만, 클라라에게만큼은 음표로 말할 수 있었으니까요.

1839년, 슈만은 결국 법원에 소장을 제출합니다. 성인인 클라라가 아버지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락해 달라는 청구였죠. 당시 독일법상 여성은 성인이 되어도 결혼에 아버지 동의가 필요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법 조항이 비크에게 유리했던 겁니다.

비크는 법정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슈만의 알코올 남용 증거를 제출하려 했고, 재정 무능력을 입증하려고도 했더군요. 그러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죠. 비크가 법정에서 한 발언 중 일부는 너무 과격해서 판사에게 되려 역효과를 냈습니다. 아버지의 집착이 법정에서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죠.

1840년 8월 1일, 법원은 클라라·로베르트 편을 들었습니다.

한 달 반 뒤, 1840년 9월 12일. 클라라의 스물한 번째 생일 전날, 두 사람은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네요. 하객은 극소수. 비크는 오지 않았습니다. 예식 다음 날 클라라는 일기에 단 한 줄을 남겼죠. “오늘부터 새 삶이 시작됩니다.”

에두아르트 카이저, 로베르트·클라라 슈만 (1847) — 법정 싸움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의 시대 초상입니다.
에두아르트 카이저, 로베르트·클라라 슈만 (1847) — 법정 싸움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의 시대 초상입니다.

그 이듬해, 슈만은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협주곡의 핵심 악장을 써냅니다.

4일 만에 쓴 악장 — 그 안에 숨겨진 이름

1841년 5월, 슈만은 나흘 동안 악보지에 붙어 있었습니다.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단일 악장짜리 판타지(Phantasie in A minor)가 완성됐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었지만, 아직 협주곡은 아니었셈입니다. 슈만은 클라라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을 위해 썼어요. 당신이 아니면 이 음악이 세상에서 들릴 방법이 없으니까요.” 직접 연주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것이 슈만의 현실이었습니다.

클라라가 같은 해 8월 13일에 이 악장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무대에서 초연했겠네요. 반응이 좋았죠. 그러나 슈만은 이 곡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단악장짜리 협주적 판타지. 너무 짧고, 너무 고립되어 있었으니까요.

4년이 지난 1845년, 슈만은 그 판타지를 꺼냅니다. 인터메조(Intermezzo)를 2악장으로, 알레그로 비바체(Allegro vivace)를 3악장으로 덧붙였는군요. 피아노 협주곡 a단조(Piano Concerto in A minor) Op. 54가 완성된 순간이죠. 1악장과 2·3악장 사이의 4년 격차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 악장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같은 테마가 세 악장을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협주곡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1악장의 첫 주제 선율에서 피아노가 쳐내는 음들을 독일 음명으로 읽으면 C-H-A가 됩니다. 독일 음악 표기법에서 B♭은 ‘B’라 쓰고 B♮는 ‘H’라 쓰거든요. 그 C-H-A는 이탈리아어 ‘CHiArA’, 즉 ‘클라라’의 시적 약자입니다. 슈만이 아내의 이름을 협주곡 첫 음표에 암호처럼 새겨 넣은 거죠. 음악학자들이 나중에 밝혀낸 사실이지만, 슈만이 의도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그는 평생 이런 방식으로 음악에 비밀 메시지를 남겼거든요. 「다비드 동맹 무곡집」에서는 자신을 두 가상 인물(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로 분열시켰고, 「카니발」에서는 음악적 암호로 전 연인의 고향 이름(ASCH)을 새겼기도 합니다. 이번엔 클라라였던 겁니다.

악보에 사랑을 암호로 새기는 사람. 그것이 슈만이었습니다.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자필 악보 파시밀리 — C-H-A 테마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자필 악보 파시밀리 — C-H-A 테마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연의 밤 — 멘델스존 앞에서, 게반트하우스에서

1845년 12월 4일, 드레스덴. 완성된 3악장 협주곡의 세계 초연이 열렸이랄까요. 클라라가 솔리스트였고, 슈만의 절친한 동료 페르디난트 힐러(Ferdinand Hiller)가 지휘봉을 잡았죠. 성공이었습니다. 청중들은 열정적으로 반응했고, 비평가들도 호의적인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진짜 역사적인 공연은 한 달 뒤였더군요.

1846년 1월 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지휘자는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이었습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유럽 최정상 앙상블로 키운 주인공이 직접 지휘봉을 든 거죠. 솔리스트는 역시 클라라. 게반트하우스는 슈만이 1841년 이 곡의 1악장을 처음 세상에 내놨던 바로 그 무대였습니다. 이제 완전한 협주곡으로 돌아온 겁니다.

🎵 첫 번째 추천: 마르타 아르헤리치 · 리카르도 샤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위의 플레이어에서 감상하실 수 있네요.

펠릭스 멘델스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수채화 (1836) — 이 협주곡이 다시 울려 퍼진 역사적 무대입니다.
펠릭스 멘델스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수채화 (1836) — 이 협주곡이 다시 울려 퍼진 역사적 무대입니다.

당시 청중들에게 이 협주곡은 낯선 음악이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당연히 피아노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리스트가 그랬고, 칼크브렌너가 그랬습니다. 반짝이는 피아노 기교가 앞에 서고, 오케스트라는 뒤에서 받쳐주는 구조였죠. 청중들은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높이 뛰어오르는지를 보러 온 겁니다.

슈만의 협주곡은 달랐셈입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화를 나누거든요. 1악장 첫 소절부터 오케스트라가 테마를 던지면, 피아노가 받아서 변형합니다. 물론 피아노만의 화려한 카덴차 구간도 있습니다만, 그것조차도 오케스트라와의 대화 안에 위치하죠. 2악장에서는 현악기들이 속삭이는 사이로 피아노가 조용히 고백합니다. 3악장에서야 비로소 피아노가 자신감 있게 앞으로 나서지만, 오케스트라는 끝까지 대등한 목소리를 유지합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악기처럼 움직인다.” 당시 한 비평이 이렇게 썼더군요. 최고의 찬사였죠.

이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배경음악이 아닙니다. 피아노가 말하면 오케스트라가 답하고, 오케스트라가 문제를 제기하면 피아노가 풀어내는 구조이죠. 슈만은 자신이 연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클라라 혼자가 아닌 클라라와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음악을 썼습니다. 피아니스트를 영웅으로 만드는 곡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영웅인 곡을. 스스로 손가락을 잃었기에 오히려 오케스트라 전체와 대화하는 음악을 쓸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브람스의 방문, 그리고 강 위의 밤

1853년 10월, 뒤셀도르프의 슈만 자택에 스물 살짜리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아무런 연줄도 없었네요. 그냥 악보를 들고 문을 두드린 거죠. 슈만은 첫 소절부터 알아봤습니다. “클라라, 와서 이것 좀 들어봐.” 클라라도 알아봤죠.

며칠 뒤, 슈만은 자신이 편집장이었던 음악저널 『노이에 차이트슈리프트 퓌어 무지크(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글을 썼습니다. 10년 넘게 붓을 놓았다가 다시 든 글이었죠. 제목은 「새로운 길들(Neue Bahnen)」. “우리가 기다리던 천재가 왔다. 이 청년 브람스를 주목하라.” 그렇게 썼셈입니다. 브람스는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졌습니다. 그 한 편의 글이 청년 작곡가의 경력을 바꿔놓은 거죠.

그러나 슈만 자신의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환청이 들렸겠네요. 귀에서 A음이 끊임없이 울렸거든요. 밤마다 악보에서 천사들이 들려주는 선율을 받아 적었다고 일기에 썼습니다. 그러다 악마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죠. 슈만은 자신이 스케르초 악장을 쓰려고 앉았다가, 한 시간 뒤에 정신을 차려보면 악보가 비어 있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클라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봤는군요. 아이들이 아버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도 감당해야 했죠.

1854년 2월 27일 저녁, 슈만은 집을 나왔습니다. 슬리퍼 차림이었습니다. 라인강 다리 위에서 강물로 뛰어내렸기도 합니다. 뱃사람들이 건져냈죠.

1주일 뒤, 슈만은 본(Bonn) 외곽 엔데니히(Endenich)의 사립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을 요청합니다.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엔데니히에서의 2년, 그는 바이올린을 켜거나 작은 피아노 소품을 쓰다가, 나중에는 악보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1856년 7월 28일. 향년 46세.

클라라는 남편이 입원한 2년 동안 면회를 금지당했이랄까요. 의사들이 결정한 일이었거든요.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로베르트를 만난 건 그가 사망하기 이틀 전이었더군요. 무슨 말을 나눴는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브람스는 슈만 사망 후에도 클라라 옆에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40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았고, 브람스는 클라라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로 남았죠.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그토록 오래 완성되지 않은 것도, 슈만의 유산을 의식한 때문이었다고 연구자들은 말합니다.

그 후로 40년 동안, 클라라는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계속 연주했네요. 남편이 사망하고도, 눈이 나빠지고도, 손이 굳어가고도. 1896년 마지막 공개 연주까지. 악보에 암호로 새겨진 이름의 주인이, 그 이름이 새겨진 악보를 무대 위에서 평생 울렸던 겁니다.

이 지점에서 이 곡은 단순한 레퍼토리를 넘어섭니다. 하나의 결혼, 하나의 생애, 하나의 상실이 통째로 묶인 음악이 되는 거죠. 그래서 같은 음표라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바뀝니다. 어떤 연주는 1악장의 긴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어떤 연주는 2악장의 친밀함을 중심에 놓죠. 어떤 연주는 3악장을 환희로 끝내고, 어떤 연주는 마지막까지 그림자를 남깁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곡의 힘은 정답이 없다는 데 있는 거죠.

클래식 입문자에게 이 작품이 좋은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단순히 “유명한 곡”이어서가 아니에요. 음악 뒤에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죠. 손가락을 잃은 청년, 딸을 놓지 않으려던 아버지, 법정에서 사랑을 지켜낸 두 연인, 그리고 마지막까지 무대에 올라 남편의 음악을 지킨 연주자. 이 이야기들을 알고 들으면 선율이 정보가 아니라 감정으로 들립니다.

만약 슈만의 세계를 더 넓게 듣고 싶다면, 같은 낭만주의의 결을 가진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도 함께 들어보세요. 사랑과 상실, 내면의 떨림을 음표로 바꾼 방식이 서로 다르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거든요.

그리고 다음에 이 협주곡을 다시 들을 때는, 첫 30초만 집중해서 들어보세요. 오케스트라가 던지는 질문이 있고, 피아노가 답하는 순간이 있셈입니다. 그 짧은 30초 안에 이 작품의 거의 모든 운명이 들어 있거든요. 그다음 2악장을 들으면, 왜 이 협주곡이 평생의 동반자처럼 느껴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음악이 설명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습니다. 오래 남죠.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따라가며 들을 수 있는 영상.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54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처음 들어도 즐길 수 있나요?

충분히 즐길 수 있더군요.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2악장부터 듣는 거예요. 약 5분짜리 이 악장은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분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죠.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알고 들으면 음악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1악장 첫 테마가 나올 때 ‘C-H-A, 즉 클라라’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이야기처럼 들리기 시작하거든요.

Op. 54에서 ‘Op. 54’는 무슨 뜻인가요?

‘Op.’는 작품번호를 뜻하는 라틴어 ‘opus’의 약자입니다. 슈만이 공식 출판한 54번째 작품이라는 뜻이죠. 다만 작품번호 순서가 작곡 순서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이 협주곡의 1악장은 1841년에 썼지만, 2·3악장을 추가하고 완전한 협주곡으로 출판한 것은 1846년이거든요. 출판 계약 시점에 번호를 매기기 때문에, 작품번호가 높다고 반드시 나중 작곡작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클라라 슈만이 왜 이 협주곡과 특별히 연결되나요?

이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라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거든요. 1악장의 C-H-A 암호는 클라라의 이름이고, 세계 초연도 클라라가 솔리스트였네요. 로베르트가 사망한 뒤에도 클라라는 이 곡을 약 40년 동안 계속 무대에서 연주했죠. 낭만주의 음악 역사에서 한 작품이 이토록 한 연주자와, 그토록 개인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얽혀 있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클라라는 연주하면서 무엇을 들었을까요. 그 질문을 품고 음악을 들으면, 소리가 달리 들립니다.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원래 단악장 곡으로 구상되었나요?

슈만은 1841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을 먼저 작곡했으며, 이것이 협주곡의 1악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4년이 지난 1845년에 2악장과 3악장을 추가하여 현재의 3악장 구성의 협주곡 a단조, Op.54를 완성했셈입니다.

이 협주곡의 초연은 누가, 언제 했나요?

이 협주곡은 작곡가의 아내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이 1845년 12월 4일 드레스덴에서 초연했습니다. 슈만은 오직 클라라만이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위해 이 작품을 썼습니다.

슈만 피아노 협주곡의 전체 연주 시간과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이 협주곡은 총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연주 시간은 약 30분에서 32분 정도 소요됩니다. 1악장 알레그로 아페투오소, 2악장 인테르메초, 그리고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로 구성되어 유기적인 흐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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