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곡명
- 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C장조, Op.56 《삼중 협주곡》
(Concerto for Violin, Cello and Piano in C major) - 작곡 기간
- 1803 ~ 1804년
- 출판
- 1807년 (헌정: 로프코비츠 공작)
- 악장
- 3악장
I. Allegro (C장조)
II. Largo (A♭장조) — 쉼 없이 이어짐
III. Rondo alla polacca (C장조)
1악장. 빠르게
2악장. 느리고 넓게
3악장. 폴로네즈풍 론도 - 편성
- 독주 바이올린·첼로 +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 초연
- 1808년 5월, 빈 아우가르텐 여름 음악회
- 연주 시간
- 약 37분
베토벤은 이 협주곡의 피아노 파트를 일부러 헐렁하게 비워뒀습니다. 세 명의 독주자가 나란히 무대에 서는데, 유독 건반 앞에 앉은 사람만 두 현악기 주자보다 손가락이 훨씬 한가하거든요. 이 기묘한 불균형을 두고 오래도록 정설처럼 굳어진 설명은 이렇습니다 — 열다섯 살 황족 제자가 연주할 수 있도록 베토벤이 대놓고 난이도를 봐줬다는 것.
그런데 정작 1807년에 출판된 악보를 들춰보면 상황이 아주 묘해집니다. 정작 그 황족은 온데간데없고 전혀 다른 귀족의 이름이 헌정자로 떡하니 박혀 있거든요. 게다가 문제의 제자가 이 곡을 무대에서 한 번이라도 연주했다는 기록조차 역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봐준 협주곡’ 이야기는 대체 누가 지어낸 걸까요?

‘황족을 위해 봐준 곡’이라는 소문은 누가 퍼뜨렸나
이 이야기의 출처는 베토벤의 말년 비서이자 최초로 본격적인 전기를 남긴 안톤 신틀러입니다. 신틀러의 설명에 따르면, 베토벤은 자신의 피아노 제자였던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공이 무대 위에서 빛나되 연주하느라 너무 고생하지는 않도록 건반 파트를 세심하게 다듬었죠. 능숙한 현악 거장 두 명이 옆에서 잘 받쳐주면, 솜씨가 조금 덜 여문 황족이라도 충분히 화려하게 들릴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겁니다.
꽤나 깔끔하고 인간적인 데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만큼 외우기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기막힌 증언을 역사책에 그대로 받아 적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죠. 안타깝게도 증인 신틀러가 도무지 믿을 만한 위인이 못 된다는 사실입니다.
말년의 베토벤은 거의 완전히 귀가 멀어 사람들과 주로 글로 대화를 나눠야만 했습니다. 상대방이 종이에 질문을 적어 밀어주면, 베토벤이 입으로 답을 하는 식이었거든요.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대화 수첩’만 무려 수백 권에 달합니다. 그런데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 이 엄청난 귀중한 사료 뭉치를 통째로 손에 쥔 사람이 하필이면 신틀러였어요.
문제는 신틀러가 그 수첩에 은슬쩍 손을 댔다는 겁니다. 훗날 학자들이 잉크 성분과 필체를 낱낱이 분석해 보니, 신틀러가 베토벤 사후에 가짜 대화를 직접 쓱쓱 끼워 넣은 정황이 덜미를 잡히고 말았죠. 자신을 작곡가의 둘도 없는 충직한 측근으로 포장하고, 베토벤을 자기 입맛에 딱 맞는 고결한 영웅으로 박제하려는 얄팍한 의도였습니다. 1차 사료를 대놓고 위조한 인물의 회고록인 셈이니, 거기 적힌 ‘대공을 위해 썼다’는 그 한 줄 역시 곧이곧대로 믿기엔 영 께름칙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신틀러의 위조는 고작 한두 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토벤을 오로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초상에 맞춰 다듬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작곡가의 인간적인 면이나 불편한 사실들은 슬쩍 지워냈거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늘날 음악학자들은 신틀러의 전기를 펼칠 때면 일단 한 줄 한 줄 다른 사료와 대조하며 의심부터 하고 봅니다. ‘대공을 위한 곡’이라는 이야기 역시 정확히 그런 의심의 대상입니다.
물론 루돌프 대공이 베토벤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였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평생 가장 아낀 제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였으니까요. 실제로 베토벤은 훗날 〈황제〉 협주곡, 〈대공〉 트리오, 장엄미사까지 굵직한 대작들을 이 대공에게 헌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삼중 협주곡의 구상 단계 어딘가에서 대공이 아른거렸을 가능성을 무 자르듯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머릿속 ‘구상의 어른거림’과 난이도를 ‘봐준 곡’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반박 증거는 바로 헌정과 기록이거든요. 1807년 세상에 나온 악보 첫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사람은 루돌프 대공이 아니라 로프코비츠 공작이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영웅〉을 사들여 자기 저택에서 가장 먼저 울리게 했던 바로 그 귀족 말입니다. 만약 이 곡이 정말 대공을 위해 태어난 맞춤형 작품이었다면, 헌정장에 다른 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힐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루돌프 대공이 이 협주곡을 직접 연주했다는 동시대의 증거 역시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봐준 곡’의 진짜 주인공이라면서, 정작 그 주인공이 곡을 무대에서 연주한 흔적은 아예 증발해버린 겁니다. 결국 신틀러의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그럴듯한 전설일 뿐, 명백한 사실로 못 박기에는 그 뼈대가 너무나도 앙상합니다.

피아노가 쉬운 건 약점이 아니라 설계였습니다
자, 여기서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 판을 들여다보면 아주 흥미로운 역전극이 펼쳐집니다. 베토벤이 피아노 파트를 일부러 시시하게 못 치게 만든 게 아니라는 거죠. 그는 피아노를 주연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한 발 물러서게 만든 겁니다.
이 곡은 겉보기에 협주곡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속내를 까보면 다릅니다. 무대 한가운데에 바이올린·첼로·피아노로 뭉친 피아노 삼중주 세 사람이 한 팀으로 서고, 오케스트라가 그 팀을 둥글게 에워싸거든요. 보통의 협주곡이 독주자 한 명과 오케스트라의 일대일 대결이라면, 이 곡은 작은 실내악 팀이 거대한 관현악과 맞붙는 기발한 구도입니다. 그러니 세 독주자 사이의 팽팽한 균형이야말로 이 곡의 생사를 가르는 열쇠입니다.
만약 피아노마저 두 현악기처럼 화려하게 무대를 휘저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 개의 고음 선율이 앞다투어 허공을 긁어대다 못해 아예 소리의 질감 자체가 엉망으로 꼬여버릴 겁니다. 본래 바이올린과 첼로는 호흡을 길게 끌고 가는 유려한 노래에 강한 반면, 피아노는 건반을 때린 직후 금세 소리가 사그라지는 타악기적 성질을 가졌거든요. 이토록 태생부터 성격이 딴판인 셋을 똑같은 비중으로 무대 맨 앞에 세워두면, 결국 그 누구의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맙니다.
이 불상사를 막기 위해 베토벤이 내린 처방은 건반에게 기꺼이 ‘받쳐주는 역할’을 쥐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가 묵묵히 화음을 깔아 흐름을 단단히 묶어내면, 그 위로 두 현악기가 마음껏 뛰놀 무대가 반듯하게 닦이는 셈이죠. 때때로 눈부신 음형을 뽐내며 허공으로 불쑥 솟구치기도 하지만, 피아노의 기본 지정석은 언제나 두 현악기의 등 뒤입니다. 그러니까 파트가 단순해서 약한 게 아니라, 오직 단순해야만 곡 전체의 생태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고도의 전략적인 자리인 겁니다.
이런 낯선 형식에도 사실 나름의 족보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윗세대가 한창 즐기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즉 여러 독주자가 함께 나서는 협주 양식이 그 출발점이죠. 시곗바늘을 더 뒤로 돌려보면 조그만 독주 그룹과 거대한 합주단이 소리를 주고받던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이라는 옛 전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이전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가 독주자들이 번갈아 가며 솜씨를 뽐내는 데 무게가 실렸다면,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거기서 훌쩍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세 사람을 제각각 뽐내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아예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단단한 팀으로 묶어버렸거든요. 베토벤이 여러 독주자를 위한 협주곡을 쓴 건 평생을 통틀어 이 작품 한 곡뿐이며, 첼로를 독주로 세운 협주곡 역시 오직 이 곡이 유일합니다.
곡의 뼈대가 되는 조성을 C장조로 골라잡은 대목도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C장조는 가장 꾸밈없이 환한 조성이자, 어설픈 기교 따위는 숨을 곳조차 허락하지 않는 투명한 빛과도 같은 자리거든요. 운명에 맞서는 영웅적인 비장미를 뿜어내던 c단조 계열의 숱한 베토벤 명곡들을 떠올려보면, 이건 완전히 정반대 차선에서 시동을 건 셈입니다. 핏대 세우는 화려한 갈등 대신, 우리 한 번 맑고 깨끗하게 합의를 보자는 평화로운 선언처럼 들리기도 하죠.
황족 제자를 위해 봐줬다는 그 전설은, 어쩌면 베토벤의 이 영리한 설계를 완전히 거꾸로 읽어낸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쉬운 피아노 파트라는 결과물만 보고 ‘실력 없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단숨에 짐작한 거니까요. 하지만 그 같은 단순함이야말로 곡 전체로 줌아웃해서 바라보면 가장 치열하게 머리를 굴린 선택이었습니다.
이 곡의 진짜 주인공은 첼로입니다
피아노가 스스로 한 발 물러선 그 빈 무대의 한가운데를 당당하게 꿰차는 진짜 주인공은 첼로입니다. 세 악장을 통틀어 첫 번째 주제를 가장 먼저 스윽 꺼내 드는 악기가 다름 아닌 첼로거든요. 새로운 악장의 막이 오를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술렁임을 뚫고 맨 처음 입을 떼는 목소리가 바로 첼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첼로에게 주어지는 자리가 푹신하고 편안하냐 하면 전혀 아닙니다. 베토벤은 첼로의 멱살을 쥐고 자꾸만 아슬아슬한 고음역으로 끄집어 올립니다. 첼로가 매끄러운 테너처럼, 때로는 거의 바이올린 흉내를 내듯 노래하게 만들죠. 그저 바닥에 깔리는 낮고 묵직한 소리로만 대접받던 악기를 무대 맨 앞, 조명이 가장 눈부시게 쏟아지는 정중앙에 세워버린 겁니다. 덕분에 이 곡의 첼로 파트는 세 독주자 몫을 통틀어 가장 까다롭고, 지금까지도 내로라하는 첼리스트들 사이에서 혀를 내두르는 난곡으로 통합니다. 베토벤이 첼로에 본격적인 고난도 기교를 대놓고 요구한 것도 이 곡이 처음이었고요.
바로 이 지점에서 전설의 균열이 한층 쩍쩍 갈라집니다. 솜씨 덜 여문 어린 황족을 배려하려 곡을 다듬었다는 작곡가가, 정작 첼로에게는 레퍼토리 사상 최고 난도의 살벌한 짐을 냅다 떠안긴 꼴이니까요. 누군가를 봐주려면 공평하게 다 같이 봐줘야 앞뒤가 맞는데, 유독 첼로 혼자만 땀을 뻘뻘 흘리며 죽도록 굴리는 겁니다. 이건 ‘아마추어를 위한 협주곡’이 아니라 ‘진짜 명인을 곁에 둔 협주곡’에 훨씬 가깝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도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빈에는 크라프트 가문이라는 걸출한 첼로 명인들이 버티고 있었거든요. 아버지 안톤 크라프트는 하이든이 아끼던 첼리스트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과도 인연이 꽤 깊은 인물이었습니다. 베토벤 곁에 이 정도 수준의 첼리스트가 실재했기에, 그 어려운 첼로 파트도 단순히 오선지 위의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울리는 음악이 될 수 있었던 거죠.

세 악장, 첼로를 따라가며 듣기
겹겹이 쌓인 전설을 한 꺼풀 걷어내고 나면, 우리 눈앞에 오롯이 남는 건 결국 음악 그 자체입니다. 이제 세 악장을 첼로의 동선을 바짝 쫓아가며 듣다 보면, 왜 이 작품이 누군가를 슬쩍 ‘봐준 곡’이 아니라 정교하게 짜인 합주극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될 겁니다.
1악장 Allegro — 작게 시작해 크게 번지는 문
1악장은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조용하게 문을 엽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바닥에 낮게 첫 주제를 읊조리면, 오케스트라가 그걸 낚아채 점점 부풀려 나가거든요. 평소의 베토벤 1악장치고는 폭발 타이밍이 꽤 늦게 찾아옵니다. 17분 안팎으로 세 악장 중 가장 긴 몸집을 자랑하는 이 악장은 좀처럼 걸음을 서두르는 법이 없죠.
여기서 독주자들이 무대에 발을 들이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치고 들어와 기선을 제압하는 건 역시나 첼로입니다. 이어 바이올린이 그 선율을 냉큼 낚아채 한 옥타브 위 공중으로 띄워 올리고, 피아노는 두 현악기가 수다를 떠는 발밑에 조용히 화음을 깔며 난장판을 정리하죠.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이고 누가 묵묵히 무대를 닦는 조연인지, 이 첫 등장의 순서표만 훑어봐도 견적이 딱 나옵니다.
사실 이 악장은 듣는 이의 인내심을 제법 시험합니다. 시작하자마자 멱살을 쥐고 흔드는 화끈한 곡이 아니거든요. 그 대신 똑같은 선율이 첼로에서 바이올린으로, 다시 피아노로 이리저리 징검다리를 건너며 묘하게 색깔을 바꾸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세 악기가 토씨 하나 안 틀린 같은 말을 저마다의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되풀이하는 판을 구경하다 보면, 그 길던 17분도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유독 귀를 쫑긋 세워야 할 대목은 세 독주자가 마침내 한 덩어리로 뭉치는 찰나입니다. 제각기 등장해 자기 할 말만 쏟아내던 셋이, 어느 기막힌 타이밍에 비로소 손을 맞잡고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거든요. 오케스트라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오롯이 세 사람만 무대에 덩그러니 남는 그 짤막한 실내악의 순간이야말로, 이 곡이 웅장한 협주곡인 동시에 덩치 큰 피아노 삼중주라는 태생적 비밀을 가장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2악장 Largo — 5분의 숨 고르기, 그리고 멈추지 않는 다리
2악장의 수명은 5분 남짓으로 턱없이 짧습니다. A♭장조로 느릿하게 흐르는 노래인데, 바로 이 대목에서 첼로가 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명장면을 훔쳐 달아납니다. 아슬아슬한 고음역에 매달려 거의 사람의 탄식처럼 선율을 한없이 길게 뽑아내거든요. 피아노가 밑에서 잔잔하게 물결을 찰랑이면, 첼로는 그 위를 유유자적 헤엄칩니다. 수많은 청중이 이 긴 곡에서 기어이 단 하나의 장면만 머릿속에 담아간다면, 십중팔구 이 2악장의 첼로 독무대일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 악장은 제대로 끝맺는 법조차 모릅니다. 마지막에 화음을 얌전하게 닫아거는 대신, 냅다 다음 악장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들어가 버리죠. 애초에 2악장은 독립된 느린 악장 행세를 할 뿐, 실상은 피날레로 넘어가기 위해 깔아둔 튼튼한 구름다리에 가깝습니다. 헉헉대던 숨을 한 번 크게 고르기가 무섭게 청중의 등을 떠밀어 곧장 요란한 춤판 한가운데로 던져버리거든요. 행여나 중간에 박수 칠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능구렁이 같은 이음매야말로, 이 곡에 숨겨진 가장 영리한 트릭입니다.
3악장 Rondo alla polacca — 귀족의 춤으로 닫는 끝
대망의 마지막 악장은 ‘알라 폴라카’, 쉽게 말해 폴로네즈풍입니다. 폴로네즈가 뭡니까, 폴란드에서 물 건너온 몹시 당당하고 뼈대 있는 춤곡 아니겠습니까. 베토벤은 협주곡의 대미를 땀내 나는 전력 질주로 끝내는 대신, 우아하게 발보폭을 맞추는 귀족들의 사교 댄스로 닫아버리기로 작정합니다. 또박또박 정직하게 박자를 짚고 넘어가는 리듬 위에서, 세 명의 독주자가 쉴 새 없이 공을 던지고 받듯 주제를 주거니 받거니 놉니다.
이 영리한 선택은 곡이 태어난 배경과도 묘하게 죽이 맞습니다. 헌정자도 빈의 귀족이고, 이 곡이 처음 울려 퍼진 무대 역시 귀족들의 살롱이었으니까요. 폴로네즈 특유의 격조 높은 리듬은, 그 공간의 공기를 악보 위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합니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점잔만 빼는 건 아닙니다. 틈만 나면 세 악기가 빠른 음형을 툭툭 던지며 슬쩍 장난을 걸어오거든요.
어김없이 여기서도 첫 주제의 테이프를 끊는 건 첼로입니다. 곡이 완전히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앞장서서 낫을 들고 길을 트는 건 한결같이 첼로의 몫이죠.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들을 땐 앙칼진 바이올린이나 정신없이 건반을 훑는 피아노 쪽에 먼저 귀를 뺏기기 십상이지만, 무조건 ‘첼로가 먼저’라는 룰을 눈치채고 나면 판이 완전히 다르게 돌아갑니다. 이쯤 되면 첼로가 무거운 입술을 뗄 때마다 반사적으로 귀를 쫑긋 세우게 되죠.
버림받은 협주곡,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이토록 머리 팽팽 돌아가게 잘 짜인 곡인데도 불구하고, 삼중 협주곡은 어처구니없게도 기나긴 세월 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참다못한 평론가들이 이 곡 이마에 ‘베토벤 협주곡들 사이의 신데렐라’라는 웃지 못할 꼬리표를 턱 붙여버렸을 정도죠. 잘난 언니들이 죄다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빠져나갈 때, 홀로 잿투성이가 되어 캄캄한 부엌석을 지켜야만 했던 기구한 팔자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여럿입니다. 일단 무대에 올리는 준비 과정부터가 만만치 않거든요. 솜씨가 엇비슷한 독주자 세 명을 한날한시에 섭외해 모아야 하니까요. 딱 한 명만 부르면 해결되는 보통의 협주곡에 비하면 품이 정확히 세 배로 듭니다. 게다가 세 사람 몫의 출연료 청구서까지 떠올려보면, 공연 기획자 입장에서 선뜻 손이 가는 매력적인 기획이 아니었죠.
음악 자체가 품은 태생적인 성격도 단단히 한몫했습니다. 이 곡은 보통의 협주곡처럼 잘난 영웅 한 명이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짜릿한 쾌감을 쥐여주지 않거든요. 세 사람이 적당히 양보하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고상한 합주의 미덕은, 이미 한 명의 독보적인 스타에게 길들여진 귀에는 자칫 밍밍한 평양냉면처럼 들리기 십상이었습니다. 머리채를 휘어잡는 폭풍 같은 〈운명〉이나 기세등등한 〈황제〉를 잔뜩 기대하고 온 청중에게, 무대 위에서 둥글게 둥글게 사이좋게 노는 삼중주 패거리는 한참이나 김빠지게 점잖아 보일 수밖에요.
‘봐준 곡’이라는 전설도 여기에 불을 지폈습니다. 피아노가 쉽다는 사실이 어느새 ‘베토벤이 대충 쓴 곡’이라는 오해로 둔갑해 번진 거예요. 거장의 약한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한 번 붙어버리니, 사람들은 곡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지레짐작으로 한 수 접고 들었습니다. 그 겹겹의 오해를 벗고 진가가 다시 발견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협주곡이 흘러온 역사 그 자체마저 이 곡에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19세기는 화려한 기교를 앞세운 독주 스타, 이른바 비르투오소들의 전성시대였으니까요. 파가니니의 신들린 바이올린이나 리스트의 피아노처럼, 단 한 명의 초인이 무대를 장악하는 영웅적인 드라마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런 압도적인 흐름 속에서 ‘셋이 사이좋게 나눠 갖는 협주곡’은 시대의 취향과 정면으로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었죠. 이 곡은 너무 일찍 도착했거나, 아니면 아예 시대를 비켜 서 있었던 셈입니다.

초연의 풍경만 살펴봐도 이 사실은 분명하게 증명됩니다. 1808년 빈 아우가르텐의 여름 음악회 무대에 이 곡을 처음 올린 건, 난이도를 봐줄 이유가 전혀 없는 직업 연주자들이었거든요. 바이올린과 첼로는 당대의 실력파들이 꿰찼고, 건반 앞에 앉은 이도 아마추어 황족이 아니었습니다. 전설은 살롱의 입소문을 타고 자라났을지 몰라도, 실제 첫 무대는 프로들의 일터였습니다. ‘봐준 곡’이라는 이미지와 실제 초연의 풍경은 애초에 첫 단추부터 어긋나 있었던 겁니다.
1969년, 거장 셋이 한 방에 모여 서로를 미워하다
부엌에 처박혀 있던 신데렐라의 운명을 단번에 뒤집어놓은 건 한 장의 음반이었습니다. 1969년 9월, 베를린의 어느 교회. 카라얀이 베를린 필을 지휘하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독주자로 뭉칩니다. 바이올린·첼로·피아노, 각 분야에서 당대 최고로 꼽히던 세 사람을 한 무대에 세운 그야말로 드림팀이었죠. 냉전 시대 소련이 자랑하던 거장 셋이 서방의 제왕 카라얀과 한 방에 모였으니, 음반사 입장에선 꿈같은 기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의 실제 녹음 현장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듯 살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훗날 리히터는 이 역사적인 녹음을 두고 “끔찍하다, 나는 이걸 완전히 부정한다”고 단칼에 잘라 말했습니다. 이름값 하는 거장이 본인이 직접 참여한 음반을 이렇게까지 깎아내리는 일은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거든요. 리히터의 회고에 따르면, 로스트로포비치가 자꾸만 앞으로 나서려는 게 하도 거슬려서 일부러 피아노를 저 멀리 뒤로 물렸다는 겁니다. 내로라하는 세 사람의 자존심이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쾅쾅 부딪힌 결과죠.
리히터는 한 번 더 녹음하자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카라얀은 시간이 빠듯하다며 그 요구를 차갑게 거절해 버리죠. 거절한 이유가 아주 걸작입니다 — 음반 재킷에 쓸 사진을 아직 안 찍었다는 거거든요. 음악의 숨 막히는 완성도보다 매끈한 표지 사진 한 장이 먼저였던 겁니다. 그 기막힌 한마디에 세 거장의 불만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독주자 가운데 무려 두 명이나 이 처참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떻게든 발매를 틀어막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카라얀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결국 세상에 내보내 버렸습니다. 어쨌거나 본인 입맛에는 기가 막히게 딱 맞았으니까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큼 눈부신 드림팀이 모여, 카메라 밖에서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 미워하며 남겨버린 불멸의 명반. 바로 그 지독한 아이러니가 이 음반을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 불화가 음악을 망치기는커녕 오히려 묘한 긴장감을 짜릿하게 새겨 넣었다는 점입니다. 누구 하나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던 세 개의 자존심이 맞부딪힌 결과, 이 곡이 본래 품고 있던 ‘세 목소리의 팽팽한 균형’이 극단까지 밀어 올려졌거든요. 봐주는 협주곡이라는 전설과 정반대의 자리에서, 이 음반은 삼중 협주곡을 다시 화려한 무대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부엌의 신데렐라가 드디어 무도회장에 입성한 셈이죠.
이 음반이 지닌 육중한 무게감을 떠올려보면 그 파급 효과는 훨씬 큽니다. 오이스트라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린의 거장이었고,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로의 역사를 다시 쓴 인물이며, 리히터는 그야말로 피아노계의 전설이었으니까요. 이 정도의 이름값이 한 곡에 모이는 일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몹시 드물었습니다. 덕분에 기껏해야 ‘들어볼 만한 마이너 협주곡’ 취급을 받던 이 곡이, 단숨에 ‘저 세 사람이 함께한 그 곡’으로 벼락출세하게 됩니다. 곡 자체의 평판이 연주자들의 평판에 올라타 수직 상승한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왜 지금 이 곡을 들어야 할까
사실 이 곡은 베토벤이 남긴 협주곡들을 통틀어 가장 억울하게 저평가된 작품입니다. 고독한 영웅 한 명이 가혹한 운명과 피 튀기게 맞짱을 뜨는 드라마틱한 서사에만 잔뜩 길들여진 우리에게, 이 곡은 완전히 엉뚱한 질문표를 던지거든요. 뼛속까지 다른 세 개의 목소리가 그 어느 하나 파묻히지 않고 대체 어떻게 나란히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겁니다.
피아노가 슬그머니 한 발 물러서 묵묵히 두 현악기를 살려내고, 첼로가 매번 뚝심 있게 먼저 입을 떼며 거친 길을 트면, 바이올린이 그 위를 사뿐히 넘겨받아 화려하게 빛을 냅니다. 무대 위에서 누가 더 잘났는지 핏대 세우며 멱살잡이를 하는 대신, 각자 주어진 제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전체의 그림을 꼿꼿하게 세우는 거죠. 눈이 핑핑 도는 화려한 독주 협주곡들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곡만의 몹시 어른스러운 미덕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곡의 매력을 세상에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 낸 사건은, 서로 대립각을 세우던 1969년의 바로 그 녹음이었습니다. 무대 밖에서는 세 사람의 자존심이 단 한 치도 양보 없이 부딪혔지만, 정작 음악 안에서는 결국 그 세 목소리가 기막힌 균형으로 단단히 묶였으니까요. ‘봐준 곡’이라는 기나긴 오해와 거장들의 자존심 싸움을 모조리 통과하고 나서야, 이 협주곡은 비로소 제 진짜 모습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부엌에 남겨져 있던 신데렐라가, 알고 보니 처음부터 무도회의 주인공이었던 셈이죠.
그러니 이 곡과 처음 마주하는 분이라면, 일단 ‘봐준 곡’이라는 그 다 낡아빠진 꼬리표부터 가차 없이 떼어버리고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피아노가 가장 돋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무대를 닦아내는 소리, 첼로가 악장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맨 먼저 노래의 테이프를 끊는 순간, 그리고 2악장에서 3악장으로 박수 칠 틈조차 주지 않고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그 기막힌 이음매. 딱 이 세 가지만 끈질기게 따라가 보셔도, 먼지투성이 신데렐라가 왜 결국 샹들리에 빛나는 무도회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는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실 겁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훌쩍 열람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 삼중 협주곡 Op.56 악보 보기 (IMSLP)
추천 음반 — 싸운 거장 vs 손발 맞는 동료
오이스트라흐·로스트로포비치·리히터 / 카라얀·베를린 필 (1969, EMI). 이견의 여지 없이 정본으로 꼽히는 전설의 드림팀 녹음입니다. 솔직히 말해 취향껏 골랐다기보다는 도무지 안 듣고 배길 재간이 없는 음반이죠. 세 명의 거장이 서로 단 한 치도 굽히지 않고 으르렁대며 빚어낸 그 팽팽한 긴장감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습니다. 다만 기름칠한 듯 매끈한 합주의 조화를 기대하고 틀었다간 의외로 까끌까끌하고 거칠게 들릴 수 있거든요. 유려한 화음보다 불꽃 튀는 자존심 대결이 훨씬 먼저 귀에 때려 박히는 기막힌 연주입니다.
파우스트·케라스·멜니코프 / 헤라스카사도·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하르모니아 문디). 1969년반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연주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연주해 온 세 사람이라 호흡이 마치 한 몸처럼 이어지고, 시대악기인 포르테피아노가 음악의 질감을 한결 가볍고 투명하게 풀어주거든요. 이 곡을 팽팽한 ‘대결’이 아니라 조화로운 ‘실내악’으로 감상하고 싶은 분들께 정본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만약 큼직하고 낭만적인 음향을 기대하신다면 다소 담백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베토벤 삼중 협주곡의 피아노 파트는 정말 쉬운가요?
정말 루돌프 대공을 위해 작곡된 곡인가요?
세 악장 중 어디부터 들으면 좋나요?
왜 다른 베토벤 협주곡보다 덜 연주되나요?
1969년 카라얀 녹음은 왜 그렇게 유명한가요?
세 목소리가 만나는 다른 길들
삼중 협주곡은 ‘여럿이 함께’라는 베토벤의 실험이자, 첼로가 전면에 나선 드문 협주곡입니다. 그 두 갈래를 따라가면 더 깊은 울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영웅이 이끄는 베토벤의 다른 협주곡들, 그리고 첼로가 주인공이 되는 명곡들을 아래에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