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미사 C장조 Op.86

혹평을 뚫고 완성한 베토벤의 미사 솔레무니스

초연이 끝나고, 에스테르하지 2세 니콜라우스 대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베토벤 선생, 그래서 이게 뭡니까?”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곡명
미사 C장조 Op.86 (Messe C-Dur, Op. 86)
작곡 시기
1807년
악장
6악장
I. Kyrie (C장조)
II. Gloria (C장조)
III. Credo (C장조)
IV. Sanctus (C장조)
V. Benedictus (F장조)
VI. Agnus Dei (C장조)
편성
소프라노 · 알토 · 테너 · 베이스 독창,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팀파니, 혼성 합창
초연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 에스테르하지 궁정 예배당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 궁정 예배당. 베토벤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미사 초연을 마쳤는데, 정작 곡을 주문한 후원자의 반응이 저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궁정 악장 후멜이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렸더군요. 베토벤은 격분했고, 그 길로 짐을 싸서 빈으로 돌아갔습니다.

베토벤 미사 C장조 Op.86의 첫날. 참담한 실패.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오늘날 음악학자들이 이 곡을 다시 들여다보면, 대공이 “이게 뭐냐”고 한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거든요. 이 미사는 하이든의 미사곡, 모차르트의 미사곡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베토벤은 당시 관습을 의도적으로 비틀었고, 청중이 기대하던 음악적 흐름을 여러 차례 방해했습니다. 대공이 황당해했다는 사실 자체가 증거. 이 곡이 충분히 낯설었다는 증거.

200년이 지난 지금, 그 낯섦은 오히려 이 미사의 가장 큰 매력이 됐습니다.

후원자의 주문, 베토벤의 반란, 1807년 아이젠슈타트

베토벤이 이 곡을 쓰게 된 경위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에스테르하지 2세 니콜라우스 대공이 아내의 성명축일 예배를 위한 미사를 원했거든요. 9월 8일,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 매년 이 자리를 채워온 작곡가는 하이든이었는데, 1807년 당시 하이든은 75세 노인으로 이미 작곡 활동을 접은 상태였습니다. 대공이 대신 베토벤에게 의뢰한 겁니다.

에스테르하지 궁전, 아이젠슈타트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테르하지 궁전. 1807년 9월 13일 미사 C장조 초연이 이곳 궁정 예배당에서 열렸다.

베토벤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제안이었거든요. 미사곡이라는 장르에는 수백 년의 전통이 쌓여 있고, 궁정 예배용이니 형식을 어느 정도 지켜야 합니다. 라틴어 텍스트의 순서와 구조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형식을 지키는 데 영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교향곡 5번과 6번을 동시에 쓰고 있었는데, 두 곡에서도 이미 온갖 관습을 흔들어놓던 참이었거든요. 교향곡 5번 초연이 1808년이니, 미사 C장조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낸 답은 이랬습니다. “미사의 형식은 지키되, 음악 안에서는 내 방식으로 한다.”

키리에(Kyrie,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뭔가 낯섭니다. 하이든식의 장엄하고 부드러운 도입부가 아닙니다. 베토벤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들어옵니다. 기도하는 분위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운 느낌. 대공이 미사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면, 아마 키리에 첫 음에서부터 이미 그랬을 겁니다.

글로리아(Gloria, 영광)에서는 아예 오케스트라를 교향곡 스케일로 끌어올립니다. 하이든의 미사곡들이 궁정 예배당 분위기에 딱 맞는 정갈한 규모였다면, 베토벤의 글로리아는 빈의 대형 공연장 수준에 가깝습니다. 1807년 아이젠슈타트 궁정 소규모 합창단이 이걸 소화하려면 상당히 고생했을 겁니다.

그래도 베토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미사가 출판될 때, 황태자 루돌프에게 헌정하면서 “이 작품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직접 썼거든요. 당시 베토벤을 후원하던 몇 안 되는 진지한 지지자였던 루돌프 대공은 훗날 미사 솔렘니스의 헌정자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은 이 두 미사를 연결된 작업으로 보았던 셈입니다.

하이든의 그늘, 베토벤의 선택, 전임자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

에스테르하지 가문과 하이든의 관계는 음악사에서도 특별합니다. 하이든은 30년 가까이 이 집안 전속 악장으로 일했습니다. 아이젠슈타트 궁정은 하이든의 거의 모든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 그리고 여러 미사곡이 처음 울려 퍼진 곳이었거든요. ‘천지창조’나 ‘사계’ 같은 대작도 이 가문의 지원 없이는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베토벤 미사 자필 악보
베토벤 자필 악보 원고. Kyrie부터 Agnus Dei까지, 미사 C장조는 전통적인 미사 통상문 구조를 따른다.

베토벤이 이 미사를 쓰면서 하이든을 의식하지 않기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이든의 만년 미사곡들, 특히 ‘전시 미사(Missa in tempore belli, 1796)’, ‘테레지아 미사(1799)’, ‘창조 미사(1801)’ 같은 작품들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교회 음악으로 꼽혔습니다. 같은 의뢰인을 위한, 같은 날짜를 위한 곡. 보이지 않는 비교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베토벤과 하이든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베토벤은 1790년대에 하이든에게 잠시 가르침을 받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부터 긴장이 흘렀더군요. 하이든은 베토벤의 초기 작품들에 비판적이었고, 베토벤은 그 기억을 오래 품었습니다. “하이든한테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고 훗날 말했을 정도니까요.

베토벤의 선택은 경쟁이 아닌 차별화였습니다. 조성을 C장조로 잡은 것도 하이든의 창조 미사와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 안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화성 처리와 대위법 텍스처에서 베토벤은 하이든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거든요. 특히 크레도(Credo, 신앙고백) 부분에서 성부들 간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나는 믿습니다”를 노래하면서 음악이 뒤틀리고 충돌하는 느낌. 하이든에게 이런 선택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음악학자들은 이 크레도의 처리를 베토벤의 가장 독창적인 결정 중 하나로 봅니다.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믿음 안에 있는 갈등과 의혹,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달하는 확신을 음악으로 옮긴 셈이거든요. 종교 텍스트를 심리 드라마로 만든 겁니다.

베토벤은 이 미사에 대해 훗날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신을 향해 쓸 수 있는 가장 진솔한 것을 썼다.” 정확한 원문은 논란이 있지만, 그가 이 곡을 단순한 위촉 작품 이상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Kyrie부터 Agnus Dei까지, 악장별 감상 안내

Kyrie, 무릎 꿇되 고개는 드는 간청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미사에서 이 첫 기도는 전통적으로 무릎 꿇는 겸손함으로 표현됩니다. 하이든이 그랬고,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니콜라우스 2세 에스테르하지 대공 초상화
니콜라우스 2세 에스테르하지 대공(1803년 초상화). 베토벤에게 미사 C장조를 의뢰한 후원자다.

베토벤은 다릅니다. 키리에가 시작되면 목관악기가 부드럽게 열리는 듯하다가, 현악기가 단호하게 받아치면서 합창이 들어옵니다. 무릎을 꿇되 고개는 드는 자세랄까요. 자비를 구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습니다. 이 첫 악장 6~7분 안에 이미 베토벤이 이 미사에서 뭘 하려는지 드러나더군요.

중간에 ‘크리스테 엘레이손(Christe eleison,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구간에서 소프라노와 알토가 주고받는 대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음악이 물러납니다. 간청이 아닌 내밀한 대화처럼 들리는 순간. 두 목소리가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면서, 대형 합창의 선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다시 전체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돌아와 처음의 단호함으로 마무리합니다.

키리에 하나만으로도 이 미사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 듣는 분들이 이 특이함을 바로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이든의 미사를 한두 곡 먼저 들어본 뒤에 이 키리에를 들으면, 차이가 훨씬 선명하게 들립니다.

Gloria, 궁정 예배당을 교향악단 규모로 채운 시도

글로리아는 이 미사에서 가장 길고 규모가 큰 악장입니다. “글로리아 인 엑첼시스 데오(Gloria in excelsis Deo,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가 터져 나오는 첫 순간, 그 규모가 압도적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거대한 시작 이후의 전개입니다. “라우다무스 테(Laudamus te, 우리가 당신을 찬양합니다)” 구간이 갑자기 실내악 수준으로 조용해지거든요. 독창 사중창이 섬세하게 노래하고, 합창은 배경으로 물러납니다. 베토벤은 큰 것과 작은 것, 공적인 찬양과 개인적인 고백 사이를 오가며 음악을 설계했습니다.

“도미네 데우스, 렉스 카엘레스티스(Domine Deus, Rex caelestis, 주 하나님, 하늘의 왕이시여)” 구간에서는 다시 독창자들이 전면에 나서고, 합창이 그 위에 올라탑니다. 겹쳐지는 성부들 사이에서 각자 다른 의미로 같은 신을 부르고 있다는 느낌. 이 구간은 가디너 지휘의 음반에서 특히 선명하게 들리더군요.

“키 투 솔루스 상투스(Qui tu solus sanctus, 오직 당신만이 거룩하십니다)” 구간은 선언이 아니라 확인처럼 들립니다. “당신만이 거룩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음악이 점점 확신으로 채워지는 과정이 느껴집니다.

마지막 “인 글로리아 데이 파트리스. 아멘(In gloria Dei Patris. Amen, 성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아멘)”의 푸가는 에너지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푸가(fuga)란 여러 성부가 같은 주제를 돌아가며 이어받는 대위법적 형식인데, 베토벤의 푸가는 학구적이기보다 근육질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초연 청중이 왜 황당해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예배 음악이기도 하고, 동시에 교향곡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Credo, 믿음의 진술이 충돌하는 방식

미사의 핵심인 크레도. 신앙 고백의 조문을 낭독하는 이 악장은 역사적으로 가장 긴 미사 텍스트를 담아야 합니다. 작곡가마다 각 문장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서 개성이 드러납니다.

베토벤의 크레도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에트 인카르나투스 에스트(Et incarnatus est, 성령으로 인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구간입니다. 음악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화성이 뒤틀립니다. 신이 인간이 되는 그 순간의 낯섦, 고통을 음악으로 직접 표현하려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하이든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입니다. 하이든의 크레도는 부드럽게 흐르니까요.

“크루치픽수스(Crucifixus,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구간에서 음악은 가장 어두운 지점에 도달합니다. 합창이 낮게 억누르면서 내려갑니다. 무게가 더해지는 것처럼. 그리고 “에트 레수렉시트(Et resurrexit, 부활하시어)” 부분에서 다시 빛을 향해 치솟습니다. 이 전환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처음 들으면 편집 오류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베토벤의 의도였을 겁니다. 죽음에서 부활로의 전환이 그만큼 극적이어야 한다는 것.

크레도의 후반부, “에트 비탐 벤투리 세쿨리. 아멘(Et vitam venturi saeculi. Amen, 내세의 생명을 믿으며. 아멘)”은 푸가로 마무리됩니다. 글로리아의 푸가와 달리 여기서는 조금 더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내세를 믿는다”는 말이 이렇게 힘겹게 선언되어야 했을까요?

크레도는 이 미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동시에 가장 베토벤다운 악장입니다. 신앙 고백을 음악으로 쓸 때, 베토벤은 편안함이 아닌 진실을 선택했습니다. 그 진실에는 갈등이 포함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Sanctus와 Benedictus, 고요함이 찾아오는 순간

크레도의 격렬함 이후, 상투스(Sanctus, 거룩하시도다)는 짧지만 강렬한 선언으로 들어옵니다. “호산나 인 엑첼시스(Hosanna in excelsis, 높은 곳에서 호산나)”가 합창 전체로 울려 퍼질 때, 이 미사에서 가장 전통적인 순간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베네딕투스(Benedictus,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찬미). 이 미사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네 독창자가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합창 없이 노래하는 이 구간은, 길지 않지만 미사 전체의 무게 중심을 이쪽으로 당겨옵니다. 베토벤이 합창을 침묵시키고 네 목소리만으로 이 순간을 만든 건 정확한 판단이었더군요. 소리가 적을수록 더 많이 들리는 법이니까요.

베네딕투스 구간에서 소프라노가 선율을 이끌고 나머지 세 성부가 받쳐주는 방식은, 모차르트의 미사곡들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베토벤이 여기서만큼은 투쟁을 내려놓고,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접근했다는 느낌. 이 약 8~9분짜리 구간이 끝나고 나면, “아, 이 작곡가도 이런 음악을 쓸 줄 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네딕투스를 듣다 보면, 이 곡이 1807년에 ‘실패’했다는 게 더 아쉬워집니다. 이 악장만으로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거든요.

Agnus Dei, 마지막 간청과 절제된 여운

아뉴스 데이(Agnus Dei, 하나님의 어린 양)는 전통적으로 미사의 마무리입니다.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으로 끝나는 이 마지막 기도를 베토벤은 어떻게 썼을까요.

의외로 조용합니다. 격렬한 크레도와 글로리아를 거쳐왔으니 마지막도 강하게 끝날 것 같지만, 베토벤은 오히려 수위를 낮춥니다. “평화를 주소서”를 외치는 게 아니라, 낮게 청하는 겁니다. 독창자들의 앙상블과 합창이 번갈아 이 기도를 반복하면서, 음악은 점점 더 조용해지는 방향으로 갑니다. 그 절제가 마지막 인상으로 남더군요.

어떤 지휘자들은 이 마무리를 베토벤의 개인적인 심경과 연결해서 봅니다. 1807년은 베토벤의 귀가 급속도로 악화되던 시기였습니다.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이후로 그는 청력 상실과 싸워왔고, 미사를 쓸 당시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청각 손상이 있었거든요. 귀가 들리지 않아가는 사람이 “평화를 주소서”라고 쓴 마지막 악장. 그 절제된 마무리의 무게가 다릅니다.

한편, 훗날 미사 솔렘니스의 아뉴스 데이는 전쟁의 공포를 담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음악이 됩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미사 C장조의 마무리는 거의 평온해 보이기도 합니다. 두 미사의 아뉴스 데이를 나란히 들으면, 베토벤이 16년 사이에 어떻게 변했는지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미사 솔렘니스의 그늘에 가려진 실험실, 두 미사 비교

베토벤의 미사 C장조가 오늘날 덜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명백합니다. 같은 작곡가의 미사 솔렘니스(Op.123, 1823)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아이젠슈타트 베르크키르헤
아이젠슈타트 베르크키르헤(1803년). 하이든이 잠든 이 도시에서 베토벤은 후계자의 자리를 증명해야 했다.

미사 솔렘니스는 베토벤이 4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입니다. 연주 시간 80분, 극단적인 연주 난이도, 네 명의 독창자와 합창, 그리고 완전한 관현악. 베토벤 스스로 “내 최고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고, 오늘날 음악사에서 교회 음악의 정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옆에 놓으면 미사 C장조가 작아 보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두 미사를 순서대로 들으면, 미사 C장조에서 시도한 것들이 미사 솔렘니스에서 얼마나 크게 펼쳐지는지 보입니다. 종교 텍스트를 교향악적 긴장으로 처리하는 방식, 크레도에서 믿음의 갈등을 음악화하는 방식, 베네딕투스에서 독창 앙상블로 정점을 만드는 구조. 이 모든 것이 미사 C장조에 먼저 나옵니다. 미사 솔렘니스는 그 확장판인 셈입니다.

미사 C장조는 목적지가 아닌 실험실이었거든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베토벤은 초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미사를 끝까지 옹호했거든요. 출판할 때 “피아노 협주곡 4번과 같은 시기에 나온 작품”이라고 직접 강조했습니다. 협주곡 4번은 지금도 그의 가장 서정적인 피아노 협주곡으로 꼽힙니다. 베토벤은 두 곡을 나란히 놓으면서 말하려 했던 겁니다. “이 미사도 그 수준이다.”

청중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은 안다는 확신. 그게 베토벤이었거든요.

오늘날 이 미사를 녹음한 음반은 많지 않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게 있더군요. 처음 들을 때는 하이든과 다른 낯섦이 느껴지고, 두 번째 들을 때는 크레도의 논리가 보이고, 세 번째 들을 때는 베네딕투스의 아름다움이 전면에 나섭니다. 한 번 들어서 판단하기 어려운 곡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베토벤답습니다.

사실 이 두 미사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베토벤에게 다소 불공평합니다. 미사 솔렘니스는 베토벤의 후기 양식이 완전히 개화한 작품이고, 미사 C장조는 그보다 16년 앞서 전혀 다른 조건에서 나온 곡이거든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미사 C장조에는 미사 솔렘니스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친밀함. 규모를 키우고 야심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미사 솔렘니스는 때로 듣는 사람을 압도해서 거리감을 만듭니다. 반면 미사 C장조는 그것보다 훨씬 사람의 손이 닿는 거리에 있습니다. 특히 베네딕투스의 네 독창자 앙상블은 대규모 합창의 선언 이후 찾아오는 내밀한 대화처럼 들리거든요.

두 미사 사이에서 선택하라면 어렵겠지만, 두 미사를 모두 아는 사람이라면 미사 C장조가 뭔가 더 개인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베토벤이 의뢰에 응하면서도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은 그 고집, 초연 실패에도 이 곡을 지킨 그 확신이 음악에 배어있는 까닭일 겁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봅시다. 베토벤이 이 미사를 쓸 때 참고했을 법한 자료들. 그는 하이든의 미사곡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죠. 모차르트의 크레도 미사(K.257)나 대관식 미사(K.317)도 알았을 겁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미사 b단조는 그가 깊이 존경한 작품이었거든요. 그 모든 전통을 흡수한 뒤에, 베토벤은 그것들 어느 것도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썼습니다.

이 미사에서 바흐의 영향을 찾는 음악학자도 있습니다. 크레도의 대위법 처리, 특히 후반부 푸가 구간에서 바흐적인 엄밀함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반면 베네딕투스의 독창 앙상블은 모차르트의 감각에 가깝습니다. 하이든에게서 배운 형식 감각도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언어는 오직 베토벤의 것.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시작하십시오

미사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 음악인데 왜 이렇게 시끄럽냐.”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요제프 하이든(Thomas Hardy 작). 베토벤은 하이든의 미사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방향을 택했다.

맞습니다. 그게 이 미사의 핵심입니다. 베토벤은 미사에서도 교향곡을 썼습니다. 예배당에서 울리던 조용하고 경건한 음악이 아니라,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는 교향악적 드라마를 종교 텍스트에 씌운 겁니다.

그래서 이 미사를 들을 때는 종교적 맥락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재밌습니다.

첫째, 키리에(1악장)부터 시작하십시오. 길지 않고(6~7분), 이 미사의 성격이 가장 압축되어 있죠. 간청이 이렇게 단호할 수 있다는 게 첫 인상입니다.

둘째, 크레도(3악장)에서 “에트 인카르나투스 에스트” 구간을 주목하십시오. 음악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그 지점이 있습니다. 베토벤이 신앙의 역설을 음으로 쓴 순간이거든요. 그리고 “에트 레수렉시트”에서 갑자기 밝아지는 전환을 놓치지 마십시오.

셋째, 베네딕투스(5악장)는 네 독창자만 남는 조용한 순간입니다. 이 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고, 가장 베토벤답지 않은(그래서 더 놀라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집중하면 더 잘 들립니다.

넷째, 마지막 아뉴스 데이(6악장)가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게 끝난다는 걸 염두에 두십시오. 그 절제가 이 미사 전체의 마무리입니다.

다섯째, 미사 솔렘니스를 이미 아신다면, 이 미사를 먼저 들으십시오. 순서가 바뀌면 이 곡이 더 작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미사 C장조는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지, 미사 솔렘니스의 예행 연습이 아닙니다.

라틴어를 몰라도 됩니다. 종교적 배경을 몰라도 됩니다. 각 악장의 이름만 알고 순서를 따라가면 충분합니다. 그 안에서 베토벤이 무엇을 했는지는 음악이 직접 알려줄 겁니다.

이 미사에서 한 가지 더 알아두면 좋은 것이 있습니다. 이 곡은 베토벤의 인생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거든요. 귓병 때문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 나폴레옹이 유럽을 뒤흔들던 시기, 그리고 교향곡 5번과 6번이라는 역사적 작품들을 동시에 쓰던 시기에 나왔습니다. 1807년 베토벤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창작의 절정기에 있었죠.

미사 C장조를 그 맥락 안에 놓고 들으면, 왜 이 곡이 그냥 교회 음악으로 머물 수 없었는지 이해가 되죠. 베토벤에게 창작이란 자신의 전 존재를 쏟아붓는 행위였습니다. 미사라고 해서 예외를 둘 이유가 없었겠습니다.

또 하나, 이 미사를 합창단원으로 직접 노래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죠. 성부 간 조화보다 독립성을 강조하는 베토벤의 쓰기 방식 때문에, 각 파트가 다른 파트를 들으며 자기 자리를 찾는 과정이 상당히 도전적이라고 하더군요. 하이든의 미사곡들이 각 성부가 서로 잘 어울리도록 쓰여있다면, 베토벤의 이 미사는 각 성부가 독자적인 주장을 하면서 전체가 맞아떨어지는 방식입니다. 청취자에게도 그 긴장이 전달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미사가 왜 지금 다시 주목받을 만한지 한마디 덧붙이면. 매년 수십 편의 새로운 미사 녹음이 나오지만, 베토벤의 미사 C장조는 여전히 녹음 수가 적은 편이죠. 거꾸로 말하면, 이 곡을 발견하는 사람은 진짜 숨겨진 보물을 찾은 기분을 누릴 수 있다는 뜻. 미사 솔렘니스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그 그늘 바로 밑에 이 작품이 있습니다.

추천 녹음, 이 미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선택지

존 엘리엇 가디너 / 몬테베르디 합창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1994, Archiv)

고음악 해석의 권위자 가디너가 이끄는 이 음반은 텍스처가 투명합니다. 각 성부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들리고, 베토벤이 의도한 충돌과 해소가 분명하게 드러나거든요. 규모를 억제하면서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 균형이 인상적이죠. 이 미사를 처음 들을 때 가장 권장하는 음반. 크레도의 어두운 구간이 특히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아놀트 쇤베르크 합창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00, Teldec)

아르농쿠르의 해석은 가디너와 반대 방향입니다. 빈 필의 풍부한 음향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각 악장의 내적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이거든요. 크레도의 어두운 구간에서 소름이 돋더군요. 이 미사가 얼마나 위험하고 날카로운 음악인지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맞는 선택입니다. 아르농쿠르 특유의 날선 해석이 이 미사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8, DG)

번스타인은 규모와 감정을 아낌없이 씁니다. 일부에서는 과장이라고 하지만, 이 미사를 교향곡처럼 크게 듣고 싶다면 가장 적합한 선택입니다. 글로리아의 폭발감이 압권이더군요. 미사 솔렘니스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음반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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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미사 C장조 Op.86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베토벤의 미사 C장조 Op.86은 언제, 누구를 위해 작곡되었나요?

1807년, 에스테르하지 2세 니콜라우스 대공의 의뢰로 작곡된 작품입니다. 대공 부인의 성명축일(9월 8일,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 예배를 위한 곡이었거든요. 그 전까지 이 자리를 맡았던 하이든이 고령으로 은퇴하면서 베토벤에게 차례가 넘어왔습니다. 초연은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 궁정 예배당. 베토벤이 직접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초연 당시 에스테르하지 대공의 반응이 어땠나요?

냉담했습니다. 대공은 공연 후 “베토벤 선생, 그래서 이게 뭡니까?”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지거든요. 궁정 악장 후멜이 웃음을 터뜨리자, 베토벤은 격분하여 그 길로 빈에 돌아갔습니다. 수십 년 동안 기억할 만큼 깊은 상처였던 셈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음악학자들은 바로 그 “낯섦”이야말로 이 미사를 독창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평가합니다.

미사 C장조와 미사 솔렘니스(Op.123)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규모와 야심의 차이입니다. 미사 C장조(1807)가 약 45분짜리 궁정 예배용 작품이라면, 미사 솔렘니스(1823)는 80분에 달하는 대작이더군요. 연주 난이도도 극단적으로 높습니다. 베토벤 스스로 “내 최고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다만 미사 C장조에서 시도한 여러 방향성이 미사 솔렘니스에서 더 크게 펼쳐지기 때문에, 두 곡을 순서대로 들으면 베토벤의 발전이 실감납니다.

미사 C장조의 편성과 악장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네 명의 독창자와 혼성 합창, 그리고 관현악(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팀파니)을 위한 작품입니다. 전통 가톨릭 미사 오르디나리움 구성을 따른 총 6악장 구조입니다. Kyrie(주여 자비를), Gloria(영광), Credo(신앙고백), Sanctus(거룩하시도다), Benedictus(찬미받으소서), Agnus Dei(하나님의 어린 양). 연주 시간은 약 42~47분이니 부담 없는 길이겠습니다.

이 미사를 클래식 초보자도 감상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접근 가능합니다. 미사 솔렘니스보다 길이도 짧고 진입 장벽이 낮거든요. 키리에(1악장)와 베네딕투스(5악장)는 특히 듣기 편한 구간입니다. 라틴어 가사를 몰라도 감상에 지장은 없으며, 각 악장의 이름만 알고 들어도 충분하겠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나 6번을 좋아하신다면, 같은 시기 같은 에너지로 쓰인 이 미사도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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