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25번 C장조 K.503

200년 동안 잊힌 협주곡이 최고작이 된 경위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작품명
피아노 협주곡 25번 C장조 K.503
장르
피아노 협주곡
조성
C장조
작곡 연도
1786년 (완성: 1786년 12월 4일)
악장 구성
3악장
I. Allegro maestoso (C major)
II. Andante (F major)
III. Allegretto (C major)

1악장 장대하게 빠르게 (C장조)
2악장 걸으며 (F장조)
3악장 조금 빠르게 (C장조)
편성
독주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 2, 바순 2, 호른 2 (C조), 트럼펫 2 (C조), 팀파니, 현악
연주 시간
약 29~33분

1786년 12월 4일, 모차르트는 하루에 걸작 두 편을 완성했습니다.

오전에는 피아노 협주곡 K.503. 오후에는 ‘프라하’ 교향곡 K.504. 서른 살 청년이 이틀치 작업을 하루 만에 해치운 거냐고요? 아닙니다. 두 작품 모두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최정점에 놓인 결과물이거든요. 그냥 그게 모차르트였습니다. 참고로 ‘프라하’ 교향곡도 당시 빈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12월 4일, 모차르트는 빈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음악을 두 편이나 써낸 셈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K.503은 그 이후 거의 200년 동안 잊혔거든요. 모차르트가 직접 초연하고, 1798년에 평론가 요한 프리드리히 로흘리츠는 “지금껏 쓰인 협주곡 중 가장 장엄하며, 어쩌면 역대 모든 협주곡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극찬했는데도요. 빈에서는 모차르트 사후에도 한동안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고, 20세기 중반까지 “어렵고 과잉이다”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모차르트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들이 콘서트홀을 채우던 시절에도, K.503는 조용히 서재 선반 위에 놓여 있었던 겁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순서대로 들어가다 보면, K.503 앞에서 한 번 멈추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뭔가 달라진다는 느낌. 더 이상 청중의 취향에 맞추지 않겠다는 듯한 서늘함. 바로 이 협주곡의 첫 인상입니다. 처음에는 그 서늘함이 거리감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들을수록 그 서늘함이 실은 자신에 대한 완벽한 확신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흔들리지 않는 작곡가의 목소리. 그게 K.503입니다.

무엇이 이 곡을 200년짜리 오해 속에 가두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왜 이 곡을 꺼내 다시 들어야 하는 걸까요.

C장조라는 선택, 그리고 1786년의 모차르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21번 K.467이나 23번 K.488이 먼저 떠오릅니다. 유려하고, 눈부시고,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선율들이니까요. K.503는 거기에 비해 “묵직하다”, “교향악적이다”,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게 결점이 아닙니다. 의도입니다.

1786년의 모차르트를 떠올려보면, 그는 이미 4년째 피아노 협주곡을 빈 청중에게 선보이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작곡하고, 직접 독주를 맡고, 직접 콘서트를 기획했거든요. 1784년부터 1786년 사이, 빈 시절 대형 피아노 협주곡 12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중 대부분은 청중의 기대에 적절히 맞추면서도 고유한 품격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쓰인 곡들입니다. 그런데 K.491 c단조와 K.503는 달랐습니다. 두 작품 모두 ‘청중을 위한 쇼피스’가 아니라, 작곡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은 곡이었던 겁니다.

이 협주곡의 초연 날짜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곡 스케치북에는 완성 날짜만 남아 있고, 초연 기록은 분명하지 않거든요. 다만 모차르트 자신이 몇 차례 이 곡을 연주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주 기록마저 희미한 채로 세상에 남겨진 협주곡인 셈입니다. 초연 정보가 불분명한 작품이 오늘날 그의 최고작 중 하나로 불린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을 겁니다. 알았다면 더 많이 연주했겠죠.

C장조는 원래 ‘밝고 화려한’ 조성입니다. 팡파르, 군악대, 왕실 행사. 장대하고 선명한 소리. 그런데 모차르트는 K.503에서 C장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더군요. 1악장 첫 음부터 오케스트라가 거대한 구조물처럼 서고, 독주 피아노는 그 안에서 굉장히 특이한 위치에 놓입니다. 영웅이 아닙니다. 독주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와 대화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물러서며 다른 방향에서 치고 들어옵니다. 바로 이 협주곡의 핵심입니다.

음악학자 사이먼 P. 키프는 K.503를 두고 “모차르트의 협주곡 장르 최고작 중 하나라는 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고 했습니다. 키프가 이 말을 쓴 게 21세기의 일이거든요. 작품이 완성된 지 200년도 더 지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당대에는 알아보지 못했고, 바로 다음 세대에도 잊혔으며, 20세기에 들어서야 천천히 재발견됐습니다. 좋은 책이 독자를 기다리듯, 이 협주곡도 청중을 기다린 까닭입니다.

K.503를 두고 ‘어렵다’는 말은 완전히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즉각적으로 보상하지 않는다’는 뜻이거든요. 첫 청취에서 귀가 확 열리는 감동 대신,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의 밀도. 이게 K.503의 방식입니다. 모차르트가 빈의 청중을 위해 쓴 다른 협주곡들이 ‘첫 데이트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방식’이라면, K.503는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서 비로소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처음에 낯설었던 것이 나중에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는 경험. K.503이 바로 그런 협주곡입니다.

잊혀진 이유: 너무 많이 담긴 악보

K.503이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너무 많이 담겨 있어서”였습니다.

1악장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시부에서 제2주제가 등장하기까지, 오케스트라가 풀어놓는 소재의 양이 압도적이거든요. 평균 12~14분에 달하는 이 악장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긴 편에 속합니다. 한 번만 들어서는 어디가 어딘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청중의 집중력 문제가 아닙니다. 작곡가가 정말로 많은 걸 집어넣었기 때문이니까요. 모차르트가 다른 협주곡에서 청중이 쉽게 쫓아올 수 있도록 선율을 배치했다면, K.503는 청중이 한 발짝 뒤에 서서 전체를 바라봐야 비로소 구조가 드러나는 설계입니다.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K.503의 1악장 행진곡풍 주제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와 닮았다는 겁니다. K.503 완성은 1786년 12월, 라 마르세예즈는 1792년에 공식 등장합니다. 모차르트가 6년 앞서 이 선율을 쓴 셈입니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행진곡풍 주제가 1악장 발전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방식을 들으면, 그냥 우연이라고 넘기기 어렵더군요. 아마 당시 유럽 음악 전반에 이런 종류의 행진곡 선율이 ‘공기처럼’ 떠돌고 있었을 겁니다. 그중 하나를 모차르트가 먼저 잡아서 협주곡의 뼈대로 썼고, 몇 년 뒤 누군가가 같은 공기에서 같은 선율을 꺼내 국가로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들어보면 비슷하다는 건 느끼실 겁니다.

모차르트 초상화 (요제프 랑게, 1782년)
요제프 랑게가 1782년경 그린 모차르트 초상화. K.503이 완성되기 4년 전, 빈 정착 직후의 모습이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연결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이 K.503를 직접 참조했다는 사실은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받는 부분이거든요.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저 유명한 ‘운명 동기’와 구조적으로 닮은 모티프가 K.503 1악장에도 들어 있습니다. 이 모티프를 처음 발견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합니다. “K.503를 처음 들었는데 베토벤 5번이 생각났다.” 들어보면 바로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이 발견이 K.503를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드는 결정적 지점입니다. 모차르트가 베토벤에게 씨앗을 심었다는 표현, 과장이 아닐 수밖에요.

1786년의 모차르트는 경제적으로도 조금씩 어려움이 생기던 시기였습니다. 빈에서의 인기가 정점을 지나고 있었고, 궁정 작곡가 자리는 아직 오지 않았거든요. K.503는 그 시기에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쓰였습니다. 빈 시절의 12개 대형 피아노 협주곡 중 실질적인 마지막. 바로 K.503입니다. 그 ‘마지막’이라는 무게가 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더 증명할 것도 없고, 더 보여줄 것도 없는 경지에서 자기 자신에게만 충실하게 쓴 작품. 그래서 K.503는 어렵고, 그래서 K.503는 깊습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Allegro maestoso — 오케스트라가 먼저 세우는 구조물

‘Allegro maestoso(알레그로 마에스토소)’는 ‘빠르게, 그러나 장엄하게’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악장은 처음부터 오케스트라 전체가 일제히 치고 나오는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출발하거든요.

현악이 낮게 깔리고, 그 위로 행진곡풍의 주제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이미 ‘라 마르세예즈’와 닮은 선율이 등장합니다. 이후 발전부에서 이 주제는 놀라운 방식으로 변형되고 귀환하게 되는데, 약 12~14분에 달하는 이 악장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교향악적인 규모입니다. 실제로 이 악장의 제시부 길이는 모차르트의 다른 협주곡들과 비교해도 단연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독주자 없이 혼자 꽤 오랜 시간 이야기하거든요. 독주 피아노가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것들이 ‘세워진’ 느낌입니다.

독주 피아노가 들어오는 순간을 주목하십시오. 영웅적인 선언이 아닙니다. 피아노는 먼저 오케스트라가 벌여놓은 ‘판’을 살피듯 조심스럽게 진입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영역을 확보해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다른 협주곡에서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의 ‘적’처럼 대립하거나, 반대로 오케스트라에 압도당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K.503에서 두 주체는 거의 대등한 방식으로 서사에 참여하거든요. 경쟁이 아니라 협상. 그리고 이 협상은 끝까지 승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발전부는 압권입니다. C장조임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의 이탈이 반복되거든요. 밝은 C장조 안에서 음악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드라마틱합니다. 이 ‘모드 믹스처(modal mixture, 장조와 단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는 K.503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밝은 C장조’가 아니라 그 안에 끊임없이 어둠이 드나드는 방식이니까요. 밝음과 어둠이 빠르게 교차하는 이 발전부를 들으면서, K.503의 1악장이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비로소 납득이 됩니다. 이 정도의 ‘이탈’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무대’가 필요했던 까닭입니다.

카덴차 직전, 전체 오케스트라가 일시에 멈추고 독주 피아노만 홀로 남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 정적의 무게가 이 악장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독주자는 그 순간에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하거든요. 카덴차의 성격이 연주자마다 이 악장의 인상을 완전히 뒤바꾸는 이유입니다. 맬컴 빌슨(Malcolm Bilson)의 카덴차는 포르테피아노 특유의 고졌 질감을 살려, K.503가 원래 어떤 악기를 위해 쓰였는지 실감하게 만드는 연주입니다.

2악장: Andante — 목관악기가 이끄는 비밀 회의

2악장은 F장조입니다. 소나타 형식이지만 발전부가 없는 구조거든요. 그런데도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목관악기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니까요.

플루트, 오보에, 바순이 서로 속삭이듯 선율을 나눕니다. 독주 피아노는 이 목관악기 앙상블의 ‘대화’를 중재하거나, 스스로 그 대화에 끼어들기도 합니다. K.503 전체에서 목관악기의 비중이 가장 두드러지는 악장입니다. 1악장에서 트럼펫과 팀파니로 구축한 웅장한 골격을 2악장에서 완전히 덜어내고, 부드러운 목관악기 중심의 실내악적 질감으로 전환하는 솜씨가 놀랍습니다.

이 악장의 독특함은 피아노가 때로 완전히 물러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협주곡에서 2악장이 독주자의 독백 무대처럼 작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니까요. 여기서는 오케스트라 전체, 특히 목관악기가 동등한 비중을 가집니다. 독주 피아노와 목관악기 사이의 질감 차이,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밀고 당기기가 이 악장의 진짜 매력입니다. 피아노가 쉬고 있는 동안 목관악기가 무언가를 속삭이고, 피아노가 돌아왔을 때 그 ‘속삭임’에 답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어지거든요.

처음 들을 때는 ‘조용하고 차분한 느린 악장’으로 흘려듣기 쉽습니다. 두 번째부터는 목관악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라가보십시오.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립니다. 이 악장의 목관악기 작법을 보면, 모차르트가 얼마나 목관악기의 표현력을 신뢰했는지가 드러나더군요. 피아노가 없어도 이 악장은 충분히 성립하는 실내악이 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자리에 피아노가 들어와서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냅니다. 그 두 층위 사이의 간격을 느끼는 것, 그게 이 2악장을 제대로 듣는 방법입니다.

3악장: Allegretto — 이도메네오의 가보트, 5년을 넘어

3악장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습니다. 론도 주제가 모차르트가 1781년에 쓴 오페라 ‘이도메네오(Idomeneo)’의 발레 음악에서 가져온 가보트(gavotte) 선율이거든요. 가보트는 17~18세기 유럽 궁정 무도회에서 유행한 2박자 계열의 춤곡입니다. 활기차고 발걸음이 경쾌한 분위기를 가진 형식입니다.

자기 오페라 음악을 피아노 협주곡 3악장에 재활용한 셈입니다. 그것도 매우 태연하게. K.503가 완성되던 1786년 말, 모차르트는 ‘이도메네오’를 빈에서 다시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이 가보트 선율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자연스럽게 협주곡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차르트에게 자기 이전 음악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살아있는 재료였던 겁니다.

3악장을 처음 들으면 ‘소나타 론도 형식(sonata-rondo form)’의 진행이 상당히 장난기 있게 느껴집니다. 소나타 론도는 론도처럼 주제가 반복 귀환하되, 에피소드들이 소나타 형식의 논리를 따르는 복합 구조입니다. 주제가 돌아오고, 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이 ‘이탈’의 성격이 매번 다릅니다. 기어드스톤은 이 악장을 “대단히 진지한 악장”이라고 평가했는데, 겉으로는 경쾌하지만 내부 구조는 정말 촘촘하거든요. 마치 농담처럼 시작해서 사실 진지한 제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대화 같은 느낌입니다. 오페라 발레 선율이 이렇게 복잡한 구조적 논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요.

이도메네오 리브레토 표지 (뮌헨, 1781)
1781년 뮌헨 초연 당시 이도메네오 이탈리아어 리브레토 표지. K.503 3악장 론도 주제의 원천이 된 가보트 선율이 이 오페라에서 비롯됐다.

이 3악장도 중간에 단조로 빠져들었다가 C장조로 화려하게 귀환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1악장과 마찬가지로 ‘밝음 안의 어둠, 어둠 뒤의 더 밝은 귀환’이 K.503 전체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하거든요. 세 악장이 모두 같은 언어를 씁니다. 바로 이 점이 협주곡을 단순한 세 악장의 묶음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만들어주는 겁니다. 1악장에서 시작된 ‘협상’이 2악장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3악장에서 활기차게 타결되는 방식. K.503는 그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목성 교향곡의 협주곡판, 그리고 K.503의 현재

에릭 블롬은 K.503을 두고 “협주곡 중에서 목성 교향곡의 상대역이라 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정확하고도 적절한 평가입니다. 목성 교향곡은 모차르트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C장조로, 그 유명한 대위법 피날레로 끝나는 곡이거든요. 역시 C장조. 역시 장엄하고, 교향악적이며, 마지막에 대위법적 구조가 폭발하거든요. 두 작품은 모차르트의 C장조 세계관을 각각 협주곡과 교향곡이라는 다른 형식으로 완성한 짝패인 셈입니다.

에릭 블롬 (음악학자, 1888–1959)
에릭 블롬. K.503를 두고 ‘협주곡 중에서 목성 교향곡의 상대역’이라 평한 음악학자다.

K.503가 완성된 1786년 12월부터 목성 교향곡이 완성된 1788년 8월까지, 불과 1년 8개월입니다. 모차르트의 C장조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들으면 훨씬 선명하게 들리더군요. 기어드스톤은 K.503의 가장 가까운 쌍둥이 작품으로 현악 오중주 C장조 K.515를 꼽기도 했습니다. 역시 C장조, 역시 교향악적인 밀도. 1786~1787년 모차르트의 C장조는 그냥 밝고 화려한 조성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을 담기 위한 선택이었던 겁니다. 그 거대함이 K.503에서, K.515에서, 그리고 목성 교향곡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그런데 K.503이 왜 20세기 중반까지 홀대를 받았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더 친근하고 빛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니까요. 21번 K.467은 영화 ‘엘비라 마디간’으로 유명해졌고, 23번 K.488은 명료한 구조와 감성으로 청중을 쉽게 끌어들입니다. 이 두 곡이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K.503는 같은 작곡가의 곡이면서도 ‘왠지 접근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남긴 겁니다. K.503은 처음에 잡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번 손에 잡히면, 놓지 못할 수밖에요.

20세기 말에 이르러 K.503가 재평가받은 것은 음악학의 발전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조성 이론, 모드 믹스처, 발전부 구조에 대한 분석이 정교해지면서, K.503의 복잡함이 ‘결점’이 아닌 ‘의도된 밀도’였다는 게 분명해졌거든요. 처음에는 너무 복잡하다고 외면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그 복잡함이 이 곡의 본질이었던 셈입니다. 분석 도구가 없을 때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것들이, 도구가 생기면서 ‘이렇게 정교하게 설계됐구나’로 바뀌는 경험. K.503가 정확히 그런 사례입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요한 네포무크 후멜(Johann Nepomuk Hummel)은 K.503를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했거든요. 모차르트의 협주곡 7편을 실내악으로 옮기는 프로젝트에서 K.503를 포함시켰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작품을 살리기 위해 직접 편곡한 겁니다. K.503가 당시에도 ‘소수의 진정한 이해자’에게는 특별한 가치로 여겨졌다는 증거입니다. 후멜의 편곡은 오케스트라 없이도 이 협주곡의 핵심 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K.503의 본질은 웅장한 편성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음악적 언어에 있는 까닭입니다.

K.503는 왜 K.467이나 K.488보다 덜 알려졌을까요. 이유 중 하나는 ‘이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K.467은 영화 ‘엘비라 마디간’ 덕에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K.488은 ‘2악장의 그 아다지오’로 유명하거든요. K.503에는 그런 별명도, 그런 대표 악장도 없습니다. 그냥 K.503. 별명이 없는 협주곡을 기억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들어본 사람은 기억합니다. 그래서 K.503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팬을 가진 협주곡입니다.

오늘날 K.503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사이클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26번 ‘대관식’과 27번이 그 뒤를 잇지만, 빈 시절 12개 대형 피아노 협주곡의 실질적 마지막 작품은 K.503이거든요.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의 진짜 정점”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곡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낯설어도, 세 번 들으면 다른 모든 모차르트 협주곡이 달라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이 협주곡을 통과하고 나면 K.467의 달콤함이 조금 다르게 들리고, K.488의 명료함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K.503가 기준점이 되는 겁니다.

K.503는 쉽게 넘길 수 없는 협주곡입니다. 바로 그게 이 곡의 미덕이자 매력이기도 합니다. 200년을 기다린 보상이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K.503를 들을 때 자주 언급되는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는데, 두 번째 들었을 때 완전히 다르게 들렸다”는 반응이거든요. 이 협주곡의 구조가 첫 청취에서 바로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악장의 발전부가 끝나고 재현부가 돌아올 때의 안도감, 2악장 마지막에 목관악기가 조용히 마무리할 때의 여운, 3악장의 코다에서 C장조가 최종적으로 확정되는 순간의 해방감. 이 모든 것이 두 번째 청취부터 제 위치를 찾기 시작합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다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다면, K.503를 꺼내보십시오. 이 협주곡은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면을 보여주거든요. 1악장 발전부의 단조 이탈이 이번에는 더 길게 느껴지거나, 2악장 목관악기의 대화가 이번에는 더 구체적으로 들리거나, 3악장의 가보트 론도 주제가 이번에는 이도메네오의 무대 위에서처럼 들리거나. K.503는 청취자가 성장하면 함께 성장하는 협주곡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 협주곡은 모차르트가 남긴 가장 솔직한 음악 일기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설명한 내용을 머릿속에 담고 들어보면, 협주곡이 아닌 하나의 길고 정교한 대화로 들리기 시작할 겁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K.503의 진짜 매력이 열립니다.

추천 녹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503는 녹음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립니다.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대화하느냐, 발전부를 어떻게 설계하느냐, 단조로의 이탈을 얼마나 극적으로 처리하느냐가 해석의 핵심이거든요. K.503는 연주자의 관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곡입니다. 독주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느냐, 대등하게 대화하느냐, 아니면 오케스트라 뒤에서 조용히 자기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 협주곡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같은 악보에서 얼마나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를 아래 세 녹음으로 확인하십시오.

피오트르 안데르셰프스키 / 챔버 오케스트라 오브 유럽 (2018, Warner Classics)

안톤 발터 포르테피아노 (빈, 18세기 말)
안톤 발터가 제작한 빈 포르테피아노. 모차르트가 K.503를 작곡할 당시 직접 연주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악기다.

안데르셰프스키의 K.503는 이 협주곡의 ‘현대적 재해석’에 가장 가까운 녹음입니다. 독주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고, 거의 실내악처럼 섬세하게 대화하거든요. 1악장의 발전부에서 단조로의 이탈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러나 극적으로 처리되는지가 인상적입니다. 큰 소리로 치는 연주가 아닌, 내부에서 설득하는 연주. 2악장의 목관악기 앙상블이 특히 살아있고,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느낌을 줍니다. K.503를 처음 접하거나, 이 협주곡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싶은 분에게 첫 번째로 권하는 녹음입니다.

미쓰코 우치다 / 리카르도 무티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83, Philips)

우치다와 무티의 조합은 K.503의 ‘교향악적 규모’를 가장 정직하게 구현한 녹음으로 자주 거론됩니다. 1983년 녹음이지만 지금도 기준점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주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두 주체 사이의 균형이 섬세하거든요. 1악장의 발전부에서 무티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밀도와 우치다의 독주가 맞부딪히는 방식이 이 녹음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우치다는 이 협주곡의 ‘교향악적 진지함’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한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K.503의 복잡함을 복잡하게 들려주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녹여내는 솜씨가 대단하더군요.

리카르도 무티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미쓰코 우치다와 함께한 K.503 녹음으로 이 협주곡의 기준 해석을 제시했다.

머레이 페라히아 /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 (1987, Sony Classical)

페라히아의 K.503는 ‘단정하고 명료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화려한 감정 표현보다는 구조적 정직함을 택한 녹음이니까요. K.503를 처음 접하는 분에게 먼저 권하고 싶은 녹음이기도 합니다. 길을 잃지 않고 작품의 골격을 따라갈 수 있거든요. 이 협주곡이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녹음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이 녹음으로 K.503의 전체 구조를 파악한 뒤, 안데르셰프스키나 우치다의 녹음으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발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은 곡인데 다른 곡처럼 들릴 수 있는 겁니다. K.503가 바로 그런 협주곡입니다.

머레이 페라히아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히아. K.503의 구조적 정직함을 가장 선명하게 구현한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펼쳐놓고 들으면 K.503의 설계도가 드러납니다. 1악장 발전부에서 행진곡 주제가 뒤틀리고, 단조로 빠져드는 순간 — 그 화성 언어가 악보 위에서 눈에 잡히거든요. 악보를 읽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음표가 갑자기 빽빽해지는 구간만 찾으면 되니까요. 1악장 발전부, 성부들이 겹겹이 얽힌 그 페이지를 보는 순간 납득이 갑니다. ‘교향악적’이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5번 K.503 1악장 악보 동기 영상. 악보를 보며 발전부의 화성 구조를 따라가 보십시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됩니다.

피아노 협주곡 25번 C장조 K.503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5번이 오랫동안 잊혀진 이유가 뭔가요?

K.503는 모차르트 생전에도 인기곡이 아니었습니다. 빈에서는 그가 죽은 뒤에도 한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거든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K.467이나 K.488은 첫 청취에서 귀를 잡아끄는 협주곡이지만, K.503는 교향악적 밀도가 높고 구조가 복잡합니다. 처음 들으면 어디가 클라이맥스인지 감이 안 잡히는 겁니다. 20세기 후반, 음악학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 복잡함이 결점이 아니라 의도된 밀도였다 — 그 인식이 재평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K.503 1악장과 라 마르세예즈가 닮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K.503 1악장의 행진곡풍 주제 선율이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와 구조적으로 닮았거든요. K.503 완성은 1786년, 라 마르세예즈 등장은 1792년이니 모차르트가 6년 앞선 셈입니다. 의도적 영향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다만 1악장 발전부에서 이 행진곡 주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들으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더군요.

베토벤이 이 협주곡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게 사실인가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 K.503를 직접 참조했다는 건 음악학자들이 공통으로 인정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운명 동기와 구조적으로 닮은 모티프가 K.503 1악장에 등장하거든요. 베토벤이 이 협주곡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참고한 수준이 아니라 자기 언어로 소화하고 발전시킨 겁니다. 그게 후대 평가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3악장에 오페라 이도메네오 선율이 들어간 이유가 뭔가요?

K.503 3악장의 론도 주제는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1781) 발레 음악에서 따온 가보트 선율입니다. 1786년 말, 모차르트는 이도메네오 빈 재상연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 선율이 머릿속에 살아 있던 시기였던 셈입니다.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이 선율이 3악장 구조 안에서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변신하니까요. 오페라 발레곡이 협주곡 론도 주제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 모차르트다운 재활용입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5번을 처음 들을 때 어디에 집중해서 들어야 하나요?

1악장부터 가겠습니다. 오케스트라와 독주 피아노가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 따라가 보십시오. 영웅적인 독주자가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두 세력이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 그게 이 협주곡의 핵심이거든요. 2악장에서는 목관악기에 귀를 맡기십시오. 플루트와 오보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기 시작하면 2악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3악장에서는 C장조가 단조 영역으로 이탈했다가 돌아오는 순간을 세어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세 악장 모두 밝음 안에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K.503의 일관된 성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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