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 교향곡 제40번 g단조, K.550

빚과 상실 속에서 완성한 화해 없는 교향곡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곡명
교향곡 40번 g단조 K.550
작곡 시기
1788년 여름 (빈)
악장
4악장
I. Molto allegro (g단조)
II. Andante (E♭장조)
III. Menuetto: Allegretto (g단조)
IV. Finale: Allegro assai (g단조)

1악장. 매우 빠르게
2악장. 느리게
3악장. 미뉴에트: 약간 빠르게
4악장. 피날레: 매우 빠르게

편성
현악, 플루트 1, 오보에 2, 클라리넷 2(개정판), 파곳 2, 호른 2
초연
1788년경 추정 (정확한 기록 없음)

1788년 7월 25일, 모차르트는 자신의 작품 목록에 ‘교향곡 40번 g단조’를 적어 넣었습니다. 불과 6주 만에 세 편의 교향곡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던 한여름이었습니다. 누구도 곡을 청탁하지 않았고, 기약된 연주회도 없었습니다. 서른둘의 작곡가는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있었고, 갓난딸을 잃은 슬픔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토록 절박한 계절에 태어난 음악은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을 두르고 있으면서도, 그 단단한 껍질 속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릅니다. 첫 마디의 숨 막히는 시작부터 마지막 화음이 닫히는 순간까지, 이 교향곡은 단 한 번도 평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단조로 문을 열어 단조로 막을 내리는 교향곡 자체가 희귀했던 시대의 일입니다.

모차르트가 남긴 마흔한 곡의 교향곡 중 단조의 빛깔을 띤 작품은 단 두 곡뿐입니다. 열일곱 청년 시절의 25번 g단조, 그리고 바로 이 40번입니다. 모차르트에게 g단조란 심연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았습니다. 현악 5중주 K.516, 피아노 4중주 K.478, 오페라 ‘돈 조반니’의 서곡부터 ‘마술피리’ 속 밤의 여왕이 부르는 두 번째 아리아에 이르기까지, 그의 g단조는 예외 없이 살갗을 파고드는 서늘한 격정과 짙은 비탄을 품고 있습니다.

1789년 도리스 슈톡이 그린 모차르트 초상화
1789년 라이프치히에서 도리스 슈톡이 그린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완성한 이듬해의 모습이다.

1788년 여름 — 세 교향곡의 수수께끼

빈에 둥지를 튼 지 7년. 1788년의 시간은 모차르트에게 가혹했습니다. ‘궁정 실내악 작곡가’라는 번듯한 직함을 얻었지만, 그가 손에 쥔 연봉은 800굴덴에 불과했습니다. 전임자 글루크가 누리던 2,000굴덴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액수였습니다. 예약 연주회인 ‘아카데미’를 열어 생계를 꾸리려던 계획마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길어지자 귀족들은 지갑을 굳게 닫았고, 그해 모차르트의 연주회는 단 한 차례도 무대의 막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동료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는 구원을 바라는 절박한 호소가 묻어납니다. “유독 이 빈에서만큼은 제 운명이 등을 돌린 듯합니다”라는 탄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아내 콘스탄체는 바덴의 온천을 전전하며 요양 중이었고, 6월에는 태어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딸 테레지아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부부에게 찾아온 여섯 생명 중 어른으로 자라난 아이는 단 둘뿐이었습니다.

1782년 요제프 랑게가 그린 콘스탄체 모차르트 초상화
요제프 랑게가 1782년 그린 콘스탄체 모차르트. 1788년 여름 그녀는 바덴에서 요양 중이었다.

이 캄캄한 절망의 한가운데서 기적이 피어납니다. 6월 26일에 교향곡 39번 E♭장조가, 7월 25일에 40번 g단조가, 그리고 8월 10일에 41번 C장조 ‘쥬피터’가 연이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불과 6주 남짓한 시간 동안 쏟아져 나온 이 세 개의 우주는 경이롭다는 말조차 무색하게 만듭니다. 세 곡 모두 누구의 의뢰를 받은 것도, 연주 일정이 잡혀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왜 이토록 맹렬하게 교향곡을 써 내려갔는지는 여전히 음악사에서 가장 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런던 여행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거나, 악보 출판으로 급전을 마련하려 했다는 추측이 오갈 뿐입니다. 어떤 가설도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교향곡 입문에서 빠지지 않는, 축제처럼 눈부신 E♭장조의 39번과 대위법의 찬란한 정점을 보여주는 C장조의 41번 ‘쥬피터’. 그 두 개의 빛나는 봉우리 사이에 40번이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세 곡 중 유일한 단조이며, 유일한 어둠입니다. 트럼펫과 팀파니의 찬란한 울림마저 배제된 채, 영웅적인 승리의 몸짓조차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은 세계입니다.

빈의 부르크테아터 - 모차르트 시대 빈 음악의 중심지
빈의 부르크테아터.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시대 음악의 중심지였으나, 1788년 그의 연주회는 완전히 끊겨 있었다.

g단조의 계보 — 슈투름 운트 드랑의 유산

모차르트의 g단조는 진공 상태에서 우연히 떨어진 결정체가 아닙니다. 18세기 중엽, 유럽의 음악과 문학계는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질풍노도)’이라는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이성과 반듯한 균형을 강조하던 계몽주의의 틀을 깨고, 펄떡이는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내려는 거센 몸부림이었습니다. 요제프 하이든 역시 1760년대 후반부터 이 소용돌이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훗날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비롯해 낭만주의 시대를 물들일 짙은 감정의 씨앗이 이때 이미 뿌려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열일곱 살 청년 모차르트가 1773년에 남긴 교향곡 25번 g단조는 이 ‘슈투름 운트 드랑’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은 작품입니다. 엇박자로 거칠게 몰아치는 싱코페이션과 극적인 다이내믹은 당대 청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오프닝을 강렬하게 장식하며 대중의 귓가에도 널리 각인된 바로 그 곡입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서른둘의 모차르트가 다시 g단조 교향곡의 펜을 쥐었을 때, 그는 이미 지난 시대의 문법을 아득히 초월한 곳에 닿아 있었습니다. 25번이 끓어오르는 청춘의 격정을 밖으로 터뜨렸다면, 40번은 성숙한 영혼의 고통이 가장 견고한 고전의 형식 안에서 소리 없이 허물어져 내리는 내파(內破)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요제프 하이든. 슈투름 운트 드랑 시대 단조 교향곡의 선구자이자, 모차르트의 가장 가까운 음악적 동료였다.

두 가지 판본 — 클라리넷의 등장

교향곡 40번에는 두 벌의 악보가 존재합니다. 처음 쓴 악보에는 한 대의 플루트와 각각 두 대의 오보에, 파곳, 호른, 그리고 현악기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클라리넷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훗날 악보를 고쳐 쓰며 두 대의 클라리넷을 무대로 불러들였습니다. 오보에 파트를 손질하여, 그들이 부르던 선율의 일부를 덜어내어 새로 합류한 클라리넷에게 쥐여준 것입니다. 클라리넷의 등장으로 목관 악기들이 빚어내는 소리의 결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오보에 특유의 예리하고 투명한 질감 사이로 클라리넷의 둥글고 다스운 숨결이 스며들며, 화성의 중간 층이 한층 깊고 그윽해진 것입니다.

이 악보가 언제 개정되었는지, 정확한 날짜는 아직 안개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1791년,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이 곡을 지휘할 기회가 있었고 아마도 그 무대를 위해 다듬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추측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연주는 대부분 클라리넷이 더해진 개정판이지만, 원전 연주 운동의 영향으로 모차르트 시대의 원래 소리를 복원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두 판본을 나란히 들어보면, 단 한 종류의 악기가 더해지는 것만으로도 음악의 온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1악장: Molto allegro — 한숨으로 시작하는 질주

우리를 친절하게 예비해 줄 느린 서주 따위는 없습니다. 고전주의 교향곡이 으레 지켜오던 격식을 미련 없이 벗어던진 채, 음악은 막이 오르자마자 거친 운명 속으로 뛰어듭니다. 비올라가 잘게 쪼개진 8분음표로 파르르 떨리는 심박을 새기면, 그 위로 바이올린이 반음씩 미끄러져 내리는 짧은 동기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이를 ‘한숨 동기(sighing motif)’라 부릅니다. 두 개의 음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하행하는 모양새가 깊은 탄식을 너무도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첫 주제가 울려 퍼지는 순간, 우리는 단숨에 숨을 죽이게 됩니다.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한 번도 넘어보지 않은 이들조차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쓸쓸한 멜로디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소나타 형식으로 견고하게 짜인 제시부 안에서, 음악은 대조적인 두 세계를 위태롭게 배회합니다. 첫 번째 주제의 처연한 g단조가 훑고 간 자리에 제2주제가 B♭장조의 옅은 볕을 드리웁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야속하리만치 짧습니다. 이어지는 전개부야말로 이 악장의 진짜 심장부입니다. 처음에 내쉬었던 한숨은 산산조각이 나고, 조성을 잃은 음악은 빙판 위를 걷듯 위태롭게 미끄러집니다. 악기들이 잘려 나간 동기를 무기처럼 집어 던지며 맹렬히 부딪히는 이 광경은, 훗날 베토벤이 교향곡 5번에서 보여줄 투쟁의 작법을 아스라이 예고합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남긴 이 녹음은 1970년대 후반을 장식한 기념비적인 해석입니다. 깊고 육중하게 밀려오는 현악기의 파도와 빈틈없이 이어지는 카라얀 특유의 레가토는 교향곡 40번의 어두운 정념을 극한으로 끌어올립니다. 특히 1악장 전개부에서 현악기군이 조각난 동기들을 모아 거대한 해일처럼 밀어붙이는 대목을 듣노라면, 그가 이 음악을 얼마나 압도적인 비극의 드라마로 파악했는지 온몸으로 겪어내게 됩니다.

2악장: Andante — 평온 아래 숨은 불안

폭풍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내려앉은 E♭장조의 느린 악장은 얼핏 평화로운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현악기들이 머뭇거리듯 다정한 선율을 꺼내 놓으면, 목관악기들이 다가와 따스하게 화답합니다. 1악장의 숨 막히는 질주 끝에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합니다. 그러나 귀를 조금만 더 기울이면, 이 평온이 얼마나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는지 금세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름다운 노래의 마디마디에는 반음씩 흘러내리는 하행 음계가 슬픔의 잔해처럼 박혀 있고, 규칙적인 박자를 흩트려놓는 당김음이 등장할 때마다 표면 아래 도사린 불안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윤곽을 드러냅니다.

이 악장을 유영할 때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실내악처럼 정교하게 짜인 소리의 결입니다. 외롭게 노래하는 목관악기 독주와 발끝으로 조심스레 걷는 듯한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교차하는 대목은, 어스름 내린 방파제에서 은밀히 나누는 두 사람의 밀어를 엿듣는 듯한 기분마저 자아냅니다. 모차르트 특유의 극적인 오페라 감각이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기악의 호흡만으로 완벽하게 번역된 순간입니다. 전개부에 이르러 선율이 다시 차가운 단조의 늪으로 곤두박질칠 때, 우리는 1악장의 짙은 먹구름이 이 숲까지 뻗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안단테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끼워 넣은 단순한 ‘느린 악장’이 아닙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적 서사 속에서 가장 위태로운 심리극이 벌어지는 무대인 셈입니다.

3악장: Menuetto: Allegretto — 춤추지 못하는 미뉴에트

본래 미뉴에트란 화려한 궁정에서 사뿐히 밟던 우아한 춤곡입니다. 하지만 40번의 미뉴에트 위에서는 도저히 스텝을 밟을 수 없습니다. 세 박자의 부드러운 흐름 위로 두 박자의 강렬한 악센트를 돌연 내리꽂는 헤미올라(hemiola) 기법이 지진처럼 악구의 균형을 뒤흔듭니다. 악보 곳곳에 흉터처럼 새겨진 sf(스포르찬도) 기호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며 듣는 이의 신체적 기대를 사정없이 배반합니다. 3박자에 맞춰 우아하게 발을 뻗었다가 갑자기 2박자 패턴의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는 듯한, 처절하고도 불길한 무도회입니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이 기묘한 미뉴에트에 넋을 잃고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이 곡의 악보를 직접 필사하며 모차르트의 고통을 자신의 혈관에 새겨 넣었고, 1816년에 발표한 교향곡 5번 B♭장조의 3악장에 모차르트 40번 미뉴에트의 뚜렷한 메아리를 남겼습니다. 한편, 이 거친 춤의 한가운데 자리한 대조적인 트리오 부분에서는 찰나의 G장조가 한 줄기 햇살처럼 쏟아집니다. 목관악기가 목가적인 노래를 부르고 현악기가 이를 가볍고 온화하게 감싸 안습니다. 이 짧은 G장조의 위로가 그토록 눈물겹게 다가오는 것은, 앞서 우리를 사정없이 몰아붙인 g단조 미뉴에트 주부의 채찍질이 그만큼 매서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가 1825년 그린 슈베르트 수채화 초상화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가 1825년 그린 슈베르트. 모차르트 40번 미뉴에트를 직접 필사하며 그 기법을 체화한 음악가다.

4악장: Finale: Allegro assai — 화해 없는 결말

마지막 악장은 그간 억눌러왔던 숨을 토해내듯 폭발적인 에너지로 문을 걷어찹니다. 하늘을 향해 곧장 쏘아 올려지는 이른바 ‘만하임 로켓’ 음형이 g단조의 우울을 뚫고 치솟는 첫 주제는, 과거 만하임 악파의 유산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숨 막히고 긴박합니다. 만하임 로켓이 눈부신 장조의 환희를 입고 비상하는 것이었다면, 모차르트의 로켓은 단조의 벼랑 끝에서 살기 위해 위로 발버둥 치는 몸짓에 가깝습니다. 특히 전개부의 한가운데서 주제의 동기가 반음계적으로 곤두박질치며 서양 음악의 12개 음계를 모두 짚고 넘어가는 대목은 압권입니다. 18세기의 단정했던 조성 음악의 질서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하고 과격한 화성 실험입니다. 20세기의 음악학자들은 이 아슬아슬한 찰나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이 품은 치명적인 동경을, 나아가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이 드리운 잿빛 그림자까지 엿보았습니다.

주제를 다시 불러들이는 재현부에 이르러서도 음악의 팽팽한 활시위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습니다. 끝을 맺는 코다에서조차 장조로의 따뜻한 전환은 끝내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전 시대의 숱한 단조 교향곡들이 마지막 악장에 이르러 밝은 동명장조로 옷을 갈아입으며 ‘승리’를 노래하던 관습을, 모차르트는 차갑게 외면해 버렸습니다. 베토벤이 ‘운명’ 교향곡에서 c단조의 칠흑을 뚫고 C장조의 여명을 터뜨린 것이 1808년의 일이니, 화해를 거부한 모차르트의 서슬 퍼런 결말은 시대를 20년이나 앞질러 간 급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마지막 화음이 무자비하게 내리꽂히는 순간까지 g단조의 족쇄는 풀리지 않으며, 이 교향곡은 그 어떤 위로나 해결도 얻지 못한 채 허공에서 굳게 닫혀버립니다.

이 작품의 대표적인 연주 영상.

시대악기 앙상블 아폴로스 파이어(Apollo’s Fire)의 연주입니다. 지네트 소렐(Jeannette Sorrell)의 손끝에서 깨어난, 짐승의 창자로 꼰 거트 현의 텁텁한 마찰음과 개량되지 않은 내추럴 호른의 포효가 교향곡 40번의 또 다른 생명력을 뿜어냅니다. 카라얀의 매끄러운 녹음과 나란히 놓고 보면, 악보라는 단 하나의 텍스트가 얼마나 정반대의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는지 전율하게 됩니다. 특히 시대악기 특유의 메마르고 까끌까끌한 비올라의 8분음표 맥박은, 오히려 1악장 첫 마디가 품은 원초적인 초조함과 불안을 날것 그대로 피부에 꽂아 넣습니다.

이 곡이 남긴 것 — 고전에서 낭만으로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들불처럼 번지며 그 진가를 인정받았습니다. 다가온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끓어오르는 내면을 대변해 줄 완벽한 선례를 이 곡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로베르트 슈만은 이 교향곡의 g단조를 향해 “그리스적 우아함”이라는 눈부신 찬사를 바쳤습니다. 수정처럼 투명한 고전의 형식 안에 용암 같은 격정을 가둬둔 이 숨 막히는 긴장감은, 낭만파의 피를 끓게 한 이상적인 원형이었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 역시 모차르트가 엮어낸 이 기악의 선율 속에서, 훗날 자신이 주창하게 될 “무한 선율”의 아득한 씨앗을 알아보았습니다.

20세기의 지휘대 위에서 이 곡은 거장들의 철학을 낱낱이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되었습니다. 브루노 발터가 봄바람처럼 다스운 서정으로 모차르트를 보듬었다면, 카라얀은 베를린 필의 웅장한 골격과 묵직한 음향으로 압도적인 비극의 서사시를 썼습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원전 연주의 철학을 무기 삼아 옛 악기들의 거칠고 날카로운 민낯을 가차 없이 들춰냈고, 칼 뵘은 악보 너머의 그 어떤 수사도 덧붙이지 않은 채 오직 음악 스스로 침묵 속에서 발화하게 두었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이나 베토벤 교향곡 9번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 작품은 인류가 쌓아 올린 교향곡 레퍼토리의 가장 견고한 성채로 우뚝 서 있습니다.

카라얀이 이끈 베를린 필하모닉의 근거지, 베를린 필하모니
베를린 필하모니. 카라얀은 이 홀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교향곡 40번의 기념비적 녹음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하이든이 만년의 대작 오라토리오 ‘사계'(1801년) 말미, 죽음을 고요히 응시하는 대목에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2악장의 선율을 슬며시 숨겨놓았다는 주장을 폅니다. 모차르트가 눈을 감은 지 꼭 10년이 흐른 시점, 앞서 떠난 천재를 향한 늙은 거장의 다정한 애도였을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펜을 놓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처럼, 이 교향곡 또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심연의 수수께끼를 품고 있습니다. 흔히 클래식에 첫발을 들이는 이들에게 교향곡 40번이 가장 먼저 추천되는 이유는 바람결에 날리는 깃털처럼 귓가에 쉽게 맴도는 1악장의 첫 선율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위대함은, 그 친숙한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소름 끼치도록 정교한 건축적 구조와, 시대를 베어버린 화성의 고독한 모험에 깃들어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숨을 거둔 빈 라우엔슈타인가세의 사망지 기념판
빈 라우엔슈타인가세 8번지. 모차르트는 교향곡 40번을 완성한 지 3년 뒤인 1791년 12월 5일 이곳에서 35세로 생을 마쳤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따라가며 들을 수 있는 영상.

아담 피셔가 덴마크 국립 실내 관현악단과 함께 빚어내는 정교한 앙상블 위로 악보가 다이내믹하게 흘러가는 영상입니다. 음표들의 궤적을 눈으로 더듬으며 귀를 열어두면, 숲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치열하게 대화를 나누는 악기들의 출입과 호흡이 한층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음악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전개부에서, 조각난 동기들이 이 악기에서 저 악기로 몸을 숨기며 릴레이를 펼치는 광경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각별한 경험입니다. 귀로만 들을 때는 미처 낚아채지 못했던 촘촘한 대위법의 거미줄이 비로소 눈앞에서 아름다운 기하학적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 교향곡 40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의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가 악보에 새겨진 반복 기호를 어디까지 충실히 따르느냐에 따라 궤적이 달라지지만, 무대 위에서는 보통 28분에서 33분 사이의 시간이 흐릅니다. 웅장한 현대 오케스트라의 녹음은 대개 30분 안팎으로 곡을 맺습니다. 반면 잰걸음의 템포를 즐기는 시대악기 앙상블들은 28분 안쪽으로 숨 가쁘게 달려가기도 하며, 카라얀처럼 거대한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무겁게 내딛는 지휘자의 연주는 33분을 넘기며 장대한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교향곡 40번은 왜 g단조인가요?

모차르트의 음악적 우주에서 g단조는 결코 예사로운 음계가 아닙니다. 가슴을 쥐어뜯는 비탄이나 통제할 수 없는 내면의 소용돌이를 꺼내놓아야 할 때, 그는 어김없이 이 조성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청년 시절의 교향곡 25번(1773년)이 그러했고, 현악 5중주 K.516이나 피아노 4중주 K.478 같은 실내악의 위대한 걸작들 역시 모두 이 깊고 어두운 우물에서 길어 올린 선율들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교향곡의 초연을 직접 들었을까요?

가장 정직한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모차르트 자신이 초연에 대해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788년 이후 그가 빈에서 공개 연주회를 거의 열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가 살아생전 초연의 감격을 누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1791년 살리에리가 지휘한 연주회 무대에서 이 곡이 울려 퍼졌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합니다. 모차르트가 나중에 클라리넷을 추가한 개정판을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어딘가에서 연주될 구체적인 기회를 염두에 두었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연주가 과연 성사되었는지, 또 그 자리에 모차르트가 앉아 있었는지는 여전히 역사의 안개 속에 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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