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번호가 붙은 모차르트 교향곡 41곡 가운데 단조로 쓰인 두 곡 중 하나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4악장 전개부 첫머리를 들어 보세요. 열두 개 반음 가운데 으뜸음 G 하나만 빼고 전부 스쳐 지나가며, 안정될 곳을 일부러 비워 둔 듯한 긴장을 만듭니다.
첫 음반으로 처음 듣는다면 균형 잡힌 템포와 선명한 구조가 돋보이는 칼 뵘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의 도이체 그라모폰 녹음을 추천합니다.
1788년 6월 17일, 모차르트는 빈 외곽 알저그룬트의 새집으로 이사합니다. 방이 일곱 개나 되는 집이었고, 주방과 지하 저장고, 말 두 마리를 둘 마구간, 마차 차고와 정원까지 딸려 있었습니다. 1년 집세는 250굴덴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그는 친구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첫 편지를 씁니다. 넓은 집으로 옮긴 바로 그날,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곡을 빚에 짓눌린 남자가 절망을 토해낸 음악으로만 설명하면, 이 대목에서 이미 설명이 흔들립니다. 그 여름 모차르트에게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정원이 딸린 집에서 돈을 빌리던 여름
빈에 자리 잡은 지 일곱 해째였습니다. 전해 12월 황제 요제프 2세가 그를 궁정 실내악 작곡가로 임명했지만, 연봉은 800굴덴에 그쳤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앞서 일한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가 2,000굴덴을 받았으니, 임명장의 무게에 비하면 초라한 액수였습니다.
그는 봉급보다 예약 연주회로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표를 미리 팔아 청중을 모은 뒤 자기 곡을 직접 연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1788년에는 이 수입원이 끊겼습니다. 오스트리아가 1787년부터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귀족들이 지갑을 닫았고, 그해 모차르트는 자기 연주회를 한 번도 열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모차르트는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상대는 같은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던 상인 미하엘 푸흐베르크였습니다. 남아 있는 편지는 스물한 통이고, 부탁한 금액은 한 번에 30굴덴에서 300굴덴 사이, 모두 합치면 약 1,400굴덴입니다. 6월 17일 첫 편지에서 모차르트는 이렇게 씁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두고 마음을 전부 열어 보였습니다. 형제로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편지에는 새집 자랑도 들어 있습니다. 집세가 더 싸고, 봄·여름·가을에는 정원이 있어 훨씬 쾌적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손님이 덜 찾아와 일할 시간이 늘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마구간에 말 두 마리를 세우고 창고에 마차를 넣어 둔 사람이, 같은 종이에 돈을 빌려 달라고 적은 셈입니다. 연구자 가운데는 그가 편지에서 형편을 실제보다 어둡게 그렸다고 보는 쪽도 있습니다.
다만 그해 여름에는 훨씬 무거운 일도 있었습니다. 이사한 지 열이틀 뒤인 6월 29일, 태어난 지 여섯 달 된 딸 테레지아가 그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부가 낳은 여섯 아이 가운데 어른이 될 때까지 산 아이는 둘뿐이었습니다. 아내 콘스탄체도 건강이 좋지 않아 빈 근교 바덴의 온천을 오가며 요양하던 시기였습니다. 모차르트의 불안과 생활 감각은 그가 평생 남긴 편지 1,100통에 직접 적어 둔 문장 속에 남아 있습니다.

여섯 주에 교향곡 세 곡, 주문서는 한 장도 없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서른 살 무렵부터 완성한 곡을 직접 목록에 적어 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목록 덕분에 1788년 여름의 작곡 속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6월 26일 39번 E♭장조, 7월 25일 40번 g단조, 8월 10일 41번 C장조 《주피터》. 교향곡 세 곡이 여섯 주 남짓한 사이에 완성됐습니다.
문제는 그 목록에 곡을 부탁한 사람이나 예정된 연주 날짜가 함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20세기 전반의 저자들은 낭만적인 답을 골랐습니다. 모차르트가 당장의 연주를 기대하지 않고 후세를 향해 썼다는 설명입니다.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이를 “영원에 보내는 호소”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즘 학자들은 이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생계를 위해 연주회와 출판을 계속 계산해야 했던 모차르트가, 팔릴 가능성이 없는 대곡을 취미처럼 쌓아 두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남은 추측은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런던행이나 순회 연주를 염두에 둔 준비였다는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악보를 출판해 급전을 마련하려 했다는 설명입니다. 어느 쪽도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세 곡을 나란히 놓으면 성격 차이가 분명합니다. 39번은 느린 서주로 문을 열고 오보에 대신 클라리넷을 처음부터 편성에 넣었습니다. 41번은 마지막 악장에서 주제 여러 개를 동시에 얽는 대위법으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사이에 놓인 40번은 서주도 없고 트럼펫과 팀파니도 없습니다. 화려한 장치를 걷어낸 채 현악기와 목관만으로 30분 가까운 긴장을 이어 갑니다.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아예 세 곡을 한 작품처럼 보았습니다. 근거는 40번의 위치였습니다. 39번에는 느린 서주가 있지만 40번에는 없습니다. 41번처럼 웅장하게 결말을 밀어붙이는 마지막 악장도 40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 교향곡을 이어 놓으면 40번이 가운데 악장처럼 들린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세 곡 가운데 《주피터》는 대위법의 정점으로, 39번은 축제적인 밝음으로 자주 설명됩니다. 40번만 단조로 쓰였습니다. 승리를 선포할 트럼펫과 팀파니도 편성에서 빠졌습니다.
모차르트가 g단조를 꺼내던 자리
모차르트가 g단조를 고른 일은 갑자기 튀어나온 선택이 아닙니다. 1760년대부터 독일어권 예술에는 ‘슈투름 운트 드랑’, 우리말로 옮기면 질풍노도라 부르는 흐름이 번졌습니다. 이성과 균형을 앞세우던 계몽주의 취향에 맞서, 다듬지 않은 감정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교향곡에서는 단조, 급격한 셈여림, 엇박이 그 감정을 나타내는 표지로 쓰였습니다.
요제프 하이든은 1760년대 후반에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단원들의 귀향 요청을 음악으로 전한 f#단조 교향곡 45번 《고별》처럼 낯선 조성과 극적인 표현을 앞세운 작품도 나왔습니다. 열일곱 살 모차르트도 1773년에 교향곡 25번 g단조를 씁니다. 영화 《아마데우스》 첫 장면에 쓰이면서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해진 바로 그 곡입니다.
모차르트가 g단조로 쓴 작품들을 떠올리면 이 조성의 성격이 더 또렷해집니다. 현악 5중주 K.516, 피아노 4중주 K.478,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미나가 사랑을 잃었다고 믿고 부르는 아리아 ‘아, 사라져 버렸네’가 모두 비슷한 정서를 품고 있습니다. 대체로 환하게 웃는 음악이라기보다 불안과 상실을 끌어안은 음악에 가깝습니다. 번호가 붙은 교향곡 41곡 가운데 단조 교향곡은 25번과 40번, 딱 둘입니다. 열일곱 살의 25번이 감정을 밖으로 터뜨리는 곡이라면, 서른두 살의 40번은 같은 조성을 고전 형식 안에 묶어 둔 채 내부의 균열을 드러냅니다.

악보가 두 벌인 이유 — 클라리넷이 앉을 자리
교향곡 40번에는 자필 악보가 두 벌 남아 있습니다. 처음 쓴 악보의 관악기 편성은 플루트 하나, 오보에 둘, 파곳 둘, 호른 둘이었고, 클라리넷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모차르트는 클라리넷 두 대를 새로 넣었고,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 플루트와 오보에 파트까지 다시 손봤습니다. 학자들은 이 개정을 1791년 무렵으로 봅니다.

클라리넷 두 대가 들어오면 목관의 중간 음역이 한층 두터워집니다. 오보에는 같은 음역에서도 선이 가늘고 또렷하게 솟는 편이고, 클라리넷은 둥글고 부드럽게 퍼집니다. 그래서 개정판의 목관은 화성의 가운데가 더 촘촘히 채워진 소리로 들립니다. 오늘날 연주는 대부분 이 개정판을 씁니다.
반대로 요즘 원전 연주 가운데는 클라리넷이 없는 초기 판본을 일부러 고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보에가 맡았던 선율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목관의 윤곽이 훨씬 날카롭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개정판에서는 그 선율의 일부가 클라리넷으로 넘어가면서 오보에가 한 발 물러섭니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모차르트가 같은 곡을 두 번 다르게 상상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두 악보가 어떻게 전해졌는지도 비교적 분명합니다. 1860년대에 요하네스 브람스가 두 판본의 자필 악보를 사들였고, 뒷날 빈 악우협회에 기증했습니다. 두 악보는 지금도 그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브람스가 악보를 보존해 준 덕분에, 우리는 모차르트가 이 곡을 한 번 쓰고 끝낸 것이 아니라 다시 손봤다는 물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물증은 곧 연주 가능성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모차르트가 굳이 악보를 고쳐 썼다면, 어딘가에서 실제로 연주할 계획이 있었다고 볼 만한 강한 정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네 악장, 한 번도 풀리지 않습니다
이 교향곡의 특이함은 첫 마디부터 마지막 화음까지 긴장이 한 번도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고전 시대의 단조 교향곡은 보통 마지막 악장에서 같은 이름의 장조로 넘어가 승리를 노래하며 끝냈습니다. 40번은 그 관습을 지키지 않습니다. 네 악장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긴장을 붙들고 가는지 차례로 짚어 보겠습니다.
1악장 — 서주 없이 한숨부터
느린 서주가 없습니다. 비올라가 잘게 쪼갠 8분음표로 바닥을 깔면 그 위로 바이올린이 곧장 주제를 얹습니다. 반음씩 아래로 처지는 두 음의 모양 때문에 이 주제를 ‘한숨 동기’라고 부릅니다. 클래식을 한 번도 찾아 들은 적 없는 사람도 이 여덟 마디는 어디선가 들어봤다고 말할 만큼 익숙합니다. 모차르트의 음악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 중 하나입니다.
구조는 소나타 형식입니다. 주제 둘을 먼저 들려주는 제시부, 그 재료를 흩뜨리고 밀어붙이는 전개부, 처음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재현부로 이어집니다. 제2주제가 B♭장조로 잠깐 밝아지지만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승부는 전개부에서 납니다. 한숨 동기가 토막으로 잘려 악기 사이를 오가는 동안 조성은 발 디딜 곳을 잃습니다. 짧아진 동기를 악기들이 거칠게 이어받는 이 대목이 1악장에서 가장 험한 자리입니다.
시작 방식 자체가 당시 관습에서 벗어났습니다. 18세기 교향곡은 보통 전체 합주의 화음이나 느린 서주로 청중의 자세를 먼저 잡아 준 다음 주제를 내놓았습니다. 40번은 그 절차를 건너뜁니다. 비올라 반주가 먼저 돌기 시작하고 아직 아무 준비도 끝나지 않은 자리에서 주제가 들어옵니다. 준비 동작 없이 본론이 먼저 나오는 순서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첫 3초에서 비올라의 떨림이 먼저 깔리고 바이올린이 뒤늦게 들어옵니다. 그 순서를 귀로 짚어 보세요.
2악장 — 위로처럼 들리는 자리가 가장 위태롭습니다
E♭장조로 넘어가는 느린 악장은 얼핏 숨 돌리는 자리처럼 들립니다. 현악기가 조심스럽게 노래를 꺼내고 목관이 받아 줍니다. 그런데 노래의 마디마디에는 반음씩 내려가는 음계가 박혀 있습니다. 박자를 밀어내는 당김음도 규칙적으로 끼어듭니다. 편안한 표면 아래로 계속 발이 걸리는 구조입니다.
이 악장에서 특히 들어야 할 것은 실내악처럼 얇게 짜인 소리입니다. 목관 독주와 현악기를 손가락으로 뜯는 피치카토가 번갈아 나오는 대목은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대화에 가깝습니다. 전개부에서 선율이 다시 단조로 떨어질 때, 1악장의 기운이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게 드러납니다. 구색 맞추기용 느린 악장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불안을 안쪽에서 이어 가는 악장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 시작에서 목관이 화답할 때마다 반음이 아래로 미끄러집니다. 그 순간을 쫓아가 보세요.
3악장 — 발이 꼬이는 미뉴에트
미뉴에트는 궁정에서 우아하게 추던 3박자 춤입니다. 그런데 이 미뉴에트에 맞춰 걷기는 어렵습니다. 3박자 흐름 위에 2박자 악센트를 얹는 헤미올라가 계속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셋을 세다가 갑자기 둘로 끊기는 식이라 다리가 엉킵니다. 악보에 붙은 sf 표시도 예상 밖의 박에서 터집니다. 춤곡 자리에 춤이 안 되는 곡을 앉힌 겁니다.
이 악장을 눈여겨본 후배가 있습니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이 미뉴에트를 손으로 베껴 적은 뒤, 1816년에 쓴 교향곡 5번 B♭장조의 3악장에 그 흔적을 뚜렷하게 남겼습니다. 한편 거친 미뉴에트 가운데 놓인 트리오에서는 조성이 G장조로 바뀝니다. 목관이 목가풍 선율을 노래하고 현악기가 가볍게 받습니다. 이 짧은 대목이 유난히 위로처럼 들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앞에서 미뉴에트가 그만큼 몰아붙였으니까요.
🎧 여기서 들으세요 — 3악장 앞부분에서 셋을 세다가 둘로 넘어가는 순간이 헤미올라입니다. 발로 박자를 세어 보세요.

4악장 — 열두 음 가운데 열한 음
피날레는 곧게 솟아오르는 음형으로 문을 엽니다. 으뜸화음의 음들을 밟고 빠르게 올라가는 이 모양을 ‘만하임 로켓’이라 부릅니다. 18세기 독일 만하임 궁정 악단이 즐겨 쓰던 수법인데, 원래는 밝은 흥분을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모차르트는 그 로켓을 단조에 심었습니다. 음악학자 닐 재슬로는 이 악장을 두고 프랑스 춤곡 부레의 리듬에 만하임 로켓을 붙여 놓고는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거대한 소나타 형식으로 밀어붙였다고 평했습니다.
이 곡의 가장 대담한 여덟 마디는 전개부 첫머리에 있습니다. 도약하는 음들이 이어지는 동안 열두 개 반음 가운데 열한 개가 지나가고, 빠진 음은 이 곡의 중심인 으뜸음 G.뿐입니다. 조성의 중심을 일부러 비워 둔 셈이라, 듣는 사람은 자기가 어느 조에 있는지 잠시 놓칩니다. 18세기 교향곡에서 이만큼 노골적으로 중심을 지우는 대목은 드뭅니다.
재현부가 돌아와도 긴장은 풀리지 않습니다. 음악학자 사이먼 키프는 이 점을 콕 집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다른 g단조 작품은 마지막 악장을 가볍게 처리하는 반면, 40번의 피날레는 마지막 화음까지 단조를 놓지 않습니다. 베토벤이 c단조를 뚫고 C장조로 나오는 ‘운명’이 1808년 초연되었으니, 장조로 넘어가지 않는 이 결말은 그보다 20년 앞선 선택이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4악장 시작 직후 솟구치는 음형이 만하임 로켓입니다. 그 뒤 전개부 첫머리에서 조성이 사라지는 대목까지 이어서 들어보세요.
글 맨 위의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실황이 현대 오케스트라의 매끄러운 음향을 들려준다면, 이 영상은 반대쪽 끝입니다. 아르농쿠르가 자기 악단과 옛 악기로 잡은 소리는 훨씬 거칠고 메마릅니다. 특히 1악장 첫 마디 비올라의 8분음표가, 매끈한 음향에서는 배경처럼 깔리다가 여기서는 초조한 손떨림처럼 들립니다. 같은 악보에서 두 세계가 나오는 셈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못 들었다는 이야기
이 교향곡에 붙은 가장 끈질긴 통념은 모차르트가 자기 곡을 끝내 듣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가 당대 청중이 아니라 후세를 위해 곡을 썼다는 낭만적 해석과 맞물려 백 년 넘게 반복됐습니다. 음악학자 닐 재슬로는 편지와 연주회 자료를 다시 대조하며, 이 통념이 생각보다 허술한 전제 위에 서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 번째 증거는 편지 한 통입니다. 1802년 7월 10일, 음악가 요한 벤첼이 라이프치히의 출판인 암브로시우스 퀴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에는 빈의 고트프리트 판 스비텐 남작 집에서 이 교향곡이 연주됐고, 그 자리에 모차르트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다만 벤첼이 강조한 것은 연주 사실 자체보다 연주가 엉망이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곡이 틀리게 연주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 모차르트가 연주 도중 방에서 나가 버렸고, 벤첼은 그 이야기를 모차르트 본인에게 직접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두 번째 증거는 포스터입니다. 1791년 4월 17일, 빈 부르크테아터에서 열린 음악가협회 연주회는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지휘했고, 프로그램 첫 곡에는 “모차르트 씨가 작곡한 대교향곡”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날 오케스트라에는 클라리넷 주자인 안톤 슈타틀러와 요한 네포무크 슈타틀러 형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클라리넷이 필요한 모차르트 교향곡은 39번과 40번뿐이므로, 후보는 두 곡으로 좁혀집니다. 200년 넘게 독살 소문에 시달린 살리에리에게서 확인되는 살리에리가 실제로 모차르트의 음악에 한 일은 음모가 아니라 모차르트 작품을 연주회 무대에 올린 일이었습니다.
재슬로는 모차르트가 직접 마련한 연주회들도 함께 짚었습니다. 1789년 4월 14일 드레스덴, 5월 12일 라이프치히, 1790년 10월 15일 프랑크푸르트로 이어진 여행 연주회는 새 교향곡이 연주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날짜별 프로그램이 모두 남아 있지 않아 어느 자리에서 어떤 곡이 실제로 연주됐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모차르트가 이 곡을 서랍에 넣어 둔 채 세상을 떠났다는 설명은 남아 있는 자료와 잘 맞지 않습니다.

💡 사실은요 — “모차르트는 40번이 연주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설명이 오래 돌았습니다. 하지만 1802년 벤첼의 편지에는 판 스비텐 남작 집에서 이 곡이 연주됐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고, 1791년 4월 부르크테아터 연주회 포스터도 이 통념을 흔드는 자료로 거론됩니다. 여기에 모차르트가 직접 클라리넷을 넣어 악보를 고쳐 썼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이 곡이 실제 연주와 무관하게 책상 위에만 머물렀다는 설명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베토벤은 스물아홉 마디를 베껴 적었습니다
뒷세대 작곡가가 이 곡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베토벤의 스케치북에서도 확인됩니다. 베토벤은 40번의 총보에서 스물아홉 마디를 골라 자기 스케치북에 옮겨 적었습니다. 구스타프 노테봄은 그 스케치북을 살피다가, 베토벤이 베껴 적은 마디들이 교향곡 5번 스케치 사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내용은 노테봄이 1882년 세상을 떠난 뒤 1887년에 나온 유고 논문집 《베토베니아나》 제2권에 실렸습니다. 실제로 5번 3악장의 시작 음 배열은 모차르트 40번 피날레의 첫 음형과 닮아 있습니다.
이 곡을 기억한 흔적은 동시대 작곡가 하이든에게서도 보입니다. 재슬로는 하이든이 1801년 오라토리오 《사계》 후반부에서, 죽음을 응시하는 아리아에 40번 2악장의 선율을 넌지시 인용했다고 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모차르트를 향한 추도였다는 해석입니다. 그해는 모차르트가 죽은 지 딱 10년 되는 해였습니다.
19세기에도 이 곡이 계속 연주되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당시 유럽의 연주회에서는 18세기 음악이 레퍼토리의 중심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40번은 연주 목록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조 교향곡 특유의 긴장과 어두운 정서가 낭만주의 청중의 취향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악학자 닐 재슬로와 윌리엄 코드리는 이 교향곡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열쇠 같은 작품으로 정리했습니다.
평가는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은 이 곡에서 “그리스적인 가벼움과 우아함”을 읽었고, 도널드 토비는 오페라 부파의 성격을 보았습니다. 20세기 중반 찰스 로젠은 이 곡을 “열정과 폭력과 슬픔의 작품”이라고 썼습니다. 같은 악보에서 우아함과 폭력이 함께 읽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곡의 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높은 평가는 이미 19세기 초부터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독일 음악지 《알게마이네 무지칼리셰 차이퉁》은 1804년에 이 곡을 “진짜 걸작”이라 적었고, 1809년에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의 교향곡”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1813년 기사에서는 이 평가가 “고전적 걸작”이라는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휴대전화 벨소리까지 간 한숨
이 곡은 음반 시대의 아주 이른 시기부터 녹음됐습니다. 알려진 첫 음반은 1915년 미국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가 낸 빅터 콘서트 오케스트라 연주입니다. 축음기가 아직 응접실 가구에 가까웠던 시절부터, 이 한숨 같은 동기는 원반에 담겨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장 뜻밖의 기록은 1971년에 나왔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 편곡가 발도 데 로스 리오스는 1악장을 드럼과 스트링이 들어간 팝 버전으로 바꾸고, 스페인의 마누엘 데 파야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했습니다. 이 싱글은 그해 4월 10일 네덜란드 차트 1위에 올라 3주간 자리를 지켰고, 차트에는 열세 주 동안 머물렀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톱10에 들었으며, 미국 빌보드에서는 67위까지 올랐습니다. 같은 싱글의 B면에는 같은 편곡자가 손본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가 실렸습니다. 200년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을 건너, g단조 교향곡의 첫 악장이 팝 차트 1위에 오른 셈입니다.
그 뒤로도 이 여덟 마디는 광고와 영화, 휴대전화 벨소리 속에서 계속 되살아났습니다. 정원 딸린 집에 살면서도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쓰던 남자가, 여섯 주 사이에 주문서도 없이 써낸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선율은 238년 뒤 지하철 옆자리의 주머니에서 다시 울립니다. 이 음악이 절망의 산물이었다는 설명보다 훨씬 이상하고, 훨씬 재미있는 결말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음표를 눈으로 따라가며 들으면 귀로만 들을 때 지나치기 쉬운 움직임이 드러납니다. 특히 1악장 전개부에서 잘린 동기가 이 악기에서 저 악기로 건너가는 경로, 4악장 전개부 첫머리에서 조성이 흩어지는 여덟 마디가 그렇습니다.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는 교향곡 40번 악보 보기 (IMSLP) 페이지가 공개되어 있어, 들으면서 악보를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들을까요
녹음이 워낙 많아 처음 고를 때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세 장으로 좁혀 보겠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 전체 윤곽을 잡아 주는 연주, 선율을 노래처럼 살리는 연주, 옛 악기로 익숙한 인상을 뒤집는 연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 Wikipedia (영어) — Symphony No. 40 (Mozart): 작곡 시기·두 판본·초연 논의·수용사
- IMSLP — 교향곡 40번 g단조 K.550 악보 (공개 도메인)
- Michael Lorenz, Mozart’s Apartment on the Alsergrund (Mozart Society of America Newsletter, 2010) — 1788년 알저그룬트 집의 계약·집세·방 구성
- Wikipedia (영어) — Michael Puchberg: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 21통과 금액
- Wikipedia (영어) — Waldo de los Ríos: 1971년 편곡 싱글의 차트 성적
이어서 듣기 — 같은 여름에서 갈라진 길
이 곡이 좋았다면 네 곡을 더 이어서 들어 볼 만합니다. 먼저 같은 여름과 같은 조성이라는 단서로 모차르트 안에서 길을 넓히고, 이어서 모차르트식 균형과 짧은 동기의 추진력이 다음 세대 작곡가들에게 어떻게 다르게 이어졌는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교향곡이라는 형식 자체가 낯설다면 마지막 입문 글에서 큰 틀을 먼저 잡아도 좋습니다.
- 같은 여름에 완성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C장조 《주피터》 K.551에서는 g단조의 긴장이 C장조의 장대한 질서로 바뀝니다.
-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K.183는 더 젊은 시기의 g단조가 얼마나 직접적이고 거칠게 터져 나오는지 들려줍니다.
- 슈베르트 교향곡 5번 B♭장조 D.485는 모차르트의 맑고 간결한 균형감이 슈베르트의 선율감으로 옮겨 간 예로 들을 수 있습니다.
-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운명’은 짧은 동기가 어떻게 한 곡 전체의 추진력으로 커지는지 비교해 듣기 좋습니다.
- 교향곡의 악장 구성과 기본 용어가 낯설다면 교향곡이란 무엇인가 — 입문 가이드에서 큰 틀을 먼저 잡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