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작품명
- 피아노 협주곡 5번 E♭장조, Op. 73 ‘황제’
- 작곡 시기
- 1809년
- 초연
-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피아노)
요한 필리프 크리스티안 슐츠 (지휘) - 악장
- 3악장
I. Allegro (E♭장조)
II. Adagio un poco mosso (B장조)
III. Rondo: Allegro (E♭장조) - 편성
- 독주 피아노, 현악 5부,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 헌정
- 루돌프 대공 (Archduke Rudolf of Austria)
- 연주 시간
- 약 38–40분
지휘자의 손이 허공을 가르기도 전에 피아노가 먼저 기선을 제압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육중한 화음으로 응수하면 피아노는 다시 매섭게 솟아오르고, 관현악이 한 번 더 화답하죠. 비로소 진짜 주제가 고개를 듭니다. 이 짧은 30초의 도입부로 베토벤은 협주곡의 궤도를 완전히 비틀어 놓았습니다. 피아노가 무대 위에서 군림하는 방식 자체가 이전과는 전혀 달랐으니까요.
1809년 봄, 나폴레옹의 포병대가 빈 시내를 타격하는 동안 베토벤은 지하실에 틀어박혀 이 곡을 써 내려갔습니다. 양귀에는 쿠션을 바짝 댄 채였죠. 포탄 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고통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봄이 오기 불과 다섯 달 전인 1808년 12월, 그는 빈 극장에서 단단히 쓴맛을 보았습니다. 얼음장 같은 극장에서 4시간짜리 마라톤 연주회를 강행했는데, 합창환상곡이 중간에 엉켜버려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는 참사가 벌어졌거든요. 그날은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청중 앞에 선 마지막 무대가 되었습니다. 더는 자신의 곡을 연주할 수 없게 된 한 남자가, 고작 몇 달 뒤 피아노를 위해 가장 거대하고 당당한 작품을 빚어낸 셈입니다.
이 곡에는 ‘황제’라는 근사한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곡을 지은 베토벤 본인은 이 거창한 이름을 단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죠.

전쟁의 포화 속에서 — 1809년 빈과 베토벤
이 협주곡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시간을 1808년 12월 22일로 되돌려야 합니다.
그날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베토벤은 직접 판을 짠 대규모 ‘아카데미’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라인업이 실로 무시무시했습니다. 교향곡 5번 초연, 교향곡 6번 ‘전원’ 초연, 피아노 협주곡 4번, 거기에 합창환상곡 초연까지 이 묵직한 작품들을 하룻밤에 전부 밀어 넣었으니까요. 난방조차 되지 않는 냉골 극장에서 관객들은 외투로 몸을 둘둘 만 채 4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리허설부터 삐걱대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합창환상곡 연주 도중 호흡이 엉켜버렸고, 결국 베토벤이 직접 오케스트라를 멈춰 세운 뒤 곡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죠. 청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벌어진 공개 참사였습니다.
이 연주회는 베토벤이 피아니스트로서 대중 앞에 선 사실상의 고별 무대였습니다. 청각 기능이 이미 치명적으로 훼손된 상태에서 오케스트라와 정밀하게 호흡을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죠. 독주자로서의 수명은 그날 밤을 기점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스스로 건반을 두드릴 수 없게 된 이 남자는 기어코 가장 찬란한 피아노 협주곡을 잉태해 내기 시작합니다.
1809년 5월 11일과 12일, 프랑스군이 빈 시내를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습니다. 도시는 단 하루 만에 백기를 들었고 나폴레옹은 의기양양하게 빈으로 입성했죠. 시민들은 두려움에 질려 어두운 지하실로 숨어들었고, 귀족들은 서둘러 도시를 등지고 달아났습니다.
베토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 역시 빈을 떠나 몸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남았습니다.
그는 당시 일기에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정말 끔찍한 삶이다. 내 주변은 온통 북소리, 총소리, 온갖 종류의 비참함뿐이다.” 청력 상실이 한창 진행 중이던 베토벤에게 포격 소리는 더더욱 공포스러웠습니다. 쿠션을 귀에 바짝 대고 고통을 견뎌냈다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정도니까요.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는 기어이 피아노 협주곡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협주곡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위풍당당한 곡을 말입니다. 포탄이 쏟아지는 도시 한가운데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청각을 부여잡고, 이 사람은 피아노를 위한 선언문을 묵묵히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베토벤을 둘러싼 상황은 꽤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빈의 귀족 사회가 휘청거렸고, 든든했던 주요 후원자들의 입지도 위태로워졌거든요. 사실 1809년 초만 해도 그는 빈을 훌쩍 떠나 카셀 궁정악장으로 자리를 옮길 참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루돌프 대공을 비롯한 세 명의 귀족이 그를 붙잡고자 종신 연금을 약속했죠. 이것이 바로 ‘베토벤 연금 협약’입니다.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터진 전쟁 탓에 협약 자체가 흔들리긴 했지만, 베토벤은 짐을 풀고 빈에 남아 꿋꿋하게 작곡을 이어갔습니다.
작곡은 1809년 중반 즈음 얼추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곡의 헌정은 베토벤의 열성적인 제자이자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에게 돌아갔습니다. 오스트리아 황실의 일원이었던 그는 꽤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베토벤의 문하에서 가장 오랜 기간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황제’라는 이름의 진실
‘황제 협주곡’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이 달려 있지만, 베토벤 본인은 이 이름을 지은 적이 없습니다. 애당초 그는 자신의 곡에 표제를 달아주는 일 자체를 질색했으니까요. 그가 마지못해 허락한 별명들은 대개 악보를 팔아야 하는 출판사나 제자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별명에는 묘한 아이러니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1804년,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의 겉표지에서 나폴레옹에게 바치는 헌정 문구를 거칠게 찢어버렸죠. “그도 결국 보통 인간에 불과한 것인가!”라며 격분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자유와 공화정의 상징이라 믿었던 나폴레옹이 제 손으로 황관을 쓰자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던 겁니다. 그로부터 5년 뒤, 다름 아닌 그 나폴레옹의 군대가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포를 쏘아대는 와중에 이 협주곡을 썼습니다. 나폴레옹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남자가 쓴 곡에, 하필 나폴레옹의 포탄 냄새를 맡으며 ‘황제’라는 이름이 덜컥 붙어버린 셈입니다.
이 거창한 별명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를 두고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가장 널리 퍼진 설은 한 프랑스군 장교의 일화입니다. 1811년 라이프치히 초연 당시, 곡의 장대한 기세에 매료된 프랑스 장교가 무의식중에 “C’est l’Empereur!”(이건 황제다!)라고 외쳤다는 내용이죠. 제법 낭만적인 그림이긴 하나,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출처는 없습니다.
또 다른 설은 영국의 출판업자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가 홍보 전략으로 붙였다는 주장입니다. 독일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겸 출판업자였던 크라머가 배후로 지목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독 영어권에서 일찌감치 ‘Emperor Concerto’라는 명칭이 쓰였기 때문이죠. 흥미롭게도 정작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이 화려한 별명을 좀처럼 쓰지 않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현지에서는 그저 건조하게 ‘피아노 협주곡 5번(Klavierkonzert Nr. 5)’이라 부를 뿐입니다. 요컨대 ‘황제’는 주로 영어권 무대에서 통용되는 이름입니다.
기원이 무엇이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남습니다. 작곡가 자신은 단 한 번도 이 꼬리표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적이 없다는 것이죠. 아이러니한 건, 이 불청객 같은 별명이 곡의 정체성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규모, 당당한 기골, 1악장의 문을 여는 순간의 선언적인 에너지까지 전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냅니다. 세속의 나폴레옹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의 황제라는 뜻에서 말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피아니스트가 쓴 피아노 협주곡
베토벤의 청력 손실은 20대 후반 무렵부터 일찌감치 시작되었습니다. 1802년,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써 내려갈 당시 그는 이미 심각한 청각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고, 삶을 이어갈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고백했죠. 하지만 결국 그는 살아남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결심을 지탱해 줄 유일한 길은 다름 아닌 음악뿐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1808년 12월 아카데미 연주회의 참사는 그 뼈아픈 현실을 잔혹하리만치 선명하게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교향곡 5번과 6번을 처음 선보이고, 피아노 협주곡 4번의 건반을 직접 두드리며, 합창환상곡의 지휘봉까지 쥐었던 그날 밤 말입니다. 난방도 안 되는 냉골 극장에서 4시간 동안 이어진 마라톤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모든 관객이 똑똑히 지켜보았죠.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박자를 맞추는 일은 이미 불가능에 가까웠고, 합창환상곡은 결국 중간에 멈춰 서야만 했습니다. 이 쓰라린 밤을 기점으로, 베토벤은 대중 앞에서 다시는 피아노 앞에 앉지 않겠다고 마음을 접습니다.
해가 바뀌어 1809년에 접어들자 그의 청각은 한층 더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버거워졌고, 하물며 시끄러운 연주회장에서 음악의 결을 듣는 일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시점에 피아노 협주곡을 써 내려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베토벤은 이 곡을 완성하더라도 두 번 다시 자신의 손으로 연주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손가락이 아닌, 언젠가 이 악보를 펼칠 타인의 손가락을 위해 쓴 곡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지독할 정도로 피아니스트 중심적으로 굴러갑니다. 1악장부터 피아노는 오케스트라를 제치고 가장 먼저 무대에 난입하며, 곡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독주 악기로서 쥐고 있는 고삐를 놓지 않거든요. 더 이상 직접 다룰 수 없는 악기를 향해 남기는 일종의 거대한 선언문이었던 셈입니다.
그는 당시 일기와 편지를 통해 벼랑 끝에 몰린 처지를 거듭 토로했습니다. “내 주변은 온통 북소리, 대포 소리뿐이다. 끔찍한 삶이다.” 하지만 빗발치는 포격 속에서 쿠션으로 양귀를 틀어막으면서도 기어이 펜을 놓지는 않았죠. 청각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소리를 빚어내는 일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겁니다. 오히려 더 거대하고, 더 넓으며, 한층 당당하게 음표를 쌓아 올렸습니다. 물리적인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어쩌면 머릿속에서는 훨씬 더 순수한 형태로 음악을 직조해 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Allegro — 먼저 터지는 피아노
이 악장이 첫 문을 여는 방식은 당시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본래 협주곡의 전통적인 문법을 따르자면, 1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먼저 길게 밑그림(제시부)을 그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독주자가 무대에 오릅니다. 이 철저한 순서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거치며 절대 깨져서는 안 될 확고한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죠. 심지어 베토벤 자신이 썼던 이전의 피아노 협주곡들조차 이 얌전한 틀을 순순히 따랐습니다.
그런데 5번에 이르러 상황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악보를 펴면 첫 번째 마디부터 다짜고짜 피아노가 진을 치고 있거든요. 오케스트라가 E♭장조 화음을 육중하게 쾅 울리면, 피아노가 화려하고 기다란 패시지로 즉각 응수합니다. 오케스트라의 C장조 화음이 떨어지면 피아노가 또 받아치고, 오케스트라의 A♭장조 화음에 피아노가 다시 한번 응답하죠. 무려 세 번에 걸친 팽팽한 주고받기가 끝나고 나서야, 오케스트라는 머쓱하게 본 주제를 펼쳐 놓기 시작합니다.
언뜻 들으면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지어내는 즉흥 카덴차 같지만, 실은 베토벤이 음표 하나하나의 자리까지 깐깐하게 통제해 둔 정교한 설계입니다. 게다가 이 악장의 끝자락에는 후대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단호한 지시어 하나가 적혀 있습니다. 바로 “카덴차를 연주하지 마시오(Non si fa una Cadenza, ma s’attacca subito il seguente).”라는 문구 말입니다.
이 깐깐한 지시문이 품은 뜻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당시 음악계의 관습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본래 협주곡 1악장 끝자락에 자리한 카덴차는 독주자가 고삐를 쥐고 자유롭게 즉흥 연주를 뽐내는 구간이었습니다. 작곡가는 무대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오롯이 연주자 개인의 기량과 아이디어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시간이었죠. 모차르트 역시 자신의 협주곡에서 카덴차 자리를 텅 비워두는 경우가 흔했고,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마다 각기 다른 카덴차를 그 자리에서 지어내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 평화로운 전통을 가차 없이 끊어냈습니다. 본인이 손수 카덴차를 지어 악보에 단단히 박아 넣고는, 연주자의 즉흥 연주를 엄격히 금지해 버린 겁니다. 작곡가와 연주자 사이의 팽팽하던 권력의 추가 확 기울어지는 순간입니다. 이전까지 연주자에게 넉넉히 내어주었던 자유의 영토를 작곡가가 도로 몰수해 버렸으니까요. “내 곡의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 네가 해석할 여지는 주겠지만, 네 맘대로 즉흥 연주를 할 여지는 없다.” 이 단호한 결정은 이후 낭만주의 협주곡이 나아갈 거대한 물길의 방향을 완전히 비틀어 놓았습니다.
1악장 전체는 웅장한 골격과 펄떡이는 에너지로 꽉 차 있습니다. 제2주제가 제법 서정적으로 숨을 고르긴 하지만, 극을 밀고 나가는 주된 엔진은 언제나 힘차고 선언적이죠. 20분을 훌쩍 넘기는 긴 호흡의 악장인데도 묘하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거든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쉴 새 없이 주도권을 뺏고 뺏기는 사이, 그 짱짱한 에너지가 한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감상하실 때 귀를 기울여 볼 포인트가 있습니다. 악장이 열리자마자 벼락같이 쏟아지는 세 차례의 팽팽한 교환, 발전부에서 피아노가 왼손 베이스와 오른손 멜로디의 끈을 동시에 쥐고 오케스트라와 정면으로 맞붙는 구간, 그리고 악장 끄트머리에서 베토벤이 친히 못 박아둔 카덴차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코다(종결부)로 녹아들어 가는지를 꼭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악장: Adagio un poco mosso — 고요 속의 심연
1악장의 웅장한 포효가 잦아들고 나면, 2악장은 문을 열고 전혀 다른 세계로 성큼 들어섭니다.
현악기들이 약음기를 달고 숨죽여 B장조 코랄, 그러니까 마치 찬송가처럼 경건하게 화음을 쌓으며 선율을 띄우기 시작합니다. 이 악장의 베이스캠프인 B장조는 1악장의 E♭장조와 무척 독특한 촌수를 맺고 있습니다. 반음 차이가 나는 까마득히 먼 조성이라, 뼈대 있는 전통 소나타나 협주곡에서는 웬만해선 밟지 않는 동선이거든요. 하지만 베토벤은 다분히 의도적인 이 원거리 도약을 통해 청중을 낯선 감정의 심연으로 훅 끌어내립니다.
피아노가 처음 조심스레 발을 들이는 음형을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훌쩍 높은 음역에서 선율을 살포시 얹어놓듯 제시하는데, 그 질감이 당황스러울 만큼 다정하고 내성적입니다. 방금 전까지 그 거대한 1악장을 들었다 놨다 하던 호전적인 피아노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 악장은 분명 느릿느릿 걷고 있지만 결코 한자리에 멈춰 서 있지는 않습니다. 제목에 붙은 “un poco mosso(약간 움직임이 있게)”라는 지시어처럼, 잔잔한 파동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유유히 나아갑니다. 중간쯤 피아노의 화려한 장식음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이때 숨 막히는 고요함과 찬란한 화려함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아주 기묘한 균형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악장은 끝을 맺는 척하다가 곧장 3악장의 문턱을 넘어버립니다. 피아노가 2악장의 마지막 화음을 아스라이 붙잡고 있는 그 찰나의 틈을 타, 아주 낮은 음역에서 3악장의 론도 주제가 도둑처럼 슬쩍 고개를 내밀거든요. 악보에는 이 은밀한 환승 구간을 두고 ‘attacca(쉬지 말고 이어서 연주하라)’라는 지시가 뚜렷하게 박혀 있습니다.
이 기막힌 전환이 낳는 심리적 타격감은 꽤나 강렬합니다. 듣는 이는 아직 아다지오가 깔아놓은 명상적인 고요에 푹 잠겨 있거든요. 숨소리마저 느려지고 시간의 흐름조차 가늠하기 힘들어진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죠. 바로 그 틈을 비집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쾌활한 론도가 터져 나옵니다. 작정하고 노린 감정의 급전환인 셈입니다. 작곡가 베토벤이 객석에 앉은 이들의 심리 상태를 얼마나 정밀하고 치밀하게 계산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귀 기울여 볼 포인트입니다. 2악장 도입부에서 현악기의 코랄이 얼마나 숨죽여 공간을 장악하는지, 피아노가 처음 발을 디딜 때 공기의 질감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악장 끄트머리에서 3악장으로 훌쩍 넘어가는 그 기막힌 찰나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3악장: Rondo. Allegro — 춤추듯 달려가는 피날레
2악장을 짙게 물들였던 B장조가 B♭장조를 징검다리 삼아 본래의 E♭장조로 무사히 귀환하며, 3악장의 쾌활한 막이 오릅니다.
론도 형식으로 짜인 이 악장의 심장은 다름 아닌 리듬감입니다. 6/8박자로 통통 튀는 주제는 꽤나 경쾌해서 마치 춤곡 같은 인상마저 주거든요. 베토벤은 이 주제를 약음 페달을 밟고 은밀하게 속삭이듯 꺼내놓다가 점차 덩치를 불려 나가는 수법을 즐겨 씁니다. 잔뜩 기대를 쌓아 올리며 에너지를 꾹꾹 눌러 담았다가 시원하게 터뜨리는 명쾌한 패턴이 악장 내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베토벤이 이 악장에서 피아노와 팀파니를 마주 앉혀 대화를 나누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둔탁한 타악기와 날렵한 독주 피아노가 팽팽하게 일대일로 핑퐁을 주고받는 그림은 당시로서는 꽤나 도발적인 발상이었죠. 한 번 들으면 귓가에 확 꽂힐 만큼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신나게 달려가던 악장 한가운데서 잠시 4/4박자로 기어를 낮추며 템포가 느슨해지는 구간이 등장합니다. 몹시 명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곧이어 론도 주제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며 귀환하기에 그 극적인 대비가 한층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종착지인 코다에 다가설수록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질세라 불꽃 튀는 합을 맞추며 맹렬하게 속도를 끌어올립니다. 마지막 화음이 바닥에 꽂히기 직전까지 긴장감 넘치는 에너지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가, 아주 짧고 단단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 악장에서 꼭 챙겨 들어야 할 포인트입니다. 피아노가 첫 주제를 넌지시 던질 때 피어오르는 기대감, 피아노와 팀파니의 기묘한 대화, 그리고 느릿한 에피소드 직후 론도 주제가 요란하게 복귀하며 뿜어내는 맹렬한 에너지를 즐겨보세요.

초연, 그리고 라이프치히와 빈의 두 무대
이 거대한 협주곡이 처음 세상에 나온 건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무대에서였습니다. 독주 피아노는 프리드리히 슈나이더가 맡았죠. 객석의 반응은 그야말로 펄펄 끓어올랐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반이 지난 1812년 2월 12일, 드디어 빈 초연의 막이 올랐습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카를 체르니였습니다. 베토벤이 유독 살뜰히 챙기던 애제자이자 훗날 건반의 마왕 프란츠 리스트를 길러낸 바로 그 피아니스트 맞습니다. 이 묵직한 무대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무 살이었습니다.
베토벤은 이 두 번의 초연 무대 어디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이 세상에 처음 울려 퍼지는 자리에, 정작 곡의 주인이 독주자로 앉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지독한 아이러니이자 차가운 비극입니다.
다만 빈 초연의 열기는 라이프치히의 그것만큼 뜨겁게 타오르진 않았습니다. 베토벤의 음악 언어가 점점 복잡해지자, 빈의 청중들도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이 협주곡은 끈질기게 무대에 올랐고, 19세기 내내 몸집을 불려 나가며 결국 피아노 협주곡 레퍼토리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자리 잡게 되죠.
명연 추천 & 감상 포인트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피아니스트가 음반으로 남겼습니다. 연주자마다 곡을 다루는 솜씨와 성격이 뚜렷하게 갈라지기 때문에, 여러 버전을 나란히 올려두고 비교해 듣는 묘미가 제법 쏠쏠하거든요.
에밀 길렐스 / 조지 셀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1968) 많은 사람이 황제 협주곡 최고 명반으로 꼽는 녹음입니다. 길렐스의 피아노는 당당하고 선명하며, 조지 셀의 오케스트라 해석이 극도로 정밀합니다. 1악장의 박력과 2악장의 깊이 모두 일품이죠.
빌헬름 켐프 / 페르디난트 라이트너 / 베를린 필하모닉 (1961) 독일 전통 해석의 전형. 켐프의 연주는 무겁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특히 2악장의 내성적인 서정성이 뛰어납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 칼 뵘 / 빈 필하모닉 (1979) 폴리니의 명료하고 분석적인 접근이 이 협주곡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감성보다 구조를 중시하는 연주를 좋아하신다면 이 녹음이 맞습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 클라우디오 아바도 (라이브) 아르헤리치가 남긴 황제 협주곡 라이브는 워낙 강렬해서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습니다. 충동적이고 에너지가 폭발적이니까요. 스튜디오 녹음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안깁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 /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1989) 많은 평론가와 애호가가 현대 최고의 황제 협주곡 녹음으로 꼽는 연주입니다. 짐머만의 완벽주의와 번스타인의 표현력이 만나는 지점이 놀랍습니다. 짐머만은 황제를 기교 과시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나누는 대화로 접근합니다. 모든 음에 의도가 있고,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의 호흡이 마치 실내악처럼 긴밀합니다. 1악장의 거대한 스케일과 2악장의 섬세한 내면이 한 연주 안에서 양립하는 드문 녹음입니다.
레온 플라이셔 / 조지 셀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1961) 플라이셔가 오른손 부상으로 양손 연주를 중단하기 전의 녹음입니다. 놀라운 에너지와 구조적 명확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셀의 정밀한 오케스트라 지원 위에서 플라이셔의 피아노가 강렬하게 노래합니다. 젊은 연주자의 패기와 거장 지휘자의 통제력이 만든 긴장감이 이 녹음의 핵심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5번 Op.73 ‘황제’ 악보 보기 (IMSLP)
처음 듣는다면 — 1악장을 여는 30초
클래식 음악이 낯설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일단 1악장의 첫 30초만 재생해 보시길 권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쾅!” 하고 거대한 화음을 꽂아 넣으면, 피아노가 넓은 건반을 종횡무진하며 음표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냅니다. 다시 한번 “쾅!”, 그리고 또다시 피아노. 세 번째 “쾅!”이 떨어지고 피아노가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쐐기를 박은 뒤에야, 오케스트라가 비로소 본격적인 행진곡의 시동을 걸죠. 이 짧은 30초 동안 음악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굳이 머리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귀보다 몸이 먼저 그 에너지를 알아채니까요.
전곡 감상이 살짝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이런 순서로 징검다리를 건너듯 접근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1단계: 1악장의 첫 3분만 들어보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세 번에 걸쳐 팽팽하게 힘을 겨룬 뒤, 관현악이 행진 주제를 힘차게 연주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까지입니다. 이 3분의 몰입감을 즐기셨다면, 남은 시간은 아주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겁니다.
2단계: 2악장 전체(약 8분) 감상하기. 1악장의 맹렬한 기세를 넘고 나면, 2악장이 문을 여는 순간 밀려오는 공기의 전환에 저절로 숨을 죽이게 됩니다. 약음기를 단 현악기들이 나지막이 노래를 시작할 때, 주변의 소음이 일순간 지워지며 묘한 고요가 찾아오거든요.
3단계: 2악장 끄트머리부터 3악장이 열리는 순간까지 이어서 듣기. 이 지점이 협주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대목이거든요. 아다지오의 고요함에서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쾌활한 론도가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옵니다.
4단계: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기. 대략 38분에서 40분 남짓 걸립니다. 세 개의 악장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엮여 들어가는 경험은 조각조각 끊어 들을 때와는 아예 궤가 다릅니다.
어떤 음반으로 첫 단추를 꿸지 막막하다면, 앞서 언급한 길렐스/셀 녹음이나 짐머만/번스타인 녹음을 권합니다. 전자가 단단한 균형감과 묵직한 타격감을 자랑한다면, 후자는 현미경 같은 정밀함과 깊숙한 통찰력이 무기입니다. 두 버전 모두 유튜브에서 전곡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곡이 불러일으키는 반응들
이 협주곡을 곁에 두고 여러 감상자들의 반응을 찬찬히 살펴보면, 꽤 흥미로운 패턴 몇 가지가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2악장 아다지오가 1악장보다 훨씬 더 짙은 감상적 파동을 일으킬 때가 잦습니다. 1악장의 기세가 심장 박동을 끌어올리는 건 분명하지만, 정작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파고드는 지점은 2악장이거든요. 현악기들이 약음기를 달고 코랄을 밀어 올리기 시작하면 앞선 악장의 그 들끓던 에너지가 일순간 가라앉으며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몰입이 열립니다. 빗발치는 포탄과 무너져 내리는 청각의 암흑 속에서 이런 절대적인 고요를 빚어낸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가끔은 음악 그 자체보다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2악장에서 3악장으로 건너뛰는 찰나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타이밍을 뻔히 꿰고 있어도 별반 다르지 않죠. 명상에 가까운 고요 속에 무장해제된 채로 있다가 리듬의 기습적인 분출을 맞닥뜨리면 어김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맙니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거나 실소가 터지거나 박동이 빨라지죠. 작곡가가 이 심리적 타격감을 치밀하게 의도했다는 사실이 그저 얄미울 정도로 정교합니다.
이 작품은 종종 감상자들이 ‘협주곡’이라는 낯선 그릇의 쓰임새를 비로소 납득하게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독주 악기와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굳이 한 무대에서 얽혀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 둘의 힘겨루기가 어째서 이토록 흥미진진한지를 1악장의 첫 30초 만에 설득해 버리니까요. 교향곡의 무게감과 독주곡의 화려함 사이에 왜 굳이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지, 이 곡 하나가 그 답을 쥐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음반들을 죽 늘어놓고 보면, 기술적인 직조에 공을 들이는 노선과 맹렬한 감정에 몸을 싣는 노선이 유독 선명하게 갈립니다. 짐머만/번스타인 녹음이 전자의 모범 답안입니다. 음표 하나하나가 정밀하게 세공되어 있고 뼈대가 투명하게 비치며, 피아노와 관현악의 이음새가 자로 잰 듯 맞아떨어집니다. 반면 아르헤리치의 실황 연주는 후자의 진면목을 보여주죠. 단단한 테크닉 위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이 쏟아지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찰나의 순간들이 연주를 펄떡이게 만듭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 섣불리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관점에 따라 아예 결이 다른 작품으로 둔갑해 버리거든요. 그만큼 이 협주곡이 품은 품이 넓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 더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이 곡으로 귀를 연 감상자 상당수가 짐 싸서 떠나지 않고 클래식 음악 전반으로 영토를 넓혀 간다는 사실입니다. 1악장의 직관적인 타격감이 진입 장벽을 시원하게 부수고, 2악장에서 마음을 찌르는 서정성에 무장해제된 뒤, 3악장에 이르러서는 음악이 주는 순수한 쾌감을 챙겨 가니까요. 단 한 곡으로 협주곡이 지닌 다채로운 무기를 몽땅 시연해 보이는 셈입니다. 이 여운을 안고 곧바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로 넘어가 보십시오. 완전히 다른 성격의 걸작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5번이 세상을 향한 호기로운 선언이라면, 4번은 친밀한 대화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