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 강철 같은 타건과 나른한 서정이 한 곡 안에서 팽팽하게 맞서는, 프로코피예프의 대표 협주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악장 도입. 클라리넷이 혼자 긴 선율을 부른 뒤, 피아노가 폭발하듯 뛰어드는 대목.
첫 음반으로는 — 마르타 아르헤리치 · 클라우디오 아바도 · 베를린 필하모닉 (DG, 1967).
프로코피예프는 이 협주곡을 10년 넘게 붙들었습니다. 1911년에 첫 주제를 스케치했고, 1913년에 또 한 덩어리를 적어 서랍에 넣었습니다. 정작 세 악장을 한 곡으로 엮은 시간은 1921년 여름, 프랑스 바닷가에서 보낸 몇 달뿐이었습니다.
’10년 대작’이라는 말은 보통 한 사람이 곡 하나를 붙잡고 다듬고 또 다듬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프로코피예프의 10년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그는 버려 두었던 조각들을 다시 꺼내 한 곡으로 맞췄습니다. 서랍에서 꺼낸 재료 중에는 현악 4중주 스케치도 있었습니다. 피아노에서 검은 건반으로 치는 음을 아예 쓰지 않겠다는 발상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멈춘 채 남아 있던 곡이었습니다.

10년 걸린 곡이라는 말의 진짜 뜻
프로코피예프는 아이디어를 쉽게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곡을 쓰다 막히면 그 부분을 통째로 떼어 스케치북에 남겨 뒀고, 몇 년 뒤 전혀 다른 곡에서 그 조각을 꺼내 썼습니다. 3번 협주곡은 바로 그 습관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1악장의 한 주제는 1911년에 적어 둔 것이고, 여기에 1916년에 손댄 재료가 더해졌습니다. 2악장의 주제와 변주는 1913년에 적어 둔 것이며, 마지막 악장에는 포기한 현악 4중주에서 가져온 재료가 들어갔습니다.
그 현악 4중주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피아노의 흰 건반에 해당하는 음만으로 현악 4중주를 써 보겠다고 스스로에게 숙제를 냈습니다. 올림표나 내림표가 붙는 음, 곧 검은 건반에 해당하는 음을 빼고 곡을 짜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써 보니 제약이 너무 컸고, 그는 중간에 손을 놓았습니다. 대신 그때 만든 주제 하나가 이 협주곡 피날레에 다시 등장합니다.
이 조립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이어 붙였다는 티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년 사이에 적어 둔 주제들이 한 악장 안에서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데도, 처음 듣는 사람은 그것을 한 번에 떠오른 영감처럼 받아들입니다. 프로코피예프가 서른 살 무렵 이미 보여 준 솜씨가 바로 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예전 스케치를 새 곡의 논리 안에 녹여,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들리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아이디어를 아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늘 여러 곡을 동시에 구상했고, 한 곡에서 남은 착상을 다른 곡으로 옮겨 심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스케치북은 언젠가 쓸 재료를 쌓아 두는 창고였습니다. 3번 협주곡은 그 창고에 남아 있던 재료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시 살아난 작품입니다. 버린 게 아니라 미뤄 뒀던 것들이, 한 곡 안에서 제 쓸모를 찾은 것입니다.
러시아를 떠난 남자가 쓴 곡
이 협주곡의 재료는 10년에 걸쳐 조금씩 쌓였습니다. 그 10년은 프로코피예프의 삶이 가장 크게 흔들린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18년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혁명으로 나라가 뒤집히자 스물일곱의 젊은 작곡가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몇 년 동안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연주회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당시 프로코피예프에게는 ‘음악계의 악동’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노래하듯 이어지는 선율보다 강한 타건으로 먼저 기억됐습니다. 건반을 두드리는 힘이 워낙 세서 평론가들은 그의 손가락을 강철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3번 협주곡에서 피아노가 폭발하듯 몰아치는 대목들은 바로 그런 연주자를 위해 쓰인 음악입니다. 작곡가 자신이 무대에서 직접 밀어붙일 수 있도록 쓴 곡이라 연주하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힘과 속도가 또렷하게 살아나 더 시원하게 들립니다.
이 무렵 그의 음악은 불협화음과 날카로운 리듬으로 청중을 자주 놀라게 했습니다. 얌전한 낭만주의에 질린 젊은 작곡가는 일부러 각지고 거친 소리를 골랐습니다. 3번 협주곡이 나중에 뉴욕 무대에서 야유 섞인 반응을 마주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청중에게 이 음악은 지나치게 거칠고 낯설었습니다. 지금은 익숙하게 들리는 그 어긋난 화음이 100년 전에는 도발이었습니다.
그런 작곡가가 왜 하필 이 협주곡에서는 서정을 함께 앞세웠을까요. 핵심은 균형에 있습니다. 각지고 거친 소리만으로는 한 곡을 끝까지 끌고 가기 어렵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도발적인 리듬 사이에 노래처럼 흐르는 선율을 번갈아 배치해 듣는 이가 지치지 않게 했습니다. 3번 협주곡이 그의 다른 실험작보다 널리 사랑받은 데는 이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미국에 머무를 이유도 생겼습니다. 시카고 오페라단이 그에게 오페라를 위촉했습니다. 그는 1918년 이 위촉을 받아 이듬해인 1919년 한 해 만에 〈세 개의 오렌지를 향한 사랑〉을 완성했습니다. 10년에 걸쳐 조각을 모은 협주곡과 달리, 이 오페라는 짧은 시간에 단숨에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낯선 나라에서 오페라 위촉을 붙들고 새 무대를 찾던 시기, 그 흐름 속에서 3번 협주곡도 완성됐습니다.
서방에서 프로코피예프는 자기 곡을 직접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3번 협주곡은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내세울 수 있는 대표곡이 됐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 이 곡을 들고 무대에 올라 작곡가이자 연주자로서 존재감을 증명했습니다. 강렬한 협주곡 한 곡이 낯선 나라에서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것입니다.
발몬트, 그리고 태양의 탬버린
1921년 여름, 프로코피예프는 프랑스 브르타뉴 해안의 작은 마을에 머물렀습니다. 러시아를 떠나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던 시절이라, 조용히 곡을 마무리할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이웃에는 같은 처지의 러시아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상징주의 시인 콘스탄틴 발몬트입니다. 그는 20세기 초 러시아 문단을 주름잡다가, 프로코피예프와 마찬가지로 혁명 뒤 나라를 떠난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프로코피예프가 작업 중이던 협주곡의 일부를 발몬트에게 들려줬습니다. 시인은 그 자리에서 소네트 한 편을 적어 답했습니다. 마지막 행은 이렇습니다. “무적의 스키타이인이 태양의 탬버린을 두드린다.” 스키타이인은 고대 초원을 누비던 기마 유목민을 가리킵니다. 발몬트는 이 피아노 음악에서 매끈한 낭만적 서정보다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힘을 먼저 들었습니다. 땅을 두드리듯 밀고 나가는 리듬이 그에게는 ‘태양의 탬버린’처럼 다가온 셈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답례로 이 협주곡을 발몬트에게 헌정했습니다.

이 일화를 그냥 미담으로 넘기기 아까운 이유가 있습니다. 악기 편성을 보면 타악기에 캐스터네츠와 탬버린이 들어 있습니다. 협주곡에서는 흔치 않은 조합입니다. 그래서 발몬트가 하필 ‘태양의 탬버린’을 떠올렸다는 점은 우연한 말장난처럼만 들리지 않습니다. 그가 붙잡은 원시적 리듬의 이미지는 총보에 적힌 타악기 색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해 여름은 이 협주곡에 온전히 바쳐졌습니다. 10년 동안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인 시간이었습니다. 바닷가의 고요, 시로 응답한 이웃, 서랍 가득한 옛 스케치가 몇 달 사이에 맞물리면서 곡은 완성으로 향했습니다. 그해 가을 프로코피예프는 악보를 들고 대서양을 건널 채비를 합니다. 목적지는 시카고였습니다.
첫 음: 클라리넷의 한숨
센 타건으로 유명한 협주곡이지만, 시작은 뜻밖에도 클라리넷 혼자 맡습니다. 클라리넷은 러시아 민요를 닮은 긴 선율을 천천히 불고, 오케스트라는 그 선율을 받아 조금씩 키워 갑니다. 그동안 피아노는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뒤에 어떤 폭발이 기다리는지 아는 사람도, 이 곡이 이렇게 조용하고 길게 숨을 고르며 열린다는 사실은 들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그러다 현악기가 빠른 음계로 위를 향해 치달아 정점을 찍는 순간, 피아노가 마침내 뛰어듭니다. 조용한 서정을 단칼에 끊고 반짝이는 음표를 쏟아내는 이 첫 등장은, 이 곡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냅니다. 나른한 숨결과 갑작스러운 폭발이 같은 악장 안에서 맞부딪히고, 3번 협주곡의 매력은 바로 그 낙차에서 생깁니다.
피아노의 첫 진입은 이른바 토카타 풍입니다. 토카타는 같은 음형을 빠르고 또렷하게 두드려 나가는 성격의 음악입니다. 여기서 피아노는 노래하는 악기라기보다 타악기처럼 쓰이고, 이런 날카로운 타건과 리듬 감각은 프로코피예프의 대표적인 어법입니다. 1악장 후반에는 갑작스러운 행진곡풍 대목을 지나 두 번째 주제가 나옵니다. 이 주제는 앞의 선율보다 훨씬 날카롭고, 어느 조성에 기대고 있는지도 일부러 흐릿하게 들립니다. 서정과 타격은 이렇게 서로 밀고 당기며 악장을 닫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1악장을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눠 들으면 쉽습니다. 앞부분은 ‘노래’, 피아노가 들어온 뒤는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에 가깝습니다. 두 성격은 번갈아 나오다가 때로는 한순간에 겹칩니다. 노래하던 선율이 문득 두드리는 리듬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이 곡 특유의 속도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악장의 빠르기 지시인 ‘느리게 시작해 빠르게’도, 이 음악이 고요한 도입에 오래 머물지 않으리라는 예고처럼 들립니다.
🎧 여기서 들어 보세요 — 도입부부터 귀를 기울이면, 클라리넷의 느린 선율이 한참 이어지다가 현악기가 위로 치달은 직후 피아노가 뛰어드는 순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이 1악장의 핵심입니다.
가운데 토막: 다섯 번 변신하는 주제
2악장은 주제와 변주 형식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먼저 들려주는 주제는 옛 궁정 춤곡인 가보트를 닮아 조금 뻣뻣하면서도 우아합니다. 20세기 초의 작곡가가 굳이 18세기 춤곡의 걸음걸이를 빌려 온 셈이라, 처음 들으면 시대를 착각할 만큼 단정하게 들립니다. 이 주제가 이후 다섯 번 모습을 바꾸는데, 프로코피예프가 남긴 설명처럼 각 변주의 성격을 하나씩 짚어 가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첫 변주에서는 피아노가 주제의 첫머리를 감상적으로 매만지다가 잔잔한 트릴로 풀어 냅니다. 둘째와 셋째 변주로 가면 속도가 빨라지고, 피아노가 화려한 음형을 몰아치는 사이 오케스트라는 주제의 조각을 곳곳에서 다시 들려줍니다. 넷째 변주에서는 다시 느려져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나직이 주제를 곱씹고, 마지막 다섯째 변주에서는 에너지가 한껏 솟아오릅니다. 그 뒤 처음의 주제가 돌아오며 악장은 조용히 문을 닫습니다.
이 악장을 그냥 ‘느린 악장’으로 뭉뚱그리면 재미의 절반을 놓칩니다. 핵심은 같은 가락이 감상적으로 시작해, 더 빠르고 날렵해졌다가, 다시 가라앉고, 마지막에는 격렬한 에너지로 밀려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섯 가지 표정을 차례로 바꾼다고 생각하면 훨씬 듣기 쉽습니다. 변주가 넘어갈 때마다 속도와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만 붙잡아도 구조가 또렷하게 잡힙니다.
이 악장이 놓인 위치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폭발하는 1악장과 몰아치는 3악장 사이에서 곡 전체의 숨통을 틔워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강도로 밀어붙였다면 28분 남짓한 곡의 긴장이 쉽게 무뎌졌을 겁니다. 프로코피예프는 한복판에 오래된 춤곡 한 자락을 놓아 청중이 잠시 숨을 고를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오케스트라가 처음 제시하는 주제를 기억해 두세요. 그다음부터 같은 가락이 어떻게 빨라지고 느려지는지 비교하며 들으면 다섯 변주가 또렷하게 갈립니다.
마지막: 화해하지 않는 논쟁
프로코피예프는 3악장을 직접 ‘논쟁’이라고 불렀습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사이좋게 대화하는 음악이 아니라, 끝까지 서로를 밀어내며 주도권을 다투는 악장이라는 뜻입니다. 시작부터 그 구도가 분명합니다. 바순과 피치카토 현이 a단조 주제를 낮게 깔면, 피아노는 전혀 다른 주제로 그 위를 덮어 버립니다. 두 주제는 매끄럽게 맞물리지 않고, 바로 그 어긋남이 이 악장의 핵심 재료가 됩니다.
이 악장 한가운데에서는 갑자기 넓고 서정적인 대목이 펼쳐집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그 ‘흰 건반 4중주’의 주제가 되살아나는 순간입니다. 10년 전에 버린 조각이 곡 전체에서 가장 노래하는 장면으로 돌아오는 셈입니다. 이 대목을 들으면 프로코피예프가 왜 그 스케치를 끝내 버리지 못했는지 납득하게 됩니다. 서로 밀치던 두 힘이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서로를 더 거세게 몰아붙이다가 결국 C장조로 함께 착지합니다. 이것은 화해라기보다 동시 도착에 가깝습니다. 논쟁이 승부 없이 끝나는데도 끝맛이 개운한 이유는, 두 힘이 같은 지점에 부딪히듯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몇 마디의 폭발은 콩쿠르 무대에서 이 곡의 인상을 가장 강하게 남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피날레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10년 묵은 재료를 단순히 끼워 넣지 않고, 갈등이 가장 팽팽해진 순간에 숨 쉴 공간으로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그 서정적인 대목은 짧아도 깊게 남습니다. 평화가 깨지고 다시 질주가 시작될 때, 청중은 이미 결말을 향해 끌려가고 있습니다.
💡 사실은요 — ‘C장조’라는 표기 때문에 곡이 시종 밝고 편안할 거라 짐작하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2악장이 e단조, 3악장이 a단조로 어둡게 출발하고, 곡은 내내 불협화음과 조성을 비껴 가는 순간들을 오갑니다. 조성 표기는 곡이 최종적으로 착지하는 ‘집’을 가리킬 뿐, 그 집까지 가는 길이 평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카고의 환호와 뉴욕의 야유
초연은 1921년 12월 16일 시카고에서 열렸습니다. 서른 살의 프로코피예프가 직접 피아노를 맡았고, 프레더릭 스톡이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했습니다. 그해 12월의 시카고는 프로코피예프의 도시나 다름없었습니다. 협주곡 초연 2주 뒤인 12월 30일에는 앞서 말한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를 향한 사랑〉까지 같은 도시에서 막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협주곡을 향한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한 지역 신문은 이 곡을 두고 “가장 아름다운 현대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적었습니다.
시카고 청중이 이 낯선 음악을 비교적 너그럽게 받아들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에게 오페라를 위촉한 곳이 바로 시카고 오페라단이었고, 현지 음악계는 이미 그를 낯선 외국 작곡가가 아니라 자기 도시의 무대에 새 작품을 올리는 인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청중도 이 러시아 작곡가가 새로 들고 온 협주곡을 한결 열린 태도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같은 곡이 뉴욕 무대에 오르자 관객은 냉담했고 평론가들의 반응도 혹독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크게 낙담했고, 1922년 3월 다시 유럽으로 향합니다. 같은 곡을 두고 시카고와 뉴욕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셈입니다. 새로운 음악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 흔히 겪는 일이지만, 작곡가 본인에게는 뼈아픈 출발이었습니다.
이 곡이 다시 힘을 얻은 곳은 파리였습니다. 1922년,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파리에서 이 협주곡을 올렸고, 그 연주가 큰 호평을 받으면서 곡의 평판도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의 환호와 뉴욕의 야유를 지나, 파리의 인정이 이 협주곡에 다시 기회를 준 셈입니다. 이후 3번은 프로코피예프의 다섯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도 자주 선택되는 협주곡이 됐습니다.
파리 이후로도 곡의 인기가 단숨에 치솟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흐름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늘고 녹음이 쌓이고 청중이 익숙해지면서, 3번은 서서히 표준 레퍼토리 안에 들어갔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이미 중요한 협주곡 목록에서 빠지기 어려운 작품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세기 전 뉴욕 관객을 당황하게 했던 ‘현대적인’ 불협화음은, 지금은 젊은 피아니스트가 큰 무대에서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하는 음악이 됐습니다. 곡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사이 100년 동안 음악을 듣는 청중의 귀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밀어냈던 소리를, 이제는 관객이 먼저 기다립니다.
왜 이 곡이 살아남았나
같은 시기에 쓰인 ‘현대적인’ 협주곡이 수없이 잊혔는데, 3번은 한 세기를 버텼습니다.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 곡이 어렵기만 한 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을 혹사시키는 대목마다, 그 옆에 반드시 귀에 감기는 선율이 붙어 있습니다. 관객은 묘기에 놀라고 곧이어 노래에 마음을 놓습니다.
연주자에게도 이 곡은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기교를 뽐낼 무대와 음악성을 증명할 서정이 한 곡 안에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콩쿠르 참가자가 3번을 자주 고르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심사위원 앞에서 빠른 손놀림과 노래하는 감각을 한 번에 보여 줄 수 있는 곡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처음 듣는 청중에게도 이 곡은 문턱이 낮습니다. 현대 음악이라고 하면 어렵고 삭막할 거라 지레 겁먹기 쉬운데, 3번은 첫 클라리넷 선율부터 귀에 들어옵니다. 불협화음이 나와도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또렷한 리듬이나 선명한 가락으로 돌아옵니다. 낯섦과 친근함의 배합이 절묘해서 클래식을 처음 듣는 사람도 끝까지 따라가기 쉽습니다.
결국 이 협주곡의 힘은 그 두 얼굴에서 나옵니다. 클라리넷의 한숨으로 문을 열고, 몰아치는 손끝으로 밀어붙이다가, 다시 노래로 긴장을 풀어 주는 낙차가 이 곡을 계속 듣게 만듭니다. 10년 동안 써 두었던 여러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나온 재료들이 따로 논다는 느낌은 거의 남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낯설다는 반응도 받았던 이 곡이 이제는 프로코피예프를 대표하는 협주곡으로 남았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페이지에는 이 작품의 원본 악보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녹음이 워낙 많아 오히려 고르기 어렵습니다. 화려함으로 승부하는 연주가 있는가 하면, 서정을 길게 끌고 가는 연주도 있습니다. 아래에는 성격이 뚜렷하게 갈리는 세 가지 녹음을 골랐습니다. 하나는 이 곡을 널리 알린 결정판, 하나는 작곡가가 직접 남긴 기록, 하나는 냉전이 남긴 진귀한 음반입니다. 먼저 이 셋으로 취향의 좌표를 잡아 보시면 좋습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 Piano Concerto No. 3 (Prokofiev)
- IMSLP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악보와 자료
- San Francisco Symphony — 프로그램 노트
- Gramophone — 3번 협주곡 녹음 100년사
이어서 듣기 — 이 협주곡과 통하는 다섯 곡
3번 협주곡이 마음에 들었다면, 아래 다섯은 취향이 겹칠 확률이 높습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얼굴, 그리고 같은 러시아 계보의 거대한 협주곡들입니다.
-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 3번 협주곡의 날카로운 타격감이 관현악 전체로 넓어지는 작품입니다.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 피아노 협주곡의 체력과 집중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또 하나의 ‘괴물’ 협주곡입니다.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 프로코피예프의 날 선 리듬과 달리, 넓은 선율과 서정에 더 가까운 길을 보여 줍니다.
-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 짧은 동기와 화려한 독주가 맞물리며 피아니스트의 순발력을 시험하는 작품입니다.
- 드보르작 피아노 협주곡 — 오랫동안 덜 연주되다가 다시 주목받은, 투박한 매력이 있는 협주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