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장한나 — 열한 살의 첼로에서 예술의전당 사장까지

연주자
장한나 (지휘자 · 첼리스트)
수학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 · 하버드대 철학 전공
로스트로포비치 · 미샤 마이스키 · 로린 마젤 사사
레이블
EMI 클래식스 → 워너 클래식스 (14년 전속)
주요 이력
1994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첼로 콩쿠르 그랑프리
2013–14 카타르 필하모닉 음악감독
2016–2025 트론헤임 심포니 수석지휘자 겸 예술감독
2026– 예술의전당 사장
공식 프로필
hannachangmusic.com

1994년 파리, 제5회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첼로 콩쿠르 무대에 열한 살 아이가 올라왔습니다.[1] 몸이 작아 풀사이즈를 쥐지 못해 7/8 크기 첼로를 안고 있었죠.[2] 심사위원장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였고, 만장일치 그랑프리에 현대음악상까지 겹쳤습니다.[3]

그로부터 32년 뒤인 2026년 4월, 같은 사람이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명됐습니다.[4] 그 사이에 첼로를 내려놓았고, 지휘봉을 들었고, 올해는 그 지휘봉마저 거의 다 내려놓았습니다. 앞의 두 번은 본인이 이유를 남겼습니다. 세 번째는 아직 아무 말도 없고요.

예정 공연

  • 2026.10.4.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 오프닝 콘서트: Joy of Collaboration
    대전예술의전당, 대전
  • 2026.10.10.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 클로징 콘서트: Joy of Music
    대전예술의전당, 대전

공연 일정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

파리, 열한 살

장한나는 세 살에 피아노를, 여섯 살에 첼로를 시작했습니다.[5] 199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에 들어갔고[6], 그 무렵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를 만납니다.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세 번의 여름을 마스터클래스로 보냈는데, 본인은 훗날 이 시기를 두고 “평생을 통틀어 가장 몰입해서, 가장 행복하게 배운 시기”라고 회고했습니다.[7]

파리의 그랑프리는 이듬해에 왔습니다. 콩쿠르가 끝나자 심사위원장이 직접 제자로 불렀습니다.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가 곡을 헌정한 연주자가 열한 살에게 개인 레슨을 시작한 겁니다.[8]

그다음 해에는 로스트로포비치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첫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포레 〈엘레지〉, 브루흐 〈콜 니드라이〉를 담았습니다.[9] 데뷔 음반의 지휘대에 스승이 직접 선 셈이죠.

같은 1995년 3월 서울에서 주세페 시노폴리가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협연하며 국내에 정식으로 데뷔했고[10], 1996년 10월에는 샤를 뒤투아·몬트리올 심포니와 카네기홀에 섰습니다.[11]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와 차례로 무대에 섰습니다.[12]

악보의 음표가 튀어나온 날

첼로 신동에게 남은 길은 뻔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장한나는 하버드대에 들어가 철학을 전공했습니다.[13] 그 무렵 진로가 통째로 틀어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2024년 뉴질랜드 라디오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0대 후반이었어요. 베토벤 교향곡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있었죠. 그러다 어느 날 악보 위 음표들이 저에게 확 달려들었어요. 살아서 반짝이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14] 이어지는 문장이 더 직설적입니다. “그날 저는 베토벤을 만났고, 그때부터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15]

왜 첼로로는 안 되었는지도 나중에 밝혔습니다. 2025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데뷔를 앞두고 한 말입니다. “베토벤과 함께라면 황홀경을 느낄 수 있어요. 첼로 레퍼토리에는 그런 게 어디에도 없습니다.”[16] 첼로가 주역을 맡는 협주곡은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만 따지면 한 줌입니다. 교향곡 쪽 레퍼토리와는 부피 자체가 다릅니다.

2007년부터 장한나는 전적으로 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17] 지휘를 가르친 사람은 로린 마젤이었습니다. 제자를 두지 않기로 유명했던 마젤이 마음을 바꾼 계기가 남아 있는데, 마젤 본인의 말입니다. “몇 년 전 저에게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하는 영상을 보여줬죠. 이거다 싶었죠.”[18] 이후 마젤이 만든 미국 버지니아의 캐슬턴 페스티벌에서 3주, 스페인에서 한 달간 오페라와 교향악 지휘를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19]

전향 초기에는 주로 한국에서 움직였습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MBC TV에서 베토벤 교향곡을 지휘하고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녹화했고[20], 2009년에는 성남아트센터에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페스티벌’을 만들어 2014년까지 예술감독을 맡았습니다.[21]

첼로를 왜 그만뒀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이제 첼로를 안 켜느냐고요. 둘이 딴 일이라는 듯이요. 하지만 저한테는 같은 일이에요. 그냥 음악을 만드는 거죠.”[22]

프롬스 다음 날에 낸 사표

2013/14 시즌, 장한나는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됐습니다.[23] 2014년 9월 7일 이 악단을 이끌고 런던 로열앨버트홀의 BBC 프롬스에 데뷔했고, 평은 좋았습니다. 가디언의 팀 애슐리는 “1분마다 스릴이 터지는 프롬스가 있다면, 바로 이날이었다”고 썼습니다.[24] 바흐트랙의 마크 풀링어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두고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에 가장 큰 불을 붙였다”고 표현했고요.[25]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8일, 장한나는 음악감독직에서 즉시 사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성명 원문은 이렇습니다.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경영진과의 지속적인 행정적 어려움, 그리고 좁힐 수 없는 예술적 견해차 때문에 오늘 9월 8일자로 음악감독직 사임을 통보했습니다. 제게는 매우 슬픈 날입니다.”[26]

커리어에서 가장 큰 무대를 마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트론헤임에서 보낸 12년

같은 2013년,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 오페라의 수석객원지휘자로 부임합니다.[27] 2016년 3월 이 악단의 수석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는데, 악단 역사상 첫 여성이었습니다. 정식 재임은 2017/18 시즌부터였습니다.[28] 2018년 계약을 연장했고[29], 2025년 객원 시절을 합쳐 12년의 임기를 마쳤습니다.[30]

이 악단과 2019년 1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실황이 악단 공식 채널에 통째로 올라와 있습니다.[31] 지휘자 장한나가 어떤 연주를 만드는지 한 편으로 확인하기 좋은 자료입니다. 이 곡의 마지막 악장에 얽힌 오해는 비창의 ‘가짜 피날레’ 쪽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 장한나 지휘,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9년 11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실황, 악단 공식 채널)

트론헤임과 병행해 2022년부터 2026년 4월까지 함부르크-라이즈할레 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를 맡았습니다.[32] 2024년부터는 대전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 예술감독을 이어오고 있고[33], 2025년 11월에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특임교수로 임명돼 인공지능과 공연예술을 잇는 연구에 자문하고 있습니다.[34]

무엇부터 들어야 하나

EMI·워너와 14년 전속이었고, 그 사이 ECHO 클래식상을 두 번 받았습니다. 카에칠리아상과 칸 클래식상, 그라모폰 올해의 협주곡상도 이 시기의 것입니다.[35]

첫 장은 2003년 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입니다.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함께한 녹음으로, 이듬해 그래미 ‘오케스트라 협연 기악 독주자’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36][37] 이 곡 자체가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쓰였고 1952년 그가 초연했습니다.[38] 스승이 초연한 곡을 제자가 녹음한 기록인 셈이죠.

두 번째는 2005년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입니다. 같은 파파노·런던 심포니 조합이고[39], 이 곡 역시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됐습니다.[40] 1악장 첫머리의 네 음짜리 동기가 곡 전체를 어떻게 물고 늘어지는지 따라가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첼로 소나타 — 장한나,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워너 클래식스 공식 음원)

세 번째는 1998년 하이든입니다. 시노폴리·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녹음한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과 2번을 함께 담았습니다.[41][42] 앞의 두 곡이 20세기 러시아의 무게라면 이쪽은 정반대편입니다. 같은 연주자가 고전기 협주곡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지휘 쪽 기록은 상업 음반이 아니라 실황 영상에 몰려 있습니다. 트론헤임 시절의 말러 교향곡 5번이 대표적이고[43], 스승과 제자가 자리를 바꾼 기록도 있습니다. 열 살에 배우러 갔던 미샤 마이스키를 협연자로 세우고 본인은 지휘대에 선,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영상입니다.[44]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 장한나 지휘, 미샤 마이스키 협연 (장한나 공식 채널)

어떤 연주자인가

첼리스트 시절의 평은 대체로 한 방향이었습니다. 뮤직웹 인터내셔널의 테리 바푸트는 프로코피예프 음반을 두고 “음정이 정확하고 선율에 감정이 실려 어떤 난관도 뚫는다”고 썼고, 고음역에서 특히 빛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45] 클래식스투데이는 쇼스타코비치 녹음을 두고 “이토록 어린 나이에 놀라울 만큼 완성된 아티스트로, 저음부터 고음까지 크고 풍부하며 완벽하게 고른 음색”이라 평하면서 1악장 제2주제의 “끊김 없는 레가토와 정확한 음정”을 꼽았습니다.[46]

지휘자로서의 평가는 갈립니다. 2012년 싱가포르 심포니 무대를 본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장터우량은 회의적으로 시작했다가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을 지휘하면서 악보를 “한 번도 보거나 넘기지 않았다”는 관찰에 이어, “그저 그런 직업 지휘자가 지나가며 남긴 무난한 연주가 아니라, 진짜 음악가가 만들어낸 완전히 설득력 있는 연주였다”고 적었습니다.[47]

반대편도 있습니다.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이 놓였던 2023년 애틀랜타 심포니 무대에 대해 아츠ATL의 피에르 루는 이렇게 썼습니다. “장한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어쩌면 과하게, 사소한 디테일 하나까지 챙겨가며. 그런데도 오케스트라는 잘 연주했을 뿐 뚜렷한 목적이 없었다.” 뒤에는 “무대 위에 이렇다 할 호흡이 안 보였다”는 문장이 붙습니다.[48]

같은 해 밴쿠버 심포니 무대의 평은 정반대입니다. 밴쿠버 클래시컬 뮤직의 제프리 뉴먼은 “장한나가 첼로를 치웠을 때 상당히 아쉬웠는데, 이날 지휘로 그 아쉬움을 보상받은 기분”이라며 베토벤 교향곡 7번 피날레에 대해 “빠른 템포에 대편성으로 모든 것을 명료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놀라웠다”고 했습니다.[49]

첼로에서의 완성도는 이견이 적고, 지휘에서는 해석의 설득력을 두고 평이 갈립니다. 전향한 지 20년이 다 됐지만 첼리스트 시절만큼 평가가 굳지는 않았습니다.

지휘봉 대신 결재판

2026년 4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장한나를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50] 4월 24일 취임했고 임기는 3년입니다. 역대 최연소이고, 1987년 개관 이래 첫 음악인 출신 여성 수장입니다.[51] 임명 당시 소감은 이랬습니다. “고국의 팬과 수십 년간 음악의 기쁨을 나눠온 소중한 무대에 다시 돌아가게 됐다.” 그리고 예술의전당이 “더 많은 분들께 더 가까이 열려 있는, 이 시대를 품는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52]

반응이 전부 우호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경영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국내에서 나왔고[53], 클래식 전문 매체 슬립트디스크의 노먼 레브레히트는 “유명 지휘자, 책상 앞으로 가려고 지휘봉을 놓다”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하며 트론헤임 재임에 대해 “배우면서 하는 자리였는데 너무 오래 머물렀다”고 썼습니다.[54]

정작 본인의 선택은 단호했습니다. 취임 후 장한나는 올해 예정돼 있던 국내외 연주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고 함부르크 심포니 객원지휘자직에서도 물러났습니다. 남긴 것은 두 건뿐입니다. 9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개막 공연, 그리고 10월 대전그랜드페스티벌.[55]

앞의 두 번은 본인이 이유를 남겼습니다. 첼로에서 지휘로 옮길 때는 베토벤 악보에서 음표가 튀어나온 날을 이야기했고, 첼로를 왜 안 켜느냐는 물음에는 둘이 같은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번은 다릅니다. 음악을 만드는 일 안에서의 이동이 아니라 그 바깥으로의 이동인데, 그 이유는 아직 본인 입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겨둔 두 번의 공연이 답을 대신할지도 모르겠네요.

디스코그래피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외 앨범 커버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외

EMI 클래식스 · 1996 · 로스트로포비치 · 런던 심포니

The Swan 앨범 커버

The Swan

EMI 클래식스 · 2000 · 슬래트킨 · 필하모니아

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Op.125 · 첼로 소나타 Op.119 앨범 커버

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Op.125 · 첼로 소나타 Op.119

EMI 클래식스 · 2003 · 파파노 · 런던 심포니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 첼로 소나타 앨범 커버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 첼로 소나타

EMI 클래식스 · 2005 · 파파노 · 런던 심포니

Romance 앨범 커버

Romance

워너 클래식스 · 2007 · 파파노 ·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오케스트라

비발디: 첼로 협주곡집 앨범 커버

비발디: 첼로 협주곡집

워너 클래식스 · 2008 · 워런-그린 ·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

1998년 시노폴리·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1·2번 음반은 주요 스트리밍 카탈로그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56]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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