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 첼로 협주곡 제2번 D장조 Hob.VIIb:2

제자가 훔쳤다고 의심받은 협주곡의 진실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1809)
작품명
첼로 협주곡 2번 D장조 Hob.VIIb:2
작곡 연도
1783년
악장 구성
3악장 (Allegro moderato / Adagio / Rondo: Allegro)
편성
독주 첼로, 현악 오케스트라, 오보에 2, 호른 2
연주 시간
약 27-30분
초연
1783년 에스테르하지 궁정, 1787년 런던 공연 (James Cervetto 독주)

누군가 이 곡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다름 아닌 하이든의 제자였죠.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토마스 하디, 1791년)
토마스 하디가 그린 하이든 초상화(1791-92년). 런던 방문 시절의 모습으로, 이 협주곡이 런던에서 연주된 직후의 시기다.

1783년,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수석 첼리스트 안톤 크라프트(Anton Kraft)를 위해 이 협주곡을 썼습니다. 크라프트는 당대 최고 수준의 첼리스트였고, 하이든은 그의 기량을 누구보다 잘 알았거든요. 문제는 크라프트도 작곡을 했다는 점이었죠. 그래서 한동안 세상은 이 곡이 하이든 것인지 크라프트 것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음악학자들이 “이 곡이 진짜 누구 것이냐”를 놓고 100년 넘게 싸운 겁니다. 결론은 1950년대에야 나왔고요.

에스테르하자 궁전 전경 (1920년대)
헝가리 에스테르하자 궁전. 하이든이 30여 년간 궁정 악장으로 근무하며 이 협주곡을 작곡한 장소다.

그 결론이 뭔지는 잠시 후에.

안톤 크라프트 초상화
안톤 크라프트(1749-1820) 초상화.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수석 첼리스트로, 하이든이 이 협주곡을 그를 위해 작곡했다.

에스테르하지에 갇힌 천재

하이든이 첼로 협주곡 2번을 쓴 1783년, 그는 이미 51세였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공작 가문에 고용된 지도 20년이 넘었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경계 근처 에스테르하자 궁전에서 하이든은 매주 새 곡을 써야 했습니다.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 협주곡, 춤곡. 공연이 없는 날은 없었고, 음악 감독으로서 오케스트라 단원 관리라는 행정 업무도 끊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한 하이든 본인의 평가가 흥미롭습니다. 나중에 그가 남긴 말이 있죠. “에스테르하자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독창적이어야 했다(I was forced to become original).” 세상과 단절된 환경이 오히려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외부 유행이나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음악적 직관만 따를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첼로 협주곡 2번이 탄생한 곳도 바로 그 환경이었습니다. 안톤 크라프트는 1778년부터 에스테르하지 악단에 합류한 인물이거든요. 하이든은 그를 직접 지도했고, 그의 기술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죠. 이 협주곡에서 첼로에게 요구하는 것들, 특히 고음역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와의 섬세한 대화는 크라프트가 아니면 연주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크라프트의 몸에 맞게 재단한 옷 같은 협주곡이었던 셈이죠.

그렇다면 크라프트가 직접 쓴 게 아니냐는 의심이 왜 생겼을까요? 크라프트 본인이 이 곡의 카덴자를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그 카덴자가 너무 수준이 높았고, 일부 악보가 크라프트의 필사본으로만 전해졌거든요. 하이든의 자필 악보가 사라진 상태에서 음악학자들은 150년 가까이 “이 곡은 크라프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1953년, 하이든의 자필 악보가 발견되면서 논란이 종결됐죠.

런던이 이 곡을 먼저 들었다

이 곡의 첫 연주 기록은 에스테르하지 궁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초연 기록은 1787년 런던에서 나왔거든요.

당시 독주자는 제임스 서베토(James Cervetto)였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첼리스트 야코프 서베토의 아들로, 런던 이탈리아 오페라단의 수석 첼리스트이자 영국 최고의 독주 첼리스트 중 한 명이었죠. 런던 초연 이후 일주일 뒤 같은 연주가 다시 광고됐는데, 그 광고에는 “하이든 작곡의 첼로 협주곡(Concerto Violoncello, composed by Haydn)”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록이 나중에 작곡가 논란을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되더군요.

1787년이면 하이든이 아직 에스테르하지에 재직 중이던 시절입니다. 빈 음악계에서 하이든의 이름은 이미 유럽 전역에 알려져 있었고, 런던의 음악 애호가들은 그의 신작을 늘 원했거든요. 이 협주곡이 런던까지 건너간 것도 그런 맥락이었죠. 하이든 본인은 1790년대에야 런던을 방문하게 되니, 자신의 협주곡이 런던에서 연주되는 걸 직접 듣지는 못했을 겁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곡이 해협 건너 청중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셈이죠.

악장별, 오케스트라와 첼로의 세 번의 대화

이 협주곡의 세 악장은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1악장은 교환, 2악장은 독백, 3악장은 경주. 이렇게 기억하면 좋겠죠.

1악장 Allegro moderato, 오케스트라가 문을 여는 방식

1악장을 처음 들으면 오케스트라가 먼저 나섭니다. 현악기가 주제를 제시하고, 관악기가 받아치면서 분위기를 다지거든요. 한 1분쯤 지나면 독주 첼로가 등장하는데, 그 입장 방식이 범상치 않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줄이면서 공간을 만들어주면, 첼로가 슬며시 들어오죠. 요란하지 않게, 그냥 대화에 끼어드는 것처럼요.

이 협주곡이 다른 고전 협주곡들과 다른 첫 번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독주 악기가 오케스트라를 ‘이겨야’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감각이 처음부터 깔려 있거든요. 첼로는 선언하지 않습니다. 말을 겁니다.

1악장의 형식은 소나타 형식(하나의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킨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구조)이죠. 하지만 그 안에서 하이든이 재미있는 장난을 칩니다. 주제가 변형될 때 첼로의 위치가 계속 달라지거든요. 어떤 순간엔 오케스트라와 같은 선율을 연주하고, 어떤 순간엔 완전히 다른 반향을 보내고, 어떤 순간엔 혼자 내달립니다.

1악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은 카덴자 직전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점점 조용해지면서 첼로에게 무대를 넘겨주는 전환이 아주 세련되거든요. 카덴자에서 첼로는 비로소 혼자가 됩니다. 이 카덴자는 첼로라는 악기가 저음역의 웅장함부터 고음역의 반짝임까지 전 영역을 한 번에 보여주는 순간이죠. 악보상으로는 카덴자 부분이 따로 표시되어 있고, 실제로 연주자마다 다른 버전의 카덴자를 쓰기도 합니다. 첼리스트 개인의 색깔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구간이기도 하고요.

2악장 Adagio, 현악만 남은 세계

2악장이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이 멈춥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느낌이거든요.

1악장의 생기 있는 대화가 끝나고, 갑자기 정적 같은 서정성이 펼쳐집니다. 첼로의 선율이 오케스트라 위에 얹히는 방식이 전혀 다르죠. 1악장에서 첼로는 오케스트라와 주고받았지만, 여기서는 거의 독백에 가깝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아주 조용히 뒷받침할 뿐이고, 첼로가 혼자 이야기를 풀어내거든요.

이 악장의 편성이 독특합니다. 현악 오케스트라만 사용하죠. 1악장과 3악장에서 활약하던 오보에도 호른도 빠집니다. 그 덕분에 소리의 질감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두꺼운 음색 대신, 가늘고 투명한 현악의 질감 위에 첼로의 음색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악장 중반부에 첼로가 갑자기 고음역으로 치고 올라가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 중저음에서 이야기하던 첼로가 예고 없이 바이올린 영역으로 올라가는 순간, 악기가 전혀 다른 악기처럼 들리더군요. 마치 같은 사람이 말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는 느낌이죠. 그리고 다시 원래 음역으로 내려오면서 마무리됩니다.

첼로는 원래 저음 악기입니다. 현악 사중주에서 가장 아래 성부를 담당하고, 오케스트라에서도 베이스 영역을 지키죠. 그런데 하이든은 이 악장에서 첼로를 그 본래 자리에서 꺼내 솔로이스트로 세워놨습니다. 첼로의 모든 음역이 고루 쓰이면서, 악기 하나가 가진 표현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는 셈이죠.

3악장 Rondo, 헝가리 들판을 달리는 마무리

3악장은 하이든이 종종 사용한 론도 형식(주제가 반복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에피소드가 끼어드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론도의 분위기가 독특하죠. 헝가리 민속 음악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거든요.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에서 30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 헝가리 들판과 농부들의 음악이 그의 무의식에 자리잡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죠. 3악장의 리듬과 선율에서는 빈 출신의 우아한 고전주의보다 헝가리 음악의 거친 활기가 느껴집니다. 이 협주곡이 흔히 ‘론도 알룽가레제(Rondo all’Ungarese: 헝가리풍 론도)’라고 불리는 까닭이죠.

론도 형식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A-B-A-C-A로 이어지죠. 주제(A)가 세 번 돌아오고, 그 사이에 두 개의 에피소드(B, C)가 끼어듭니다. 에피소드 B는 A장조, 에피소드 C는 D단조로 색깔이 달라지거든요. D단조 구간은 잠깐 어두워지면서 마치 헝가리 민요의 슬픈 선율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다시 D장조 주제가 돌아오면서 쾌활하게 마무리되죠.

3악장은 세 악장 중에서 가장 짧지만, 에너지 밀도는 가장 높습니다. 첼로가 쉴 틈 없이 달리거든요. 고음역에서 내려오고, 저음역에서 치솟고, 오케스트라와 번갈아가며 테마를 주고받습니다.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음표가 더 조밀해지면서 체감 속도가 빨라지죠. 3악장이 끝났을 때 숨이 찬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입니다.

도둑으로 몰린 제자, 안톤 크라프트 이야기

자필 악보가 1953년에 발견되기 전까지, 이 협주곡의 운명은 꽤 기구했습니다.

크라프트는 훌륭한 첼리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도 했죠. 그리고 이 협주곡의 일부 악보가 그의 필사본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자필 악보가 없는 상황에서, 일부 음악학자들은 “크라프트가 썼고 하이든이 감수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거든요. 독일의 음악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폴(C.F. Pohl)이 1875년에 이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후, 한동안은 “크라프트의 협주곡”으로 카탈로그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크라프트 본인은 어땠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발언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의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가 카덴자를 썼지 협주곡 자체를 쓴 건 아니다”라고 증언했지만, 그게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죠.

결국 1953년, 하이든의 자필 악보가 발견되면서 논란은 끝났습니다. 악보에는 하이든의 필체로 “나의 첼로 협주곡(Violoncello-Konzert von mir)”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150년의 논쟁이 종결된 순간이죠.

이 에피소드는 음악사에서 꽤 유명한 위작 논란 중 하나입니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제자가 스승의 작품을 썼다는 의심을 받은 경우는 드문 편이거든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알고 나면 협주곡을 다르게 듣게 됩니다. 첼로 파트의 기교적 요구들이 얼마나 세밀하게 설계됐는지, 그게 단순히 독주자에게 맞춘 게 아니라 하이든이 의도적으로 구성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거죠.

‘교향악적 협주곡’의 탄생, 낭만주의 첼로 협주곡의 뿌리

하이든이 이 협주곡을 쓸 무렵, 고전 시대의 협주곡은 보통 이런 식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화려하게 서주를 연주하고, 독주자가 들어와서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고, 오케스트라는 그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박자를 맞추는 역할. 독주자가 주인공이고 오케스트라는 배경인 구조였죠.

하이든의 2번은 다릅니다. 오케스트라와 첼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를 나누거든요. 첼로가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오케스트라 안으로 녹아들었다가 나왔다가 합니다. 이 감각은 하이든이 교향곡 분야에서 발전시켜온 것들, 다양한 악기들이 유기적으로 엮이는 방식이 협주곡 형식에 적용된 결과죠.

이 점에서 하이든의 2번은 후대의 낭만주의 첼로 협주곡들과 직접 연결됩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1895), 엘가의 첼로 협주곡(1919),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1959). 이 걸작들이 모두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을 택한 건 우연이 아니거든요. 하이든이 1783년에 그 문을 먼저 연 셈입니다.

물론 하이든 본인이 “나는 낭만주의 첼로 협주곡을 예비했다”는 생각을 했을 리는 없죠. 안톤 크라프트를 위한 실용적인 레퍼토리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 음악사를 바꾸는 작품이 된 겁니다. 에스테르하자의 고립된 환경에서 혼자 실험하고 발전시켜온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어쩔 수 없이 독창적이어야 했다”는 그 말의 무게가 여기서 다시 느껴집니다.

또 하나, 이 협주곡은 고음역에서 첼로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탐색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2악장과 3악장에서 하이든이 첼로에게 요구하는 음역과 기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거든요. 크라프트 같은 대단한 연주자가 없었다면 이 곡이 지금 형태로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연주자와 작곡가 사이의 협업이 곡 자체를 더 풍요롭게 만든 경우죠.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이 협주곡을 처음 듣는다면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 1악장에서 첼로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포착할 것. 오케스트라가 조용해지면서 첼로가 들어오는 그 타이밍이 관건입니다. 마치 말 많은 파티에 조용한 사람이 끼어들면서 모두가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과 비슷하죠. 시작 후 1분에서 1분 30초 사이쯤 나옵니다.

둘째, 2악장에서 첼로가 갑자기 고음으로 올라가는 순간을 기다릴 것. 악장 중반쯤에 찾아오거든요. 예고 없이 첼로가 전혀 다른 음역대로 넘어갑니다. 저음 악기가 바이올린처럼 노래하는 그 반전이 이 협주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죠.

셋째, 3악장의 리듬에 귀를 기울일 것. 유럽 고전 음악이지만 어딘가 민속 음악의 냄새가 납니다. 헝가리에서 30년을 산 하이든의 흔적이거든요. 처음엔 경쾌한 무도회 음악처럼 들리다가, 중간에 갑자기 어두워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전환을 놓치지 마세요.

이 세 가지만 챙기면, 클래식을 처음 듣는 분도 27분이 짧게 느껴질 겁니다.

1번보다 나중에 나왔지만 더 성숙한 협주곡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은 두 개입니다. 1번(C장조)과 2번(D장조)인데, 공교롭게도 역사에서 두 곡의 대접이 엇갈렸죠.

1번 C장조는 오랫동안 분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1961년에야 발견됐습니다. 반면 2번 D장조는 (크라프트 논란은 있었지만) 하이든 생전부터 연주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런던 연주 기록이 1787년에 나옵니다.

두 곡을 들어보면 성격이 꽤 다릅니다. 1번은 좀 더 경쾌하고 바로크적인 감각이 있죠. 2번은 훨씬 교향악적입니다.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관계가 더 복잡하고, 화성 구조도 더 대담하거든요. 같은 하이든이 썼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입니다. 1번이 30대 초반 하이든의 작품이라면, 2번은 51세 완숙기 하이든의 작품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죠. 20년의 세월이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겁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도 2번이 훨씬 까다롭습니다. 고음역 처리, 빠른 패시지, 오케스트라와의 호흡 모두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거든요. 안톤 크라프트 수준의 연주자가 아니면 소화하기 어렵게 쓰여 있죠. 그래서 이 곡은 지금도 전문 첼리스트들의 주요 레퍼토리이면서, 동시에 음악 대학 졸업 연주 곡목에 자주 오르는 작품입니다. 첼로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 협주곡은 하나의 목표점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요.

클래식 감상의 관점에서도 두 협주곡을 함께 들으면 재미가 있습니다. 1번이 끝나고 2번이 시작될 때, 하이든이 20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바로 느껴지거든요. 같은 작곡가가 같은 악기를 위해 쓴 곡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놀랍죠. 1번의 밝고 단순한 기품에서 2번의 복잡하고 심도 있는 대화로 이동하는 그 여정 자체가 하이든이 걸어온 음악적 생애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두 곡이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이유가 있는 셈이죠.

하이든 협주곡의 독특한 편성, 왜 소편성인가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의 오케스트라 편성은 아주 소박합니다. 오보에 2개, 호른 2개, 그리고 현악 오케스트라. 요즘 대형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규모와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되죠.

이게 당시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악단 규모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하이든이 이 편성에서 뽑아내는 음향은 그 작은 규모를 까맣게 잊게 만듭니다. 소편성의 장점은 투명도거든요. 각 악기의 선율이 서로 뒤섞이지 않고 선명하게 들립니다. 독주 첼로가 오케스트라에 묻히지 않고 대등하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 있죠.

2악장에서 오보에와 호른을 모두 빼버리는 선택은 더욱 대담합니다. 현악 오케스트라만 남기는 순간, 음향의 밀도가 확 낮아지거든요. 그 공간 속에 첼로의 독백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악기를 빼는 것이 오히려 더 풍부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역설이죠. 하이든이 30년 넘게 에스테르하지에서 다양한 편성을 실험하면서 터득한 지혜가 이런 선택에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이 협주곡은 대편성 오케스트라보다 소규모 앙상블과의 연주에서 더 빛납니다. 현대 시대악기 앙상블들이 이 곡을 즐겨 연주하는 이유도 여기 있고요. 고전 협주곡의 섬세한 화법이 소편성 환경에서 가장 잘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 협주곡을 둘러싼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카덴자는 누가 썼나요?

현재 가장 많이 연주되는 카덴자는 안톤 크라프트가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크라프트는 이 협주곡의 초연 독주자였고, 카덴자를 직접 작곡했거든요. 일부 첼리스트들은 자신만의 카덴자를 새로 쓰기도 합니다. 같은 협주곡을 서로 다른 첼리스트가 연주할 때 카덴자 부분에서 각자의 개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죠.

첼로 협주곡인데 왜 첼로가 등장하는 데 1분이 걸리나요?

고전 협주곡의 관습입니다. 당시에는 독주 악기가 등장하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먼저 주제를 소개하는 ‘더블 제시부(double exposition)’ 구조가 일반적이었거든요. 오케스트라가 먼저 분위기를 세팅하고, 그다음에 독주자가 들어오는 방식이죠. 이런 구조가 독주자의 등장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D장조가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D장조는 현악기, 특히 바이올린과 첼로에게 ‘공명이 잘 되는 조성’입니다. 현악기의 개방현(손가락을 짚지 않고 그냥 켜는 현)이 D, G, A, E인데, D장조 음악에서는 이 개방현들이 자연스럽게 울리면서 음색이 더 밝고 풍부해지거든요. 하이든이 D장조를 선택한 건 크라프트의 첼로 음색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조성을 고른 결과이기도 하죠.

이 곡을 처음 배우기 적당한가요?

첼로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 협주곡은 중급에서 상급으로 넘어가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기초가 어느 정도 쌓인 학생들이 목표로 삼는 곡이거든요. 전문 연주자 수준의 기교가 필요하지만, 낭만주의 대곡들보다는 접근 가능한 편이죠. 하이든 1번 협주곡을 소화한 다음 단계로 2번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이든은 이 협주곡에서 무엇을 실험했나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은 단순히 잘 만들어진 협주곡을 넘어서, 형식의 실험이 담긴 작품입니다. 특히 두 가지가 눈에 띄죠.

첫 번째는 독주 첼로의 음역 확장입니다. 당시 첼로는 주로 저음부를 담당하는 악기로 인식됐거든요. 오케스트라에서 베이스라인을 짚고, 현악 사중주에서는 가장 낮은 성부를 맡는 역할이었죠. 그런데 하이든은 이 협주곡에서 첼로를 상위 성부로 끌어올립니다. 2악장에서 첼로가 고음역으로 치솟는 순간들, 3악장에서 빠른 패시지를 쉼 없이 달리는 장면들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습니다. 크라프트가 아니면 연주 자체가 힘들었을 겁니다.

두 번째는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관계 재설정이죠.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단순히 첼로의 반주를 담당하지 않습니다. 주제를 제시하기도 하고, 독주 첼로의 선율을 이어받기도 하고, 때로는 첼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거든요. 이 구조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에서도 볼 수 있는 방식인데, 하이든이 첼로 협주곡에서 그 가능성을 개척한 셈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가 음악사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지는 이후 등장한 첼로 협주곡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슈만의 첼로 협주곡(1850),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1895), 엘가의 첼로 협주곡(1919). 이 작품들이 모두 첼로를 솔리스트로 세우면서 오케스트라와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계보의 출발점에 하이든의 2번이 있는 거죠.

물론 이게 하이든의 의도된 혁명적 선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크라프트를 위한 맞춤형 협주곡이 필요했고, 하이든의 창의적 본능이 작동하면서 나온 결과물일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협주곡은 협주곡이라는 형식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했죠.

추천 녹음

추천 녹음은 세 종류입니다. 어느 것을 들어도 후회 없지만, 성격이 조금씩 다르죠.

재클린 뒤 프레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존 바비롤리 경 (1969, HMV)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é)는 이 협주곡을 자신의 콘서트 레퍼토리로 자주 연주했습니다. 1969년 녹음은 그의 연주 전성기의 기록이죠. 바비롤리 경과의 호흡도 탁월하고요.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보다는, 첼로가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숨결이 느껴지는 연주를 원한다면 이 녹음이 첫 번째 선택입니다. 불행히도 뒤 프레는 1971년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고 1973년에 연주를 완전히 그만뒀거든요. 이 1969년 녹음은 그의 마지막 전성기 기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미샤 마이스키 /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1987, DG)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의 1987년 DG 녹음은 지금도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의 기준 음반으로 꼽힙니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조합은 소편성 앙상블이 이 곡에서 얼마나 투명하고 섬세한 음향을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죠. 마이스키의 첼로는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고, 2악장의 서정적인 대목에서 특히 빛납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 하이든이 왜 소편성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는지 납득이 가거든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마틴인더필즈 (1976)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는 20세기 첼로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1976년 녹음에서 그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마틴인더필즈와 함께 이 곡을 연주했죠. 다른 연주에 비해 스케일이 크고 음색이 굵습니다. 작은 앙상블과의 실내악적 해석보다는, 이 곡이 가진 교향악적 규모를 느끼고 싶다면 이 녹음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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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를 보며 들으면 선율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옵니다.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 열람이 가능합니다. → 첼로 협주곡 2번 D장조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은 왜 안톤 크라프트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나요?

하이든의 자필 악보가 한동안 소재가 불명이었고, 이 협주곡의 일부 악보가 초연 독주자였던 안톤 크라프트의 필사본으로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크라프트가 카덴자를 직접 작곡하기도 했고, 그 기량이 뛰어났기에 일부 음악학자들이 크라프트가 실제 작곡자라는 가설을 제기했습니다. 1953년 하이든의 자필 악보가 발견되면서 논란이 종결됐습니다. 악보에는 하이든의 필체로 “나의 첼로 협주곡”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의 악장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3악장으로 구성됩니다. 1악장은 Allegro moderato(적당히 빠르게)로 소나타 형식으로 전개되며, 독주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대화가 중심입니다. 2악장은 Adagio(느리게)로 현악 오케스트라만으로 반주하는 서정적인 악장입니다. 3악장은 Rondo: Allegro로 헝가리 민속 음악의 색채가 담긴 활기찬 론도 형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전체 연주 시간은 약 27~30분입니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과 2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1번(C장조)은 하이든의 초기 작품으로 바로크적인 감각이 강하고 비교적 경쾌한 느낌입니다. 1961년에야 발견된 분실 작품이기도 합니다. 반면 2번(D장조)은 1783년 하이든 완숙기의 작품으로 훨씬 교향악적이고 규모가 큽니다. 첼로의 기교적 요구도 2번이 훨씬 높으며,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도 더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2번이 음악적 완성도와 스케일 면에서 더 높이 평가받습니다.

첼로 협주곡 2번은 어떤 첼리스트를 위해 작곡됐나요?

에스테르하지 궁정 악단의 수석 첼리스트 안톤 크라프트(Anton Kraft, 1749-1820)를 위해 작곡됐습니다. 크라프트는 하이든의 제자이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 수준의 첼리스트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이든은 그의 기량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이 협주곡의 첼로 파트를 그에게 맞춤형으로 작성했습니다. 런던 초연(1787년)은 제임스 서베토(James Cervetto)가 맡았습니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추천 녹음은 무엇인가요?

재클린 뒤 프레/LSO/바비롤리(1969, HMV), 미샤 마이스키/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1987, DG),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아카데미 오브 세인트마틴인더필즈(1976) 세 가지가 대표적입니다. 뒤 프레 녹음은 서정성과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고, 마이스키 녹음은 투명하고 섬세한 앙상블을 들을 수 있으며, 로스트로포비치 녹음은 교향악적 스케일이 큰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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