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 요절한 친구의 유작 전시회를 걸으며 받은 인상을, 전시장 발걸음(프롬나드)으로 엮어 낸 피아노 모음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마지막 곡 「키예프의 대문」. 첫머리에 혼자 걷던 프롬나드 선율이 종소리와 함께 거대하게 돌아옵니다.
첫 음반 — 프리츠 라이너 · 시카고 심포니 (RCA, 1957), 라벨 관현악 편곡.
1874년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느 방. 한 남자가 스무날 동안 악보에 파묻혀 지냅니다. 열 달 전 서른아홉에 심장이 멈춘 친구, 그 친구의 유작 전시회를 보고 온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쏟아 낸 그림 열 장이 《전람회의 그림》입니다.
이 곡은 보통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오케스트라로 화려하게 살려 낸 명곡’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라벨의 편곡은 원곡이 나오고 48년이나 지나 붙은 것이고, 무소르그스키 본인은 다 쓰자마자 악보를 서랍에 넣고 출판을 포기했거든요. 지금 우리가 듣는 그 화려한 색채는 시작이 아니라 한참 뒤에 온 결말이었어요.

이름부터 ‘쓰레기’였던 귀족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라는 성에는 사연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무소르(мусор)’가 쓰레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형 필라레트가 철자 사이에 ‘г’ 한 글자를 슬쩍 끼워 넣었다고 전해집니다. 무소르스키(Мусорский)를 무소르그스키(Мусоргский)로. 위대한 작곡가 이름이 쓰레기를 떠올리게 하면 곤란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평론가이자 벗이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Vladimir Stasov)에게 보낸 편지에는 ‘무소랴닌’, 그러니까 ‘쓰레기 동네 사는 놈’ 정도로 서명하곤 했습니다. 위대함을 강요받는 이름을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든 셈입니다.
출신은 오히려 화려했습니다. 9세기 노브고로드 공 류리크까지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운 아홉 살 무렵엔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John Field)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의 곡을 쳤습니다. 열세 살에는 근위 사관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두 가지를 익혔습니다. 하나는 군인의 규율. 다른 하나는 술이었습니다.
당시 사관학교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교장이던 수트고프 장군은 생도가 샴페인에 취해 돌아오면 오히려 대견해했다고 합니다. 귀족 장교라면 술 정도는 다뤄야 한다는 시대였습니다. 훗날 마흔둘에 그를 죽음으로 몬 알코올 의존이, 아마 이 시절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강력한 다섯’이 흩어지고 혼자 남다
1856년, 열일곱 살 무소르그스키는 군 병원에서 스물세 살의 알렉산드르 보로딘(Alexander Borodin)과 마주칩니다. 화학자이면서 작곡가였던 보로딘이 남긴 첫인상 기록이 재미있습니다. “제복은 티 하나 없었고, 발끝은 바깥으로, 머리는 곱게 빗어 넘겼으며, 손톱은 완벽하게 손질돼 있었다. 귀부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샤르망! 델리시외!’를 연발했다.” 한마디로 멋쟁이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곧 러시아 음악의 반란군에 합류합니다.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를 중심으로 뭉친 ‘강력한 다섯(Могучая кучка)’ —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세자르 퀴(César Cui), 그리고 발라키레프입니다. 다섯 중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군인, 보로딘은 화학 교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해군 장교, 퀴는 군사공학 교수. 이 아마추어들이 독일식 대위법과 소나타 형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러시아 민요와 동방의 선법으로 새 음악을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1873년에서 1874년 사이, 이 모임이 사실상 해체됩니다. 다들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졌고, 깃발을 끝까지 쥔 사람은 무소르그스키뿐이었습니다. 사촌이자 한집에 살던 아르세니 골레니셰프쿠투조프(Arseniy Golenishchev-Kutuzov)의 증언이 이렇습니다. “‘강력한 다섯’의 기치는 무소르그스키 혼자 붙들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떠나 각자의 길로 갔다.”
때마침 그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1874년 1월. 공연은 매번 매진됐고 관객은 열광했지만, 평단은 냉랭했습니다. 동료들조차 그가 뭘 하려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공과 고립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외로운 시기에, 또 하나의 부고가 도착합니다.
서른아홉에 멈춘 심장
빅토르 하르트만(Viktor Hartmann). 건축가이자 화가였고, 1868년 무렵 무소르그스키와 만나자마자 단짝이 된 사람입니다. 두 사람 다 ‘뼛속까지 러시아적인 예술’을 밀어붙였습니다. 하르트만은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아꼈습니다. 특히 《보리스 고두노프》의 ‘분수대 장면’을 좋아해서, 무소르그스키가 초고에서 잘라 낸 그 장면을 스타소프와 함께 졸라 1872년 개정판에 도로 넣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1873년 8월 4일, 하르트만이 동맥류로 갑자기 숨을 거둡니다. 서른아홉이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무너졌습니다. 러시아 예술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스타소프가 추모전을 꾸립니다. 1874년 2월과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미술아카데미에 하르트만의 작품 400여 점이 걸렸습니다. 무소르그스키도 생전에 하르트만에게 직접 받은 그림 두 점을 전시에 빌려주고, 자기 발로 전시장을 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석 달 뒤, 폭발합니다.
스무날의 폭주
1874년 6월 2일부터 22일까지. 정확히 스무날.
이 시기에 스타소프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의 열기가 그대로 만져집니다. “나의 친애하는 제네랄리시무스, 하르트만이 끓어오르고 있소. 보리스가 끓던 것처럼. 소리와 착상이 공중에 떠다니고, 나는 그걸 꿀꺽꿀꺽 삼키며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있소. 종이에 옮겨 적기가 벅찰 지경이오.”
그렇게 스무날 만에 프롬나드와 그림 열 개가 완성됩니다. 전시장을 걷는 자신의 발걸음에서 출발해, 그림 하나하나 앞에서 받은 인상을 소리로 옮겼습니다. 프롬나드의 들쭉날쭉한 박자(5/4와 6/4)부터가 실제로 사람이 걷는 리듬을 흉내 냅니다. 걸음이란 게 정확히 4박으로 딱딱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다 쓴 무소르그스키는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곡을 들려줬습니다.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병아리를 음악으로? 마녀의 닭발 오두막을? 삐걱대는 수레를? 골레니셰프쿠투조프는 “이 모든 것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행해졌다”고 어리둥절해하며 적었습니다. 동료들에게는 이 모든 게 그저 장난처럼 들렸던 거예요.
본인도 자기가 너무 멀리 갔다고 느낀 모양입니다. 출판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원고를 서랍에 넣어 버립니다. 그러고는 다시 오페라 《호반시치나》에 매달렸습니다. 이 곡은 작곡가가 죽고 5년 뒤인 1886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집을 거쳐(사실은 꽤 많이 ‘손질’해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무소르그스키가 쓴 원본 그대로의 악보는 1931년, 사후 50년이 지나서야 학술판으로 정리됐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화려한 관현악 솜씨가 궁금하다면 《세헤라자데》 감상 가이드도 함께 보면 좋습니다.
전시장 안으로 — 열 장의 그림을 걷다
이제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 봅시다. 곡은 프롬나드로 시작하고, 그림과 그림 사이를 이 걸음걸이 선율이 잇습니다.
프롬나드 — 걷는 리듬
B♭장조. 러시아 민요를 닮은 당당한 걸음입니다. 5/4와 6/4가 번갈아 나오는 불규칙한 박자가 전시장을 오가는 실제 발걸음을 흉내 냅니다. 이 선율은 그림과 그림 사이에 매번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조성과 셈여림을 달리합니다. 난쟁이를 보고 나면 무겁게, 튈르리 정원 뒤에는 가볍게, 카타콤을 지난 뒤에는 아예 딴 곡처럼. 그림을 본 사람의 속마음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이 걸음이 받아 적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을 틀면 가장 먼저 나오는 금관의 당당한 첫 주제, 그게 프롬나드입니다. 뒤에서 이 선율이 몇 번이고 얼굴을 바꿔 돌아오니, 첫인상을 잘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1. 난쟁이 (Gnomus)
E♭단조. 하르트만이 디자인한 호두까기 인형인데, 절름거리는 난쟁이 모양이었습니다. 음악은 처음부터 뒤틀려 있습니다. 짧은 음형이 불쑥 멈추고, 비명처럼 튀어 오르고, 다시 웅크립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기괴한 인형에서 고통과 분노를 한꺼번에 읽어 냈습니다. 끝에서 난쟁이는 어둠 속으로 사그라들듯 사라집니다.
2. 옛 성 (Il vecchio castello)
G♯단조. 중세 성 앞에서 음유시인이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6/8 시칠리아나 리듬 위로 구슬픈 가락이 끝없이 반복되는데, 이 단조로운 되풀이가 오히려 사람을 홀립니다. 라벨은 이 선율을 알토 색소폰에 맡겼습니다. 클래식 관현악에서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는 악기죠. 피아노 원곡에서는 왼손의 집요한 반주가 음산함을 한층 짙게 깝니다. 하르트만이 이탈리아 여행 중 남긴 스케치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원화는 사라졌습니다.
3. 튈르리 정원 (Tuileries)
B장조. 파리 튈르리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잔소리하는 유모들입니다. 무소르그스키가 붙인 부제가 ‘놀이 뒤의 말다툼’입니다. 짧고 날카로운 음형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낮게 깔리는 프레이즈가 유모의 나무람을 흉내 냅니다. 통째로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그림이지만, 순간을 낚아채는 무소르그스키의 솜씨가 여기서 반짝합니다.
4. 비들로 (Bydło)
G♯단조. 폴란드어로 ‘소’라는 뜻입니다. 거대한 소가 끄는 수레가 저 멀리서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가장 큰 소리인 포르티시모로 코앞을 지나가고, 다시 천천히 멀어져 사라집니다. 여기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 편집판은 이 수레를 여린 소리로 시작하지만, 무소르그스키 원본은 처음부터 포르티시모입니다. 즉 원본의 소는 처음부터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습니다. 라벨은 이 선율을 튜바에 얹었는데, 튜바가 이렇게 서정적인 가락을 노래하는 경우는 관현악 레퍼토리를 다 뒤져도 드뭅니다.

5. 껍질 속 병아리들의 발레
F장조. 하르트만이 1871년 볼쇼이 극장의 발레 《트릴비》를 위해 그린 병아리 의상 스케치에서 나왔습니다. 알 껍데기를 뒤집어쓴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뒤뚱거리는 장면입니다. 스케르초 리듬과 잔뜩 붙은 꾸밈음이 병아리들의 어설픈 몸짓을 그립니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만듦새는 꽤 정교한 소품이고, 이 역시 1분 남짓입니다.
6.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뮐레
B♭단조.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입니다. 골덴베르크는 여러 악기가 한 음을 겹쳐 내는 유니즌 주법으로 낮고 장중한 선율을 노래하며 등장하고, 슈뮐레는 높은 음역에서 같은 음을 종종거리며 애원합니다. 두 가락이 겹치는 순간, 부자는 꿈쩍도 않고 가난한 자의 목소리만 점점 잦아듭니다. 하르트만이 폴란드 산도미에시에서 그린 초상 두 점에서 따왔고, 마침 무소르그스키가 직접 소장하던 그림이었습니다. 라벨 편곡에서는 현악 유니즌과 약음기 낀 트럼펫의 대비가 이 장면을 한결 또렷하게 세웁니다.
7. 리모주의 시장
E♭장조. 프랑스 리모주 장터의 왁자한 활기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원래 악보 여백에 장사꾼 아낙들의 수다를 프랑스어로 적어 놓았다가 나중에 지웠습니다. “큰일 났네! 퓌잔주 씨가 어제 암소를 잃어버렸대!” 같은 시시콜콜한 뒷담화. 쉴 새 없이 떠드는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다가 — 쉼표 하나 없이 카타콤의 어둠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이 급전환은 곡 전체에서 가장 서늘한 순간입니다.
8. 카타콤 (Catacombae)
B단조. 여기서 곡의 낯빛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르트만이 파리의 지하묘지를 직접 탐험하며 그린 수채화입니다. 등불을 든 안내인과 하르트만 자신이 두개골과 뼈가 쌓인 어둠 속에 서 있습니다. 음악은 거대한 화음 덩어리의 연속입니다. 지하 석실에서 벽을 두드리는 듯한 울림. 이어지는 ‘죽은 자의 언어로 죽은 자와 함께(Cum mortuis in lingua mortua)’에서는, 프롬나드 선율이 떨리는 트레몰로 위로 유령처럼 떠오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리모주의 소란이 뚝 끊기고 낮은 화음이 쿵 내려앉는 지점이 카타콤의 입구입니다. 뒤이어 익숙한 프롬나드 선율이 떨리며 돌아오면, 산책자가 이제 그림이 아니라 죽은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신호예요.
스타소프가 남긴 주석에 따르면, 무소르그스키는 이 대목에 “죽은 하르트만의 두개골에 빛을 비추자, 두개골이 속에서부터 빛나기 시작한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더 이상 그림 구경이 아닙니다. 산 사람이 죽은 친구에게 말을 거는, 이 모음곡에서 가장 내밀한 순간입니다.
9. 닭발 위의 오두막 (바바 야가)
C장조와 단조를 오갑니다. 슬라브 전설 속 마녀 바바 야가가 사는, 닭발을 딛고 선 오두막입니다. 하르트만의 원래 디자인은 사실 청동 시계였습니다. 러시아 전통 양식으로 닭발 위에 얹은 모양이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여기서 마녀가 절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양 끝의 빠른 부분은 사납고 거칠며, 가운데 느린 부분은 숲속의 으스스한 정적입니다. 구조가 ‘난쟁이’와 짝을 이루며, 이 그림이 곡의 ‘어둠’ 쪽을 닫는 셈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곧장 마지막 그림의 빛으로 돌진합니다.

10. 키예프의 대문
E♭장조. 압도적인 피날레입니다. 하르트만이 1869년 알렉산드르 2세 암살 미수를 기념해 그린 키예프 성문 도안입니다.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무소르그스키의 음악 안에서 영원히 서 있습니다. 프롬나드 선율이 장엄하게 부풀어 돌아오고, 온갖 종이 울립니다. 짓지 못한 문 하나가 소리로 완공된 셈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마지막, 종소리가 겹겹이 쌓이는 위로 프롬나드 주제가 크게 돌아옵니다. 첫머리에서 혼자 걷던 그 걸음이, 여기서는 대성당의 종과 함께 울려 퍼집니다. 첫 주제를 기억해 뒀다면, 이 순간 돋는 소름이 그 증거가 되어 줄 겁니다.
라벨이 달아 준 날개
무소르그스키의 원곡은 피아노 독주입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입장에서는 좀 가혹합니다. 오케스트라로 상상한 소리를 두 손에 욱여넣은 곡이거든요. ‘키예프의 대문’을 다 치고 나면 손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이 곡을 콘서트 단골 레퍼토리로 끌어올린 건 20세기의 거장 피아니스트들 — 리흐테르, 호로비츠, 브렌델 — 이 그 기술적 난관을 기꺼이 떠안으면서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살롱용 소품쯤으로 취급받기도 했습니다.
1922년,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이 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합니다. 그리고 이 버전이 원곡을 제치고 훨씬 유명해집니다. 라벨의 색채 감각이 무소르그스키의 거친 원석에 세공을 입힌 격이었습니다. ‘비들로’의 수레에는 튜바의 묵직한 저음을, ‘키예프의 대문’에는 금관 총동원과 종소리를 배치했습니다. 라벨이 관현악법의 대가였다는 사실은 《볼레로》 감상 가이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편곡이 나온 사연도 들여다볼 만합니다. 러시아 출신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zky)가 파리에서 악보 출판사를 운영하며 라벨에게 편곡을 맡겼습니다. 라벨은 이미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깊이 들여다본 뒤였고, 이 피아노곡에 잠든 관현악의 가능성을 정확히 짚어 냈습니다. 악기 선택은 그림마다 달랐습니다. ‘옛 성’에는 당시로선 파격이던 알토 색소폰을, ‘비들로’에는 튜바의 저음을, ‘병아리’에는 알 껍데기를 쪼는 듯한 목관 스타카토를 골랐습니다. 프롬나드가 나올 때마다 편성을 바꿔 관람자의 기분 변화를 색으로 칠한 것도 라벨의 아이디어였습니다.
💡 사실은요 — 흔히 라벨 편곡을 ‘무소르그스키 원본의 완벽한 번역’이라 여기지만, 라벨이 손에 쥔 악보는 원본이 아니라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손질한 1886년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들로’의 시작 셈여림이 무소르그스키의 포르티시모가 아니라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여린 소리를 따릅니다. 라벨판의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수레’는 무소르그스키의 구상이 아니라 편집자의 흔적입니다. 원곡의 거칠고 날것 같은 질감을 아끼는 피아니스트들이 라벨 편곡을 ‘미화’라며 아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랍에서 콘서트홀로

무소르그스키는 1881년 3월 28일, 마흔둘에 니콜라옙스키 군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알코올 의존이 부른 간질환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화가 일리야 레핀(Ilya Repin)이 단 나흘 만에 그린 초상화가 남아 있습니다. 부은 얼굴, 충혈된 눈, 헝클어진 머리. 러시아 미술사에서 가장 정직한 초상으로 꼽히며, 지금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서랍에 처박혀 출판도 못 됐던 이 곡은, 세상을 떠난 지 145년이 지난 지금 가장 자주 연주되는 피아노곡이 됐습니다. 편곡도 라벨만의 것이 아닙니다.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의 관현악판(1939), 밴드 에머슨·레이크 앤드 파머의 프로그레시브 록 버전(1971), 토미타 이사오의 신시사이저판(1975). 금관 앙상블, 오르간, 기타, 심지어 록 밴드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 곡에 달려듭니다.
이렇게 다양한 옷을 갈아입는 이유는, 원곡이 특정 악기의 말투에 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피아노를 위한 곡’이 아니라 ‘소리로 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은 어떤 악기로도 다시 칠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이 왜 이토록 세게 다가올까요. 형식 때문이 아닙니다. 기법 때문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죽은 친구의 그림 앞을 걸으며 느낀 것들 — 놀라움, 웃음, 공포, 슬픔, 그리고 마지막의 커다란 긍정. 그게 전부입니다. 카타콤에서 죽은 자의 언어로 대화하던 사람이, 끝에서는 지어지지도 않은 문을 세웁니다. 없는 것을 영원히 서 있게 만드는 일. 예술이 할 수 있는 게 정확히 그것입니다.
《전람회의 그림》을 들을 때 우리는 무소르그스키와 나란히 그 전시장을 걷습니다. 프롬나드의 첫걸음부터 키예프의 대문이 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삼십몇 분 동안 열 장의 그림을 보고, 지하묘지를 지나, 마침내 빛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카타콤을 통과할 즈음이면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것은 하르트만의 추모전이 아니라, 무소르그스키가 친구에게 부친 마지막 편지였다는 것을.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전람회의 그림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피아노 원곡과 라벨 편곡, 그리고 아예 장르를 바꾼 버전까지 세 갈래로 골랐습니다. 처음이라면 라벨 편곡으로 전체 지도를 그린 뒤, 피아노 원곡에서 날것의 무소르그스키를 만나는 순서를 권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 Wikipedia — Pictures at an Exhibition (작곡 경위·악장 구성·판본)
- IMSLP — Pictures at an Exhibition 악보 및 판본 목록
- Wikipedia — Viktor Hartmann (하르트만의 그림과 모음곡의 관계)
- Wikipedia — Modest Mussorgsky (생애·’강력한 다섯’·죽음)
이어서 듣기 — 러시아의 동료들, 그리고 관현악의 색채
이 곡이 좋았다면, 아래 다섯 곡은 취향이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강력한 다섯’의 세계에서 시작해, 관현악의 색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곡가들로 이어집니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감상 가이드 — ‘강력한 다섯’ 동료가 남긴 관현악 걸작
-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감상 가이드 — 러시아 음악이 일으킨 또 하나의 혁명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감상 가이드 — 같은 시대 러시아를 울린 마지막 교향곡
- 라벨 《볼레로》 감상 가이드 — 이 곡에 날개를 달아 준 편곡 대가의 대표작
- 홀스트 《행성》 감상 가이드 — 관현악의 색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모음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