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친구의 유작 전시회를 보고 써내려간 음악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Modest Mussorgsky, 1839–1881)
곡명
전람회의 그림
(Pictures at an Exhibition)
작곡
1874 (피아노 원곡), 1922 (라벨 관현악 편곡)
편성
플루트 3(피콜로), 오보에 2(잉글리시 혼), 클라리넷 2(E♭·베이스), 바순 2, 콘트라바순, 알토 색소폰,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타악기 다수, 하프, 첼레스타, 현5부
악장 구성
프롬나드(산책) + 10곡
1. 난쟁이 (Gnomus)
2. 옛 성 (Il vecchio castello)
3. 튈르리 정원 (Tuileries)
4. 비들로 (Bydło)
5. 껍질 속 병아리의 춤
6.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뮐레
7. 리모주의 시장 (The Market at Limoges)
8. 카타콤 (Catacombae)
9. 닭 다리 위의 오두막 (Baba Yaga)
10. 키예프의 대문 (The Great Gate of Kiev)
연주 시간
약 33분

1874년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 남자가 미친 듯이 악보를 휘갈깁니다. 20일 만에 피아노 모음곡 한 편을 완성할 기세입니다. 그의 이름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 그리고 이 곡은, 10개월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바치는 편지였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대담한 피아노 모음곡입니다. 전시회를 걸어다니는 발걸음에서 출발해 난쟁이, 소달구지, 마녀의 오두막, 대성당 같은 문까지 — 10개의 그림을 음악으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탄생 배경부터 10개 악장의 핵심 감상 포인트, 라벨 편곡이 가져온 변화, 그리고 추천 음반까지 정리합니다.

1. 쓰레기통에서 태어난 천재

무소르그스키라는 성(姓)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мусор’는 ‘쓰레기’라는 뜻이거든요. 형 필라레트가 ‘г’를 하나 끼워넣어 철자를 바꿔버렸습니다. Мусорский를 Мусоргский로. 위대한 작곡가의 이름이 쓰레기를 연상시키면 곤란하니까요. 하지만 정작 무소르그스키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친구 블라디미르 스타소프(Vladimir Stasov)에게 보내는 편지에 ‘무소르야닌(쓰레기 사는 놈)’이라고 서명하곤 했으니까요.

무소르그스키 초상화 (1874년경)
무소르그스키 초상화 (1874년경). 퍼블릭 도메인.

이 남자의 출신은 화려했습니다. 9세기 노브고로드 공 류리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 가문.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워 아홉 살에 존 필드(John Field)의 협주곡과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의 작품을 연주했습니다. 열세 살에 근위대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여기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하나는 군인의 규율. 다른 하나는 — 술입니다.

교장 수트고프 장군은 생도가 샴페인에 취해 돌아오면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귀족 장교의 필수 소양이 음주였던 시대였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알코올 중독은 여기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훗날 그를 42세에 죽음으로 몰고 간 그 병이.

2. ‘강력한 다섯’의 마지막 깃발

1856년, 열일곱 살의 무소르그스키는 군 병원에서 스물두 살의 알렉산드르 보로딘(Alexander Borodin)을 만납니다. 보로딘의 회고가 재미있습니다. “제복은 티 없이 깔끔했고, 발은 바깥쪽으로, 머리카락은 빗어 넘기고, 손톱은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귀부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샤르망! 델리시외!’를 연발했죠.”

이 세련된 청년은 곧 러시아 음악의 혁명가가 됩니다.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를 중심으로 뭉친 ‘강력한 다섯(Могучая кучка)’ —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세사르 퀴이(César Cui), 발라키레프. 다섯 명 모두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출신이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군인, 보로딘은 화학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해군 장교, 퀴이는 군사공학 교수. 이들은 독일식 대위법과 소나타 형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러시아 민요와 동방의 선법을 재료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1873~74년, 이 그룹은 사실상 와해됩니다. 각자 자기 길을 갔고, 무소르그스키만 홀로 깃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사촌이자 룸메이트였던 아르세니 골레니셰프쿠투조프(Arseniy Golenishchev-Kutuzov)의 증언입니다. “‘강력한 다섯’의 기치는 무소르그스키 혼자만 붙들고 있었고, 다른 멤버들은 모두 떠나 자기 길을 갔다.”

바로 이 시기, 《보리스 고두노프》가 초연됩니다. 1874년 1월. 극장은 매번 매진, 관객은 열광적으로 무소르그스키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적대적이었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예술적 목표를 이해하지 못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계에서 그는 점점 고립됐습니다.

이 고독 속에서, 또 하나의 비극이 찾아옵니다.

3. 39세, 동맥류

빅토르 하르트만(Viktor Hartmann). 건축가이자 화가. 1868년경 무소르그스키와 만나 단번에 친구가 된 사람입니다. 둘 다 ‘본질적으로 러시아적인 예술’에 헌신했습니다. 하르트만은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사랑했고, 특히 《보리스 고두노프》의 ‘분수대 장면’을 좋아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가 초고에서 잘라버렸던 그 장면을, 하르트만과 스타소프의 간청으로 1872년 개정판에 다시 넣었을 정도입니다.

빅토르 하르트만 초상
빅토르 하르트만 (1834–1873). 퍼블릭 도메인.

1873년 8월 4일. 하르트만이 동맥류로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서른아홉 살이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러시아 예술계 전체가 충격을 받았고, 스타소프가 추모 전시를 기획합니다. 1874년 2~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미술아카데미에서 하르트만의 작품 400여 점이 전시됐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하르트만에게 직접 받았던 그림 두 점을 전시에 빌려주고, 직접 전시를 관람합니다.

그리고 석 달 뒤, 폭발합니다.

4. 3주 만에 쏟아낸 추모곡

1874년 6월 2일부터 22일까지. 정확히 20일.

무소르그스키가 스타소프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의 광기가 느껴집니다. “나의 친애하는 제네랄리시메, 하르트만이 끓어오르고 있소, 보리스가 끓었던 것처럼. 소리와 아이디어가 공중에 떠다니고, 나는 꿀꺽꿀꺽 삼키며 과식하고 있소. 종이에 끄적이기도 벅찰 지경이오.”

3주 만에 10개의 악장과 프롬나드를 완성합니다. 전시장을 거니는 자신의 발걸음부터 시작해서, 각 그림 앞에서 느낀 감정을 음악으로 옮겼습니다. 프롬나드의 불규칙한 박자(5/4, 6/4)는 실제로 걸어다니는 리듬을 흉내 냅니다.

예프게니 키신(Evgeny Kissin)의 피아노 독주 전곡 연주. 원곡의 거칠고 날것 같은 질감을 가장 잘 살린 녹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곡의 운명은 기구합니다. 완성 직후 친구들에게 들려줬더니, 동료 작곡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병아리를 음악으로? 바바 야가의 닭 다리 오두막을? 수레 소리를? “이 모든 것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행해졌다”고 골레니셰프쿠투조프는 적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자기가 너무 멀리 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출판을 시도하지도 않은 채 원고를 서랍에 넣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오페라 《호반시차나》에 몰두했습니다.

이 걸작이 세상에 나온 건 작곡가가 죽고 5년 뒤인 1886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집(그리고 꽤 많이 ‘수정’)해서 출판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원래 악보 그대로가 학술판으로 나온 건 1931년, 작곡가 사후 50주년이 되어서였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법에 관심이 있다면 《세헤라자데》 감상 가이드도 참고해 보세요.

5. 10개의 그림, 하나의 여정

자, 이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프롬나드 — B♭장조. 러시아 민요풍의 당당한 걸음. 5/4와 6/4 박자가 불규칙하게 번갈아 나오는데, 이것이 실제로 전시장을 걸어다니는 리듬입니다. 걸음걸이는 정확히 4박이 아니니까요. 이 테마가 그림과 그림 사이를 연결하며, 매번 조성과 다이내믹이 바뀝니다. 난쟁이를 보고 나면 무겁고, 튈르리 정원 뒤에는 가볍습니다. 카타콤 이후에는 아예 다른 곡처럼 변합니다. 감상자의 내면이 그림에 의해 바뀌어 가는 과정을 프롬나드가 기록하는 겁니다.

1. 난쟁이(Gnomus) — E♭단조. 하르트만이 디자인한 호두까기 인형인데, 절름발이 난쟁이 형상입니다. 음악은 처음부터 불안합니다. 짧은 음형이 갑자기 멈추고, 비명을 지르듯 도약하고, 다시 찌그러집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기괴한 인형에서 고통과 분노를 동시에 읽어냈습니다. 마지막엔 난쟁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 소멸합니다.

2. 옛 성(Il vecchio castello) — G♯단조. 중세 성 앞에서 트루바두르가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6/8 시칠리아나 리듬 위에 구슬픈 멜로디가 끝없이 반복되는데, 이 단순한 반복이 오히려 최면적입니다. 라벨 편곡에서는 알토 색소폰이 이 선율을 맡아 독특한 음색을 냅니다. 피아노 원곡에서는 왼손의 집요한 반주 패턴이 음산한 분위기를 더 강하게 드러냅니다. 하르트만이 이탈리아 여행 중 그린 스케치로 추정되지만, 원화는 소실됐습니다.

3. 튈르리 정원(Tuileries) — B장조. 파리의 튈르리 정원에서 놀다 싸우는 아이들과 잔소리하는 유모들. 무소르그스키는 이 곡에 ‘아이들의 다툼’이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짧고 날카로운 음형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낮은 음역의 무거운 프레이즈가 유모의 나무라는 목소리를 흉내 냅니다. 전체가 1분도 안 되는 짧은 악장이지만, 무소르그스키 특유의 ‘장면 포착’ 능력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4. 비들로(Bydło) — G♯단조. 폴란드어로 ‘소(牛)’. 거대한 소가 끄는 수레가 먼 곳에서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포르티시모로 바로 앞을 지나가고, 다시 서서히 멀어져 사라집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 편집판에서는 포르테로 시작하지만, 무소르그스키 원본은 포르티시모입니다. 라벨은 이 선율을 튜바에 맡겼는데, 튜바가 이토록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경우는 관현악 레퍼토리 전체를 통틀어도 드뭅니다.

하르트만의 발레 트릴비 의상 스케치 — 부화하는 병아리
하르트만, 발레 《트릴비》를 위한 병아리 의상 스케치. 퍼블릭 도메인.

5. 알에서 부화하는 병아리의 발레 — F장조. 하르트만이 1871년 볼쇼이 극장 발레 《트릴비》를 위해 디자인한 병아리 의상 스케치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알 껍데기를 뒤집어쓴 댄서들이 무대 위에서 뒤뚱뒤뚱. 스케르초 리듬과 장식음이 병아리들의 어설픈 몸짓을 흉내 내는데, 유머러스하면서도 음악적으로 정교한 소품입니다. 전체가 1분 남짓한 짧은 악장입니다.

6. 사뮈엘 골든베르크와 슈뮐레 — B♭단조.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 골든베르크는 유니즌의 장중한 선율로 등장하고, 슈뮐레는 높은 음역에서 같은 음을 반복하며 초조하게 애원합니다. 두 테마가 동시에 겹치는 부분에서 부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목소리만 점점 작아집니다. 하르트만이 폴란드 산도미에시에서 그린 두 장의 초상화에서 따왔고, 무소르그스키가 직접 소유하고 있던 그림이기도 합니다. 라벨 편곡에서는 현악의 유니즌과 트럼펫 뮤트 사이의 대비가 이 장면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7. 리모주의 시장 — E♭장조. 프랑스 리모주 장터의 소란스러운 활기. 무소르그스키는 원래 악보에 상인 아줌마들의 험담을 프랑스어로 적어놓았다가 나중에 지웠습니다. “큰 소식! 풍타냐스 씨가 어제 소를 잃어버렸다!” 같은 시시콜콜한 수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다가 — 쉼표 하나 없이 카타콤의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합니다. 이 극적인 전환은 곡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8. 카타콤(로마식 지하묘지) — B단조. 여기서 곡의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르트만이 파리 카타콤을 직접 탐험하며 그린 수채화입니다. 랜턴을 든 안내인, 그리고 하르트만 자신이 두개골과 뼈가 쌓인 어둠 속에 서 있습니다. 음악은 거대한 화음 블록의 연속인데, 마치 지하 석실에서 벽을 두드리는 것 같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Cum mortuis in lingua mortua(죽은 자의 언어로 죽은 자와 함께)’ — 프롬나드 테마가 트레몰로 위에 유령처럼 떠오릅니다. 산책자가 그림을 구경하는 곡이 아니라, 죽은 친구와 대화하는 곡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스타소프의 주석에 따르면, 이 부분에서 무소르그스키 자신이 “죽은 하르트만의 두개골에 빛을 비추며, 두개골이 안으로부터 빛나기 시작한다”고 적었습니다. 단순히 그림을 구경하는 산책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친구에게 말을 거는, 이 모음곡의 가장 내밀한 순간입니다.

바바 야가의 오두막과 키예프의 대문 — 피아노 원곡. 격렬한 바바 야가에서 쉬지 않고 키예프의 대문으로 돌진하는 긴장감을 느껴 보세요.

9. 바바 야가의 오두막 — C장조/단조. 슬라브 전설 속 마녀 바바 야가가 사는 닭 다리 위의 오두막. 하르트만의 디자인은 사실 청동 시계였습니다. 러시아 전통 양식의 닭 다리 위에 올라앉은 형태인데, 무소르그스키는 여기서 마녀가 절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을 음악으로 그렸습니다. 양 끝의 빠른 부분은 광폭하고 야만적이며, 중간의 느린 부분은 숲 속의 으스스한 정적입니다. 구조가 ‘난쟁이’와 대칭을 이루는데, 곡 전체의 ‘어둠’ 측을 이 악장이 마무리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곧바로 마지막 악장의 장엄한 빛 속으로 돌진합니다.

하르트만의 키예프 성문 디자인
하르트만, 키예프 성문 디자인 (1869). 실제로 건설되지 않았지만, 음악 속에서 영원히 서 있습니다. 퍼블릭 도메인.

10. 키예프의 대문(보가티르의 문) — E♭장조. 압도적인 피날레. 하르트만이 1869년 알렉산드르 2세 암살 미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디자인한 키예프 성문입니다.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음악 속에서 영원히 우뚝 서 있습니다. 프롬나드 테마가 장엄하게 변형되어 돌아오고, 온갖 종소리가 울립니다.

건설되지 않은 문이 음악으로 영원히 세워진 겁니다.

6. 라벨이 달아준 날개

무소르그스키의 원곡은 피아노 독주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피아니스트에게 좀 가혹합니다. 오케스트라적 발상을 피아노 두 손에 욱여넣은 느낌이거든요. ‘키예프의 대문’을 치고 나면 손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이 곡을 콘서트 레퍼토리로 정착시킨 건 20세기 거장 피아니스트들 — 리흐테르, 호로비츠, 브렌델 — 이 이 곡의 기술적 난관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살롱용 소품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1922년,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이 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합니다. 그리고 이 버전이 원곡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습니다. 라벨의 색채 감각은 무소르그스키의 원석에 보석 세공을 한 격이었습니다. ‘비들로’의 소달구지에 튜바의 묵직한 음색을 입히고, ‘키예프의 대문’에 금관 총동원과 종소리를 배치합니다. 라벨이 관현악법의 달인이었다는 건 《볼레로》 감상 가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의 《전람회의 그림》 전곡 — 라벨 편곡. 피아노 원곡과 비교하며 들으면 라벨의 관현악법이 얼마나 정교한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라벨 편곡이 탄생한 배경도 흥미롭습니다. 1920년, 러시아 출신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zky)가 파리에서 음악출판사를 운영하며 라벨에게 편곡을 의뢰했습니다. 라벨은 이미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깊이 연구한 상태였고, 이 피아노곡에 숨어 있는 관현악적 가능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라벨의 선택은 악장마다 달랐습니다. ‘옛 성’에는 알토 색소폰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독주 악기를 배치했고, ‘비들로’는 튜바의 묵직한 선율로 시작합니다. ‘껍질 속 병아리’에서는 목관의 스타카토가 알 껍데기를 쪼는 소리를 흉내 내고, ‘카타콤’에서는 금관의 포르티시모가 지하 석실의 울림을 재현합니다. 프롬나드마다 악기 편성을 바꿔 관람자의 감정 변화를 색채로 표현한 것도 라벨의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라벨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수정된’ 악보를 바탕으로 편곡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원래 의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텍스트였던 거죠. 예컨대 ‘비들로’의 시작 다이내믹이 원본은 포르티시모인데, 림스키코르사코프 판은 피아노입니다. 라벨은 후자를 따랐고, 덕분에 ‘멀리서 다가오는’ 효과가 생겼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원래 구상과는 다릅니다. 원곡의 거칠고 날것 같은 질감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라벨 편곡을 ‘미화’라고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7. 사후 150년, 여전히 들리는 발걸음

일리야 레핀이 그린 무소르그스키 초상화 (1881)
일리야 레핀(Ilya Repin), 무소르그스키 초상화 (1881). 사망 며칠 전에 그려졌습니다. 퍼블릭 도메인.

무소르그스키는 1881년 3월 28일, 42세의 나이로 니콜라옙스키 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질환이었습니다. 레핀이 그린 유명한 초상화 — 부은 얼굴, 충혈된 눈, 흐트러진 머리카락 — 는 사망 며칠 전에 단 4일 만에 완성된 것입니다. 러시아 미술사에서 가장 솔직한 초상화로 꼽히며, 현재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그가 서랍에 넣어두고 출판하지 않았던 이 곡은, 150년이 넘은 지금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피아노 곡 중 하나가 됐습니다. 라벨 말고도 수많은 편곡이 있습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오케스트라 편곡(1939),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프로그레시브 록 버전(1971), 토미타 이사오의 신시사이저 편곡(1975). 금관 앙상블, 오르간, 기타, 심지어 록 밴드까지 —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 곡에 도전합니다. 이토록 다양한 편곡이 가능한 건 원곡이 특정 악기의 관용구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피아노를 위한 곡’이 아니라 ‘소리로 된 그림’을 쓴 것이고, 그 그림은 어떤 악기로든 재현할 수 있습니다.

왜 이 곡이 이렇게 강력할까요? 형식 때문이 아닙니다. 기법 때문도 아닙니다.

한 남자가 죽은 친구의 그림 앞에서 걸어다니며 느낀 것들 — 경이, 유머, 공포, 슬픔, 그리고 마지막에 찾아오는 압도적인 긍정. 그게 전부입니다. 카타콤에서 죽은 자의 언어로 대화하다가, 마지막엔 결국 건설되지 않은 문을 세웁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전람회의 그림》을 들을 때마다, 우리도 무소르그스키와 함께 그 전시장을 걷고 있는 겁니다. 프롬나드의 첫 걸음부터 키예프의 대문이 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서른 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10장의 그림을 보고, 지하묘지를 지나고, 마침내 빛 속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카타콤을 지날 때쯤이면 알게 됩니다. 이건 하르트만의 추모전이 아니라, 무소르그스키가 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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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반으로 들을까

피아노 원곡이라면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Sviatoslav Richter)의 1958년 소피아 라이브가 전설적입니다. 거칠고 야성적인 해석으로, 무소르그스키의 원래 의도에 가장 가까운 연주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키예프의 대문에서 피아노가 부서질 것 같은 포르티시모는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렵습니다. 좀 더 정제된 연주를 원한다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1951년 카네기홀 라이브를 권합니다. 호로비츠는 자기만의 편곡을 더했는데, ‘바바 야가’에서 옥타브를 추가해 더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라벨 관현악 편곡은 선택지가 넓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베를린 필(1986)은 오케스트라의 순수한 음향미가 압도적이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베를린 필(1993)은 각 악장의 캐릭터를 더 날카롭게 대비시킵니다. 프리츠 라이너와 시카고 심포니(1957)는 RCA 리빙 스테레오의 명녹음으로, 60년이 넘은 녹음인데도 음질이 놀랍습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번갈아 들으면 좋습니다. 같은 악장을 두 버전으로 비교하면 무소르그스키의 원래 구상과 라벨의 재해석 사이 간극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옛 성’은 피아노의 단출한 음색과 알토 색소폰의 관능적 음색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비들로’는 피아노의 포르티시모와 튜바의 피아니시모가 정반대의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처음 듣는 분이라면 라벨 편곡으로 시작해 전체 구조를 파악한 뒤, 피아노 원곡에서 무소르그스키의 날것을 경험하는 순서도 좋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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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geny Kissin, piano Mussorgsky Pictures at an ehibition. 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의 감동을 느껴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전람회의 그림》은 피아노 원곡과 라벨 관현악 편곡 중 어떤 버전을 먼저 들어야 하나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곡의 원래 의도를 느끼고 싶다면 피아노 원곡을 먼저 권합니다. 무소르그스키가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쏟아낸 날것의 감정을 더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라벨 편곡을 들으면 같은 음악이 오케스트라의 색채로 어떻게 변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프롬나드’는 왜 악장 사이마다 반복되나요?

프롬나드는 전시장을 걸어다니는 무소르그스키 자신의 발걸음입니다. 그림 하나를 보고 다음 그림으로 이동하는 동안 감상자의 기분이 바뀌는 것을 표현합니다. 같은 멜로디가 조성과 분위기를 달리하며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르트만의 원래 그림은 지금도 볼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대부분 소실됐습니다. 1874년 추모 전시에 400여 점이 걸렸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작품은 6~7점에 불과합니다. 병아리 의상 스케치, 파리 카타콤 수채화, 키예프 성문 디자인 등 일부만 남아 있으며, ‘난쟁이’나 ‘옛 성’ 등 여러 악장의 영감이 된 그림은 찾지 못했습니다.

라벨 편곡에서 프롬나드 하나가 빠져 있다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무소르그스키 원곡에는 프롬나드가 다섯 번 등장하지만, 라벨은 ‘사뮈엘 골든베르크와 슈뮐레’ 앞의 프롬나드를 삭제했습니다. 리모주의 시장에서 카타콤으로 넘어가는 아타카(attacca, 쉬지 않고 연결) 전환도 라벨이 강화한 부분입니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록 버전은 원곡에 충실한가요?

원곡의 구조는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자유롭게 편곡했습니다. 키스 에머슨이 무그 신시사이저와 하몬드 오르간으로 연주하며, 일부 악장은 아예 새로 작곡한 곡으로 대체했습니다. 1971년 뉴캐슬 시티홀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됐고, 클래식과 록의 경계를 허문 명반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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