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주자
- 정경화 (바이올린)
- 출생
- 1948년, 서울
- 수학
- 줄리아드 음악원 (이반 갈라미안 · 요제프 시게티 사사)
- 레이블
- 데카 · EMI(현 워너 클래식스) · 도이치 그라모폰 · RCA
- 주요 이력
- 1967 레벤트리트 콩쿠르 공동 우승
1970 런던 데뷔 · 한국인 최초 데카 전속
2007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임용
2011 호암상 예술상 - 공식 프로필
- warnerclassics.com
1967년 5월 뉴욕 카네기홀. 레벤트리트 콩쿠르 심사위원단이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선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네 명의 우열을 가릴 수 없으니 전원 다시 연주하라는 것이었습니다.[1] 재연주가 끝난 뒤에도 심사위원단은 한 명을 고르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열아홉 살 정경화와 이스라엘에서 온 열여덟 살 핀커스 주커만, 두 사람의 공동 우승. 대회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2]
그리고 2025년 11월 7일, 일흔일곱의 정경화가 다시 카네기홀 무대에 섰습니다.[3] 처음 이 무대에서 이긴 날로부터 58년째 되는 해였죠. 그 사이에는 한국인 최초의 데카 전속 계약이 있었고, 연주를 통째로 멈춰 세운 손가락 부상이 있었고, 그 부상이 끝내 데려다 놓은 바흐가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들을지는 그 궤적이 정해줍니다.
다가오는 공연
서울에서 카네기홀까지
정경화는 1948년 서울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7남매가 전부 악기를 했고, 어머니 이원숙은 서울에서 식당을 꾸리며 그 뒷바라지를 감당했습니다.[4] 이 집에서 첼리스트 정명화, 그리고 지휘자 정명훈이 나왔고, 세 사람은 ‘정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대에 서게 됩니다.[5]
정작 본인의 시작은 바이올린이 아니었습니다. 네 살에 피아노를 먼저 배웠는데, 훗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전향 사유가 걸작입니다. “건반 앞에서 자꾸 졸았다”는 겁니다.[6] 여섯 살에 바이올린으로 바꿨고, 아홉 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며 데뷔했습니다.[7]
열두 살,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채로 서울을 떠났습니다. 열세 살에 줄리아드 음악원에 정식 입학해 당대 최고의 교사 이반 갈라미안 문하로 들어갔습니다.[8] 같은 문하에 아이작 펄만과 핀커스 주커만이 있었습니다. 갈라미안은 이 한국 소녀를 ‘쿠키’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갈라미안 이후에는 요제프 시게티가 그녀에게 음악과 함께 미술과 문학을 소개했습니다. 본인은 그 시절을 “길들여져야 했던 야생마 같았다”고 돌아봅니다.[9]
1967년의 레벤트리트 우승이 그 수련의 출구였습니다. 당시 타임은 결선 연주를 두고 브루흐와 모차르트에서는 섬세했고 베토벤과 생상스에서는 불같았다고 적었습니다. 우승 부상으로 클리블랜드와 시카고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협연이 잡혔고 백악관 갈라 무대에도 초청받았습니다.[10]
런던, 1970년
유럽이 그녀를 알게 된 경위는 대타였습니다. 1970년 아이작 펄만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취소하자 정경화가 그 자리에 투입됐습니다. 로열 페스티벌 홀, 앙드레 프레빈의 지휘, 곡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습니다.[11] 이 하룻밤으로 런던이 뒤집혔고, 데카가 곧바로 전속 계약을 내밀었습니다. 한국인 연주자로는 최초의 데카 전속이었습니다.[12]
그 계약의 첫 결실이 같은 해 프레빈·런던 심포니와 녹음한 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입니다. 이후 데카 시절의 목록은 그대로 바이올린 명반 목록이 됩니다. 1972년 멘델스존 협주곡은 데카가 ‘Legends’ 시리즈로 다시 찍어냈고, 1977년에는 라두 루푸와 프랑크·드뷔시 소나타를, 솔티·런던 필하모닉과 엘가 협주곡을 남겼습니다. 1984년에 나온 솔티·시카고 심포니와의 베르크 협주곡까지, 레퍼토리는 낭만 협주곡에서 20세기까지 뻗어 나갔습니다.[13]
1982년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그녀를 ‘지난 20년간 가장 뛰어난 기악 연주자’로 꼽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88년부터는 EMI 전속으로 옮겼고, 사이먼 래틀과 녹음한 바르톡 협주곡 2번으로 그라모폰상을 받는 등 이 상을 두 차례 수상했습니다.[14]
무대 밖에서는 삶의 무게중심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1984년 런던에서 영국인 사업가와 결혼했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연주 여행을 한 달에 일주일 정도로 스스로 제한했습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가로서는 한 번도 타협한 적이 없어요. 타협하면 정체성을 잃으니까. 그런데 결혼에서 타협하지 않으면 그게 굴러가질 않더군요.”[15]
멈춘 손가락, 그리고 바흐
2005년 가을,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협주곡 두 곡을 준비하던 리허설 도중이었습니다. 왼손 검지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본인 표현으로는 “손가락이 그냥 무너졌다”. 앞서 다친 손가락에 코르티손을 대량 투여받고 연주를 이어가던 참이었습니다.[16] 그날로 연주가 멈췄습니다.
공백이 몇 년이었는지는 출처마다 다릅니다. 워너 클래식스와 더 스트라드는 2010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브람스 협주곡으로 공식 복귀했다고 쓰고, 다른 기사들은 6년이라고도, 8년이라고도 씁니다.[17] 어느 쪽이든 무대가 없는 삶이 길게 이어졌다는 사실은 같습니다. 그 시간에 그녀는 모교 줄리아드의 교수로 임용돼 가르치기 시작했고, 부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구간이 최고의 구간입니다. 사람을 자라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니까요.”[18]
복귀 후의 무대들이 예전 같은 완벽함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습니다. 2014년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 복귀 리사이틀을 두고 평론가들은 음정과 프레이징의 흔들림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정경화를 계속 듣게 만드는 건 정확도가 아닙니다. 본인이 먼저 그렇게 말합니다. “지금 무대에 서면 더 자유로워요.”[19] 2017년 5월 카네기홀에서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여섯 곡 전체를 하루에 연주했을 때, 뉴욕 클래시컬 리뷰는 기술적 결함을 조목조목 적으면서도 결론은 이렇게 냈습니다. 이 연주자에게는 여전히 청중과 나눌 것이 남아 있다.[20] 그 공연은 카네기홀 125년 역사에서 바흐 무반주 전곡이 그 무대에 오른 첫 사례였고, 1967년 데뷔 50주년 기념이기도 했습니다.[21]
바흐로 간 경위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2010년 손가락 부상에서 회복한 다음 2012년 무의식적으로 바흐로 향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건 신이 나에게 주신 명령이라고 느꼈다.”[22] 2016년 워너 클래식스에서 나온 바흐 무반주 전곡 음반은 15년 만의 정규 앨범이자 커리어 첫 바흐 전곡 녹음이었습니다.[23]
2021년 왼손 검지를 다시 다쳐 활동이 제한됐지만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2024년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첫 듀오 리사이틀을 열었고, 2025년 가을에는 “음악적 소울메이트”라 부르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한국 4개 도시와 북미를 돌았습니다. 그 투어의 한복판이 11월 7일 카네기홀이었습니다.[24] 프로그램 마지막 곡은 프랑크 소나타. 그녀가 “죽는 날까지 연주할 것 같다”고 말하는 곡입니다.[25]
앨범 듣는 순서
첫 장은 1970년 데뷔 녹음, 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 협주곡입니다. 런던을 뒤집은 그 대타 무대와 같은 해, 같은 지휘자(프레빈), 같은 오케스트라(런던 심포니)의 기록이라서요. 이십 대 초반의 소리가 어땠는지, 왜 데카가 계약서부터 내밀었는지 이 한 장이 설명합니다. 시벨리우스 협주곡의 차갑게 타오르는 1악장부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0, 데카)
두 번째는 1977년 프랑크·드뷔시 소나타(라두 루푸 피아노)입니다. 위에서 본 대로 프랑크 소나타는 정경화가 수십 년째 손에서 놓지 않는 곡입니다. 2025년 카네기홀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도 이 곡이었습니다. 그 애착의 원형이 여기 담겨 있고, 루푸의 피아노는 그 자체로 들을 이유가 됩니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1악장, 라두 루푸 피아노 (1977, 데카)
세 번째는 1982년 멘델스존·브루흐 협주곡반입니다. 아홉 살 서울시향 데뷔 곡이었던 멘델스존으로 돌아온 녹음입니다. 함께 실린 브루흐 협주곡 1번도 각별한데, 브루흐는 1967년 카네기홀 결선에서 ‘섬세하다’는 평을 끌어낸 곡목의 작곡가였습니다. 이 연주자의 출발점 두 개가 한 장에 있는 셈이죠.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 3악장,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데카)
심화는 2016년 바흐 무반주 전곡입니다. 앞의 세 장이 젊은 정경화의 기록이라면 이 앨범은 부상과 공백을 통과한 뒤의 답안지입니다. 여섯 곡을 다 듣기 부담스러우면 파르티타 2번의 샤콘느 하나로 시작해도 됩니다. 젊은 날의 확신 대신 다른 것이 들리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바흐 〈샤콘느〉 녹음 세션 영상 (2016, 워너 클래식스 공식)
어떤 연주인가
1967년 타임의 결선 평이 사실상 평생의 예고편이었습니다. 브루흐·모차르트에서는 섬세하게, 베토벤·생상스에서는 그릿과 불로.[26] 정경화의 연주는 이 두 극단을 오가는 폭 자체가 정체성입니다. 안전한 중간을 고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도 극단을 오갑니다. 2014년 런던 복귀 무대는 과도한 낭만화를 지적받았지만, 2017년 카네기홀의 바흐를 두고는 장르를 불문하고 본 것 중 가장 강렬한 실연이었다는 극찬이 나왔습니다.[27]
스튜디오 음반과 실황의 온도 차도 큽니다. 2017년 카네기홀 실황을 두고 뉴욕 클래시컬 리뷰는 거친 표면이 오히려 음악을 가깝게 만들었다고, 차가운 스튜디오식 광택의 반대편에 있는 연주라고 평했습니다.[28] 본인의 말이 가장 정확한 요약일 겁니다. “현악 연주자에게는 단 하나의 터치로 누군가의 영혼에 곧장 들어가는 소리를 찾는 과제가 있습니다. 음 하나로 그걸 할 수 있거든요.”[29] 음반으로 입문하되, 이 사람의 본체는 무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들으면 좋습니다.
디스코그래피
발매순입니다. 스트리밍 링크는 연주자까지 확인된 것만 달았습니다.
참고 자료
- [1]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 결선의 이례적 재연주 요청. TIME — Contests: Cookie & Pinky Come Through (1967) (확인 2026-08-05) ↩
- [2] 정경화·핀커스 주커만 공동 우승 — 대회 창설 이래 최초 사례. TIME (1967) (확인 2026-08-05) ↩
- [3] 2025년 11월 7일 카네기홀 공연 (스턴 오디토리엄). Carnegie Hall 공식 캘린더 (확인 2026-08-05) ↩
- [4] 7남매 음악 가족과 어머니 이원숙 (2011년 별세 부고). 머니투데이 (2011) (확인 2026-08-05) ↩
- [5] 정명화·정명훈과의 정트리오 활동. Decca Classics 공식 전기 (확인 2026-08-05) ↩
- [6] 4세 피아노 시작, ‘건반 앞에서 졸아서’ 6세에 바이올린 전향 (본인 발언). TIME (1967) (확인 2026-08-05) ↩
- [7] 9세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 데뷔 (멘델스존 협주곡). Warner Classics 공식 프로필 (확인 2026-08-05) ↩
- [8] 12세 도미(TIME 1967 보도), 13세 줄리아드 입학·이반 갈라미안 사사. Warner Classics 공식 프로필 (확인 2026-08-05) ↩
- [9] 갈라미안 문하 동문 펄만·주커만(The Korea Times)·’쿠키’ 애칭(TIME)·요제프 시게티 사사(Decca)·’야생마’ 회고 발언. The Strad — 6 thoughts on performance and interpretation (확인 2026-08-05) ↩
- [10] 1967년 결선 연주 평과 우승 부상(클리블랜드·시카고 심포니·뉴욕 필하모닉 협연, 백악관 갈라). TIME (1967) · Warner Classics 교차 (확인 2026-08-05) ↩
- [11] 1970년 펄만 대타로 성사된 유럽 데뷔 — 로열 페스티벌 홀, 프레빈, 런던 심포니, 차이콥스키 협주곡. The American Scholar — The Comeback · Warner Classics 교차 (확인 2026-08-05) ↩
- [12] 런던 데뷔 직후 데카 전속 계약 — 한국인 최초. The Korea Times (확인 2026-08-05) ↩
- [13] 데카 시절 음반 목록 — 1972년 멘델스존(Legends 재발매), 1977년 프랑크·드뷔시(루푸)와 엘가(솔티), 1984년 베르크(솔티·시카고). Decca Classics 공식 전기·카탈로그 (확인 2026-08-05) ↩
- [14] 1982년 선데이 타임스 선정 ‘지난 20년간 가장 뛰어난 기악 연주자'(한국일보 1997 재인용), 1988년~ EMI 전속, 그라모폰상 2회(바르톡 2번/래틀 포함). Warner Classics · 한국일보(1997) 교차 (확인 2026-08-05) ↩
- [15] 1984년 결혼(한스경제), 육아기 연주 여행 자기 제한(한국일보 1997 인터뷰), 타협에 관한 본인 발언(Elbow Music, 2014). Elbow Music · 한국일보(1997) 교차 (확인 2026-08-05) ↩
- [16] 2005년 부상 경위 — 게르기예프와의 리허설 중 왼손 검지 이상, 코르티손 대량 투여 회고 (본인 발언). Strings Magazine (2016) (확인 2026-08-05) ↩
- [17] 공백 기간의 출처 간 차이(5~8년 등)와 2010년 필하모니아·브람스 협주곡 복귀. The Strad (확인 2026-08-05) ↩
- [18] 2007년 줄리아드 교수 임용(기독일보), ‘어려운 구간이 최고의 구간’ 발언(Strings Magazine). Strings Magazine · 기독일보(2007) 교차 (확인 2026-08-05) ↩
- [19] 2014년 런던 복귀 리사이틀 평(음정·프레이징 지적)과 ‘더 자유롭다’ 발언. theartsdesk (2014) · Strings Magazine 교차 (확인 2026-08-05) ↩
- [20] 2017년 카네기홀 바흐 전곡 리사이틀 평 — 결함의 기록과 ‘나눌 것이 남아 있다’는 결론. New York Classical Review (2017) (확인 2026-08-05) ↩
- [21] 카네기홀 125년 역사상 최초의 바흐 무반주 전곡 무대이자 1967년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PR Newswire 공식 보도자료 (2017) (확인 2026-08-05) ↩
- [22] ‘신이 주신 명령’ — 바흐로 향한 계기에 대한 본인 발언. 중앙일보 (2017) (확인 2026-08-05) ↩
- [23] 2016년 바흐 무반주 전곡 발매 — 15년 만의 정규 앨범이자 커리어 첫 바흐 전곡 녹음. The Juilliard School 공식 뉴스 (확인 2026-08-05) ↩
- [24] 2021년 왼손 부상(The Strad), 2024년 임동혁 듀오(예술의전당), 2025년 케빈 케너와 한국·북미 투어(코리아헤럴드). The Korea Herald (2025) · 예술의전당·The Strad 교차 (확인 2026-08-05) ↩
- [25] ‘프랑크 소나타는 죽는 날까지 연주할 것 같다’ — 본인 발언. The Korea Herald (2025) (확인 2026-08-05) ↩
- [26] 1967년 결선 평 원문 — 브루흐·모차르트의 섬세함과 베토벤·생상스의 박력. TIME (1967) (확인 2026-08-05) ↩
- [27] 2014년 복귀 리사이틀에 대한 상반된 평 — 과도한 낭만화 지적(theartsdesk)과 ‘본 것 중 가장 강렬한 실연’ 극찬(HuffPost/ZEALnyc, 2017 카네기홀). HuffPost/ZEALnyc · theartsdesk 교차 (확인 2026-08-05) ↩
- [28] 거친 표면이 음악을 가깝게 만든다는 실황 평. New York Classical Review (2017) (확인 2026-08-05) ↩
- [29] ‘음 하나로 영혼에 들어간다’ — 본인 발언 (로이터 인터뷰, 2014). GMA News Online (로이터 전재) (확인 2026-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