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Op.64〉 — 줄리엣이 살아나 춤을 추던 초고

볼쇼이가 반려한 악보, 세계 초연은 브르노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Sergei Prokofiev, 1891~1953)
곡명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Op.64
(Romeo and Juliet)
작곡 기간
1935~1936년 (초고는 1935년 가을 완성)
대본
아드리안 표트로프스키 · 세르게이 라들로프
(셰익스피어 원작, 1940년 무대에는 안무가 레오니드 라브롭스키 참여)
구성
4막 52곡

관현악 모음곡 3종
1번 Op.64bis · 2번 Op.64ter · 3번 Op.101
편성
피콜로, 플루트, 오보에,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테너 색소폰, 바순, 콘트라바순, 호른 6, 트럼펫 3, 코넷,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작은북, 실로폰, 트라이앵글, 우드블록, 마라카스, 글로켄슈필, 탬버린, 종, 심벌즈, 큰북, 피아노, 첼레스타, 오르간, 하프 2, 만돌린 2, 비올라 다모레(또는 독주 비올라), 현 5부
초연
세계 초연(단막 판본) 1938년 12월 30일,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 마헨 극장
안무와 로미오 역은 이보 바냐 프소타(Ivo Váňa Psota), 줄리엣 역은 조라 셈베로바가 맡았습니다.

4막 전곡·소련 초연 1940년 1월 11일,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
안무는 레오니드 라브롭스키, 줄리엣 역은 갈리나 울라노바가 맡았습니다.
연주 시간
음악만 약 2시간 20분 안팎 (무대 공연은 인터미션 포함 더 길어집니다)

이 곡은 —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4막 52곡으로 옮긴, 20세기 발레 음악의 대표작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막의 〈몬터규가와 캐퓰릿가〉. 흔히 ‘기사들의 춤’으로 불리는 그 대목입니다.

처음 들을 음반 — 발레리 게르기예프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SO Live, 2010).

1935년 가을, 프로코피예프는 이 발레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로미오가 단검을 들자 로렌스 신부가 그의 팔을 붙잡고, 두 사람이 엉겨 붙어 있는 사이 무덤 안의 줄리엣이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두 사람은 살아서 함께 춤을 춥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극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판본입니다. 흔히 소련의 검열이 결말을 뒤틀었다고들 하지만, 실제 순서는 반대였습니다.

1936년 프로코피예프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스케치
1936년, 브뤼셀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가던 시기의 프로코피예프를 그린 스케치입니다. 이때 〈로미오와 줄리엣〉은 초고가 이미 나와 있었지만, 아직 어느 무대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줄리엣이 죽지 않는 판본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발레의 소재를 처음 꺼낸 사람은 극작가이자 대본가인 아드리안 표트로프스키였습니다. 여기에 연출가 세르게이 라들로프가 합류해 두 사람이 줄거리를 짰고, 프로코피예프는 1935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빠르게 작곡해 9월에 초고를 끝냈습니다. 넉 달 남짓한 기간에 4막 52곡이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두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데 대본가들은 줄리엣을 살려 놓았습니다. 로미오가 무덤에 도착하는 시점을 조금 앞으로 당기고, 신부가 그를 붙잡아 시간을 벌게 하고, 그사이 약효가 풀린 줄리엣이 깨어나게 하는 구성이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가 공개적으로 내놓은 설명은 문학 해석보다 무대 실무에 가까웠습니다. 살아 있는 인물은 춤을 출 수 있지만, 죽어 가는 인물은 춤을 출 수 없습니다. 주역 두 명이 마지막 20분을 바닥에 누워 있으면 발레의 대미가 통째로 비어 버립니다. 다만 연구자들은 여기에 당시 소련 문화가 요구하던 밝은 결말의 압력도 겹쳐 있었다고 봅니다.

반발은 검열 기구 한 곳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작을 이렇게 바꿔도 되느냐는 항의가 이어졌고, 극장 내부의 난색과 문화 정책의 압박도 겹쳤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결국 원래의 비극으로 결말을 되돌립니다. 우리가 지금 듣는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줄리엣이 깨어나지 않는 결말은 작곡가의 첫 선택이 아니라 두 번째 선택이었습니다.

💡 사실은요 — “소련 당국이 비극 결말을 강요했다”는 설명이 자주 보입니다. 적어도 출발점은 반대였습니다. 해피엔딩은 검열관이 아니라 작곡가와 대본가가 먼저 고른 결말이었습니다. 그 결말이 사라진 과정에는 원작을 지키자는 여론, 극장 실무, 당시 문화 정책의 압박이 함께 얽혀 있어 어느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돌아온 작곡가, 이름이 지워진 대본가

이 발레를 쓰던 무렵 프로코피예프는 소련과 서방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고 있었습니다. 1918년 러시아를 떠난 뒤 미국과 파리에서 십수 년을 보냈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소련을 자주 오가며 연주와 위촉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1936년, 가족과 함께 모스크바에 자리를 잡습니다. 서방에서 이미 이름을 얻은 작곡가가 스스로 소련으로 돌아온 드문 경우였습니다.

위촉 계약도 한 차례 바뀌었습니다. 처음 이 발레를 맡긴 곳은 레닌그라드의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이었습니다. 1935년에 키로프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 바로 그 극장입니다. 그런데 1934년 라들로프가 극장과 크게 충돌해 떠나면서 계획이 흔들렸습니다. 결국 1935년 여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새 계약이 맺어졌고, 프로코피예프는 볼쇼이가 쓰던 폴레노보의 별장에서 작업을 이어 갔습니다.

상황은 1936년 1월 28일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열흘 뒤인 2월 6일에는 같은 신문이 쇼스타코비치의 발레 〈맑은 시냇물〉까지 비판했습니다. 이 발레의 대본을 쓴 사람 중 하나가 표트로프스키였습니다. 그 뒤 무대 예술계는 정치적 검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술위원회 위원장 플라톤 케르젠체프의 지시로 볼쇼이의 인적 구성이 크게 바뀌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는 기약 없이 밀렸습니다.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른 사람은 대본을 처음 제안한 표트로프스키였습니다. 프라우다에 이름이 오른 뒤 그는 ‘퇴폐적 모더니스트’로 몰렸고, 1937년 11월 21일 서른아홉의 나이로 총살당했습니다. 이후 그의 이름은 관련 문서에서 지워졌습니다. 이 발레의 대본가 목록에 그의 이름이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음악에는 못 맞춥니다” — 무용수들이 악보를 돌려보낸 이유

공연이 미뤄진 데는 정치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악보를 받아 든 무용수들도 난색을 보였습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고, 발레 무용수가 작곡가의 악보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당시 무용수들에게 익숙한 발레 음악은 박자를 세기 쉬운 음악이었습니다. 짧은 구절이 한 덩어리로 또박또박 끊기고, 다음 구절도 비슷한 무게로 이어졌습니다. 무릎을 굽히고 뛰어오르는 타이밍이 음악 안에 분명히 들어 있어서, 무용수는 박자를 세며 그 위에 동작을 맞추면 됐습니다.

프로코피예프의 악보는 그 계산을 자꾸 흔들어 놓습니다. 박자가 도중에 바뀌고, 강세가 예상 밖의 자리에 떨어지며, 화성도 익숙한 지점으로 곧장 착지하지 않습니다. 무용수 입장에서는 몇 박째인지 세다가 놓치는 순간이 계속 생깁니다. 무대 위에서는 그것이 치명적입니다. 뛰어오를 지점을 반 박자만 놓쳐도 착지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결말 논란까지 겹쳤습니다. 볼쇼이는 이 악보를 무대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1935년에 완성된 4막짜리 발레 음악은 한동안 어느 극장에서도 춤으로 옮겨지지 못한 채 서랍에 남았습니다. 프로코피예프가 이 시기에 한 일은 악보를 고쳐 쓰는 대신 다른 통로를 여는 쪽이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발레에서 곡을 뽑아 관현악 모음곡 두 개를 만들었고, 피아노 독주용으로 열 곡을 따로 편곡했습니다. 무대에 오르지 못한 음악을 연주회장으로 먼저 보낸 셈입니다. 오늘날 이 발레의 음악이 발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까지 익숙한 데에는, 이렇게 연주회용 작품으로 먼저 퍼진 경로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기사들의 춤 — 3분 만에 결판나는 첫인상

이 발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은 1막의 〈몬터규가와 캐퓰릿가〉입니다. 무대에서는 캐퓰릿가의 기사들이 무도회장에 들어서는 장면이고, 그래서 ‘기사들의 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축구 경기장 입장 음악부터 광고 배경까지 자주 쓰여, 클래식을 따로 찾아 듣지 않는 사람도 이 3분은 어디선가 들어 봤을 만큼 익숙합니다.

음악이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낮은 금관과 현이 같은 리듬을 무겁게 내리찍고, 그 위로 점을 찍듯 짧게 끊는 음형이 얹힙니다. 빠른 음악은 아닙니다. 오히려 느린 쪽인데도, 한 걸음씩 다가오는 무게 때문에 듣는 사람이 먼저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위협을 소리로 옮길 때는 속도보다 무게가 더 강한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3분이 보여 줍니다.

중간에 결이 확 바뀌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거운 행진이 잠깐 물러나고 플루트가 가늘게 선을 그리는 구간입니다. 무대에서는 줄리엣이 다른 남자와 춤을 추는 장면에 해당합니다. 그 얇은 소리가 지나가면 아까의 무게가 다시 돌아옵니다. 두 집안 사이에 낀 한 사람의 자리가 어디쯤인지, 대사 한 줄 없이 음악의 배치만으로 드러납니다.

게르기예프가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몬터규가와 캐퓰릿가〉입니다. 낮은 금관이 소리를 얼마나 깊게 눌러 내리는지 듣기 좋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이 시작되고 20초쯤, 짧게 끊는 음형이 처음 얹히는 지점입니다. 저음이 한 박씩 내려앉을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색소폰과 만돌린이 왜 이 악보에 있나

편성표를 펼치면 발레 음악치고 낯선 이름이 여럿 보입니다. 테너 색소폰, 만돌린 두 대, 비올라 다모레, 첼레스타, 오르간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관현악의 기본 편성에 이 악기들을 얹어 소리의 결을 골라 썼습니다.

테너 색소폰은 1930년대 관현악에서도 여전히 낯선 색이었습니다. 몸통은 금속이지만 홑리드를 물고 부는 목관악기라, 목관의 부드러움과 금관의 번쩍임 사이에 걸친 소리를 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바로 그 어중간함을 효과로 씁니다. 무대의 분위기가 살짝 흐려지거나 관능적으로 기울 때, 이 소리가 다른 악기들 사이에서 슬며시 떠오릅니다.

만돌린은 이야기의 배경을 소리로 찍어 주는 악기입니다. 이 발레의 무대는 이탈리아 베로나입니다. 극장 조명이나 의상으로도 장소를 설명할 수 있지만, 만돌린 두 대가 현을 튕기기 시작하면 관객은 별도 설명 없이 이탈리아 도시의 거리와 밤공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비올라 다모레는 더 흥미로운 선택입니다. 바로크 시대에 쓰이다 거의 사라진 옛 현악기로, 연주하는 줄 아래에 울림줄을 따로 달아 소리가 은은하게 번집니다. 20세기 관현악 편성표에서 이 이름을 만나는 일은 드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옛 이야기를 다루는 무대 위에 옛 악기의 음색을 한 겹 깔아 둔 셈입니다.

소련 발레의 대표작인데, 첫 무대는 체코 브르노였습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극장들이 이 발레를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사이, 세계 초연은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먼저 열렸습니다.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에 있는 마헨 극장에서 1938년 12월 30일 막이 올랐습니다.

초연의 규모는 소박했습니다. 4막 전곡이 아니라 단막으로 줄인 판본이었고, 음악도 대부분 앞서 발표된 두 관현악 모음곡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안무는 이보 바냐 프소타(Ivo Váňa Psota)가 맡았고, 그는 직접 로미오 역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줄리엣은 조라 셈베로바가 췄습니다.

정작 작곡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출국이 제한된 처지라 자기 발레의 세계 초연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소련 발레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이 작품의 첫 무대에 소련은 없었고, 작곡가도 없었습니다.

브르노 초연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에서도 아슬아슬한 시점에 열렸습니다. 막이 오른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39년 3월, 독일군이 프라하에 들어오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사실상 독립국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이 발레의 첫 무대는 그 나라가 존재하던 마지막 겨울에 올라간 셈입니다.

체코 브르노 마헨 극장의 외관
브르노의 마헨 극장. 사진은 2017년에 찍은 모습입니다. 1938년 12월 이 건물에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공연됐습니다.

1940년 1월 11일, 레닌그라드

소련 초연은 브르노보다 1년 늦게, 처음 이 작품을 위촉했던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1940년 1월 11일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이었고, 안무는 레오니드 라브롭스키가 맡았습니다. 줄리엣은 갈리나 울라노바, 로미오는 콘스탄틴 세르게예프가 추었습니다.

무대 뒤에서는 라브롭스키와 프로코피예프가 계속 부딪혔습니다. 라브롭스키는 무용수들이 실제로 춤출 수 있는 음악을 요구했고, 프로코피예프는 자기 악보를 지키려 했습니다. 결국 악보는 작곡가의 뜻과 무관하게 상당 부분 손질됐습니다. 곡의 순서가 바뀌고, 없던 곡이 들어갔으며, 일부 대목은 무용수가 음악을 듣고 동작의 타이밍을 잡을 수 있도록 악기 배치까지 다시 짜였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변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라브롭스키는 로미오와 줄리엣 각자의 독무를 위한 음악을 새로 써 달라고 프로코피예프를 설득했고, 프로코피예프는 몇 곡을 추가했습니다. 오늘날 무대에서 관객이 오래 눈을 떼지 못하는 장면들 가운데는 이때 덧붙은 음악도 섞여 있습니다.

초연은 성공했습니다. 이 프로덕션은 스탈린상을 받았고, 울라노바의 줄리엣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배역의 기준선이 됩니다. 무용수들 사이에서는 “세상에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음악보다 슬픈 이야기는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대사를 비튼 말장난이지만, 어느 작품을 두고 나온 말인지는 기록마다 엇갈립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서 줄리엣을 연기하는 갈리나 울라노바
1954년, 줄리엣을 연기하는 갈리나 울라노바와 유리 즈다노프. 1940년 초연에서 이 배역을 처음 만든 뒤로도 울라노바는 오래 이 무대에 섰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외관
소련 초연이 열린 키로프 극장. 지금은 원래 이름인 마린스키 극장으로 돌아갔고, 사진은 2012년에 찍힌 모습입니다.

1막 — 소녀 줄리엣이 소개되는 방식

1막은 베로나의 아침 거리에서 시작해 캐퓰릿가의 무도회를 지나 발코니로 끝납니다. 앞서 본 〈몬터규가와 캐퓰릿가〉가 이 막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인물 소개는 짧은 곡 〈소녀 줄리엣〉이 맡습니다. 처음에는 짧게 끊어 치는 음이 가볍게 뛰어다니고, 유모를 놀리며 방 안을 뛰노는 아이의 걸음처럼 들립니다. 그러다 갑자기 속도가 꺾이면서 느린 선율이 들어오는데, 조금 전까지 장난치던 인물이 거울 앞에 멈춰 선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잠시 어른의 표정을 스친 뒤, 음악은 다시 뛰는 음으로 돌아옵니다.

대사도 자막도 없이, 2분 남짓한 음악은 줄리엣이 아이와 어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인물인지 먼저 알려 줍니다. 그래서 뒤에 벌어지는 사랑과 죽음이 추상적인 비극이 아니라 열세 살짜리에게 닥친 일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계속 기억하게 됩니다.

막의 끝은 발코니입니다. 이 대목의 음악은 선율을 단숨에 띄우지 않고, 낮은 현에서 조심스럽게 출발해 악기를 한 겹씩 더하며 천천히 위로 밀어 올립니다. 마침내 선율이 가장 높은 자리에 닿으면, 앞서 무도회에서 무겁게 내리찍던 음악과 정확히 반대 방향의 힘이 생깁니다. 한 막 안에 아래로 짓누르는 음악과 위로 솟아오르는 음악이 나란히 놓이는 셈입니다.

루돌프 누레예프와 마고 폰테인이 춘 발코니 장면입니다. 음악이 어디서 방향을 바꿔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는지, 두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상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소녀 줄리엣〉에서 뛰던 음이 처음 멈추고 느린 선율로 넘어가는 지점. 장난치던 아이의 표정이 잠깐 어른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2막 — 축제로 시작해 두 번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2막의 앞부분은 밝습니다. 거리에 축제가 벌어지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 앞에서 몰래 결혼합니다. 여기까지가 이 발레에서 가장 환한 30분입니다.

그다음 벌어지는 일이 이 작품의 방향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듭니다. 거리 싸움에서 티볼트가 머큐시오를 찌르고,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입니다. 로미오의 친구와 줄리엣의 사촌이 같은 광장에서 차례로 쓰러집니다.

〈티볼트의 죽음〉에서 프로코피예프는 이 장면을 거칠 만큼 직설적으로 밀어붙입니다. 결투 대목에서는 현이 쉬지 않고 달리며 두 사람을 몰아붙이고, 티볼트가 쓰러진 뒤에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같은 화음을 몇 번이고 내리찍습니다. 선율을 길게 펼치거나 전개를 쌓아 올리는 대신, 같은 덩어리를 반복해서 때리며 장례 행렬의 발소리를 만듭니다. 관객은 눈으로 상황을 따라가기 전에, 먼저 귀로 무엇이 끝났는지 알게 됩니다.

앞에서 무용수들이 이 악보에 맞춰 춤추기 어렵다고 했던 이유가 이런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무용수가 딱 떨어지는 박자를 헤아리며 무대에 서려 해도, 이 음악은 계속 예상 밖의 자리에서 힘을 줍니다. 반대로 그 예측 불가능함이 없었다면 이 장면은 그냥 잘 만든 결투 음악에 그쳤을 것입니다.

〈티볼트의 죽음〉 연주 실황입니다. 마지막에 같은 화음이 반복해서 떨어지는 구간을 끝까지 들어 보면 이 곡의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달리던 현이 뚝 끊기고 오케스트라 전체가 같은 화음을 내리찍기 시작하는 순간. 여기서부터 이 발레는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3막 — 새벽의 이별, 그리고 혼자 남은 줄리엣

3막은 로미오가 추방된 뒤의 시간입니다. 새벽에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으로 문을 열고, 줄리엣이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당하고, 로렌스 신부에게서 받은 약을 마시기까지가 이 막 안에서 벌어집니다.

음악의 밀도가 가장 높은 구간은 줄리엣이 혼자 남는 대목입니다. 무대에는 인물 한 명뿐이고, 앞선 막에서 들었던 선율 조각들이 하나씩 되돌아옵니다. 무도회의 무거운 리듬, 발코니 장면에서 위로 뻗어 오르던 선율, 유모와 장난치던 짧은 음형까지 스쳐 갑니다. 관객은 그 조각들을 이미 들어 두었기 때문에, 설명이 없어도 줄리엣이 무엇을 떠올리고 어떤 결심으로 다가가는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초연 안무가 라브롭스키가 작곡가를 설득해 얻어 낸 독무용 음악이 힘을 발휘하는 자리도 여기입니다. 발레에는 주역이 혼자 무대를 감당하며 감정과 결정을 몸으로 보여 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935년 초고에는 그런 자리가 지금보다 적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나온 요구가 악보를 바꾸었고, 그 흔적이 이 막에 남아 있습니다.

🎧 줄리엣이 혼자 남은 대목 — 1막에서 들렸던 선율들이 다시 돌아오는 구간입니다. 무도회, 발코니, 유모와의 장난에서 나온 조각들이 어떤 순서로 이어지는지 들어 보면, 이 발레의 설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4막 — 무덤, 그리고 사라진 다른 결말

마지막 막의 무대는 무덤입니다. 줄리엣은 잠들어 있고, 소식을 잘못 전해 들은 로미오가 도착합니다. 여기서 음악은 더 이상 빠르게 달리지 않습니다. 앞의 세 막이 리듬으로 장면을 밀어붙였다면, 마지막 막은 음을 길게 붙잡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만듭니다.

결국 두 사람은 죽습니다. 오늘날 관객에게 익숙한 결말이고, 1938년 브르노 공연에서도 1940년 레닌그라드 공연에서도 이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다만 1935년의 악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게 끝났습니다. 줄리엣이 눈을 뜨고, 신부가 로미오를 붙잡고, 무덤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비극은 두 사람이 살아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가 이 결말을 위해 쓴 음악은 오랫동안 연주되지 못한 채 모스크바의 문서고에 남아 있었습니다.

🎧 마지막 장면의 정지감 — 음이 길게 늘어지고 리듬이 사라지는 구간입니다. 앞 세 막을 끌고 오던 추진력이 어떻게 꺼지는지 들립니다.

못 춘다던 리듬이 표준이 되기까지

1940년의 성공 이후 이 발레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1946년에는 볼쇼이 극장도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열 해 전 못 추겠다며 공연을 거절했던 바로 그 극장이었습니다.

이 발레가 더 넓은 관객에게 퍼진 결정적 계기는 영화였습니다. 모스필름은 울라노바와 유리 즈다노프를 앞세워 이 발레를 영화로 옮겼고, 이 작품은 1955년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서정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실제 공연장을 찾기 어려웠던 지역의 관객도 영화를 통해 이 음악과 안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안무가들은 차례로 자기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프레더릭 애슈턴이 1955년에, 존 크랑코가 1962년에, 케네스 맥밀런이 1965년에 각각 새 안무를 만들었고, 그 뒤로도 판본은 계속 늘었습니다. 음악은 그대로 두고 몸의 언어만 바꾼 무대가 반세기 넘게 쌓였습니다. 무용수들이 맞출 수 없다고 했던 그 리듬은 이제 세대마다 다시 도전하는 표준 과제가 됐습니다.

초연 과정에서 사라졌던 원래 결말도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음악학자 사이먼 모리슨이 모스크바 문서고에서 1935년 원본 자료를 찾아 악보를 복원했고, 안무가 마크 모리스가 여기에 새 안무를 붙였습니다. 2008년 7월 4일 미국 바드 칼리지에서 그 무대가 처음 올랐습니다. 작곡가가 처음 적어 둔 결말을 관객이 실제 공연으로 만나기까지 73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한때 못 추겠다는 말을 들었던 음악은 지금 이 작품을 알아보는 가장 빠른 표식이 됐습니다. 낮은 금관악기가 세 번 무겁게 내려앉는 순간, 곡 제목을 모르는 사람도 무언가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발레단보다 음악이 먼저 관객을 설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발레의 이력은 시작부터 끝까지 순서가 뒤집혀 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모음곡 2번을 총보와 함께 따라가는 영상입니다. 〈몬터규가와 캐퓰릿가〉에서 어느 악기가 그 무게를 만들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좋습니다.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의 〈로미오와 줄리엣〉 Op.64 페이지에는 이 발레의 총보와 파트보, 피아노 편곡 등이 정리돼 있습니다. 총보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편집자 이름입니다. 1961년 소련 국립음악출판사가 낸 판본의 편집자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적혀 있습니다. 1936년 프라우다의 비판을 받은 쇼스타코비치와, 그 비판 이후 공연 계획이 늦어진 프로코피예프의 이름이 한 악보에 나란히 남아 있는 셈입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전곡이 2시간 30분이라 진입 장벽이 있는 편입니다. 성격이 뚜렷하게 갈리는 세 가지를 골랐습니다.

👑 첫 감상 추천

발레리 게르기예프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SO Live · 2010년 발매

전곡을 처음 끝까지 듣기에 가장 편한 녹음입니다. 소리가 선명해 어느 악기가 무엇을 맡는지 계속 들리고, 4막짜리 긴 발레를 하나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갑니다. 다만 옛 소련 악단 특유의 거칠고 육중한 소리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다소 말끔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로린 마젤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Decca · 1973년 녹음

전곡 녹음의 기준선으로 반세기 동안 거론돼 온 음반입니다. 리듬을 조이는 감각과 금관의 사나움이 이 곡의 위협적인 면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서정을 넉넉히 늘여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소 냉정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와일드카드

리카르도 무티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EMI · 1981년 녹음 (모음곡 1·2번)

전곡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알맞은 선택지입니다. 모음곡 두 개만 담아 한 시간 안에 주요 장면을 훑을 수 있고, 필라델피아 특유의 두꺼운 현이 곡의 무게를 든든하게 받칩니다. 다만 이야기를 순서대로 따라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발췌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기사들의 춤’과 〈몬터규가와 캐퓰릿가〉는 같은 곡인가요?

같은 음악을 가리키는 두 이름입니다. 관현악 모음곡 2번에는 〈몬터규가와 캐퓰릿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고, 발레 무대에서는 캐퓰릿가 기사들이 무도회장에 들어서는 장면이라 ‘기사들의 춤’으로도 불립니다. 음반 표지나 공연 안내문에 따라 표기가 갈리니 두 이름을 함께 기억해 두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세계 초연이 소련이 아니라 체코라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1938년 12월 30일, 오늘날 체코 브르노에 있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마헨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습니다. 다만 4막 전곡이 아니라 관현악 모음곡의 음악을 주로 쓴 단막 판본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4막 전곡 무대는 1940년 1월 11일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에서 시작됐습니다.

해피엔딩 판본은 지금도 들을 수 있나요?

2008년 이후로는 가능해졌습니다. 음악학자 사이먼 모리슨이 모스크바 문서고에서 1935년 자료를 찾아 원본 악보를 복원했고, 안무가 마크 모리스가 새 안무를 붙여 그해 7월 미국 바드 칼리지에서 무대에 올렸습니다. 다만 일반 공연장의 표준 레퍼토리는 여전히 비극으로 끝나는 판본입니다.

전곡을 다 들어야 하나요? 모음곡만 들어도 되나요?

모음곡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프로코피예프 본인이 발레에서 곡을 뽑아 관현악 모음곡 세 개(Op.64bis, Op.64ter, Op.101)를 만들었고, 연주회장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자주 연주됩니다. 유명한 대목이 대부분 여기에 들어 있으니, 모음곡으로 주요 장면을 익힌 뒤 전곡으로 넘어가면 흐름을 따라가기가 훨씬 쉽습니다.

처음 들을 때 어디에 집중하면 좋을까요?

〈몬터규가와 캐퓰릿가〉를 먼저 듣고, 이어서 〈소녀 줄리엣〉과 〈티볼트의 죽음〉을 들어 보세요. 이 세 곡만으로 무게, 인물, 파국이라는 이 발레의 세 축을 다 통과하게 됩니다. 그다음 발코니 장면으로 넘어가면 앞의 무거운 음악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극장에서 시작해 연주회장까지 건너온 곡들

이 발레가 취향에 맞았다면 아래 다섯 곡으로 이어 들어 볼 만합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얼굴, 그리고 무대를 위해 쓰였다가 연주회장에서 더 자주 들리게 된 음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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