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회화적 연습곡 Op.39

러시아 마지막 피아노 소품, 그림은 비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작품
회화적 연습곡 (에튀드-타블로), Op. 39
장르
피아노 에튀드 모음집
작곡
1916–1917년
출판
1920년, Editions Russes de Musique
편성
피아노 독주
악곡 수
9곡 (No. 1–9)
악장 구성
No. 1 Allegro agitato (c단조)
No. 2 Lento assai (a단조)
No. 3 Allegro molto (f♯단조)
No. 4 Allegro assai (b단조)
No. 5 Appassionato (e♭단조)
No. 6 Allegro (a단조)
No. 7 Lento lugubre (c단조)
No. 8 Allegro moderato (d단조)
No. 9 Allegro moderato. Tempo di marcia (D장조)
3줄 요약
  •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땅에서 쓴 마지막 피아노 독주 작품입니다. 1917년, Op.39의 아홉 번째 곡을 끝으로 혁명이 터졌고 그는 고향을 영영 떠났거든요.
  • 회화적 연습곡(에튀드-타블로)은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어떤 그림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레스피기가 관현악 편곡을 하면서 다섯 곡의 출처를 일부 캐냈을 뿐입니다.
  • 아홉 곡 모두 피아노의 한계를 시험하는 난곡입니다. 입문 녹음은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Naxos(2001) 전집이 가장 균형 잡힌 선택으로 꼽힙니다.

1917년 봄,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앞에서 마침내 마지막 음표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다름 아닌 Op. 39의 아홉 번째 곡이었죠.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그해 겨울 러시아 혁명이 터지면서 그는 결국 짐을 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그때까진 몰랐을 겁니다. 다시는 러시아 땅을 밟지 못했으니까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초상 (1921년경)
Cliburn Score & Sound: Aristo Sham의 연주와 악보를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정 덕분에 이 에튀드 모음집은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땅에서 남긴 마지막 피아노 독주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죠. 이후로도 26년을 더 살아가며 수많은 명곡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어쩐 일인지 피아노 독주 소품집만큼은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바노프카 농장의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가 Op.39를 작곡한 이바노프카 농장에서. 그는 이 조용한 시골 사유지에 틀어박혀 1916년 여름부터 에튀드-타블로 작업에 매달렸다.

여기서 정말 흥미진진한 대목이 나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들이 대체 어떤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태어났는지 끝내 입을 열지 않았거든요. ‘회화적 연습곡’이라는 멋진 타이틀을 떡하니 달아놓고는, 정작 그 그림이 뭔지는 꼭꼭 숨겨버린 겁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청중이 물어봐도 “그건 알아서 상상하실 일이죠”라며 시크하게 넘어갔죠. 그러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가 이 곡들을 관현악으로 편곡하겠다고 덤벼들어 집요하게 캐묻고 나서야, 마침내 몇 가지 힌트가 슬쩍 흘러나왔습니다. ‘바다’, ‘갈매기’, ‘분노의 날’, ‘죽어가는 새들’, ‘빨간 모자와 늑대’ 같은 단어들이었죠. 물론 이런 리스트가 전해져 내려오긴 해도, 도대체 어떤 곡이 어떤 그림과 짝을 이루는지는 지금도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설전이 오가는 대목이랍니다.

알렉산더 스크리야빈 초상 (1909년)
알렉산더 스크리야빈 (1872-1915).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 스크리야빈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라흐마니노프는 Op.39의 8번 에튀드 안에 그의 선율을 살짝 인용했다.

이게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었을지, 아니면 진짜 나만의 비밀을 지키고 싶었던 고집이었을지는 저승에 걸쳐 있는 작곡가만 알 일이겠죠. 하지만 그 덕분에 Op. 39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청중 저마다의 캔버스 위에 각양각색의 그림을 그려 넣게 만드는 신비로운 음악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파스테르나크가 그린 라흐마니노프 초상 (1916년)
화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가 그린 라흐마니노프 초상 (1916년). Op.39가 완성된 바로 그 해에 그려진 그림이다.

1916년 러시아, 무너지기 직전의 시대

라흐마니노프가 Op. 39의 펜을 집어 들었던 1916년은 그야말로 러시아 제국이 사방으로 삐걱거리던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 동안, 황실 궁정에서는 라스푸틴이 황후의 곁을 떡하니 지키고 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불온한 혁명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거든요. 라흐마니노프는 이 어지러운 세상의 폭풍을 피해 조용한 이바노프카 농장 깊숙이 숨어들어가 오롯이 작곡에만 매달렸습니다.

이전 작품인 Op. 33이 세상에 나온 게 1910~1911년이었으니, Op. 39가 나오기까지는 무려 6년이라는 적지 않은 공백이 존재했습니다. 그동안 그는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으로 이미 전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쥐었지만, 유독 피아노 독주 소품 작업만큼은 발걸음이 뜸했거든요. 나이로는 어엿한 40대 중반, 작곡가로서도 비르투오소 연주자로서도 가장 물오른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다시 피아노 소품으로 돌아온 걸까요?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자신의 거대한 손을 단련하기 위한 ‘맞춤형 테크닉 교본’으로 직접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Op. 39의 다섯 번째 곡을 들여다보면 무시무시한 옥타브 연타로 꽉 차 있고, 세 번째 곡은 쓰기 힘든 약한 손가락, 즉 4번과 5번 손가락을 쥐어짜며 강화하는 연습곡이거든요. 아시다시피 라흐마니노프의 손 크기는 전설 그 자체여서, 피아노 건반 12개 반에 해당하는 12도를 한 손에 너끈히 집어삼킬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웬만한 성인 남성 손의 무려 1.5배에 달하는 크기죠. 그 비범한 신체 스펙을 녹슬지 않게 유지하고 단련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저 테크닉 연마용이 전부였다면 이 음악들이 이토록 시커메질 이유는 전혀 없었을 겁니다. Op. 39가 뿜어내는 전체적인 결은 이전 작인 Op. 33과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무겁고, 음산하며,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하거든요. 마치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던 혁명 직전의 러시아 풍경이 그대로 음표 사이로 스며든 것만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이 실제로 막을 내리고 있었으니까요.

음악 비평가들의 세계에서도 두 모음집의 확연한 결 차이를 두고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이 뜨겁습니다. 누군가는 Op. 33이 훨씬 정돈되어 있으며 피아노라는 악기의 본성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려냈다고 평가하죠. 반면 Op. 39에는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날뛰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반대편에서는 바로 이 Op. 39야말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이 도달한 정점, 즉 꼭대기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 이 두 모음집을 연속으로 재생해 보면 격동의 6년이라는 시간이 한 인간이자 예술가를 어떻게 송두리째 흔들었는지 온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그림을 숨긴 이유, 레스피기가 파낸 비밀

세월이 흘러 1930년, 이탈리아의 작곡가 레스피기는 라흐마니노프로부터 은근히 흥미로운 제안을 받게 됩니다. Op. 39에 수록된 곡들 중 딱 다섯 곡을 골라 거대한 관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 달라는 부탁이었죠. 오케스트라의 질감을 기가 막히게 다루기로 정평이 난 레스피기는 마침 ‘로마의 분수’와 ‘로마의 소나무’ 같은 명작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색채주의 작곡가였습니다.

오토리노 레스피기 초상 (1912년)
오토리노 레스피기 (1879-1936). 이탈리아의 색채주의 작곡가로, 1930년 라흐마니노프의 의뢰를 받아 Op.39 중 다섯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면서 작곡가에게 각 곡의 이미지를 추궁했다.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 레스피기는 그 대가로 딱 한 가지만 요구했습니다. “편곡할 때 방향을 잡아야 하니 이 곡들 밑에 깔린 원래의 이미지를 좀 알려주시오.” 그러자 라흐마니노프는 마지못하다는 듯 찔끔찔끔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죠. 1번은 바다(파도 같은 아르페지오). 2번은 바다와 갈매기. 3번은 분노의 날(Dies irae, 중세 진혼 미사의 심판의 날 선율). 4번은 죽어가는 새들. 6번은 빨간 모자와 늑대였다고요.

연구자들이 이 목록의 출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5번이나 7번, 8번, 9번 곡의 이미지는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그나마 7번은 러시아 화가 그리고리 먀소예도프의 작품 ‘자기 소각(Self-Immolation)’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이 돌고 있고 8번 역시 같은 화가의 그림 ‘호밀 속의 길(A Road in the Rye)’과 닿아 있다는 주장이 조심스레 제기된 상태거든요.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숨어 있습니다. 8번 에튀드 악보를 들여다보면 스크리야빈의 피아노 소나타 5번 첫 주제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거든요.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작곡가의 선율을 자기 작품 한가운데에 버젓이 인용한 셈입니다.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리야빈은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였습니다. 학생 시절엔 제법 각별했지만 각자 경력을 쌓아가며 두 사람의 음악 세계는 완전히 엇갈리고 맙니다. 스크리야빈이 신비주의와 전위 음악의 벼랑 끝으로 질주하는 동안 라흐마니노프는 묵묵히 낭만주의의 끈을 놓지 않았죠. 그러다 1915년 스크리야빈이 돌연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바로 이듬해 라흐마니노프는 Op. 39를 쓰기 시작하며 8번 곡 안에 죽은 동기의 선율을 슬쩍 밀어 넣었습니다. 죽음을 기리는 오마주였을까요 늦어버린 조용한 화해였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전혀 다른 감정의 응어리였을까요. 이 얄궂은 인용 하나가 수십 년째 수많은 연구자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홉 편의 그림, 각 에튀드 감상 가이드

Op. 39는 연속 연주를 전제로 묶인 모음집이지만 각 곡은 그 자체로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를 품고 있습니다. 아홉 곡 전체를 차례로 듣는 경험은 거대한 전시회를 한 바퀴 도는 일과 꽤 비슷하죠. 감상이 끝날 때쯤이면 머릿속에 전혀 다른 아홉 가지 장면이 뚜렷하게 걸려 있을 겁니다.

1번, 폭풍 속 파도 (c단조)

첫 음이 떨어지자마자 사정없이 폭풍이 몰아칩니다. 왼손이 화음을 넓게 펼쳐 치며 아르페지오의 거센 물결을 쉬지 않고 쏟아내는 동안 오른손은 그 아수라장 위로 위태롭게 선율을 내던지죠. ‘바다’라는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지만 결코 햇살 비치는 잔잔한 바다가 아닙니다. 살을 에는 파도가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폭풍우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셈입니다.

피아니스트 입장에서는 왼손 아르페지오 지구력을 갉아먹는 지독한 훈련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3분 내내 거친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곡 중간쯤 찰나의 고요함이 찾아오는 구간은 마치 폭풍의 눈과도 같죠. 하지만 그 얄팍한 정적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한숨 돌리나 싶어 방심하는 순간 인정사정없는 파도가 기어코 다시 덮쳐오거든요.

입문자에게 이 1번 곡을 가장 먼저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 3분 만에 Op. 39라는 음악의 매서운 정체를 단숨에 각인시켜 주는 곡이니까요.

2번, 갈매기의 비행 (a단조)

1번의 매서운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바다와 갈매기’라는 이미지 그대로 유려한 선율이 바람을 타고 아득히 솟아올랐다가 사뿐히 내려앉거든요.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수많은 피아노 음악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빼어난 서정성을 자랑하는 곡입니다.

처음 듣는 순간 이 곡이 피아노 연습곡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한 편의 노래 같거든요. 덕분에 이 곡 하나만 쏙 빼서 연주회 무대에 올리는 피아니스트도 적지 않죠. 기술적으로는 오른손의 유려한 선율과 왼손의 반주를 완벽하게 분리해 내는 동시에 끈적한 페달 컨트롤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고도의 기교가 겉으로 조금도 티가 나지 않게 그저 자연스럽게 노래하듯 연주해야 하는 무서운 곡이기도 합니다.

가장 짜릿한 감상 포인트는 곡 중간부에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입니다. 마치 갈매기가 거센 파도를 뚫고 비상하듯 선율이 단번에 하늘로 치솟아 오르거든요. 그 직후에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하강이 너무나도 섬세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처음 듣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맙니다.

3번, 심판의 날 (f♯단조)

이면에 ‘분노의 날(Dies irae)’이라는 섬뜩한 이미지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제법 소름이 돋는 곡입니다. 중세 가톨릭 진혼 미사의 핵심 선율인 Dies irae는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심판을 묘사하죠. 라흐마니노프는 평생에 걸쳐 이 선율에 지독하게 집착했습니다. 교향곡 1번부터 파가니니 주제 변주곡에 이르기까지 그의 수많은 작품 곳곳에 이 주제가 변형된 채 그림자처럼 따라붙거든요.

피아노 건반 위에서는 4번과 5번 손가락 즉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강화 훈련이 펼쳐집니다. 가장 약한 손가락만으로 묵직한 화음을 번개처럼 내리쳐야 하거든요. 라흐마니노프 본인처럼 손이 솥뚜껑만 한 사람에게도 꽤나 골치 아픈 곡인데 평균적인 손 크기를 가진 피아니스트에게는 거의 고문 현장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면 객석에 앉아 듣는 입장에서는 이 곡이 대체 왜 ‘심판의 날’로 불리는지 단박에 납득하게 되죠. 브레이크 없이 몰아치는 리듬과 쉴 새 없이 팽창하는 긴장감 탓에 정체 모를 무언가에게 등 덜미를 바짝 쫓기는 기분마저 듭니다.

5번, 옥타브의 지옥 (e♭단조)

Op. 39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악명 높은 곡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옥타브 연타의 늪이죠. 두 손이 번갈아 가며, 때로는 동시에 옥타브를 내리치고 또 내리쳐야 하거든요. 연습 도중 손목 부상을 입고 백기를 드는 피아니스트가 속출할 정도로 흉악한 곡이기도 합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옥타브를 짚어내는 일은 단음 연주보다 두 배, 세 배 이상의 묵직한 근력을 요구합니다. 그걸 3분 이상 쉬지 않고 쏟아낸다는 건, 비유하자면 역도 선수가 전력 질주로 마라톤 코스를 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죠. 과거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사람들은 그 어마어마한 음량에 기함했다고 전해집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치를 멱살 잡고 끝까지 끌어올린 곡, 바로 그 지점입니다.

6번, 추격전 (a단조)

동화가 모티프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빨간 모자와 늑대’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림책 속 그 귀여운 빨간 모자가 아니거든요. 이건 굶주린 진짜 늑대에게 쫓기는 어린아이의 원초적인 공포감 그 자체입니다.

숨 막힐 듯 빠른 속도 속에서 두 손이 완전히 다른 리듬을 짚어내며 치열하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입니다. 듣고 있으면 등 뒤에서 무언가가 바짝 쫓아오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지죠. 에프게니 키신이 16세(1988년)에 이 곡을 녹음했는데, 그 연주는 지금도 전설로 회자됩니다. 어른 피아니스트조차 소화하기 벅찬 기교를 고등학생 나이에 너끈히 해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었으니까요.

7번, 종소리와 불 (c단조)

짓누르는 듯 두꺼운 화음과 둔탁한 종소리 같은 음향이 교차하며 등장합니다. ‘장례 행진곡’이라는 스산한 별칭이 따라붙을 만큼, Op. 39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무겁고 비통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러시아 음악 전통에서 이 종소리 효과는 꽤나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어린 시절 노브고로드에서 들었던 교회 종소리에 흠뻑 매료됐다고 직접 회고한 적이 있거든요. 피아노로 종소리를 그럴싸하게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닙니다.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가 거대한 종으로 둔갑해 버리는 압도적인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8번, 호밀 속의 길 (d단조)

그토록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스크리야빈의 선율이 예고 없이 등장하는 바로 그 에튀드입니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장대하고 선 굵은 선율이 두 성부 구조로 너울거리듯 펼쳐지는데, 그 흐름 한가운데 어딘가에 죽은 라이벌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섞여 들거든요. 이 사실을 인지하고 들으면, 그 찰나의 순간이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선명하게 귀에 꽂힙니다.

9번, 행진으로 마무리 (D장조)

아홉 곡의 기나긴 여정 중 유일하게 장조로 끝맺는 결말입니다. 그것도 씩씩한 행진곡 리듬을 얹어서 말이죠. Op. 39 전체가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을 헤맸는데 막판에 이토록 밝고 힘차게 마무리되는 건 꽤나 의외의 전개입니다. 하지만 몇몇 연주자들은 이 결말이 진정한 의미의 희망이라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비장한 저항처럼 들린다고 해석합니다. 혁명 직전의 러시아를 등지며 남긴 음악이라는 씁쓸한 맥락을 짚고 나면, 이 행진의 발걸음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거든요.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의 마침표를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조국을 떠났습니다.

손이 따라야 하는 음악

Op. 39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탄생한 피아노 문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눈 돌아가게 빠른 음표가 빼곡해서가 아니죠. 각각의 에튀드가 피아노 연주 기술의 완전히 다른 측면들을 골라내어 그야말로 한계점까지 자비 없이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1번은 끊임없이 파도치는 아르페지오를 버텨낼 체력, 3번은 가장 약한 손가락을 짓누르는 하중, 4번은 까다로운 반복음 처리, 5번은 무자비한 옥타브 근력, 6번은 아슬아슬한 속도와 도약, 7번은 벽돌처럼 두꺼운 화음의 미세한 색채 조절, 그리고 9번은 점프와 옥타브, 반복음이 뒤엉킨 끔찍한 복합 기술을 요구합니다. 피아니스트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이 모든 난제가 단 하나의 모음집 안에 꽉꽉 압축되어 있는 겁니다.

피아노 전공 학생들이 이 곡의 악보를 처음 펼쳐 들면, 단 한 곡을 그럴싸하게 쳐내기까지 몇 달씩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아예 아홉 곡 전곡을 독주회 프로그램에 거뜬히 올리는 피아니스트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극소수에 불과하죠. 라흐마니노프가 오로지 자신의 규격 외 손을 위해 썼다는 가설이 묘하게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평범한 손 크기로는, 그리고 어설픈 수준의 연습량으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기형적인 음악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음악이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면 감상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제된 음원 녹음으로 들을 때와 달리, 연주자의 손이 건반 위를 어떻게 날아다니고 그 가혹한 하중을 손목이 어떻게 버텨내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다 보면 음악의 묵직한 물리적 실체가 뼈저리게 다가오거든요. 악보가 흘러가는 싱크 영상과 함께 감상해 보시길 강력히 권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시작하세요

아홉 곡을 전부 연달아 들으면 40분 가까운 꽤 긴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만약 이 거대한 파도에 처음 뛰어드는 참이라면 이런 순서로 접근해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우선 1번부터 시작해 보세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왼손 아르페지오의 소용돌이는 여러분을 단숨에 Op. 39의 세계 한가운데로 멱살 잡고 끌어당길 테니까요. 3분이라는 시간이 대체 어떻게 증발해 버렸는지 모를 만큼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2번만큼은 반드시 들어보셔야 합니다. 방금 전 1번의 폭풍우가 언제 있었냐는 듯 완전히 다른 결의 세계가 펼쳐지거든요. 이 곡이 뿜어내는 서정적인 선율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큼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순간을 빚어냅니다.

마무리는 6번으로 장식해 보시죠. ‘빨간 모자와 늑대’라는 모티프가 만들어내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악이라는 비물질적인 소리만으로 사람의 심장을 얼마나 쫄깃하게 조일 수 있는지 그 진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곡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이 음악들 이면에는 저마다의 ‘그림’이 깃들어 있습니다. 작곡가 본인이 어떤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렸는지 몇 가지 힌트는 흘려두었지만, 여전히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지는 않았죠. 그러니 귀를 기울이며 백지 위에 여러분만의 붓칠을 해나가면 그만입니다. 이 모음집의 간판이 다름 아닌 ‘회화적 연습곡’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거든요. 액자에 끼워진 완성작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게 아니라, 음표들이 허공에 그림을 스케치하고 색을 칠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귀로 듣는 음악이니까요.

아홉 곡 전곡이 영 부담스럽게 느껴지신다면, 유튜브에서 키신이나 루간스키의 연주를 골라 2번부터 가볍게 시작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3분 남짓 흐르는 그 곡 하나만으로도 Op. 39라는 음악이 어떤 세계인지 단박에 감을 잡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9번으로 마침표를 찍은 이유

Op. 39가 굳이 9번에서 마침표를 찍은 건 그저 우연한 결과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전작인 Op. 33의 경우, 원래는 8곡으로 썼다가 막상 출판할 무렵 작곡가 본인이 몇몇 곡을 매몰차게 철회하면서 결국 6곡으로 쪼그라들었거든요. 이번 Op. 39 역시 그가 처음부터 9곡이라는 덩치를 목표로 삼았던 건지, 아니면 악상이 뻗어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9개가 된 건지 그 속사정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9번이 씩씩한 D장조 행진곡으로 문을 닫는 모양새만큼은 아주 다분히 의도적인 결말로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Op. 39 전체의 흐름을 보면 우울한 c단조로 문을 열어 환한 D장조로 끝을 맺습니다. 겉보기엔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가는 해피엔딩 같지만, 막상 들어보면 그 밝음이 마냥 쾌청하지만은 않거든요. 행진곡 특유의 뻗어나가는 에너지는 충만하되, 정작 그 에너지가 어디를 향해 전진하는지는 묘하게 길을 잃은 느낌이랄까요. 쇼팽이 쓴 단조 작품들이 곡 말미에 장조로 허무하게 돌아서며 짙은 여운을 남기는 것과 꽤나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9번의 마지막 화음이 허공을 강타하고 이내 무거운 정적이 찾아오는 순간. 그 정막함 속에서 앞서 지나쳐 온 여덟 곡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다시 스쳐 지나간다면, 축하드립니다. 비로소 이 음악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제대로 안착한 순간이니까요.

러시아를 등지며 남긴 음악의 무게

놀랍게도 Op. 39의 마침표를 찍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라흐마니노프는 영원히 러시아 땅을 떠나게 됩니다. 1917년 12월, 그는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향했고 돌고 돌아 결국 미국에 짐을 풀었죠. 살벌하게 불어닥친 볼셰비키 혁명은 그가 태어나고 평생을 사랑했던 이바노프카 농장을 비롯해 그의 재산 전부를 사정없이 몰수해 버렸습니다.

망명 이후 26년이라는 긴 세월을 더 살아가며 교향곡 3번, 피아노 협주곡 4번, 파가니니 주제 변주곡, 교향적 무곡 같은 굵직한 걸작들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피아노 독주 소품집만큼은 단 한 곡도 쓰지 않았죠. Op. 39가 문자 그대로 그의 인생 마지막 피아노 독주 소품집이 되어버린 겁니다.

대체 왜 펜을 꺾어버린 건지 작곡가 본인은 속 시원히 이유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낯선 땅에 떨어진 망명 초기, 그는 무려 10년 가까이 새로운 작품을 거의 쥐어 짜내지 못한 채 그 텅 빈 공백기를 오로지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삶으로 꾸역꾸역 버텨내야 했죠. 어떤 연구자들은 평생의 뿌리였던 고향을 잃어버린 충격이 그의 창작의 우물을 말려버렸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시끄러운 미국 생활 자체가 작곡이라는 예민한 작업과는 상극이었다는 시각도 존재하거든요.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눈을 감는 날까지도 미국을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느끼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서글픈 배경 탓일까요, Op. 39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무언가 짙은 ‘작별’의 정서가 묻어난다고 말하는 청취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9번의 힘찬 마지막 행진곡이 유독 입안에 씁쓸하게 감도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인지 모르죠. 곡을 쓰던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과연 이 모음집이 고국에서 남기는 마지막 피아노 독주곡이 될 줄 알았을까요? 그 속마음이야 영영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가 남긴 음악만큼은 100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 곁에 굳건히 살아남았습니다.

Op. 39와 러시아 혁명, 음악과 역사가 겹치는 지점

1917년은 클래식 음악사 전체를 놓고 봐도 참으로 기구하고 특이한 해입니다. 러시아 혁명의 붉은 물결이 문화계 전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피 말리는 선택의 기로에 내몰렸거든요. 이 폐허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짐을 싸서 떠날 것인가.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는 묵묵히 떠나는 쪽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무거운 결정이 결코 홧김에 내린 즉흥적인 도피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의 연주 여행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합법적인 출국 비자를 받아낸 뒤 가족들의 손을 잡고 조용히 러시아를 빠져나왔습니다. 처음 국경을 넘을 때만 해도 그저 소나기를 피할 임시방편이라 여겼을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독하게 마음먹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핑계 섞인 출국이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러시아 방문으로 영영 굳어버린 셈입니다.

Op. 39는 그 무거운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러시아 전역을 집어삼킬 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불과 몇 달 전이었죠.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그 파멸의 기운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는지는 영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1916년 그가 이바노프카 농장의 적막 속에서 Op. 39의 에튀드들을 묵묵히 적어 내려가던 그 순간, 농장 밖의 세상은 이미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Op. 39가 뿜어내는 그 지독하게 어두운 분위기가 그저 한 개인의 우울함이 아니라, 시대 전체를 짓누르던 불안과 끈적하게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사실 음악이라는 추상적인 예술이 역사의 현장을 이토록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거든요. 하지만 Op. 39를 들으며 무너져가는 러시아 제국과의 서늘한 접점을 느끼는 청취자가 적지 않은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가 조국에 남았더라면 쇼스타코비치처럼 차가운 소비에트 체제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 길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냈을까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 운명의 갈림길에서 섣부른 답을 내놓는 대신 짐을 싸서 영영 러시아를 떠나버렸으니까요. 그리고 그의 빈자리에는 오직 Op. 39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리히터가 남긴 전설적 연주

Op. 39 연주의 기나긴 역사를 논할 때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라는 거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리히터는 Op. 39 전곡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렸고, 다행히도 당시의 불꽃 튀는 라이브 녹음 일부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죠. 매끈하기로 소문난 루간스키나 아쉬케나지의 녹음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리히터의 연주는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우주에 속해 있습니다.

지독하게 거칩니다. 곱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거든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질감이 오히려 이 음악의 시커먼 본질을 더 정확하게 꿰뚫는다는 찬사가 쏟아집니다. 특히 악명 높은 5번 옥타브 에튀드를 리히터가 내리칠 때면, 피아노 건반을 박살 낼 듯한 그 괴력이 스피커를 뚫고 그대로 전해지죠. 낡은 녹음으로 들어도 이 정도인데, 그날 실제 공연장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압도감을 느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리히터는 평생토록 라흐마니노프를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주저 없이 꼽았습니다. 특히 그가 라흐마니노프의 후기 피아노 음악들에 유난히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는 건 클래식계에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죠. 자신이 아끼는 작곡가를 향한 그 깊고 묵직한 애정이 Op. 39 연주 마디마디에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2000년대 이후에 발매된 루간스키의 정교한 스튜디오 녹음과 리히터의 야성적인 라이브 녹음을 번갈아 들어보는 건 제법 흥미진진한 경험입니다. 반세기 가까운 아득한 시간 차이를 둔 두 연주자가 똑같이 인쇄된 음표를 보면서 이토록 극과 극의 세상을 빚어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죠. ‘악보는 단 하나뿐이지만, 거기서 태어나는 음악은 수만 가지’라는 해묵은 명제가 소름 돋게 피부로 와닿는 완벽한 비교 감상입니다.

에튀드-타블로라는 이름의 탄생

‘에튀드-타블로(Études-Tableaux)’라는 낯선 이름표 자체도 꽤나 흥미를 끕니다. 프랑스어로 에튀드(étude)는 ‘연습곡’을, 타블로(tableau)는 ‘그림’이나 ‘장면’을 뜻하죠.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단어를 굳이 하나로 꿰맨 건 다름 아닌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집요한 선택이었습니다. 손가락을 고문하는 기교 훈련용 연습곡인 동시에,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회화적 장면을 담아내겠다는 뼈 있는 선언인 셈입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쇼팽이나 리스트의 에튀드가 주어진 기교적 난제를 정면 돌파해 나가는 구조라면,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타블로에서 기교는 그저 서늘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단단한 그릇에 불과합니다. 아르페지오를 기계적으로 굴리며 연습하는 게 아니라 아르페지오의 물결로 사나운 파도를 묘사하고, 반복음을 타건하는 요령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반복음을 무기 삼아 숨 막히는 추격전을 빚어내는 식이죠.

바로 이 절묘한 이중성이 Op. 39를 흔해 빠진 테크닉 연습곡 모음집들과 완벽하게 구별 짓는 핵심입니다. 피아니스트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기술적으로 악랄하면서도, 동시에 예술적인 깊이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하거든요. 기교냐 예술이냐, 얄팍한 양자택일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입니다.

사실 피아노 음악의 기나긴 역사를 뒤져봐도 이런 괴물 같은 조합은 흔치 않습니다. 쇼팽의 에튀드가 숨 막히는 예술성을 자랑하긴 하지만 꽤나 추상적이고,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에튀드’는 이름 그대로 초인적인 기교 과시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되곤 하니까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이 두 가지를 한 손에 움켜쥐고는, 그 위에 아주 구체적이고 눈에 보일 듯한 ‘장면’까지 슬쩍 얹어버렸습니다. Op. 39가 에튀드라는 뻔한 장르 속에서도 이토록 독보적이고 기이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돌이켜보면 라흐마니노프는 전작인 Op. 33에서 이미 이 발칙한 방식을 시도했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각 곡이 품은 이미지를 무덤까지 가져갈 기세로 단 한 마디도 밝히지 않았죠. Op. 39에 와서는 끈질긴 레스피기에게 마지못해 몇 가지 힌트를 귀띔해 주긴 했지만, 여전히 전체 그림의 퍼즐은 슬쩍 감춰둔 상태입니다. 어쩌면 애초에 철저히 계산된 의도였는지도 모르죠. 캔버스를 꽉 채운 정답 대신 뼈대만 있는 음악을 툭 건네고, 그 여백 속에서 청취자 각자가 자신만의 그림을 기꺼이 완성하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Op. 39가 음악사에서 갖는 위치

클래식 동네에서는 흔히 피아노 에튀드 장르를 완성한 인물로 주저 없이 쇼팽을 꼽습니다. 쇼팽이 남긴 두 권의 에튀드(Op. 10, Op. 25)는 기계적인 손가락 훈련과 찬란한 예술성을 기가 막히게 버무려냈으니까요. 그 바통을 이어받은 리스트가 피아노를 부술 듯한 ‘초절 기교 에튀드’로 인간 한계에 도전했다면, 20세기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드뷔시가 자신만의 에튀드(1915)로 또 한 번 이 낡은 장르의 문법을 뒤엎어버렸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Op. 39는 피아노 에튀드라는 거대한 산맥이 도달한 마지막 봉우리나 다름없습니다. 이후 20세기의 피아노 에튀드는 리게티나 메시앙 같은 현대 작곡가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완전히 딴 세상으로 튕겨져 나갔거든요. 눅진하게 무르익은 낭만주의 화성에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피아니즘의 기가 막힌 결합. 결국 Op. 39는 그 장엄한 흐름이 남긴 마지막 대형 기념비가 된 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얄궂은 사실은, 정작 곡을 지은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이 시기 이후 피아노 음악이 흘러가는 꼴을 내심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겁니다.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바르토크로 거침없이 뻗어가는 20세기 음악을 보며 그는 꽤나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죠. 툭하면 ‘시대에 뒤처진 구닥다리 낭만주의’라는 뼈아픈 비판에 시달려야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과연 어느 쪽 음악이 무대 위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의 음악은 이 최첨단 스트리밍 시대에도 손에 꼽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생 수를 자랑하는 클래식의 승자니까요.

Op. 39의 두 가지 해석 방향

대체 이 음악을 어떻게 요리하고 맛봐야 할지,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꽤나 팽팽하게 의견이 엇갈리곤 합니다.

첫 번째는 눈앞에 생생한 장막을 띄워놓는 ‘그림 음악’으로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각 에튀드에 꼬리표처럼 붙은 바다와 갈매기, 분노의 날, 빨간 모자와 늑대 같은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가며 듣는 거죠. 작곡가가 친절하게 힌트를 던져준 곡에서는 이 방법이 제법 훌륭한 길잡이가 됩니다. 예컨대 6번을 들을 때 굶주린 늑대와 아이의 끔찍한 추격전을 머릿속에 띄워보면, 널뛰는 음악의 구조가 왜 이토록 기괴한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되거든요.

두 번째는 철저하게 ‘순수 음악’으로 파고드는 방식입니다. 알록달록한 이미지는 미련 없이 걷어내고 오직 화성의 변덕스러운 흐름과 리듬의 뼈대, 그리고 피아니즘 그 자체의 질감에만 돋보기를 들이대는 겁니다. 이렇게 접근하면 Op. 39는 19세기 후반 낭만 피아노 음악이 도달한 눈부신 결정체로 둔갑하죠. 특히 화성학의 관점에서 Op. 39는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담합니다. 반음씩 징그럽게 파고드는 촘촘한 진행, 허를 찌르는 조성의 뒤틀림, 극도로 불안하게 꼬인 화음이 스르륵 풀려나가는 쾌감. 이 얄미운 장치들이 그저 그림을 흉내 내기 위한 얄팍한 도구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언어 자체로 미치도록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쪽이 정답이냐고요? 정작 라흐마니노프 본인은 끝끝내 입을 꾹 닫아버린 채 대답을 피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고집스럽게 그림의 정체를 숨기려 했던 진짜 속내가 바로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죠. 사실 어느 쪽 렌즈를 끼고 보든 이 음악은 감당하기 벅찰 만큼 풍성하게 넘쳐흐르니까요.

왜 지금도 연주되는가

라흐마니노프가 흙으로 돌아간 지 80년이 훌쩍 넘었지만, Op. 39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들의 레퍼토리 한구석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야 아주 명확하죠.

첫째로, 피아니스트 입장에선 이 악랄한 기술의 장벽이 피를 끓게 하는 도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Op. 39는 피아노 건반 위에서 구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난도 테크닉이 징그럽게 응축되어 있다 보니, 자신의 무시무시한 기량을 과시하는 용도로는 이만한 최상급 무기가 없거든요. 살벌한 국제 피아노 콩쿠르 무대에서도 이 곡이 심심찮게 불려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음으로는 꽉 들어찬 음악적 내용의 밀도를 꼽아야 합니다. 아홉 곡이 저마다 완전히 딴판인 서사를 품고 있어서, 연주자가 이 기괴한 동화책을 어떻게 읽어주느냐가 곧 그 사람만의 선명한 지문이 되거든요. 루간스키, 아쉬케나지, 키신이 남긴 녹음들을 나란히 걸어놓고 들어보면 그 뻔한 음표들이 건반 위에서 얼마나 소름 돋게 다른 온도로 울려 퍼지는지 뼛속 깊이 실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아무런 매개체 없이 객석의 청취자와 찌릿하게 직접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Op. 39는 클래식의 ‘클’ 자도 모르는 사람조차 단숨에 의자 등받이에서 허리를 떼게 만들거든요. 1번의 잔혹한 폭풍, 2번의 처연한 서정성, 6번의 숨 막히는 추격전은 딱딱한 배경지식 따위 없이도 고스란히 심장에 내리꽂힙니다. 어쩌면 바로 이 치명적인 직관성이야말로 이 낡은 악보가 시대를 훌쩍 건너뛰어 계속 연주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일지도 모릅니다.

추천 녹음

니콜라이 루간스키 (Naxos, 2001)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선 시점에서 Op. 39 전곡 녹음의 가장 묵직한 기준점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스페셜리스트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헛되지 않게, 루간스키는 각 에튀드의 복잡한 성격을 아주 날카롭게 포착해 냅니다. 건반이 부서져라 몰아치는 구간에서도 소리의 윤곽이 털끝 하나 뭉개지지 않고, 눈물겹게 서정적인 2번에 이르면 피아노를 가지고 진짜 노래를 부르거든요. 이 험난한 세계에 첫발을 들이는 입문용으로도, 남들과 얼마나 다른지 뜯어보는 비교 청취용으로도 늘 1순위로 밀어주는 명반입니다.

Play: Yuja Wang – Rachmaninov: Etudes Tableaux Op. 39, No. 1 in C-Minor (Live at Philharmonie, Berlin)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Decca, 1983)

거대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독주 전집이라는 족적을 남긴 아쉬케나지의 연주입니다. Op. 39 역시 그 방대한 기록의 일부로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듣다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하게 재단되어 있습니다. 루간스키보다 감정의 온도를 한참 떨어뜨린 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보니, 흠칫 “너무 차갑다”고 한기를 느낄 수도 있죠. 하지만 묘하게도 바로 이 지독한 절제가 Op. 39 특유의 시커먼 분위기를 한층 더 섬뜩하게 벼려내는 구석이 있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곡들이 괜스레 요란을 떨지 않고, 도리어 아주 고요하고 납덩이처럼 묵직하게 객석을 짓눌러오거든요.

에프게니 키신 (RCA Victor, 1988, 선곡)

키신은 무려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이 무시무시한 녹음을 남겼습니다. 비록 전곡이 아닌 선곡(1, 2, 4, 5, 6, 9번)이긴 하지만, 특히 6번 ‘빨간 모자와 늑대’에 이르면 왜 이 연주가 지금도 단연코 최고로 꼽히는지 단박에 납득하게 되죠.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 피아니스트조차 쩔쩔매는 흉악한 기교를 고작 고등학생 나이에 거뜬히 집어삼켰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클래식계의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1번에서 뿜어내는 압도적인 괴력과 2번에서 스며 나오는 솜털 같은 섬세함을 듣고 있노라면, 도무지 16세 소년의 손끝에서 빚어진 연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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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음표들이 건반 위에서 어떻게 요동치는지 두 눈으로 직접 쫓아가며 감상해 보는 것도 꽤 짜릿한 경험이 될 겁니다. 핑계 삼아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언제든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거든요.

회화적 연습곡 Op.39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Op.39는 어떤 곡인가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1916–1917년에 작곡한 피아노 독주 에튀드(연습곡) 모음집으로, 총 9곡입니다. ‘에튀드-타블로(Étude-tableau)’란 ‘회화적 연습곡’, 곧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연습곡이라는 뜻입니다. 기술적으로 극도로 어려우면서도 강렬한 서사를 품고 있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 가운데 최고 난이도이자 최고 예술성을 갖춘 작품으로 꼽힙니다.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를 떠나기 직전에 완성한 마지막 피아노 독주 모음집이기도 합니다.

회화적 연습곡 Op.39는 어떤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라흐마니노프 본인은 각 곡의 이미지를 청중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관현악 편곡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전해받은 정보가 남아 있습니다. 1번은 ‘바다’, 2번은 ‘바다와 갈매기’, 3번은 ‘분노의 날(Dies irae)’, 4번은 ‘죽어가는 새들’, 6번은 ‘빨간 모자와 늑대’라는 이미지입니다. 나머지 곡들의 이미지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에, 청취자마다 자기만의 그림을 상상하며 듣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회화적 연습곡 Op.39를 처음 들을 때 어떤 곡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1번(Allegro agitato, c단조)부터 시작하길 권합니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첫 곡이 Op. 39의 세계로 단번에 끌어당깁니다. 이어서 2번(Lento assai, a단조)을 들으면 갑작스러운 서정에 숨이 멎을 겁니다. 기교적으로 가장 유명한 6번 ‘빨간 모자와 늑대’도 놓치면 안 됩니다. 9번까지 순서대로 전곡을 들으면 40분 남짓인데, 처음에는 1번, 2번, 6번만 먼저 들어보고 전곡에 도전해 보길 권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왜 Op.39를 마지막 피아노 독주 모음집으로 남겼나요?

Op. 39를 완성한 1917년 말, 러시아 혁명이 터졌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를 영구히 떠났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교향곡, 협주곡, 변주곡 등을 썼지만 피아노 독주 소품집은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고향과 생활 기반을 잃은 망명 생활이 창작 방향을 바꾼 것으로 연구자들은 봅니다. Op. 39에 그의 러시아 마지막 창작 에너지가 응축돼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Op.39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전곡 입문에는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Naxos(2001) 녹음이 가장 균형 잡힌 선택입니다. 정갈하고 정확한 연주를 원한다면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Decca(1983) 전집도 좋습니다. 선곡 연주 가운데서는 에프게니 키신의 RCA(1988) 녹음을 꼽아야 하는데, 특히 6번 ‘빨간 모자와 늑대’에서 힘이 넘칩니다. 이 세 녹음을 비교하면 같은 음악이 연주자마다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 바로 체감하실 겁니다.

참고자료

이어서 듣기 — 라흐마니노프와 러시아 피아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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