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회화적 연습곡 Op.39

러시아 마지막 피아노 소품, 그림은 비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작품
회화적 연습곡 (에튀드-타블로), Op. 39
장르
피아노 에튀드 모음집
작곡
1916–1917년
출판
1920년, Editions Russes de Musique
편성
피아노 독주
악곡 수
9곡 (No. 1–9)
악장 구성
No. 1 Allegro agitato (c단조)
No. 2 Lento assai (a단조)
No. 3 Allegro molto (f♯단조)
No. 4 Allegro assai (b단조)
No. 5 Appassionato (e♭단조)
No. 6 Allegro (a단조)
No. 7 Lento lugubre (c단조)
No. 8 Allegro moderato (d단조)
No. 9 Allegro moderato. Tempo di marcia (D장조)

1917년 봄,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앞에서 마지막 음표를 적었습니다. Op. 39의 아홉 번째 곡. 그해 겨울, 러시아 혁명이 터졌고 그는 짐을 쌌습니다.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오지 못했거든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초상 (1921년경)
Cliburn Score & Sound: Aristo Sham의 연주와 악보를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에튀드 모음집이 러시아 땅에서 쓴 마지막 피아노 독주 작품이 된 배경입니다. 이후 26년을 더 살면서 여러 걸작을 남겼지만, 피아노 독주 소품집에는 다시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바노프카 농장의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가 Op.39를 작곡한 이바노프카 농장에서. 그는 이 조용한 시골 사유지에 틀어박혀 1916년 여름부터 에튀드-타블로 작업에 매달렸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들이 어떤 그림에서 영감받았는지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회화적 연습곡’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정작 그 그림은 비밀로 한 셈입니다. 청중이 물어봐도 “알아서 상상하세요”라는 태도였거든요.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가 이 곡들을 관현악으로 편곡하면서 집요하게 추궁했을 때야 비로소 몇 가지 힌트가 흘러나왔습니다. ‘바다’, ‘갈매기’, ‘분노의 날’, ‘죽어가는 새들’, ‘빨간 모자와 늑대’. 이런 목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어느 곡이 어느 그림인지는 지금도 논란입니다.

알렉산더 스크리야빈 초상 (1909년)
알렉산더 스크리야빈 (1872-1915).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 스크리야빈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라흐마니노프는 Op.39의 8번 에튀드 안에 그의 선율을 살짝 인용했다.

전략이었는지, 진짜 비밀을 지키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덕분에 Op. 39는 100년이 넘도록 청중 각자가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 넣는 음악으로 남았습니다.

파스테르나크가 그린 라흐마니노프 초상 (1916년)
화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가 그린 라흐마니노프 초상 (1916년). Op.39가 완성된 바로 그 해에 그려진 그림이다.

1916년 러시아, 무너지기 직전의 시대

라흐마니노프가 Op. 39를 쓰기 시작한 1916년. 러시아 제국이 삐걱대던 시절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고, 궁정에선 라스푸틴이 황후 곁을 지키고 있었고, 거리에선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때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혼란 속에서 이바노프카 농장으로 숨어들어 작곡에 매달렸습니다.

Op. 33이 1910~1911년에 나왔으니, Op. 39까지 6년 가까운 공백이 있었네요. 그 사이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지만, 피아노 독주 소품 작업에는 뜸했습니다. 나이로는 40대 중반. 작곡가로서나 연주자로서나 한창인 시절이었습니다.

Op. 39가 다시 피아노 소품으로 돌아온 건 어떤 이유였을까요. 한 가지 설은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손을 위한 기교 연습용으로 직접 쓴 곡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Op. 39의 다섯 번째 곡은 옥타브 연타로 가득하고, 세 번째 곡은 약한 손가락(4번, 5번 손가락) 강화를 위한 연습곡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손 크기는 전설적이어서, 12도(피아노 건반 12개 반)를 한 손에 잡을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웬만한 성인 손의 1.5배. 이 비범한 손을 유지하고 훈련하기 위한 곡이기도 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전부라면 이렇게 어두울 이유가 없습니다. Op. 39의 전체 분위기는 Op. 33보다 훨씬 무겁고, 어둡고, 폭력적입니다. 혁명 직전의 러시아가 이 음악 속으로 스며든 느낌이랄까요. 세상이 실제로 끝나가고 있었으니까요.

음악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두 모음집의 성격 차이를 놓고 논쟁이 벌어집니다. 어떤 이들은 Op. 33이 더 정련되고 피아니스틱하다고 봅니다. Op. 39는 날것 같은 에너지, 다듬어지지 않은 충동이 있다는 거죠. 반대로 Op. 39야말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의 꼭대기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두 모음집을 연달아 들어보면 6년이 이 작곡가를 어떻게 바꿨는지 체감하게 됩니다.

그림을 숨긴 이유, 레스피기가 파낸 비밀

1930년,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라흐마니노프로부터 특별한 의뢰를 받았습니다. Op. 39 중 다섯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레스피기는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로 유명한 색채주의 작곡가였거든요.

오토리노 레스피기 초상 (1912년)
오토리노 레스피기 (1879-1936). 이탈리아의 색채주의 작곡가로, 1930년 라흐마니노프의 의뢰를 받아 Op.39 중 다섯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면서 작곡가에게 각 곡의 이미지를 추궁했다.

레스피기는 수락하면서 한 가지를 요청합니다. “이 곡들의 이미지를 알려달라. 편곡할 때 참고하겠다.” 라흐마니노프는 마지못해 몇 가지를 털어놓았습니다. 1번: 바다(파도 같은 아르페지오). 2번: 바다와 갈매기. 3번: 분노의 날(Dies irae, 중세 진혼 미사의 심판의 날 선율). 4번: 죽어가는 새들. 6번: 빨간 모자와 늑대.

연구자들이 이 목록의 출처를 파고들었더니, 5번이나 7번, 8번, 9번의 이미지는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7번은 러시아 화가 그리고리 먀소예도프의 ‘자기 소각(Self-Immolation)’에서 영감받았다는 설이 있고, 8번은 같은 화가의 ‘호밀 속의 길(A Road in the Rye)’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상태입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숨어 있습니다. 8번 에튀드 안에 스크리야빈의 피아노 소나타 5번 첫 주제가 슬며시 등장하거든요. 라흐마니노프가 라이벌의 선율을 자기 작품 속에 인용한 겁니다.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리야빈은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였습니다. 학생 시절엔 가까웠지만, 경력을 쌓으면서 음악 세계가 완전히 갈라졌거든요. 스크리야빈은 신비주의와 전위 음악으로 나아갔고,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 전통을 고수했습니다. 스크리야빈은 1915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로 이듬해, 라흐마니노프는 Op. 39를 쓰기 시작하면서 8번 안에 그 선율을 살짝 넣었습니다. 오마주인지, 조용한 화해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감정의 표현인지. 이 작은 인용 하나가 연구자들을 수십 년째 괴롭히고 있습니다.

아홉 편의 그림, 각 에튀드 감상 가이드

Op. 39는 연속 연주를 전제로 한 모음집이지만, 각 곡이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를 품고 있습니다. 아홉 곡 전체를 듣는 건 전시회 한 바퀴를 도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시회가 끝날 때쯤이면 머릿속에 아홉 가지 전혀 다른 장면이 걸려 있을 겁니다.

1번, 폭풍 속 파도 (c단조)

첫 음부터 폭풍입니다. 왼손이 거대한 아르페지오 물결을 쉬지 않고 이어가는 동안, 오른손은 그 위에서 선율을 내던집니다. ‘바다’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는데, 잔잔한 바다가 아닙니다. 파도가 연속으로 쏟아지는 폭풍우 한가운데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왼손 아르페지오 지구력 훈련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3분 내내 파도에 휩쓸리는 감각이죠. 중간쯤에 잠깐 고요해지는 구간이 있는데, 폭풍의 눈입니다.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다가옵니다. 숨을 고르나 싶으면, 파도가 다시 밀려오니까요.

1번을 먼저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3분 만에 이 음악의 정체를 규정해주는 곡이거든요.

2번, 갈매기의 비행 (a단조)

1번의 폭풍 뒤에 오는 전혀 다른 세계. ‘바다와 갈매기’라는 이미지 그대로, 선율이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 중 가장 빼어난 서정 선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곡입니다.

처음 들을 때 이게 연습곡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너무 노래 같거든요. 이 곡 하나만 따로 연주회에 올리는 피아니스트들이 꽤 됩니다. 기술적으로는 오른손 선율과 왼손 반주의 분리, 그리고 페달 컨트롤이 핵심입니다. 그 기교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노래해야 하는 곡이죠.

감상 포인트는 중간부의 클라이맥스. 갈매기가 파도 위로 솟구치듯, 선율이 한 번 크게 치솟습니다. 그 직후의 하강이 너무 섬세해서 처음 듣는 사람은 숨을 멈추게 됩니다.

3번, 심판의 날 (f♯단조)

‘분노의 날(Dies irae)’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소름끼치는 곡입니다. Dies irae는 중세 가톨릭 진혼 미사의 핵심 선율로, 최후의 심판을 묘사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이 선율에 집착했습니다. 교향곡 1번부터 파가니니 주제 변주곡까지, 여러 작품에 이 주제가 변형되어 등장하거든요.

기술적으로는 4번과 5번 손가락(약지와 새끼손가락) 강화 훈련입니다. 약한 손가락들로 무거운 화음을 폭발적으로 쳐내야 합니다. 라흐마니노프처럼 손이 큰 사람에게도 만만치 않은 곡인데, 평균 크기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에게는 고문에 가깝습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이 곡이 왜 ‘심판의 날’인지 금방 느끼게 됩니다. 멈추지 않고 몰아치는 리듬, 끊임없이 올라가는 긴장. 누군가에게 추적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5번, 옥타브의 지옥 (e♭단조)

Op. 39 중 가장 악명 높은 곡. 끝없는 옥타브 연타입니다. 두 손이 번갈아가며, 때로는 동시에 옥타브를 치고 또 칩니다. 연습하다가 손목 부상으로 포기하는 피아니스트가 속출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피아노 옥타브 연주는 한 음씩 치는 것보다 두 배, 세 배의 근력이 필요합니다. 그걸 3분 이상 쉬지 않고 친다는 건, 역도 선수가 전력 질주 마라톤을 뛰는 상황과 비슷한 얘기입니다.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이 곡을 연주하는 걸 들었던 사람들은 그 음량에 놀랐다고 전해집니다. 피아노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를 한계까지 끌어낸 곡. 바로 그 지점입니다.

6번, 추격전 (a단조)

동화 이야기라는 게 믿기 어렵습니다. ‘빨간 모자와 늑대’라는 이미지인데, 동화책의 빨간 모자가 아닙니다. 진짜 늑대에게 쫓기는 어린아이의 공포감 그 자체입니다.

빠른 속도에서 두 손이 서로 다른 리듬을 치면서 쫓고 쫓기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들으면 정말 무언가가 뒤쫓아오는 느낌이죠. 에프게니 키신이 15세(1988년)에 이 곡을 녹음했는데,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어른도 소화하기 힘든 기교를 중학생 나이에 해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사건입니다.

7번, 종소리와 불 (c단조)

두꺼운 화음과 종소리 같은 음향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장례 행진곡’이라는 별칭도 붙어 있습니다. Op. 39에서 가장 무거운 분위기의 곡입니다. 종소리 효과는 러시아 음악 전통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거든요. 라흐마니노프는 어린 시절 노브고로드의 교회 종소리에 매료됐다고 직접 언급한 적 있습니다. 피아노로 종소리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피아노 자체가 종이 되는 순간입니다.

8번, 호밀 속의 길 (d단조)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스크리야빈 선율이 등장하는 바로 그 에튀드.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장대한 선율이 두 성부 구조로 펼쳐지는데, 중간 어딘가에 스크리야빈의 목소리가 살짝 섞입니다. 알고 들으면 그 순간이 소름 돋을 정도로 선명하게 들립니다.

9번, 행진으로 마무리 (D장조)

아홉 곡 중 유일한 장조 결말입니다. 그것도 행진곡 리듬으로. Op. 39 전체가 어두운 분위기인데 마지막에 밝고 힘차게 끝나는 건 의외입니다. 어떤 연주자들은 이 결말이 진짜 희망이 아니라, 운명에 맞서는 마지막 저항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혁명 직전 러시아를 떠나면서 쓴 음악이라는 맥락을 알고 나면, 이 행진이 전혀 가볍지 않거든요.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손이 따라야 하는 음악

Op. 39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 쓰인 피아노 음악 중 가장 어려운 축에 드는 이유. 단순히 빠른 음표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각각의 에튀드가 피아노 연주 기술의 서로 다른 측면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1번은 지속적인 아르페지오 체력, 3번은 약한 손가락의 힘, 4번은 반복음 처리, 5번은 옥타브 근력, 6번은 속도와 점프, 7번은 두꺼운 화음의 색채 조절, 9번은 점프와 옥타브와 반복음의 복합 기술. 이 모든 난제가 한 모음집 안에 담겨 있습니다.

피아노 전공 학생들이 처음 이 곡을 마주하면,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하기까지 몇 달씩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전곡을 프로그램으로 올리는 피아니스트는 세계적으로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손을 위해 쓴 곡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보통 손으로는, 보통 수준의 연습으로는 도저히 닿지 않는 음악이니까요.

그래서 이 음악을 연주 현장에서 직접 보면 경험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녹음으로 들을 때와 달리, 연주자의 손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손목이 어떻게 버티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들으면 음악의 물리적 실체가 느껴집니다. 악보 싱크 영상과 함께 듣는 것을 권하는 까닭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시작하세요

아홉 곡을 다 들으면 40분 가까이 걸립니다. 처음이라면 이런 순서가 효율적입니다.

1번에서 시작하세요. 폭풍처럼 터지는 이 곡은 Op. 39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최고입니다. 3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겁니다.

2번은 반드시 들으세요. 1번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갈매기가 날개를 펼치듯 흐르는 서정성.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에서 가장 빼어난 순간 중 하나입니다.

6번으로 마무리하세요. ‘빨간 모자와 늑대’의 추격전.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긴장시키는지 체험하는 곡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 음악에 ‘그림’이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라흐마니노프가 어떤 그림을 떠올리며 썼는지 힌트는 남아 있지만, 전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들으면서 자기만의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이 곡들의 제목이 ‘회화적 연습곡’인 까닭은, 완성된 그림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음악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를 듣는 셈이니까요.

전곡이 부담스러우면, 유튜브에서 키신이나 루간스키 연주로 2번을 먼저 찾아보세요. 3분 남짓한 그 갈매기의 비행 하나만으로도 Op. 39가 어떤 음악인지 감이 올 겁니다.

9번으로 끝나는 이유

Op. 39가 9번으로 마무리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Op. 33은 원래 8곡이었다가 최종 출판 시 6곡으로 줄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일부 곡을 철회했기 때문입니다. Op. 39는 처음부터 9곡을 목표로 한 건지, 작곡하다 보니 9개가 된 건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9번이 D장조 행진곡으로 끝나는 건 의도된 마무리처럼 보입니다.

Op. 39 전체는 c단조로 시작해서 D장조로 끝납니다.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가는 것 같지만, 그 밝음이 마냥 밝지 않습니다. 행진곡의 에너지는 있지만, 그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호하거든요. 쇼팽의 단조 작품들이 장조로 끝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것과 비슷한 방식입니다.

9번의 마지막 화음이 울리는 순간, 잠깐 정적이 옵니다. 그 정적 속에서 앞의 여덟 곡이 다시 떠오르는 느낌, 그게 바로 이 음악이 제대로 들린 순간입니다.

러시아를 떠나며 쓴 음악의 무게

Op. 39를 완성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를 떠납니다. 1917년 12월, 그는 핀란드로 건너갔고 이후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이바노프카 농장을 포함해 재산 전부를 몰수했죠.

그 후 26년을 더 살면서 교향곡 3번, 피아노 협주곡 4번, 파가니니 주제 변주곡, 교향적 무곡 같은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피아노 독주 소품 모음집은 더 이상 쓰지 않았습니다. Op. 39가 문자 그대로 마지막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라흐마니노프 본인은 직접 밝히지 않았습니다. 망명 초기에 10년 가까이 새 작품을 거의 내놓지 못했고, 그 공백기를 연주자로서 버텼거든요. 어떤 연구자들은 고향을 잃은 충격이 창작의 근원을 건드렸다고 봅니다. 미국 생활 자체가 작곡에 맞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을 결코 고향처럼 느끼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Op. 39를 들을 때 어떤 청취자들은 ‘작별’의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9번의 마지막 행진이 유독 씁쓸하게 들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음악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남았습니다.

Op. 39와 러시아 혁명, 음악과 역사가 겹치는 지점

1917년은 클래식 음악사에서도 특이한 해입니다. 러시아 혁명이 문화 전반을 뒤흔들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라흐마니노프는 떠나는 쪽을 택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결정이 즉흥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말에 스칸디나비아 연주 여행을 핑계로 출국 비자를 받았고,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임시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는지. 결과적으로 그것이 마지막 러시아 방문이 된 셈입니다.

Op. 39는 이 결정 직전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혁명의 소용돌이가 시작되기 몇 달 전이었습니다.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시대가 어디로 향하는지 감지하고 있었을까요. 1916년, 그가 이바노프카 농장에서 Op. 39의 에튀드들을 적어 내려갈 때, 바깥에서는 이미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Op. 39의 어두운 분위기가 단순히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불안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옵니다. 음악이 역사를 직접 반영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Op. 39에서 그 접점을 느끼는 청취자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쇼스타코비치처럼 소비에트 체제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저항했을까요. 라흐마니노프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Op. 39를 남겼습니다.

리히터가 남긴 전설적 연주

Op. 39 연주의 역사에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리히터는 Op. 39 전곡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렸고, 그의 라이브 녹음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루간스키나 아쉬케나지 녹음과 비교하면 리히터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거칩니다.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거침이 이 음악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건드린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특히 5번 옥타브 에튀드를 리히터가 연주하면, 음악이 물리적인 충격처럼 밀려옵니다. 녹음으로 들어도 그렇거든요. 실제 공연장에서는 어땠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리히터는 평생 라흐마니노프를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꼽았습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후기 피아노 음악에 대한 리히터의 애착은 유명합니다. 그 애정이 Op. 39 연주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2000년대 이후 나온 루간스키 녹음과 리히터의 라이브 녹음을 비교하는 건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차이가 있는 두 연주가 같은 음표에서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악보는 하나인데 음악은 여럿이라는 명제가 피부로 와닿는 비교입니다.

에튀드-타블로라는 이름의 탄생

‘에튀드-타블로’라는 이름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에튀드(étude)는 프랑스어로 ‘연습곡’, 타블로(tableau)는 ‘그림’ 또는 ‘장면’을 뜻합니다. 두 단어를 붙인 건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선택이었습니다. 기교 훈련용 연습곡이면서 동시에 회화적 장면을 담은 곡이라는 뜻이죠.

쇼팽의 에튀드나 리스트의 에튀드가 기교 문제를 풀어가는 구조라면,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타블로는 기교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입니다. 아르페지오를 연습하는 게 아니라, 아르페지오로 파도를 그립니다. 반복음을 연습하는 게 아니라, 반복음으로 추격전을 만들어냅니다.

이 이중성이 Op. 39를 단순한 연습곡 모음과 구별짓는 핵심이죠. 기술적으로 최고로 어렵고, 동시에 예술적으로 깊습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닌 셈입니다.

피아노 음악 역사에서 이 조합은 그리 흔치 않거든요. 쇼팽의 에튀드는 예술성이 뛰어나지만 추상적입니다.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에튀드는 기교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잡으면서, 거기에 구체적인 ‘장면’을 얹었습니다. Op. 39가 에튀드 장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Op. 33에서 이미 이 방식을 시도했지만, 그때는 각 곡의 이미지를 아예 밝히지 않았습니다. Op. 39에서는 레스피기에게 몇 가지를 귀띔하긴 했지만, 여전히 전부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게 의도였을 겁니다. 청취자에게 음악만 건네고, 그 안에서 각자의 그림을 찾게 하는 것.

Op. 39가 음악사에서 갖는 위치

에튀드 장르는 쇼팽이 완성했다고 흔히 말합니다. 쇼팽의 에튀드(Op. 10, Op. 25)는 기교 훈련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아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리스트가 ‘초절 기교 에튀드’로 극한의 기교를 추구했고,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드뷔시가 에튀드(1915)로 다시 한 번 장르를 갱신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Op. 39는 이 흐름의 마지막 봉우리 중 하나입니다. 이후 20세기 피아노 에튀드는 리게티, 메시앙 같은 현대 작곡가들의 손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고도로 발전된 낭만주의 화성과 극도로 피아니스틱한 기교의 결합. Op. 39가 그 마지막 대형 기념비인 셈입니다.

재미있는 건,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이 시기 이후 피아니즘이 나아간 방향을 내심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바르토크로 이어지는 20세기 음악에 라흐마니노프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음악이 ‘시대에 뒤처진 낭만주의’라는 비판을 받은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어떤 음악이 살아남았는지는 분명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스트리밍 시대에도 가장 많이 재생되는 클래식 가운데 하나거든요.

Op. 39의 두 가지 해석 방향

이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첫 번째는 ‘그림 음악’으로 듣는 방식입니다. 각 에튀드에 붙은 이미지, 바다와 갈매기, 분노의 날, 빨간 모자와 늑대를 실제로 상상하면서 듣는 거죠. 라흐마니노프가 부여한 이미지가 있는 곡에서는 이 방식이 청취에 도움이 됩니다. 6번을 들을 때 늑대와 아이의 추격전을 떠올리면, 음악의 구조가 왜 이런지 자연스럽게 납득되거든요.

두 번째는 ‘순수 음악’으로 듣는 방식입니다. 이미지를 걷어내고, 화성의 흐름, 리듬의 변화, 피아니즘 자체에 집중하는 겁니다. 이 접근에서 Op. 39는 19세기 후반 낭만 피아노 음악의 결정체가 됩니다. 특히 화성 면에서 Op. 39는 대담합니다. 반음계적 진행, 예상치 못한 전조, 불협화음의 해소 방식. 이런 요소들이 단순히 그림 묘사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음악 언어 자체로서 흥미로운 까닭입니다.

어느 쪽이 옳냐는 질문에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대답을 거부했습니다. 그림을 밝히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방식으로 들어도, 이 음악은 충분히 풍부합니다.

왜 지금도 연주되는가

라흐마니노프가 죽은 지 80년이 넘었지만, Op. 39는 여전히 세계 주요 피아니스트들의 레퍼토리에 들어 있습니다. 이유가 분명합니다.

우선, 기술적 도전으로서의 가치. Op. 39는 피아노 연주의 거의 모든 고난도 기술을 포함하고 있어, 실력을 보여주는 레퍼토리로 최상급입니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드물지 않게 등장하죠.

다음으로, 음악적 내용의 밀도입니다. 아홉 곡 각각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연주자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곧 개성이 됩니다. 루간스키, 아쉬케나지, 키신의 녹음을 비교해서 들으면 같은 음표가 얼마나 다르게 울리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청취자와의 직접적인 소통. Op. 39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냅니다. 1번의 폭풍, 2번의 서정성, 6번의 추격전은 배경 지식 없이도 전달되거든요. 이게 이 음악이 시대를 건너 계속 연주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 녹음

니콜라이 루간스키 (Naxos, 2001)

현재 시점에서 Op. 39 전곡 녹음의 기준점이라 할 만합니다. 루간스키는 라흐마니노프 스페셜리스트답게 각 에튀드의 성격을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폭발적인 구간에서도 소리가 뭉개지지 않고, 서정적인 2번에서는 진짜 노래합니다. 입문용으로도, 비교 청취용으로도 가장 추천할 만한 녹음입니다.


Play: Yuja Wang – Rachmaninov: Etudes Tableaux Op. 39, No. 1 in C-Minor (Live at Philharmonie, Berlin)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Decca, 1983)

아쉬케나지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독주 전집을 남긴 사람입니다. Op. 39 역시 그 전집의 일부인데,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합니다. 루간스키보다 감정적으로 절제되어 있어서, “차갑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절제가 Op. 39의 어두운 분위기를 더 섬뜩하게 만드는 면도 있습니다. 어두운 곡들이 화려하지 않게, 조용하게 무겁게 다가오거든요.

에프게니 키신 (RCA Victor, 1988, 선곡)

키신은 이 녹음을 15세에 남겼습니다. 전곡이 아니라 선곡(1, 2, 4, 5, 6, 9번)이지만, 특히 6번 ‘빨간 모자와 늑대’는 지금도 이 곡의 최고 연주로 꼽힙니다. 어른도 소화하기 힘든 기교를 중학생 나이에 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이죠. 1번의 폭발력과 2번의 섬세함도 15세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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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Op.39는 어떤 곡인가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1916–1917년에 작곡한 피아노 독주 에튀드(연습곡) 모음집으로, 총 9곡입니다. ‘에튀드-타블로(Étude-tableau)’란 ‘회화적 연습곡’, 곧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연습곡이라는 뜻이죠. 기술적으로 극도로 어려우면서도 강렬한 서사를 품고 있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음악 가운데 최고 난이도이자 최고 예술성을 갖춘 작품으로 꼽힙니다.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를 떠나기 직전에 완성한 마지막 피아노 독주 모음집이기도 합니다.

회화적 연습곡 Op.39는 어떤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라흐마니노프 본인은 각 곡의 이미지를 청중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관현악 편곡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전해받은 정보가 남아 있죠. 1번은 ‘바다’, 2번은 ‘바다와 갈매기’, 3번은 ‘분노의 날(Dies irae)’, 4번은 ‘죽어가는 새들’, 6번은 ‘빨간 모자와 늑대’라는 이미지입니다. 나머지 곡들의 이미지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에, 청취자마다 자기만의 그림을 상상하며 듣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회화적 연습곡 Op.39를 처음 들을 때 어떤 곡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1번(Allegro agitato, c단조)부터 시작하길 권합니다. 파도가 쏟아지듯 몰아치는 첫 곡이 Op. 39의 세계로 단번에 끌어당기거든요. 이어서 2번(Lento assai, a단조)을 들으면 갑작스러운 서정에 숨이 멎을 겁니다. 기교적으로 가장 유명한 6번 ‘빨간 모자와 늑대’도 놓치면 안 됩니다. 9번까지 순서대로 전곡을 들으면 40분 남짓인데, 처음에는 1, 2, 6번만 먼저 들어보고 전곡에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왜 Op.39를 마지막 피아노 독주 모음집으로 남겼나요?

Op. 39를 완성한 1917년 말, 러시아 혁명이 터졌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를 영구히 떠났죠. 이후 미국에서 교향곡, 협주곡, 변주곡 등을 썼지만 피아노 독주 소품집은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고향과 생활 기반을 잃은 망명 생활이 창작 방향을 바꾼 것으로 연구자들은 봅니다. Op. 39에 그의 러시아 마지막 창작 에너지가 응축돼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Op.39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전곡 입문에는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Naxos(2001) 녹음이 가장 균형 잡힌 선택입니다. 정갈하고 정확한 연주를 원한다면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Decca(1983) 전집도 좋습니다. 선곡 연주 가운데서는 에프게니 키신의 RCA(1988) 녹음을 꼽아야 하는데, 특히 6번 ‘빨간 모자와 늑대’에서 폭발적이거든요. 이 세 녹음을 비교하면 같은 음악이 연주자마다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 바로 체감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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