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불면증 처방으로 받은 변주곡이 음악사를 뒤집은 방식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작품명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Goldberg Variations, BWV 988)
작곡 연도
1741년 출판 (작곡 시기 1741년 전후 추정)
편성
2단 건반 하프시코드 (현재는 피아노 연주 병행)
구성
아리아(Aria) + 30개 변주곡 + 아리아 다카포
연주 시간
약 40–80분 이상 (연주자·반복 선택에 따라 상이)
초판 출판
1741년, 발타자르 슈미트 출판 (뉘른베르크, 독일)

이 곡은 — 아리아 하나의 베이스 라인 위에 30개의 변주를 쌓아 올린, 바흐 만년의 건반 음악 집대성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제25변주 ‘검은 진주’. 가장 느리고 깊은 단조 변주로, 우아하던 아리아가 슬픔으로 번지는 대목입니다.

첫 음반 — 글렌 굴드, 1955, Columbia Masterworks (22세 데뷔작).

한 늙은 권력자가 매일 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우던 그는 자신의 집에 머물던 14세 소년 연주자에게 애타게 부탁했죠. “내가 잠들 수 있게 그 건반 좀 쳐다오.” 소년이 밤마다 연주했던 그 얌전한 자장가가 훗날 음악사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바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기가 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감동적인 스토리가 날조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죠. 바흐가 죽고 52년이나 지난 뒤에야 어떤 전기 작가의 책에 뜬금없이 등장한 일화거든요. 심지어 악보 초판에는 그 백작에게 바친다는 헌정 문구조차 단 한 줄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 여부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 그럴듯한 불면증 전설 덕분에 이 곡은 수백 년간 ‘인류 최고의 수면 유도 음악’으로 불티나게 소비됐으니까요. 1955년 이 얌전한 자장가를 산산조각 낸 미치광이 천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목차

전설이 탄생한 밤: 카이저링 백작과 소년 골드베르크

1741년 라이프치히. 러시아 외교관 카이저링 백작은 극심한 불면증 환자였습니다. 마침 그의 집에는 바흐에게 음악을 배우던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라는 14세 천재 소년이 머물고 있었죠. 백작은 바흐에게 매달렸습니다. “잠 안 오는 밤에 들을 만한 조용하고 밝은 건반 곡 좀 써주시오.”

바흐는 하필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변주곡’ 카드를 슬쩍 꺼내 듭니다. 똑같은 화성 하나를 우려먹으며 30개의 완전히 다른 곡을 뽑아내야 하니 작곡가 입장에선 지루하고 고된 노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에게 미친 도전을 던져보기로 마음먹은 듯합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곡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백작은 황금 술잔에 프랑스 금화(루이도르) 100개를 꽉꽉 채워 바흐에게 안겼죠. 요즘 시세로 치면 억대 저작권료를 일시불로 당겨 받은 셈입니다. 바흐 평생에 이토록 두둑한 보너스를 챙긴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백작은 잠이 안 올 때마다 소년을 불렀습니다. “골드베르크 내 변주곡 좀 쳐다오.” 이 한마디에 소년의 이름이 곡 제목으로 영원히 박제되고 말았죠. 바흐 나이 56세 자신의 건반 음악 시리즈를 집대성한 야심작은 이렇게 ‘불면의 밤을 달래는 BGM’이라는 얄궂은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바흐의 자필보는 없다: 악보 전달의 기묘한 역사

이야기가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이 곡이 품고 있는 소름 돋는 미스터리를 하나 짚고 가야겠습니다. 사실 바흐가 직접 그린 원본 악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든요. 우리가 아는 악보는 출판업자가 동판에 판화처럼 새겨 찍어낸 초판본들뿐이었습니다.

엘리아스 고틀로프 하우스만, 바흐 초상화 (1748)
1748년 하우스만이 그린 바흐 초상화. 바흐가 말년에 작업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건반 음악 집대성으로 꼽힌다.

그런데 1974년 프랑스에서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터집니다. 바흐가 직접 빨간펜(?)으로 교정을 보고 메모를 남긴 ‘개인 소장용 초판본’이 뜬금없이 발견된 것이죠. 더 기가 막힌 반전은 그 악보 맨 뒷장에 숨어 있었습니다. 바흐가 심심풀이로 무심하게 끄적여 놓은 14개의 미발표 캐논(돌림노래)이 2세기 넘게 지난 뒤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말끔한 출판본만 봐서는 평생 짐작조차 못 했을 바흐의 비밀스러운 음악이 2세기 넘게 지난 뒤 비로소 새로 드러난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1955년의 충격: 스물두 살 청년이 뒤집어버린 것

다시 시간은 흘러 1955년. 스물두 살의 캐나다 청년 글렌 굴드가 데뷔 앨범으로 이 곡을 덥석 고르자 소속사는 경악하고 맙니다. “하필 그 길고 지루한 수면제를?”

굴드가 내놓은 연주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남들이 명상 음악처럼 조용히 치던 곡을 그는 재즈 즉흥 연주처럼 미친 속도로 때려 박았습니다. 피아노에 코가 닿을 만큼 의자를 바닥까지 한껏 낮추고 연주 내내 이상한 허밍(흥얼거림)까지 섞었죠. 이 괴상한 앨범은 클래식 차트를 넘어 대중음악 시장까지 집어삼키는 초대박을 칩니다. 아무도 바흐를 이렇게 힙하게 연주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더 소름 돋는 서사는 26년 뒤에 비로소 완성됩니다.

1981년 쉰 살이 된 굴드는 이 곡을 다시 녹음합니다. 1955년의 폭주 기관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죠. 템포는 숨 막히게 느려졌고 음과 음 사이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으며 마치 삶을 관조하는 노인의 독백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녹음을 남긴 이듬해 가을 굴드는 뇌졸중으로 홀연히 세상을 떠납니다. 똑같은 곡 똑같은 피아니스트 그러나 완전히 달라진 26년의 시간. 이 두 앨범을 번갈아 들으면 한 인간의 강렬했던 출발과 쓸쓸한 마지막을 나란히 마주하게 됩니다.

아리아와 30개의 변주: 구조를 알면 달라지는 청취

이 곡은 얼핏 들으면 한없이 복잡해 보이지만 그 설계도를 알고 나면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다가옵니다. 바흐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그야말로 미친 건축가였거든요.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초판 표지 (1741)
1741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된 골드베르크 변주곡 초판 표지. 원제는 ‘클라비어 연습곡집 제4부(Clavier-Übung IV)’였다.

시작은 ‘아리아(Aria)’입니다. 느리고 장식이 많은 무척이나 우아한 멜로디죠. 그런데 바흐는 30개의 변주곡 내내 이 예쁜 멜로디를 단 한 번도 재활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리아의 ‘반주(베이스 라인과 화성)’만을 뼈대로 삼았죠. 똑같은 철골 구조 하나를 세워두고 그 위에 한옥, 양옥, 아파트, 빌라 등 30채의 완전히 다른 건물을 기어코 지어 올렸습니다.

3번마다 등장하는 캐논의 비밀

이 30개의 건물 사이에는 아주 치밀한 규칙이 숨어 있습니다. 3번, 6번, 9번… 이렇게 3의 배수마다 어김없이 ‘캐논(Canon)’이 등장하거든요. 네, 우리가 잘 아는 그 ‘돌림노래’ 맞습니다. 처음엔 같은 음에서 돌림노래를 시작하다가 다음엔 한 음 위, 그다음엔 두 음 위로 간격을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벌려 나갑니다.

캐논 다음에는 어김없이 춤곡(4번, 7번 등)이 나오고 그다음엔 손가락이 꼬일 듯이 빠른 기교파 곡(5번, 8번 등)이 이어지죠. [캐논 – 춤곡 – 기교]라는 이 완벽한 3박자 패턴이 끝까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입니다.

30번 변주: 바흐의 농담

자, 이 지독한 패턴대로라면 마지막 30번 변주는 당연히 ‘10도 간격의 돌림노래’여야 마땅하겠죠. 그런데 여기서 바흐는 갑자기 악보에 당시 유행가를 들이부어 버립니다.

이른바 ‘콰지리벳(Quodlibet, 짬뽕곡)’입니다. 당시 유행하던 민요 두 곡을 냅다 섞어버렸는데 그 가사가 참 기가 막힙니다. “오랫동안 널 못 봤네~” 하는 애틋한 노래에 “양배추랑 무만 먹었더니 고기 냄새가 안 나잖아!”라는 시골 아재 개그를 동시에 연주하거든요. 가장 엄숙하고 수학적인 건축물의 꼭대기에 뜬금없이 개그 깃발을 떡하니 꽂아버린 바흐의 뻔뻔함에 헛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입니다.

단조로 빠져드는 세 변주

30곡 내내 밝은 G장조로 쾌속 질주하던 음악이 딱 세 번, G단조로 뚝 떨어지며 분위기가 확 어두워집니다. 15번, 21번, 25번이죠.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이 짧은 단조 구간들은 곡 전체에 아찔할 만큼 깊은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2단 건반의 묘기

바흐는 11개의 변주에 “반드시 건반이 2개 달린 하프시코드로 쳐라”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습니다. 위아래 건반에서 양손이 쉴 새 없이 교차해야 하거든요. 건반이 하나뿐인 현대의 피아노로 이걸 치려면요? 연주자의 두 손이 꽈배기처럼 꼬이는 대참사를 온전히 감수해야 합니다. 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을 치다가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이유가 다 여기 있죠.

30개의 변주, 하나하나의 얼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꼬박 들으면 대략 50분에서 80분이 걸립니다. 연주자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거든요. 굴드의 1955년 녹음은 38분 만에 후다닥 끝나고 같은 굴드의 1981년 녹음은 51분을 넘깁니다. 그 긴 시간 동안 32개의 악장(아리아 + 30개 변주 + 아리아 다 카포)이 쉼 없이 밀려옵니다. 밝고 가벼운 춤곡이 있는가 하면 숨이 멎을 만큼 느리고 어두운 곡도 있고 두 손이 미친 듯이 건반을 가로지르는 곡도 섞여 있죠. 하나하나 성격이 어쩜 그리 전부 다른지 모릅니다. 그래서 비슷한 성격끼리 여섯 덩어리로 묶어 들으면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아리아와 첫 세 걸음 (Aria + Var.1–3)

모든 것은 아리아에서 시작합니다. 이 선율은 사라방드 리듬 위에 장식음이 촘촘하게 얹혀 있어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고 느린 곡처럼 들리죠. 하지만 이건 앞으로 펼쳐질 30개 변주의 완벽한 설계도 역할을 합니다. 아리아의 베이스라인 ― 32개 음표로 이루어진 하행 패턴 ― 이 곡 전체를 거대한 기둥처럼 떠받치니까요. 위에 사뿐히 올라앉은 멜로디가 아니라 바닥에 무겁게 깔린 저음이 이 곡의 진짜 주인공인 겁니다.

제1변주에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확 바뀝니다. 경쾌한 3/4박자에 양손이 번갈아 폴짝 뛰어오르는데 마치 굳게 닫혀있던 무대 막이 올라가면서 눈부신 조명이 확 켜지는 느낌이죠.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를 쫓듯 상행하는 음형이 반복되면서 순식간에 에너지가 치솟습니다. 아리아의 고요함 직후에 들이닥치는 이 통통 튀는 경쾌함 덕분에 “아, 이제 진짜 뭔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벅찬 기대감이 피어오릅니다.

제2변주는 두 성부가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조용한 대화 같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베이스라인이 대체 어떻게 변주를 빚어내는지 가장 또렷하게 들여다보이는 곡이기도 하죠. 저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아리아에서 들었던 바로 그 하행 패턴이 여전히 묵묵하게 바닥을 기어가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제3변주에서 드디어 첫 번째 캐논이 등장합니다. 동도(같은 높이)의 캐논 ― 한 성부가 먼저 시작하면 다른 성부가 똑같은 높이에서 딱 한 마디 늦게 졸졸 뒤따라오는 얄미운 구조죠. 이 캐논이 3곡마다 어김없이 한 번씩 돌아온다는 사실은 위에서 이미 다뤘으니 여기서는 딱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이 처음 세 곡은 바흐가 지어 올린 거대한 건축물의 웅장한 현관이라는 사실을요. 천천히, 그러나 아주 확실하게 그 육중한 문이 열리고 있는 겁니다.

4번에서 9번까지: 춤과 대화의 방들 (Var.4–9)

이 구간은 깐깐한 바흐가 가장 다정한 얼굴을 슬쩍 꺼내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제4변주는 소박한 파사피에(빠른 미뉴에트풍 춤곡)인데 네 성부가 번갈아 모자를 벗고 인사하듯 한 마디씩 사뿐하게 주고받죠. 그저 치기 쉬운 곡이라고 방심하면 곤란합니다. 이 안에도 뼈대인 베이스라인은 무서울 만큼 정확히 살아 있거든요. 귀에 쏙 들어오는 춤 리듬 저 아래로 아리아의 저음이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걸 듣다 보면 이 양반의 설계가 얼마나 소름 돋게 정교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5변주부터는 슬슬 속도계가 올라갑니다. 양손이 건반 위를 널뛰듯 넘나드는 교차 주법이 여기서 처음 본격적으로 등장하죠. 애초에 하프시코드의 두 단 건반을 전제로 깔고 쓴 대목이라 이걸 건반이 하나뿐인 피아노로 치면 서서히 손가락이 꼬이기 시작하는 마의 구간이기도 합니다. 하프시코드 연주와 피아노 연주를 번갈아 들어보면 토씨 하나 안 틀린 같은 악보가 악기에 따라 얼마나 기막히게 다른 질감으로 다가오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제7변주는 지그(gigue) 리듬을 타고 발장단이 저절로 나오는 흥겨운 춤곡입니다. 바로크 모음곡의 대미를 장식하던 이 피날레 리듬을 변주곡 한가운데에 떡하니 꽂아 넣다니 바흐가 변주곡이라는 큰 껍데기 안에 작은 모음곡 하나를 얄밉게 숨겨둔 셈이죠. 시칠리아나풍의 부드러운 리듬이 찰랑대며 흘러나오면 듣는 이의 몸도 절로 살짝 흔들리고 맙니다.

이 구간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제6변주와 제9변주 두 개의 캐논이 챙겨갑니다. 6번은 2도 간격 캐논 9번은 3도 간격 캐논인데 이 숫자가 차근차근 올라갈수록 두 성부 사이의 음정 거리도 가차 없이 벌어지거든요. 6번에서는 선율이 귓가 바로 옆에서 소곤대는 듯하다면 9번에서는 한 성부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던진 소리를 메아리처럼 산뜻하게 받아치는 느낌입니다. 두 곡을 나란히 붙여놓고 비교해 보면 캐논의 ‘간격’이라는 놈이 음악의 채도를 어떻게 쥐락펴락하는지 귀에 쏙쏙 박힙니다.

10번에서 15번까지: 한가운데의 전환점 (Var.10–15)

제10변주는 4성부 푸게타(작은 푸가)입니다. 앞서 한껏 뽐내던 우아한 춤곡 분위기가 여기서 싹둑 끊어지고 갑자기 돋보기를 쓴 학구적인 바흐가 불쑥 튀어나오죠. 엄격한 대위법이 건반 위를 숨 막히게 빽빽하게 채워 나가는데 마치 “나 진지한 작곡가 맞다니까” 하고 꽝꽝 도장을 찍어대는 꼴입니다. 네 개의 성부가 차례차례 주제를 이어받으며 탑을 쌓아 올리는 과정을 멍하니 따라가다 보면 음악이 건축이라는 고루한 비유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거든요.

제11변주와 제12변주로 넘어가면 꽉 막혔던 숨통이 다시 확 트입니다. 11번은 빠른 토카타풍으로 손가락이 건반 위를 통통 튕기며 날아다니는 화려한 곡이고 12번은 4도 간격 캐논인데 여기 아주 고약한 장치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선율이 아예 뒤집혀서(반행) 진행하거든요. 방금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던 선율이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니 마치 바닥에 거울을 깔아놓고 음악을 데칼코마니처럼 비추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피어오르죠. 캐논을 향한 바흐의 지독한 집착이 이쯤 되면 무서울 정도입니다.

제13변주는 이 빽빽한 구간에 툭 떨어져 있는 숨은 보석입니다. 느린 사라방드 리듬 위로 아주 섬세한 장식음이 구름처럼 길게 흘러가는데 맨 처음 만났던 아리아의 짙은 서정성이 낯선 옷을 차려입고 훌쩍 돌아온 느낌이죠. 앞뒤로 땀내 나는 기교파 곡들이 험악하게 도열해 있는 와중에 오직 이 곡만이 처연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차분하게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면 그 화려한 장식음 너머로 옛 아리아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15변주. 곡 전체에서 처음으로 G단조가 서늘하게 고개를 내미는 순간입니다. 밝게 쏟아지던 G장조 세계에 갑자기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이 변주에 대해서는 앞선 ‘단조로 빠져드는 세 변주’ 섹션에서 입 아프게 다뤘으니, 여기서는 딱 한 가지만 더 얹고 넘어가겠습니다. 바로 이 슬픈 곡조차 5도 간격 캐논이라는 사실이죠. 바흐는 이토록 비통한 순간에조차 차가운 수학적 구조를 억척스럽게 쥐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감정과 기계적인 설계가 동시에 아찔한 극점을 찍어버리는 순간이거든요.

16번에서 21번까지: 서곡이 열리고 그림자가 드리운다 (Var.16–21)

제16변주는 이 기나긴 여정의 정확히 절반을 가르는 반환점입니다. 놀랍게도 바흐는 이 한가운데에 버젓이 프랑스풍 서곡을 들이밀었습니다. 느리고 장엄하게 바닥을 긁는 도입부 그리고 곧장 바통을 이어받아 내달리는 빠른 푸가는 아주 노골적인 전형적 프랑스 서곡 양식이거든요. 서곡 특유의 엇박자 부점(점 붙은 리듬) 패턴이 묵직하게 쿵쾅거리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 드디어 후반부가 막을 올렸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차리게 됩니다. 30개의 변주가 꼬박 두 막짜리 연극이라면 이 곡은 기세 좋게 2막을 알리는 거창한 나팔 소리인 셈입니다.

17번과 18번은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는 후반부의 활기찬 출발선입니다. 17번은 양손이 번쩍번쩍 교차하는 쾌감 터지는 토카타이고 18번은 6도 간격 캐논이죠. 6도쯤 되면 두 성부 사이의 거리가 제법 아득하게 벌어집니다.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듯 딴청을 피우는데도 가만 들어보면 기가 막히게 서로 발을 맞추고 있죠. 저 멀리 뚝 떨어져서 걸어가면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얄미운 이중주를 보는 기분입니다.

19번과 20번의 극단적인 온도 차이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19번은 미뉴에트풍의 한없이 단순한 3성부 곡이라 앞뒤로 몰아치는 험악한 손가락 곡예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오아시스 노릇을 톡톡히 하죠. 그런데 바로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제20변주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토카타입니다. 양손이 미친 듯이 32분음표를 우박처럼 쏟아내며 건반 위를 미끄러져 질주하는데 그제야 앞 곡의 꿀 같던 휴식이 이 어마어마한 폭발을 터뜨리기 위한 얄팍한 밑밥이었음을 뒤통수 맞듯 깨닫게 되죠. 곡을 이어 붙이는 바흐의 치밀한 솜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21변주, 두 번째 단조 변주입니다. 7도 간격 캐논이면서 G단조죠. 앞선 15번의 슬픔이 한 겹 더 깊어진 버전인데, 반음계적 하행이 곡 전체를 관통하며 짙은 탄식을 뱉어내는 듯한 분위기를 빚어냅니다. 이 곡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역시 ‘단조로 빠져드는 세 변주’ 섹션에서 이미 다뤘으니 여기서는 그 얄궂은 위치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후반부에 접어들자마자 어김없이 또 한 번 어둠이 덮쳐온다는 것, 그리고 그 어둠이 치밀한 바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구조적 필연이었다는 사실을요.

22번에서 27번까지: 빛나는 기교, 깊어지는 감정 (Var.22–27)

바야흐로 후반부의 핵심 구간입니다. 제22변주는 알라 브레베(2/2박자) 스타일로 첫발을 떼는데, 온음표와 2분음표가 아주 느긋하게 걸어가며 짙은 바로크 교회음악의 향기를 풍기거든요. 코랄 전주곡을 단박에 떠올리게 하는 무척이나 경건한 분위기죠. 눈 돌아가게 화려한 기교곡들 틈바구니에 이런 곡이 시치미 뚝 떼고 끼어 있다는 게 바로 골드베르크의 묘미입니다. 바흐는 결코 한 가지 색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23번으로 넘어가면 곧장 판이 뒤집힙니다. 빠른 스케일과 병행 3도·6도 진행이 그야말로 불꽃 튀게 펼쳐지며 양손이 건반 전체를 미친 듯이 누비는 비르투오소 곡이거든요. 연주자의 기교가 유난히 노골적으로 밑천까지 드러나는 변주인데, 넋 놓고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꼼지락거릴 지경이죠.

제24변주는 8도 간격 캐논입니다. 옥타브 차이로 똑같은 선율이 겹쳐서 흘러나오면 신기하게도 소리의 공간감이 확 넓어지거든요. 마치 텅 빈 대성당 안에서 청아한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 한 음 한 음이 넉넉하게 공간을 채워 나갑니다. 게다가 이 캐논은 아주 목가적인 8분의 9박자로 쓰여 있어서 뼈대는 기술적으로 숨 막히게 정교한데 듣기에는 그저 편안하기 짝이 없죠. 그냥 긴장을 탁 풀고 귀를 내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25변주, 이른바 ‘흑진주’가 등장합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G단조 변주이며 골드베르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깊은 감정의 심연으로 뚝 떨어지는 곡이죠. 앞선 별도 섹션에서 입이 닳도록 다뤘으니 굳이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딱 한 가지만 기억해 두시죠. 이 곡 바로 뒤통수에 붙어 오는 26번과 27번이 유난히도 쨍하게 밝고 화려하게 들린다면, 그건 전적으로 25번의 지독한 어둠이 깔아놓은 기막힌 대비 효과 덕분입니다. 짙은 어둠을 통과한 뒤에 쏟아지는 빛일수록 눈이 시리게 강렬한 법이거든요.

제26변주는 사라방드 리듬 위로 아주 빠른 장식 음형이 겹쳐 돌아가는 이중 시간 구조가 돋보입니다. 묵직하게 느린 박자와 쏜살같이 빠른 선율이 얄궂게도 동시에 흘러가서, 마치 시간이 두 겹으로 포개져 흐르는 듯한 묘한 감각을 선사하죠. 뒤를 잇는 제27변주는 드디어 마지막 캐논, 9도 간격입니다. 동도에서 출발해 한 칸씩 지독하게 벌어져 온 캐논의 간격이 마침내 9도에 닿아 덜컥 멈춰 서거든요. 기나긴 하나의 수열이 완성되는 경이로운 순간이니, 이걸 알고 들으면 남모를 벅찬 감회가 차오릅니다. 심지어 든든한 베이스조차 다 떼어내고 오직 두 목소리만 덩그러니 남는 순수한 2성부 캐논이라는 점도 아주 인상적이죠. 가장 마지막 캐논이 역설적으로 가장 투명하고 시린 소리를 내는 겁니다.

28번에서 끝까지: 쿠오들리벳, 그리고 귀환 (Var.28–30 + Aria)

드디어 대단원이 코앞입니다. 제28변주와 제29변주는 그야말로 기교의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워 올리죠. 28번은 눈 돌아가게 빠른 트릴 연쇄가 건반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채우는 곡인데, 양손이 번갈아 가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트릴을 쳐대야 하니 연주자의 손가락 지구력이 비명을 지르며 한계에 다다르는 얄궂은 지점입니다. 29번은 장대한 화음과 스케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남은 에너지를 끝끝내 밀어붙입니다. 이 두 곡을 숨죽여 연속으로 듣노라면 마치 마라톤 결승선 코앞에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는 막판 스퍼트를 지켜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제30변주, 쿠오들리벳(Quodlibet)입니다. 깐깐한 바흐는 이 무시무시한 대작의 가장 마지막 변주에 당대 유행하던 민요 두 곡을 슬쩍 끌어들였습니다. “Ich bin so lang nicht bei dir g’west(오랫동안 너를 못 만났구나)”와 “Kraut und Rüben haben mich vertrieben(양배추와 순무가 날 쫓아냈다)” ― 참으로 골때리는 이 두 선율을 골드베르크의 베이스라인 위에 기가 막히게 교묘하게 얹어 결합한 겁니다. 이 파격적인 배신(?)에 대해서는 앞선 ’30번 변주: 바흐의 농담’ 섹션에서 신나게 다뤘으니 여기서는 딱 하나만 짚고 넘어가죠. 그토록 숨 막히게 엄격한 30곡의 변주를 실컷 돌려놓고서 막판에 뜬금없이 시골 민요나 흥얼거리며 끝을 맺다니, 이건 누가 봐도 작정하고 던진 유머거든요. 300년 전 깐깐한 바흐의 유머가 지금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는 게 새삼 놀랍지 않습니까.

진짜 마지막은 아리아 다 카포(Aria da Capo)입니다. 맨 처음에 흘러나왔던 바로 그 아리아가 꼬장꼬장하게 음표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짐을 싸 들고 돌아오죠. 악보를 들이대고 보면 완벽하게 토씨 하나 안 틀린 같은 음악입니다. 하지만 눈보라 치는 30개의 변주를 기어코 통과해 낸 귀로 듣는 이 아리아는 무서울 만큼 전혀 다른 곡처럼 울려 퍼집니다. 똑같은 음표인데 그걸 받아내는 우리의 귀가 달라져 버린 셈이죠.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털썩 주저앉은 집이 예전과 같으면서도 어딘가 아득하게 낯설어 보이는 것처럼, 아리아는 말없이 처음 자리로 사뿐히 내려앉아 이 거대한 작품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어쩌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남기는 가장 짙은 여운은, 그 요란하고 화려했던 변주들이 아니라 바로 이 아득한 마지막 고요함에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변주곡이라는 형식 자체를 다시 쓰다

흔히 ‘변주곡’이라고 하면 아이돌 댄스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살짝 비틀어 편곡하는 정도를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바흐가 변주곡이라는 장르 자체를 그토록 극혐했던 이유도 다름 아닌 이런 ‘단순한 겉멋 치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이 지독한 양반은 이 작품 하나로 변주곡의 룰 자체를 아주 가루로 빻아버렸습니다. 알맹이인 멜로디는 과감하게 걷어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뼈대(화성)’만 달랑 남긴 채, 그 빈터 위에 푸가, 춤곡, 서곡 등 온갖 장르를 그야말로 자비 없이 때려 박았거든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브람스의 ‘헨델 변주곡’ 같은 어마어마한 역사적 명곡들이 모조리 이 골드베르크의 독한 유전자에서 태어났습니다. 변주곡의 역사는 감히 골드베르크 이전과 이후로 쪼개진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죠.

하프시코드인가, 피아노인가

원래 이 곡의 진짜 안주인은 다름 아닌 ‘하프시코드’입니다. 그런데 유튜브 검색창에 이 곡을 두드려보면 십중팔구 건반 흑백이 선명한 피아노 연주만 줄줄이 쏟아져 나오죠. 이 사태의 주범은 앞서 입이 닳도록 말한 글렌 굴드입니다. 굴드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워낙 전무후무한 대히트를 쳐버리는 바람에 어느새 피아노가 정답인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것입니다.

글렌 굴드 (1961)
1955년 데뷔 앨범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택해 클래식 음악계를 뒤집어놓은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1981년 재녹음 역시 전설로 남아 있다.

사실 두 악기는 아예 타고난 종족 자체가 다릅니다.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아무리 주먹으로 쾅쾅 내리쳐도 얄밉게 볼륨이 똑같거든요. 피아노처럼 능수능란하게 ‘강약’을 조절해 감정을 쥐어짜는 짓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대신 기계 부품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리듬감이 그야말로 미쳤죠. 바흐가 머릿속으로 철저하게 계산하고 의도한 오리지널 사운드가 바로 이 냉혹한 소리입니다.

반면 피아노로 치게 되면 셈여림을 자유자재로 주무를 수 있게 됩니다. 원래 악보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연주자 고유의 해석과 끈적한 감정도 훨씬 짙게 묻어나죠.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서늘한 쾌감을 원한다면 하프시코드 연주를,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감정의 진폭에 올라타고 싶다면 피아노 연주를 맛보시길 권합니다. 워낙 뼈대 자체가 무식할 정도로 튼튼해서 현악 4중주나 헐렁한 재즈로 마구 편곡해 버려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기막힌 명곡이니까요.

25번 변주, ‘흑진주’: 이 곡의 심장부

만약 골드베르크를 난생처음 듣는 분에게 딱 한 곡만 콕 집어드려야 한다면 무조건 ‘25번 변주’를 밀겠습니다.

30곡을 통틀어 유일하게 ‘아다지오(Adagio, 아주 느리게)’ 지시어가 떡하니 붙어 있는 곡이거든요. 오죽하면 별명부터가 시꺼먼 ‘흑진주(Black Pearl)’이겠습니까. 한없이 어둡고 짓누르듯 무거우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굴드가 죽기 직전인 1981년 녹음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템포는 그야말로 심정지 직전까지 기괴하게 느려지죠.

더 소름 돋는 건 이 곡의 악랄한 배치입니다. 25번 바로 앞의 24번 변주는 피도 눈물도 없이 맞아떨어지는 수학적 계산의 끝판왕(9도 캐논)이거든요. 기계처럼 냉혹하기 짝이 없는 곡을 치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뼈저리게 슬프고 인간적인 25번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치는 겁니다. 극강의 차가운 이성에서 극강의 뜨거운 감성으로 냅다 밀어붙이는 바흐의 밀당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죠.

아리아가 두 번 등장하는 이유

징글징글한 30번의 변주가 모두 끝나고 나면 악보 맨 끝머리에는 이렇게 무심하게 적혀 있습니다. ‘Aria da Capo e fine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가서 끝내라)’.

하프시코드 (Ruckers & Taskin)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할 당시 사용된 악기, 2단 건반 하프시코드. 피아노와 달리 강약 조절이 불가능하다.

처음에 얌전하게 들었던 바로 그 멜로디가 거짓말처럼 똑같이 다시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전혀 다른 낯선 곡처럼 들리거든요. 멜로디가 몰래 바뀐 게 아니라 30개의 변주를 가로지르며 흠씬 두들겨 맞은 우리의 듣는 귀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길고 험난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텅 빈 방이 어딘가 아득하게 낯설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그 먹먹한 경험과 기가 막히게 비슷하죠. 출발한 바로 그곳으로 조용히 돌아와 끝을 맺는 이 소름 돋게 완벽한 ‘수미상관’의 구조는 후대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의 폭탄을 던졌습니다.

참고로 맨 처음 아리아를 들을 때 무진장 화려하게 꺾여 들어가는 장식음들은 연주자가 기분 내서 넣은 애드리브가 절대 아닙니다. 깐깐한 바흐가 악보에 일일이 집요하게 그려 넣은 ‘필수 옵션’이거든요. 물론 빌헬름 켐프 같은 독불장군 거장은 “난 그런 치장 다 떼버리고 쌩얼로 칠래”라며 꿋꿋하고 담백하게 연주해 버린 얄미운 사례도 있긴 합니다.

숫자로 읽는 골드베르크: 설계의 정밀함

여기까지 오면 이 곡이 한 편의 지독하게 치밀한 스릴러 영화 같지 않으십니까? 숫자로 앙상하게 요약하면 대강 이렇습니다.

30개 변주 = 10 x 3. (3곡 단위의 톱니바퀴 같은 완벽한 패턴이 10번이나 지독하게 반복됩니다)

G장조 27개 + 단조 3개 = (오직 15, 21, 25번에서만 예고도 없이 분위기가 등골 서늘하게 싸해집니다)

2단 건반 지정 11개 = (피아니스트들의 애먼 손가락이 꽈배기처럼 꼬여버리는 지옥의 마의 구간이죠)

캐논 9개 = (3의 배수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름 돋는 돌림노래죠)

30번은 유행가 짬뽕 = (가장 완벽하고 깐깐한 구조 위에서 뻔뻔하게 터뜨린 바흐의 개그거든요)

연주 시간 38분 ~ 80분 = (완벽히 같은 악보인데 연주자 맘대로 시간이 두 배나 고무줄처럼 징그럽게 늘어납니다)

이렇게 숨 막히게 완벽한 곡인데도 바흐 사후 200년 가까이 이 곡은 서고에서 뽀얗게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1955년 굴드가 나타나 미친 듯이 심폐소생술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2012년에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 음원(Open Goldberg)으로 시원하게 풀리기까지 했습니다. 300년 전 두둑하게 돈 받고 판 수면제가 이제 전 인류가 누리는 무료 공공재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왜 지금도 이 음악인가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가 유유히 탈출하는 핏빛 씬. 그리고 누군가의 평화로운 ‘ASMR 수면 유도’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참 기괴하게도 이처럼 전혀 다른 두 장면에 모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무심하게 흐릅니다. 300년 묵은 고루한 바로크 음악이 현대의 일상 곳곳에 이토록 찰떡같이 스며드는 경우는 참 드물거든요.

이 곡이 이토록 질기게 살아남은 비결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듣는 이의 멱살을 잡고 특정한 감정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거든요. 슬플 땐 바닥 모를 깊은 위로가 되고, 멍 때릴 땐 더없이 완벽한 백색소음이 되며, 각 잡고 핏대를 세워 집중해서 들으면 300년 전 바흐의 무시무시한 설계가 또렷하게 귀를 때립니다. 클래식 덕후들이 이 곡을 굳이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떠받드는 이유가 다 여기 있죠. 아무리 들어도 매번 낯설고 새로운 질감이 손끝에 만져지기 때문입니다.

괴짜 글렌 굴드는 1981년의 역사적인 재녹음을 기어코 마친 뒤, 이 곡에 대해 단 한마디의 인터뷰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입을 꾹 닫고 침묵했죠. 어쩌면 그 적막이야말로 가장 정직하고 무거운 감상평이었을지 모릅니다. 30번의 혹독한 변주를 거쳐 다시 처음의 얌전한 아리아로 털썩 돌아왔을 때, 우리는 구차한 말이 전혀 필요 없는 어떤 거대한 우주를 기어이 경험하게 되니까요.

클래식을 전혀 모르신다 해도 지루할 틈이 없는 이 300년 전 음악으로 과감하게 시작해 보셔도 좋습니다.

추천 녹음

글렌 굴드 (1955, Columbia Masterworks)

단언컨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뻔뻔하고 충격적인 데뷔 앨범입니다. 스물두 살 청년의 미친 듯한 속도감과 건반을 씹어먹는 톡톡 튀는 리듬감이 그야말로 압권이거든요. 곡 중간중간 굴드가 자기 흥에 취해 기괴하게 흥얼거리는 허밍 소리까지 고스란히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게 클래식이라고?” 싶은 분들께 첫 단추로 강력히 밀어붙입니다.

글렌 굴드 (1981, CBS Masterworks)

사망 직전에 덩그러니 남긴 비장한 유언 같은 앨범입니다. 1955년의 고삐 풀린 폭주 기관차 같던 청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삶의 끄트머리에서 한 음 한 음을 징그럽게 신중하게 내려놓는 늙은 구도자의 쓸쓸한 모습만 남았거든요. 26년이라는 세월이 한 인간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는지 두 앨범을 연달아 들어보시면 등골에 소름이 쫙 돋을 겁니다.

기미코 이시자카 (2012, Open Goldberg)

얄미운 저작권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너그러운 ‘무료 공개’ 음원입니다. 무려 크라우드 펀딩으로 십시일반 제작되어 전 인류에게 공공재로 시원하게 풀렸죠. 공짜라고 우습게 보면 곤란합니다. 연주 자체도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하고 훌륭하거든요. 유튜브에서 악보가 휙휙 넘어가는 영상과 함께 볼 수 있어, 바흐의 미친 설계도를 기어이 두 눈으로 확인하며 듣고 싶은 분들께 더없이 안성맞춤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깐깐한 바흐가 악착같이 짜 놓은 정교한 화성 구조가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할 차례입니다. 30개의 변주와 캐논이라는 무자비한 톱니바퀴가 악보 위에서 쉴 새 없이 시각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거든요. 멍하니 귀로만 들을 때는 놓치기 십상이었던 묵직한 베이스 라인도 악보를 눈에 담는 순간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귀에 때려 박힙니다.

“난 까만 건 음표고 하얀 건 종이인데?” 하셔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저 화면 속 꼬부랑 성부들이 위아래로 어지럽게 움직이는 궤적을 멍하니 좇아가 보시죠. 똑같은 뼈대(화성) 하나를 던져두고 그 위에서 이토록 다채롭고 기괴한 건물을 뚝딱뚝딱 지어 올린 바흐의 괴물 같은 설계 능력이 곧장 직관적으로 가슴에 꽂힐 겁니다.

악보 원본은 클래식 악보계의 거대한 성지, IMSLP에서 언제든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왜 30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나요?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흐는 9개의 캐논(제3, 6, 9, 12, 15, 18, 21, 24, 27변주)을 체계적으로 배치했습니다. 나머지 변주들은 아리아, 푸가, 토카타, 아라베스크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마지막인 제30변주는 ‘쿼들리베트(Quodlibet)’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독일 민요 두 곡을 능청스럽게 결합한 유머 넘치는 마무리입니다.

글렌 굴드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두 번 녹음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55년 첫 번째 녹음은 굴드가 22세 때 폭발적인 에너지와 속도감으로 연주한 것으로, 그를 일약 세계적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1981년 두 번째 녹음은 사망 1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완전히 다른 해석—훨씬 느리고 내면적이며 사색적인 연주—을 담고 있습니다. 굴드 자신은 두 번째 녹음이 ‘진정한 작별 인사’라고 여겼다고 전해집니다. 두 녹음을 비교해 들어보면 클래식 감상의 즐거움이 한층 깊어집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피아노 외의 악기로도 연주되나요?

원래는 두 단 건반이 있는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현대에는 피아노 연주가 일반적이지만, 원전악기(하프시코드) 연주도 널리 사랑받습니다. 또한 현악 3중주, 기타, 마림바 등 다양한 편곡 버전이 존재합니다. 각 버전마다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하니, 여러 버전을 비교해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처음 들을 때 어떤 변주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처음이라면 전체를 한 번에 듣기보다, 아리아(첫 테마)와 제13변주(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 제25변주(가장 느리고 심오한 ‘검은 진주’), 그리고 마지막 아리아 다카포 순서로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 네 곡만으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전체적인 감동을 맛볼 수 있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불면증 치료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이는 유명하지만 검증하기 어려운 전설입니다. 18세기 전기 작가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처음 기록한 이야기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저링 백작이 바흐에게 수면을 돕는 음악을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문서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변주곡의 복잡한 구조와 다양한 감정을 고려하면, 자장가보다는 정교한 음악적 오락에 가까운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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