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카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ëns, 1835–1921) - 작품명
- 교향곡 3번 c단조 ‘오르간’ Op.78
- 작곡 연도
- 1886년
- 초연
- 1886년 5월 19일, 런던 세인트 제임스홀. 작곡가 본인 지휘,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 오케스트라
- 헌정
- 프란츠 리스트 추모
- 편성
- 현악, 목관, 금관, 타악, 파이프 오르간, 피아노 4손 (2부 구성, 연주는 4악장 형태)
- 연주 시간
- 약 35~40분
- 생상스가 50세에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며 사실상 마지막으로 쓴 교향곡으로, 완성 뒤 죽을 때까지 다시는 교향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 파이프 오르간과 피아노 4손을 교향악단에 끌어들인 파격 편성의 c단조 대작으로, 1886년 5월 런던에서 작곡가 본인 지휘로 초연됐습니다.
-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됐고, 완성 직후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추모곡이 되었습니다.
악보에 마지막 음표를 꾹꾹 눌러 그린 뒤 생상스는 이런 말을 남긴 셈입니다.
“나는 이 작품에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 내가 여기서 이룬 것을, 나는 다시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예술가가 제 입으로 이런 극찬을 남기는 경우는 참 드물지요. 대개는 흔한 허세이거나 낭만적인 과장쯤으로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생상스는 뼛속까지 진심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스스로 내뱉은 이 무거운 선언을 죽을 때까지 고스란히 지켜냈거든요. 50세에 이 곡을 완성한 뒤 그는 두 번 다시 교향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쏟아지는 앙코르 요청이나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계약 조건마저 모조리 거절했더군요.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곡을 쏟아냈지만 교향곡의 시계만큼은 이 작품에서 영원히 멈춰 세웠습니다. 마치 ‘이 이상의 교향곡은 내 인생에 없다’고 아주 단단히 못을 박아버린 셈이지요.
스스로 ‘내 인생 마지막 교향곡’이라 선언한 작품. 그 엄청난 무게감 때문일까요? 이 곡을 듣다 보면 단 1초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꽉 찬 밀도에 꼼짝없이 압도당하고 맙니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온달까요.
도대체 이 곡 안에 무엇을 숨겨두었길래 작곡가 본인조차 그런 확신을 가졌던 걸까요? 그리고 초연된 지 140년이 흐른 지금, 클래식의 ‘클’ 자도 모르는 사람조차 이 음악을 듣고 “아, 이 노래!”라며 무릎을 탁 치게 된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요.
교향곡에 파이프 오르간을? 그 시절 파리를 뒤집어놓은 ‘미친 발상’
1886년 당시 파리 음악계에서 ‘교향곡’이란 사실상 독일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베토벤과 슈만, 그리고 브람스가 닦아놓은 거대한 룰 안에서만 얌전히 돌아가는 장르였지요. 파리 청중 역시 교향곡을 즐겨 들었지만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십중팔구 독일산이었습니다. 프랑스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이 베토벤과 멘델스존으로 채워졌다는 기록이 떡하니 남아있을 정도거든요.
프랑스 작곡가들이 교향곡에 아예 손을 놓고 지냈던 건 아닙니다. 애써 곡을 써봤자 무대에 오르질 못했을 뿐이죠. 비제가 만 17세에 야심 차게 쓴 교향곡은 1933년에야 겨우 발견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나 흐른 1935년 2월 26일 스위스 바젤에서 비로소 초연되었을 정도니까요. 그야말로 처참한 대접이었습니다.
이렇게 척박한 상황에서 바다 건너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가 “프랑스 작품을 하나 써달라”며 슬쩍 의뢰를 해옵니다. 이때 생상스는 보란 듯이 뻔한 정통 교향곡의 틀을 시원하게 내던져 버립니다. 그것도 무려 ‘파이프 오르간’을 통째로 집어넣은 괴물 같은 교향곡을 들고 나타났죠.
당시 오케스트라 홀에서 오르간은 철저히 ‘교회의 악기’로 취급받았습니다. 세속적인 교향곡 한복판에 성스러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진다니요. 지금으로 치면 핏대 세우는 헤비메탈 록 콘서트 무대에 불국사 범종을 떡하니 매달아 놓고 치는 격이었습니다. 엄청난 도발이자 파격 그 자체였지요. 하지만 단순히 얕은 ‘어그로’만 끌었다면 이 곡이 140년이나 질기게 살아남진 못했을 겁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팩트 하나. 생상스 본인이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1858년부터 무려 19년 동안 파리 마들렌 교회의 수석 오르가니스트로 밥벌이를 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거든요. 그러니 거대한 오르간을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비벼야 할지, 어느 타이밍에 쥐죽은 듯 숨을 죽이고 어느 순간에 폭발시켜야 할지를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었습니다. 무대 위엔 가장 파격적인 세팅을 올려놓고도 그 파격을 통제하는 솜씨만큼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했던 까닭입니다.
생상스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더군요. 피아노까지 오케스트라 판에 떡하니 끌어들였거든요. 그것도 한 대의 피아노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치는 ‘4손 연주(Four hands)’ 방식으로 말이죠. 피아노 혼자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협주곡 방식이 아닙니다. 두 명의 연주자가 쉴 새 없이 건반을 두드리는데, 그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파도 속에 스르르 스며들며 아주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악장의 뼈대마저 시원하게 박살 내버렸습니다. 전통적인 교향곡이라면 4악장으로 나뉘어 중간중간 기침도 하고 숨도 고르는 휴식 시간이 주어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 곡은 크게 2부로 쪼개놓고, 중간에 끊김 없이 그야말로 논스톱으로 내달립니다. 마치 바통을 터치하듯 쉼 없이 이어달리는 이 기법은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서 전수받은 필살기였습니다.
여기에 ‘순환 주제’라는 아주 치밀한 복선까지 깔아둡니다. 1악장 초반에 무심코 툭 던져둔 멜로디 씨앗이, 마지막 악장에 이르러 거대한 오르간의 포효와 함께 화려하게 만개하는 구조거든요. 영화로 치자면 초반에 쓱 스쳐 지나간 사소한 소품이 결말을 통째로 뒤집는 엄청난 반전의 열쇠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오르간, 피아노 4손, 이어달리기 구조, 그리고 완벽한 복선 회수까지. 이 모든 걸 단 하나의 교향곡 안에 우겨넣고도 한 치의 삐걱거림 없이 완벽하게 굴러가도록 세공해 낸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상스가 “다시는 이런 곡을 못 쓸 것”이라 단언했던 진짜 이유겠지요.
생상스라는 인간: ‘모차르트의 재림’에서 ‘고집불통 꼰대’가 되기까지
이 파격적인 교향곡을 제대로 맛보려면, 카미유 생상스라는 인간의 굴곡진 삶을 살짝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네요.

1835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하지만 천재성은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지요. 두 살 반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다섯 살에 작곡을 했으며, 열 살 무렵엔 파리 음악원 데뷔 무대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악보조차 없이 깡그리 외워서 쳐버렸습니다. 파리 사교계가 “모차르트가 환생했다!”며 발칵 뒤집힌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었죠.
하지만 화려했던 떡잎과 달리 청년기의 성적표는 꽤나 처참했네요. 특히 당시 작곡가들의 최고 출세 코스로 꼽히던 ‘오페라’에서 번번이 쓴잔을 마셨거든요. 콩쿠르에서는 떨어지기 일쑤였고, 간신히 무대에 올린 오페라도 번번이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파리의 콧대 높은 음악계가 이 천재를 온전히 인정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꽤나 긴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개인사 역시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린 두 아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그 충격으로 아내와는 끝내 남남으로 갈라섰습니다. 결국 파리에 완전히 정을 떼버린 채 북아프리카,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심지어 스리랑카까지 전 세계를 떠돌며 살아야 했습니다. 훗날 그가 눈을 감은 곳도 파리가 아닌 알제리의 수도 알제였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치고는 대단히 이질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죠.
성격마저 만만치 않았더군요. 자신을 비판하는 평론가에게는 쌍심지를 켜고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드뷔시나 라벨 같은 후배들의 새로운 음악(인상주의)을 대놓고 혐오하기까지 했습니다. 온 세상이 새로운 트렌드에 열광할 때, 생상스만큼은 홀로 꼿꼿하게 귀를 닫고 고전적인 질서와 명료함을 고집했던 겁니다.
말년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 꼰대’라는 조롱마저 감수해야 했지만, 교향곡 3번만큼은 그 지독한 고집이 빚어낸 최고의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얄팍한 유행 따위는 시원하게 걷어차 버리고, 오직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무기들을 모조리 동원해 우직하게 정면승부를 건 셈이지요.
뼈아픈 오페라 흥행 실패, 어린 자식들의 연이은 죽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이 모든 콤플렉스와 울분이 켜켜이 쌓여있던 50세의 생상스는 이 교향곡 한 방으로 모든 것을 통쾌하게 증명해 냈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빛나는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교향곡 은퇴를 선언해 버립니다. “이제 세상에 내 능력을 증명할 필요 따윈 없다.” 일종의 오만이자, 완벽한 승리 선언이었습니다.
작곡의 뒷이야기: 30년의 침묵, 8개월의 폭주
1886년 당시 50세의 생상스는 이미 유럽 톱클래스로 대우받는 작곡가였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나 피아노 협주곡 등으로 자신의 이름값은 톡톡히 증명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유독 교향곡만큼은 젊은 시절 두 곡을 남긴 이후, 무려 30년 가까이 통 손을 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4악장으로 딱 떨어지는 전통적인 교향곡의 틀이 그에겐 숨막히게 답답하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 대신 그는 단일 악장 안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교향시’ 장르에 푹 빠져 지냈거든요.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프로그램 음악으로도 잘 알려진 ‘죽음의 무도’가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명작입니다.
그러던 1885년, 바다 건너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에서 연락이 날아듭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생상스가 애당초 1순위 후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지요. 협회 측은 원래 샤를 구노를 원했지만 협상이 틀어지는 바람에 생상스에게 대타를 제안했던 겁니다. 런던으로 건너간 생상스는 “내 옛날 교향곡 2번을 연주해달라”고 넌지시 찔러봅니다. 그러자 협회는 엉뚱하게도 역제안을 던집니다. “아예 새 교향곡을 하나 뽑아주시는 건 어떨까요?”
생상스는 그 제안에 덥석 “콜!”을 외칩니다. 그가 수락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 날짜가 1885년 8월 25일이고, 최종 악보를 탈고한 것이 이듬해 4월입니다. 무려 30년 동안 꾹꾹 눌러 담아왔던 교향곡의 아이디어들을 불과 7~8개월 만에 그야말로 미친 듯이 쏟아낸 셈입니다.
당시 남겨진 기록들을 보면, 이 기간 동안 그는 거의 매일같이 책상에 틀어박혀 곡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악보 여백 하나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음표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미 그의 머릿속엔 ‘이것이 나의 마지막 교향곡’이라는 마스터플랜이 확고하게 서 있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1886년 5월 19일 런던 세인트 제임스홀에서 열린 초연. 작곡가 본인이 직접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요. 이듬해 파리 초연에서는 아예 홀 전체가 기립박수로 뒤덮였습니다. 잔뜩 신이 난 영국 협회는 “제발 다음 교향곡도 써달라”며 매달렸지만, 생상스는 얄짤없이 단칼에 거절해 버립니다.
그리고 런던 초연이 끝난 지 불과 두 달 뒤, 생상스의 음악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든 거대한 부고 한 장이 날아듭니다.
리스트의 죽음, 소름 돋는 우연과 헌정
생상스와 프란츠 리스트. 두 사람의 인연은 실로 각별했습니다.

생상스가 갓 학교를 졸업하고 풋내기 오르가니스트로 일할 무렵, 리스트는 이미 전 유럽을 호령하는 거물급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런데 리스트는 까마득한 후배인 생상스의 연주를 듣자마자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르가니스트”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요. 훗날 생상스가 교향시라는 낯선 장르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교향시의 창시자였던 리스트의 든든한 지지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상스가 교향곡 3번에 써먹은 ‘순환 주제’나 ‘이어달리기 구조’ 모두 리스트의 전매특허였습니다. 사실상 이 교향곡 전체가 스승이자 멘토였던 리스트를 향해 바치는 거대한 오마주나 다름없었던 셈이지요.
그런데 초연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886년 7월 31일. 리스트가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폐렴으로 돌연 세상을 떠납니다. 향년 74세. 바그너 오페라를 보러 길을 나섰다가 먼 객지에서 쓸쓸히 눈을 감고 말았죠.
악보 출판을 코앞에 두고 있던 생상스는 첫 페이지에 이런 문구를 꾹꾹 새겨 넣습니다.
“À la mémoire de Franz Liszt (프란츠 리스트의 추모에).”
애초에 살아있는 리스트에게 바치려 했던 것인지 죽음 직후에 부랴부랴 추모곡으로 방향을 튼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거대한 교향곡은 리스트를 떠나보내는 가장 장엄한 장송곡이 되고 말았거든요.
이 묵직한 배경을 알고 나면 곡이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특히 1부 2악장에서 오르간이 처음으로 스르륵 깔리는 고요하고 경건한 화음. 그것이 단순한 악기 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봐 준 위대한 스승을 향해 바치는 생상스의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들리거든요.
어떻게 들을 것인가: 40분을 순삭시키는 감상 가이드
클래식이 낯설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땐 딱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되거든요. “c단조의 어둠에서 시작해, C장조의 눈부신 빛으로 끝난다.”
이 여정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열쇠는 단연 ‘오르간’입니다. 오르간이 처음 스르륵 등장하는 2악장 그리고 미친 듯이 폭발해버리는 4악장. 이 두 순간의 소름 돋는 대비만 바짝 쫓아가도 생상스가 치밀하게 설계해 둔 40분짜리 롤러코스터를 완벽하게 즐기실 수 있답니다.
1부 제1악장: 폭풍전야의 불안감
점잖게 예열하는 느릿한 서론 따위는 없습니다. 뚜껑을 열자마자 현악기들이 대번 신경질적으로 쏟아져 내리거든요. 뭔가 뾰족하게 해결되지 않은 불안한 감정들이 쉴 새 없이 팽팽하게 부딪히고 엉키는 느낌이지요.
여기서 생상스는 아주 영악한 수를 던집니다. 나중에 4악장에서 쾅 터뜨릴 ‘핵심 멜로디(씨앗)’를 이 복잡다단한 현악기 소리 사이에 아주 교묘하게 숨겨놓거든요. 처음 들을 때는 도무지 눈치챌 재간이 없습니다. 그저 빠르고 강렬하게 몰아치는 연주처럼 들리지만 나중에 결말을 훤히 알고 다시 들으면 “아! 이게 여기서부터 밑밥을 깐 거였어?”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죠. 두 번째 들을 때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이유가 바로 이 치밀한 복선 덕분입니다.
중간에 폭풍우가 잦아들듯 현악기가 스르륵 조용해지며 부드러운 선율이 흐르는 구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고요함은 툭 끊어지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음 악장으로 스며들지요. 마치 소설의 챕터가 넘어가는 줄도 까맣게 모른 채 몰입해서 읽어 내려가는 기분과 엇비슷합니다. 복잡하게 쪼개고 분석할 것 없이 그저 불안함과 고요함이 넘실대는 파도를 스윽 타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1부 제2악장: 공간의 차원이 바뀌는 마법
속도가 뚝 떨어집니다. 현악기들이 손가락으로 줄을 뜯으며(피치카토) 살금살금 눈치껏 반주를 깔고 그 위로 관악기들이 몹시 애절한 노래를 부릅니다. 앞선 격렬함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는 잠깐의 휴식처 같은 공간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오르간이 등장합니다.
냅다 쾅! 하고 터뜨리는 게 아닙니다. 아주 낮고 부드러운 화음이 음악의 밑바닥으로 스르륵 스며들거든요. 이 순간의 체감이 실로 엄청납니다. 마치 좁디좁은 방 안에서 음악을 듣다가, 눈 깜짝할 새 거대한 대성당 한가운데로 텔레포트한 것처럼 공간감이 순식간에 확 넓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연주회장에서 직접 들어보면 귀로 닿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맙니다. 파이프를 뚫고 뿜어져 나오는 공기의 진동이 온몸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전체 40분 중 고작 8분 남짓한 짧은 악장에 불과하지만, 이 묵직한 첫 등장의 여운만큼은 뇌리에 아주 깊숙이 박혀버립니다.
2부 제3악장: 피아노와 함께 다시 달리는 에너지
잠시 쉬어 가던 음악이 2부 시작과 동시에 돌변합니다. 앞서 짓누르던 무게감을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는, 굉장히 빠르고 익살맞게 냅다 내달리기 시작하거든요.
여기서 시각적으로도 퍽 재미난 장면이 연출됩니다. 덩치 큰 피아노 한 대에 두 명의 연주자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 미친 듯이 건반을 두드려대는 ‘4손 연주’가 시작되거든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피아노 소리가 혼자 튀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소리에 찰떡같이 스며들어 아주 독특한 질감을 빚어냅니다.
쏜살같이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목관악기와 툭툭 대화도 나누고, 다시금 속도를 바짝 올리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킵니다. 그리고 다가온 3악장의 끝자락. 미친 듯이 질주하던 음악이 돌연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버립니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정적.
바로 그 팽팽한 정적을 깨고, 이 곡의 진짜 주인공이 무대에 등판할 차례입니다.
2부 제4악장: 마침내 터지는 빛의 폭발
사실상 이 교향곡의 존재 이유이자, 이 곡을 단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머릿속에 영원히 각인되고 마는 바로 그 전설의 악장입니다.
칙칙하고 불안했던 c단조가 마침내 밝고 눈부신 C장조로 통쾌하게 뒤집힙니다. 그 극적인 반전의 스위치를 꾹 누르는 주인공은 단연 오르간이죠. 거대한 오르간의 첫 화음이 벼락처럼 쾅 내리꽂히는 순간, 억눌려있던 모든 것이 단숨에 해방되는 폭발적인 카타르시스가 터져 나옵니다. 뒤이어 금관악기와 팀파니까지 가세하며 화려한 축제의 팡파르를 거침없이 울려대거든요.
1악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쓱 심어두었던 불안한 멜로디 씨앗은, 바로 이곳에서 찬란하고 웅장한 승리의 찬가로 폼나게 모습을 바꿉니다. 그야말로 흩뿌려둔 모든 복선이 완벽하게 회수되는 짜릿한 순간이지요.
어쩌면 이 멜로디, 굉장히 익숙하게 들리실 겁니다. 1995년 개봉한 가족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를 기억하십니까? 감독 크리스 누넌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 악장의 코다(마무리 선율)를 편곡해 넣으면서, 대중들에게는 ‘베이브 주제곡’으로 훨씬 더 유명해졌지요. 예능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뭔가 웅장한 결말을 맞이할 때 단골로 쓱 깔리는 바로 그 음악이거든요.
하지만 얄팍한 스마트폰 스피커나 TV로 듣는 것과, 실제 연주회장에서 수백 명의 오케스트라와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음압’을 온몸으로 두들겨 맞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곡의 맨 마지막, 미친 듯이 포효하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딱! 하고 멈추는 그 찰나. 거대한 홀 전체를 팽팽하게 감도는 몇 초간의 아찔한 정적은 오직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마약 같은 경험입니다.
50세의 생상스가 “다시는 이런 곡을 못 쓴다”고 했던 이유를 이 4악장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무려 40분간 숨 막히게 쌓아 올린 빌드업 끝에 마주하는 완벽한 마침표. 더 이상 어떤 말도 덧붙일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완결이었습니다.
프랑스 교향곡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작품
생상스가 이 곡을 발표한 1886년 무렵 프랑스 음악계는 독일발 리하르트 바그너 열풍에 휩쓸려 지독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그너의 압도적인 스타일에 고스란히 잡아먹히느냐, 아니면 치열하게 저항하느냐의 아슬아슬한 기로였지요. 생상스는 바그너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후배들을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독일 교향곡의 단단한 뼈대만큼은 쿨하게 쏙 빼왔습니다. 대신 그 뼈대 안에 프랑스 특유의 다채로운 색채와 파이프 오르간, 피아노라는 파격적인 재료를 아낌없이 들이부었지요.

결과는 두말할 것 없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눈부신 성공은 그동안 꽉 막혀있던 프랑스 음악계의 혈을 단숨에 시원하게 뚫어버렸습니다.
생상스의 교향곡이 런던과 파리를 거세게 휩쓸자 슬금슬금 눈치만 보던 프랑스 작곡가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앞다투어 교향곡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뱅상 당디가 먼저 포문을 열었고 몇 해 뒤 세자르 프랑크, 그리고 쇼송과 뒤카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죽어 지내던 ‘프랑스 교향곡’의 계보가 생상스 3번을 기점으로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줄줄이 이어졌거든요.
여기서 유독 재밌는 건 생상스와 세자르 프랑크의 관계입니다. 두 사람은 파리 음악계에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앙숙이었거든요. 그런데 앙숙이었던 생상스의 대성공이 역설적이게도 프랑크가 역사에 길이 남을 명 교향곡(d단조)을 쓰게 만드는 거대한 판을 깔아준 셈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얄궂은 음악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정작 가장 먼저 불씨를 지핀 생상스 본인은 교향곡 판을 미련 없이 훌쩍 떠나버렸지만 그가 활짝 열어젖힌 문을 통해 수많은 후배들이 득달같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생상스 개인에게는 완벽한 ‘마지막’ 교향곡이었지만 프랑스 음악사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거대한 ‘시작’이었던 셈이지요. 이 극적인 이중성이야말로 이 곡을 그저 그런 평범한 명곡 이상의 반열에 단단히 올려놓은 일등 공신입니다.
오늘날 이 곡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투어 탐내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히나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을 제대로 갖춘 콘서트홀(한국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처럼)이라면 그 홀의 화려한 스펙을 뽐내기 위해 반드시 무대에 올리고 마는 치트키 같은 곡이거든요.
한때 새로운 트렌드를 꽉 막힌 태도로 거부하며 ‘보수적인 꼰대’ 취급마저 감수해야 했던 생상스. 하지만 얄팍한 유행을 좇는 대신 자신만의 묵직한 무기를 극한으로 벼려낸 이 작품은 14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낭만주의 음악의 거대한 산맥으로 굳건히 버티고 서 있습니다.
클래식 공연장에 한 번쯤 가보고는 싶은데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할까 봐 망설여지시나요? 그렇다면 프로그램에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이 떡하니 적힌 날을 매의 눈으로 노려보십시오. 그 이유는 4악장이 벼락같이 터지는 순간, 무대 바닥에서부터 발끝으로 찌릿하게 전해지는 거대한 진동을 통해 온몸이 가장 먼저 알아채게 되실 겁니다.
에디터의 추천 녹음
음반을 고를 땐 딱 한 가지만 명심하십시오. ‘오르간 소리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녹음되었는가.’ 그도 그럴 것이, 음질과 홀의 울림 자체가 곡이 주는 감동을 8할 이상 좌우해버리는 탓입니다.
먼저 무대 위에서 이 거대한 편성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아래 전곡 실황을 은은하게 틀어 두고 읽어 내려가시길 권합니다.
샤를 뒤투아 /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2, Decca)
이 곡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이른바 ‘교과서’ 같은 명반입니다. 1982년 녹음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Decca 레이블 특유의 투명하고 압도적인 음질을 시원하게 뽐내거든요. 특히 1부 2악장에서 오르간이 스르륵 밀려 들어오는 찰나의 공간감은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지요.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의 밸런스가 기가 막히게 꽉 잡혀 있어, 처음 이 곡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주저 없이 1순위로 권해드립니다.
다니엘 바렌보임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6, DG)
머릿속을 하얗게 비우는 ‘압도적인 쾌감’을 원하신다면 단연 이 음반이 정답입니다. 바렌보임은 4악장 코다에서 템포를 아주 묵직하게 거머쥐고는 마치 불도저처럼 사정없이 밀어붙입니다. 여기에 시카고 심포니 특유의 짱짱하고 두터운 금관악기 소리까지 얹어져, 그야말로 묵직한 음표로 전신을 두들겨 맞는 듯한 타격감을 꽂아주거든요. 뒤투아의 연주가 한껏 세련을 떤 프랑스 요리 같다면, 바렌보임은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미국산 스테이크를 씹어 삼키는 듯한 맛이 납니다.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오르간: 이베타 아프칼나, 2019년 실황, BR Klassik 2020년 발매)
비교적 최근에 뽑아낸 훌륭한 녹음을 찾으신다면 얀손스의 연주가 제격입니다. 이베타 아프칼나의 오르간 소리가 혼자 툭 불거져 나와 오케스트라를 잡아먹지 않도록, 아주 세련되고 절묘하게 밸런스를 꽉 잡아두었거든요. 여기에 세계 최정상급인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흠잡을 데 없는 앙상블이 얹혀, 1악장의 숨 막히는 긴장감이 4악장의 거대한 해방감으로 뻥 터지는 40분간의 서사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매끄럽게 흘러갑니다. 현대적인 음향의 쨍한 진수를 제대로 맛볼 수 있지요.
악보와 함께 듣기
무료 악보 사이트인 IMSLP에 접속하시면 생상스 교향곡 3번 악보를 곧장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까만 건 음표요, 하얀 건 종이”라며 지레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복잡한 음악 이론 따위는 하나도 몰라도 상관없거든요. 수많은 악기가 여백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총보(풀 스코어)를 그저 멍하니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오르간(Orgue)’ 파트가 떡하니 난입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게 됩니다. 귀로만 듣던 압도적인 스케일이 묵직하게 시각으로 밀려오는 쾌감, 그 맛이 생각보다 꽤 쏠쏠하실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왜 생상스 교향곡 3번을 ‘오르간 교향곡’이라고 부르나요?
교향곡 3번은 몇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나요?
교향곡 3번은 누구에게 헌정되었나요?
이 곡이 생상스의 마지막 교향곡인가요?
영화 ‘베이브’에 이 곡이 나왔다고요?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생상스는 왜 교향곡 4번을 쓰지 않았나요?
참고자료
- Wikipedia — Symphony No. 3 (Saint-Saëns)
- IMSLP — Symphony No.3, Op.78 (악보)
- Britannica — Camille Saint-Saë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