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 생상스가 사순절 무렵의 사교 모임을 위해 며칠 만에 써 내려간, 동물 이름을 빌린 열네 곡짜리 풍자 모음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3번 〈백조〉. 첼로 하나가 물 위를 미끄러지는, 이 곡에서 유일하게 진지한 순간입니다.
첫 음반 — 앙드레 프레빈 · 피츠버그 심포니 (필립스). 유머를 억지로 짜내지 않아 처음 듣기에 편합니다.
생상스는 훗날 자기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해질 곡을 살아 있는 동안 공개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동물의 사육제〉 열네 곡 가운데 딱 한 곡, 〈백조〉만 출판을 허락했습니다. 나머지 열세 곡이 공개 무대에 처음 오른 건 그가 죽고 두 달이 지난 뒤였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클래식을 처음 접할 때 자주 듣는 곡입니다. 사자가 행진하고 코끼리가 왈츠를 추는, 동물 그림책 같은 음악이죠. 그런데 작곡가가 이 곡을 감춘 이유는 아이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가 겁낸 상대는 따로 있었습니다.

독일 순회에서 참패하고 도망친 겨울
1886년 초, 쉰 살의 생상스는 크게 의기소침해져 있었습니다. 독일 연주 여행이 처참하게 끝난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1870년 전쟁 이후 관계가 크게 틀어져 있었고, 파리에서는 독일 음악을 밀어내자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독일에서는 프랑스 음악가를 곱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긴장 속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독일 순회 무대에 섰으니, 애초부터 따뜻한 환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여행이었습니다.
생상스는 순회를 접고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로 물러났습니다. 큰 무대에서 혹독한 실패를 겪은 뒤, 조용한 시골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원래는 대작 교향곡 3번 〈오르간〉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였습니다. 그해 프랑스 초연을 앞둔, 자기 경력에서 가장 야심 찬 관현악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무거운 곡을 붙드는 대신, 며칠 만에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을 써 버립니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는 데는 대작보다 장난스러운 곡이 더 잘 맞았던 모양입니다.
1886년 2월 9일, 그는 파리의 출판사 뒤랑에게 편지를 보내 다가오는 사순절 파티에 쓸 곡을 쓰고 있다고 전합니다. 교향곡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신도 안다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요(mais c’est si amusant!).” 이 문장은 곡 전체의 성격을 거의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이 작품은 엄숙한 선언이라기보다, 해야 할 숙제를 잠시 미뤄 두고 엉뚱한 놀이에 빠진 사람의 들뜬 고백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옆길에서 쓴 작품이, 억지로 붙들고 있던 대작보다 더 오래 사람들 곁에 남습니다. 이 곡이 바로 그 경우였습니다.
모차르트급 신동이 평생 지킨 평판
그가 재미로 쓴 곡을 왜 그렇게까지 감췄는지 이해하려면, 생상스가 평생 어떤 평판 속에 살았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생상스는 그냥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열 살이던 1846년, 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공식 데뷔 무대에 섰습니다. 훗날 한 평론가가 그를 두고 “모차르트를 포함해도 역사상 가장 놀라운 신동”이라고 썼을 정도입니다.
그 신동은 프랑스 음악계의 기둥으로 자랐습니다. 파리에서 가장 격이 높은 성당으로 꼽히던 라 마들렌의 오르가니스트를 20년 가까이 맡았고, 1881년에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 모임인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혔습니다. 무엇보다, 1870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패한 뒤에는 독일 음악의 그늘에서 벗어나 프랑스 음악의 자존심을 세우겠다며 1871년 국민음악협회를 함께 세웠습니다. 협회의 표어가 ‘아르스 갈리카(Ars Gallica)’, 곧 ‘프랑스의 예술’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생상스는 ‘프랑스의 진지한 음악’을 지키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세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태도는 더 완고해졌습니다. 훗날 그는 드뷔시가 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것에 반대했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두고는 “저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남의 곡을 우스꽝스럽게 비틀고 평론가를 당나귀로 그린 장난 모음곡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 곡이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퍼진다는 건, 그가 평생 쌓아 온 ‘진지한 대가’의 이미지를 흔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로서는 도저히 감수할 수 없는 위험이었습니다.
여기에 씁쓸한 대목이 있습니다. 생상스는 원래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머리가 빠르고 말솜씨가 좋았으며, 음악을 가지고 노는 감각도 남달랐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는 그 감각이 가장 순수하게 터져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재능을 자기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진지한 대가라는 자리에 눌려, 그는 자기 안에서 가장 반짝이는 부분을 스스로 감췄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그의 곡이 그토록 오래 숨겨진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사순절 파티에서 몰래 초연한 곡
그래서 〈동물의 사육제〉는 큰 콘서트홀이 아니라 살롱에서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1886년 3월 9일, 첼리스트 샤를 르부가 마련한 사순절 기간의 사적인 연주회에서 처음 울렸습니다. 초청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자리였고, 생상스 본인도 피아노 앞에 앉아 직접 연주했습니다.
제목의 ‘사육제’는 유럽에서 사순절이 시작되기 직전에 벌이던 축제, 곧 카니발을 가리킵니다. 금욕의 기간에 들어가기 전에 실컷 먹고 마시며 노는, 일 년 중 가장 흥청거리는 때였습니다. 가면을 쓰고 평소 못 하던 장난을 마음껏 부려도 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생상스가 이 곡을 그 무렵에 맞춰 쓴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의 근엄한 대가라는 가면을 잠깐 벗고,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만 마음껏 놀아 보려는 기분이 제목에 이미 배어 있습니다.
편성부터 파티에 맞춰져 있습니다. 대형 관현악단이 아니라 열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피아노 두 대, 현악기 다섯 명, 플루트와 클라리넷, 그리고 실로폰과 글래스 하모니카처럼 색깔이 뚜렷한 악기 몇 개로 이루어진 작은 편성입니다. 규모가 작으니 살롱 응접실에도 들어가고, 연주자끼리 눈빛을 주고받으며 익살을 맞추기에도 좋습니다. 생상스가 이 곡을 처음부터 ‘무대용’이 아니라 ‘방 안에서 즐기는 놀이’로 설계했다는 뜻입니다. 특히 두 대의 피아노는 이 곡의 숨은 주인공입니다. 야생 당나귀의 질주도, 캥거루의 폴짝임도, 피아니스트의 어설픈 연습도 모두 피아노 두 대가 만들어 냅니다. 살롱에 피아노 두 대만 있으면 어지간한 익살은 다 부릴 수 있었습니다.
얼마 뒤 두 번째 연주가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그 객석에 프란츠 리스트가 앉아 있었습니다. 생상스의 오랜 친구였던 리스트가 이 곡을 꼭 듣고 싶다고 청했기 때문입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굳이 청해서 들을 만큼, 좁은 음악가들의 세계 안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난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이 곡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적인 즐거움으로 남았습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기에, 한 손으로는 프랑스 음악의 자존심이 걸린 대작 교향곡을 붙들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그 엄숙한 세계를 비껴 가는 가벼운 장난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무대에 내보일 음악과 방 안에서만 들려줄 음악을, 그는 처음부터 확실히 갈라놓았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는 후자, 곧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들려주려고 만든 음악이었습니다.

동물원 간판을 내건 저격수
겉으로 보면 이 곡은 동물 도감입니다. 사자, 암탉,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물고기, 새, 뻐꾸기, 백조가 차례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악보 안을 들여다보면 동물은 핑계였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납니다. 생상스는 동물 이름 뒤에 남의 음악과 자기 음악을 숨겨 놓고, 익숙한 선율을 엉뚱한 속도와 악기로 비틀어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이 곡의 진짜 재료는 동물이 아니라 음악을 아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농담입니다. 원곡을 많이 알수록 더 크게 웃게 되는, 일종의 내부자 개그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원곡을 몰라도 듣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그냥 들어도 사자는 사자 같고 코끼리는 코끼리 같습니다. 아는 사람에게는 패러디로, 모르는 사람에게는 동물 그림으로 들리는 이중 구조가 이 곡의 힘입니다. 어른들의 파티에서도, 오늘날 아이들의 음악 시간에도 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열네 곡을 순서대로 열어 보면, 어디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보입니다.
1번 〈서주와 사자의 행진〉 — 왕의 등장, 그런데 어딘가 우스운
두 대의 피아노가 트릴로 긴장을 깔고, 현악이 당당한 행진곡을 시작합니다. 백수의 왕이 입장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자의 포효는 피아노가 낮은 음역에서 반음씩 미끄러져 오르내리는 소리로 처리됩니다. 위엄을 세우려다 살짝 발을 헛디디는 능청이 첫 곡부터 나옵니다. 겉은 근사하게, 속은 짓궂게. 진지한 행진곡과 우스꽝스러운 으르렁거림이 번갈아 나오면서 듣는 사람은 이게 진지한 곡인지 장난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헷갈림이 생상스가 노린 지점입니다.
2번 〈암탉과 수탉〉 — 100년 전 선배 곡을 슬쩍
클라리넷과 현악, 피아노가 서로 쪼아 대며 닭장을 그립니다. 짧게 끊어 치는 음들이 부리로 모이를 쪼는 소리처럼 통통 튑니다. 여기서 생상스는 100년도 더 전에 활동한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하프시코드 곡 〈암탉〉에 나오는 꼬꼬댁거리는 음형을 가져다 씁니다. 두 번째 곡부터 이 작품이 남의 음악을 재료로 삼는 게임이라는 신호가 드러납니다. 하프시코드로 그려진 닭을 후배 작곡가가 실내악으로 다시 그려 놓고, 듣는 사람을 향해 눈을 찡긋하는 장면입니다.
3번 〈야생 당나귀〉 — 두 피아노의 전력 질주
제목의 야생 당나귀는 초원을 빠르게 내달리는 짐승입니다. 여기서는 오케스트라 없이 두 대의 피아노만 나섭니다. 두 연주자가 위아래로 치닫는 음계를 맹렬한 속도로, 그것도 거의 정확히 맞춰 쏟아 냅니다. 선율이라 부를 것도 없이, 오로지 질주하는 속도감 하나로 밀어붙이는 곡입니다. 30초 남짓한 짧은 곡이지만 피아니스트에게는 손가락이 쉴 틈 없는 구간이고, 듣는 사람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돌풍입니다. 동물을 그린다기보다 두 연주자의 순발력을 시험하는 곡에 가깝습니다.
4번 〈거북이〉 — 세상에서 가장 빠른 춤을 반토막으로
이 곡의 첫 번째 결정타입니다. 현악기들이 아주 느릿한 선율을 켜는데 그 정체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에 나오는 캉캉입니다. 무용수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차 올리는, 당시 파리에서 떠들썩한 인기를 누리던 빠른 춤입니다. 생상스는 그 캉캉을 거의 멈출 듯한 속도로 늘여 놓았습니다. 빠른 춤을 느린 거북이에게 맡긴 셈입니다. 음악으로 부리는 슬로모션인데, 원곡을 아는 사람일수록 더 크게 웃게 됩니다. 같은 음표를 그대로 두고 속도만 바꿨을 뿐인데, 신나는 춤이 처량한 행진으로 완전히 뒤집힙니다. 빠르기 하나가 같은 음표를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리게 한다는 걸, 이보다 확실하게 보여 주는 예도 드뭅니다.
🎧 들어볼 대목 — 현악이 켜는 그 느린 선율을 오펜바흐의 원래 캉캉과 머릿속에서 겹쳐 보면, 같은 곡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5번 〈코끼리〉 — 요정의 춤을 가장 무거운 악기에게
같은 장난이 한 번 더, 이번엔 방향을 뒤집어서 나옵니다. 콘트라베이스가 왈츠를 켜는데, 이 선율은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에 나오는 ‘실프들의 춤’에서 왔습니다. 실프는 공기의 요정입니다. 원래는 더없이 가볍고 투명하게 떠다녀야 할 음악입니다. 생상스는 그 요정의 춤을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낮고 육중한 악기에게 통째로 넘겼습니다. 중간에는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의 날렵한 요정 음악까지 슬쩍 끼워 넣습니다. 앞의 거북이가 빠른 음악을 느리게 만들어 웃겼다면, 이번엔 가벼운 음악을 무거운 악기로 옮겨 웃깁니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원리는 똑같습니다. 원래 어울리던 음악과 악기를 일부러 어긋나게 붙여 놓는 방식, 그 자체가 이 곡의 코미디입니다.
6번 〈캥거루〉 — 뛰었다 멈추는 리듬 놀이
다시 두 대의 피아노가 주인공입니다. 짧게 튕기는 화음이 통통 뛰어오르다가, 착지할 때마다 속도를 슬쩍 늦춥니다. 뛰어오를 땐 빨라지고 내려앉을 땐 느려지는 이 리듬의 밀고 당기기가, 캥거루가 폴짝 뛴 뒤 잠깐 멈춰 두리번거리는 동작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멜로디랄 것도 없이 오로지 ‘뛰고 멈추는’ 움직임 하나로 한 곡을 세운 재치입니다. 앞선 야생 당나귀와 나란히 들으면, 같은 두 피아노가 얼마나 다른 걸음걸이를 만들어 내는지 잘 보입니다.
7번 〈수족관〉 — 이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몇 분
농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수족관〉에서는 두 대의 피아노가 물결처럼 잔잔하게 흐르고, 그 위로 글래스 하모니카(요즘 연주에서는 보통 글로켄슈필이나 첼레스타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가 물방울 같은 소리를 흩뿌립니다.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음색이 수면에 비친 빛처럼 어른거립니다. 영화 음악처럼 몽롱하게 반짝이는 이 몇 분은 오늘날에도 광고나 영상에 자주 쓰일 만큼 매혹적입니다. 웃기려고만 쓴 곡이 아니라는 증거이자, 뒤에 나올 진지한 〈백조〉를 미리 예고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곡 속에 숨겨 둔 진짜 표적
후반부로 갈수록 생상스의 장난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어떤 곡은 숲과 새장을 그리는 데 머물지만, 어떤 곡에서는 표적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뀝니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 특히 자기 음악을 깎아내리던 이들까지 사육제의 우리 안으로 끌어들였거든요.
8번 〈긴 귀를 가진 이들〉 — 당나귀 울음의 진짜 주인공
제목의 ‘긴 귀’는 당나귀를 가리킵니다. 바이올린 두 대가 아주 높은 소리와 아주 낮은 소리를 번갈아 내지르는데, 위로 끽 올라갔다가 아래로 뚝 떨어지는 음정이 영락없는 당나귀 울음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곡을 두고는 생상스가 겨눈 당나귀가 사실 음악 평론가들이었다는 해석이 오래전부터 따라다닙니다. 자기 음악을 함부로 깎아내리던 평단을 시끄럽게 울어 대는 당나귀에 빗댔다는 이야기입니다. 확정된 기록은 아니지만, 곡의 앞뒤 맥락과 평판을 몹시 의식했던 그의 태도를 떠올리면 충분히 그럴듯한 해석입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가 이 곡의 공개를 죽을 때까지 막은 이유도 더 분명해집니다. 평론가를 당나귀로 그린 곡을 대놓고 발표하기에는, 평판을 목숨처럼 여긴 그에게 부담이 너무 컸을 테니까요.
9번 〈숲속의 뻐꾸기〉 — 딱 두 음으로 버티는 곡
두 대의 피아노가 어두운 화음을 느리게 놓아 깊은 숲을 만듭니다. 그 정적 사이로 클라리넷이 딱 두 음으로 내려앉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반복합니다. 실제 뻐꾸기 울음처럼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떨어지는 짧은 음형입니다. 곡이 끝날 때까지 클라리넷은 거의 그 두 음만 되풀이하고, 반복될수록 숲은 더 깊고 고요해집니다. 연주에 따라 클라리넷 주자를 무대 밖에 세워, 소리가 정말 먼 숲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연출하기도 합니다. 가장 단순한 재료로 가장 넓은 공간을 그린 곡입니다.
10번 〈새장〉 — 플루트 한 대가 새장을 가득 채우다
이번엔 플루트가 주인공입니다. 현악이 잘게 떨며 새들의 웅성거림을 깔고, 그 위에서 플루트가 쉴 새 없이 날갯짓하듯 움직입니다. 쉼표 하나 없이 이어지는 빠른 음들은 좁은 새장 안을 정신없이 오가는 작은 새의 움직임 그대로입니다. 앞의 뻐꾸기가 딱 두 음으로 텅 빈 숲을 그렸다면, 여기서는 한 대의 플루트가 새장 하나를 소리로 가득 채웁니다. 뻐꾸기와 새장을 나란히 놓고 들으면, 같은 ‘새’를 두고도 여백과 충만, 정지와 분주함을 정반대로 그린 두 곡의 대비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11번 〈피아니스트〉 — 동물 목록에 사람을 끼워 넣다
동물의 사육제인데, 여기에는 뜻밖에도 사람이 나옵니다. 그것도 피아니스트입니다. 두 연주자가 똑같은 음계 연습을 어설프게, 박자도 조금씩 틀리며 반복합니다. 도돌이표처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그 소리는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겹게 쳐 봤을 기초 연습 그대로입니다. 생상스는 그 연습생을 슬그머니 동물 목록에 끼워 넣었습니다. 사자와 코끼리 사이에 사람을, 그것도 아직 서툰 초보 연주자를 한 마리 동물처럼 세워 둔 겁니다. 갓 배우기 시작한 피아니스트도 결국 이 사육제의 한 종(種)이라는 짓궂은 농담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만큼은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일부러 조금 서툴게 치는 것이 오랜 전통입니다. 완벽하게 치면 오히려 농담을 망치는, 세상에 몇 안 되는 곡입니다.
12번 〈화석〉 — 자기 히트곡을 스스로 뼈다귀 취급
이 곡은 모음곡 전체에서 인용의 밀도가 가장 높습니다. 실로폰이 딱딱거리며 뼈다귀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이 선율은 다름 아닌 생상스 자신의 히트곡 〈죽음의 무도〉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죽음의 무도〉는 해골들이 무덤에서 나와 춤추는 곡이고, 거기서도 실로폰이 뼈다귀 소리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자기 곡의 해골 이미지까지 다시 불러와 장난의 재료로 삼았죠. 10여 년 전 자기가 크게 성공시킨 곡을 ‘이제 이것도 화석이 됐다’는 듯 스스로 전시장에 올려놓은 장면입니다. 여기에 ‘반짝반짝 작은 별’로 익숙한 프랑스 동요를 비롯한 옛 노래 몇 곡, 그리고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의 유명한 아리아까지 층층이 겹쳐 놓습니다. 누구나 아는 낡은 가락들을 뼈다귀처럼 늘어놓은, 음악으로 만든 화석 전시장입니다. 남의 것뿐 아니라 자기 것까지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 곡은 모음곡 안에서도 가장 대담한 자기 풍자입니다.
14번 〈피날레〉 — 모든 동물이 한꺼번에
13번 〈백조〉는 이 곡의 심장이라 뒤에서 따로 살펴보고, 여기서는 마지막 곡으로 건너뜁니다. 피날레에서는 앞서 지나간 동물들이 우르르 되돌아옵니다. 야생 당나귀의 질주하는 음계, 암탉의 꼬꼬댁, 캥거루의 통통 뛰는 리듬이 차례로 다시 등장하며 한바탕 잔치를 벌입니다. 마지막에는 당나귀 울음소리가 다시 튀어나오며 곡이 끝납니다. 진지한 마무리 대신 익살 한 방으로 문을 닫아 버리는, 이 곡다운 퇴장입니다.
💡 사실은요 — 흔히 이 곡을 ‘아이들을 위해 쓴 음악’으로 압니다. 하지만 원래 관객은 사육제 무렵의 사적인 모임에 모인 어른들이었고, 웃음의 핵심은 남의 곡·자기 곡을 알아듣는 데서 나오는 음악 안쪽 농담이었습니다. 어린이 입문곡이라는 자리는 후대에 해설과 그림, 낭송을 곁들인 공연·음반이 퍼지면서 붙은 것으로 봅니다.
딱 한 곡, 〈백조〉만 세상에 내보낸 이유
13번 〈백조〉는 이 모음곡의 예외입니다. 첼로 한 대가 길고 우아한 선율을 노래하고, 두 대의 피아노는 그 아래에서 잔물결처럼 규칙적으로 흔들립니다. 장난도 인용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아름다운 곡입니다. 앞의 열두 곡이 낄낄거리며 남을 흉내 내는 동안, 〈백조〉만은 아무도 흉내 내지 않고 오롯이 자기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물 위에서는 미끄러지듯 고요하지만 물 밑에서는 쉼 없이 발을 젓는 백조의 모습이 소리로 옮겨진 듯합니다. 생상스가 열네 곡 중 유일하게 생전 출판을 허락한 곡도 바로 이 〈백조〉였습니다. 1887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열세 곡은 왜 막았을까요. 이유는 앞에서 본 생상스의 자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진지한 작곡가로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교향곡과 오페라, 협주곡으로 프랑스 음악의 품격을 세우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 그에게 남의 곡을 비틀고 평론가를 당나귀로 그린 이 장난 모음곡은 위험한 작품이었습니다.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평생 쌓아 온 이름이 우스워질까 봐,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전체 출판과 공개 연주를 금지했습니다. 정작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을 평가하는 어른들의 눈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아낀 〈백조〉는 곧 그의 손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1905년, 안무가 미하일 포킨이 이 선율에 짧은 발레를 붙였고, 전설의 무용수 안나 파블로바가 무대에 올렸습니다. 죽어 가는 백조가 마지막으로 날개를 파닥이는 이 2분짜리 춤 〈빈사의 백조〉를, 파블로바는 평생 수천 번 췄습니다. 생상스의 첼로 선율은 이제 곡보다 그 춤으로 먼저 떠오르는 음악이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얄궂습니다. 열네 곡 가운데 유일하게 웃음기를 뺀 진지한 곡이, 결국 이 사육제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동물의 사육제〉라는 제목은 몰라도 〈백조〉의 첫 소절은 안다는 경우가 흔합니다. 장난으로 가득한 모음곡 한가운데에서, 딱 한 곡의 진심이 나머지 열세 곡의 농담을 모두 합친 것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첼로가 첫 음을 길게 끌 때, 그 아래에서 두 피아노가 만드는 물결에 귀를 두세요. 첼로가 백조라면 피아노는 호수입니다.
죽고 두 달 뒤에야 오른 무대
봉인은 그가 눈을 감을 때까지 풀리지 않았습니다. 생상스는 1921년 12월 16일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유언처럼 지켜 온 금지가 풀리자 곡은 곧바로 무대로 나왔습니다.
공개 초연은 1922년 2월 25일 파리에서 열렸고, 콜론 관현악단이 가브리엘 피에르네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겨우 두 달 남짓 뒤였습니다. 사적인 파티에서 처음 울린 1886년부터 헤아리면, 이 곡은 36년 만에야 정식으로 공개된 겁니다. 한 곡이 작곡가의 뜻 때문에 이렇게 오래 묶여 있다가 그가 떠난 직후에야 세상 빛을 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생상스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평판이 우스워지기는커녕, 이 곡은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 됐습니다. 진지한 대작들은 전문가들의 관심 속에 남았고, 정작 대중의 귀에 오래 남은 것은 그가 부끄러워한 이 장난이었습니다.
어쩌면 생상스는 자기 곡을 잘못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 곡을 ‘진지함을 해치는 흠’으로 봤지만, 후대는 ‘진지한 대가도 이렇게 웃을 줄 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재치는 그의 격을 떨어뜨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완벽한 대작만 남겼다면 존경은 받았겠지만 이렇게 사랑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며칠 동안 재미로 끄적인 이 열네 곡이, 평생 공들인 어떤 곡보다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남기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곡의 가장 큰 반전이 있습니다. 작곡가가 자신의 진지한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 숨긴 이 장난은, 지금은 많은 아이들이 클래식이라는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일 때 만나는 문이 됐습니다. 140년 전 파리의 좁은 살롱에서 어른들끼리 웃으며 듣던 음악 농담은, 오늘날 어린이 음악회와 교실에서도 자주 들리는 클래식이 됐습니다. 감추려던 곡이 가장 사랑받는 곡 가운데 하나가 된, 흔치 않은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음악의 격을 평생 지키려 한 사람의 이름을 후대에 또렷이 각인시킨 것은, 정작 그가 가장 가볍게 여긴 이 장난이었습니다.
동물원을 나와 스크린으로
출판이 허락된 뒤, 이 곡은 작곡가가 걱정했던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진지한 콘서트홀에만 머무르지 않고 아이들의 방과 극장, 교육용 음반 속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는 낭송판이었습니다. 미국 시인 오그던 내시가 각 동물에 익살스러운 짧은 시를 붙였고, 성우가 곡 사이사이에 그 시를 읽어 주는 공연과 음반이 널리 자리 잡았습니다. 음악과 말이 번갈아 나오면서 아이들은 해설을 듣는다는 부담 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듯 이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곡은 영상 속에서도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디즈니는 2000년 〈판타지아2000〉에서 한 장면 전체를 이 곡의 피날레로 꾸몄습니다. 요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괴짜 플라밍고 한 마리가 진지한 동료들 사이에서 혼자 장난을 치는 이야기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노는 새를 그린 이 장면은, 어른들 눈치를 보며 몰래 장난기 어린 음악을 썼던 생상스와도 어딘가 닮았습니다. 그 밖에도 이 곡의 여러 대목은 지금도 광고와 영화, 교육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백조〉는 발레와 첼로 앙코르 무대의 단골이 됐고, 〈수족관〉의 몽롱한 반짝임은 영상 속 신비로운 장면마다 배경처럼 흘러나옵니다. 정작 작곡가 본인은 원치 않았을 방식으로, 이 곡은 그의 어떤 대작보다 많은 사람의 귀에 닿고 있습니다.
결국 이 곡은 클래식이 어렵고 근엄하다는 편견을 가장 부드럽게 풀어 주는 입문곡이 됐습니다. 사자와 코끼리라는 익숙한 이름으로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어떤 색깔과 성격을 내는지 자연스럽게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첼로가 노래하는 소리, 플루트가 날아다니는 소리, 클라리넷이 멀리서 뻐꾸기를 흉내 내는 소리를 한 곡 안에서 차례로 만나게 됩니다.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귀가 먼저 악기들을 구별하게 됩니다. 작곡가가 체면을 지키려고 감춘 곡이, 오히려 클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계단이 된 셈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어, 《동물의 사육제》 초판 악보와 편곡 자료 (IMSLP)를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같은 곡이라도 접근은 꽤 다릅니다. 유머를 담백하게 다루는 연주, 두 대의 피아노를 앞세운 실내악적인 연주, 스타들이 모여 즉흥적인 재미를 살리는 연주처럼 성격이 다른 세 장을 골랐습니다.
참고 자료
- The Carnival of the Animals — Wikipedia (작곡 배경·초연·편성·악장별 인용)
- Le cygne (The Swan) — Wikipedia (생전 출판·빈사의 백조)
- Camille Saint-Saëns — Wikipedia (신동 데뷔·국민음악협회·아카데미)
- Le carnaval des animaux — IMSLP (원본 악보)
이어서 듣기 — 동물원 옆 놀이터로
〈동물의 사육제〉가 좋았다면, 위트와 그림 같은 상상력이 통하는 다음 다섯 곡을 이어서 들어 보세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