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Op.36 — 친구 14명 도촬, 100년 안 풀린 농담

친구 14명 도촬과 100년의 농담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Edward Elgar, 1857–1934)
곡명
주제에 의한 변주곡 ‘에니그마’, Op.36
(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Enigma’)
작곡 시기
1898–1899년
악장
주제 + 14개 변주

Theme — Andante
I. C.A.E. — L’istesso tempo
II. H.D.S-P. — Allegro
III. R.B.T. — Allegretto
IV. W.M.B. — Allegro di molto
V. R.P.A. — Moderato
VI. Ysobel — Andantino
VII. Troyte — Presto
VIII. W.N. — Allegretto
IX. Nimrod — Adagio
X. Dorabella — Intermezzo
XI. G.R.S. — Allegro di molto
XII. B.G.N. — Andante
XIII. *** — Romanza
XIV. E.D.U. — Finale
편성
Fl.2, Ob.2, Cl.2, Bsn.2 / Hn.4, Tp.3, Tb.3, Tu.1 / Timp, Bass Drum, Cymbals, Triangle / Organ / Strings
초연
1899년 6월 19일, 런던 St James’s Hall
지휘: Hans Richter
연주 시간
약 30분
헌정
“To my friends pictured within”

1934년, 에드워드 엘가가 입을 다문 채 죽었습니다. 1899년 작곡한 곡 한가운데에 자기만 아는 농담을 하나 묻어두고는, 35년 동안 정답을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직접 답을 물어본 친구 도라 페니에게는 한 줄만 던졌습니다 — “자네라면 알아맞힐 줄 알았는데.”

그 농담을 100년 동안 음악학자 여섯 명이 풀었다고 자기 책을 썼습니다. 후보에는 〈Auld Lang Syne〉도 있었고, 모차르트 〈레퀴엠〉도 있었고, 결국에는 원주율 π까지 들어왔습니다.

1898년 10월 21일, 우스터의 한 시간

1898년 10월 21일 저녁의 엘가는 만 41세, 무명이었습니다. 그날 우스터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종일 했고, 지친 몸으로 집 피아노 앞에 앉아 멍하니 손가락을 굴렸을 뿐입니다. 거실에 있던 아내 앨리스가 한 마디 던졌습니다. “에드워드, 그거 좋은 곡이네.”

엘가는 멈칫하고 되물었습니다. “어떻게 발전시킬까?” 그러고는 친구들 한 명씩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 푸는 친구 한 명, 문 쾅 닫는 친구 한 명, 비올라를 못 치는 학생 한 명, 그리고 친구네 불도그 한 마리. 그날 밤 14변주의 골격이 완성됩니다.

아내의 한 마디 한 시간이 영국 음악사를 바꿉니다. 18년 동안 무명이었던 시골 바이올린 선생이 다음 해 6월 런던에서 곡을 초연하고, 1902년 슈트라우스가 뒤셀도르프에서 그를 “최초의 진보적 영국 작곡가”라고 공개 선언하게 되니까요. 200년 만에 영국 작곡가가 유럽 대륙 인증을 받은 사건의 씨앗이 그 한 시간이었습니다.

친구 14명을 음악으로 도촬한 작곡가

한국어 해설 99%가 멈춰 있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14명의 친구를 음악적 초상화로 그렸습니다.” 점잖은 정의지만, 실은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엘가가 한 일은 초상화가 아니라 캐리커처였고, 캐리커처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친구들의 짜증나는 버릇을 음악으로 박제한 도촬이었거든요.

각 변주에 붙은 이니셜은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변주가 그 사람의 신체적 버릇·실수·짜증나는 습관을 음악으로 옮긴 단톡방 캐리커처에 가깝습니다. 사례 다섯 개를 봅시다.

변주 II — 손가락 푸는 친구

이니셜 H.D.S-P.는 피아니스트 휴 스튜어트-파월입니다. 그는 실내악 연주 직전마다 항상 같은 반음계 스케일로 손가락을 풀었던 모양입니다. 변주 II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워밍업이고요. 친구 한 명을 그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하지 않은 방법은, 그가 곡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는 그 1분짜리 의례를 변주 한 곡으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변주 IV — 30초짜리 문 쾅

이니셜 W.M.B.는 윌리엄 미스 베이커, 시골 신사였습니다. 손님 방에서 나갈 때 항상 문을 쾅 닫는 버릇이 있었고요. 변주 IV는 전체 14변주 중 가장 짧은 약 30초짜리인데, 마지막 화음의 강한 sf가 정확히 그 문 닫히는 소리입니다. 친구의 매너 부족을 30초 안에 음악으로 박제한 셈이죠.

변주 VI — 학생이 못 친 그 패시지

Ysobel은 엘가의 비올라 학생 이저벨 핏튼입니다. 변주 VI 안에는 비올라가 줄을 건너뛰는 까다로운 패시지가 들어 있는데, 이게 핏튼이 끝까지 못 친 실제 연습 과제입니다. 다시 말해, 스승이 자기 학생을 위로한 게 아니라 학생이 못 친 그 부분을 기념비로 만들어 영국 도서관에 헌납한 격입니다.

변주 X — 50년 동안 본인은 몰랐던 말더듬기

Dorabella는 도라 페니, 후일 도라 파웰. 살짝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변주 X 도입부의 헐떡이는 듯한 목관 악구는 그녀의 그 말투를 그대로 옮긴 겁니다. 그런데 정작 도라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1937년 회고록 『Edward Elgar: Memories of a Variation』을 쓰기 직전에야 누군가에게 듣고 알았다고 본인이 적었거든요. 자기 말투가 변주곡으로 박제된 사실을 50년 가까이 모른 채 즐겁게 그 곡을 듣고 다닌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변주 XI — 사람이 아니라 불도그

이니셜 G.R.S.는 글로스터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 조지 로버트슨 싱클레어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변주의 진짜 주인공이 아닙니다. 진짜 주인공은 그의 불도그 ‘Dan’입니다. 어느 날 Dan이 와이 강에 빠져 둑을 따라 헤엄친 뒤 짖으며 올라온 일이 있었고, 변주 XI 첫 마디가 강에 빠지는 첨벙, 마지막 마디가 둑에 올라와 짖는 그 순간입니다. Sinclair 자신은 이 변주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훗날 Sir 작위까지 받은 작곡가가, 친구의 변주곡 한 자리를 그 친구의 개에게 양보한 사건. 클래식 교과서가 차마 적지 못하는 사실 중 하나입니다.

먼저 들어볼 연주

Edward Elgar – Enigma Variations, Op.36: IX. (Nimrod)

🎬 Edward Elgar – Enigma Variations, Op.36: IX. (Nimrod)

Bernstein conducts Elgar – ‘Nimrod’ (“Enigma Variations”) – BBC Symphony Orchestra (1982)

🎬 Bernstein conducts Elgar – ‘Nimrod’ (“Enigma Variations”) – BBC Symphony Orchestra (1982)

Nimrod의 진짜 그 밤 — Jaeger가 거실에서 친 베토벤

변주 IX ‘Nimrod’에 대한 한국어 표준 설명은 이렇게 끝납니다. “친구 예거에게 바친 감동적인 추모곡.” 이 한 줄 때문에 이 곡의 진짜 무게가 절반 이하로 잘려 있습니다. Nimrod는 추모곡이 아닙니다. 자살을 입에 담은 작곡가를 친구가 거실에서 베토벤으로 살려낸 그날 밤의 음악적 헌사입니다.

1898년 어느 밤, 슬럼프에 빠진 엘가가 친구 아우구스트 예거에게 토로했다고 합니다. “브람스의 4번 같은 곡은 도저히 못 쓰겠다.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 예거는 묵묵히 듣다가 일어서서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그러고는 베토벤 〈비창〉 소나타 2악장 Adagio cantabile 첫 음형을 천천히 짚습니다. “베토벤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계속 썼다. 자네도 써라.” 바이올리니스트 W.H. 리드가 1936년 회고록 『Elgar As I Knew Him』에서 직접 옮긴 일화입니다.

Nimrod 첫 4마디를 베토벤 〈비창〉 2악장 첫 음형 옆에 나란히 놓아보면 압니다. 같은 곡이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베토벤이 친구의 손가락을 통해 엘가의 거실에 한 번 더 들어왔고, 엘가가 그 음형을 평생 잊지 못해 친구의 변주에 새겨 넣은 겁니다.

이름의 3중 농담도 짚어둡시다. Jaeger는 독일어로 ‘사냥꾼(Hunter)’. Nimrod는 창세기 10장 9절의 “주 앞의 강한 사냥꾼(mighty hunter before the Lord)”. 곡은 사냥꾼이 사냥감(슬럼프)을 잡은 사람을 위한 곡. 독일어와 성경과 사적 일화를 한 단어에 묶은 농담을 곡 제목으로 박은 겁니다.

예거는 1909년 결핵으로 49세에 떠납니다. 엘가는 1912년 〈The Music Makers〉 Op.69에서 Nimrod 주제를 다시 한 번 인용해 친구를 추모합니다. 그 친구가 1898년 거실에서 친 베토벤이 1934년 엘가가 죽고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장례식 BBC 중계까지 흘러간 셈입니다. 한 거실의 사담이 한 세기 만에 영국 비공식 제2국가가 되었습니다.

별표 ***의 주인공 — 아내 옆에 숨긴 첫사랑

변주 XIII에는 이니셜이 없습니다. 별표 세 개로만 표기됩니다. 한국어 해설은 보통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Lady Mary Lygon이 호주로 가는 배를 탄 시기라 멘델스존 〈고요한 바다와 순항〉을 인용했다.” 깔끔한 마무리고, 영국 정원처럼 점잖습니다. 그런데 1976년 이후 영미권 학계가 이 깔끔함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의심의 이름은 헬렌 위버입니다. 1884년 엘가의 약혼녀였고, 그를 차고 뉴질랜드로 떠난 첫사랑이며, 변주가 작곡된 1899년 시점까지도 엘가가 결코 잊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코라 위버의 2005년 책 『Elgar’s Other Lover』와 케네디의 2004년 개정판이 가설을 단단히 굳혔고, 영미권 표준 해설은 이제 “공식적으로 메리 리건이지만 진짜 모델은 헬렌 위버일 가능성이 더 크다”로 옮겨가는 중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무슨 뜻일까요. 엘가가 인생의 모든 친구를 모은 헌정곡 한가운데에, 아내 앨리스의 변주(C.A.E.)와 자기 자신의 변주(E.D.U.) 사이에, 별표 세 개로 첫사랑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곡 전체를 모은 묶음의 헌정사는 ‘To my friends pictured within’ — “내 친구들에게.” 아내가 곡 첫머리에 자기 변주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동안, 곡 한가운데 별표 세 개에는 자기가 모르는 이름이 묻혀 있었던 셈입니다.

100년째 안 풀린 농담 — Auld Lang Syne부터 원주율 π까지

곡 제목 ‘Enigma’는 작곡가 본인이 붙였습니다. 즉, 이 안에 수수께끼가 있다고 작곡가가 직접 광고한 셈입니다. 1929년 BBC 라디오 ‘Elgar on his own works’에서 엘가는 마지막으로 결정적 힌트를 흘립니다. “주된 인물(principal Theme)은 무대 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never appears).”

이 한 문장으로 100년 학계가 두 진영으로 갈라집니다. 한쪽은 ‘never appears’를 글자 그대로 받습니다. 변주 위에 다른 곡의 멜로디가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화성적으로 들어맞아야 한다는 뜻이고, 그 멜로디를 찾으면 정답이라는 진영입니다. 다른 한쪽은 비유로 받습니다. ‘주된 인물’은 멜로디가 아니라 침묵·우정·신·자기 자신 같은 추상이고, 그래서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진영입니다.

실재 멜로디 진영의 100년 후보전쟁 6선을 봅시다. 모두 단행본 또는 학술지에 실린 진지한 제안이며, 각자 자기 책 한 권을 자기 답이 정답이라는 결론으로 채웠습니다.

  • 〈Auld Lang Syne〉 (Roger Fiske, 1969) — 가장 오래된 정설 후보. 영미권에서 한동안 지지를 얻었습니다.
  • 〈God Save the Queen〉 (Joseph Cooper, 1991) — 영국 작곡가의 영국식 농담이라는 입론.
  • 〈Rule Britannia〉 (Theodore van Houten, 1976) — 위와 비슷한 노선의 다른 답.
  • 바흐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Hans Westgeest, 2007) — 가톨릭 신자 엘가가 루터 코랄을 숨긴 건 모순의 농담이라는 입론.
  • 모차르트 〈레퀴엠〉 ‘Recordare’ (Robert Padgett, 2009) — 죽은 친구를 떠올리는 곡이라는 가설.
  • 원주율 π = 3.14159 (Charles Santa, 2014) — 멜로디가 아니라 숫자라는 메타 가설. 진지하게 논문이 쓰였습니다.

여기서 살짝 의심해볼 시점입니다. 100년 동안 진지한 학자 여섯 명이 매번 자기 답이 정답이라고 책을 쓰는데, 그 답이 〈Auld Lang Syne〉부터 원주율 π까지 흩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어쩌면 처음부터 답이 없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엘가의 평생 trolling 가설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가 있습니다. 엘가는 변주 X의 도라 페니에게 1897년 87자짜리 squiggle 편지 〈Dorabella Cipher〉를 보냈는데, 이 편지는 미국 NSA 출신 암호분석가들이 달려들고 ACA(American Cryptogram Association) 미해결 사례 목록에 오른 채로 2024년 현재까지 공식 미해독입니다. 즉 엘가의 인생에는 도라 앞으로 보낸 미해독 암호 편지와 도라가 들어 있는 미해독 변주곡이 둘 다 존재합니다. 한 사람한테 평생 두 번이나 농담을 던지고는 답을 한 번도 안 내준 사람의 이력 같은 건, 1934년 그가 죽기 전에 답을 내줄 인격이 아니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도라 페니가 직접 답을 물었을 때 엘가가 던졌다는 한 줄을 다시 읽어봅시다. “자네라면 알아맞힐 줄 알았는데.” 답을 알려주는 사람의 어조가 아닙니다. 답이 없거나, 있어도 친구가 알아챌 만큼 사적이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정신병원 밴드마스터에서 Sir까지 — 18년 무명

Enigma 초연 시점인 1899년 6월 19일, 엘가는 만 42세 생일이 막 지난 작곡가였습니다. 그 시점까지 그가 어디서 뭘 해서 먹고 살았느냐. 한국어 자료가 한 번도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1879년부터 1884년까지 5년간, 엘가는 우스터 시 외곽 Powick County Lunatic Asylum 부속 관악대의 밴드마스터였습니다. 영국식 표현으로 풀면 정신병원 밴드 지휘자입니다. 연봉은 32파운드. 직무는 환자들과 직원들의 토요일 무도회용 폴카·콰드릴을 직접 작곡하고 지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그 5년 동안 환자 무도회용으로 쓴 자필 악보 5권 분량이 영국 도서관에 ‘Powick Asylum Music’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합니다. 즉 Sir Edward Elgar의 첫 정규 작곡 직장은 정신병원 환자 무도회 폴카 작곡가였다는 뜻입니다.

엘가의 처지는 외부자 그 자체였습니다. 영국 국교회가 표준이던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그는 가톨릭 신자였고, 왕립음악원이나 라이프치히 같은 정규 학력 대신 우스터 음악점 운영자의 아들이었으며, 정규 음악원을 졸업하지도 않았습니다. 종교·계급·교육 세 축에서 모두 변두리에 있었던 셈입니다.

그 18년 무명을 옆에서 견뎌낸 사람이 변주 I C.A.E.의 모델 캐롤라인 앨리스 로버츠입니다. 1889년 결혼 시점에 엘가 32세, 앨리스 40세. 9살 연상인 데다, 영국 육군 장성의 딸이 가톨릭 음악점 아들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가문 입장에서는 3중 스캔들이었습니다. 가족과 사실상 의절한 채 18년 무명 작곡가를 먹여 살린 결과물이 1899년 Enigma의 슈트라우스 인증입니다.

1920년 앨리스가 먼저 떠난 뒤, 엘가는 14년을 더 살았지만 대규모 신작은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1933년 BBC 인터뷰에서 그가 직접 했다는 말을 옮겨둡니다. “내 음악은 죽었다. 아내와 함께 죽었다.” 변주 I이 이 결혼의 여는 곡이었다면, 1934년 그의 죽음은 같은 곡의 닫는 마디가 됐다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1899년 9월 우스터 Three Choirs Festival에서 피날레(E.D.U.)에 96마디와 오르간 파트가 추가됩니다. 원래 끝은 짧고 어색했고, Jaeger가 강하게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엘가는 자필 스코어(BL Add MS 47900)에 직접 적었습니다. “A.J.J.[August Johannes Jaeger]에게 큰 빚을 졌다.” 베토벤 비창을 거실에서 쳐 준 친구가, 같은 곡의 마지막 96마디를 만든 산파이기도 했다는 얘기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 Nimrod 4분부터

30분 한 번에 못 듣겠다 싶으면 Nimrod 4분만 들으셔도 됩니다. 변주는 독립적이라 골라 들어도 곡의 90%는 통과합니다. 다만 한 번이라도 전체를 들어보고 싶다면 추천 순서가 있습니다.

1단계: Nimrod 단독 — 4분. 2단계: 변주 I C.A.E.(아내) → Nimrod → 변주 XIV E.D.U.(자기 자신) — 약 12분. 3단계: 주제 + 14변주 전체 — 약 30분. 두 번째부터는 친구 14명 단톡방 캐리커처라고 생각하고, 각 변주에서 “이 사람은 어떤 버릇이 있었을까”를 추리하면서 들으시면 곡의 절반 정도가 새로 열립니다.

변주 XIV E.D.U. 안에는 변주 I의 C.A.E. 주제와 변주 IX의 Nimrod 주제가 다시 인용됩니다. 즉 자기 자신의 변주 안에 아내와 친구를 동시에 새겨 넣은 셈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이 두 사람 덕분이다”라는 음악적 헌사입니다. 곡 전체를 한 번 다 듣고 나서 마지막 5분에 이 두 인용을 잡아내는 게 Enigma 감상의 가장 단정한 출구입니다.

추천 연주 영상 — Nimrod 1분 30초의 격차

Nimrod 한 곡의 템포가 영국 평론지에서 정기적으로 싸움이 나는 사안입니다. Boult 약 3:25, Solti 약 3:50, Slatkin 약 4:30, Barenboim 약 4:35, Colin Davis 약 5:00. 같은 곡 한 개 안에 1분 30초 격차가 납니다. 영국 평론지 〈Gramophone〉의 ‘Building a Library: Enigma Variations'(2014)는 이 격차가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라 “추모식이냐 작곡가의 우정 일화냐”의 정체성 싸움임을 짚었습니다.

  • Boult / LSO 1970, EMI — Nimrod 약 3:25. 엘가 본인이 1926년 HMV에 자기 곡을 약 3:30으로 녹음했으니, 작곡가 직속 템포에 가장 가까운 진영입니다. 다이애나 장례식 이후 굳어진 ‘추모곡 신화’에 가장 안 오염된 녹음이라 마음에 둘 만합니다.
  • Colin Davis / LSO Live — Nimrod 약 5:00. 1분 30초를 더 끕니다. 누구를 위한 1분 30초인가를 물으면, 작곡가가 아니라 듣는 우리를 위한 1분 30초라는 답이 나옵니다. 작곡가의 의도와 다르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할 권리도 듣는 쪽에 있습니다.
  • Barbirolli / Philharmonia 1962 — Nimrod 약 4:10. ‘표준’이라는 말은 보통 ‘평범하다’의 완곡어로 쓰이는데, 이 녹음은 표준이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 Barenboim / Staatskapelle Berlin — 비교군. 독일 오케스트라가 본 엘가는 무엇이 다른지를 한 번 듣고 가실 가치가 있습니다. 친구 14명을 외부인이 처음 만나는 듯한 초연감이 있습니다.
  • 엘가 본인 / HMV 1926 — 참고용. 작곡가가 자기 곡을 가장 잘 안다는 신화를 깨거나 강화하는 자료. 직접 들으시고 직접 판단하시는 게 가장 빠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아래 여섯 장면을 악보와 함께 따라가시면 곡의 절반 정도가 새로 열립니다.

  • 변주 IV(W.M.B.) 마지막 2마디 — 문 쾅 닫는 sf 화음
  • 변주 IX(Nimrod) 첫 4마디 + 베토벤 〈비창〉 2악장 첫 음형 비교
  • 변주 X(Dorabella) 도입부 목관 헐떡임
  • 변주 XI(G.R.S.) 첫 6마디 + 마지막 짖음
  • 변주 XIII(***) 멘델스존 〈고요한 바다와 순항〉 인용 클라리넷부
  • 주제 1~6마디 + 피날레(E.D.U.) 안의 C.A.E. + Nimrod 합성부 — 자기 헌사 시각화

자주 묻는 질문

수수께끼의 답은 결국 뭔가요? 누가 풀었나요?

100년 동안 공식 정답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Auld Lang Syne〉(Fiske, 1969), 〈Rule Britannia〉(van Houten, 1976), 〈God Save the Queen〉(Cooper, 1991), 바흐 〈내 주는 강한 성이요〉(Westgeest, 2007), 모차르트 〈레퀴엠〉 ‘Recordare'(Padgett, 2009), 원주율 π(Santa, 2014)까지 여섯 후보가 각자 자기 답이 정답이라는 책을 한 권씩 냈습니다. 엘가 본인은 1929년 BBC 라디오에서 “주된 인물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한 문장만 남기고, 1934년 입을 다물고 죽었습니다. 도라 페니가 직접 묻자 “자네라면 알아맞힐 줄 알았는데” 한 줄을 던진 게 끝입니다.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Edward Elgar, Public Domain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Alice Elgar, Public Domain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August Jaeger “Nimrod”, Public Domain

30분짜리 곡인데 끝까지 들어야 하나요?

Nimrod 4분만 들으셔도 곡의 90%는 통과합니다. 변주가 독립적이라 골라 들어도 됩니다. 다만 주제 → 변주 I(C.A.E.) → Nimrod → 변주 XIV(E.D.U.) 순서로 약 12분만 들으면 곡의 윤곽이 한 번에 잡힙니다. 변주 XIV 안에 변주 I과 Nimrod 주제가 동시에 인용되니까, 마지막 5분이 사실상 작곡가의 자기 헌사이기도 합니다.

Nimrod가 그렇게 유명한데 왜 베토벤 〈비창〉이랑 비교되나요?

Nimrod 첫 4마디가 베토벤 〈비창〉 소나타 2악장 Adagio cantabile 첫 음형의 변형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인용입니다. W.H. 리드의 1936년 회고록 『Elgar As I Knew Him』에 따르면, 슬럼프에 빠진 엘가에게 친구 아우구스트 예거가 거실 피아노로 비창 2악장을 직접 연주하며 “베토벤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계속 썼다, 자네도 써라”고 격려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Nimrod는 그 밤의 음악적 박제입니다. 단순 추모곡이 아니라, 자살을 입에 담은 작곡가를 친구가 살린 그날의 헌사입니다.

엘가가 진짜로 정신병원에서 일했나요?

사실입니다. 1879년부터 1884년까지 5년간 우스터 외곽의 Powick County Lunatic Asylum 부속 관악대 밴드마스터로 연봉 32파운드를 받았습니다. 직무는 환자와 직원 무도회용 폴카·콰드릴을 직접 작곡하고 지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5년간 쓴 자필 악보 5권 분량이 ‘Powick Asylum Music’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도서관에 현존합니다. Sir 작위까지 받은 작곡가의 첫 정규 작곡 직장이 정신병원 무도회 폴카였다는 뜻입니다.

변주 13의 별표 ***는 누구인가요? 정말 첫사랑인가요?

공식 헌정 대상은 호주로 가는 배를 탄 Lady Mary Lygon이고, 그래서 멘델스존 〈고요한 바다와 순항〉이 인용됐다는 게 표준 설명입니다. 그러나 1976년 이후 영미권 학계는 1884년 엘가의 약혼을 깨고 뉴질랜드로 떠난 첫사랑 헬렌 위버를 진짜 모델로 보는 가설을 점점 진지하게 받습니다. 코라 위버의 2005년 책 『Elgar’s Other Lover』, 케네디의 2004년 개정판이 가설을 굳혔습니다. 사실이라면, 아내 앨리스에게 헌정한 곡 한가운데에 별표 세 개로 첫사랑의 이름을 새겨 넣은 사건입니다.

추천 음반 한 장만 고른다면?

Boult / LSO 1970 EMI를 권합니다. 엘가 본인이 1926년 HMV에 자기 곡을 약 3:30 템포로 녹음했고, Boult의 Nimrod 약 3:25는 그 작곡가 직속 템포에 가장 가깝습니다. 1997년 다이애나 장례식 이후 굳어진 ‘추모곡 신화’에서 가장 자유로운 녹음이기도 합니다. 곡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1898년 거실에서 시작된 곡 본래의 무게를 가장 정직하게 전합니다.

Nimrod는 왜 영국 국장 음악이 됐나요?

원래는 “독일인 친구가 베토벤을 인용해 작곡가를 살린 거실 일화”에 불과한 곡이었습니다. 1909년 Jaeger가 결핵으로 49세에 떠난 뒤 엘가가 〈The Music Makers〉(1912)에서 다시 인용하며 추모 색이 입혀졌고, 1934년 엘가 본인 사망 이후 BBC가 추모 방송에 사용하면서 ‘추모곡’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장례식 BBC 중계가 결정타였고, 그 이후로는 영국 국가 행사·전쟁 추도식·올림픽 개막식까지 사실상 비공식 제2국가가 되었습니다. 한 거실의 사담이 한 세기 만에 국가 정체성으로 격상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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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람스 교향곡 4번 e단조, Op.98 — 엘가가 “도저히 못 쓰겠다”고 토로하던 그 곡
  • 엘가 첼로 협주곡 e단조, Op.85 — 1919년 초연. 앨리스 사망 직전 엘가의 사실상 마지막 대규모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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