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막스 브루흐
(Max Bruch, 1838–1920) - 곡명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작품번호 26
(Violin Concerto No. 1 in G minor, Op. 26) - 작곡 기간
- 1866년 작곡 · 1867년 개정
- 악장
- 3악장
I. Vorspiel: Allegro moderato (g단조)
II. Adagio (E♭장조)
III. Finale: Allegro energico (G장조)
1악장. 전주곡: 알맞게 빠르게
2악장. 느리고 부드럽게
3악장. 피날레: 힘차고 빠르게 - 편성
- 독주 바이올린,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 초연
- 초판 1866년 4월 24일, 코블렌츠 (브루흐 지휘 / 오토 폰 쾨니히슬로(Otto von Königslow) 독주)
개정판 1868년 1월 7일, 브레멘 (요제프 요아힘 독주 / 카를 마르틴 라인탈러 지휘) - 연주 시간
- 약 24분
1920년 10월, 베를린 근교 프리데나우. 여든둘의 작곡가가 빈손으로 눈을 감았더군요. 그가 평생 쓴 곡 가운데 단 하나가 전 세계 연주회장을 점령하고 있었는데도 그랬거든요. 그 곡의 자필 악보는 이미 대서양 건너 미국 어딘가로 팔려 나간 뒤였고, 그 대가로 가족이 받은 거라곤 휴지 조각이 된 독일 마르크 지폐 한 뭉치뿐이었답니다.
그 곡이 바로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입니다. 오늘날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무대에 올리고,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어, 이 멜로디 알아” 하고 흥얼거리는 그 곡이지요. 그런데 정작 작곡가 본인은 이 곡을 두고 이렇게 썼거든요. “이 협주곡을 더는 못 듣겠다. 내가 평생 이 곡 하나만 썼단 말인가?” 가장 사랑받는 곡을 쓴 사람이 어쩌다 그 곡을 저주하게 되었을까요?
쾰른의 부지런한 다작가, 그리고 한 곡의 그림자
막스 브루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짚고 가야겠네요. 1838년 쾰른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쉬지 않고 쓴 다작가였더군요. 교향곡 세 곡, 바이올린 협주곡 세 곡, 헤아릴 수 없는 합창곡과 가곡을 남겼고, 지휘대에도 부지런히 올랐거든요.
음악적으로는 고집 센 보수주의자였답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바그너가 음악의 문법 자체를 갈아엎고 있을 때, 브루흐는 끝까지 낭만주의의 ‘노래하는 선율’을 붙들었지요. 그래서 당대에는 “시대에 뒤처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하지만 바로 그 고집스러운 선율 감각이 이 협주곡을 영원히 살아남게 만든 까닭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브루흐라는 이름은 묘하게 납작하게 기억됩니다. 많은 분이 그를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하나 남긴 사람’ 정도로만 떠올리거든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억울한 평가예요. 이 곡 하나가 워낙 압도적이라 그렇지, 그는 결코 한 곡으로 운을 다 써 버린 작곡가가 아니었답니다. 오히려 문제는 정반대였어요. 너무 많이 썼는데, 그중 하나가 너무 유명해진 거죠.
그래서 이 글은 두 갈래로 흘러갑니다. 한쪽은 음악 그 자체예요. 왜 이 곡이 150년 넘게 사랑받는지, 세 악장을 어떻게 따라가며 들으면 되는지. 다른 한쪽은 그 음악 뒤에 깔린, 한 인간의 어이없을 만큼 불운한 이야기지요. 먼저 곡이 세상에 나오던 순간부터 시작해 볼까요? 놀랍게도 브루흐는 이 곡을 완성해 놓고도, 정작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부터 고민에 빠졌거든요.
이걸 협주곡이라 불러도 될까
곡을 다 써 놓고 브루흐가 가장 먼저 한 고민은 뜻밖이었더군요. “이걸 협주곡(Concerto)이라 불러야 하나, 아니면 환상곡(Fantasy)이라 불러야 하나?”
왜 이런 걸 고민했을까요? 보통 협주곡의 1악장은 격식 있는 소나타 형식을 갖추거든요. 주제를 내놓고, 발전시키고, 다시 불러오는 정해진 틀이지요. 그런데 브루흐의 1악장은 그 틀을 따르지 않았답니다. 제목부터가 그냥 ‘1악장’이 아니라 ‘전주곡(Vorspiel)’이었어요. 오케스트라가 나직이 깔리면 바이올린이 즉흥적으로 읊조리듯 들어오고, 정식 악장이라기보다 뒤에 올 무언가를 위한 긴 머리말처럼 흘러가는 겁니다. 게다가 이 1악장은 끝나지도 않고 쉼표 없이 곧장 2악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더군요. 악장 사이 박수 타이밍을 노릴 틈조차 주지 않는 구조였던 셈입니다.
1866년의 청중에게 이건 꽤나 낯선 일이었거든요. 협주곡이라면 으레 오케스트라가 한참 서주를 깔고, 독주자가 등장해 거창하게 첫 주제를 선언하는 게 공식이었지요. 그런데 브루흐는 그 공식을 건너뛰고, 독주 바이올린을 거의 즉흥처럼 곡 안으로 슬쩍 들여보냅니다. 형식의 격식보다 ‘곡이 시작되는 그 느낌’을 택한 거예요. 구식이라던 브루흐가 정작 곡의 입구에서는 누구보다 과감했다는 게,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대목이랍니다.
1악장이 이렇게 독립적이지 않으니 브루흐는 “이게 과연 협주곡이 맞나”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요제프 요아힘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요아힘의 대답은 명쾌했더군요. “나는 ‘협주곡’이라는 제목이 충분히 타당하다고 봅니다. ‘환상곡’이라 부르기엔, 뒤의 두 악장이 너무 완성도 높고 대칭적으로 짜여 있거든요.”

이 한마디가 음악사를 바꿨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어쨌든 브루흐는 제목을 ‘협주곡’으로 확정했고, 그 덕에 우리는 이 곡을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라 부르게 된 셈이지요. 그런데 1악장이 파격이라는 말은, 뒤집으면 이 곡이 첫 음부터 듣는 사람을 곧장 끌고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파격의 형태를 잡기까지, 브루흐는 곡을 한 번 통째로 무너뜨렸다 다시 쌓아야 했더군요.
두 번 태어난 협주곡
이 곡은 사실 브루흐 혼자 쓴 곡이 아닙니다. 1866년 4월, 코블렌츠에서 초판이 처음 울렸을 때 브루흐는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박수는 받았지만 그의 귀에는 어딘가 어색하게 들렸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곡을 통째로 다시 손보기로 한 거죠.
여기서 브루흐의 진면목이 드러나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초연도 무사히 치렀겠다, 그냥 출판해 버리고 다음 곡으로 넘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브루흐는 이미 무대에 올린 곡을 붙들고 꼬박 2년을 더 매달려요. 1악장의 흐름을 다시 짜고, 솔로 파트에서 어색하게 걸리는 자리를 하나하나 들어냈지요. 완성한 곡을 제 손으로 다시 부수는 일은 작곡가에게 여간 괴로운 게 아니거든요. 그 고집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그 매끄러운 브루흐 1번은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기댄 사람이 바로 요아힘이었습니다. 작곡가가 머릿속에서 그린 선율과, 그 선율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위에서 실제로 울리는 소리는 다른 법이거든요. 손가락이 닿지 않는 음정, 활이 어색하게 꺾이는 자리,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소리가 죽는 패시지. 요아힘은 그 모든 걸 짚어 가며 솔로 파트를 다듬었답니다.
꼬박 2년에 걸친 개정 끝에, 1868년 1월 브레멘에서 요아힘이 직접 활을 잡고 개정판을 초연했지요. 브루흐는 이 곡을 요아힘에게 헌정했고, 편지마다 그의 공헌을 거듭 강조했더군요. 작곡가가 연주자의 손을 이렇게까지 대놓고 인정하고 헌정까지 얹은 경우는 음악사에 흔치 않지요. 오늘 우리가 듣는 그 매끄러운 솔로 파트는, 작곡가의 펜과 연주자의 활이 함께 빚어낸 결과인 까닭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공동 작업이었던 셈이에요. 브루흐가 멜로디와 구조라는 뼈대를 세우면, 요아힘이 그 위에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살을 입힌 거죠. 그래서 이 곡의 솔로 파트는 유난히 ‘바이올린답게’ 들립니다. 손에 착 붙고, 활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어려운 대목조차 무리 없이 빛나거든요. 머리로만 작곡한 협주곡과 손으로 다듬은 협주곡의 차이가, 바로 이 매끄러움에서 갈리는 거예요.
두 번 태어난 곡. 이렇게 다듬어진 협주곡이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 이제 본격적으로 곡 속으로 들어가 볼 차례네요. 마치 중계방송을 하듯, 활이 어디서 머뭇거리고 어디서 폭발하는지 악장별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1악장: 머뭇거리다 폭발하는 전주곡
팀파니가 멀리서 울리고, 목관이 안개처럼 깔립니다. 그 위로 바이올린이 들어오는데, 당당하게 주제를 외치는 게 아니더군요. 무언가를 더듬듯 짧은 악구를 툭 던졌다가 거두기를 반복하거든요. 마치 무대에 오른 연주자가 첫마디를 어떻게 꺼낼지 망설이는 것 같지요.
이 머뭇거림이 핵심입니다. 그러다 오케스트라가 한 번 크게 받쳐 주는 순간, 바이올린은 비로소 g단조의 그 격정적인 첫 주제를 활짝 펼쳐 내거든요. 듣는 포인트는 딱 하나예요. “언제 터지나”를 기다리며 들으세요. 1악장은 그 긴장과 폭발의 밀고 당기기로 짜여 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정식으로 끝맺지 않고, 슬그머니 음을 낮추며 2악장으로 흘러 들어가지요. 박수 칠 곳을 찾다 보면 어느새 느린 악장이 시작돼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건, 이 첫 주제가 한 번 터지고 나면 브루흐가 그걸 곱게 두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바이올린은 어두운 격정 위에서 몸을 비틀듯 음을 끌어올리고, 오케스트라는 그때마다 거대한 파도처럼 받아칩니다. 독주와 합주가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는 이 대목이야말로 1악장의 진짜 매력이거든요.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히 말하려다 자꾸 목이 메는 사람의 표정에 가깝지요.
한국 관객에게 이 곡을 각인시킨 연주가 있어요. 바로 정경화의 1976년 녹음입니다. 정트리오의 맏이이자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인 그가 앙드레 프레빈, 런던 심포니와 함께 남긴 이 음반은 지금도 브루흐 1번의 표준 중 하나로 꼽히거든요. 정경화 특유의 불꽃 같은 활이 이 곡의 머뭇거림과 폭발을 어떻게 그려 내는지, 직접 한번 들어 보시지요.
2악장 아다지오: 이 곡의 심장
많은 사람이 브루흐 1번에서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운다”고 말하는 악장이 여기예요. 평론가들도 흔히 이 곡의 심장이라 부르거든요. E♭장조로 옮겨 간 이 느린 악장에서, 바이올린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세 갈래의 선율이 서로 얽히며 끝없이 노래하는데,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을 만큼 직접적이고 아름답더군요.
브루흐라는 작곡가의 정체가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는 복잡한 구조를 쌓아 올리는 데 천재는 아니었어요. 대신 선율을 만드는 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같은 시대의 브람스가 치밀한 설계로 승부했다면, 브루흐는 그냥 노래로 승부한 셈입니다. 그게 약점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이 2악장 앞에서는 누구도 그를 얕볼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
구조를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첫 번째 선율은 바이올린이 중음역에서 나직이, 거의 혼잣말처럼 시작합니다. 두 번째 선율은 그 위에 한 겹 더 따뜻한 노래를 포개고요. 그러다 세 번째에 이르면 바이올린이 가장 높은 음역까지 올라가, 오케스트라가 두텁게 받쳐 주는 한가운데서 곡 전체의 절정을 길게 토해 냅니다. 그 한순간을 위해 앞의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여 온 거예요. 한 번에 다 들리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여러 번 듣다 보면 “아, 여기를 위해 앞에서 그렇게 뜸을 들였구나” 싶은 지점이 분명히 찾아오거든요.
이 악장을 들을 때마다 저는 브루흐라는 사람이 조금 안쓰러워집니다. 평생 ‘구식’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가 끝내 놓지 않은 건 결국 이 노래하는 힘이었거든요. 새로운 화성과 새로운 형식을 좇던 동시대 사람들 틈에서, 그는 그저 아름다운 선율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였어요. 그리고 15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우는 건 바로 그 고집 앞에서지요. 유행은 지나가도 잘 만든 노래는 끝내 남는다는 사실을, 이 8분이 조용히 증명해 보이지요.
처음 듣는 분이라면 딱 한 가지만 해 보시길 권합니다. 멜로디를 따라가려 애쓰지 말고, 그냥 바이올린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몸을 맡겨 보세요. 이 악장은 분석하며 듣는 음악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게 두는 음악이니까요.
3악장 피날레: 집시의 불
2악장의 눈물을 채 닦기도 전에 오케스트라가 강렬하게 치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이 들고나오는 3악장 주제는, 한마디로 불꽃이에요. 헝가리 집시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격렬한 리듬, 두 줄을 동시에 켜는 중음주법(더블 스톱)의 화려함, 점점 빨라지는 가속이 끝까지 몰아붙이거든요.
여기엔 요아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답니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요아힘은 그 지역 특유의 춤곡 어법에 누구보다 밝았고, 브루흐가 솔로 파트를 다듬는 동안 그의 손길이 이 악장 곳곳에 깊이 닿았던 까닭입니다.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묘기를, 그러나 천박하게 흐르지 않게 펼쳐 보이는 악장이지요. 앞서 1악장의 머뭇거림을 기억한다면, 이 마지막 악장의 거침없는 질주가 얼마나 먼 길을 달려온 것인지 새삼 느껴질 겁니다.

특히 더블 스톱이 쏟아지는 후반부를 눈여겨들어 보세요. 바이올린 한 대가 마치 두 대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활이 두 줄을 동시에 긁으면서 선율과 화음을 한꺼번에 그려 내는 건데, 듣기엔 신나도 연주자에게는 손가락이 타들어 가는 고비랍니다. 무대 위 연주자의 표정이 이 대목에서 가장 사나워지는 이유가 그거예요. 집시의 불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지요.
전곡을 한 번에 흐름으로 듣고 싶다면, 힐러리 한이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연주한 영상을 권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정교한 연주라 3악장의 묘기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또렷하게 들리거든요. 연주자별로 색깔이 어떻게 갈리는지는 글 뒤쪽에서 따로 다뤄 보지요.
가장 사랑받는 곡의 저주
이제 맨 처음의 비극으로 돌아갈 차례네요. 브루흐는 이 곡의 악보를 출판사 짐로크에 넘겼습니다. 그것도 푼돈을 받고 일시불로요. 당시 작곡가들이 흔히 그랬듯, 이 곡이 이렇게까지 오래 사랑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죠. 한 번 판 곡에서는 아무리 연주가 거듭돼도 그에게 돌아오는 돈이 한 푼도 없었거든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경제가 무너지자, 노년의 브루흐는 빈곤에 빠집니다. 마지막 자산이라곤 자기 손으로 쓴 이 협주곡의 자필 악보뿐이었어요. 그는 이 악보를 미국의 두 피아니스트 자매, 로즈와 오틸리 주트로에게 보냅니다. 미국에서 팔아 그 돈을 보내 달라는 부탁과 함께요. 하지만 자매는 악보를 팔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브루흐의 가족에게는 휴지 조각이 된 독일 지폐만 보냈더군요. 누구에게 얼마에 팔았는지는 끝내 입을 다물었고요. 브루흐는 1920년, 그 돈을 한 푼도 만져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자매가 그 악보를 실제로 처분한 건 그가 죽고 한참 뒤인 1949년이었지요.
잠깐 이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여든이 넘은 노작곡가가, 평생 가장 사랑받은 곡의 자필 악보를 손에서 떠나보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건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었거든요. 자기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한순간의 증거이자, 마지막 남은 재산이었지요. 그걸 낯선 대륙으로 부치며 그는 분명 작은 희망을 품었을 겁니다. 이 곡이 그토록 사랑받았으니 악보 한 부쯤은 가족을 건사할 값을 쳐 주겠지, 하고요. 그 희망이 휴지 조각으로 돌아왔다는 게 이 이야기에서 가장 쓸쓸한 대목이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시절엔 곡을 출판사에 한 번 넘기면 그걸로 끝인 일시불 계약이 흔했거든요. 브루흐도 이 곡의 출판권을 짐로크에 그렇게 헐값으로 넘겼고, 그 뒤로는 곡이 아무리 연주돼도 그의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이 없었던 거죠. 게다가 1차 대전 직후 독일 경제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어요. 마르크화는 날마다 값이 떨어졌고, 그가 미국에서 받기를 기대했던 돈이 가족에게 닿았을 무렵엔 이미 종잇값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가장 사랑받는 협주곡을 쓴 작곡가가 노년에 빈곤에 시달렸다는 이 아이러니는, 한 개인의 불운인 동시에 그 시대 음악가들이 빠져 있던 구조적 함정이기도 했던 까닭입니다.
이 곡이 너무 사랑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브루흐에게는 또 다른 저주였답니다.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세 곡이나 썼고, 스코틀랜드 환상곡과 콜 니드라이 같은 명곡도 남겼거든요. 그런데 세상은 오로지 이 g단조 1번만 찾았어요. 1903년 나폴리에서, 연주자들이 또 이 곡을 무대에 올리려고 기다리고 있자 그는 끝내 폭발하고 맙니다. “다들 악마에게나 가 버려라! 내가 똑같이 좋은 협주곡을 다른 것도 안 썼단 말인가!”
그럼에도 이 곡의 위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요. 1906년, 일흔다섯 생일을 맞은 요아힘은 독일 바이올린 협주곡의 계보를 이렇게 정리했더군요. “독일에는 네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다. 가장 위대하고 타협 없는 것은 베토벤의 것이다. 브람스의 것은 그에 맞먹는 진지함을 지녔다. 가장 풍요롭고 매혹적인 것은 막스 브루흐가 썼다. 그러나 가장 내밀한, 마음의 보석은 멘델스존의 것이다.”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 한 줄. 그게 바로 브루흐의 1번이에요. 평생 그 그늘을 원망했고, 그 곡으로 돈 한 푼 만지지 못했으며, 자기가 그것 말고도 좋은 곡을 썼다고 끝까지 항변했던 사람이 남긴, 가장 사랑받는 단 하나의 곡. 어쩌면 이 아이러니까지 끌어안아야 브루흐 1번은 비로소 완성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곡, 다른 온도 — 추천 음반
브루흐 1번은 워낙 자주 연주돼서 음반이 수백 종에 달합니다. 그런데 같은 악보를 두고도 연주자마다 곡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저는 세 연주를 권하는데,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이렇게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첫째는 정경화·프레빈·런던 심포니(1976)입니다. 한국 청취자에게는 이 음반이 거의 표준이지요. 정경화의 활은 곱게만 노래하는 법이 없어요. 음마다 날을 세워 깊게 눌러 켜고, 2악장의 그 아름다운 선율조차 루바토에 흐물흐물 기대지 않고 끝까지 팽팽하게 끌고 가거든요. 듣다 보면 “이 사람 지금 곡이랑 싸우는 건가” 싶을 만큼 치열한데, 그게 이 곡의 격정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첫 음반으로는 망설임 없이 이걸 권해요.
둘째는 힐러리 한입니다. 정경화가 불을 뿜는다면 힐러리 한은 칼처럼 정교하지요. 비브라토를 절제하고 음정을 자로 잰 듯 맞춰 가는데, 격정적인 3악장의 더블 스톱에서도 음 하나 흐트러지지 않더군요. 곡의 짜임새를 또렷하게 따라가며 공부하고 싶을 때 이만한 연주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은 좀 울고 싶다” 하는 날엔 너무 단정해서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셋째는 야니네 얀선이에요. 정경화의 치열함과 힐러리 한의 정교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연주랍니다. 템포를 넉넉히 풀고 음색을 어둡게 가져가는데, 그 덕에 2악장에서 가장 마음을 무너뜨리는 노래를 들려주거든요. 아래 영상으로 그 차이를 직접 느껴 보시지요.
제 권유는 이렇습니다. 첫 곡은 정경화로 전체 윤곽을 잡으세요. 그다음 같은 2악장만 힐러리 한과 얀선으로 다시 들어 보시고요. 같은 음표인데 온도가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실 겁니다. 클래식 감상의 진짜 재미는 바로 이 비교에서 시작되거든요. 한 곡을 여러 연주로 겹쳐 들을 때, 비로소 작곡가가 적어 둔 것과 연주자가 더한 것이 구분되기 시작하니까요.
악보와 함께 듣기
곡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악보를 펼쳐 놓고 듣는 단계로 넘어가 보세요. 귀로만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생기거든요. 이 곡은 저작권이 소멸된 공개 악보라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답니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악보 보기 (IMSLP)에서 총보와 파트보를 내려받을 수 있어요.
이 매혹에 빠졌다면, 다음 정거장
브루흐의 g단조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요아힘이 같은 줄에 세운 나머지 협주곡들로 발걸음을 옮겨 볼 차례네요. 클래식은 서로 연결된 이야기를 알게 될 때 그 울림이 한층 깊어지거든요. 아래 다섯 곡이 당신의 다음 정거장이 되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