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1월, 이 곡이 파리에서 처음 연주됐을 때 청중은 열광했습니다. 지휘자가 그 자리에서 곡을 한 번 더 들려줘야 했을 만큼 앙코르가 터졌습니다. 낯설고 불경하다며 노골적인 야유와 휘파람이 쏟아진 것은 초연이 아니라 그해 가을의 다른 연주였습니다. 지금은 10월 말만 되면 놀이공원이나 공포 영화 어딘가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7분짜리 곡이지만, 〈죽음의 무도〉는 파리 무대에 오른 첫해부터 열광과 야유를 함께 몰고 다닌 문제작이었습니다.
〈죽음의 무도〉는 흔히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는 공포 음악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섬뜩하게 느껴지는 소리는 거의 모두 의도된 장치입니다. 일부러 비틀어 조율한 독주 바이올린, 장례미사에서 빌려 온 선율, 뼈 부딪는 소리를 내려고 무대에 올린 낯선 타악기까지 모두 계산되어 있습니다. 생상스는 죽음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바이올린이 평범하게 들리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생상스는 나무와 금속으로 만든 악기에서 어떻게 뼈가 부딪히는 듯한 효과와 죽음이 춤판을 여는 소리를 끌어냈을까요.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부터 하나씩 들어 보겠습니다.

이 곡은 — 자정이 되자 죽음이 바이올린을 켜고, 해골들이 무덤에서 나와 춤을 추는 장면을 그린 7분짜리 교향시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곡 중반, 목관이 장례미사 선율 ‘진노의 날’을 밝고 경쾌하게 비틀어 부는 대목을 들어 보세요.
첫 감상 추천 — 샤를 뒤투아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Decca, 1981).
자정에서 시작된 시 한 편
이 곡은 악보가 아니라 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앙리 카잘리스는 의사로 일하면서도 장 라오르라는 필명으로 시를 썼습니다. 낮에는 환자를 돌보고, 밤에는 죽음과 환상을 노래한 시인이었습니다. 생상스는 카잘리스의 짧은 시 한 편에서 〈죽음의 무도〉의 첫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정이 되자 겨울 무덤가에 죽음이 나타나 발뒤꿈치로 박자를 맞추며 바이올린을 켭니다. 그 소리에 흰 해골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살아 있을 때 왕이었든 거지였든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뼈만 남은 이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돌고, 바람은 반주하듯 울부짖으며 춤은 점점 사나워집니다. 그러다 새벽 수탉이 울면 놀란 해골들이 서둘러 각자 무덤으로 흩어집니다.

‘죽음의 무도’라는 발상 자체는 카잘리스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중세 유럽에는 신분이 높든 낮든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은 자리로 끌려간다는 그림 전통이 있었습니다. 해골이 교황, 황제, 농부의 손을 잡고 줄지어 춤추는 장면은 그 생각을 한눈에 보여 주었습니다. 카잘리스는 이 오래된 이미지를 19세기 시의 언어로 다시 불러왔습니다.
15세기 무렵에는 이런 죽음의 무도 그림이 유럽 여러 지역의 교회와 묘지 벽에 그려졌습니다. 파리의 이노상 묘지, 곧 당시 도심의 큰 공동묘지에 그려진 벽화가 특히 유명했고, 독일과 스위스에도 비슷한 벽화와 판화가 남아 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그림만 보면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흑사병과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는 경고는 아주 현실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카잘리스의 시에서 특히 생생한 대목은 죽음이 직접 바이올린을 켜고 해골들이 그 장단에 맞춰 춤춘다는 장면입니다. 왕이든 거지든 뼈만 남으면 다 똑같이 어울려 춤춘다는 오래된 메시지에, 19세기 특유의 오싹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상상력이 덧씌워졌습니다. 생상스가 음악으로 옮기고 싶어 한 것도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생상스는 1872년, 이 시에 먼저 가락을 붙였습니다. 성악가가 부르고 피아노가 반주하는 짧은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2년 뒤 생상스는 이 노래를 관현악곡으로 다시 씁니다. 사람이 부르던 선율은 독주 바이올린이 맡고, 피아노 반주는 오케스트라의 여러 음색으로 커졌습니다. 이 변화가 곡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이제 죽음의 노래를 대신 부르는 것은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죽음이 직접 켜는 바이올린이니까요.
1872년의 원래 가곡판도 지금 음반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 목소리가 부르는 죽음의 무도를 들어 보면 생상스가 왜 2년 만에 그 선율을 바이올린에 넘겼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래로 부르면 장면이 비교적 점잖게 정리되지만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면 뼈가 달그락거리고 죽음이 활을 긋는 그림이 훨씬 또렷해집니다. 성악에서 기악으로 옮긴 이 선택이 오늘 우리가 아는 〈죽음의 무도〉의 성격을 만들었습니다.
리스트에게 배운, 그림 그리는 음악
생상스가 왜 이런 곡을 쓰게 됐는지 알려면 먼저 프란츠 리스트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1874년의 생상스는 서른아홉 살이었고, 파리에서 이미 이름난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였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대작곡가 리스트를 깊이 존경했고, 실제로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생상스가 특히 주목한 것은 리스트가 개척한 새 관현악 형식, 곧 교향시였습니다.
교향시는 문학 작품, 그림, 전설처럼 음악 바깥에 있는 이야기를 한 곡의 큰 흐름으로 풀어내는 형식입니다. 여러 악장으로 나누기보다 한 곡 안에서 장면이 이어지듯 음악이 흘러갑니다. 그전까지 관현악곡이 주로 주제의 전개와 형식의 균형을 중시했다면, 교향시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음악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생상스는 1870년대에 이 형식으로 곡을 잇달아 썼고, 그 가운데 지금도 특히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 〈죽음의 무도〉입니다.
그러니 〈죽음의 무도〉는 단순한 유령 이야기가 아니라, 생상스가 새 형식으로 벌인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시 한 편의 장면을 소리로 얼마나 생생하게 옮길 수 있는지 보여 주려는 시도였습니다. 자정 종소리, 뼈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 죽음이 춤을 청하는 듯 일부러 어긋나게 맞춘 바이올린 조율, 마지막 수탉 울음까지, 생상스는 장면마다 뚜렷한 소리를 붙였습니다. 리스트가 이 곡을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것도 이런 인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개척한 형식을 후배가 어떻게 이어받았는지 알아본 리스트가 그 작품을 직접 건반 위에 옮긴 셈입니다.
악마를 부르는 조율법
여기서 생상스가 먼저 꺼내는 장치는 조율입니다. 바이올린에는 네 줄이 있고, 보통 가장 높은 줄은 ‘미(E)’ 음에 맞춥니다. 그런데 이 곡의 독주자는 그 줄을 반음 낮춰 ‘미플랫(E♭)’으로 맞춘 뒤 연주해야 합니다. 악기를 평소와 다르게 미리 조율해 두는 이런 방식을 스코르다투라라고 부릅니다. 노래방에서 키를 반음 내리듯 전체 높낮이만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생상스는 이 조율 하나로, 서양 음악에서 오래도록 불안하게 들린다고 여겨진 음정을 무대 위에 불러냅니다.
반음 낮춘 미플랫 줄과 그 아래 ‘라(A)’ 줄을 함께 그으면 두 음 사이 간격은 온음 세 개만큼 벌어집니다. 이 간격을 트라이톤이라고 하며, 악보상으로는 아주 불안하게 들리는 증4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음정은 흔히 ‘음악 속 악마’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 디아볼루스 인 무지카와 함께 소개됩니다. 귀에 걸리는 긴장감이 커서 안정된 울림을 중시하던 옛 음악 전통에서는 조심스럽게 다뤄졌습니다. 생상스는 바로 그 불안정한 간격을 죽음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에 배치했습니다.
실제 무대에서 독주자는 곡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줄을 낮춰 둔 채로 나섭니다. 정확한 조율이 기본인 바이올린 연주에서 한 줄을 일부러 낯선 위치에 놓는 셈입니다. 그 어긋남이 죽음의 첫 등장에 필요한 낯선 색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독주 바이올린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 소리는 어딘가 어긋나 있습니다. 아름답게 다듬은 선율이라기보다 긁히고 비틀린 울림에 가깝고, 초연 당시 관객에게도 이 대목은 꽤 낯설고 거슬리게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생상스가 노린 효과였습니다. 죽음의 등장은 곱고 안정된 소리보다, 균형이 살짝 무너진 소리에서 더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 감상 포인트 — 곡은 하프의 조용한 반복으로 시작하고, 곧 독주 바이올린이 죽음의 춤을 여는 두 음을 들려줍니다. 매끈하게 정리되지 않고 살짝 어긋나 들리는 그 두 음이 스코르다투라로 만든 ‘악마의 음정’입니다.
뼈로 만든 실로폰, 하프로 친 자정
곡의 맨 앞에서는 죽음의 바이올린보다 먼저 하프가 들립니다. 하프는 딱 한 음(D)을 열두 번 튕기며 자정을 알리는 시계 종소리를 만듭니다. 열두 번이 모두 울리고 나서야 비로소 죽은 자들의 시간이 열립니다.
해골이 춤추는 장면에는 뼈가 서로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필요했습니다. 생상스는 그 효과를 위해 당시 관현악에서 거의 쓰이지 않던 실로폰을 끌어들였습니다. 실로폰은 나무 음판을 말렛으로 치는 타악기인데, 그 마르고 딱딱한 음색이 뼈마디가 달그락거리는 느낌을 선명하게 냈습니다. 지금은 익숙한 악기지만, 1870년대 파리 관객에게 오케스트라 한복판에서 튀어나온 이 건조한 소리는 낯설고 기괴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생상스는 이 짧은 곡 안에 놀랄 만큼 다양한 악기 색채를 넣었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하프와 뼈를 그리는 실로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관과 팀파니는 춤의 무게를 받치고, 트라이앵글과 심벌즈는 광란의 순간을 번쩍이게 합니다. 7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이 모든 소리는 필요한 순간마다 또렷하게 앞으로 나옵니다. 길이는 짧지만 결코 가볍게 들을 곡이 아닙니다.
생상스는 이 실로폰 가락을 나중에 다시 꺼내 씁니다. 12년 뒤 쓴 〈동물의 사육제〉의 ‘화석’ 악장에서는 뼈다귀 춤의 선율이 거의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화석이 된 옛것들이 달그락거리며 깨어나는 대목에, 자신이 예전에 만든 해골 춤을 슬쩍 붙여 넣었습니다. 생상스는 죽을 때까지 발표를 막았던 〈동물의 사육제〉 안에서도 〈죽음의 무도〉의 해골 장난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7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나
이제 곡 전체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단악장이라 중간에 끊기지는 않지만, 곡 안에는 뚜렷한 장면 전환이 몇 번 들어 있습니다. 카잘리스의 시가 자정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듯 음악도 하룻밤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종이 울리고, 죽음이 등장하고, 춤이 달아오르다가 수탉이 울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아래 연주를 틀어 놓고 읽으면 이 짧고 완결된 밤의 이야기가 훨씬 또렷하게 들립니다.
자정의 종과 죽음의 등장
하프가 열두 번 울리며 자정을 알립니다. 곧이어 앞에서 말한 그 어긋난 두 음이 들리고, 스코르다투라로 조율한 독주 바이올린이 들어옵니다. 죽음이 활을 들어 올리는 순간입니다. 이때 소리가 곱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라, 생상스가 일부러 비틀어 놓은 효과입니다. 도입부는 큰 소리로 밀어붙이지 않고 종소리와 삐걱거리는 몇 음만으로 먼저 서늘한 분위기를 세웁니다.
첫 번째 춤과 두 번째 선율
바이올린이 왈츠 리듬을 이끌고 나오면 춤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플루트가 첫 번째 주제를 내놓고, 곧 현악기들이 더 미끄러지듯 흐르는 두 번째 선율을 이어받습니다. 두 주제가 번갈아 나오면서 무덤가의 무도회에는 해골들이 하나둘 더 모여듭니다. 여기까지는 아직 기괴함보다 우아함이 더 앞섭니다.
이 두 선율은 곡 내내 모습을 바꾸며 되돌아옵니다. 조용히 슬며시 나타날 때도 있고,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꺼번에 터뜨릴 때도 있습니다. 같은 춤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돌아올 때마다 인원이 늘고 열기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짧은 곡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춤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을 때 실로폰이 끼어드는 지점을 놓치지 마세요. 딱딱한 나무판을 두드리는 듯한 그 마른 소리가 바로 뼈가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장례미사에서 빌려온 선율
곡 중반, 목관악기가 낯익은 선율을 꺼냅니다. ‘진노의 날(Dies irae)’입니다. 죽음과 최후의 심판을 노래하는 라틴어 성가로, 오랫동안 가톨릭 장례 전례와 함께 떠올려진 선율입니다. 원래는 무겁고 엄숙한 노래인데 생상스는 이 선율을 밝은 장조로 바꾸고 춤곡 박자에 실어 버립니다. 죽음이 자기 장례식 노래를 신나게 연주하는, 아주 고약한 농담입니다.
‘진노의 날’은 서양 음악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선율입니다. 베를리오즈부터 리스트, 라흐마니노프까지 많은 작곡가가 죽음을 그릴 때 이 가락을 끌어다 썼습니다. 듣는 사람이 가사를 몰라도 어딘가 불길하게 느끼는 데는 이런 오랜 내력이 있습니다. 생상스는 그 무거운 상징을 가져와 정반대로 가볍고 신나게 뒤집어 놓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하기보다 대놓고 조롱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절정, 그리고 수탉의 울음
두 주제와 ‘진노의 날’이 뒤엉키며 춤은 광란으로 치닫습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소용돌이처럼 몰아붙이는 이 대목이 곡의 절정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오보에가 짧은 울음소리를 냅니다. 수탉 울음입니다. 새벽이 왔다는 신호가 들리자 해골들은 춤을 멈추고, 음악도 순식간에 힘을 잃습니다. 마지막에는 독주 바이올린만 남아 지친 듯 몇 음을 켜고 죽음도 물러갑니다. 해골들이 흩어지는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침이 왔기 때문입니다.
초연은 앙코르, 야유는 그 뒤에
1875년 1월 24일, 지휘자 에두아르 콜론이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이 곡을 처음 무대에 올렸습니다. 콜론은 당시 프랑스의 새 음악을 앞장서 소개하던 인물입니다. 그가 이끄는 연주회는 젊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신작이 자주 처음 울리는 자리였고, 〈죽음의 무도〉처럼 도발적인 곡이 소개되기에도 잘 맞았습니다. 초연에서는 앙코르 요청이 나왔고, 콜론은 곡을 한 번 더 연주했습니다. 다만 이 곡을 향한 반응이 늘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후 연주에서는 휘파람과 야유가 나오기도 했고, 한 곡을 두고 청중의 반응이 뚜렷하게 갈렸습니다.
청중이 불편해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생상스는 장례미사에서 떠올릴 법한 ‘진노의 날’ 선율을 춤곡처럼 비틀었고, 바이올린을 평소와 다르게 조율해 일부러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여기에 관현악 한가운데서 뼈가 부딪히는 듯한 실로폰 소리까지 튀어나왔습니다. 당시 파리의 점잖은 청중에게는 하나같이 도발적인 장치였습니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장난스럽고 노골적으로 다뤄도 되는지, 그 자체가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도발로 받아들여졌던 요소들이 지금은 이 곡을 대표하는 매력이 됐습니다. 150년 사이에 청중이 음악을 듣는 기준이 달라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노의 날’ 왈츠와 실로폰의 뼈 소리는 낯선 충격이 아니라, 이 곡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개성입니다. 한때 야유를 낳았던 특징들이 이제는 〈죽음의 무도〉를 잊히지 않게 하는 표지가 됐습니다.
사실 초연 이후의 이런 엇갈린 반응은 생상스에게 아주 낯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형식과 악기법을 시도할 때마다 보수적인 파리 음악계의 경계심과 자주 마주했습니다. 〈죽음의 무도〉 역시 소재와 악기 사용 모두에서 당시의 관습을 건드린 곡이었으니, 반발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곡은 곧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콜론의 앙코르가 보여주듯, 불편해한 청중만큼이나 이 곡에 즉각 반응한 청중도 처음부터 분명히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곡은 이후 연주회 프로그램에 꾸준히 다시 올랐습니다. 논란이 있어도 다시 들려줄 만한 곡으로 받아들여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은 작품의 생명력으로 확인됐습니다. 〈죽음의 무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상스를 대표하는 관현악곡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영화와 광고, 공연장에서 죽음의 춤을 떠올리게 하는 선율로 자주 소환됩니다.
💡 사실은요 — 〈죽음의 무도〉는 생상스가 처음부터 관현악곡으로 새로 쓴 작품이 아닙니다. 출발점은 노래였습니다. 1872년 앙리 카잘리스의 시에 붙인 성악곡이 먼저였고, 1874년에 그 노래를 관현악으로 바꾸면서 성악 선율을 독주 바이올린에 넘겼습니다. 그래서 이 곡의 바이올린 선율은 단순한 효과음이 아닙니다. 원래 노래에서 목소리가 맡았던 이야기의 중심을, 관현악판에서는 바이올린이 대신 이끕니다.
해골이 무덤으로 돌아간 뒤
초연 때의 소란과 상관없이 이 곡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관현악곡으로 사랑받았을 뿐 아니라 피아노 무대에서도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용 편곡으로 먼저 길을 열었고, 20세기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1942년에 이를 바탕으로 한층 화려한 편곡을 만들었습니다. 호로비츠 판본은 관현악의 색채를 피아노 한 대로 되살리면서, 곡예에 가까운 기교까지 더한 편곡입니다. 지금도 피아니스트들이 앙코르에서 기량을 보여 주고 싶을 때 자주 고릅니다.
대중문화에서도 이 곡은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무성영화 시기부터 공포와 죽음을 다루는 장면에 붙었고, 이후 영화와 드라마, 만화, 게임에서도 반복해서 인용되었습니다. 영국 추리 드라마 〈조너선 크릭〉은 이 곡을 주제곡으로 썼습니다. 한국에서도 이 선율은 낯설지 않습니다. 놀이공원 유령의 집이나 공포 콘텐츠 배경음악에서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장난스럽고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바로 이 곡의 세계입니다. 특히 핼러윈이 되면 이 7분짜리 곡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됩니다. 자정, 해골, 춤이라는 이미지가 그 계절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생상스는 눈앞의 대상을 그냥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구조를 분석하고 계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르간을 연주했고, 천문학과 수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죽음의 무도〉에도 그런 성향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섭게 들리는 소리 하나하나에는 이유가 있고, 생상스는 그 소리를 어느 순간에 어떤 악기로 들려줄지까지 치밀하게 배치했습니다. 겉으로는 오싹한 공포물이지만, 안쪽에서는 정교한 시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곡입니다. 한때는 야유까지 몰고 다녔지만, 바로 그 계산된 장난기가 150년 뒤에도 우리가 이 곡을 다시 듣게 만드는 힘이 됐습니다.
결국 이 곡이 150년을 버틴 힘은 공포 그 자체가 아닙니다. 공포를 만들어 내는 방식의 영리함입니다. 소재는 죽음인데 태도는 유쾌하고, 장치는 기괴한데 짜임새는 치밀합니다. 공포와 위트가 한 곡 안에서 어색하지 않게 맞물리는 이 균형이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을 계속 끌어당깁니다. 그저 무섭기만 한 음악이었다면 핼러윈 시즌에 잠깐 소비되고 잊혔을지도 모릅니다. 클래식이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이 7분짜리 곡부터 틀어 봐도 좋습니다. 이야기가 선명하고, 자정의 종소리와 삐걱대는 바이올린, 해골의 춤을 알고 들으면 재미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생상스의 자필 악보와 1875년 출판사 뒤랑이 낸 초판 총보는 IMSLP의 죽음의 무도 악보 보기 (IMSLP) 페이지에서 원문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7분짜리 곡이라 부담 없이 여러 연주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소리가 선명해서 곡의 장면 전환이 잘 들리는 녹음부터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스코르다투라 바이올린의 비뚤어진 울림과 실로폰의 마른 소리, 중반의 ‘진노의 날’ 왈츠가 얼마나 능청스럽게 살아나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연주마다 개성이 확 드러납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영어) — Danse macabre (Saint-Saëns)
- IMSLP — Danse macabre, Op.40 (자필·초판 악보)
- Britannica — Camille Saint-Saëns
- The LiederNet Archive — 앙리 카잘리스 시 원문
이어서 듣기 — 죽음과 춤이 이어지는 다음 곡들
〈죽음의 무도〉에서 죽음의 이미지와 춤의 리듬, 생상스 특유의 재치를 함께 들었다면, 그 감각을 다른 각도에서 이어 갈 수 있는 다섯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