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 〈수상음악〉 — 화가 난 왕을 달랜 곡이라는 거짓말

수상음악보다 3년 먼저 두 배로 오른 연금 — 템스강 뱃놀이는 화해가 아니라 정치 쇼였습니다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
곡명
수상음악, HWV 348·349·350
(Water Music)
작곡 기간
1717년 (일부 악장은 그 이전)
악장
세 개의 모음곡
F장조 모음곡(HWV 348) — 9곡
D장조 모음곡(HWV 349) — 5곡
G장조 모음곡(HWV 350) — 4곡
편성
오보에, 바순, 리코더, 플루트, 호른, 트럼펫, 현 5부, 통주저음
초연
1717년 7월 17일, 런던 템스강
조지 1세의 뱃놀이 (배 위 악단 약 50명)
연주 시간
약 55분 (세 모음곡 전체)

이 곡은 — 1717년 여름, 조지 1세가 템스강에서 연 뱃놀이를 위해 헨델이 쓴 야외 관현악 모음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D장조 모음곡(HWV 349)의 ‘알라 혼파이프’. 트럼펫과 호른이 강물 위로 곧게 뻗어 나가는 순간이죠.

첫 음반 — 트레버 피노크 · 잉글리시 콘서트 (Archiv, 원전 연주)

화가 난 왕의 마음을 음악 한 편으로 돌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헨델이 옛 주인을 버리고 런던으로 도망쳤는데, 그 주인이 영국 왕이 되어 나타났고, 헨델은 강 위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용서를 받았다는 겁니다. 300년 동안 반복돼 온 감동적인 화해극입니다.

딱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음악이 강 위에 울리기 3년 전, 왕은 이미 헨델의 연봉을 두 배로 올려준 뒤였습니다. 화해할 사이가 애초에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헨델은 왜 하룻밤 사이에 50명짜리 악단을 배에 태워 템스강으로 내보냈을까요?

토머스 허드슨이 그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화
토머스 허드슨이 1756년에 그린 헨델. 손 옆에 놓인 악보는 《메시아》입니다.

왕을 화나게 하고 도망친 작곡가

이야기의 출발점은 1710년입니다. 스물다섯 살의 헨델은 독일 하노버의 궁정 악장 자리에 앉습니다. 궁정 악장은 그 궁에서 연주되는 음악 전부를 책임지는 자리, 요즘으로 치면 왕실 전속 음악감독쯤 됩니다. 헨델을 고용한 사람은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 선제후는 신성로마제국에서 황제를 뽑을 투표권을 가진 최고위 제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신입 악장이 취직하자마자 런던으로 출장을 떠납니다. 명목은 휴가였습니다. 1711년, 런던에서 헨델은 이탈리아 오페라 《리날도》를 올립니다. 런던을 위해 특별히 쓴 첫 이탈리아 오페라였는데, 이게 도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잠깐 하노버로 돌아왔다가 1712년에 다시 런던으로 건너갔고,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월급 받는 자리는 하노버에 두고, 몸은 런던에 눌러앉은 겁니다.

헨델의 선택을 이해하려면 당시 런던을 봐야 합니다. 18세기 초 런던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열광하던 도시였고, 흥행에 성공한 작곡가에게는 하노버 궁정 봉급과 비교가 안 되는 돈과 명성이 쏟아졌습니다.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에게 런던은 하노버보다 훨씬 큰 무대였습니다. 계약을 지키느냐, 기회를 잡느냐. 스물예닐곱의 헨델은 기회를 택했고, 그 대가로 옛 주인에게 등을 돌린 사람이 됐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헨델은 명백한 계약 위반자입니다. 주인을 두고 딴 도시에서 딴살림을 차렸으니까요. 그런데 하필이면 1714년, 영국 여왕 앤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 계승 순번이 돌고 돌아 하노버의 그 선제후에게 떨어집니다. 헨델이 버리고 온 바로 그 주인이 배를 타고 런던에 도착해 조지 1세로 즉위한 겁니다.

도망친 부하와 그를 쫓아온 주인이 같은 도시에서 다시 마주쳤습니다. 이보다 더 극적인 설정은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여기에 화해극 대본을 얹고 싶어 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왕은 이미 연봉을 두 배로 올려줬다

화해극이 성립하려면 왕이 헨델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라는 사건이 생기니까요. 문제는 날짜입니다. 기록을 한 줄씩 따라가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헨델은 조지 1세가 즉위하기 전부터 런던 왕실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1713년이었습니다. 그해 유럽의 오랜 전쟁을 끝낸 위트레흐트 조약이 맺어지자, 헨델은 이 평화를 기리는 감사 성가(테 데움과 주빌라테)를 씁니다. 여왕 앤은 이 곡과 자신의 생일 축가에 크게 만족해, 헨델에게 해마다 200파운드의 연금을 내려줬습니다. 궁정 작곡가 봉급에 맞먹는 큰 액수였습니다.

그리고 1714년 조지 1세가 왕이 된 뒤, 이 연금은 줄어들기는커녕 두 배로 뛰었습니다. 버리고 온 부하에게 벌을 내린 게 아니라, 오히려 상을 얹어준 겁니다. 즉위 전에 이미 총애를 받았고 즉위 직후 연봉이 두 배가 됐는데, 3년 뒤에 화해가 필요했다는 이야기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고드프리 넬러가 그린 영국 국왕 조지 1세의 초상화
고드프리 넬러가 그린 조지 1세. 하노버 선제후였다가 영국 왕이 된 인물입니다.

화해 이야기가 처음 활자로 등장한 곳은 1760년에 나온 헨델의 첫 전기입니다. 헨델이 죽은 이듬해에 출간됐으니, 정작 당사자는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 책은 “헨델이 왕의 눈 밖에 나 있었는데 수상음악 덕분에 다시 총애를 얻었다”고 적었습니다. 깔끔하고 감동적인 서사였습니다. 다만 3년 앞서 오른 연금이라는 사실 하나가 그 서사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이 이야기가 300년이나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잘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배신한 부하, 뒤쫓아 온 주인, 음악 한 편으로 이룬 용서.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진실은 대개 이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헨델은 기회를 좇아 런던에 남은 야심 찬 음악가였고, 왕은 그런 그를 처음부터 요긴하게 써먹은 정치가였습니다. 화해극보다 덜 감동적이지만, 이쪽이 실제로 일어난 일에 가깝습니다.

💡 사실은요 — 수상음악과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을 헷갈리는 분이 많습니다. 둘 다 야외 왕실 행사용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수상음악은 1717년 템스강에서 조지 1세를 위해, 불꽃놀이 음악은 32년 뒤인 1749년 그린파크에서 조지 2세를 위해 쓴 별개의 곡입니다.

1717년 7월 17일, 강 위의 하룻밤

화해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그날 밤 행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정치입니다. 조지 1세는 영어를 거의 못 하는 독일 출신 왕이었고, 런던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왕은 아들인 왕세자와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인기를 끌던 왕세자가 따로 사교 모임을 열어 사람을 끌어모으자, 왕에게도 맞불을 놓을 화려한 무대가 필요했다고 전해집니다.

강 위의 뱃놀이는 그런 무대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강변으로 몰려나와 구경하는, 그야말로 대형 옥외 광고판이었으니까요. 왕이 음악에 둘러싸여 강을 미끄러져 가는 광경은 어떤 연설보다 강력한 홍보였습니다. 헨델의 음악은 그 홍보의 배경음악이자 주인공이었습니다.

날짜와 시간까지 남아 있습니다. 1717년 7월 17일 수요일 저녁 8시경, 조지 1세는 화이트홀 궁전 앞에서 왕실 바지선에 올랐습니다. 목적지는 강 상류의 첼시. 뒤따르는 다른 배 한 척에는 악사 약 50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연주한 음악이 바로 수상음악입니다.

템스강 배 위에서 조지 1세와 헨델의 수상음악 연주를 그린 회화
19세기 화가 에두아르 하만이 상상해 그린 그날의 뱃놀이. 왕의 배 곁에서 음악이 울리는 장면입니다.

당시 런던 신문 《데일리 쿠란트》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런던의 한 조합 소속 바지선에 온갖 악기 50대가 실렸고, 이들은 램버스에서부터 내내 연주했다.” 같은 기사는 강을 구경 나온 배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강 전체가 사실상 배로 뒤덮였다”고 적었습니다. 왕은 그 음악이 마음에 들어 오르내리는 길에 곡 전체를 세 번이나 다시 연주하게 했습니다.

카날레토가 그린 18세기 템스강 위 배들의 행렬
카날레토가 그린 템스강의 행사 장면. 수상음악 당일은 아니지만, “강 전체가 배로 뒤덮였다”는 그날의 풍경이 이랬을 겁니다.

규모를 짐작하면 이 장면이 더 실감 납니다. 악사 50명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악보대도 제대로 세우기 어려운 조건에서 세 시간 넘게 연주했습니다. 강 양편에는 왕을 보려는 시민들의 배가 빽빽하게 몰려 물길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소리를 키워주는 벽도, 관객을 앉힐 좌석도 없는 강 한복판이 그날의 연주회장이었습니다.

돈을 댄 사람도 밝혀져 있습니다. 왕실 관리였던 킬만제크 남작이 이 뱃놀이를 자기 돈으로 열었고, 악사 비용으로만 150파운드를 썼습니다. 프로이센 외교관 프리드리히 보네가 남긴 기록에는 배에 실린 악기가 트럼펫, 호른, 오보에, 독일 플루트와 프랑스 플루트, 바이올린, 저음 현악기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내악에 어울리는 섬세한 악기 대신, 야외에서도 멀리까지 뻗는 소리로 골라 실은 편성입니다. 헨델은 연주 장소의 조건을 정확히 계산해 악기를 배치한 겁니다.

연주는 밤새 이어졌습니다. 곡 하나를 다 도는 데 한 시간쯤 걸렸는데, 왕은 첼시로 올라가기 전에 두 번, 돌아오는 길에 한 번을 들었습니다. 새벽 1시에는 강가 첼시에 있던 별장에 올라 늦은 저녁을 먹었고, 3시에 다시 배에 올라 4시 반쯤에야 세인트제임스 궁에 닿았습니다.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강 위에서 여덟 시간짜리 음악회가 열린 셈입니다.

물 위에서도 들리게 만든 악기, 호른

물 위에서는 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벽도 천장도 없으니 음악이 관객에게 도달하기 전에 공중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헨델은 멀리까지 곧게 뻗는 악기를 골랐습니다. 영국 오케스트라가 그때까지 거의 써본 적 없던 악기, 호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호른을 오케스트라의 기본 악기로 여기지만, 1717년 영국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호른은 사냥터에서 신호를 보내던 야외 악기였지, 연주회장 안에 들일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헨델은 이 사냥 나팔을 정식 관현악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호른이 배정된 F장조 모음곡(HWV 348)이 바로 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이 F장조 모음곡은 영국 관현악에서 호른을 가장 이른 시기에 당당히 불러들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효과는 지금 들어도 확실합니다. 서곡이 지나가고 호른이 처음 치고 들어오는 순간, 음악의 공기가 바뀝니다. 두 대의 호른이 서로 주고받으면 현악기가 그 사이를 채우고, 소리는 강 건너편까지 밀고 나갑니다. 실내에서 들어도 트인 느낌이 나는데, 하물며 물 위에서라면 그 개방감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세요.

이 선택은 뒤에 오는 음악가들에게도 길을 열어줬습니다. 헨델은 사냥터에서나 쓰던 신호용 악기가 정식 관현악의 목소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무대에서 증명했습니다. 오늘날 교향곡에서 호른이 서정적인 선율을 노래하는 장면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출발선에는 강 위에서 울린 이 수상음악이 있습니다.

배정된 F장조 모음곡(HWV 348) 전곡. 악보가 함께 흘러서, 호른이 어디서 치고 들어오는지 눈으로 짚어가며 듣기 좋습니다.

세 개의 모음곡, 세 가지 색

수상음악은 하나의 곡이 아니라 세 묶음으로 나뉩니다. F장조(HWV 348), D장조(HWV 349), G장조(HWV 350). 셋은 각기 주인공 악기가 다르고, 그래서 색깔이 확연히 갈립니다. 강 위에서 어떤 대목은 왕을 향해 크게 울렸고, 어떤 대목은 저녁 식탁 곁에서 나직이 흘렀습니다.

세 묶음을 모두 연주하면 한 시간 가까이 됩니다. 그래서 방송이나 광고에서는 화려한 몇 대목만 잘라 쓰는 경우가 많고, 정작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사람은 의외로 드뭅니다. 하지만 세 묶음을 순서대로 따라가면 그날 밤 강 위의 흐름이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화려한 D장조부터 나직한 G장조까지, 하룻밤의 시간표 그대로.

F장조 모음곡(HWV 348) — 호른이 여는 문

가장 규모가 큰 묶음입니다. 프랑스풍 서곡으로 위엄 있게 문을 열고, 아홉 곡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앞에서 본 호른이 주인공인 묶음이라, 전체적으로 트인 야외의 공기가 강합니다. 서곡 뒤에는 느리고 장중한 대목이 한 번 나오고, 곧이어 호른이 처음 얼굴을 내밉니다. 중간의 ‘아리아(Air)’는 느긋하게 숨을 고르는 대목이고, 뒤쪽에 미뉴에트, 부레, 혼파이프 같은 춤곡이 이어집니다. 궁정 무도회장을 그대로 강 위로 옮겨 놓은 춤들입니다. 이 F장조 하나만 들어도 수상음악의 성격이 거의 다 잡힙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위 F장조 영상에서 서곡이 끝나고 호른 두 대가 처음 서로를 부르는 대목. 사냥터 신호가 음악이 되는 순간입니다.

D장조 모음곡(HWV 349) — 트럼펫과 그 유명한 혼파이프

수상음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이 여기 들어 있습니다. 이 묶음의 주인공은 트럼펫입니다. 트럼펫이 호른과 번갈아 신호를 주고받으면 소리가 두 배로 화려해집니다. 왕의 배는 이때 강을 거슬러 올랐습니다. 도시를 향해 가장 크게 울린 음악, 바로 이 D장조입니다.

그중에서도 ‘알라 혼파이프(Alla Hornpipe)’는 광고, 방송, 영화에서 수없이 재활용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선율입니다. 혼파이프는 원래 영국 뱃사람들이 추던 춤의 이름입니다. 트럼펫과 호른이 성큼성큼 걸어 나오다 현악기가 짧게 대답하는 구조가 반복되는데, 그 주고받는 리듬이 몸을 들썩이게 만듭니다.

알라 혼파이프 말고도 이 묶음에는 짧고 밝은 부레와 미뉴에트가 붙어 있습니다. D장조는 원래 트럼펫이 가장 편하게 울리는 조성이라, 헨델이 이 화려한 악기를 앞세우려고 일부러 고른 조성입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왕의 배 뒤로, 이 트럼펫 소리가 강변에 늘어선 구경꾼들에게까지 닿았을 겁니다.

로런스 커밍스가 이끄는 괴팅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알라 혼파이프’ 실황. 트럼펫과 호른이 주고받는 그 대목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이 시작되자마자 트럼펫이 첫 신호를 던지고, 현악기가 곧바로 받아치는 첫 열 초. 이 주고받기 하나로 곡 전체가 굴러갑니다.

G장조 모음곡(HWV 350) — 식탁 곁의 저녁 음악

세 묶음 중 가장 조용합니다. 트럼펫도 호른도 빠지고, 플루트와 리코더 같은 부드러운 악기가 자리를 대신합니다. 학자들은 이 G장조가 왕이 첼시 별장에서 늦은 저녁을 먹던 시간에 흐른 ‘식사 음악’이었다고 봅니다. 사라반드로 차분하게 시작해 리고동, 미뉴에트, 지그로 가볍게 마무리합니다. 앞의 두 묶음이 왕을 세상에 내보이는 음악이라면, 이 G장조는 그 왕이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입니다. 화려한 금관을 걷어낸 자리에 남는 건, 사람 냄새 나는 온기.

세 묶음을 나란히 들어보면 그날 밤의 동선이 그려집니다. 강을 거슬러 오를 때의 화려한 D장조, 야외로 트인 F장조, 그리고 식탁 곁의 조용한 G장조. 하나의 곡이 아니라, 하룻밤 행사의 시간표에 맞춰 짜인 세 개의 음악인 셈입니다.

자필 악보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곡인데, 정작 헨델이 직접 쓴 자필 악보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날 밤 강 위에서 울린 음악이 정확히 어떤 순서였는지, 어떤 악장이 어느 묶음에 속했는지를 확정해 줄 원본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음악이 통째로 사라지지 않은 건 인기 덕분이었습니다. 곡이 워낙 사랑받다 보니 헨델 생전에도 인기 있는 악장들이 악보로 인쇄돼 팔려나갔고, 여러 필사본이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흩어져 살아남은 자료를 후대가 다시 그러모았습니다. 1788년에야 세 모음곡을 묶은 첫 완전 악보가 나왔고, 19세기 말에 독일 학자 프리드리히 크리잔더가 이를 정리해 오늘날 널리 쓰이는 판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휘자마다 곡의 순서와 묶음을 조금씩 다르게 배열합니다. 어느 쪽을 ‘원본’이라고 못 박을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헨델이 남긴 확정된 설계도가 없으니, 연주자들은 저마다 그날 밤 강 위의 소리를 자기 방식으로 상상해 되살립니다.

자필 악보는 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는 수상음악은, 그날 밤 강 위에 흩어진 소리를 후대가 주워 맞춘 복원본입니다. 3년 앞선 연봉 인상 하나로 화해극이 무너졌듯, 이 곡을 둘러싼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후대가 채워 넣은 빈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휘자마다 다른 수상음악을 들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300년째 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화해극은 무너졌고 자필 악보도 사라졌지만, 정작 음악은 300년을 버텼습니다. 수상음악은 지금도 헨델의 작품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축에 듭니다. 특별한 사연이나 비장한 서사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듣기 좋기 때문입니다. 배경지식 없이 틀어도 첫 소절부터 귀가 열리는, 흔치 않은 곡입니다.

지금도 여름 야외 음악회나 축제 프로그램에 수상음악이 단골로 오릅니다. 애초에 탁 트인 공간에서 울리라고 만든 음악이라, 천장 낮은 실내보다 하늘이 열린 곳에서 더 제 색이 납니다. 300년 전 강 위에서 헨델이 계산한 소리의 설계가, 지금도 그대로 통한다는 뜻입니다. 스피커로 들을 때도 볼륨을 조금 올리고 창을 열어두면, 그날 강 위의 공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

이 성공은 하나의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야외에서 큰 소리로 울리는 왕실 행사용 관현악이라는 장르가 이때 자리를 잡았습니다. 헨델 자신도 32년 뒤 같은 공식으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을 써서 또 한 번 크게 성공합니다. 강 위에서 시작된 실험이 하나의 전통이 된 겁니다.

1717년 여름의 그 하룻밤, 왕은 인기를 얻으려 강으로 나갔고 헨델은 그 무대에 음악을 깔았습니다. 왕의 정치적 계산은 오래전에 잊혔지만, 그날 강 위에 흩어진 소리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옵니다. 결국 그 밤에서 살아남은 건 왕이 아니라 음악이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D장조 모음곡(HWV 349) 전곡을 악보와 함께. 트럼펫 성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으로 따라가 보세요.

원본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습니다. 헨델 수상음악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수상음악은 원전 연주(작곡 당시 악기와 주법을 재현하는 연주)와 현대 악기 연주의 색이 특히 크게 갈리는 곡입니다. 원전 연주의 호른은 밸브가 없는 옛 사냥 나팔이라 소리가 거칠고 트여 있고, 현대 악기는 매끈하고 두툼합니다. 야외 축제 음악이라 이 금관의 질감이 곡 전체의 인상을 좌우합니다. 아래 세 장은 모두 원전 연주지만 성격이 서로 달라, 취향에 맞춰 고르면 됩니다. 현대 악기의 매끄럽고 두툼한 소리를 원한다면 네빌 마리너와 아카데미 실내악단의 녹음이 무난한 대안입니다.

👑 첫 감상 추천

트레버 피노크 · 잉글리시 콘서트

Archiv · 원전 연주

기교를 부리지 않고 곧게 나아가는 연주라,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기준점이 됩니다. 대신 강한 개성이나 파격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얌전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레퍼런스

존 엘리엇 가디너 ·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Philips · 1991 · 원전 연주

의식 같은 위엄이 살아 있고 총주의 호른이 특히 힘차, 왕을 위한 음악이라는 성격이 뚜렷합니다. 다만 독주 대목의 현과 오보에는 요즘 기준으로 다소 마른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 고음악 아카데미

L’Oiseau-Lyre · 1978 · 원전 연주

원전 연주의 문을 연 선구적 녹음이라, 장식을 걷어낸 담백하고 투명한 소리가 매력입니다. 다만 1970년대 녹음이라 음향이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얇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헨델이 왕에게 사과하려고 수상음악을 썼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이 화해 이야기는 1760년에 나온 헨델의 첫 전기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조지 1세는 수상음악이 연주되기 3년 전인 1714년에 이미 헨델의 연금을 두 배로 올려줬습니다. 왕이 헨델에게 화가 나 있었다는 전제 자체가 날짜와 맞지 않습니다.

수상음악은 언제, 어디서 처음 연주됐나요?

1717년 7월 17일, 런던 템스강 위에서 처음 연주됐습니다. 조지 1세가 화이트홀에서 첼시까지 뱃놀이를 하는 동안, 뒤따르던 배에 탄 약 50명의 악단이 연주했습니다. 왕이 만족해 곡 전체를 세 번이나 다시 듣게 했다고 당시 신문이 전합니다.

HWV 348, 349, 350은 어떻게 다른가요?

수상음악을 이루는 세 개의 모음곡입니다. F장조(HWV 348)는 호른, D장조(HWV 349)는 트럼펫이 주인공이라 화려하고, G장조(HWV 350)는 플루트와 리코더 중심의 조용한 묶음으로 저녁 식사용 음악이었다고 봅니다. 가장 유명한 ‘알라 혼파이프’는 D장조에 들어 있습니다.

수상음악과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같은 곡인가요?

다른 곡입니다. 둘 다 헨델이 쓴 야외 왕실 행사용 관현악이라 자주 혼동되지만, 수상음악은 1717년 템스강에서 조지 1세를 위해,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1749년 그린파크에서 조지 2세를 위해 쓴 별개의 작품입니다. 32년 차이가 납니다.

수상음악 전체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세 모음곡을 모두 연주하면 대체로 5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다만 자필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아 지휘자마다 곡의 순서와 묶음을 다르게 배열하기 때문에, 음반에 따라 시간과 구성이 조금씩 다릅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강과 궁정에서 울리던 음악들

수상음악이 좋았다면, 같은 시대의 바로크와 야외·궁정을 위한 음악부터 이어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아래 다섯은 결이 하나씩 다르게 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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