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교향곡 5번 B♭장조 D.485 — 19세 보조교사가 모차르트에게 부친 편지

거실에서 태어난 모차르트 헌정

Schubert
Wilhelm August Rieder, 1875, Public Domain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곡명
교향곡 5번 B♭장조, D.485
작곡 기간
1816년 9월~10월 (작곡가 19세)
악장
4악장

I. Allegro (B♭장조)
II. Andante con moto (E♭장조)
III. Menuetto. Allegro molto (g단조)
IV. Allegro vivace (B♭장조)
편성
플루트 1, 오보에 2, 바순 2, 호른 2, 현5부
(클라리넷·트럼펫·팀파니·제2 플루트 없음)
연주 시간
약 27~30분
초연
1816년 가을, 빈 Schottenhof 내 Otto Hatwig 자택 살롱
(비공개)

공개 초연: 1841년 10월 17일, 빈
지휘: Josef Lanner
출판
1885년, Breitkopf & Härtel
(슈베르트 사후 57년)

슈베르트는 자신이 쓴 교향곡 5번이 인쇄되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1885년,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57년 만에 출판됐죠. 그동안 5번 악보를 간직하고 있던 사람은 작곡가의 형 페르디난트 한 명뿐이었습니다.

27분짜리 4악장 교향곡 한 곡이 57년 동안 형의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곡에는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베토벤이 전원교향곡을 쓴 해가 1808년인데, 그로부터 8년 뒤인 1816년, 19세 슈베르트가 내놓은 5번 교향곡의 편성은 정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클라리넷, 트럼펫, 팀파니가 없고, 플루트도 한 대뿐이죠. 마치 시간을 수십 년 거슬러 모차르트 후기 어법으로 돌아간 듯한 편성입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1816년 6월 어느 저녁, 슈베르트는 일기장에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팬레터를 썼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그는 그 편지를 4악장짜리 음악으로 다시 써냈죠.

19세 보조교사가 모차르트에게 보낸 편지

1816년 6월 13일, 슈베르트의 일기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 모차르트여! 불멸의 모차르트여! 그대는 더 밝고 더 좋은 삶의 자취를 우리 영혼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끝없이 새겨두었던가!”

(원문: “O Mozart! unsterblicher Mozart! wie viele, o wie unendlich viele solcher wohlthätigen Abdrücke eines lichteren bessern Lebens hast du in unsre Seelen geprägt!” — Deutsch 편, 『슈베르트: 친구들이 남긴 회고』, 1958)

이 일기를 쓴 사람의 직업을 알면 문장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당시 슈베르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빈 외곽 힘멜포어트그룬트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6세 아동들에게 알파벳과 산수를 가르치는 일이었죠. 동료 안젤름 휘텐브레너의 증언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이 일을 진심으로 싫어했습니다.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 모차르트를 향한 헌사를 쓰고, 3개월 뒤에는 모차르트의 어법을 빌려 자신의 교향곡을 만들었습니다. 5번 교향곡의 작곡 시기는 1816년 9월~10월입니다. 일기와 작곡 사이에 여름 한 계절의 간격이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한국어권 해설지에서 슈베르트 5번을 ‘모차르트풍의 청춘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풍(風)이 아니라 편지였던 거죠. 19세 보조교사는 모차르트의 스타일을 흉내 낸 게 아니라, 모차르트에게 답장을 쓰고 있었던 겁니다.

거실 오케스트라, 슈베르트의 전속 악단

이 편지가 어디서 쓰였는지가 바로 5번 교향곡 편성의 비밀입니다. 슈베르트는 빈의 큰 콘서트홀이 아니라, 어느 동네 음악 애호가의 거실에서 5번 교향곡을 초연했습니다.

이야기는 슈베르트 가족의 일요일 사중주 모임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르가 첼로를, 큰형 페르디난트가 제1바이올린을, 작은형 이그나츠가 제2바이올린을, 막내 프란츠는 비올라를 맡았죠. 가족 네 명이 모이면 먼저 한 시간씩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동네 음악 애호가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사중주단은 작은 관현악단으로 커집니다. 인원이 늘어나자 슈베르트 집 거실로는 부족해졌고, Otto Hatwig라는 음악 애호가가 자신의 집 살롱을 빌려주었습니다. Hatwig가 살던 곳은 빈 Schottenhof였습니다. 슈베르트가 비올라를 들고 매주 ‘출근’하던 곳이 된 셈이죠.

하트비히 살롱이 빈에서 유일한 가정 음악회였던 것은 아닙니다. 1810년대 빈에는 시민 계층이 자신의 거실에 사람들을 모아 연주하던 작은 모임들이 여럿 있었거든요. 공개 콘서트홀 무대에 서려면 귀족 후원자가 필요했던 시절이라, 음악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집을 빌려 작은 무대를 만들었던 겁니다.

1820년대 초부터 슈베르트 친구들이 자신들의 모임을 부르던 이름인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슈베르티아데는 1820년대부터 본격화하지만, 그 앞이 바로 1816년 하트비히 살롱인 거죠. 19세 슈베르트는 빈 시민 음악 문화의 한복판에 앉아 비올라를 켜고 있었고, 5번 교향곡은 그 문화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 나온 작품입니다. 빈 시청이 만든 무대가 아니라, 빈 시민이 만든 무대에서 태어난 교향곡, 그게 바로 슈베르트 5번의 정체입니다.

이 살롱이 바로 슈베르트의 전속 악단이었습니다. 19세 작곡가가 새 교향곡 악보를 들고 가면, 같은 주에 바로 초연이 가능했던 거죠. 오늘날로 치면 자기 작품을 발표할 자체 무대를 갖고 있었던 셈입니다. 빈 시립 오케스트라 부킹을 잡으려고 몇 년씩 기다릴 필요가 없는, 작곡가에게는 꿈같은 인프라였던 겁니다.

대신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거실은 거실일 뿐이었거든요. 베토벤 7번처럼 트럼펫 두 대와 팀파니를 욱여넣으면 벽이 흔들릴 정도였죠. 클라리넷 연주자는 1816년 빈에 많이 있었지만, 하트비히 살롱에는 마침 없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인력에 맞춰 곡을 조절해야 했던 거죠.

클라리넷이 빠진 자리, 19세 슈베르트의 편성 다이어트

편성표를 직접 보면 그 인상이 더 또렷해집니다. 5번에 등장하는 관악기는 플루트 1대, 오보에 2대, 바순 2대, 호른 2대. 전체 관악기 7대입니다. 베토벤 7번(1812년 작곡)이 같은 자리에서 12대를 두는데, 4년 뒤 슈베르트는 7대로 끝낸 겁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인력의 한계. 앞서 말했듯이 하트비히 살롱의 현실적인 인원 때문입니다. 클라리넷 연주자가 없으면 클라리넷 파트를 쓸 수 없죠. 작곡가가 무대를 정한 게 아니라, 무대가 악보를 정한 셈입니다.

둘째, 모차르트 39번과 40번을 분명히 의식했습니다. 모차르트 후기 3대 교향곡 가운데서도 40번 K.550은 원전판이 클라리넷 없이 구성되어 있고, 39번은 클라리넷이 있어도 음색이 가벼운 편입니다. 슈베르트는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의 가벼우면서도 비극적인 결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던 거죠.

셋째, 베토벤과의 거리두기. 1816년 당시 빈에서 베토벤은 살아 있는 거인이었습니다. 슈베르트는 그 거인 옆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 옆에 가서 앉은 거죠. 5번의 편성 다이어트는 의도적인 후퇴였던 겁니다.

이 세 가지 이유가 합쳐진 결과, 1816년 가을 하트비히 살롱에서 슈베르트의 5번 교향곡이 울려 퍼진 겁니다. 현악기 다섯 파트와 관악기 일곱 대. 거실 공간 안에서 음향이 작은 사각형으로 모이는 듯한 편성인 거죠.

악장마다 다른 얼굴

이제 곡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27분 동안 슈베르트가 모차르트에게 어떤 편지를 쓰는지 따라가 보죠.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용어 두 개만 미리 설명해 드릴게요. 교향곡 한 악장은 보통 네 단락으로 이루어집니다. 주제를 처음 들려주는 제시부, 그 주제를 끌고 다니며 변형하는 발전부, 처음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 재현부, 그리고 끝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는 코다 순서로 진행되죠. 그리고 본문에 자주 나오는 ‘마디’는 악보의 칸 한 개 단위를 말하는데, 5번처럼 빠른 곡에서는 마디 한 개가 대략 1~2초 정도 됩니다. 8마디라고 하면 10~15초 정도의 구간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1악장 Allegro, 거실 문이 열리는 순간

1악장은 도입부 4마디에서 이 곡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줍니다.

현악기가 가볍게 두 박을 깔고, 다섯째 박에서 플루트가 8분음표로 위를 향해 솟아오르죠. 1마디부터 8마디까지가 모두 이런 식입니다. 베토벤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주먹으로 화음을 내리쳤을 테지만, 슈베르트는 조용히 노크를 합니다. 살롱 음악이니까요.

발전부에서는 슈베르트가 슬쩍 어두워지는 8마디를 내놓는데, g단조로 비껴가는 그 부분이 1악장 전체의 무게중심을 잠시 흔들어 놓습니다. 평온한 거실 음악인 줄 알았다가 갑자기 깊이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죠. 19세 작곡가가 모차르트 어법 위에 자기 손가락 자국을 처음 남기는 부분입니다.

이 8마디가 짧게 끝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토벤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어둠을 한 악장 길이로 늘렸을 테지만, 슈베르트는 어두운 문을 잠시 열어 보이고 다시 닫습니다. 거실의 매너거든요. 살롱에 앉은 동네 아저씨들 앞에서 한 악장 분량의 비극을 펼치면 분위기가 깨질 테니까요.

그런데 짧다고 가벼운 것도 아닙니다. 같은 음형이 조명만 바뀐 듯 다른 표정을 짓는 어법이 여기에 담겨 있는데, 슈베르트가 만년에 『겨울나그네』 같은 가곡에서 자주 쓰게 될 장단조 미끄러짐의 씨앗이 이미 19세 작곡가의 펜에서 나왔다는 뜻이거든요. 5번 1악장 발전부 8마디는 후기 슈베르트 비극의 작은 모형 같은 부분이죠.

재현부로 돌아오면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1악장 내내 슈베르트는 거실의 문턱을 단 한 번도 넘지 않습니다.

2악장 Andante con moto, 모차르트 40번 옆자리

여기가 핵심입니다. 슈베르트가 쓴 편지의 본문이거든요.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드는 1997년 단행본 『Schubert: The Music and the Man』에서 이 악장의 첫 주제 16마디를 모차르트 40번 2악장과 마디 단위로 비교했습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두 주제는 화성 진행, 박자 분할, 악기 배치까지 평행 관계에 있다는 거죠.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이걸 표절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표절이라면 숨겼겠죠. 5번 안단테는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 위에 자기 사인을 적은 글입니다. 19세 작곡가가 “당신 글씨를 흉내 냈으니 봐주세요” 하는 마음은 17~30마디부터 들어오는 슈베르트 고유의 화성 변화에서 드러납니다.

주제가 두 번째로 돌아올 때 슈베르트는 갑자기 D♭장조 영역으로 미끄러집니다. 본조 E♭장조에서 D♭장조로 옮겨가는 건, 같은 동네 옆 골목으로 빠지는 게 아니라 차를 두 정거장 더 가서 다른 동네 입구에 내려놓는 정도의 색감 변화입니다. 모차르트는 좀처럼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차르트풍이 아니라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답장이라는 말이 바로 이 순간을 가리키는 거죠.

3악장 Menuetto. Allegro molto, g단조의 의도

3악장 들어가기 전 용어 한 줄만 설명할게요. 미뉴에트는 18세기 궁정 무도회에서 추던 3박자 우아한 춤곡입니다. 그 자리를 더 빠르고 더 거칠게 대신한 형식이 스케르초고요. 그리고 미뉴에트 한가운데에는 분위기가 다른 단락이 한 번 끼는데, 그게 ‘트리오’라 불리는 중간 부분입니다. 보통 미뉴에트 → 트리오 → 미뉴에트 순서로 한 번 돌아옵니다.

3악장의 조성을 보면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g단조거든요. 모차르트 40번 미뉴에트와 같은 조성입니다.

베토벤은 이미 2번 교향곡(1802)부터 미뉴에트 자리에 스케르초를 넣었습니다. 1816년의 빈에서 미뉴에트는 한 세대 전의 형식이었죠. 그런데 19세 슈베르트는 미뉴에트를 골랐고, 거기다 같은 조성까지 모차르트와 맞췄습니다.

이 선택을 두고 어떤 책은 “보수적”이라고 평가합니다. 베토벤이 이미 스케르초로 넘어갔는데 슈베르트가 한 발 뒤에 있다는 식이죠.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슈베르트는 뒤처진 게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앉고 싶은지 알고 있었던 거고요. 베토벤이 앉은 자리는 빈에 한 자리뿐이었고, 모차르트 옆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으니까요.

트리오 부분에 들어가면 잠시 어둠이 풀리고 다른 빛이 들어옵니다. 짧지만, 19세 작곡가가 모차르트 흉내 속에 자기 목소리를 슬쩍 끼워 넣는 부분입니다.

4악장 Allegro vivace, 편지를 봉투에 넣는 시간

4악장은 가벼움이 정말로 가벼운 악장입니다. 슈베르트 만년 가곡들의 어두운 톤 옆에 두면 5번 4악장은 거의 다른 사람이 쓴 곡처럼 들릴 정도죠.

현악기가 16분음표로 달리고, 관악기가 끼어들었다 빠지고, 슈베르트가 좋아하는 뜻밖의 조성 전환이 두어 번 나옵니다. 그러나 내내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4악장 5분 남짓 동안 슈베르트는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거든요.

베토벤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다른 조성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고 한 단락 길이의 사건을 만들었을 자리에서, 슈베르트는 미끄러지듯 들어왔다가 미끄러지듯 본조로 돌아옵니다. 뜻밖의 전환을 큰 사건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4악장의 미덕이고요.

재현부 처리도 모차르트적입니다. 주제가 처음 등장한 제시부를 거의 그대로 옮겨오되, 마지막 코다에서 슈베르트는 욕심을 한 번도 부리지 않습니다. 4마디로 끝낼 코다는 4마디로 끝나거든요. 5번 4악장의 결말은 1악장 도입부의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울리는 식인데, 거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던 음악이 같은 문으로 가만히 나가는 모습입니다. 끝까지 거실의 매너를 지키는 곡이고요.

이 4악장이 끝나면, 슈베르트는 다음 날 다시 학교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6세 아동들의 알파벳 수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5번 교향곡 4악장은 그 출근 전날 밤에 작곡가가 마지막 페이지를 마무리한 음악입니다.

교향곡이 멈춘 4년, 하트비히 살롱 해산 이후

1817년, 하트비히가 결혼합니다. 결혼하면 살림 공간이 필요하니까 살롱 거실도 내줘야 했죠. 슈베르트의 전속 악단이 해산됐습니다.

그 직후 슈베르트의 교향곡 작곡은 멈춥니다. 6번을 1818년에 완성한 다음, 8번 『미완성』까지 4년 가까이 어떤 교향곡도 끝맺지 못합니다. 7번은 단편으로 남았고, 8번은 두 악장에서 멈췄고, 9번 『대(大)』가 본격 착수된 게 1825년이니, 거실이 사라진 시점에서 사실상 8년의 공백이 벌어진 셈이죠.

이 공백을 음악사 책은 보통 “슈베르트의 교향곡 위기”라고 부릅니다. 베토벤의 그늘이 너무 컸다, 작곡 기법이 성숙해지는 과정이었다, 이런 분석이 표준이죠.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보태야 합니다. 슈베르트는 들어줄 사람을 잃었습니다.

1816년의 슈베르트는 새 교향곡을 쓰면 다음 주에 자기 비올라를 들고 하트비히 거실로 가서 동네 아저씨들과 함께 초연할 수 있는 작곡가였습니다. 1818년의 슈베르트는 그 인프라가 사라진 사람이었고, 빈 콘서트홀에서 자기 곡을 초연할 통로도 없었던 작곡가입니다. 교향곡을 4악장까지 완성해도 들어줄 무대가 없는데, 누가 끝까지 쓰겠습니까.

슈베르트가 들어줄 사람을 잃은 1817년 이후의 풍경을 한 번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곡가는 같은 빈에 살고 있었습니다.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술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곡은 계속 썼습니다. 가곡은 작곡과 동시에 친구 거실에서 누군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 자리에서 초연이 가능한 장르거든요. 슈베르트가 600곡 이상의 가곡을 쏟아낸 시기가 정확히 5번 이후라는 점도 우연만은 아니죠.

반면 교향곡은 30~60분짜리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2관 편성이든 4관 편성이든 일단 30명 안팎의 연주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야 하는데, 1817년 이후 슈베르트에게는 그런 모임을 부를 권한이 없었습니다. 가곡과 교향곡 사이에서 작곡가의 출력이 한쪽으로 쏠린 건 재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들어줄 무대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5번은 특별합니다. 살롱이라는 자기 무대를 갖고 쓴 마지막 교향곡이거든요. 1년 뒤 작곡된 6번부터는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더 오래 울렸을 곡들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슈베르트 교향곡 5번은 클래식 입문자에게 권하기 좋은 곡입니다. 베토벤 9번처럼 한 시간 넘게 의자에 붙들려 있을 일도 없고, 슈베르트 후기 가곡처럼 우울에 잠길 일도 없으니까요.

27분. 그게 전부입니다. 베토벤 9번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이죠. 출퇴근 지하철 한 번 타고 내릴 동안 끝납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머릿속에 그림 한 장이 떠오릅니다. 1816년 빈, 하트비히 자택 거실, 의자 30개쯤, 19세 슈베르트가 비올라를 들고 동네 아저씨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는 모습. 새 교향곡 악보를 펼치고, 첫 박을 시작합니다. 그 그림이 떠오르면 이 곡의 규모가 이해됩니다. 5번은 거실용 음악이거든요. 콘서트홀에서 들으면 오히려 결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죠.

그리고 2악장이 시작될 때 모차르트 40번 2악장을 옆에 켜두면 비교가 됩니다. 두 곡을 번갈아 들으면 19세 슈베르트가 어떤 종이 위에 자기 사인을 적었는지 보입니다.

추천 음반, 편파 리뷰

5번 녹음은 차고 넘칩니다. 27분짜리 곡이라 LP 한 면에 들어가서 1950년대부터 지휘자들이 한 번씩 손을 댔거든요. 그래도 같은 곡이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나 싶을 만큼 해석 폭이 큰 곡이기도 합니다.

Thomas Beecham /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1959, EMI)

한국어로 “모차르트풍의 슈베르트 5번”이라고 적힌 많은 글은 사실 비첨을 듣고 그렇게 쓴 것 같을 정도입니다. 너무 우아해서 무서울 정도예요. 활을 종이장처럼 가볍게 쓰고, 관악기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고, 모든 음이 거실 공기처럼 떠 있습니다. 입문 1순위.

이 음반을 고른 이유: 5번이 왜 “모차르트적”이라고 불리는지 가장 쉽게 알려주는 녹음이거든요. 단점이라면 너무 매끈해서 슈베르트의 어두운 모서리가 거의 안 보입니다. 1악장 발전부 g단조 8마디나 2악장 D♭ 비껴가기 같은 디테일을 듣고 싶다면 다른 녹음이 낫습니다.

Karl Böhm / Berliner Philharmoniker (1971, DG)

베를린 필하모닉이 살롱 음악을 하면 이런 소리가 납니다. 두꺼운 정장을 입은 슈베르트랄까. 거실 냄새는 거의 안 나고, 대신 모든 음이 무겁고 단단합니다. 안전한 명연이지만 곡의 가벼움이 조금 사라지는 녹음이기도 합니다.

이 음반을 고른 이유: 4악장의 가벼움을 베를린 필하모닉 특유의 정밀함으로 들으면 색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다만 1816년 거실의 친밀함을 원한다면 비첨이 낫고, 시대악기에 가까운 소리를 원한다면 다음 항목으로 가시면 됩니다.

Nikolaus Harnoncourt /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1992, Teldec)

아르농쿠르가 모던 오케스트라에 시대악기 발상을 적용한 결과물입니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녹음이죠.

좋아하는 사람은 “1816년 거실 소리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현악기가 너무 거칠어서 슈베르트의 노래가 안 들린다”고 하고요.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비첨의 매끈함이 답답해진 청자에게 권합니다. 한 번 비교만 해봐도 5번이 어떤 곡인지 입체적으로 파악되거든요.

Claudio Abbado / Chamber Orchestra of Europe (1988, DG)

아바도가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COE)와 1980년대 후반에 녹음한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 중 한 장입니다. COE는 상주 콘서트홀이 없는 챔버 오케스트라라 곡마다 인원을 조절하는데, 5번처럼 작은 편성의 곡에서 이 단체의 결이 잘 살아납니다.

이 음반을 고른 이유: 비첨의 살롱 친밀함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밀함 사이 어딘가를 듣고 싶은 청자에게 권합니다. 아바도가 모차르트적 결을 살리되 1악장 발전부 g단조 비껴가기 같은 슈베르트 고유의 미끄러짐을 놓치지 않거든요. 다만 시대악기 발상의 거친 결을 원한다면 아르농쿠르 쪽이 낫습니다. 아바도 녹음은 모던 오케스트라가 5번을 다루는 우아한 절충안에 가깝고요.

Charles Mackerras / Scottish Chamber Orchestra (Hyperion)

실제 편성을 작게 줄인 녹음입니다. 스코틀랜드 챔버 오케스트라의 인원이 하트비히 살롱 시대 규모에 가장 가깝거든요. 5번은 Hyperion에서 나온 슈베르트 교향곡 시리즈 안에 들어 있습니다. 1816년 거실에서 슈베르트가 들었을 법한 규모를 21세기에 재현하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궁금한 청자에게 권합니다.

단점: 규모가 작아서 베를린 필하모닉 정도의 음향 두께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대형 콘서트홀 사운드를 좋아하는 청자에게는 잘 맞지 않는 녹음이고요.

추천 연주 영상

유튜브에서 5번 전곡 영상을 고를 때는 콘서트홀 규모와 지휘자의 의도를 같이 봐야 합니다. 살롱 곡을 거대 콘서트홀에서 들으면 곡이 조금 외로워 보이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본문에서 마디 단위로 언급한 세 지점은 악보를 보며 감상할 수 있습니다.

  • 1악장 도입부 1~16마디 (플루트 솔로의 모차르트적 어법)
  • 2악장 주제 제시부 1~16마디 (모차르트 40번 2악장과 평행 비교)
  • 3악장 미뉴에트 g단조 1~8마디 (모차르트 40번 미뉴에트와 같은 조성)

전악장 악보는 IMSLP에서 1885년 Breitkopf & Härtel 슈베르트 전집 PD 스캔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1885년 출판본이 곧 슈베르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출판본이고요.

자주 묻는 질문

슈베르트 교향곡을 처음 듣는데 5번부터 들어도 괜찮을까요?

5번이 입문곡으로 가장 적합합니다. 분량이 27분으로 짧고, 편성이 작아 귀에 부담이 적으며, 후기 슈베르트 특유의 우울도 거의 없거든요. 5번을 좋아하셨다면 8번 『미완성』으로 넘어가서 후기 슈베르트의 어둠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9번 『대(大)』는 분량이 1시간에 육박하고 무게도 다르니, 충분히 익숙해진 다음에 듣기를 권합니다.

먼저 들어볼 연주

Schubert Symphony No 5 B flat major Bavarian RSO Maazel

🎬 Schubert Symphony No 5 B flat major Bavarian RSO Maazel

Schubert Symphony No.5 Wiener Philharmoniker, Karl Bohm (1979/2015)

🎬 Schubert Symphony No.5 Wiener Philharmoniker, Karl Bohm (1979/2015)

슈베르트 교향곡 5번
Schubert, Public Domain
슈베르트 교향곡 5번
Otto Erich Deutsch, Public Domain

미완성 교향곡(8번)이 5번보다 유명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8번이 유명한 것은 곡 자체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왜 미완성이냐”라는 미스터리 때문입니다. 두 악장만 남기고 작곡가가 손을 놓은 이유가 200년간 풀리지 않았거든요. 5번은 그런 서사가 없어서 음악사 책에서 분량이 적습니다. 하지만 곡 자체의 매력은 5번도 결코 8번에 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듣기 편한 쪽은 5번이죠.

슈베르트가 자신의 5번 교향곡 출판본을 정말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나요?

맞습니다. 작곡은 1816년, 출판은 1885년으로 슈베르트 사후 57년의 격차가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 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곡과 출판 사이 69년의 격차는 슈베르트 교향곡 전체로 놓고 봐도 짧은 편이 아닙니다. 완성된 7곡 중 5번은 가장 늦게 출판된 축에 속하거든요. 슈베르트는 자기 교향곡이 공개 무대에서 연주되는 것을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작곡가입니다.

클라리넷이 빠진 교향곡이 그렇게 특이한 일이었나요?

1816년 당시에는 충분히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베토벤 6번(1808)·7번(1812)이 클라리넷·트럼펫·팀파니를 모두 사용했고,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들도 39번부터는 클라리넷이 들어왔거든요. 슈베르트 5번이 의도적으로 작은 편성을 고른 것은 살롱 인력의 한계와 모차르트 후기 어법 재현, 이 두 가지가 겹친 결과입니다. 트럼펫과 팀파니까지 함께 빠진 것은 거실 음향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초연이 거실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Otto Hatwig라는 빈 시민의 자택 살롱에서 1816년 가을에 비공개로 연주됐습니다. 공개 초연은 그로부터 25년 뒤인 1841년 10월 17일, 슈베르트 사후 13년이 지난 시점에 빈에서 요제프 라너 지휘로 이루어졌고요. 슈베르트의 완성 교향곡 7곡(1~6번 + 9번 『대』) 가운데 작곡가 생전 공개 초연된 곡은 0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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