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곡명
- 교향곡 제41번 다장조 K.551 《주피터》
(Symphony No. 41 in C major) - 작곡 기간
- 1788년 6월 말 ~ 8월 10일, 비엔나
- 악장
- 4악장
I. Allegro vivace (C장조)
II. Andante cantabile (F장조)
III. Menuetto: Allegretto (C장조)
IV. Molto allegro (C장조)
1악장. 빠르고 생기 있게
2악장. 노래하듯 천천히
3악장. 미뉴엣: 조금 빠르게
4악장. 매우 빠르게 - 편성
- 플루트 1, 오보에 2, 바순 2 (클라리넷 없음),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 5부
- 초연
- 생전 연주 기록 없음
(1789년 라이프치히, 1790년 프랑크푸르트 대관식, 1791년 프라하 등 가설만 존재) - 연주 시간
- 약 32~35분
- ‘주피터’는 모차르트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나고 30년 가까이 지나 런던의 흥행사 잘로몬이 붙인 별명입니다. 활자로는 1819년 에든버러에서 처음 인쇄됐습니다.
- 빚과 딸의 죽음이 겹친 1788년 여름, 단 6주 만에 39·40·41번 세 교향곡을 한꺼번에 써 내려간 끝자락의 곡입니다.
- 4악장은 다섯 개의 선율을 동시에 쌓아 올리는 5성부 푸가토로, 여덟 살에 쓴 ‘do-re-fa-mi’ 네 음이 마지막 교향곡으로 돌아옵니다.
베를린 국립도서관에는 종이 한 장이 보존돼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직접 쓴 ‘Vienna li 10 di Agosto 1788’. 이 문장이 적힌 페이지가 바로 그의 마지막 교향곡 자필 악보 마지막 장입니다.
악보의 그 어느 구석을 뒤져보아도 ‘주피터’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거창한 이름이 처음 활자로 찍혀 나온 것은 작곡가가 눈을 감고 28년이나 흐른 1819년의 일입니다. 그것도 음악의 중심지 비엔나가 아닌 저 멀리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였죠. 우리가 200년 넘게 입에 오르내리게 한 이 웅장한 별명을 정작 모차르트 본인은 단 한 글자도 구경조차 못 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슨 속셈으로 이런 이름을 떡하니 붙여놓았을까요?

잉글랜드에서 탄생한 별명
모차르트가 손수 꼼꼼하게 써 내려간 작품 목록(Verzeichnüss)을 들춰보면 그저 ‘교향곡 한 곡(Eine Sinfonia)’이라는 무미건조한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빛바랜 자필 악보 마지막 장에도 잉크로 쓴 완성 일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을 뿐 별명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죠.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부르는 ‘K.551’이라는 꼬리표마저 모차르트 사후 71년이 훌쩍 지난 1862년에야 루트비히 폰 쾨헬이 차곡차곡 번호를 매기며 붙인 것입니다. 작곡가 자신이 이 위대한 음악에 남겨둔 흔적은 오로지 곡을 끝낸 날짜와 ‘교향곡’이라는 단출한 단어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주피터’라는 이름은 어디서 튀어나왔을까요? 힌트는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크사버의 입술에서 나왔습니다. 1829년 어머니 콘스탄체와 나란히 앉아 영국 출판인 노벨로 부부와 인터뷰를 하던 그는 단호한 어조로 증언했습니다. “런던의 잘로몬(Johann Peter Salomon) 씨가 붙인 이름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잘로몬은 콧대 높은 하이든을 런던으로 훌쩍 데려와 ‘런던 12곡’ 교향곡을 척척 뽑아낸 탁월한 흥행사입니다. 18세기 후반 유럽 음악계를 제집 드나들듯 쥐락펴락하던 거물이었죠. 그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잉글랜드 무대에 41번 교향곡을 올리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한껏 끌어당길 매혹적인 간판 하나를 덧붙인 것입니다.
이 간판이 종이에 인쇄된 첫 기록은 1819년 10월 20일 에든버러 음악협회 콘서트 프로그램 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Grand Overture – Jupiter – Mozart.” 이후 이 웅장한 별명은 영국과 아일랜드 전역으로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정작 독일어권에서는 19세기 내내 ‘끝에 푸가가 붙은 교향곡(Sinfonie mit der Schlussfuge)’이라는 다소 투박하고 건조한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영불해협의 굽이치는 물결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교향곡이 완전히 다른 이름표를 단 채 살아가고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주피터’라는 이름이 어느 날 무작정 튀어나온 것은 아닙니다. 맑고 단단한 C장조 위로 트럼펫과 팀파니가 둥둥 울려 퍼지면 18세기 음악가들은 자연스레 ‘황제의 조성(Imperial key)’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대관식이나 새해를 알리는 장엄한 예포 군주가 묵직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마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바로 그 쩌렁쩌렁한 음색이었습니다. 잘로몬은 곡 자체가 이미 두르고 있던 찬란한 위엄을 낚아채 로마 최고신의 이름으로 근사하게 포장해 냈습니다(Elaine Sisman, Mozart: The Jupiter Symphony, 1993). 음악사에 길이 남을 기가 막힌 카피라이팅이 탄생한 것이죠.
흥미로운 대목은 잉글랜드와 독일 사람들이 똑같은 음표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다른 매력에 먼저 귀를 기울였다는 점입니다. 잉글랜드 청중은 곡이 뿜어내는 위풍당당함 즉 ‘황제처럼 번쩍이는 겉모습’에 흠뻑 빠져 주피터라 불렀습니다. 반면 독일어권 음악가들의 시선은 마지막 악장에 정교하게 맞물린 푸가의 설계 그 견고한 안쪽 뼈대로 먼저 쏠렸고 그래서 ‘끝에 푸가가 붙은 교향곡’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별명 하나를 들춰보는 것만으로 두 나라가 이 거대한 교향곡을 어떤 식으로 맛보았는지가 선명하게 갈립니다. 그리고 2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결국 영리한 흥행사가 내건 화려한 이름표가 완승을 거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빚과 장례식으로 얼룩진 여름, 6주 만에 쏟아낸 세 곡
1788년 6월 17일, 모차르트는 절친한 친구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다급하게 편지 한 통을 띄웁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이 저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저는 행복합니다(Wenn Sie, liebster Bruder, mich nicht verlassen, so bin ich glücklich).” 처절하게 돈을 빌려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의 첫머리였지요.
그리고 9일이 지난 6월 26일, 그는 교향곡 39번의 마침표를 쾅 찍습니다. 이어 7월 25일에는 40번, 8월 10일에는 대망의 41번을 척척 완성해 내죠. 고작 6주 만에 교향곡 세 편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누군가 과장해서 지어낸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모차르트 본인이 자신의 작품 목록에 잉크로 꾹꾹 눌러 쓴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그의 삶에는 짙은 그림자도 함께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6월 29일, 모차르트의 생후 6개월 된 핏덩이 딸 테레지아가 눈을 감고 맙니다. 39번을 완성한 지 불과 사흘 뒤이자, 40번의 첫 소절에 손을 대기 직전의 비극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시기 모차르트 가족은 화려한 비엔나 시내를 쫓기듯 벗어나 변두리인 베링거가세(Währingerstrasse)로 짐을 쌉니다. 어떻게든 생활비를 쪼개고 줄이기 위한 씁쓸한 선택이었으니까요(Otto Erich Deutsch, Mozart: A Documentary Biography, 1965). 7월 말 푸흐베르크에게 다시 띄운 편지에는 이런 쓸쓸한 문장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칩거하며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Wir leben so eingezogen und still).” 한때 빈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던 스타 작곡가가 쪼그라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고른 단어가 다름 아닌 ‘칩거’였습니다.
1788년 한 해 동안 푸흐베르크에게 손을 벌린 차용 편지만 최소 8통에 이릅니다(Bärenreiter 전집). 흔히 화려한 평전들이 ‘천재의 황금기’라고 칭송하는 이 계절은, 실제로는 빚진 친구에게 구차하게 또 손을 내밀고, 어린 딸의 캄캄한 장례를 치르며, 짐을 싸서 외곽으로 도망쳐야 했던 잔인한 여름이었습니다.
기막힌 것은, 이 대단한 곡이 작곡가의 생전에 정작 무대 위에 오르긴 했는지조차 묘연하다는 점입니다. 작곡 직후 계획했던 예약 콘서트가 물거품이 됐다는 가설은 1962년 H. C. 로빈스 랜던이 처음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도이치가 꼼꼼하게 엮은 자료집(1961)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모차르트가 살아 숨 쉴 때 41번이 연주되었다는 기록은 단 한 줄도 보이지 않습니다. 닐 자슬로가 1789년 라이프치히 여행, 1790년 프랑크푸르트 대관식, 1791년 프라하 콘서트에서 울려 퍼졌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짚어보긴 했지만(Mozart’s Symphonies, 1989), 결정적인 증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종합해 보면, 1788년 여름 자신의 비좁은 책상 위에 악보를 펼쳐 놓고 한 음 한 음 아로새기던 이 곡을, 모차르트는 단 한 번도 자기 귀로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1791년 홀연히 눈을 감았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평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교향곡 세 편이 아슬아슬한 빚더미 위에서 간신히 태어났건만, 작곡가 본인은 끝내 그 눈부신 소리를 듣지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 셈이지요.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똑같은 책상머리에서 똑같은 6주를 뚫고 나온 이 세 곡의 표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입니다. 39번은 세상을 다 품을 듯 따스하게 노래하고, 40번은 g단조의 우울함 속에서 바들바들 속을 끓이며 떨고, 41번은 C장조의 단단한 반석 위에서 꼿꼿하게 위엄을 세웁니다. 한 명의 인간이, 그것도 뼛속까지 궁핍했던 가혹한 여름날에 슬픔과 불안, 그리고 찬란한 당당함을 각기 다른 그릇에 정교하게 나눠 담아냈습니다. 그렇기에 41번만 뚝 떼어 맛보기보다는, 40번의 서늘함을 먼저 느낀 뒤 41번으로 성큼 건너와 보면 그 감정의 낙차가 훨씬 더 날카롭고 또렷하게 살갗에 와닿을 것입니다.
악장마다 표정을 바꾸는 얼굴
1악장 Allegro vivace — 서두를 생략한 작곡가
뜸 들이는 느린 도입부는 과감히 생략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후기 교향곡 중 38번 《프라하》와 39번의 바탕에는 진지하고 묵직한 서주가 깔려 있지만, 40번과 41번에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죠. 41번은 정중한 인사치레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으로 문을 박차고 들이닥칩니다.
첫 두 마디는 ‘C-C-(쉼표)-G-G’로 벼락치듯 내리꽂는 강렬한 유니즌입니다. 당대 오페라 부파 서곡에서 단골로 써먹던 익숙한 문법이지요. 모차르트가 이 곡을 쓰기 직전까지 오페라 《돈 조반니》(1787년 프라하 초연) 작업에 흠뻑 빠져 지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화려한 서곡의 화법이 뚜벅뚜벅 교향곡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고 보는 편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붉은 벨벳 커튼이 스르르 걷히며 오페라의 막이 오르듯, 41번도 그렇게 웅장하게 첫발을 뗍니다.
이 악장은 첫 마디부터 에두르는 법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훅 치고 들어옵니다. 객석에 앉은 이들에게 헛기침하며 자세를 고쳐 앉을 틈조차 주지 않죠. 그렇다고 1780년대 콧대 높은 비엔나 청중을 향해 친절하고 살가운 눈짓을 보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앞만 보고 매섭게 내달리기 시작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서늘한 단호함이 묘하게 가슴 한구석을 찌릅니다. 구차한 빚 독촉 편지를 끄적이고 어린 딸의 작은 관을 배웅해야 했던 작곡가가, 정작 오선지 위에서는 머뭇거림의 흔적을 털끝만큼도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1악장 그 어디를 찬찬히 뜯어보아도 파르르 떨리는 손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상의 기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캄캄한 시간 속에서도 작곡가의 펜촉은 단 한 치도 비틀거리지 않고 꼿꼿했습니다.
2악장 Andante cantabile — 딸이 죽은 그 주
F장조의 따사롭고 평온한 선율이 잔잔히 흐르다가, 19~28마디 구간에 접어들면 갑작스레 c단조의 서늘한 그늘 속으로 푹 꺼지듯 내려앉습니다. 단단하던 화음이 쩍 갈라지고 규칙적이던 리듬이 비틀거리며, 유려하게 흐르던 노래가 당황한 듯 흠칫 멈춰 섭니다.
모차르트가 직접 그린 자필 악보를 보면 바로 이 구간 음표 위로 잉크가 거칠고 날카롭게 휙 그어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한때 이 자국은 ‘참다못한 슬픔이 터져 나온 자국’으로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지요. 이 악장을 빚어내던 시기(6월 말~7월 초)와 가여운 딸 테레지아가 눈을 감은 날(6월 29일)이 얄궂게도 겹치기 때문입니다. 냉철한 음악학계는 이를 대체로 단순한 작곡 수정의 흔적으로 건조하게 넘깁니다. 그렇다 한들 빛바랜 악보를 직접 마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대목에서 멍하니 시선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구간은 그저 심심풀이로 단조의 물감을 덧칠한 가벼운 삽화가 아닙니다. 나른하게 흘러가던 F장조 안단테 사이로 뾰족한 c단조 화음이 불쑥 끼어들어, 평화로운 노래의 손목을 다급하게 덥석 낚아채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F장조의 평온함으로 돌아오죠 — 마치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입니다. 음악은 그렇게 요동치며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3악장 Menuetto: Allegretto — 황제의 미뉴엣
다시 찬란한 C장조로 무대가 바뀝니다. 잠시 숨을 고르던 트럼펫과 팀파니도 둥둥거리며 돌아옵니다. 18세기 청중의 귀에 이 악기 조합이 들려오면 그들은 자연스레 화려한 ‘의식’의 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주피터’라는 거창한 별명이 단지 잘로몬의 현란한 작명 솜씨 하나로 빚어진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 곡 자체가 뼛속부터 황제다운 위엄을 번쩍이며 두르고 있었고, 기민한 잘로몬은 30년 뒤 그 곡의 진짜 성격을 꿰뚫어 보고 근사한 이름표를 척 달아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끼어든 트리오 틈바구니에 아주 얄미운 장치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4악장 전체를 질주하며 끌고 갈 ‘네 음 동기’가 여기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며 미리 한 번 흘러나오는 것이죠. 마치 마지막 장을 장식할 화려한 주인공이 한 발짝 일찍 어둑한 무대 뒤편을 타박타박 가로질러 가는 듯한 묘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모차르트가 청중 몰래 치밀하게 깔아 둔 영리한 복선입니다.
4악장 Molto allegro — 여덟 살과 서른두 살이 만나는 4분
이 대망의 악장을 여는 1주제는 허탈할 만큼 단순합니다. ‘do-re-fa-mi’, 고작 네 개의 음표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네 음은 절대 가볍게 흘려들을 만한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 네 음은 모차르트가 독창적으로 짜낸 발명품조차 아닙니다. 아득한 옛날 그레고리오 성가 ‘Lucis Creator optime’에서 뿌리를 내려 팔레스트리나, 미하엘 하이든, 그리고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13번 4악장까지 이미 알뜰하게 가져다 쓴 멜로디거든요. 말하자면 18세기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꺼내 쓰던 공용 어휘, 일종의 열린 문법에 가까웠습니다.
진짜 흥미진진한 대목은 바로 여기서부터입니다. 모차르트 본인 역시 평생토록 이 네 음을 조물락조물락 만지작거렸습니다. 처음 오선지에 이 음을 올린 건 1764년, 고작 여덟 살 꼬마 시절에 쓴 1번 교향곡(K.16) 안단테에서였죠. 두 번째는 1774년, 혈기 왕성한 열여덟 살 청년이 쓴 미사곡 F장조 K.192의 ‘Credo in unum Deum’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서른두 살, 생의 마지막 교향곡 4악장 첫 자리에 그 익숙한 네 음이 빙글 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습니다.
여덟 살, 열여덟 살, 그리고 서른두 살. 무려 24년이라는 긴 세월을 가로지르며 똑같은 네 음이 그의 손끝을 세 번이나 스치고 지나간 셈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다루기 편한 흔해 빠진 음형에 불과했겠지만, 모차르트는 이 조그만 조각을 끝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을 여는 장엄한 출발점으로 골라잡았습니다. 평생 뇌리 한구석에서 펄떡이며 살아 움직이던 이 네 음표를, 굴곡진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거대한 악장 맨 앞에 떡하니 데려다 놓은 것이 정말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그리고 마침내 종결부인 코다의 24마디. 촘촘히 엮인 다섯 개의 주제가 마치 거대한 탑처럼 정교하게 쌓아 올려집니다. 이른바 5성부 푸가토의 향연이죠. 워런 커켄데일이 1963년에 내놓은 치밀한 분석에 따르면, 이 다섯 성부는 무려 24가지 순열로 위아래를 휙휙 뒤바꿔 끼워도 음악의 뼈대가 절대 무너지지 않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구조를 지닙니다. 이른바 ‘invertible quintuple counterpoint’. 쉬운 말로 풀자면, 다섯 사람이 각자 자기 할 말을 목청껏 떠드는데 누가 목소리를 높이고 누가 낮추든 결국 완벽하게 앞뒤가 들어맞는 기막힌 대화라는 뜻입니다.
이 기막힌 다섯 주제를 하나씩 콕콕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① 곡을 여는 1주제 ‘do-re-fa-mi’ 네 음 동기, ② 쉴 새 없이 팽팽하게 내달리는 16분음표 카운터서브젝트, ③ 은구슬 구르듯 트릴이 촘촘히 박힌 짧은 모티프, ④ 미끄럼틀 타듯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는 하행 스케일, ⑤ 그리고 마지막을 빈틈없이 꽉 묶어버리는 종지 모티프. 이 다섯 가닥의 실타래가 24마디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동시에 맞물려 돌아갑니다. 하나씩 떼어놓고 귓가에 대보면 더없이 단순명료한데, 이 다섯이 한데 포개지는 순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뉘 선율인지 귀로 쫓아가기가 아득해집니다. 그런데도 그 복잡한 화성은 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텨냅니다. 커켄데일이 감탄해 마지않던 ‘음악이 안 깨진다’는 말의 진짜 의미가 바로 이 찬란한 혼돈 속에 숨어 있습니다.
굳이 복잡하고 딱딱한 음악 이론을 몰라도 이 대목의 위력은 귀로 직감할 수 있습니다. 웅장한 종결부에 다다르는 순간, 멜로디 한 가닥을 쫓아가려던 우리의 귀는 갑자기 캄캄한 미로에 갇힌 듯 갈 곳을 잃고 맙니다. 분명 귓가에 맴돌던 익숙한 네 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틈엔가 사방팔방에서 전혀 다른 선율들이 소나기처럼 동시에 쏟아져 내려 도대체 어디에 귀를 둬야 할지 멍해지는 찰나. 귓전에서 소용돌이치는 그 기분 좋은 어질어질함이 바로 커켄데일이 복잡한 수식으로 증명해 낸 견고한 구조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생생한 방식입니다. 18세기의 화려한 객석에 앉아 있던 청중도, 오늘날 스피커 앞에 앉은 우리도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짜릿하게 휘청거립니다.
클라리넷을 비워둔 교향곡
모차르트가 유별나게 애지중지했던 악기를 꼽자면 단연 클라리넷입니다. 비엔나의 콧대 높은 명연주자 안톤 슈타들러를 위해 클라리넷 5중주 K.581과 클라리넷 협주곡 K.622, 무려 두 곡이나 정성껏 헌정할 정도였으니까요(Deutsch, 1965; Bärenreiter NMA 비평본). 그런데 묘하게도 41번에는 그 사랑스러운 클라리넷이 쏙 빠져 있습니다. 앞서 쓴 39번에는 당당히 들어가 있고, 40번 역시 개정판을 내면서 꼼꼼하게 추가했는데, 유독 41번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 어디를 뒤져봐도 클라리넷의 자리가 없습니다.
그 속사정은 시스먼의 1993년 분석을 들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C장조라는 캔버스 위에 트럼펫과 팀파니를 물감 삼아 ‘의식적이고 황제다운’ 서늘한 위엄을 그려내려면,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클라리넷의 따뜻한 음색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41번 특유의 단단하고 날 선 광채는, 자신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던 악기를 눈물을 머금고 덜어낸 대가로 쟁취한 묵직한 결과물이라는 뜻이죠.
다시 말해 41번은 스스로 따스함을 매몰차게 쳐낸 교향곡입니다. 평생 헌정곡까지 쥐여주며 아꼈던 악기마저 무대 밖으로 밀어내면서까지, 그가 기어이 두 손에 쥐고 싶었던 서늘한 음색이 따로 있었던 셈입니다.
꼭 들어야 할 4분의 시간
로베르트 슈만은 1841년에 이렇게 펜을 굴렸습니다. “이 곡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스 켈러 역시 1956년 BBC 방송 마이크 앞에서 “인간이 쓴 가장 흥분되는 음악”이라고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죠. 차이콥스키는 1886년 9월 일기장 한편에서 이 곡을 베토벤 9번과 팽팽하게 맞대어 저울질하더니, 주저 없이 주피터 4악장 쪽으로 손을 번쩍 들어줍니다 — 1886년을 살던 러시아 작곡가가 1788년의 오스트리아 작곡가를 그렇게 까마득히 올려다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찬사가 19~20세기 평론가들의 빳빳한 인용구라 솔직히 피부에 확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머릿속에 그려보면 훨씬 또렷해집니다. 서른두 살의 끄트머리에서 죽음을 불과 3년 앞두고 마지막 교향곡을 써 내려가면서, 작곡가는 자기가 고작 여덟 살 꼬마 시절 만지작거리던 조그만 네 음을 마지막 악장의 맨 앞자리에 툭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종결부 24마디에 이르러 그 네 음을 포함한 다섯 개의 묵직한 주제를 톱니바퀴처럼 동시에 겹겹이 쌓아 올렸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폭발적인 소리를 평생 단 한 번도 귀에 담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이것이 슈만의 짤막한 한 줄짜리 인용구만으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짜릿한 대목입니다. 불꽃이 튀는 4분 남짓한 종결부 안에서, 여덟 살의 천진난만한 모차르트와 서른두 살의 벼랑 끝 모차르트가 시공간을 뚫고 처음으로 찌릿하게 마주치는 셈이니까요. 그 폭발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는,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직접 들어본 뒤에 고개를 끄덕여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예정 공연
- 2026.10.15.(목) 19:30예술의전당, 서울출연 얍 판 츠베덴, 르노 카퓌송, 강윤지
- 2026.10.16.(금) 19:30예술의전당, 서울출연 얍 판 츠베덴, 르노 카퓌송, 강윤지
공연 일정과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www.kopis.or.kr)지극히 편파적인 음반 가이드
주피터의 명연주 후보는 굳이 꼽기 입 아플 정도로 차고 넘칩니다. 다만 이 앨범 저 앨범 두루뭉술하게 칭찬만 늘어놓으면 막상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지요. 어느 음반이 어느 대목에서 번쩍이고 어디서 삐걱거리는지, 아주 솔직하고 까칠하게 갈라 보겠습니다.
카를 뵘 / 베를린 필 (1960년대, DG). 바위처럼 묵직한 독일 정통 해석의 끝판왕입니다. ‘끝에 푸가가 붙은 교향곡’이라는 19세기 독일어권의 다소 무뚝뚝한 호칭이 이보다 더 찰떡같이 어울릴 수 없습니다. 주피터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이는 분에게 가장 든든하고 안전한 가이드입니다. 다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미친 4악장’을 내심 기대했다면 다소 넥타이를 꽉 조여 맨 듯 점잖게 들릴 여지는 있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 (1984, DG).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내달립니다. 특히 코다의 5성부 푸가토에서는 말 그대로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넘칩니다. 한 번 푹 빠져 듣고 나면 다른 얌전한 녹음들이 죄다 밍밍하고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무시무시한 음반이죠. 유일한 단점이라면 1788년 당시 비엔나에서 울려 퍼졌을 앙증맞은 규모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점입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시대악기의 거친 질감, 오밀조밀한 작은 편성, 그리고 날쌘 템포. 잘로몬이 ‘주피터’라는 거창한 간판을 달아주기 전, 1788년 좁다란 살롱 바닥을 둥둥 울렸을 법한 날것의 41번에 가장 맞닿아 있습니다. 웅장하게 쏟아지는 대형 사운드에 익숙한 분이라면 소리가 다소 얄팍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추천하는 감상 루트는 번스타인으로 매운맛의 극한을 맛본 뒤, 뵘의 묵직함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마지막으로 아르농쿠르를 틀어 1788년의 아담한 실제 크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악보와 함께 귀 기울이기
주피터를 두 번째로 재생할 때 슬쩍 권하고 싶은 감상법입니다. 종결부 24마디의 5성부 푸가토를 뚫어져라 악보로 따라가 보면, ‘다섯 주제가 동시에 쌓인다’는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설명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풀려납니다. 어느 성부가 ‘do-re-fa-mi’를 꼭 쥐고 내달리는지, 어느 성부가 다른 주제를 이리저리 굴리는지 서로 다른 색깔 펜으로 죽죽 그어보세요. 그 24마디가 거짓말처럼 완전히 다른 질감으로 귀에 꽂힙니다. 2악장 19~28마디의 아슬아슬한 c단조 구간 역시, 모차르트가 신경질적으로 박박 그어놓은 자필 악보 사진과 나란히 펼쳐놓고 들여다보면 분명 한 번 더 흠칫하며 숨을 고르게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주피터’라는 이름은 모차르트가 붙인 건가요?
모차르트가 이 곡을 직접 들어 본 적이 있나요?
4악장 푸가토가 왜 그렇게 대단하다는 건가요?
그렇게 좋아한 클라리넷을 왜 41번에선 뺐나요?
39·40·41번 중 무엇을 먼저 들어야 하나요?
참고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책상에서 나온 다른 이야기들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들을 때보다, 그 곁의 이야기를 함께 알 때 훨씬 크게 울립니다. 41번을 낳은 그 여름의 형제 곡부터, 41번이 일부러 비워 둔 악기의 주인공, 그리고 잘로몬이 런던으로 데려간 또 다른 거장까지. 아래 글들을 나란히 들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