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국립도서관에는 종이 한 장이 보존돼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직접 쓴 ‘Vienna li 10 di Agosto 1788’. 이 문장이 적힌 페이지가 그의 마지막 교향곡 자필 악보의 마지막 장입니다.
그 페이지 어디에도 ‘주피터’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 이름이 활자로 처음 인쇄된 건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1821년 6월, 에든버러였습니다.
- 작곡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 곡명
- 교향곡 제41번 다장조 ‘주피터’
- 작품번호
- K.551 (Köchel 1862년 매김 · 모차르트 본인은 ‘Eine Sinfonia’로만 표기)
- 작곡 기간
- 1788년 6월 26일~8월 10일, 비엔나
- 악장
- 4악장
I. Allegro vivace (C major)
II. Andante cantabile (F major)
III. Menuetto: Allegretto (C major)
IV. Molto allegro (C major)
1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3악장 미뉴엣: 알레그레토
4악장 몰토 알레그로 - 편성
- 플루트 1, 오보에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 5부
(클라리넷 없음) - 초연
- 직접 증거 없음
(1789년 드레스덴·라이프치히, 1790년 프랑크푸르트 레오폴트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 또는 1791년 프라하 보헤미아 왕 대관식 콘서트 가설) - 연주 시간
- 약 32~35분
먼저 들어볼 연주
🎬 Mozart: Symphony No. 41 Jupiter | Hartmut Haenchen & Carl Philipp Emanuel Bach Chamber Orchestra
🎬 Mozart: Symphony No. 41 “Jupiter” – 4. Molto allegro | Rattle · Berliner Philharmoniker
잉글랜드에서 붙은 별명
모차르트가 직접 작성한 작품목록(Verzeichnüss)에는 그저 ‘교향곡(Eine Sinfonia)’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필 악보 마지막 페이지에도 완성 일자만 있을 뿐, 별명은 어디에도 없죠. 우리가 익숙하게 부르는 ‘K.551’이라는 번호조차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71년이 지난 1862년에 루트비히 폰 쾨헬이 붙인 정리번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200년 넘게 부르고 있는 ‘주피터’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출처는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크사버의 증언입니다. 1829년, 그는 어머니 콘스탄체와 함께 영국 출판인 빈센트·메리 노벨로 부부의 인터뷰에 응하며 분명히 말했습니다. “런던의 잘로몬 씨가 붙인 이름입니다.”
잘로몬은 하이든을 런던으로 데려가 ‘런던 12곡’ 교향곡을 받아낸 바로 그 임프레사리오입니다. 18세기 후반 유럽 음악 흥행의 거물이었죠. 그가 모차르트 사후 잉글랜드에서 41번을 무대에 올리면서 별명을 붙인 겁니다.
활자로 남은 첫 흔적은 1821년 6월 8일 에든버러 음악협회 콘서트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Grand Overture – Jupiter – Mozart.” 이후 영국·아일랜드권에서 먼저 퍼졌고, 정작 독일어권에서는 19세기 내내 ‘푸가가 있는 교향곡(Sinfonie mit der Schlussfuge)’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같은 곡이 영불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 셈입니다.
왜 하필 ‘주피터’였을까요.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C장조에 트럼펫과 팀파니가 들어가면 18세기 음악인들은 자연스럽게 ‘황제 조성(Imperial key)’을 떠올렸습니다. 대관식, 신년 예포, 군주 입장 같은 자리의 음색이었죠. 잘로몬은 이 곡의 위엄을 로마 최고신의 이름으로 포장한 셈입니다(Elaine Sisman, Mozart: The Jupiter Symphony, 1993). 음악사에 남은 탁월한 카피라이팅이었습니다.
16일에 세 곡, 그리고 8통의 차용 편지
1788년 6월 17일, 모차르트는 친구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이 저를 버리지 않는다면 저는 행복합니다(Wenn Sie, liebster Bruder, mich nicht verlassen, so bin ich glücklich).” 차용 편지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9일 뒤인 6월 26일, 그는 39번을 완성합니다. 7월 25일에는 40번, 8월 10일에는 41번. 6주 만에 세 곡입니다. 모차르트 본인이 작품목록에 직접 날짜를 적어 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같은 6월, 또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6월 29일, 모차르트의 6개월 된 딸 테레지아가 세상을 떠납니다. 39번을 완성한 지 3일 뒤, 그리고 40번 작곡을 시작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모차르트 가족은 비엔나 시내에서 외곽 베링거가세(Währingerstrasse)로 이사합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Otto Erich Deutsch, Mozart: A Documentary Biography, 1965). 7월 말 푸흐베르크에게 다시 쓴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 “우리는 이렇게 칩거하며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Wir leben so eingezogen und still)”(Bärenreiter, Mozart: Briefe und Aufzeichnungen 전집, 편지 No. 1077). 흥행 작곡가가 스스로를 설명할 때 쓴 말이 ‘칩거’였습니다.
1788년 한 해 동안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차용 편지만 최소 8통(Bärenreiter 전집). 보통 클래식 평전이 ‘천재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이 여름은, 실제로는 빚진 친구에게 다시 돈을 빌리고, 딸의 장례를 치르고, 외곽으로 짐을 옮기던 여름이었습니다.
예약 콘서트가 무산됐다는 가설은 1962년 H.C. 로빈스 랜던이 처음 제기했습니다. 오토 에리히 도이치의 자료집(1961)에도 41번이 모차르트 생전에 연주됐다는 기록은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닐 자슬로는 1789년 드레스덴·라이프치히 여행, 1790년 프랑크푸르트 레오폴트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 또는 1791년 프라하 보헤미아 왕 대관식 콘서트에서 연주됐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Mozart’s Symphonies, 1989), 확정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차르트가 1788년 여름 자기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음표를 적던 이 곡을, 그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1791년에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빚에 시달리던 책상 위에서 평생의 마지막 교향곡 세 편이 나왔고, 작곡가는 그걸 한 번도 못 듣고 떠났을지 모릅니다.
악장마다 다른 얼굴
1악장 Allegro vivace — 서두를 생략한 작곡가
도입부가 없습니다.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중 38번 ‘프라하’와 39번에는 느린 도입부가 있지만, 40번과 41번에는 없습니다. 41번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첫 두 마디는 ‘C-C-(쉼표)-G-G’의 강한 유니즌입니다. 당대 오페라 부파 서곡의 관습이죠. 모차르트가 그 직전까지 돈 조반니(1787년 프라하 초연) 오페라 작업에 깊이 매달려 있었던 걸 생각하면, 서곡의 문법이 교향곡 안으로 들어왔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오페라 막이 오르듯 41번이 시작합니다.
📜 악보 보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IMSLP)
이 악장은 첫 마디부터 단도직입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듣는 사람이 자세를 잡을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1789년 비엔나 청중을 위해 친절한 신호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냥 시작합니다.
2악장 Andante cantabile — 딸이 죽은 그 주
F장조의 평온함이 흐르다가 mm. 19~28에서 갑자기 c단조로 내려앉습니다. 화음이 갈라지고, 리듬이 비틀거리고, 노래가 잠시 멈칫합니다.
모차르트 자필 악보의 이 구간에는 음표 위로 잉크가 거칠게 그어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한때 ‘슬픔 발작의 흔적’으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작곡 시기(6월 말~7월 초)와 딸 테레지아의 사망일(6월 29일)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음악학계에서는 대체로 단순한 작곡 수정으로 봅니다. 그렇다 해도 자필 악보를 직접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한 번은 멈칫하게 됩니다.
📜 악보 보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IMSLP)
이 구간은 단순한 단조 삽화가 아닙니다. F장조 안단테가 흘러가다가 c단조 화음이 끼어들어 노래의 손목을 붙잡는 듯합니다. 그리고 다시 F장조로 돌아옵니다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음악이 그렇게 움직입니다.
3악장 Menuetto: Allegretto — 황제의 미뉴엣
C장조로 돌아옵니다. 트럼펫과 팀파니도 다시 들어옵니다. 18세기 청중이 이 조합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의식’을 떠올렸습니다. 별명 ‘주피터’가 결과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곡 자체가 이미 위엄 있는 음색을 갖고 있었고, 잘로몬은 30년 뒤 그 성격을 알아보고 이름표를 단 셈입니다.
그런데 트리오에는 작은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4악장 4음 동기가 미리 흘러나옵니다. 마지막 악장의 주역이 한 발 일찍 무대 뒤를 지나가는 듯합니다. 모차르트가 의도적으로 깔아 둔 복선입니다.
4악장 Molto allegro — 8살과 32살이 만나는 4분
이 악장의 1주제는 단순합니다. ‘do-re-fa-mi’ 네 음입니다. 그런데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단순함은 아닙니다.
이 네 음의 출처는 모차르트가 아닙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Lucis Creator optime’에서 출발해 팔레스트리나, 미하엘 하이든, 그리고 (요제프) 하이든 교향곡 13번 4악장이 이미 썼습니다. 18세기 작곡가들의 공용 어휘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서부터가 흥미롭습니다. 모차르트도 평생 이 동기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첫 사용은 1764년, 8살에 쓴 1번 교향곡(K.16) 안단테였습니다. 두 번째는 1774년, 18살에 쓴 미사곡 F장조 K.192의 ‘Credo in unum Deum’. 그리고 32살, 마지막 교향곡 4악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 악보 보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IMSLP)
📜 악보 보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IMSLP)
8살에 처음 쓴 네 음을 18살에 다시 썼고, 32살에 또 한 번 씁니다. 그게 죽기 3년 전 마지막 교향곡의 시작 동기입니다. 우연이라고 넘기기 어렵습니다. 모차르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이 네 음은 평생 살아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종결부 코다 24마디. 다섯 개 주제가 동시에 쌓입니다. 5성부 푸가토입니다. 워런 커켄데일(1963)의 분석에 따르면 이 5성부는 24가지 순열로 재배치해도 음악이 무너지지 않는 수학적 구조입니다. ‘invertible quintuple counterpoint’. 풀어 말하면 다섯 명의 화자가 동시에 말하는데, 누가 위로 가고 누가 아래로 가든 모두 말이 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다섯 주제를 한 번 펼쳐 보겠습니다. ① 1주제 ‘do-re-fa-mi’ 4음 동기. ② 활기찬 16분음표 카운터서브젝트. ③ 트릴이 박힌 짧은 모티프. ④ 하행 스케일 phrase. ⑤ 마지막을 묶는 종지(cadential) 모티프. 이 다섯이 24마디 안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하나만 들으면 단순한데, 다섯이 겹치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누구의 선율인지 귀로 따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도 화성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커켄데일이 말한 ‘음악이 안 깨진다’는 말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악보 보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IMSLP)
구스타프 말러가 1909년 뉴욕 필 객원지휘 때 이 부분을 연주했는데, 코다 5성부에서 관객 일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증언이 Musical America 1909년 11월호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분노해서 일어났는지, 경의를 표하려고 일어났는지는 기사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코다 24마디가 사람을 의자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는 사실만 남아 있습니다.
클라리넷이 없는 교향곡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한 악기 중 하나가 클라리넷입니다. 그는 비엔나 클라리넷 명연주자 안톤 슈타들러에게 두 곡(클라리넷 5중주 K.581, 클라리넷 협주곡 K.622)을 헌정할 정도였습니다(Deutsch, Mozart: A Documentary Biography, 1965; Bärenreiter NMA 비평본). 그런데 41번에는 클라리넷이 없습니다. 39번에는 있고, 40번도 원본판에는 없다가 개정판에서 추가됐는데, 41번만 처음부터 끝까지 빠져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시스먼의 1993년 분석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 C장조에 트럼펫·팀파니로 ‘의식적·황제적’ 음색을 만들려면 부드러운 클라리넷의 따뜻함이 오히려 방해가 됐다는 겁니다. 41번의 단단한 빛은, 가장 사랑한 악기를 일부러 비워 두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41번은 따뜻함을 거절한 교향곡입니다. 평생 헌정곡까지 써준 악기를 빼면서까지 얻고자 한 음색이 있었던 겁니다.
꼭 들어야 할 4분
로베르트 슈만은 1841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곡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스 켈러는 BBC 1956년 방송에서 “인간이 쓴 가장 흥분되는 음악”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1886년 9월 일기에서 베토벤 9번과 직접 비교한 뒤 주피터 4악장의 손을 들어줍니다 — 1886년 9월의 러시아 작곡가가 1788년의 오스트리아 작곡가를 그렇게 바라본 겁니다.
전부 19~20세기 평론가들의 인용입니다. 별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32살에, 죽기 3년 전 마지막 교향곡을 쓰면서, 작곡가는 자신이 8살에 만지작거리던 네 음을 마지막 악장 시작 자리에 다시 놓았습니다. 그리고 종결부 24마디에 그 네 음을 포함한 다섯 주제를 동시에 쌓아 올렸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음악을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게 슈만의 인용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4분짜리 종결부에 8살의 모차르트와 32살의 모차르트가 함께 등장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직접 들어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편파 음반 가이드
주피터 명연 후보는 많습니다. 다만 균형 잡힌 칭찬을 나열하는 데 그치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느 음반이 어디가 좋고 어디가 맞지 않는지를 분명히 갈라야 첫 한 장을 고를 수 있습니다.
카를 뵘 / 베를린 필 (1960년대, DG). 묵직한 독일권 정통 해석입니다. ‘푸가가 있는 교향곡’이라는 19세기 독일어권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연주입니다. 4악장이 약간 점잖긴 하지만, 그 점잖음이 바로 이 녹음의 무기입니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가장 안전한 첫 선택입니다. 다만 ‘미친 4악장’을 기대하는 분에게는 미지근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 (1984, DG). 미친 듯이 달립니다. 코다 5성 푸가토에서 정말로 끓어넘칩니다. 듣고 나면 다른 녹음이 다 미지근해집니다 — 그래서 무서운 음반입니다. 단점은 이게 1788년 비엔나의 규모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100인 편성 빈 필이 모차르트를 연주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에게는 권하기 어렵습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시대악기, 작은 편성, 빠른 템포. 1788년 비엔나 살롱의 규모를 복원한 해석입니다. 잘로몬이 30년 뒤에 ‘주피터’라는 이름표를 붙이기 전의 41번 — 그러니까 별명 없는 41번을 듣고 싶은 분에게 정확히 맞는 연주입니다. 다만 큰 사운드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너무 가볍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제가 권하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번스타인부터 시작해 4악장의 극한을 체험하고, 뵘으로 진정시킨 다음, 아르농쿠르로 1788년 비엔나의 실제 규모에 가까운 소리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같은 곡인데 세 개의 다른 시간대를 통과하게 됩니다.
추천 연주 영상
실연 영상으로 처음 만난다면 시대악기 해석부터 들어보는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잘로몬이 듣지 못한 1788년의 41번이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감이 오기 때문입니다. 아르농쿠르의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영상이 바로 그 규모에 가깝습니다.
번스타인 빈 필 1984년 영상은 4악장 코다 5성부의 폭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영상입니다. 지휘자가 마지막 24마디에서 거의 점프하다시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보고 나면 이 곡의 종결부가 왜 그렇게 자주 회자되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do-re-fa-mi’ 네 음의 긴 여정을 확인하고 싶다면 1번 교향곡 K.16 안단테 영상을 5분만 들어 보세요. 8살 모차르트의 첫 동기가 32살 모차르트의 마지막 동기와 같다는 사실을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주피터를 두 번째로 들을 때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종결부 24마디 5성부 푸가토를 악보로 따라가면, ‘5개 주제가 동시에 쌓인다’는 추상적인 설명이 눈앞에서 바로 이해됩니다. 어느 성부가 do-re-fa-mi를 들고 있고, 어느 성부가 다른 주제를 맡고 있는지 색깔이 다른 펜으로 표시해 두면 그 24마디가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2악장 mm. 19~28의 c단조 전환 구간도 자필 악보 사진과 함께 보면 한 번 더 멈칫하게 됩니다. 잉크가 거칠게 그어진 흔적이 음표 위에 남아 있습니다. 그게 슬픔 발작이든 단순 수정이든, 그 자국이 거기 있는 한 우리는 이 곡 곁에 6월 29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 어렵습니다.